[데스퍼라도] 113. 나는 누구인가?
데스퍼라도(Desperado)
나는 누구인가?
[우르릉 쾅]
[쏴]
[쿠릉 쾅쾅!]
번쩍거리는 번개에 거대한 섬광을 터트린 것 같이 대낮처럼 환한 마을이 순간 순간 눈에 들어왔다. 뒤이어 심장을 울리는 천둥소리마저 사나운 폭풍을 연출했으니 촌장과 노인을 비롯한 파슬렌 남매들은 너무나 두려운 표정으로 저 마치 앞서가는 세도스의 뒤를 졸졸 따라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보시오. 촌장. 이리로 가는 것이 맞습니다?"
"아. 바로 그 언덕 아래보이는 골목길 마지막 집입니다."
"흠. 제법 많은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있는 곳 말입니까?"
"뭐..뭐라고요? 사람들이 모여 있다니?"
촌장은 낮 빛이 굳어지면서 재빨리 언덕위로 올라가서 아래를 쳐다보았다.
"이..이런 낭패가 어떻게 사람들이 알고서 하크 집에 모여있지? 후. 비밀리에 해결하려 했건만. 이 것 참 만일 이 일이 마을 외부로 알려진다면 큰일인데.."
잠시후 세도스와 나머지 촌장이 사람들을 해치며 안으로 하크 농부 집안으로 들어갔다. 촌장은 입술이 벌벌 떨린 체 모여있는 사람들을 보고 버럭 소리질렀다.
"뭐야? 구경할걸 구경해야지. 당장에 전부 돌아가시오."
그때 젊은 사람이 급히 촌장에게 다가오더니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고! 촌장님! 큰일났습니다."
"무슨 일인가?"
"글세. 하크의 딸인 레베카가..레베카가.."
"레베카가 어떻게 되기라도 했단 말인가?"
"천상인의 숙주가 맞는 것 같습니다. 지금 지하실 있는데 흉측한 모습은 변종(變種)했습니다."
"뭐..뭐라고?"
하크의 집안에는 마을 사람들로 북적북적 했으나 그 누구도 지하실로 내려갈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지하실에 레베카 혼자만 있는가?"
"저..저기 아버지 하크와 어머니 린다가 잡혀있습니다. 이..이거 어떻게 해야하는지.."
[번쩍]
[우르릉 쾅]
번개와 천둥은 더욱 기승을 부렸고 타레탄 마을의 외곽에 위치한 하크의 집은 일대 소란이 일어났다. 거실에는 두려움에 떨고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마을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그때 세도스가 사람들 틈을 비집고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거실 맞은 편과 이어진 지하실 입구 쪽으로 다가가더니 뒤를 흘끔 돌아보았다.
"촌장님. 저 혼자 지하실에 내려 가 볼 테니 그 누구도 지하실의 출입을 허락하지 마세요."
"알..알겠네..저기. 조심하게나..그나저나 아무 무기라도 가지고 가게나.."
촌장이 녹슨 철검하나를 들어서 보여주자 세도스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무기라고요? 후후. 필요 없습니다."
세도스는 간단하게 답하고 지하실 문 쪽으로 사라져버렸다. 시골의 여느 농부의 집과 마찬가지로 오래된 농기구들이 먼지를 가득 안은 체 처장 여기저기 매달려 있었다. 목재로 만들어진 계단에는 눅눅한 곰팡이가 슬어 있었고 세도스가 한발한발 디딜 때마다 삐걱 삐걱 기분 나쁜 소리를 내었다. 계단을 다 내려오자 세도스의 눈빛이 번뜩거리기 시작했다. 램프가 놓여있는 맞은편 목재 테이블 위에는 레베카의 부모로 보이는 남자와 여자가 입가에 피를 흘리며 반듯이 누워있었다. 그때였다 허공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신음 소리에 순간 세도스의 고개가 천장 쪽으로 향했다.
"흠.."
세도스는 천장을 살펴보더니 가벼운 신음소리를 뱉었다. 천장에는 레베카로 보이는 소녀가 밀착되어 붙어있었다. 횐 자위만 드러내 그녀의 눈이 세도스를 노려보고 있었으니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기절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하지만 세도스는 제법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그녀아래위로 천천히 살펴보았다.
"빌어먹을. 흉측하군."
[갈갈갈갈..]
갑자기 레베카의 아래턱이 달달달 흔들리며 괴상한 웃음소리를 자아냈다. 사람이 천장에 붙어 있는 자체도 기이한 광경이었지만 마치 지옥의 악령에 뒤집어 쓴 소녀의 모습은 지하실 위 부분 창 밖에서 요동치는 번개와 천둥소리와도 절묘한 공포 연출을 보여주는 듯 했다. 세도스가 가볍게 한마다 했다.
"후후. 이거 내가 무서워해야 하나?"
[갈갈갈갈]
세도스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잠시후 세도스가 지하실 중앙에 놓여있던 목재 테이블을 천장에 붙어있던 레베카 바로 밑까지 끌고 왔다. 잽싸게 테이블 위로 오른 세도스는 그리 높지 않은 천장까지 손이 닿았으므로 레베카를 천장에서 뛰어 내려고 했다. 그 순간이었다 레베카의 혀 바닥이 길게 늘어지더니 세도스의 목을 휘감았다. 하지만 세도스는 자신의 목이 징그러운 혀 바닥으로 칭칭 감기 것에 별로 놀란 기색도 없이
다짜고짜 레베카의 몸통을 잡고 천장에서 뛰어내려 하였다. 잠시후 세도스는 목이 답답한 것을 느꼈다.
"목이 축축하군.."
세도스는 자신의 목을 무심코 만졌고 피가 묻어 나오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혀 바닥에 가는 촉수들이 있었군. 그러고 보니 그 촉수들이 내 목에서 피를 빨고 있었군. 후 그럼 이제 어떡한담."
참으로 무신경한 건지 무모한 건지 세도스는 자신에게 닥친 위기에도 무척 여유를 부리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떼어버려야지."
그는 갑자기 혀 바닥을 두 손으로 강하게 잡아당기기 시작했고 잠시 후 목을 칭칭 감았던 혀 바닥이 풀렸다. 그 순간 이번엔 천장에 달라붙었던 레베카의 두 손이 길게 늘어지면서 세도스의 심장을 향해 공격을 하였다. 그때였다. 세도스 두 손 역시 자신을 향해 돌진해 들어오는 레베카의 손목을 꽉 잡았다. 그리고는 표정이 굳어지면서 버럭 소리 질렀다.
"아이가 다칠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지만 이젠 할 수 없군."
세도스는 레베카의 두 손을 잡고는 사정없이 저편 지하실 구석으로 패대기쳐 버렸다.
[획!]
[악!]
벽에 부딪힌 레베카는 갑자기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몸마저 아래위로 요동을 치고 있었다.
[갈갈갈갈]
입에 거품을 쏟아내고 미친년처럼 고개를 마구 흔들어되는 것은 흡사 악령에 빙의 된 자의 모습과 같았다. 그러나 세도스는 무심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였다. 레베카의 입에서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넌 이 아이가 죽어도 괜찮은가?]
"드디어 나타났군."
[무지한 놈. 나를 더 건들면 이 아이를 죽여버리겠어.]
"죽여."
[뭐..뭐라고?]
"죽이라고?"
세도스는 갑자기 주변을 살펴보더니 잠시 후 뭔가를 집어들고 왔다. 그것은 바로 톱이었다. 세도스는 톱을 들고 레베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녀의 횐 자위만 드러낸 눈을 직접 까서 뒤집더니 미소를 지었다.
"네가 죽이기 전에 내가 도와줄까? 후후. 이 톱으로 이 아이를 절단 내볼까? 물론 이 아이가 죽으면 너도 실체를 드러내겠지. 톱질은 네게도 예외가 없어."
세도스가 톱으로 레베카의 발목에 갔다대었다. 그리고는 가볍게 몇 번 쓸었다. 그러자 피가 통통 튀기면서 레베카의 비명소리가 지하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아아아아악..]
그때 레베카의 몸에서 섬광이 번쩍거리더니 무엇인가 빠져 나왔다. 한 인형(人形)이 지하실 중앙에 형성되어 잠시후 완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세도스는 벌떡 일어나서 그쪽을 바라보았다. 레베카 몸 속에서 빠져 나온 인형(人形)은 붉은 몸체를 가지고 있는 존재로서 가는 뿔이 대머리 위에 솟아 나 있었으며 얼굴모습은 쭉 찢어진 눈매와 오 똑 한 코 그리고 송곳 이마저 아래로 길게 뻗은 악마의 형상과도 같았다. 더구나 등뒤로 날개가 고이 접어져 있었으니 결코 이 사계(四界)의 3개 종족과는 무관한 다른 생물체였다.
"후후. 천상인의 실체를 드디어 보는군."
[미..미친놈 톱으로 자신의 종족을 죽이려다니..]
[탁탁탁]
세도스는 톱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장난스럽게 내리치며 그를 노려보았다.
"내가 누구를 쓸던 말던. 후후."
[감히 일개 인간이 나를 어찌하려는가? 카카카카]
비록 기억을 잃어버린 세도스였지만 그도 자기 자신을 몰랐다. 원래부터 이런 잔인한 습성이 있었는지 더구나 본능적으로 전투방식이 잠재되어 있었으니 마음만 먹는다면 원하는 대로 능력이 따라주었다. 그러나 세도스는 왜 자신에게 이런 능력이 있는지 반문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저 내키는 대로 행동할 뿐이었다. 순간 세도스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라 한순간에 천상인 코앞까지 다가가서 그의 목줄 기를 강하게 낚아챘다.
[악!]
너무나도 맥없이 자신의 숨통을 세도스에게 잡힌 천상인 마저 경악을 했다. 하지만 세도스의 피의 첫 번째 제물로서 자신이 선택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만무했다. 한편 세도스는 한 손으로 천상인의 목줄 기를 잡은 체 다른 손에 들려진 톱을 보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지하실 밖으로 들려오는 처절한 괴성이 전 마을로 울려 퍼졌다.
[카아아아아아아아]
거실에 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온 마을 사람들이 그 울부짖는 소리에 저마다 귀를 틀어막고 바닥에 엎드려 벌벌 떨고 있었다. 약 30분이 되었을까. 지하실에서 누군가 올라오는 발자국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 찬 시선으로 자하실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그때 파슬렌과 소피아나가 외쳤다.
"세도스 아저씨.."
"아저씨.."
온몸이 피로 뒤범벅인 세도스가 레베카를 안고 나왔다. 세도스는 파슬렌을 보더니 소리쳤다.
"파슬렌. 당장 이 아이의 발목을 치료해 주게나. 상처가 그리 깊지 않으니 걱정할 건 없고."
파슬렌은 레베카를 넘겨받고 일단 발목 부위를 살펴보았다.
"헉. 누..누가..이런 잔인한 짓을.."
"톱에 난 상처이지. 뼈 다치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빨리 응급처치를 해!"
그때 촌장이 세도스에게 다가왔다.
"이..이보게 젊은이 천상인은.."
"죽였습니다."
"허. 정..정말 수고했네..저기 레베카의 부모들은.."
"제가 내려갈 때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아무튼 천상인의 시체도 아래 지하실 아래 있습니다. 톱으로 토막 난 신체를 맞추려면 좀 성가시겠지만..후후."
"토막 나다니?"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