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55)

      "가흔." 

      ".....칸." 

      불가 몇일 사이에 눈에 띄게 헬쓱해진 얼굴을 바라보던 칸은 그의 옆에 앉았다. 

      출렁거리는 침대에 맞추어 마른 몸이 흔들리자 떨림이 맞추지 않아 가리려고 했더 

      손이 칸의 시야에 들어온다. 

      잘게 떨고있는 그 손은 칸의 얼굴을 더더욱 굳게 만들었다. 

      칸의 얼굴을 확인한 가흔은 어색하게 웃으며 자신의 손을 잡아 가슴쪽으로 끌어 당

      기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그 점쟁이 실은 비잔힐가의 가주라면서요? 덕택에 좋은 받았으니 고맙다고 해야 

      겠네요." 

      한쪽 귀에서 반짝거리는 귀걸이를 가르키며 웃어보이는 얼굴에 칸도 마땅히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비잔힐가에서 가흔을 구하고 비밀문을 통해 수많은 아군을 안전하게 귀환하게 해주

      었던 자가 실은 가흔과 약간이나마 아는 사이인 동시에 괴벽이 있는 비잔힐 가의 가

      주라는 것은 나중에 노웬에 의해 알려졌다. 

      80세의 노파로도 중년인이나 하다못해 얼굴만은 어린 소녀로까지 분장을 할수있어 

      수많은 일들을 경험하고 다니는 그자는 진짜 얼굴은 평범하다 못해 한번보면 그대

      로 잊을만큼 무개성의 외모를 지니고 있는 자였다. 

      가주의 위를 받고는 있지만, 적자인 형님에 의해 가문은 중앙 황제의 휘하로 들어가

      고 일부의 일을 빼면 허수아비나 다름없는 신세를 비관하며 노웬 일행에게 도움을 

      청한 그는. 먼저 약소한 사례라면 가흔에게 인어의 조각을 건내주라며 내놓았다. 

      언어의 목걸이와 비슷하지만 통역이 다소 미흡하며 어려운 회화는 불가능 하다지

      만, 목걸이가 없는 이상 가흔에게 있어서 가장 유용한 선물이었다. 

      파리한 안색으로 고맙다는 가흔의 곁에 더 있어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싶었던 그이

      지만, 앞으로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잔뜩이기에 미적거리는 걸음으로 돌아갔다. 

      그러고 보니 노웬만 오면 모두의 방문을 받은 것이 된다. 

      "오늘 날씨가 좋더군. 나가보지 않겠어?"

      "....아뇨. 좀 쉬고 싶네요."

      "그..그래. 피곤하면 쉬어야지."

      고개를 내저으며 거절하는 말에 괜히 권했다며 양손을 휘저으며 칸은 그와 할수있

      는 가장 무난한 대화가 무엇일까하고 고민했지만, 수가 없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지만 그를 웃게하여 이 어색한 분위기를 풀수 있을까? 

      칸은 원래 무거운 분위기와 친한 사이가 아니다. 

      난처해 하는 칸을 보며 웃어라도 주어야 겠다고 생각하는 가흔이지만, 입꼬리가 도

      저히 올라가지 않는다. 이곳에 있으면서 어차피 한번은 거쳐야 할 통과문에 불과한 

      것이거늘 자신은 왜 이렇게 유난스럽게 굴어 주위 사람들을 난처하게 만드는 것일

      까.

      "칸은 이런 느낌...이었나요?"

      "............"

      "아, 아니예요. 괜한 소리를..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나온 말에 당황하며 손을 저은 가흔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칸의 모습에 

      미간을 찡그렸다.

      괘한 말을 해서 저사람의 기억하기 싫은 일을 떠올리게 만든 것은 아닐까? 

      어째서 자신은 매사가 이런 식인지....  조심한다고는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

      간 말이 상대방을 상처입히고 사과할 타이밍을 만들지 못해 그대로 틀어지고 만다. 

      이번에도 그런식으로 칸과 사이가 소원해 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눈가가 시

      큰해 진다. 

      "제일 가까운 사람이었어. 처음의 살해자는."

      "........."

      "너무나 좋아하고 존경한 사람이었지만, 서로 생각하는 바가 틀렸던 거야. 매사에 

      부딫히기만 하니 좋아하던 감정은 악감정으로 변하고 급기야는."

      스스로 목을 치는 듯한 행동을 취해보인 칸은 고개를 숙이고 다음 말을 이었다. 

      "엄청났지. 그 후는.. 그 사람이 내 최초의 선이었던 거야. 그 사람을 죽이고 나니 다

      른 그 누구를 베어도 아무런 마음이 들지않아. 죽는 것을 보아도 구걸하는 자를 등 

      뒤에서 베어도 웃을수가 있었어. 하지만 말야."

      "............"

      "어떤순간 갑자기 닥쳐오더군, 죽인 자들의 무게가 너무 거대해서 숨조차 쉴수가 없

      었어. 후회하고 또 후회했지만 이미 늦고 지금은 이 모양 이 꼴."

      "....칸..."

      불안하게 흔들리는 칸의 얼굴을 보며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처음으로 보여주는 그의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어 들어주는 수밖에는.... 

      그런 가흔의 마음을 아는 것인지 그를 부드럽게 바라보던 칸은 온화하지만 강하게 

      말을 이었다. 

      "이런 일은 스스로 일어나야만 돼. 남이 바라주는 약은 결국 곪게 만들어 상처를 더 

      벌어지게 할뿐이지. 도망기도 상관없지만 가흔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건 이미 알

      고 있어."

      "하지만.. 하지만..."

      "자책해도 돼. 하지만 난 가흔이 적당히 해줬으면 좋겠어."

      칸은 언제 어두운 얼굴이었냐는 듯이 생글생글 웃는 얼굴을 보이며 가흔의 눈을 직

      시했다. 

      "나는 가흔이 좋으니깐 괴로워 하는 얼굴을 보는건 싫어."

      "싫다고 해도..."

      "절대 싫으니깐 빨리 나아서 건강해 지라고!" 

      팡!! 

      가흔의 등을 소리나게 친 칸은 문을 두고 침대에서 가장 가까운 창으로 뛰어들어 갔

      다. 갑자기 떨어져 내려오는 칸의 모습에 놀라 시비들이 요란하게 비명을 지르는 것

      을 들으며 가흔은 칸이 때린 등에 손을 둘렸다. 

      괴로워 하는 모습은 보기는 절대 싫다니.. 

      그 엄청난 어거지가 관연 그다워서 가흔은 쿡쿡대며 웃었다. 

      그때의 감촉은 아직 손안에 생생히 남아있지만, 어느새 떨림은 가라앉아 있었다. 

      칸의 말대로 스스로 일어나야지 이 지독한 아픔에서 벗어날수 있을 거다. 

      입술을 깨문 가흔은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 위에 차려져 있던 음식을 하나 집어 입

      안에 넣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하나라도 더 먹어서 기운을 차려야 다른 사람들이 

      걱정하지 않는다. 

      도움이 되지 않을지언정 그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수는 없지 않은가. 

      기합을 넣은 가흔은 막 비워져 가는 그릇위에 또 다른 고기 덩어리를 올려 놓았다.

      "이제 괜찮은 가요?"

      "네, 그럭저럭.........부끄럽네요."

      "뭘요. 저로썬 가흔님이 기운이 차린게 너무나 좋아서 배탈이든 뭐든 걸려도 상관없

      어요." 

      라프헨의 말에 가흔은 붉어진 얼굴을 더욱 붉히며 머리를 감싸고 있던 반다나를 눈

      밑으로 끌어 내렸다.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기에 앞서 검은 머리는 너무 튄다며 에즈와 젤이 준비해 준 것

      이다. 청바지 재질의 느낌이 나는 바지에 하얀 반팔 목티를 받쳐입고 그 위에 보호

      구와 스카프 같은 것을 둘러 내려뜨린 가흔은 왼팔에 덧대어진 붕대와 무릎 중간까

      지 올라 간 신발이 제대로 되어 있는지 확인했다. 

      오른팔 잡이인 그를 배려해 왼팔에 감겨진 것은 얇은 붕대로 보이지만 실은 보호구

      로 왠만한 충격따윈 그대로 흡수한다고 한다. 

      만약의 상황엔 왼팔말 휘둘러도 목숨은 구할거라는 에즈의 장난섞인 말에 가흔은 

      웃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 만약에 상황의 경우 자신의 몸이 생각처럼 잘 움직여 질

      지 걱정이다. 

      겉모습은 보기좋을 만큼 건강해졌지만, 아직 검을 잡기만 하면 팔 전체가 떨려오는 

      것이다. 

      그런 가흔의 모습에 노웬은 주방에서 에즈를 도우라고 했지만, 검을 휘둘러야 하는 

      경우엔 주방사인 에즈도 검을 들고 나가 싸운다. 

      그런 그녀의 곁에 숨어있는 것은 자신이 용납할수 없기에  가흔은 하루라도 빨리 검

      을 휘두를수 있게끔 자신을 단련하고 있었다. 또 다시 누군가를 죽일순 없겠지만, 

      적어도 움직일수 없을 만큼의 상처를 입혀 적의 움직임을 둔화 시킬수 있게끔 말이

      다. 

      "그럼 출발한다." 

      모든 회의가 끝난 모양이다. 

      저택에서 나오는 주요 맴버들을 확인하며 마차에 오른 가흔은 라프헨을 도와 위로 

      올려 주었다. 무장을 한 라헨이 가흔에게 다가와 라프헨을 부탁하는 말을 하자 그는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미소로 화답한 라헨은 사내가 끌고온 말에 올라 칸이나 에스가 말에 오르

      는 모습을 확인하고, 역시나 말위에 앉아있는 노웬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출발한다!!!"

      와---!!!!!

      라헨의 외침에 맞추어 백여명의 사내들이 소리를 지른다. 

      덜커덩.

      마차의 턱에 엎드린 가흔은 이주간 머무르던 에스의 저택이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

      았다. 멀리 밖으로 나와 눈물을 흘리며 손수건을 흔드는 시녀들을 보며 손을 마주 

      흔들어 주는 몇몇 사내들의 모습도 보인다. 

      집사가 손을 놓아주지 않아 제일 마지막에 출발한 에스는 가흔의 마차로 다가와 붉

      어진 눈가로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자신이 결정한 길이라지만 역시나 집을 떠난다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일거다. 

      "이제부턴 서쪽으로 갈겁니다. 그곳은 성지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이지요."

      "성지?"

      "유적이나 신전들이 많이 대륙 각국의 사람들이 순례를 다니는 곳이니 다양한 풍속

      과 사람들을 보실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부턴 자치국인 남쪽을 떠나게 되었으니 중앙의 압박이 심해 지겠지요."

      옆에 앉아 마찬가지로 멀어지는 저택과 길거리를 바라보던 라프헨이 웅얼거렸다. 

      그 말에 알수없다는 표정을 짓어보이자 에스는 그에게 속시원히 말할순 없는 상황

      에 난감해 하며 얼버부리 듯이 말했다. 

      "안전하게 지켜주었던 집을 떠났으니 앞으로의 여정이 더 힘들어 질거라는 말입니

      다."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 것에 화를 내려는 마음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섭섭한 것은 

      사실이다. 

      내심 미안해 하는 에스에게 기운없는 미소를 지으며 가흔은 고개를 들었다. 

      푸른하늘............

      전에 볼때는 아무 생각없이 편안했는데 지금은 가슴에 돌이 앉은건지 답답하기만 

      하다. 

      "남쪽은 아시다 싶이 자치국가라 각 가문의 수장들이 모여 회의하는 식으로 나라를 

      통치해 가지, 이건 서쪽도 비슷하지만 거긴 신전들이 많다보니 자연히 원조를 많이 

      해주는 나라의 뜻에 따라 움직이고, 북쪽은 여왕통치 국이야. 

      인간이 살수없을 추위를 지닌 그곳에 나라를 세운것은 초대여왕으로 현 여왕은 그

      에 못지않은 명성을 날려 백성들의 든든한 신뢰를 받고 있어. 

      동쪽은 여러 왕조가 존재해서 서로 견제하다 보니 일반 백성들이 살기엔 힘든 곳이

      지만, 부패한 귀족들이 재산을 모으기엔 참으로 좋은 나라." 

      이동하는 중에 짬이 생겨의 칸에게 이곳의 지리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자신이 살던 곳에도 왕조는 있었으니 이해의 어려움은 없었지만, 뭐랄까. 

      책에서만 접하던 것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에 가흔은 셀레임을 느꼈다. 

      얼굴을 상기하고 자신의 설명을 열심히 들어주는 모습이 귀여워 칸은 절로 기분이 

      좋아 더 많은 것을 알려주려 입을 열었지만, 이어진 가흔의 질문에 안색을 바꿨다. 

      "그럼 중앙국은?" 

      ".........글쎄 거기는...." 

      그 누구보다 잘 아는 곳이다. 

      하지만 그 곳에 대해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알수가 없어 칸은 어깨에 기대고 있

      던 검면을 쓰다듬었다. 뭔가 난처한 일이 있을때마다 저도 모르게 생기는 움직임에 

      옆에서 같이 듣고있던 라프헨이 끼어 들었다. 

      "중앙국은 제왕통치국이예요. 황제 한사람의 뜻으로 나라가 움직이죠." 

      "북쪽의 여왕과 비슷한 건가요?" 

      가흔의 질문에 답하기를 망설이던 라프헨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칸의 얼굴을 확

      인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체제는 비슷하지만 실질적으로 나라를 움직이는 방식이 틀리죠. 여왕은 선별된 백

      성들의 대표와 함께 나라를 꾸려가지만 중앙국은...." 

      "황제의 말이 곧 법이다. 오로지 그 한사람의 뜻으로 나라가 움직이지." 

      라프헨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가흔은 갑자기 껴드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천을 걷고 마차안으로 내민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전에 자신에게 나쁜 감정을 보였

      던 빛이 바랜 붉은 머리의 남자. 

      그 남자는 마차 안의 인물들을 하나씩 흩어보다 가흔과 눈이 마주치자 볼에 그어진 

      상처를 이그러 뜨리며 미소를 지었다. 

      "샤한. 쓸데없는 소리를 하시는 군요!!" 

      라프헨의 언성에 그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들어 밖을 가르켰다. 

      "어서들 나가 보시라고 노웬이 부르니깐."   

      가흔은 노웬의 이름을 스스럼 없이 부르는 사내의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런 남자는 칸 이후로 처음보는 것이다. 

      그런 가흔의 반응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아직도 미적거리는 두사람에게 다시금 노웬

      의 이름을 막 부르며 일어나라고 한 사내는 갑자기 나타난 것과 같이 그대로 몸을 

      돌리고 사라졌다. 

      "도대체 왜 도 부르는 거야?" 

      중앙국에 대해 묻는 가흔에게 당황했던 두 사람은 평소엔 달갑지 않던 붉은 머리 샤

      한이 고맙게 느껴졌다. 이것으로 가흔에게 그 나라에 대해 더 자세히 알려주지 않아

      도 되게 되었으니, 다행이지 않은가.  

      가흔은 뭔가 상황이 마련되지 않는 이상 깊이 파고드는 타입의 사람은 아니라는 것

      을 잘 알고 있으니깐. 

      "그래도 부르시는데 빨리 가는게 좋겠죠? 가흔, 당신도 같이 가요." 

      자신이 아닌 칸과 라프헨 두 사람을 찾는 것이 분명했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것

      도 난처했기에 가흔이 토를 달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마차를 나왔다. 

      이동한지 일주일 동안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화로운 여행길의 계속이었다. 

      그 동안 라프헨에게 이 나라의 언어와 역사 지명 등을 배우고, 검은 아직도 들수는 

      없지만 칸에게서 검을 휘두르는 방법에 대해 배우며 지루한 시간을 떼웠다. 

      그리고 여행중 말을 걸어오는 몇몇의 남자들도 있어서 말을 트고 지내는 사내들도 

      꽤나 생겼다. 

      그들이 말하길 처음 가흔의 외모가 여태까지 본 사람들과 너무도 상이해 접근하기

      가 어려웠지만 단장인 노웬이 받아들인 것이기에 이제는 괜찮다며 웃어 보였다. 

      그런 남자들의 모습에 노웬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신임을 받는 사람인지 알게되어 

      가흔은 입맛이 썼다. 

      노웬이 받아 들였기에 자신을 받아 들인다는 말은 그가 돌아서면 마찬가지로 가흔

      을 외면하겠다는 말과 같았으니깐. 복잡한 생각을 하기는 싫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곳과 모든게 다른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는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 했다. 

      그래야 아무것도 없는 자신이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나중의 일이지만 그러할

      수 있다면 기억을 되찾고 원래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도 가능해 지는 것이다. 

      자고로 아는 것이 힘이라고 했으니.... 

      "어서 오십시오." 

      들어오는 칸과 라프헨 그리고 가흔 자신에게까지 웃어보이며 자리를 내주는 노웬의 

      모습에 가흔은 고개를 갸웃했다. 

      전에는 경계하는 분위기가 강했는데 지금은 상당히 풀려진 모습. 

      하지만 자고로 사람의 태도가 갑자기 돌변해서 좋은 일은 없었으므로 노웬의 대우

      에 인사를 하면서도 가흔은 경계를 풀지 않았다. 모두가 칸에게 고개를 숙이지만 실

      질적인 세력의 중심은 이 남자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친절에 친절로 답하지만 눈동자를 풀지않는 가흔의 모습에 노웬은 그가 상당히 똑

      똑한 인물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전부터 영리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저렇게 당당하게 

      굴수 있다는 건 그만큼의 여유와 실력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 외향만 그럴 듯해서 

      나대는 인물들과 근복적으로 다른 타입이다. 

      무조건 적으로 가흔을 쫒아낼 생각만을 하던 그이지만, 칸이 그에게 집착하고 모사

      인 에스, 그외에 다른 이들이 그에게 잘 대해주는 모습을 보니 자신만 못해주는 것

      도 피곤하다 싶어 잘해 주는 방향으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실제론 할수있을 만큼의 뒷조사를 통해 그가 정말로 이 세계의 인간이 아니라는 게 

      밝혀져 경계대상이 아니라 판단. 우수한 인물이니 자신들의 사람으로 만들려는 목

      적이 내재되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번은 무슨 일로 부른거야?" 

      "이번이라곤 하지만... 일주일동안 여러분들은 모은 기억이 제겐 없군요." 

      턱을 바치고 젤이 따라준 차를 우아하게 마시는 폼에 혀를 내밀어 보이던 칸이지만 

      가흔이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닭자 내민 혀를 집어 넣으며 팔장을 낀다. 

      가흔은 말썽을 부리던 아이가 부모에게 들켜 금방 의젓한 모습으로 돌변하는 것 같

      은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오려 했지만, 그랬다간 그가 필시 난처해 할것이 분명하므

      로 입술을 깨물며 참았다. 

      전에 에스의 저택에서 첫 살인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을 때부터 가흔은 칸이 편하게 

      느껴졌다. 

      분명 외향은 어린아이지만 그 속에서 든든한 어른의 모습을 보았다고나 할까? 

      전에는 에스에게 의지를 했지만 지금은 알게모르게 칸에게 더 의지를 하고 있었다. 

      그런 변화를 눈치챈 에스는 서운해 했지만 그래도 가흔을 잘 챙겨주었다.  

      "...흐--음." 

      칸과 가흔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분위기에 눈썹을 올려보이던 노웬은 지금 당장 해

      결해야 할 일이 있으므로 들고있던 찻잔을 내려놓고 자세를 바로 했다. 

      "실은 서쪽으로 바로 올라갈 생각있었지만, 예상했던 노선에 이상이 생겨 계획을 수

      정하기로 했습니다." 

      "일이라뇨? 그곳은 원래 산맥이 있는 곳이지 않습니까?" 

      에스의 질문에 노웬은 곤란하다는 듯이 미간을 주억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산을 타고 한달가량 이동을 계속해 신전의식이 시작하기 전 사람이 없을때에 입성

      할 예정이었건만... 

      계획이 틀어져 가장 인파가 몰리는 시기에 도착하게 생겼다. 

      "그곳에 잠들어 있던 용이 깨어났다는 소문입니다." 

      "......용?" 

      노웬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는 칸과 라프헨 에스 등과 다르게 가흔은 미간을 

      살짝 찌뿌렸을 뿐이다. 

      용이라니 그 날개달린 도마뱀 말인가? 

      이마엔 뿔이있고, 이빨은 날카롭고 손마다 여의주를 물고 있는 그 용? 

      최첨단 과학시대에 살고 있었던 가흔에게 용이란 벽화에 그려진 것이 전부였기에 

      다른 사람들처럼 놀라거나 하는 반응을 보일수가 없는 것이다. 

      기억속의 세계에서 용이라고 한다면 미친취급을 받았을텐데, 이곳의 사람들이 너무

      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에 이질감이 느껴진다. 

      "휴면시기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지금 깨어날수 있는 거죠?" 

      "글쎄? 욕심많은 드워프들이 용의 영역을 침범한게 아닐까 합니다." 

      "드워프? 그들이 죽기를 각오하지 않은 이상 그런일을 벌일리가 없잖아." 

      "그건 당신이 말해주지 않아도 여기있는 모두가 더 잘알고 있습니다. 아, 가흔은 모

      르는 군요." 

      갑자기 날라온 질문의 화살에 어색하게 끄덕이는 것으로 긍정한 가흔은 자신에게 

      몰리는 시선에 고개를 숙였다. 

      나중에 용에 대해 설명을 해주자고 생각하면 칸은 노웬을 올려다 보았다. 

      "그거 믿을만한 정보야?" 

      "정보를 다루는데 있어 최고라고 자부하는 이드가에서 흘러 들어온 겁니다. 덕분에 

      대륙이 한동안 공포에 떨게 생겼죠." 

      "...그런.." 

      원하는 의뢰에 있어선 하늘의 별을 따다 세밀하게 그려 고객이 원하는 최상의 서비

      스를 자랑한다는 이드가의 정보이니 헛된 것은 아닐거다. 

      한없이 심각해지는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던 노웬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랑푸렌쪽 길을 선택해서 가기로 했습니다." 

      "그랑푸렌?! 그랑푸렌이라고 했습니까?!! 거긴 위험합니다!!" "

      "라프헨. 그대의 마음은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어쩔수가 없습니다. 수가 없단 말이

      죠. 전 용보단 차라리 그랑푸렌에 가서 그곳의 놈들을 상대하는 쪽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노웬의 확고한 결심이 어린 표정에 라프헨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라헨을 바라

      보았다. 에스는 아까부터 계속 말이 없던 것이 이미 모든것을 알고 있던 모양이다. 

      이미 결정된 사항인 이상 자신이 뭐래해서 바뀌어 질리는 없지만, 그래도 그곳을 지

      나가는 너무 안좋다. 

      바로 중앙국의 식민지인 길목이 아닌가? 

      지나가는 곳마다 매번 달려드는 적들을 상대하고 나면 모두 지쳐 쓰러질지도 모르

      는 일이다. 안색이 안 좋게 변하는 라프헨의 얼굴을 바라보던 칸은 입술을 깨물었

      다. 

      만약 자신이 다른 곳에 있어 그것에 난동을 부린다음 적들의 시선을 잡고 있을때 이

      들이 그랑푸렌을 지나간다면 보다 안전할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이곳을 떠나 번화가로 떠나는 게... 

      짝짝.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즐거운 마음으로 구경하고 있던 노웬은 분위

      기가 점점 마이너 곡선으로 하강하자 손뼉을 마주쳤다. 

      영 안좋은 안색이로군 모두다.      

      "그렇게 불편한 표정 지을필요 없습니다. 아주 좋은 방법이 있으니 그리 걱장하지 

      않으셔도 될겁니다." 

      입꼬리를 올리며 그답지 않게 시원하는 웃는 폼이 더 불안했지만 다들 입을 열지는 

      않았다. 

      가벼운 농을 던질수 없을 정도로 극도의 긴장감에 몸이 굳어진 것이다. 

      이런 상태에선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것이란 걸 알기에 노웬은 사람들을 해산 

      시켰다. 

      그들이 궁금해 하는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라헨이나 에스가 말해 줄 것이다. 

      "에스군은 따로 할말이 있으니 남아있어 주세요." 

      막 자리에 일어서려던 에스는 다시 자리에 앉아 나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

      였다. 말이 끝나마자 자신에게 오라는 제스쳐를 취해보이는 칸에게 웃어보인 그는 

      이내 사람들이 다 나가자 웃던 얼굴을 굳히며 노웬에게 시선을 주었다. 

      "만약 칸이 저희들의 계획을 알면 난리를 칠걸요?" 

      "난리를 친다한들 어떠겠습니까. 수가 없는 것을.... 정말이지 빌어먹을 이로군요." 

      그답지 않은 거친 말투에 에스는 그저 웃어 보였다. 

      말을 뱉어난 본인도 하고나선 민망했더니 헛기침을 하며 새삼 진지할 얼굴을 만들

      어 보였다. 

      "그나저나 비잔힐가가 황제직속이 되다니... 문제가 심각합니다. 애써 줄을 이어둔 

      곳이었는데..." 

      "그동안 거래를 해왔다고 해도 감히 황제의 명을 어기고 우리들과 줄을 댈 사람들은 

      아니죠." 

      "당연한 말을..." 

      할수 있는한 가볍게 답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튀는 것은 어쩔수 없다. 

      그동안 보물들을 자금으로 바꿔주던 곳이 한순간에 사라지게 된 파장은 대단히 큰

      것이라서 노웬은 그동안 제대로 잠을 이룬 밤이 손으로 꼽을 지경이었다. 

      황제에게 버려진 가문과 연결을 해볼까하는 생각을 안해본 것은 아니지만, 그 동안 

      친황제파임을 강조하던 그들이 자신들의 손을 냅다 잡아 줄리도 없고 말이다. 

      그들과 손을 잡을수 있는 약간의 가능성이 없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일은 저 대

      단하신 칸이 절대 허락하지 않을 방법이다. 

      길이 없으니 돌아가라.인가. 

      "천만중 다행인게 비잔힐가에 있던 그자와 칸이 만나지 않은 것이랄까?" 

      "..그렇군요." 

      가흔이 납치되었던 날의 떠올린 에스는 얼굴을 찌뿌렸다. 

      최악의 남자 카일을 만난대다 황제와 칸님이 만날뻔 했다. 

      다행히 만나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만났다면하고 생각한다면 지금도 간이 콩알만해 

      진다. 

      "슬슬 궁금함이 커져 좀있음 저에게 달려들어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겠군요. 에스 나

      가서 그들에게 계획의 내용을 알려줘요." 

      "정말이지 힘든일만 시키는 군요. 칸님을 생각하자니 벌써 골이 땡깁니다." 

      "힘내주세요." 

      한숨을 쉬며 미적거리는 에스를 무척이나 즐거운 표정으로 바라보던 노웬은 옆에 

      서있는 젤에게 차 한잔 더 타오라고 했다. 

      "......무희단?" 

      "네, 그렇게되었습니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되묻는 칸을 바라보며 대답한 에스는 곧이어 나타날 격렬한 

      그의 반응에 신경을 곤두 세웠다. 

      그러나 막 목청을 높이려던 칸은 옆에서 무희단이 뭔가하고 라프헨에게 묻는 가흔

      의 목소리에 그리로 관심을 돌렸다.

      "귀족들의 저택에 행사나 파티가 있을 경우 불려가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불러주는 사

      람들 입니다. 여자들이 많고 남자들은 호위나 악기를 연주하는 역활을 주로 맡죠." 

      "그걸 우리들이 한다는 겁니까? ......그럼 춤이나 노래는 누가 부르죠?" 

      순진하게 묻는 가흔의 얼굴을 보자니 차마 '이중에서 제일 반반한 사람들이 여장을 

      해 대타를 설겁니다.'라고 말할수가 없었다. 

      외모로 보나 뭐로보나 가흔이 여장역을 맡을 가능성이 제일 높았기 때문이다. 

      "그건 나중에 결정할 사항입니다. 무희단으로 변장한다고 해도 어차피 아주 위험한 

      마을을 지날때만이고 그전까진 이 모습으로 이동을 계속할 겁니다." 

      "그렇군. 노웬녀석 여장을 시켜줄 테다!"  

      주먹을 들어 손바닥에 마주치며 전의를 다지는 칸의 모습에 그런일은 절대 없을 거

      라며 어색하게 웃어보니는 에스였다. 

      노웬은 커녕 칸의 여장 가능성이 높았기에 오히려 조심하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궁금한 것은 이뿐이죠. 전 그럼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처리할 일들이 잔뜩이거

      든요." 

      더이상 곤란한 질문이 나왔을 경우 그에 대답할 말이 궁했던 에스는 서둘러 일어나 

      앉아있는 일행들에게 쉬라고 말하며 마차에서 나왔다. 

      뛰어 내리는 뒤로 가흔이 무희단에 대해 더 물어보는 소리가 들렸지만, 이미 마차에

      서 내린 에스는 이동하는 마차의 뒷부분을 바라보다 한숨을 쉬었다. 

      지금은 가흔이 칸의 신경을 돌려주어서 무사히 넘어갔지만, 막상 일이 닥치면 어떠

      한 봉변을 당하게 될지. 벌써부터 땀이 다 난다. 

      "실제로 무희단은 안 좋은 거예요. 가난한 평민들이 판 여자아이들이 그들의 주 구

      성원이니.. 게다가 돈을 받고 몸을 판다고 합니다. 그녀들은 잠자리 기술이 좋아 귀

      족들의 첩으로 눌러앉는 경우도 종종있지만, 잘되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기가 쎈 

      본처에게 쫒겨나는 경우가 허다하거든요." 

      라고 속시원하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자신보다 더 순진하게 빛나는 그 눈동자를 바

      라보니 차마 진실을 밝힐수가 없다. 

      라프헨은 가흔에게 무희단이란 좋은 의미보단 나쁜 의미를 더 부여받은 집단이라는 

      말밖에 해줄수가 없었다. 이해할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 얼굴을 보며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려던 라프헨은 그러나 어느새 검을 뽑아든 칸과 라헨이 

      검날을 가다듬고 있자 식은땀을 흘릴수 밖에 없었다. 

      "여기 사람들은 춤추고 노래를 부르는 것을 안 좋게 생각하는 군요. 저희 나라에선 

      그들은 가수라고 불리우면서 대중의 사랑을 받는데 말입니다." 

      설명을 제대로 해주지 않으니 이해를 했을리가 없다. 

      가수=무희단으로 이해를 마친 가흔의 오류를 집어 내주고 싶었지만 그것을 설명하

      기 위해선 별에 별 말을 다해야 할 것이다. 

      도대체가 순진하다는 평을 받은 자신보다 더 모르니 무슨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

      르겠다. 어쩌할줄을 모르는 라프헨의 모습이 안타까운 라헨이었지만, 그의 경우는 

      설명하기가 더 곤란한 상황이니 차라리 딴청을 부리며 질문의 화살을 피하는 수밖

      에 없었다. 

      "굉장한 별이네요." 

      "그치? 아름답지?" 

      언덕에 앉아 하늘의 별을 바라보던 가흔은 옆애 팔배게를 하고 누워서 맞장구 치는 

      칸을 바라보며 웃었다. 

      어떨땐 굉장한 연상같이 보이지만 이럴때의 모습은 영락없이 어린애라서 동생이 하

      나 있다면 이런 느낌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순간 떠오르는 누군가의 얼굴에 

      가흔은 눈가를 찡그리며 손으로 이마를 집었다. 

      "가흔? 왜그래??" 

      하늘이 별을 보며 즐거워 하던 그가 갑자기 이마를 집고 미간을 찌뿌리자 칸은 당황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닥에 그냥 누워서 여기저기 마른 풀들이 붙어있는 모습

      이 실소를 자아냈지만,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가흔은 웃을 여력이 없었다. 

      진정할 기미가 보이지 않던 통증은 자꾸 누군가를 떠오르게 했지만, 나타났을 때와 

      똑같이 갑자기 사라졌다. 

      그 기묘한 감각이 차라리 어이없기 까지해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가흔, 무슨 일입니까?!!" 

      저녁을 준비하는 와중에 칸과 가흔 두 사람을 데리러 왔던 에스는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가흔과 그의 옆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칸을 확인하고 안색을 달리하며 뛰어 내

      려왔다. 

      어느새 이마에 흘러내린 땀을 손등으로 닦아내며 고개를 든 가흔은 칸과 에스에게 

      웃어 보였다. 

      "갑자기 머리가 아파서 말이죠. 그런데 지금은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그럼 다행이지만..." 

      괜찮다고 말했지만 아직 걱정스러운 칸은 가흔의 얼굴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

      다. 손을 잡아 일어나는 것을 도와준 칸은 위에서 나는 맛있는 냄새에 고개를 돌려 

      언덕위를 올려다 보았다. 

      약간의 일이 있기는 했지만, 좋은 풍경에 깨끗하고 맛있는 공기. 맘에 드는 사람들

      이 함께 있으니 꽤나 맛있는 식사가 될것 같았다. 

      "엄청 배고프네. 빨리가서 먹자고." 

      "먹는건 좋지만 적당히 드세요. 도와주는 거 없이 밥만 많이 먹는다고 에즈가 성화

      라구요." 

      "헹~ 뭘 먹든 내맘이야. 이상한 아줌마라니깐." 

      에즈가 있었다면 절대로 할수없을 말을 없을때는 잘도 한다. 

      부디 이말이 에즈의 귀에 들어 가지않기를 바라며 에스는 벌써 자리를 잡고 앉아 손

      을 흔드는 라프헨들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꽤나 즐거워 보이는데 꼬마." 

      "..........." 

      또 다시 나타났다. 

      어두운 가운데에서도 확연히 튀는 붉은 머리에 막 물을 마시려던 가흔은 손을 멈추

      고 그를 바라 보았다. 

      앉아 봤을때는 몰랐는데 자신보다 키가 작아 시선이 보다 아래였다. 

      그것은 가흔만 눈치챈게 아닌지 남자의 얼굴이 기괴하게 이그러 진다. 그에따라 모

      양이 변하는 볼의 상처를 신기하게 바라보던 가흔은 자신에게 삿대질을 하는 남자

      의 눈을 바라 보았다. 

      "다들 잘해준다고 우쭐대지 말라고!! 어차피 아무것도 모르는 남이잖냐, 네놈은!!" 

      ".............." 

      "괜히 사람들 마음만 들뜨게 하지마라. 난 네놈을 믿지 않아!" 

      더 뭔가를 말하려던 붉은 머리 샤한은 멀리서 다가오는 칸들을 확인하고 입을 다물

      고 몸을 돌렸다. 

      "언제나 보고 있을 테니깐 수상한 행동은 안하는게 좋아." 

      후르륵. 

      침을 뱉고 사라지는 모습을 물을 마시며 바라보던 가흔은 잔에서 입을 떼고 쓴웃음

      을 지었다. 

      어딜거나 저런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건만 괜히 신경이 쓰이고, 상처를 받는다. 

      이곳에선 자신은 어디를 가나 타인. 자신에게 잘해주는 칸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

      을 저렇게 괜히 싫어하다니 기가막혀 뭐라고 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

      만, 자신이 없었을 때에도 있었을 때에도 그는 저들의 동료이기에 입을 다물수 밖에 

      없었다. 

      그와 자신의 차이는 남인것과 동료인 것. 

      내심 칸들과 동료라고 생각했지만 저런 사람들와 마주할 때마다 자신의 신세를 깨

      닫게 되는 일은 정말 기분나쁜 일이다. 

      "뭐하려고 이런 데서? 볼일보고 온다며??" 

      "갑자기 물이 마시고 싶어져서 말이죠." 

      눈을 가늘게 접으며 웃는 얼굴에 칸은 마주 웃었다. 

      "뭐야 그거. 쏫아내고 났더니 다시 섭취하는 거야?" 

      "..아니라곤 할수 없지만 그렇게 대놓고 말하니 상당히 민망하네요;;" 

      "민망? 난 그런거 몰라." 

      ".....칸이니깐 그런 겁니다." 

      가흔과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에스는 미간을 누르며 말했다. 

      되도록이면 가흔과의 대화에 신경을 써주었으면 하지만, 씨도 안 먹히겠지..;;

      이런 평범한 남자애들의 대화(?)를 칸들과 할수 있게 되다니... 무안한 화제이긴 하

      지만, 얼굴을 붉히면서도 기분좋은 얼굴을 하고 있는 가흔이었다. 

      "죄송합니다. 내일부턴 좀더 경비를 단단하게 지키겠습니다."

      굳은 얼굴로 에즈에게 허리를 숙인 남자의 뒷모습을 발견한 가흔은 고개를 갸웃하

      며 멀리 마차 앞에 앉아 검을 갈고 있는 에스에게 다가갔다. 

      다가온 가흔에게 웃어보인 그는 닦고있던 검을 옆으로 치워 보이지 않게하며 가흔

      에게 앉을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일부러 검을 치워주는 에스의 모습에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쓴웃음을 지을수밖에 없다. 

      노력한다고 하지만, 아직 검을 보면 약간이나마 몸이 굳게 되는 거다. 

      하지만 전보다 많이 나아졌으니 발전했다고도 할수 있는 걸까?

      "무슨 일인지 몰라도 에즈의 기분이 꽤나 안 좋아 보이네요."

      "음. 그게 어쩔수가 없는게.. 음식이 없어진 모양이라서요."

      "없어져요?"

      에스의 집문에 답하며 고개를 들어보인 가흔은 주위의 산맥들과 숲들을 바라 보았

      다. 이런 곳에서 다른이들이 음식을 훔쳐 먹을리는 없고 내부 인물인가?

      하지만 에즈의 성격을 아는 사람들이 감히 음식을 몰래 먹을리도 없고, 아니. 칸이 

      있기는 했지만 식사 때를 제외해선 별로 뭔가를 권하도 잘 먹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한데.... 그리고 아무리 그라도 에즈를 일부러 건들 필요는 조금도 없다. 

      그렇다고 동물들이나 짐승들이 먹은 양 가지고 저렇게 화를 낼리가 없고, 처음부터 

      사내들이 단단히 지키고 있는 곳을 몰래 들어올 정도의 짐승이 있을리가 없고 말이

      다. 

      "짐승을 일리도 없고 칸일리도 없죠. 정체를 알수 없으니 그녀가 더 화를 내고 있는 

      거예요."

      "흐음- 그런데 갑자기 음식이 사라지다니...."

      "누군지는 모르지만 나중에 걸리면 꽤나 호된 꼴을 당할 겁니다."

      소리내어 웃어보이는 에스의 말에 동의하는 가흔은 똑같이 소리내어 웃었다.

      설마하니 겁없이 마차로 기어들어와 음식을 먹어대는 사람같은게 있을리가 없을 

      테니 다음엔 이런일이 생길리가 없지.  

      그러나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넘어가려 했던 가흔은 다음날 또다

      시 목청을 높이는 에즈의 모습에 미간을 찌뿌렸다. 음식이 마차를 지키는 남자들의 

      안색이 하나같이 칙칙하게 죽어있는 모습이 보기에 꽤나 불쌍하다.

      "뭐야. 또다시 나타난 거야?"

      "칸 설마하니 당신..."

      "먹을리가 없잖냐!! 이몸이!!!"

      고개를 에즈쪽으로 돌리면서도 의심의 화살을 날리는 가흔의 모습이 어처구니 없

      으면서도 억울해서 목청을 높이는 칸이었다. 

      그런 칸에게 '아니면 말고요...'라고 웅얼가리는 가흔은 멀어지는 남자들을 노려보

      는 에즈에게 다가갔다. 지금 접근해 봤자 그다지 좋은 소릴 들을리가 없겠지만, 뭔

      가 정보를 얻어 자꾸 음식이 사라지는 원인을 밝히는데 도움이 되고 싶었다. 

      "무슨 일인가요. 에즈?"

      "아, 가흔. 별거 아니야. 왜 들어가 있지않고? 설마하니 칸님 내쫒으신 건가요?"

      "내..내가 그럴리가 없잖냐!!!"

      내쫒을리가 없지만, 그렇다고 한다면 들고있는 식칼을 그대로 휘두를 기세에 칸은 

      뒷걸음질을 쳤다. 

      그런 칸을 보며 에즈의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아까의 화를 내던 얼굴은 어디로 갔

      는지 평소의 웃는 낯이다. 걱정을 시키지 않을 세심한 배려가 보여 고맙긴 하지만 

      도움을 주고 싶었기에 약간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가흔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에즈는 그의 어깨를 몇번 두들이며 시원하게 웃

      는 얼굴을 만들었다. 

      "그나저나 오늘 점심은 어땠어?"

      "아, 정말 맛있었어요."

      "그렇지? 저녁은 기대해 더 훌륭하게 만들어 줄테니."

      양팔을 걷어 붙이며 화이팅 포즈를 취해보이는 모습에 가흔은 박수를 칠수 밖에 없

      었다. 역시나 자신을 말려들게 해서 험한일을 당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보이지만, 

      가만히 앉아있는 것도 성미에 맞지 않은데 말이다.  

      한번쯤 혼자서 조사를 해보는 편이 나을것 같다.

      "정말이지. 알수없는 게임은 하지 말란 말이야."

      터덜거리며 걸음을 옮기며 아까 칸들과 했던 게임에 대해 아무리 알아보려 해도 규

      칙을 알수가 없다. 처음에 하던 게임들은 나름대로 그 규칙을 알수가 있어서 연승

      을 하고 있었것만 갑자기 바꾼 종목에 내리 연패를 당하고 있으니.. 

      돌아가면 그런 것 말고 다른 게임을 하자고 해야 겠다. 

      이대로 갔다간 계-속 지고 만다고. 

      부시럭부시럭.

      "응??"

      칸과의 게임에서 진 벌칙으로 포도주를 가지러 음식이 챙겨진 마차로 들어온 가흔

      은 구석에서 부시럭 거리는 소리에 그쪽으로 걸어가다 묘한 광경을 발견하곤 두눈

      을 동그랗게 떴다. 

      작은 덩치에 엉덩이만을 내민채로 아무거나 집어 먹는 저것은 분명 어린아이의 그

      것. 설마하나 저 꼬맹이가 지금까의..... 

      머리속에서 이것저것 생각하면 가흔의 손은 어느새 정체를 알수없는 음식도둑의 

      뒷덜미를 잡아들고 있었다. 

      음식들을 계속해서 입안에 넣던 녹색 머리카락의 7살가량 되어 보이는 꼬마는 한

      동안 아둥바둥거리다 시간이 좀 걸려서야 자신이 부자연수러운 폼으로 허공에 달

      려있다는 것을 깨닭고 가흔을 향해 얼굴을 돌려 보았다.

      "뭐야?!!"

      "........그쪽이야 말로."

      새파랗게 어린 아이다. 

      이런 아이가 안에 있었다면 모를리가 없는데도 이 얼굴은 오늘 처음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엄청난 양의 음식을 빼앗을 먹어 에즈의 심기를 어지럽힌 그 범

      인이라는 건가? 

      하지만 이런 녀석이 어떻게 지금까지 숨어들어 음식을 먹을수 있었던 거지? 

      자신도 칸의 벌칙이 있었기에 한층 강화된 보초들에게 일일이 사정을 설명하고서

      야 이 곳에 들어올수 있었는데 말이다. 

      "이런 무례한~ 당장에 이 몸에게서 손을 떼지 못해!!!"

      팍!!!

      짧은 다리로 허공을 치던 녹색 머리의 꼬마는 가흔에게 붙잡혀서 부끄러웠던 모양

      인지 얼굴을 붉히며 손가락을 들어 가흔에게 내밀었다. 

      미치 내밀기만 하면 뒷덜미를 잡고 있던 가흔의 손이 떨어 질거라고 생각한 모양인 

      소년은 여전히 자신이 허공에 떠있는 것을 알아차리곤 안색을 바꿨다. 

      "이럴리가 없는데..!! 이-- 얍!! 얍!! 야압~!!!"

      기합이라도 넣어서 자신을 날려보낼 생각이었던 건가? 

      등을 잡히고 있어 얼굴과 한팔을 뒤로 돌린 불편한 모습으로 연신 삿대질을 하며 

      얍얍 거리는 꼬마를 가흔은 묘한 표정으로 내려다 보았다. 

      안의 소리에 밖에 서있던 용병들이 다가오는 것인지 다소 웅성거린다. 

      아무래도 이 꼬마는 노웬이나 에스에게 데려가 부모에게 돌려 주어야 겠다. 꼬마가 

      산속을 헤메다 길을 잃어 이곳에 온것이라고 단정하는 가흔이었다.

      생각에 잠겨있던 가흔의 얼굴을 바라보던 꼬마의 안색은 점점 사색으로 변했다.

      "뭐...뭐야?! 왜 마력이 안 통하는 거냐?!!! 알았다!! 네놈 드아글라 산맥의 융텐이 보

      낸거지?!! 이런 치사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 있다니~~ 수치도 모르는!!"

      "...무슨 소리를 하는지.. 도대체."

      "이런 나쁜~~ 이몸의 당장 놓지 못하...ㄹ! !"

      퍼억!!!

      꼬맹이가 목청도 좋다. 

      하도 소리를 질러대 귀가 멍멍해지자 가흔은 망설임 없이 꼬마의 머리통을 내리쳤

      다. 말을 하다말고 그대로 기절한 꼬마를 어깨에 집어진 그는 음식들이 쌓여있는 

      내부를 둘러보다 칸이 가져오라고 시킨 포도주를 한병들고 밖으로 나왔다. 

      들어 올때는 분명 혼자였는데 나오자 둘이 된 가흔의 모습에 밖에 서있던 자들의 

      얼굴이 영문을 알수없다는 듯이 변한다. 그런 남자들을 바라보며 가흔은 손을 흔들

      어 주고 바로 노웬의 천막으로 걸음을 옮겼다. 

      노웬에게 이 녀석의 신변을 양도하고 칸에게 돌아서 포도주를 건낸다음 미쳐 끝내

      지 않은 게임의 결판을 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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