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55)

      -이게 뭐야? 

      자신의 목을 통해서 나간 목소리에 당황한 가흔은 내밀고 있던 손을 들어 보였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어린 손을 확인한 그는 도대체 자신의 몸

      이 어찌 된것인지 하고 잠시 패닉상태에 빠졌다. 

      그런 그의 손을 잡은 커다란 손은 머리를 몇번 두들이더나 상냥한 음성으로 답을 

      해준다. 

      -죽도라는 거야. 왜 하고 싶니? ...이와 함께하면 되겠구나. 

      -뭐야. ...도 하는 거야? 그럼 나 하기 싫어.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것 같은데 그 부분만 잘 들리지 않는다. 

      투정섞인 말투에 아마 사이가 안 좋은건가하고 대충 짐작한 가흔은 몸이 떠오르는 

      느낌에 눈을 트게 떴다. 

      "정신이 든건가?" 

      "..........." 

      "이런이런, 날 모르는 거야?" 

      검은 천을 둘러싸고 순진한 표정으로 눈을 깜박이는 얼굴은 분명 낯이 익다. 

      멍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가흔의 모습에 혀를 찬 그는 입가에 대고있던 주먹

      을 내리고 가흔의 볼을 몇번 두들였다. 

      찰진 소리가 몇번 울리고 그에 따라 정신이 점점 맑아지는 것을 느끼며, 가흔은 눈

      을 가늘게 뜨며 누워있는 자신을 내려다 보고있는 사람을 자세히 살펴 보았다. 

      "........점쟁이." 

      "오브라는 애칭도 있다고 이몸께는." 

      정신을 차리자 마자 점쟁이라도 말하는 가흔의 모습에 어이없었지만, 아직 정신이 

      없는 상태라는 것을 감안하고, 거기에 자신의 차림의 점볼때의 모습이라는 것을 떠

      올린 오브는 몸을 뒤로 기댔다. 

      양반다리를 하고 편한 자세로 앉아있는 오브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가흔은 그

      가 남쪽에서 만났던 점쟁이라는 것과 비잔힐이라는 상단의 가주라는 것을 떠올렸

      지만, 그런 그가 어째서 이런곳에 자신과 함께 있는지는 알수 없었다. 

      의문을 떠올리는 가흔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그는 이를 들어내며 시원하게 웃

      었다. 

      "도박하다 다 잃어서 몸으로 갚게 됐어." 

      ".............." 

      "뭐야? 그 표정은. 실례라고." 

      미간을 접는 가흔의 모습이 충격이라는 듯 몸을 꼬며 입가를 검은 천으로 가리는 

      분명 여자의 모습이지만, 화장을 지운 평범한 얼굴과 자신보다 큰키를 지닌 사내라

      는 것을 똑똑히 알고있던 가흔은 엄청 싫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 가흔의 얼굴에 어색한 미소를 지은 오브는 몸을 앞으로 내밀며 가흔의 귀에 

      달려있는 귀걸이 조각에 시선을 주었다. 

      "이 정도까지 대화가 되는 것을 보면, 꽤나 도움이 되는 모양인데. 기쁜걸?" 

      ".....그나저나 여긴 어딥니까?" 

      입은 움직이지만, 아직 온몸은 무엇인가에 묶인듯 생각대로 잘 움직여지지 않는다. 

      손가락 끝을 움직이는 가흔의 모습에 몸을 일으켜 자신의 옆에 앉힌 오브는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보면 몰라. 지하에 있는 좁은 방이지." 

      "납치당한 건가요? 아까 당신말을 보아.... 여긴 술집같은 곳입니까?" 

      "술집? 그러면 차라리 낫지." 

      한숨을 쉬며 드리운 천사이로 나온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꼬며 말하는 오브의 말

      에 가흔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노예상단 이라고 여긴. 만약에 다른 상가의 놈들이라도 만나는 날엔 창피해서 죽

      을지도~" 

      두 손으로 눈을 가리며 발을 동동 구르는 오브의 모습에 시선을 주던 가흔은 얼굴

      을 돌려 자신이 갇혀있는 방안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 보았다. 

      확실히 어둡고 좁은 곳이기는 하지만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는데다 창살 사이로 보

      이는 여러 방안에 늘어져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틀림없이 불법으로 사람을 납

      치해 매매하는 곳인것 같다. 

      어째서 자신은 매번 이런 꼴사나운 일만 당하는 걸까. 

      ".....여기에 있으면 무슨 일을 당하는 거죠?" 

      전에 비잔힐 저택에서 도망 나올때 조우한 사내들중 한 사람을 죽인적이 있던 가흔

      은 불현 듯 떠오르는 손안의 감촉에 주먹을 쥐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물어보나마나. 주인님이 생겨 평생 노예로 살겠지." 

      가볍게 말하는 답에 가흔은 잠시 현기증을 느꼈다. 

      주인님이나 노예라니.... 살아오면서 한번도 접해보지 않은 그 낯선 단어에 갑자기 

      오한이 드는 이유는 왜일까? 

      "특상품?" 

      "네, 근래에 보기 드믄 상품입니다. 주인님께 일단 검증을 받고 귀족들에게 안내장

      을 돌리려 합니다만..." 

      허리를 숙이고 말하는 남자에게 시선을 준 툴가는 펜을 놀리던 손의 움직임을 멈추

      고 고개를 들었다. 

      연갈색의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어 안경을 쓰고 있는 얼굴은 무척이나 이지적인 느

      낌을 주었으나 그와 어울리지 않은 저음의 목소리가 매력이라면 매력일 남자였다. 

      몇일 동안 씻지 않고 일에 몰두해서인지 수염이 드문드문 나있는 턱을 긁으며 서류

      에서 시선을 뗀 그는 기지개를 피며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몇번 몸을 움직여 '뚜둑'소리가 나는 것을 들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몇달만에 건진 특상품 구경이나 해볼까?" 

      "보시면 흡족하실 겁니다." 

      "아아 시끄러워. 그런말하고 날 실망시킨 적이 한두번이어야지." 

      신경질적인 말투에 식은땀을 흘린 남자지만, 내심으로 분명 주인의 맘에 들것이라

      고 자신했다. 그 역시 처음보는 흑발과 눈동자에 이 소년이 인간으로 폴리모프한 

      흑용이 아닐까하고 생각 할 정도로 그 외모는 신비하고 아름다웠던 것이다. 

      여러 마도사의 검증으로 용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 남은 일은 주인의 검증을 받

      고 귀족들에게 연락을 돌려, 근 몇달만에 비밀장을 열고 최고의 가격으로 넘기는 

      일만 남았다. 

      회심을 미소를 짓는 남자의 얼굴을 내려다 보던 툴가는 기분 나쁘다며 뒷통수를 내

      리쳤다. 

      "안내나 해 기분나쁜 늙은이."

      "저...전 아직 30살 중반인데요.."

      "토다는 거냐?"

      예리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툴가의 모습에 사내는 식은땀을 흘리며 뒤로 물러났다.

      "과연... 이건 처음보는 외모로군." 

      다짜고짜 나타나 쇠창살 사이에 서서 자신을 보고 하는 말에 가흔은 엎드리고 있던 

      얼굴을 들었다. 

      검은 눈동자와 머리카락, 게다가 오밀조밀하지만 아름다운 얼굴을 흥미롭게 바라

      보던 툴가는 턱을 받친채 씻고 오는 가리며 후회했다. 저런 미인과의 만남을 이런 

      칙칙한 곳에서 하는 것도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그런 남자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흔은 옆에서 중얼거리는 유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저 사람이 이 지역 최대의 노예상인이라는 툴가 바로챙이야. 이국의 혼혈이라고 

      하는데, 부드러운 외모와 달리 온갖 나쁜 짓은 다 한다는 소문이야. 그나저나 저런 

      거물을 오게 하다니.. 너나 나나 참 대단한것 같다." 

      "....뭐가 대단한 거야?" 

      "왠만한 상품이 아니고는 보러 내려오는 건 극히 드물거든." 

      ".............상품." 

      또 다시 알수없는 단어를 들은 가흔은 머리를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검은 머리는 특상품이로군, 하지만 옆의 남자는 아닌걸?" 

      "에? 남자라뇨? 여자인 것을요.." 

      별거 아니라는 말에 도끼눈을 뜨는 유그를 무시하며 검은 머리 소년과 같이있는 자

      를 남자라고 믿는 심복을 한심하다는 듯이 내려다본 툴가는 주먹을 들어 다시금 머

      리를 내리쳤다. 

      이렇게 보는 눈이 없으니 네놈에게 이 지역을 넘겨주지 않고 있는 거다. 

      침침한 눈두덩이를 주무르던 툴가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가흔에게 최대한 멋들

      어진 미소를 보여주며 옆의 유그를 가르켰다. 

      "얼굴은 화장발에. 덩치좋은 남자로군. 당장에 다른 곳으로 빼내."

      "아니, 지금 누구보러 남자래요~! !" 

      옆의 가흔조차도 깜박 속을 것 같은 행동과 말투로 양손을 가슴에 모으며 툴가를 

      노려보는 유그지만, 눈하나 깜박이지 않고 자신을 노려보는 갈색의 눈동자에 식은

      땀을 흘릴수밖에 없었다. 

      이 쪽에서는 노예상인의 눈을 속이느니 차라리 드래곤의 헤층링 흉내를 내는게 더 

      낫다는 소리가 돌만큼 그의 사람보는 눈 하나는 기가 막혔던 것이다. 

      내심 찔리지만 서도 뻔뻔한 낮짝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유그의 모습에 흥미로운듯 

      한쪽 눈썹을 올려보인 툴가는 옆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려고 하는 경비병의 움직

      임을 제지했다. 

      "생김새는 별볼일 없지만, 기개는 남다른 것 같군. 그냥 놔둬라." 

      "아예..그럴까요?" 

      "게다가 미인과 아는 사이이니 함께 두는 것도 좋겠지. 아는 이 없이 혼자면 얼마나 

      두렵겠어?" 

      "............" 

      능글맞은 사내의 말에 혀를 내밀어 보이며, 야유하고 싶었던 가흔은 그러나 애써 

      상대방을 도발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마찬가지로 울컥해서 뭔가 말하려던 유그의 팔을 잡아 진정시킨 그는 자신을 바라

      보고 묘한 미소를 짓는 남자를 주시했다. 옆에 서있던 부하인 듯한 남자에게 귓속

      말로 뭔가를 말하며 자신들을 손가락으로 가르키던 그는 계속해서 시선을 주고있

      던 가흔에게 윙크를 해보이며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그런 사내들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는 흉내를 내던 유그는 얼굴을 붉으락 푸르락하

      며 가흔을 바라 보았다. 

      "눈앞에 대고 저런 말을 하다니 정말 소문대로 최악의 남자야, 안그래요?" 

      "..그다지 틀린말을 한것도 아닌데 뭐." 

      "윽..! ! 그런 말을.. 나 상처 받아요!" 

      하지만 유그 그가 남자인 것도, 자신보다 몸이 좋고 키가 큰것도, 예뻐 보이는 저 

      얼굴도 세면하고 나면 평범한 원래의 얼굴로 돌아간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

      이기에 상처받은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나도 별다른 감흥이 생기지 않는다. 

      전에 납치 당했을 때 천장을 손가락으로 한번 댄것 뿐인데 줄이 사라지고 문이 열

      렸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쇠창살에 살그머니 다가가 툭하고 건들어 보인 가흔은 그

      러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무안해져 자리로 돌아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그런 가흔의 모습을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보던 유그는 그가 어색한 미소를 짓자 따

      라 웃어 보였다. 

      "..............한심하네요." 

      "누가 아니래나...." 

      이렇게 붙잡혀 가만히 앉아 있을수 밖에 없는 자신들의 처지가 참으로 개탄스러운 

      둘이었다. 앞날이 어찌될지 모르기에 더 불안해져 말수가 적어지는 둘과 달리 감옥

      에서 나와 서재로 돌아가는 툴가와 사내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각각 생각하는 바는 다르지만 말이다. 

      "감옥말고 방으로 데리라고요?" 

      "그래, 저런 어둡고 칙칙한 곳에 있어 보드랗던 피부가 꺼끌해 진다면 그건 나라의 

      손실이지." 

      "....네?" 

      "그런 미인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지는 존재. 더더욱 아름답게 빛을 발하

      게 도와주는 것이 나에게 지워진 소임이지." 

      어차피 팔거면서 무슨 말이 이렇게도 많나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벼이 말해 또다

      시 머리를 맞는 것은 사양하고 싶은 그로썬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혈색을 좋게해서 더 많은 돈을 받고 팔리면 좋은 일이기 때문이

      다. 뒤를 따르는 경비에게 저택의 구석진 자리에 가흔과 유그를 옮겨 놓으라는 명

      을 내린 그는 저만큼 떨어져 가고있는 툴가의 뒤를 급하게 따랐다. 

      "칸-! !" 

      에스는 저만큼 멀리 나가는 칸의 뒤로 이름을 외쳤지만, 뒤를 돌아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의 바로 뒤를 신나서 따르는 샤한의 모습에 이를 악문 에스는 달리는 말

      의 속도를 더 올리려 했으나, 바로 앞에 앉아있던 용이 요란한 비명을 울리자 행동

      을 멈출수 밖에 없었다. 

      "뭐하는 거냐?!! 미숙한 놈! 말을 이렇게 몰면 빨리 지치는 걸 모른 거야?! !" 

      지당한 말이었지만, 말갈퀴를 잡은채 조금이라도 속도를 올리면 비명을 올리는 모

      습은 설득력이 없다. 

      이 속도로 가다간 앞의 일행들과 너무 많이 차이가 날 것이고, 또 따라가자니 말이 

      지쳐 중간에 긴텀으로 쉬어주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지도 모른다. 

      앞에 가는 칸과 샤한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어야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서도 속도

      를 늦출지는 미지수다. 사색이 된 유크렌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에스는 한동안 

      고민에 잠기다 이를 악물고 말의 배를 발로 찼다. 

      "으아아아아---아아~~ㄱ!!!" 

      곧 죽어 넘어갈것 같은 유크렌의 비명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그 엄청난 소음에 순간 잡고있던 고삐를 내려놓고, 자신의 귀를 틀어 막으려던 에

      스지만, 그랬다간 둘다 낙마할 것이 분명하기에 인상을 쓰며 소리를 지르는 유크렌

      의 입을 손으로 틀어 막았다. 

      틀어 막아진 와중에도 눈물을 맺힌채 읍읍거리는 모습에 에스는 잠시 현기증이 났

      다. 

      도대체가 이런 애물단지를 데려가는 것고 억진데 왜 자신이 맡아야 하는 걸까? 

      원래 남을 잘 챙기는 타입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자들에 한할뿐이다. 겉모습은 꼬마지만 실제론 용인 이런 녀석은 아니란 말이다. 

      눈앞에 달려나가는 샤한의 등을 죽일듯이 노려보며 에스는 달리는 말에 박차를 가

      했다. 

      따지고 보면 전부 저자가 이 용을 기절시켜 같이 갈 빌미를 주었기 때문이 아닌가. 

      두고보자~

      "이 숲으로 들어가 마을을 지나면 반나절이 단축되지."

      "하지만, 그곳에 요크발의 영지라는 것을 잊으시면 안됩니다."

      끝끝내 위험 지역으로 가려는 샤한의 모습을 노려보며 에스는 안색을 굳혔다. 

      빠른 속도로 달린 결과 결국, 말은 지쳐 예상시간보다 많은 시일이 걸렸다. 

      그것에 초조해 하는 칸에게 의견을 내놓은 샤한이지만, 숲을 지나 나타나는 마을은 

      자신들의 숙적 요크발의 영지로, 변태라고 불리는 것보단 땅을 잘 다스려 백성들의 

      인심이 두둑한 영주였다. 

      그런 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수상한 모습을 보인다면 요크발 그자의 심복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으라는 법이없다. 

      게다가 20대 초반의 청년에, 중반의 인상 험악한 사내, 13세와 7세의 꼬마가 있는 

      자신들의 일행이 평범하게 보일리 만무하다.

      "시간이 걸려도 숲이 아닌 산맥을 넘어가는 것이 더 안전합니다."

      "............"

      "빨리 가려다 일이 생겨 더 지체될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주십시오."

      입을 다문채 생각에 잠겨있는 칸의 모습에 안달이 난 에스지만, 샤한은 어디까지니 

      느긋한 모습으로 위험한 길을 택해 조금이라도 흥미진진해 졌으면 하는 표정이다. 

      그런 샤한의 모습에 아까부터 쌓인 짜증이 일시에 터지려던 에스지만, 입을 여는 

      칸에 의해 그 타이밍을 놓칠수 밖에 없었다. 

      "샤한의 말대로 숲을 경유해 마을로 들어간다."

      "칸님! !"

      "우리에겐 시간이 없어. 지체하다 가흔이 다른 곳에 가버리면 오히려 더 손해라는 

      것을 알아둬. 에스."

      "....알겠습니다."

      반론은 용서치 않겠다는 투의 칸의 말에 에스는 얼굴을 숙이며 낙담한 표정을 지었

      다.

      결국 이런식으로 되어가는 건가. 

      나중에 일이 생길때 이 인원으로 도대체 무얼 어찌하라는 건가. 

      말리기는 커녕 오히려 일을 더 크게 만들 사람들이 아닌가. 머리를 긁적인 에스는 

      그늘진 나무밑에 누워있는 용에게 다가가 그 작은 몸을 안아 들었다.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달린 결과 기절을 해 아직 깨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왕에 폴리모프를 할거면 건장한 사내의 모습으로 할 것이지, 이런 비리비리한 꼬

      마로 해 손이 가게 할것은 또 무슨 심보란 말인가. 

      투덜대봤자 소용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안 할수가 없다. 

      그런 에스를 바라보던 칸은 자신의 말에 오르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마을에 들어가기 전에 무희단으로 분장을 할테니, 샤한에게 말해 두라고."

      ".............네?"

      "이런 모습보단 그게 더 나을거다. 그리고 그 꼬맹이랑 내 얼굴은 꽤나 쓸만하니

      깐."

      자기 입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건 과연 그 답다는 생각이 들지만, 진심으로 무희단을 

      하려는 건가? 

      확실히 그편으로 하는게 좀더 안전하고 쉽게 넘어갈수 있는 방법이기는 하나, 운이 

      나빠 어떤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점에선 꽤나 위험부담이 있는 것이기도 했다. 

      여장한 모습에 혹한 변태들이 어떤 요구를 해 자신들의 발을 잡을지도 모르니깐. 

      게다가 4사람을 살펴보면 여장을 할 사람은 칸과 유크렌으로 줄어든다. 

      그런 것을 감안하고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미심쩍은 에스의 얼굴을 바라보던 칸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머리를 돌려 샤한에게

      로 다가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에스는 품에 안긴 유크렌을 자신쪽으로 얼굴을 

      돌리게 해서 끈으로 묶어 몸에 고정시켰다. 

      복잡한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칸의 말이 있기도 했으니 상황을 봐서 따르는게 좋

      을 것 같다. 

      자신들에게 안내된 방을 침대에 앉아 가만히 바라보던 가흔은 그대로 몸을 뒤로 넘

      어 뜨렸다. 풀썩하고 느껴지는 침대의 푹신한 감촉에 눈을 감았다 뜬 그는 침대 옆

      에 마련되어진 소파에 누워있는 오브에게 시선을 돌렸다. 

      "우리들... 벌써 팔린 건가요?"

      "그건 아닌것 같은데... 아무래도 상품의 가치가 있으니 좋은 환경으로 옮긴것 뿐일

      거야."

      "굉장히 싫은 느낌."

      팔린 물건이 보기좋게 포장 되어지는 과정을 거치는 듯한 느낌에 가흔은 눈살을 찌

      뿌렸다. 그런 가흔의 모습을 보고 조금 웃어보인 오브는 좋은게 좋은거라며 자신의 

      배를 두들였다. 

      아까 방에 들어오자마자 테이블 위에 있던 차와 과자를 집어 먹더니 배가 차 꽤나 

      만족스러운 듯 했다. 그, 아니 겉모습이 그녀인 오브의 행동을 가만히 주시하던 가

      흔은 할일도 없고 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똑바로 앉았다.

      "비잔힐의 가주였지 않나요? 그런데 왜 이런곳에 그런 모습으로 있는 겁니까?"

      "아-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집안 사람들은 아니였던 모양이야. 댁들이 

      떠난 다음에 집에 들어가 보니 날 가주 자리에서 퇴직 시켰더라고."

      "흐-음."

      상당히 비참한 말일텐데도 꽤나 가볍게 말한다고 생각했다. 

      "전부터 이렇게 될지 알고있어서 그다지 상처받진 않았어. 

      아니, 상처받은건 내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일걸?"

      "네?"

      "집에서 쫓겨날때 어릴때부터 빼돌렸던 집안의 가보들을 몽땅 들고 튀었거든. 

      하하~ 날 찾으려고 꽤나 혈안이 되어있을 거야." 

      정말 즐겁다는 듯이 웃는 모습에 가흔은 다소 얼빠진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긍정적인 사람도 있구나 싶다. 만약에 자신이 그런 입장에 되었다면 견디지 

      못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웃고있는 얼굴을 보자니 그런 칙칙한 분위기의 대화로 끌고 가기도 어렵기

      에 자리에서 일어난 가흔은 거울로 걸어가 오브가 건내주었던 반다나로 머리를 감

      쌌다. 아주 안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바라보면 꼭 놀

      라는 사람들의 반응을 봐서 써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그런 가흔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유그는 얼굴에서 묻어나는 번질거림에 자리

      에서 일어나 욕실로 걸어갔다.

      "그걸 쓰기 전에 옷부터 갈아입는게 좋아. 어떤 상황이든 간에 몸이 편해야 긍정적

      인 생각이 들고, 자연히 운도 따르는 법이거든."

      "그런 가요?"

      "그럼. 이것을 지론으로 20여년의 생을 살아온 이몸의 말씀이니 정확해."

      손가락을 튕기고 욕실안으로 사라진 오브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가흔은 한숨

      을 쉬며 창가로 다가가 내려진 커튼을 치고 문을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흩날렸지만, 그닥 신경쓰이진 않았다. 

      창을 열자마자 끝없이 보이는 거대한 건물들의 모습에 단지 눈을 크게 뜰뿐이었다. 

      저택이 하나의 시장이라는 오브의 말이 이런 거였나 싶게, 화려하고 거대한 건물들

      의 집합에 가흔은 할말을 잊고 한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기에 바빴다. 

      제풀에 지쳐 창을 닫고 벽에 등을 기댄 가흔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 앉았다. 

      알수도 없는 곳인데, 또 다시 모르는 곳에 와 버렸다. 

      그래도 오브라는 아는 사람과 함께 있으니 걱정은 덜했으나 매번 일을 쳐서 칸들을 

      난감하게만 하니 정말이지 부끄럽고 미안하다. 

      그들의 언제 자신에게 등을 돌릴지도 모르는 일인데 이렇게 폐만 끼치다니.... 

      "하루라도 빨리 기억을 찾아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해."

      나지막히 중얼거리는 자신의 말을 들으며 가흔은 그 결심이 점점 단단해짐을 느꼈

      다. 

      더 이상 칸들에게 걱정을 끼칠수도 없고, 빌붙어서 평생을 살아갈수도 없음이다. 

      오브가 씻고 나오면 말을 꺼내보자. 뭐라해도 자칭 잘맞는 점괘에 인기많은 점쟁이

      니깐. 오브에게 상담할 결심을 하고 기합을 넣고있던 가흔은 문을 두들이는 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몸을 일으켰다. 

      이런 곳에서 아는 누군가가 짜잔하고 나타날리 없으니 분명 이 저택내의 관계자임

      이 분명하다. 그냥 문을 열어주지 말고 자는 척을 해볼까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

      만, 그래봤자 무슨 소용이라는 생각에 문을 열었다. 

      닫힌 문에 다시금 두들일 생각있었는지 손을 들어 올린채로 행동이 멈춘 사내의 모

      습에 가흔은 숨을 죽였다. 

      이 저택의 우두머리 임이 분명한 남자, 툴가 바로챙이었다. 

      "역시 아직 깨어 있었군."

      "...오브라면 아직 씻고 있는 중인데요?"

      "아니, 그런 사내에겐 관심은 없어."

      애써 웃어보이며 상황을 어버부리려던 가흔이지만, 딱 부러지게 답하고 방안으로 

      그냥 들어오는 툴가의 행동에 몸을 뒤로 물릴 수밖에 없었다. 

      원래 자신의 방이 아니니 이 남자보러 나가라고 할수도 없는 노릇이다. 

      원래 주인이기도 하니 어딜 들어간다한들 자신이 제지할 힘이 있겠는가. 방안의 모

      습을 미소를 띄운채 바라보던 툴가는 방금 전 가흔이 열어 두었던 창가로 걸어가 

      문을 닫았다. 

      그 행동에 혹여나 열면 안되는 거였나 하는 생각이 든 가흔은 식은땀을 흘렸다. 

      "창은 닫아두는 편이 좋아. 정경은 좋지만 때때론 보기싫은 모습들이 연출되기도 

      하거든."

      자신의 말에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는 가흔의 모습에 썩 만족스러운 툴가였다. 

      순종적인 모습을 보이려 하지만, 눈동자에 불만과 반항의 빛이 뚜렷하다는 것을 눈

      치채지 못하는 미숙함조차 맘에 든다. 한동안 서서 어쩔줄을 몰라하고 있는 가흔의 

      모습을 바라보던 툴가는 걸음을 옮겨 오브가 누워있었던 소파로 다가가 앉았다. 

      자신을 앉으라는 듯이 손짓하는 툴가의 행동에 썩 내키지 않지만, 그리로 걸어가 

      맞은 편에 앉았다. 

      "여기 음식들은 꽤나 맛있지. 게다가 이상한 약같은 것도 섞이지 않았으니 배가 고

      프면 아무거나 시켜서 먹으면 돼."

      ".........그다지 배고프지 않아서요.."

      "아, 그럼 이건 그 사내가 먹은건가? 게걸스럽군."

      가흔을 대하는 태도완 상반되게 미간을 찌뿌린 툴가는 앞에 가흔이 자신을 바라보

      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원래대로 라면 눈앞의 검은 머리 소년과 옆에 붙어있었던 남자는 각방을 주려고 할 

      예정이었지만, 잡혀온 인간들에게 표시하는 마력으로 된 낙인이 먹질 않아 이미 낙

      인이 새겨진 사내와 한방에 넣은 것이다. 

      아마도 동료이니 도망간다해도 같이 가겠지. 그전에 도망갈수조차 없을 테지만... 

      그나저나 다른 이들은 다 새길수 있는 마력낙인이 표시되지 않다니, 정말이지 흥미

      로운 존재이다. 낙인이 표시되지 않은 존재는 마력보다 한차원 높은 존재인 용이나 

      초인적인 인간들 뿐이다. 

      예로 검기를 사용하는 검사나 마스터급의 마도사들 같은 말이다.  

      가흔이 그런 존재라고 생각되지 않으니 뭔가 특이 체질인 것인가? 

      빙글빙글 웃으며 가흔에게 최대한 편한 인상을 주려 노력하며 툴가는 소년의 모습

      을 아래위로 쓸어 보았다. 

      마른 체형이지만, 단단한 근육이 운동을 꽤나 한 모양이다. 

      "이 방을 거점으로 왼편은 전부 여가용으로 사용되는 방이니 심심하면 나가서 둘러

      봐도 돼. 하지만 오른편은 중요한 문서들이나 작품들이 있는 곳이니 안가는 편이 

      좋아."

      "....어째서 감옥이 아닌 방으로 저희들을 옮긴거죠?"

      "맘에 들어."

      "..........네?"

      일반적으로 감옥에서 방으로 옮겨진 인간들은 희망에 차 자신이 방문하면 쓸개라

      도 빼내어줄 기세로 아첨을 하거나, 아름다운 외모에서 오는 자신감으로 건방지게 

      행동하거나 둘중의 하나의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대체로 가흔처럼 억지로 옮겨지는 경우는 자신들의 손길을 피해 달아나거나 빛을 

      져 오는 이들이 많았으니 말이다. 그런 부류는 툴가가 가장 혐오하는 종으로써, 가

      흔또한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건 아닌가하고 걱정했던 그이지만, 경계를 하며 조심스

      럽게 묻는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생긴것 답지않게 머리에 든것도 많은 것 같다. 

      "정말 맘에 드는군. 앞으로 일주일 동안 자기집처럼 편하게 지내라고."

      "저...저기.. 저는 이런 곳에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만."

      "응?"

      "제 기억이 맞다면 전 분명 납치된 것일텐데, 어째서 이런 곳에 있는 겁니까? 

      옮겨 주시려면 전에 잇던 곳으로 데려다 주시는게 당연한게 아닐까요?"

      "흐--음."

      남자의 호의적인 모습에 약간의 희망을 얻는 가흔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하면 자신의 말에 틀린 점은 없었지만, 눈앞의 남자와 갑자기 변한 환경

      에 약간 소심해 진것 같았다. 

      깨어날 때는 약에 취해 제대로된 사고를 할수가 없었고, 깨어나선 오브와 대화를 

      나누는데 정신이 팔리고, 이 남자와 다른 사내가 오면서 바로 장소를 옮기게 되 제

      대로 된 정리를 할수가 없었던 것이다. 

      오브는 이 남자가 악덕 노예상인이라고 했지만, 이렇게 잘 대해주는 모습이나, 이

      지적으로 보이는 외관으로 보아 말을 잘하면 자신을 원래 있던 곳으로 보낼줄 것 

      같다.

      자신은 오브처럼 이 남자에게 잘못을 해 끌려온게 아니고 납치를 당한 것이니, 돌

      아갈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다. 

      "미안하지만."

      " ? "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가흔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툴가는 손가

      락을 들어 보드라운 열얼굴의 라인을 쓰었다. 

      생각치 못한 서늘한 감촉에 몸을 경직시킨 가흔은 눈앞의 남자가 무슨 의도로 이러

      는 건가하고 생각해 봤지만, 도무지 틈이없는 모습에게 무언가를 읽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한번 이 툴가 바로챙의 상품으로 들어온 이상 돌아가는 건 절대 무리야."

      지금까지 듣지 못했던 차가운 억양에 가흔의 안색이 굳었다. 

      그런 가흔의 얼굴을 확인한 툴가는 얼굴을 쓸던 손가락을 치워 흘러내린 안경을 올

      리며, 입가를 비틀어 올렸다. 

      순진한 점도 확실히 귀엽다. 

      "무희단인가?"

      깔보는 듯한 눈빛에 욱하려는 유크렌의 어깨를 집어 억누른 에스는 웃어보이며 입

      을 열었다.

      "보시다시피. 날은 어둡고 갈곳은 없으니 머물 자리를 얻고자 하는데, 남은 방이 있

      을까요?"

      "........하나있기는 한데.."

      "아, 다행이군요. 사례는 톡톡히 해드릴테니 부탁드립니다."

      껄끄러운 듯이 말하며 손가락을 비비는 남자의 손에 은화를 넘긴 에스는 사람좋아 

      보이는 얼굴로 웃어 보였다. 

      그런 에스와 다른 일행들을 바라보던 남자는 선심쓴다는 듯이 고개를 까닥이며 안

      으로 들어오게 해준다. 에스는 뒤에 서있는 칸을 자신의 등뒤로 돌리고 유크렌의 

      손을 잡은채 빠른 걸음으로 식당을 지니쳐 계단위로 올라갔다. 

      자신의 뒤로 샤한이 따라올테니 일단은 이 두사람을 방안으로 넣어 두는게 안전할 

      거다. 이곳에선 자신의 얼굴이 더 잘 알려져 있겠지만, 저 칸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숨길수만 있다면 훨씬 일이 수월하게 풀어질 것이다. 

      이곳저곳에 있는 적들의 스파이들에게 에스나 샤한은 경계대상이나 칸은 중앙국으

      로 보고되어야 할 위험 인물이었던 것이다. 

      부디 아무일도 없이 이 마을을 지나치길 바라며 여관 주인이 넘긴 열쇠에 달린 번

      호의 방으로 들어선 에스는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런 에스의 모습을 못마땅하다는 듯이  바라보던 유크렌은 미간을 찡그렸다.

      "아까부터 도대체 뭘 그리 벌벌떠는 거야? 설마하니 그런 돼지같은 인간이 이 나보

      다 더 두렵다는 건 아니겠지?"

      자신을 안고 말을 탈때 떨기는 커녕, 오히려 속도를 높혀 비명을 지르는 자신의 입

      을 손으로 막기까지 했던 에스가 그런 볼품없는 사내에게 굽신대는 태도가 꽤나 맘

      에 들지 않았던 모양인지 말하는 그의 말투에 가시가 박혀있다. 

      유크렌의 퉁퉁부은 얼굴을 내려다 보던 에스는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앉으라는 듯

      이 칸에게 의자를 꺼내 주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의자에 앉는 칸의 모습에 도끼눈을 뜨는 유크렌이지만, 가흔이 사

      라진 뒤로 그의 기분이 무척이나 마이너라는 것을 알기에 별다른 시비를 걸지않고 

      토라진 채로 고개를 돌렸다. 

      "유크렌시아님, 저희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인물이라 어딜 가든지 

      만사에 신중을 기해야 한답니다."

      "뭐냐. 그게. 너희들이 설마하니 이몸보다 더 위험하다는 거야?"

      "적어도 아무 힘도 없는 용보단 우리들이 더 위험하지."

      "샤한! 쓸데없는 말은 삼가십시오."

      아까부터 고자세인 용의 모습이 무척이나 고깝던 샤한은 들고있던 검집으로 유크

      렌의 머리를 툭툭치며 이죽거렸다. 

      그런 모습을 사색이 되어 말리던 에스는 고개를 숙인채 부들부들 떠는 유크렌시아

      의 안색을 살피려 했지만, 그 얼굴이 보이지 않아 알수가 없다. 

      폴리모프한 용이라지만, 지금은 아무힘도 못쓰는 어린아이일 뿐인데 그런 존재에

      게 벌벌떠는 에스의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샤한이지만, 실제론 그 존재

      의 진정한 위험을 모르는 그가 더 어리석을 지도 모른다. 

      걸음을 옮겨 방의 창을 조금 열어 그 사이에 나무가지를 끼어 환기를 유도한 그는 

      구석에 있는 낡은 침대에 앉았다. 

      끼-익하는 소리가 방안을 울리고, 유크렌을 달래는 에스의 목소리가 간간히 들릴

      뿐 그외엔 정적만이 감싸고 있을 뿐이다. 

      불을 붙이지 않고 입에만 물고만 있는 담배를 돌리며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긴 칸

      의 모습을 바라보던 샤한은 조금 볼을 붉혔다. 

      결국 무희단으로 위장을 하기로 한 그들은 당연하게도 칸과 유크렌이 여장역을, 에

      스는 악단. 그리고 샤한은 그들의 가드역을 맡기로 했다. 

      유크렌도 예쁘긴 했지만, 어린아이에게 침을 흘리는 악취미를 지니지 않은 샤한으

      로썬 오히려 칸의 모습에 더 끌렸다. 

      터번을 감아 머리카락을 풀어 내린 거라든가 목과 몸에서 다리까지 감싸는 천을 둘

      렀지만, 팔은 다 내놓은채 몇개의 장신구만을 단채인 그의 모습은 15세 정도의 여

      자아이로까지 보였던 것이다. 

      게다가 무희단의 옷은 춤을 추면 닫아져 있던 치마가 벌어져 허벅지까지 보이니, 

      금상첨화가 아닌가. 

      "마을에 들어오면서 뒤를 따르는 흔적은 없었지?" 

      칸의 모습을 턱을 바친채로 바라보던 샤한은 냉랭한 음성에 정신을 차리고 답했다.

      "입구부터 좀더 신중을 가했지만, 그닥 수상한 움직임을 없었습니다. 그들도 설마

      하니 저희들이 일행과 떨어져 다로 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치는 못할 겁니다."

      "그런가... 저녁까지 쉬고 있다가 날에 저물면 이동한다. 나와 샤한이 먼저 움직일 

      테니, 에스는 도마뱀과 나중에 같이 다라 오도록 해."

      "그런, 칸님 차라리 저와 함께 가시는 게..! !"

      안그래도 칸을 부축여 최악의 방향으로 몰고가는 샤한인데, 자신이 없다면 더 나쁜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둘을 먼저 보내고 자신들은 남아 있으라니. 

      게다가 화가 좀 풀리려다 칸의 도마뱀 소리를 들은 용의 볼을 부풀린채 붉게 달아

      오른 얼굴을 확인한 에스는 잠시 현기증을 느꼈다. 

      "이런 일은 샤한이 더 익숙하지." 

        

      뭐라고 반론하던 에스지만 의기양양한 샤한의 얼굴을 보자니 뭐라 할말이 없었다. 

      자신은 원래 귀족집안의 자제로 확실히 이쪽 방면으론 그보다 경험이 적었던 것이

      다. 이쪽 세계에서 칼잡이 샤한이라하면 꽤 알아줄정도로 나이에 맞지않을 만큼의 

      경험과 능력이 지닌 사내이니, 아직 세상물정을 모르는 자신보단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형 상황에선 그런 것보단 자신같이 좀더 깊게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이 더 

      필요할거다. 사람을 벨줄만 알고 이야기를 들어 보려하지도 않은 사내에게 칸을 맡

      기려니 도저히 신임이 생기질 않는다.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채 서있는 에스의 얼굴을 올려다 보던 유크렌은 얼굴을 돌려 

      칸의 옆 얼굴에 시선을 주었다. 

      처음엔 싸가지 없게 말하고 행동하는 녀석인줄만 알았는데 꽤나 무게감이 있는 녀

      석이다. 가끔씩 보이는 무시못할 위엄은 무엇이란 말인가? 

      전혀 놈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유크렌은 의자를 끌어 의자위에 앉았다. 

      치렁치렁한 옷자락이 귀찮기는 했지만 그보단 공복감 해결이 우선이다.

      "배고프군, 가서 밥이나 가져와."

      "...알았습니다."

      유크렌의 화가 풀어진 것은 다행이지만, 에스는 그것을 생각할 정신이 없었다. 

      우선적으로 무슨일이 있어도 자신과 칸은 붙어 있어야 하니, 그것을 위한 방도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에스의 모습을 바라보던 샤한은 입꼬리를 올렸다. 

      세상살이는 머리로만 사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지 귀족집 도련님. 

      입꼬리를 올리는 샤한의 모습을 무척이나 맘에 안든다는 듯이 바라보던 유크렌은 

      나가려는 에스의 뒷모습을 따라 일어났다. 

      하나같이 맘에 안드는 녀석들뿐인 이곳에서 가만히 있는 것보다 녀석을 따라가는 

      것이 더 나을 거다. 

      "피곤하지 않으세요?"

      "비명을 지르는 입까지 틀어막고 잘만 달리던 자가 할말은 아닌것 같군."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유크렌의 모습에 부드럽게 웃어보이며 말하던 에스는 미소

      를 경직시키며 식은땀을 흘렸다. 

      정말이지 꽁해있기 잘하는 이 용의 심기는 어떻게 해야 가라앉을 것인가. 

      뭐, 자신이 잘못한 점이 없는것은 아니지만 명색이 용이라는 존재가 이렇게 까지 

      속이 좁다니.. 옛날 책을 읽으면 시시콜콜한 일에 앙심을 품은 용들의 존재가 나라

      를 망하게 한 예를 봤을땐 설마하니 했는데, 지금의 유크렌시아의 모습을 보면 이

      해가 가기도 하는 것이다. 

      다 낡아서 걸을때마다 끽끽거리는 내부의 모습을 천진한 모습으로 따라오는 유크

      렌의 모습을 안절부절 못하게 바라보던 에스는 살짝 손을 들의 그의 어깨를 집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원체 뒷거래나 안좋은 무리들이 많은 곳이니 어려 보이는 유크렌이 어벙한 모습으

      로 다니는 것을 보면 분명 납치 대상으로 찍힐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외견으론 그다지 믿음직스런 보호자는 아나지만, 자신이 붙어있는게 좀 더 안전할 

      것이다. 

      "저기 음식 좀 위로 올려 주실수 있을까요?"

      "네?"

      주인에게 말을 해봤자 그닥 좋은 반응이 올것 같지 않았으므로 이 곳에서 일하는 

      것 같은 여자를 잡아 조심스럽게 묻는 에스의 모습을 확인한 여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평소 우락부락한 외모의 사람들만 봐왔는데, 에스의 부드러운 용모는 아직 처녀인 

      그녀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다. 

      유사시엔 몸을 파는 생활을 해 일부 사람들에게 모멸을 받기도 하는 유희단의 무리

      라는 것은 옷차림을 보자마자 알았지만, 몸을 파는 것보다 더 나쁜짓을 하는 무리

      들을 아는 그녀로썬 그렇게 신경쓰이는 점은 아니였다. 

      단원인 듯한 어린 꼬마가 나쁜 자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하려고 품에 안고 있는 모습

      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몇분이서 식사하실 건가요?"

      "8인분 부탁드립니다."

      "8인분이요?"

      방하나에 많아도 5명이 한계인 곳에 이 여관의 악덕주인이 8명의 무희단을 받을리

      가 없다는 것을 안 여자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런 여자의 모습에 에스는 식은땀을 흘릴수 밖에 없었다. 

      식욕이 좋은 칸과 샤한, 거기에 유크렌까지 더해보니 어마머마한 양이 나오는 것이

      지만, 저 모습에 기가 꺽여 주문양을 줄일수도 없다. 

      배가 고프면 더 난폭해 지는 법이니 수가 없다.

      의아해 하는 여관의 모습을 보며 어색한 웃음을 지은 에스는 입을 열었다. 

      "일행들이 많이 굶주려서요... 부탁드립니다. 계산은 올라오실때 해드리지요."

      "어머어머. 그러세요. 제가 더 갖다 드릴께요."

      "그럴것 까진 없지만, 감사드립니다."

      "어머머~ 아니예요."

      말투도 얼마나 고상하단 말인가? 

      험한 욕설과 사투리만이 난무하던 곳에서 에스의 말투를 접한 여성의 얼굴을 황홀

      하게 변했다.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 

      저런 무식하고 못생긴 작자들은 밤만 되면 술을 마시러 오는데 이런 가엽고 멋진 

      남자가 배를 굶으며 여행을 떠다니 다니.. 8인분이 아니라 10인분을 올려줄 계획을 

      하며 눈을 빛내는 여자의 모습의 보면 에스는 자신의 연기력이 그럭저럭 먹힌 것 

      같다며 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 에스의 모습을 보며 기가 막히는 것은 유크렌 뿐이었다. 

      솔직하게 일행들이 많이 먹어서 그런 거라면 얼마나 좋아. 콧김을 내뿜은 유크렌은 

      아직 서서 여자와 대화를 나누는 애스를 뒤로하며 계단을 올라갔다. 

      보나마나 어디로 나갈 분위기가 아닌 다시 들어갈 테새이니 얌전히 방에 들어가 곧 

      올 음식을 먹을 준비나 하고 있으면 되겠지.

      이런 지저분한 곳의 음식이 맛있을 리가 없고말야.

      "어라? 이건 또 왠 귀여운 강아지냐."

      "............"

      "호-오. 무희단인가? 무희단이 이곳에 있는 모양이로군."

      술에 만취한 것인지 발걸음도 잘 갸누지 못하는 남자의 모습에 인상을 찌뿌리며 뒤

      로 물러난 유크렌은 벽에 기대져 있던 못이 박힌 몽둥이를 잡아 들었다. 

      그런 모습을 채 확인하지 못하는 사내는 작지만 상당한 외모를 지니고 있는 유크렌

      의 얼굴에 손을 뻗으려 몸을 앞으로 숙였다. 

      확하니 풍기는 술냄새에 이를 악문 유크렌은 순간 스치는 과거에 돼지 중년에게 당

      할뻔한 기억에 반사적으로 들고있던 몽둥이를 비스듬이 쳐올렸다.

      빠-악.

      "컥! !"

      정통으로 옆얼굴을 맞은 사내가 그 자리에 쓰러지자 유크렌은 들고있던 몽둥이를 

      다시 잡고 있는 힘껏 내리쳤다. 

      박혀있던 못이 사내의 몸에 박혀 질때마다 요란한 비명소리가 올렸고, 아직 아래에 

      있다가 유크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에스가 사색이 되어 올라어다 비명을 지르

      는 남자를 두들겨 패고 있는 유크렌의 모습에 이를 악물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

      "이것 놔! ! 이몸이 먼저 이몸한테 접근했단 말이다! !"

      "그렇다고 일을 이렇게 벌이다니..! !"

      이미 몇번을 두들겨 맞은 것인지 피를 흘리고 끙끙대는 사내의 모습에 에스는 미간

      을 접었다. 

      이런 일이 생길까봐 조심한다고 했는데, 그 잠시동안 일을 벌이다니. 

      품속에서 바지락 거리는 유크렌의 뺨을 한대 올리고픈 마음에 치밀었지만 그때 나

      타난 쓰러진 사내의 일행인 듯한 자들의 모습에 안색을 굳힐 수 밖에 없었다. 

      "뭐야?! 이놈들은..!!"

      "두목 저기에."

      "루붕이 아니냐? 도대체 어떻게 된거지??"

      하나같이 험악한 인상에 메고있는 무기들을 보아 분명 용병단의 무리일 것이 분명

      하다. 하나의 용병단은 대체로 인원수가 100을 헤아릴 정도고 그 유대감이 강해 한

      사람이 당하면 그것에 대해 복수하는 일도 상당히 드문일이다. 

      가흔을 찾기 전에 용병단에 쫒기는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용의 몸을 

      들쳐 엎은 에스는 쓰러진 사내의 배를 차 서서 험악한 기운을 뿌리는 자들에게 던

      진 다음 몸을 돌려 계단위로 올라갔다. 

      일단 칸들에게 말을 하고 도망을 가는 것이 좋겠다. 

      아우성 치는 사내들을 뒤로하고 삐그덕 거리는 계단을 지난 에스는 그러나 이미 칼

      집을 메고 막 문을 나서는 차비를 마친 칸의 모습에 미간을 접었다. 

      칸 역시 험악한 얼굴로 뛰어오는 에스의 모습에 순간이나마 움찔하며 몸을 뒤로 물

      렸다. 

      "칸님! 일단 이곳에서 빠져 나가야 합니다! !"

      말을 마친 에스는 막 계단에서 얼굴을 보이는 자들에게 품속에 넣어 두었던 단검을 

      던졌다. 

      호리호리한 인상에 무희단의 옷을 입고있기에, 자신들의 동료를 해한 복수겸. 욕정

      도 풀어볼까하며 여유로운 걸음으로 쫒아오던 자들은 그러나 정수리를 향해 곧장 

      날라오는 단검의 궤적에 안색을 달리하며 급하게 몸을 숙였다. 

      녀석들은 겉모습만 무희단이라는 것이 확실히 알아버린 것이다. 

      눈치가 빠른 듯 신중한 걸음을 보여주는 무리의 두목이라는 자를 바라보며 혀를 차

      던 에스는 다시 방에 들어가 창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가는 칸과 샤한의 모습을 확

      인하며 마찬가지로 창을 향해 몸을 내던졌다. 

      3층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뛰어 든것까진 좋았지만 눈밑에 보이

      는 것이 딱딱한 땅바닥이 아닌 넘실거리는 강물이라는 것을 확인한 에스의 표정이 

      하얗게 질리는 것은 순간이었다. 

      그는 수영을 하지 못하는 맥주병이었던 것이다. 

      풍--덩.

      여지없이 물속으로 빠진 에스와 유크렌의 모습을 확인한 사내는 표정을 굳히며 창

      가에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웬지 눈을 떴을 때부터 느낌이 안 좋더라니만, 이런 일이 생기다니. 

      쓰러져 있던 부하의 모습을 떠올리던 그는 입맛을 다시며, 씩씩대고 있는 사내들에

      게 손을 저어 보였다.

      "아직 도망가지 못했을 거다. 가서 붙잡아와."

      생각 같아선 그냥 잊고 있으라고 하고 싶었지만, 이런 남자들을 다스리는 가장 좋

      은 방법은 그들의 욕구를 제때 풀어줘 감정을 남기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에 거친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을 보며 아까 있던 

      무리들의 떠올려 보인 용병 두목은 머리를 긁적일수 밖에 없었다. 

      성인남자 둘에 여자하나 꼬마하나로 이루어진 그룹은 상당히 묘한 느낌이 들게 해

      주는 동시에 얍잡아 보일수 있게하는 것이려만, 그들에게 풍기는 기가 심상치가 않

      아 속이 영 껄끄럽다. 

      덥수룩한 수염을 쓰다듬던 그는 문득 걸리는 게 있어 품속을 뒤저 접혀진 종이를 

      꺼내 보였다.

      부스럭.

      "...설마 아니겠지." 

      펴진 종이 사이로 보이는 앳되지만, 강렬한 눈동자가 인상적인 소년의 얼굴과 아까 

      문을 열고 나온 소녀의 얼굴을 잠시 비교해 보던 그는 피식하고 미소를 흘리며 펴

      진 종이를 접어 다시 품속에 집어 넣었다. 

      그림속의 소년은 크면 대단한 미남이 될것이지만, 아까의 그 소녀은 자라면 대단한 

      미인이 될것이니 동일 인물일리가 없다. 요새 일을 안한 모양인지 묘하게 감이 둔

      해진것 같다며 고개를 저은 사내는 아래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은근히 얼굴을 밝히며 단정한 자신의 얼굴을 더 좋아하는 여관에서 일하는 처녀의 

      얼굴을 떠올리며 잠시 씻고 내려가 볼까도하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귀찮아서 관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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