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3/55)

      "잘 가꾸어진 정원이군."

      "워낙에 손님들의 취향이 고상하시니 그에 맞추려면 심혈을 기울어야 하는 법이지

      요."

      "그렇다면 다음부턴 내 취향에 맞추어 전처럼 아름다운 아이들을 내놓지 그러나? 

      언제나처럼 거금을 들어서라도 사들일 용의는 있어." 

      뼈있는 요크발의 말에 툴가는 미간을 살며시 접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는 얼

      굴을 만들며 '그러마'라고 가볍게 수긍했다. 

      순종적인 툴가의 모습을 보며 요크발은 슬슬 용건을 꺼내야 겠다고 생각했다. 

      아까 거실에서부터 해온 말장난이 슬슬 질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근래에 재미있는 걸 손에 넣은 모양이더군."

      "저에겐 온통 재미있는 것들 뿐이죠."

      말들 돌리는 툴가의 태도에 헛웃음을 지은 요크발은 어쩔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

      으며 몸을 돌려 툴가와 마주했다. 그런 그의 반응에 안경 밑의 예리한 눈빛을 빛내

      며 툴가는 선채로 양손을 뒤로 잡았다. 

      무슨 말을 하든지 이번만은 그대의 맘대로 되진 않을 겁니다. 

      요크발 대공.

      "검은 머리의 검은 눈동자를 지닌 소년을 원한다."

      "무슨 말씀 이신지?"

      "뭐, 역시나 그런 반응이군."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툴가의 모습에 요크발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며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날씨 한번 좋다. 

      "그러고 보니 전에 이곳에서 저 하늘색과 똑같은 아이를 구입했던 것 같군. 기억나

      나? 내가 기억하기론 꽤나 그대의 총애를 받았다고 알고 있는데 말야."

      "..........글쎄요. 누구를 말씀하시는 건지."

      "이런, 론이 들으면 꽤나 섭섭해 하겠어.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널 생각하며 꽤나 그

      리워 했던 것 같은데 말야."

      요크발의 조롱조의 말에 툴가는 어금니를 깨물었지만, 결코 싫은 표정을 짓거나 내

      색하진 않았다. 

      틈을 주면 바로 물고 늘어지는 자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리하게 변하는 툴가의 기색을 눈치챈 요크발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우지 않은채 

      몸을 돌려 다시 걸음을 옮겼다. 

      구석에 몰린 쥐도 너무 몰아세우면 무는 법이다. 

      일단 미끼는 쳐놨으니 상대가 그것을 자발적으로 무는 것은 나중을 위한 여흥거리

      로 남겨두는 것도 괜찮은 것일테지. 

      감정 싸움을 종결하고 이제부터 정원을 아름다운 모습을 여과없이 즐기려던 요크

      발은 그러나 정원 뒷쪽 펼쳐진 숲속에서 튀어나온 세사람의 모습에 숨을 들이켰다. 

      "여기가 맞긴 한거야?"

      "일단 저택앞으로 나왔잖아요. 그만 좀 투덜대요. 오브." 

      아까부터 종알종알 말이 많은 오브에게 진절이 난 가흔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으

      로 집으며 바지에 묻은 나뭇잎을 털어냈다. 

      꽤나 아름다운 숲이였지만, 빠져 나가는데 급급해서 경치를 제대로 즐기지 못한 점

      은 아쉬웠다. 각각 다른 표정을 짓고있던 두사람을 즐거운 얼굴로 바라보던 론은 콧

      노래를 부르며 숨을 들이 마셨다. 

      귀족답지 않게 편안하고 정말 재미있는 사람들이어서 별로 어색하지 않은 가운데 

      빠져 나갈수가 있었다. 숲에서 빠져 나왔으니 저 두사람은 자신들이 갈길을 갈 터이

      니, 자신은 주인은 요크발님을 찾아 나서면 된다. 

      문득 고개를 돌려 건물 밖으로 나있는 통로에 시선을 준 론은 시야에 들어온 두사람

      을 확인하자마자 들던 손 그대로 굳어 버렸다. 

      "요크발님!"

      그리고 그 옆에 선 사람은 분명 2년전 여기서 자신에게 무척이나 잘 해 주었던 그 

      사람이다. 

      저도 모르게 나오려는 환호성을 막고 반가움에 발만 동동구르던 론은 갑자기 뒤에

      서 잡아끄는 손길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론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든 말든 가흔은 그를 감싸 안으며 뒷걸음질을 쳤다. 

      설마하니 이런 곳에서 저 변태 녀석을 만날줄은 몰랐다. 

      론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알려준 소년이 갑자기 요크발이라는 이름을 부를때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그가 바라보는 방향을 확인한 가흔은 순식간에 표정을 바꿀수 밖

      에 없었다. 

      이 세계에 온지 몇일만에 만나 최악의 만남을 갖게 해준 사람인 동시에 알아들을 수 

      없는 가운데에서도 사람 기분을 망치게 하는 화법을 구사하던 남자. 

      게다가 칸과 엄청 사이가 안좋아 살벌한 검을 겨루기도 한 자이기도 했다. 

      당시의 엄청났던 검술을 본적이 있는 가흔은 자신과 오브가 아무리 달려 들어도 저 

      요크발이라는 사내를 이길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다른 도망갈 장소를 물색할

      수 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애 먹이는 군."

      툴가는 가흔들과 요크발의 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애써 신경써서 숲 가운데에 던져 두었는데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이곳까지 온 것인

      가? 

      가흔의 품속에 안겨있는 론의 모습을 보면 누구의 도움인지 일목요연하다. 

      잔상이 남아있는 푸른 머리카락을 애써 외면한 툴가는 손을 들어 뒤에 있는 병사들

      에게 앞의 두명의 잡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런 툴가를 돌아본 요크발은 입꼬리를 조금 올려 보았다.  

      "제말하면 온다더니, 자네가 모르겠다는 한마리와 기억못하는 한마리가 동시에 나

      타났군."

      "............"

      "게다가 개인적인 용무가 있던 비잔힐의 전가주의 모습도 보이고 말야."

      자신을 향해 이를 들어내 보이는 요크발에 모습에 소름이 돋은 팔을 문지르며 오브

      는 저도 모르게 한발 뒤로 물러났다. 

      설사가상이라더니, 호랑이를 피해 호랑이 굴로 뛰어든 격이다. 

      "여기가 발챠입니다."

      막 지나는 성문을 마차의 창에 턱을 바치고 바라보던 칸은 위에서 드리는 목소리에 

      얼굴을 들어, 말에 탄채 잔뜩 기대한 눈초리로 자신을 내려다 보는 젊은이에게 이를 

      들어내 보이며 웃었다. 

      엄청 우스워 보이는 미소일텐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웃엇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좋아하는 사내의 모습에 칸은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놈의 미모가 또 애꿋은 사람하나 버리는 구나 싶었다. 

      그나저나 그냥 실없는 녀석인줄 알았는데 꽤나 신분이 높은 녀석인지 문지기들이 

      자세히 살피지도 않고 수많은 마차와 말들을 그냥 통과시켜 준다. 노예시장과 온갖 

      불법들이 횡횡하는 곳답지않게 치안이나 들어오고 나오는데에 검사가 따분하리만

      큼 철저한 곳인데 말이다. 

      사내는 턱을 창에 받친채 빙글빙글 웃고있는 칸의 얼굴이 무척이나 보기 좋았다. 

      다른 여성들이 이런 모습을 보였다면 분명 경멸의 시선을 던졌을 텐데 이 작은 무희

      가 하는 행동은 무엇이든지 이뻐 보이기만 하니 이상한 일이다. 

      "평판이 안좋은 곳이긴 하지만 잘 살펴보면 좋은 장소도 많죠. 나중에 함께 가지 않

      겠습니까?"

      "글쎄. 나는 일행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약간 어려울 지도 모르겠는걸." 

      "그런 일이라면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동료분의 신상을 알려주시기만 하면 바로 모

      셔다 드리겠습니다."

      가슴을 두들이는 폼이 마치 당장이라도 가흔을 찾아낼 기세다. 

      그 모습이 귀여워 보여 칸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살짝 윙크를 날려 주었다. 

      완전히 시뻘겋게 변한 사내의 얼굴을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는 칸의 모습에 에스

      는 절로 두통이 나는 것 같았다. 저렇게 장난을 치다가 나중에 정체가 들통이라도 

      나면 그 뒷감당은 어찌하려고 하는 건가. 

      안 그래도 사내의 집사인 듯한 늙은이가 칸이 무슨 짓을 할때마다 도끼눈을 뜨고 노

      려보고 있는데 말이다. 

      슬쩍 창의 커튼을 들어보이 에스는 어김없이 칸과 도련님이라는 사내를 감시하는 

      늙은이의 눈빛을 확인할수 있었다. 

      칸이라면 저 늙은이의 반응이 재밌어 더 저러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기에, 에스는 몸을 일으켜 창가에 매달려 있는 작은 어깨를 두들였다. 

      왜 그러냐는 듯이 뒤돌아보는 칸에게 작게 인상을 찌뿌려 보이는 에스였다. 

      "그만 들어오세요. 더 이상 남자 홀리기는 그만 두시지요."

      "흥, 내가 일부러 그러는 거야. 저쪽에서 괜히 매달리는 거잖아."

      "핑계를 주지 않으시면 결과도 생기지 않은 법입니다."

      딱딱한 에스의 말에 혀를 내밀어 보인 소리가 나도록 의자에 앉았다.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팔로 턱을 받친채인 칸은 갑자기 들어간 자신이 궁금한 건지 

      창쪽으로 고개를 숙이는 도련님에게 장난스럽게 손을 흔들어 보았지만, 에스의 헛

      기침 소리에 행동을 멈췄다. 

      다시 나올 기세가 아니라는 것을 깨닭은 건지 말을 몰고 뒤로 가는 사내의 모습을 

      확인한 에스는 이를 갈며 입을 열었다. 

      "저쪽은 아무리 봐도 귀족집의 아들이고, 저희들은 단지 무희단입니다. 그런데 도련

      님이라는 사람에게 반말을 하고 남들이 보기에 꼬시는 듯한 행동을 하셔도 되는 겁

      니까?" 

      "뭐가 어때서?"

      "정말 모르시는 겁니까?"

      "이만한 집단이 데리고 다니는 무희단은 꽤나 실력이 있다고 여겨지기 쉽상이지."

      아무 잘못이 없다는 듯이 행동하는 칸의 행동에 열불이 난 에스가 막 뭐라 말을 하

      려는 찰나 칸이 냉정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자신의 말에 입을 다문 에스의 얼굴을 만족스럽게 바라본 칸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발등에 달린 장신구를 손으로 쓰다 듬었다. 

      자신에게 눈이 먼 저 사내가 준것인데 꽤나 감촉이 좋고 모양이 예쁘다. 

      비싼 값으로 팔아서 가흔에게 좋은 선물을 해주고도 하루종일 군것질을 잔뜩 할수

      있을 것 같다. 

      "혹시 알아. 시장을 개막을 기념하려고 실력있는 무희단을 뽑을때 득을 볼지도. 

      손쉽게 내부에 들어 갈수도 있다는 말씀."

      "칸님..."

      그답지 않는 사려깊은 말에 묘한 표정을 짓는 에스의 얼굴을 보며 칸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의 말에 얼굴을 구길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정도의 행사에 갈려면 적어도 인원은 10명이 넘어야 합니다."

      잠시 정적이 감싸인 칸들이 탄 마차를 확인하며 도련님이라고 불이우던 비센이 자

      신의 늙은 집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묶을 장소는 잡아 두었나?"

      "물론입니다. 카일님의 별장중 하나를 빌려 두었습니다."

      "형님의 별장인가. 기대되는 군."

      그답지 않게 밝아보이는 표정에 집사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계속 넘길수만은 없는. 꼭 한번은 집고 넘어가야 하는 일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자신을 조십스럽게 부르는 노집사에게 웃는 얼굴로 돌아본 비센은 무엇이든지 말

      해 보라는 듯 인자한 표정을 띄우고 있었다. 

      자신이 이 말을 하면 저 얼굴은 분명 야차처럼 변할 것이다. 

      "저 무희단을 어찌 할 생각이십니다. 설마하니 계속 데리고 다니실 생각은 아니지

      요?"

      조심스럽게 묻는 말에 '아'하는 표정을 지어보인 그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자신의 

      볼을 손가락으로 긁었다. 

      난처하거나 뭔가 쑥쓰러운 질문을 받았을 때나 하는 행동을 보이는 도련님의 버릇

      에 노집사의 얼굴은 점차 흑빛으로 변했다.

      "그래, 계속 이렇게만 데리고 다닐수는 없지. 슬슬 마음을 다잡으려던 참인데 그대

      가 망설이던 내 맘을 다잡아 주는 군."

      "...무...무슨 맘을....?;;"

      "저렇게나 맘에 드는 여성은 처음이야. 물론 신분이 미천한건 알겠지만, 하는 행동

      이 다 이뻐보이니 별수가 있나. 정실도 없는 상태에서 첩실을 들일수는 없지만, 그

      냥 놓치수 없는 사람이니 하루라도 빨리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 겠어."

      "네..네?"

      "물론 무희단의 여성을 첩으로 들인다면 아버지의 진노가 대단하시겠지. 그땐 그대

      가 도움을 줄꺼라 믿네. 누가 뭐라해도 그내는 나의 심복이니 말야."

      "아.. 뭐.. 그..그렇지요.. 하하하.."

      주름을 접으며 웃는 집사의 얼굴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던 비센은 칸이 타고있는 마

      차를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 보았다. 

      이성에 대해 관심을 지닐 나이가 되었어도 변변찮은 연예한번 안하고 친구들과만 

      지내는 자신에 대해 부모님들의 걱정이 말도 못했는데, 그녀를 만남으로써 한숨 놓

      았다. 

      자신은 분명 운명인 그녀를 만나기 위해 지금껏 다른이에게 눈을 돌릴수 없었던 것

      이다. 

      "그래, 이런게 운명이란 건가."

      4일전 산맥을 넘어가기 전에 짐을 풀고 잠시 쉬려할때 왠지 모르게 걸음이 숲쪽으

      로 옮겨졌다. 한참동안 주변의 환경에 취해 걸어가던 자신은 갑자기 머리위로 떨어

      지는 열매에 고개를 위로 들었다.

      그리고 요정을 보았다. 

      청색의 머리카락을 늘어 뜨리곤 나른하게 턱을 바친 모습으로 나무가지 위에 엎드

      려 있던 그녀는 자신을 내려다 보곤,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올렸지. 

      그리고 그 아름다운 음성으로... 

      "이봐 과일 좀 집어줘.라고 말했을 뿐이야."

      "정말 그뿐 입니까?"

      "그래, 겨우 그 말가지고 눈이 하트로 변할줄은 미쳐 몰랐다고." 

      도련님이라는 인간과 어떻게 만났냐고 닥달하며 묻는 에스의 추궁에 짜증이 난 칸

      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그뿐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으로 알고있는 에스는 계속해서 경위에 대해 물

      었지만, 칸은 딴짓을 하는 것으로 무시했다. 

      "저런 남자가 무턱대고 칸님에게 빠질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럼 나보고 어쩌래? 정말인데! 내가 저놈의 이상형인가 보지! !"

      버럭 소리를 지른 칸은 몸을 아주 돌려 앉았다. 

      자꾸 케묻는 에스의 말을 한귀로 흘리며 기억하기 민망했던 사내와의 만남을 천천

      히 떠올려 보았다. 

      한참을 도망치다 변변찮은 끼니한번 먹은 적없던 그는 근처의 숲을 배회하다 열매

      달린 나무를 발견하게 되었고, 앞뒤 따지지 않고 바로 올라가 닥치는 대로 따서 먹

      었다. 

      그런데 게중 하나가 밑으로 떨어져 산책을 하고 있었던 듯한 저 빈센 도령이란 자의 

      머리위로 떨어지게 되었고, 주워 달라는 말에 순순히 주어들어 팔을 뻗는 그의 몸짓

      에 과일을 받기위해 팔을 뻗었다. 

      그리고 미끌어져 그대로 땅으로 떨어졌다. 

      지금껏 살아왔지만, 남의 앞에서 나무밑으로 떨어진 기억이 없는 칸은 엄청난 창피

      함에 얼굴을 숙였다. 그런 자신을 열심히 달래던 비센이라는 자는 시간이 계속 흘러

      도 고개를 들지 않자 아예 안고 그의 일행이 있는 곳으로 걸어간 것이다. 

      아마도 떨어졌을 때 다쳐 아파서 그런것이라고 착각을 한 사내는 아무 말도 못하고 

      얼굴을 시푸르딩딩해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꽤나 청초하게 보였는 모양. 

      그 오류를 지적해 주지 않고 착각하게 냅둔 칸은 중간에 자신을 찾는 에스와 만나서 

      이들의 일행에 합류한 것이다. 

      "귀족들이란 하늘하늘한 것에 약한 법이지." 

      손목을 들어  팔 전체로 S자를 그려 보이는 칸의 모습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에스지

      만, 뭐라고 물어도 대답해줄 태도가 아니기에 고개를 저으며 물러날수 밖에 없었다. 

          

      "카일님 비센님께서 성문을 통과하셨다 합니다."

      창이 넓은 베란다에 자리한 의자에 앉아 밖의 풍경을 만끽하던 카일은 수하의 보고

      에 들고있던 잔을 테이블 위로 내려 놓았다. 

      아직 반쯤 채워진 포도주가 붉은빛의 그림자를 그리는 것을 확인한 그는 붉은 입술

      을 비죽히 올리며 푸른 하늘이 보이도록 몸을 뒤로 기댔다. 

      "노웬 일행은?"

      "산맥을 이미 지나 3일 후쯤에 도착할 것으로 보이지만, 과연 그 중에 노웬이라는 

      자가 있을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그게 당연하지. 쉽게 틈을 주는 사내가 아니다."

      간밤의 격렬한 정사의 탓인지 뻐근한 뒷목을 주무르던 카일은 반쯤 벗겨진 가운을 

      바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의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믿었던, 나이차가 제일 적지만 가장 귀여워 하던 조카

      가 이리로 온다는데 허술한 모습으로 맞을수는 없다. 문쪽에 서있는 시녀들에게 옷

      을 준비시킨 그는 술냄새를 사라지게 하기 위한 향도 준비 시켰다. 

      귀여워 하는 아이에겐 되도록이면 완벽한 모습을 보여 주고픈게 어른의 마음이라

      는 거다.

      옷을 갈아입게 위해 팔을 들어올린 카일은 손목에서 빛나는 작은 보석에 눈동자 위

      로 이채의 빛을 띄었다.    

      "왠지 모르지만, 에스라한을 만날것 같은 느낌이 들어."

      자신의 감은 틀린 적이 거의 없었다. 

      에스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한층 좋아진 카일은 콧노래를 부르며 손목의 

      보석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새삼 그와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이 난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아직 어린 그의 모습은 떠 올릴때마다 사랑스러움을 불러 일으

      키곤 한다. 비잔힐 저택에서 길을 잃었지만서도 자신에게 내색하지 않으려 아는 척

      을 해대며 가슴을 펴던 개구쟁이 소년이 지금처럼 머리를 사용하는 지능적인 청년

      으로 자랄 것이라고 그 누가 알았던가. 

      뛰어난 형을 두고 있어 매번 컴플렉스에 시달리던 그를 볼때마다 고개를 젖던 그의 

      부친도 지금의 에스라한의 모습을 보게 된다면 지하에서 눈물을 흘리며 기뻐할 것

      이다. 

      어느새 옷을 준비해온 시녀에게 갈아입히라는 지시를 내리고 양손을 허리에 댄 카

      일은 유능한 점쟁이를 불러 에스를 만나는 가장 좋은 방향과 길일을 알아보자고 생

      각했다. 

      "에취-!"

      "....왜 그래?"

      팔장을 꼰채로 가만히 앉아 독서를 하던 에스가 느닺없이 재체기를 하자 몇개의 파

      편을 얼굴에 맞은 칸이 굉장히 싫은 표정을 하며 그를 올려다 보았다. 

      그런 그에게 미안하다는 미소를 지어보인 에스는 갑자기 가슴이 울렁거리자 안색을 

      굳히며 손을들어 자신의 몸을 안았다. 

      왠지 오한이 드는게 달리는 마차에서 내리고만 싶어진다. 

      하지만 자신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칸에게 미소를 지어보인 그는 여러가지 생각할 

      일들이 많아 몸이 안좋은 거라고 애써 치부하며 고개를 저었다. 

      안 그래도 최악인 상황. 설마하니 이보다 더한 일이 벌어 지겠는가? 

      "또다시 여긴가?"

      "음, 하지만 마력이 깔려 있는걸? 한층 업그레이드 됐어."

      쇠창살에 흐르는 푸른 기운에 차마 손가락을 대보지는 못하지만 그 움직임을 그려

      보던 오브는 낙담한 표정의 가흔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았다. 

      역시나, 마력이 깔려있다. 

      이런 곳에 들어온 이상 죽기 싫으면 얌전히 안에 앉아있는게 상책이다. 

      창살에 흐르는 이 전류는 겉보기엔 무척이나 예쁘지만 충격을 가하면 사람 목슴하

      나 정도는 가볍게 끊을수 있는 충격파를 주니깐. 

      "요크발에게 그대로 끌려가나 했는데 다시 저택 감옥에 감금되었으니.. 잘된 일이라

      고 할까요?" 

      "천만에. 이로써 우리는 당장에 상품으로 내놓아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가 된거라

      고."

      "..........암울하네요."

      도망가려 해봐도 전보다 더 강화된 경비에 숨조차 쉴수가 없다. 

      지금은 감옥이니 사람들이 없지만, 올라가는 저 문을 여는 순간 1미터당 한명씩 경

      비들이 따닥 붙어 서있는 것이다. 시장이 서기 전 상품을 내놓기 위해 강화되는 식

      의 경비 위치에 오브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렇게 일이 꼬이니 이제는 정말이지 손놓고 팔려가는 수밖에 없는 가보다. 

      아까 자신들을 그냥 데리고 가려했던 요크발에게 '상품은 무대위에서 흥정한 후 사

      가는 것이 묘미죠,'라는 식으로 말했던 툴가 덕에 바로 끌려가진 않았지만, 요크발

      이란 작자가 누구인가? 현

      중앙국 황제와 신임을 받고있는 가문의 적자. 게다가 위에 가주가 남아있지만, 이미 

      실권을 휘두르고 있는 명실상부한 권력자이다. 

      돈은 계속 퍼내도 끝없이 지니고 있는 자가 오브와 가흔을 경매에서 사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 혹여나 그보다 더한 자금을 지닌 자가 있다면 자신들은 그에게 팔리진 

      않겠지만, 그건 확률이 상당히 낮은 가능성.

      "이대로 가만히 있어야 하는 건가요?"

      "그럼 어쩌겠어?? 그렇다고 저 마력을 풀고 당장 밖에 나갈수도 없는데 말야."

      "...이게 그렇게 대단한 건가요?"

      "바보! ! 무슨 짓을?! !"

      쇠창에 흐르는 전류를 가만히 바라보던 가흔이 다짜고짜 손을 내밀자 오브는 사색

      을 하며 그의 몸을 잡아 끌었다. 호기심이 인생을 망친다더니 죽고 싶어 환장했나 

      보다. 

      그러나 오브가 팔을 뻗기전에 이미 가흔의 손은 창살을 만지고 있었다. 

      손가락 끝에 닿는 서늘한 쇠의 느낌과 미비하게 느껴지는 전류의 감각에 잠시 몸서

      리를 친 가흔은 자신의 손가락 끝에 머무는 푸른 전류같은 것이 입술을 오무렸다. 

      한면을 막고있던 창살에 흐르던 전류들이 일시에 자신의 손끝으로 모이는 것 같은 

      광경은 상당히 신기한 광경이었던 것이다.

      파직-

      작은 소리와 함께 사라진 마력의 파동에 오브는 눈을 동그렇게 떴다. 

      오브가 그러거나 말거나 고개를 갸우뚱한 가흔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살에 나있는 

      문을 밀어 보였다. 끄는 소리를 내며 밀려지는 문에 가흔은 안색을 밝게 하며 오브

      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역시나, 전에 비잔힐에 납치를 당했을 때와 비슷한 패턴이다 싶었는데 생각되로 진

      행되니 신이 난다. 

      들키지만 않는다면 이번엔 정말로 빠져 나갈수 있을 것 같다. 

      "빨리 나가자 고요."

      "그..그래."

      얼빠진 표정으로 말하는 오브의 얼굴을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던 가흔이지만 이대

      로 가만히 있을수 만은 없어 아직도 자리에서 미적거리는 그의 팔을 잡아 끌었다. 

      붙잡혀 들어올때 오른편에 나있는 올라가는 문은 경비들이 빼백하게 차있는 것을 

      두눈으로 확인한바 있으니 그리로 가는 것은 무리다. 

      그렇다고 지하인 곳에 창이 있을리도 없고, 이런 곳에 비밀통로 같은게 있을리도 없

      다. 그렇다면 출구와 반대편으로 나있는 오른편의 문쪽으로 빠져 나갈수 밖에 없다

      는 건데 막상 문을 열었을때 무엇이 있을지 모르기에 불안하기만 하다. 

      열심이 머리를 굴리는 가흔의 얼굴을 미묘하게 바라보던 오브는 그의 손을 잡아 들

      었다.

      " ? 왜 그래요?"

      갑자기 손목을 잡아 자신의 목뒤로 가져다 대는 오브의 행동에 가흔은 눈을 동그랗

      게 떴다. 

      그보다 키가 큰 오브는 가흔의 어리둥절하는 반응에도 아랑곳 않고 허리를 숙인채 

      자신의 목뒤로 잡고있는 손을 댔다. 가흔의 손가락이 오브의 목뒤에 닿자 파직하고 

      잠시 전정기가 올랐다. 

      갑작스런 일에 손을 빼내려던 가흔은 구부리고 있던 허리를 들고 묵묵히 입을 다물

      고 있는 오브가 지신의 손을 잡고 놓지 않자 미간을 찡그렸다. 

      빨리 이곳에서 빠져 나가야 하는데, 이 사람은 지금 뭐하고 있는 건가? 

      ".....가자."

      한동안 가흔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오브는 그답지 않게 안색을 굳히며 앞장 섰다. 

      가흔과 생각하는 바가 같았는지 오른쪽으로 걸어가는 걸음에 가흔은 고개를 갸웃했

      다. 

      아까부터 묘한 행동을 하는 오브의 모습이 이상했던 것이다. 

      "............"

      인간의 몸으로 창살에 깔려있는 마력과 자신의 목뒤에 있었던 마력 낙인을 지울수 

      있는가에 대해 누군가에 질문을 던진다면 답하는 사람 중 대다수가 부정의 답을 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눈앞에서 그것을 해낸 가흔은 그럼 무엇이 된다는 건가? 

      목뒤에 있던 낙인이 있던 곳에서 더이상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은 것은 좋지만, 지금

      의 상황은 웃음으로 얼버부리기엔 받아들일수 있는 거부감이 크다. 

      굳은채 걸음을 옮기다 무작정 문을 열려는 오브의 모습에 안색을 달리한 가흔은 그

      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밖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무턱대고 여는 건가요?"

      "...아? 아, 그렇군."

      안색을 굳힌채 낮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 약간이나마 정신이 드는 것 같다. 

      지금은 가흔의 일보다 이곳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우선인 것이다. 낙인이 사라졌으

      니 자신들이 사라져도 저들은 찾아낼 수가 없을테고. 

      가흔의 이마에 접어진 주름을 바라보던 오브는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그의 이

      마를 문질러 주었다. 주름 피라는 듯한 행동에 멎쩍인 표정은 지은 가흔은 뒤로 물

      러났고, 그런 그를 확인한 오브는 살짝 무릎을 꿇어 문밖의 소리를 들어 보았다. 

      한참동안 정신을 집중했는데도 들려오는 소리가 없다는 것은 일단, 이 밖엔 아무도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연다."

      자신의 판단에 두말않고 고개를 끄덕이는 가흔의 얼굴을 보고 오브는 천천히 문의 

      손잡이를 열었다.

      끼--익.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두사람은 안색을 달리하며 왼쪽에 나있는 문을 바라 보았다. 

      그러나 듣지 못한건지 아무도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것에 안도의 숨을 내쉰 두 사람은 한사람이 빠져 나갈수 있을 만큼의 간격만을 연

      채로 안을 바라 보았다. 바로 계단은 아닌듯, 어두운 공간이 보이고 그 앞에 다시금 

      문이 있다.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던 둘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한사람씩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사람이 아닌 시장에 내놓은 물건들을 모아둔 곳인지 여기저기 고가의 장식

      품들이 눈에 띈다. 

      호기심에 여기저기 둘러보는 가흔의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던 오브는 그에

      게 여기있는 장식품들이 상품들을 꾸미기 위한 것들이라고 말해 주어야 하나 하고 

      고민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으면 또다시 멍한 표정을 짓을것이 분명하기에 관두기로 했다. 

      노웬들에게 다른 나라에서 왔다곤 들었지만, 이렇게나 아는 것이 없으니 귀엽다 못

      해 어이가 없다. 

      뭐, 이쪽 계통에 있었던 자신이 더 잘 아는 것일수도 있지만. 

      ".........."

      다른 나라라.... 

      생김새나 행동을 보면 동쪽에서 온 것이 가장 유력하다. 

      그 쪽에 마력을 무효화 하는 종족이 있었던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던 오브는 

      앞에 나있는 문에게 작지만 분명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안색을 달리하며, 여

      기저기 구경을 하던 가흔에게 팔을 뻗었다.

      "왜요?"

      "쉿-"

      손가락으로 앞의 문을 가르키는 오브의 행동에 가흔은 안색을 굳었다. 

      무엇인가가 있다는 그 움직임에 가흔은 천천히 문에서 물러나 주위에 놓여져 있던 

      몽둥이 같은 것을 집어 들었다. 그런 가흔의 모습을 확인한 오브는 문에 달라붙어 

      안에 몇명이 있는 건가하고 살펴 보았지만, 기색은 단 한명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간간히 들려오는 신음소리나 바닥을 치는 소리도 들리는 것을 보니 상대는 움직임

      이 부자연 스러운 듯 했다. 

      몽둥이를 들고 서있는 가흔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손짓을 해보인 오브는 문을 들어 

      천천히 열어 보았다. 

      무겁기는 했지만, 이러면 문을 열때 소리가 나지 않는다.

      "............어라?"

      이곳에서 관리하는 동물이나 사람이 포박되어 있다고 생각하던 오브는 그러나 시야

      에 보이는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의 판단과 다르게 열려진 문은 가흔과 자신이 같혀있던 곳과 비슷한 구조로, 다

      른 점은 쇠창살 안마다 어린 소녀, 소년들이 멍하니 앉아 있다는 것이다. 

      아무 표정없이 숨소리를 죽이고 가만히 앉아있는 모습이 분명 약에 취해 정신이 없

      는 상태이다. 그 모습에 치밀어 오르는 것이 있어, 나지막히 욕설이 내뱉은 오브는 

      뒤에 서있는 가흔에게 들어 오라고 손짓을 했다. 

      오브의 부름에 열려진 밖으로 나온 가흔은 보이는 광경에 이마를 찌뿌렸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적어도 십여명이 넘을 것 같은 아이들이 조용히 감옥에 앉아있는 모습은 기괴스럽

      기까지 했다. 

      부스럭.

      " ? "

      정적속에 들리는 소리는 두사람을 경직스키기에 충분했다. 

      반사적으로 얼굴을 돌린 두 사람은 문옆에 있는 제일 작은 창살속에 들어가 있는 포

      대자루에 숨을 죽였다. 어린아이 만한 무언가가 안에 들어가 있는지, 빠져 나오기 

      위해 계속해서 꿈틀한다. 

      그 모습에 가흔은 들고 있는 몽둥이를 다 잡았다. 

      아이 일수도 있지만, 동물일수도 있다. 저 포대자루에 나와 자신들을 해아려 한다면 

      한방 먹이자고 결심한 가흔은 한참을 꾸물거리던 포자자루의 입이 열리고 연초록의 

      머리가 튀어 나오자 들고 있던 몽둥이에 힘을 뺐다. 

      왜 저게 여기는 있는 거야??

      "읍.. 으읍~!!"

      "뭐야? 꼬맹이잖아. 난 무슨 동물인줄 알았네. 안 그래? 가흔."

      ".............용."

      "저 꼬마랑 아는 사이?"

      묻는 오브의 말에 대꾸할 생각도 못하고, 입에 재갈이 물려있는 용의 눈물맺힌 눈동

      자와 마주친 가흔은 저도 모르게 지끈거리는 이마를 한손으로 잡고 눈을 감았다. 

      조용히 빠져 나가도 들킬판인데, 저런 애물단지가 나타나다니...

      물론 만나것은 기뻤지만, 장소가 문제다. 

      한심스럽다는 듯이 용을 내려다 보던 가흔은 몽둥이를 오브에게 넘기고 쇠창살에 

      손을 대었다.

      파직.

      어김없이 정전기를 일으키고 사라지는 푸른빛을 확인한 가흔은 감옥문을 열고 안으

      로 들어갔다.

      두고 갈수는 없는 노릇이나, 이 존재가 맘대로 활게치게 할수도 없는 노릇. 

      풀어 줄것이라고 기대의 눈빛을 보내는 용을 내려다 보던 가흔은 입술을 일자로 다

      물며 포대자루 채 들어 올렸다.

      "읍~~!!!"

      애써 빠져 나왔는데, 가흔 덕택에 다시 안으로 들어간 용은 안색을 바꾸며 몸부림을 

      쳤다. 등뒤에 맨 용이 몸부림을 칠때마다 매고 있는 가흔의 몸이 요동을 쳤지만, 이

      술을 악물뿐 내려 놓지는 않았다. 

      그 기묘한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오브에게 시선을 준 가흔으 단호하게 말했다.

      "당장에 빠져 나가죠."

      ".....그렇게 다니다간 한걸음 채 옮기기도 전에 발각 당할것 같은데?"

      가흔은 메고있는 푸대자루가 마구 꿈틀 거릴때마다 온몸이 진동을 일으켰으나 단

      호한 표정에 변화는 없었다. 

      이 폭탄을 가만히 들고 다닐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풀어둘수도 없다. 

      엄청난 상황에 직면한 가흔은 몸이 진동하는 채로 눈을 감았다. 도대체 어떻해야 하

      는 건가. 

      이대로 가다간 분명 도망가기도 전에 붙잡힐 텐데...! !

      "여기로 가면 돼요."

      " ? ! !"

      " ! ! ! ! "

      "...놀랐나요?"

      갑자기 등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돌아 본 가흔과 오브는 낮

      에 면식이 있었던 론이라는 소년의 얼굴에 안색을 달리했다. 

      설마하니 툴가 녀석이 자신들이 탈출한 것을 알고 이 녀석을 보낸 걸까? 아니면, 이

      미 요크발에게 넘겨서 자신들을 데리러 오라고 시킨건가??

      수만가지의 생각들이 머리 속을 떠다니는 가운데 론은 금색으로도 보이는 갈색의 

      눈동자를 감았다 떴다. 

      "저 나가는 길 알고있는데..."

      " ? "

      "음~~뭐라고 해야하나."

      갑자기 나타나 한손으로 턱을 댄채 고민에 빠진 론의 모습에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

      을 바라 보았다. 그 순간에도 가흔의 등뒤의 유크렌은 빠져 나오기 위해 허부적 댔

      으나 거기에 신경쓰는 이는 없었다. 

      한참을 끙끙대던 론은 손뼉을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 

      론의 박수소리가 유난히 커서 밖의 병사들을 불르는 것은 아닌가 하고 안색을 굳혔

      던 두 사람은 눈앞의 미소년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입을 벌렸다.

      "전 두분을 구출하러 왔어요."

      양손을 가슴에 댄채 두눈을 반짝이는 론의 얼굴을 보니 할말이 없는 둘이었다.

      "꽤나 거대한 저택인데요?"

      ".........."

      밖을 쳐다보고 있던 에스의 말에 칸은 소파에 엎드려 있던 몸을 일으키고 커튼을 들

      어 올렸다. 자세를 잘 잡지 않아 흔들리는 마차 덕분에 앞으로 굴러 떨어질뻔 했지

      만, 가까스로 중심을 잡아 그런 불상사를 격지 않았다. 

      혹여나 누가 봤을까봐 식은땀을 흘리던 칸은 막 지나는 저택의 정문을 보고 눈을 크

      게 떴다. 왠만한 귀족들도 사용하지 않은 순수 철재로 된 화려한 문에 저 비센이라

      는 자의 자위가 생각보다 더 높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설마하니, 놈 왕족인게 아냐? 

      그렇다면 자신과 에스는 왕족 능멸죄로 끌려가는 건가. 

      실없는 생각이라며 웃어보인 칸은 마차가 멈추자 제지하는 에스의 손길을 마다하

      고 바로 밖으로 뛰쳐 내려갔다. 

      계속 마차만 타고 여행을 계속했더니 온몸의 뼈가 따로 노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둑우둑.

      "생각보다 심하네. 이거. 검이나 제대로 휘두를수 있을지..."

      저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악기들과 함께 묶어 마차 위에 올려둔 자신의 검에 시선을 

      두고 칸은 양팔을 마구 휘둘렀다. 

      그에 따라 우두둑 거리는 소리가 나 주위에 있던 사내들에게 묘한 시선을 받았지만, 

      그런 것에 아랑곳 할 칸이 아니였다. 

      "야만 스럽기는..."

      칸의 행동을 바라보던 노집사는 미간을 접으며 혀를 찼다. 

      비센 도련님의  말이 있기도 해서 잘 봐줄려고 해도 한번 밉게 보인 이상 평가가 단

      번에 나아질리가 없다. 고개를 저은 그는 마차를 멈추고 자신의 지시를 기다리는 자

      들에게 마차의 짐을 풀어 안으로 옮기라고 했다. 

      성내의 생활에 너무나 지겨워하는 도련님을 위해 마님께서 특별히 장기간의 휴가

      를 내려 주신거다. 기회는 이때다 하고 비센은 꽤나 많은 것을 챙겨왔기 때문에 집

      안으로 들어가는 짐들의 행진은 끝이 없었다. 

      짐을 옮기는 사내들의 모습을 나무위에 앞아 바라보던 칸은 자신의 옆으로 걸어오

      는 에스에게 시선을 주었다. 

      "역시나 지위가 높은 사람이군요, 옮기는 물건마다 고급스럽기 짝이 없네요."

      "그래, 거진 다 눈에 익는 모델들이군."

      "네?"

      칸의 말에 에스는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들었다.

      옮겨지는 짐들 사이로 보이는 익히 알고있는 문장에 칸은 눈살을 찌뿌렸다. 

      저 모양 틀림없는....

      "동쪽에 위치한 왕가중 하나의 표식이다."

      과거 생일때마다 저 문양이 찍힌 물건들을 꽤나 많이 받았었다. 

      원하든 원하지 않던 기억에 남아있는 문장과 그에 따라 수면위로 떠오르는 과거의 향수

      에 칸은 미간을 접으며 눈두덩이를 문질렀다. 

      그런 칸의 모습을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던 에스는 한숨을 쉬었다.

      ".............."

      어떻게든 일단 발챠에 왔다. 

      문제는 가흔이 어디에 있는가와 어떻게 빼돌리는 가 인데..... 

      가장 유력한 장소는 발챠 최대 노예상인인 툴가 바로챙이라는 사내이지만, 그가 아닐경

      우 괜히 시비를 일으켜 사이를 틀어지게 하면 여러모로 귀찮은 일이 생길것이고, 맞다 

      하여도 지금의 칸이 가흔을 납치해 상품으로 팔려던 그의 행동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

      다. 

      어느 쪽이든 부딫히기 마련인데. 그가 아니라는 쪽으로 생각을 해보려 해도 가흔이 이

      쪽 시장으로 넘겨진 이상 어떤 때, 어느 방법이든지 한번쯤은 부딫힐 거다. 

      되도록이면 이쪽 편으로 끌어들이곤 싶지만.....

      "계속 얻혀 살수도 없지만, 지금으로썬 저 남자의 힘이 좀 필요하지."

      "일단 두 사람으론 정보나 인력을 끌어들이기에 좀 벅찬 감이 있으니 말입니다."

      "이쪽엔 우리들의 세력이 없는 거야?"

      "있기는 하지만 별 소용은 없을 겁니다."

      이유를 묻는 듯한 칸의 눈빛에 에스는 입술을 열었다.

      "온갖 불법이 자행되고도 아직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든든한 뒷배가 있

      다는 거죠. 이른바..."

      "중앙국인가."

      씁쓸한 듯한 그의 웃음에 에스는 고개를 숙였다. 

      지금의 상황 모든 것이 그의 안좋은 기억들을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가흔을 납치한 뒤로 또 다른 음모가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괜

      한 느낌 뿐이길 기대하며 고개를 젖던 에스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고 얼굴을 

      들어 저택을 둘러 보았다. 

      전부터 자신들을 탐탁치 않게 생각해서 매사에 시선을 주던 저 노집사는 패스. 

      칸을 흩어보는 남자들의 시선도 패스. 

      아까 자신이 느낀 시선은 좀더 끈적하고 소름이 돋는. 마치 카일과도 같은 시선이었다. 

      저도 모르게 돋은 닭살을 문지르는 그의 모습에 칸은 이상하다는 시선을 주다 자신에게

      로 걸어오는 비센을 확인하고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런 빌어먹을 여장도 정말 싫고, 가흔이 있는 곳에 와서도 가만히 있을수 밖에 없는 자

      신의 처지도 맘에 들진 않지만 지금으로썬 수가 없다. 

      주어진 패는 확실히 이용해야 하는 법.

      "바닥까지 이용해 먹어 주마."

      이 칸님을 그런 끈적거리는 시선을 본 댓가는 꽤나 크다고.

      정작 그것을 즐기던 것을 기억해 내지 못하고 애꿋은 비센의 탓만을 하는 칸이었다. 

      "....저건?"

      창가에 서서 아래의 모습을 바라보던 카일이 가르키는 방향을 확인한 사내를 허리를 깊

      숙히 숙이며 대답했다.

      "비센님이 챙우디 산맥을 지나던 때에 합류한 무희단이라 합니다."

      "훗. 무희단?"

      무척이나 어이없다는 주인의 반응에 사내는 식은땀을 흘렸다. 

      뭔가 마음에 들지않은 점이 있으면 가차없이 질책을 하는 사람이다. 

      이번엔 자신의 잘못이 아니나 그 근처에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처벌을 당할 이유는 충분

      하기에 사내는 시선을 들어 카일의 안색을 살폈다. 기분이 완전히 틀어졌으면 죽을 것

      이 자명하나, 약간이라도 틈이있다면 필사의 아부로 상황을 모면하려 하는 것이다.

      "후후후. 무희단이라?"

      나무 위에 앉아 대화를 하고 있는, 여장한 모습의 칸크빌레와 그 아래에 웃는 얼굴인 에

      스를 핣듯이 바라보던 카일은 몸을 감싸고 있던 망토를 끌어 입가를 가렸다. 

      자칫 하다간 이 자리에서 넘치는 유쾌함을 참지 못하고 커다란 웃음을 터트릴것 같았기 

      때문이다. 

      역시나 비센은 자신이 귀여워 하던 조카답게 훌륭한 선물을 데리고 나타났다.

      생각치도 않은 호박이 덩어리채 굴러 들어온 격이 아닌가? 

      "성대한 환영을 해주어야 하는게 도리겠지."

      짹짹.

      투명한 반구의 모양으로 만들어진 화원의 안에는 기묘한 꽃들과 나무들이 아름다

      운 모양으로 자라 있었다. 

      간간히 날아다니는 화려한 새들과 작은 동물들의 모습이 마치 다른 세계인듯한 분

      위기를 연출하고 있어, 처음 이 곳에 오는 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으며 경

      치를 구경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번 사람들도 다름이 없어서 황제에게 

      용무가 있어 화원에 들어온 재상은 잠시동안 넋을 놓고 있다 자신의 할일을 깨닭고 

      나선 정신을 다잡았다. 

      주인을 닮은 정원이라더니, 사람을 홀리는 것도 어쩜 이렇게 같은가. 

      "용건이 뭔가."

      짹.

      커다란 나무 사이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의자에 걸터 앉아 자신의 팔등에 내려온 

      하얀새의 부리를 손가락으로 쓰다듬던 황제는 나른한 목소리로 엎드린 재상에게 

      물었다. 

      언제나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은 말투에 헛기침을 한 그는 재반에 있었던 정무내용

      에 대해 나열하기 시작했다. 

      황제가 참석하지 않은 회의는 점점 비리가 싹트기 마련이나, 지금까지 그들끼리 진

      행을 해왔어도 그런일은 한번도 없었다. 

      황제의 두려움을 주위에서 보필하는 그 자신들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빼고 넣는것 없이 사실대로 말하는 재상의 보고를 듣던 황제는 새의 부리에 붉은 

      입술을 대며 눈을 가늘게 접었다. 

      이렇게 손위에 올려진 새를 감상하는 기분은 참으로 좋은 것이다. 

      칸크빌레. 그도 이처럼 얌전히 자신의 손에 들어오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요새 발챠는 어떤가?"

      "예? 아, 전보다 흑자가 늘어나 경기가 무척이나 좋다고 알고 있습니다. 오전중에 

      자료를 올려 드릴까요?"

      "아니. 됐어."

      느닺없이 발챠에 대해 묻는 황제에 재상은 당황했다. 

      황제는 됐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사람을 시켜 발챠의 근황을 살펴봐야 겠다. 

      아무 의미없이 말을 입에 담는 황제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있기에 문제가 없어도 

      두번이고 세번이고 확인을 해봐야, 비로소 두발뻗고 잘수 있을 거다. 

      무능한 자에게 가차없는 그이니 말이다. 

      삐리릭.

      높은 고음을 울리고 하늘위로 날아가는 새의 모습에 황제는 고개를 들어 튀어나온 

      나무위에 기댔다. 눈을 반쯤 뜨고 정지한 푸른 나뭇잎과 투명한 막에 가려진 하늘

      위를 날아가는 새의 잔상을 감상하던 황제는 입술을 오무렸다 폈다. 

      그리곤 보기좋게 도톰한 입술을 가늘게 늘어뜨리며 미소를 지었다. 

      재미있는 놀이가 떠올랐다. 

      "휴가를 다녀와야 겠어."

      ".....네?"

      "서쪽으로. 준비해 두거라."   

      알수없는 말을 던지고 지체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거대한 나무 뒤로 사라지는 황제

      의 모습을 얼빠진듯 바라보던 재상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일

      어났다. 

      황제와 반대 방향으로 급히 뛰어간 재상은 서쪽에서 가장 유명한 휴양지에 대해 머

      리속에서 쉼없이 떠올려 보았다. 

      작년에 아내와 갔던 해안가는 어떤가? 거기는 너무 추웠지. 그렇다면 딸이 시집한 

      프로방스는? 그곳의 유채꽃은 참으로 아름다웠지만, 그런 수수한 미에 관심을 돌

      리는 황제가 아니다. 아들이 가있는 곳은 너무 적막하지. 

      그렇다면 어디가 좋을까? 

      황제의 맘에 들만큼 화려하고 조용한 곳..! !

      "...........신전인가?"

      급하게 뛰어서 가슴까지 찬 숨을 고르며 재상은 벽에 한손을 집고 허리를 숙였다. 

      불혹에 다다른 살찐 몸에 급한 움직임은 역시나 좋지 않다. 하지만 황제의 눈밖에 

      나는 것보단 이쪽이 훨씬 낫다. 

      서쪽에 수많은 신전과 여왕의 안식터가 있는 그곳이라면 황제의 맘에 들지도 모른

      다. 초행길은 아니나 가장 무난한 곳이기도 한 그곳을 떠올려 보며 재상은 황제의 

      안위를 위해 기사들을 먼져 파견해 두자고 생각했다. 

      "전에 여기서 일하면서 여기저기 잘 돌아 다녔거든요. 이상한데서 길치여서 엉뚱한 

      곳에 잘 가기도 하고 말이죠."

      "......부탁인데 조금만 조용히 말하면 안될까?"

      "괜찮아요. 여기는 사람들이 잘 안오는 곳이거든요."

      천진한 론의 태도에 거의 자포자기한 표정을 지은 오브는 왜 사람들이 잘 오지 않

      느냐고 물었다. 

      오브의 물음에 론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대답했다.

      "포악한 맹수들은 이쪽 길목으로 풀어 두거든요. 야생의 감을 잊지 말라고요."

      "..........;;;;;;"

      자신들이 걸어갔던 길다란 길 양쪽에 시선을 준 오브는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

      며 되물었다. 

      "야수..라고?"

      "네, 야수요. 케로스. 베렘, 함프스. 종류는 이 3가진데 숫자가 많아서."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말하는 모습에 오브는 아주 기절 직전의 표정을 지었다. 

      케로스, 베렘, 함프스가 무엇이던가? 

      한마리를 잡으려면 적어도 장정 5명이 매달려야 한다는 최악의 괴수들이다. 

      그런 맹수들이 있는 곳으로 자신들이 지금까지 걸어왔던 것인가? 

      포악하고 힘이 쎈것도 부족해 감과 냄새도 잘 맡는 그들이 자신들이 있다는 것을 

      모를리도 없는데 지금까지 모습을 들어내지 않았다 하면 어둠속에서 숨어있다 한

      번에 공격할 심산이란 말인가?? 

      맹수라고는 하나 그것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가흔의 표정에 변화가 없는 것에 반해 

      오브의 안색은 점점 창백하게 질려갔다. 

      도대체 왜 하필이면 이런 위험한 곳으로 자신들이 데리고 온거냐고 막 소리 지르려

      던 찰나 그런 오브를 향해 론이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약을 써서 특별히 잠을 재우는 시간이거든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지만, 그 포악한 맹수들이 잠들었다 해도 이렇게 태연하게 왔

      다갔다하는 론의 모습에 오브는 그가 보이는 것처럼 어벙한 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는 생각을 했다. 

      오브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생글거리며 론은 셋을 데리고 나가는 길을 향

      해 망설임 없이 걸어 나갔다. 

      자신의 주인인 요크발님에게서 이 두사람이 귀족이 아닌데다 자신을 속였다는 말

      을 들었지만, 그것에 대해 화가 나기는 커녕 위기에 처한 두사람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아무 생각이 없기는 하지만, 이곳에 있는 자들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

      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일하고 있던 당시에 청소를 하고 있으면 탈출하는 자들도 그러다 걸려서 죽을 정도

      로 맞는 사람들도 봐왔던 것이다. 

      어떤 경유로든 일단 노예로 팔려야 할 두사람의 운명이 가엾기만 한 론은 결국 둘

      을 도망가게 도와주자고 결심했다. 좋아하는 주인님이 두사람을 사실 것 도 같았지

      만, 이 사람들이 자신처럼 하인으로 일하는 모습은 별로 보고 싶지 않다. 

      멍청해서 혼자의 힘으로 살수없는 자신과는 달리 이 사람들은 해야 할일이 잔뜩 있

      는 것 같았다.

      "우리를 도와줬다는게 들키면 분명 화를 입을 거야."

      "괜찮아요. 어릴 적부터 맞는건 익숙하니깐. 하지만 근 5년동안 맞지 않아서 버틸

      수 있을진 잘 모르겠네요."

      자신들을 속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오브에게서 들었지만 가흔은 눈앞의 소

      년이 자신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곤 생각할수 없었다. 

      한없이 순해 보이는 눈동자에 그를 믿어보자는 결심을 한 가흔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려 했지만, 느닥없이 등에 가해지는 충격에 몸을 앞으로 숙였다.

      "괘...괜찮나요?;;"

      ".......괜찮으니.. 안내 부탁드립니다."

      얌전히 있던 유크렌이 다시 부활해 마구 꿈틀거리자 온몸의 진동을 느끼며 가흔은 

      애써 웃어 보였다. 

      아무리 용이 뭐라 한대도 안전한 곳으로 가기전엔 절대로 내려둘수 없다. 

      어깨에 느껴지는 무게에 끙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가흔은 길은 모르지만, 일단 앞으

      로 쭉나있는 길로 씩씩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런 가흔의 뒤를 종종 따르며 론은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 보았다. 

      가흔과 오브가 붙잡히고 자신은 요크발과. 과거 저택에 있었을때 무척이나 잘해 주

      었던 남자와 함게 있게 되었다. 

      가흔과 오브를 요구하는 주인님과 상품이기에 내놓을수 없다는 오브의 실랑이를 

      구경하던 론은 모처럼 좋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중앙탑으로 가자해서 결국 붙잡혀

      버린 두 사람과, 툴가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자신과 달리 론이라는 존재 자체를 모

      르는 사람인 것 처럼 행새하는 그의 모습에 무척이나 맘이 상해버렸다. 

      나중에 큰일을 당할것이라는 것을 알고도 이렇게 두사람의 탈출을 도와주는 이유

      는 물론 마음에 드는 사람들이라는 이유가 크지만, 그 속내는 요크발과 툴가에 대

      한 작은 심술일지도 모른다. 

      "저기쯤 가면 중간에 한사람이 지나갈만한 비밀문이 있어요."

      "그리고 가면 어디로 나오는 거야?"

      "저택을 나가기 전에 지나치는 경비처소 바로 옆이예요."

      "뭐야?! ! 역시나 네녀석 우리들을 놈들에게 넘기려는..! !"

      "경비들은 대부분 저택을 지키는 데다, 지금은 교대시간이라 비어있을 거예요."

      믿어 달라는 듯 단호하게 말하는 론의 모습에 오브는 들고있던 손을 슬그머니 내려 

      놓았다. 뒤에 있던 가흔이 옆구리를 팔꿈치로 찍은 것도 팔을 내려놓은 이유중 하

      나 였지만, 론의 기세에 눌리기도 했던 것이다. 

      머쓱한 표정을 짓는 오브에게 웃어보인 론은 몸을 돌려 중간에 나있는 통로로 기어 

      들어갔다. 

      "형님."

      "비센. 오랜만 이구나."

      가볍게 포옹을 나눈 두사람은 서로의 어깨를 두들이며 차가 준비되어 있는 테이블

      로 다가가 소파위에 앉았다. 

      1년 전에 봤을때보다 확연히 차이가 나는 성인남자의 분위기에 카일은 입술을 오

      무려 휫파람을 불었다.

      "꽤나 근사하게 자랐구나."

      "형님께 그런 말을 들으니 부끄럽습니다."

      "아냐. 이제는 왠만한 여성들의 마음쯤은 간단히 빼앗을 수 있겠는 걸?"

      능청스런 카일의 대꾸에 비센은 머리속을 지나가는 칸의 얼굴을 떠올리며 뒷목을 

      누르며 고개를 숙였다. 확연히 티가 날만큼 붉어진 비센의 얼굴에 카일은 대단히 

      흥미롭다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어릴적엔 자신과 막상막하일 정도로 냉정하고 여성에게 시선하나 돌리지 않는 감

      정 표현을 지극히 절제하던 녀석이 이렇게나 자신의 마음을 들어내다니. 

      비센의 늙은이에게서 칸에게 관심을 주고 있다는 그의 마음을 미리 들은 카일은 입

      가를 누그려 뜨렸다. 

      저 중앙국의 대단하신 황제폐하가 앞으로 자신이 할 일을 알게 된다면 자신은 물론

      이거니와 눈앞에 앉아 부끄러워 하는 조카의 목을 단순에 베어 버릴 것이다. 

      잠시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즐겁기만 하다면 무엇이든 좋다라는 생각에 결국 일을 

      벌이기로 한다. 

      "네가 데리고 온 무희는 무척이나 매력적이더군. 

      좀만 자라면 대단한 미인이 되겠어."

      "..형님!"

      설마하니 자신이 그 무희에게 맘에 있는건가해서 단번에 굳어지는 비센의 얼굴에 

      카일은 진정하라는 듯이 양손을 들었다. 

      첫사랑에 빠진 어린아이는 흥분시켜봤자 얻는 득보다 잃는 실이 많으니 그 섬세한 

      감정을 잘 조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너와 무척이나 잘 어울리더구나. 그녀에 대한 마음을 잘 알고있으니 추후 도움이 

      필요하다면 주저말고 말해라."

      "형님.....   .............감사합니다."

      "그래. 이 저택이 머물면서 그녀와 즐거운 시간을 지내는 것도 좋겠지."

      그리고 난 사랑스런 에스라한과 즐거운 시간을 지내는 것이지. 

      생각치 않은 카일의 원조에 얼굴을 붉히면서도 입가에 미소를 지은 비센은 자신이 

      정해준 방에 있을 칸의 모습을 떠올리며 무척이나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말인데..."

      빛나는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비센에게 눈웃음을 지으며 카일은 본론으로 들

      어가는 대화를 시작했다. 

      이번일로 네가 약간 상처를 입을수도 있겟지만, 지금의 난 에스를 손안에 넣는 것

      밖에 생각할수 없으니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아라. 비센.

      "파티....인가요?"

      "형님께서 저희들을 환영하기 위해 연다는 군요. 

      거기에 당신이 자리를 빛내 주셨으면 합니다." 

      빛내 달라고 해도 말이지... 무리잖아 그건.  

      표정을 묘하게 이그러 뜨린 칸은 방안으로 착착 들어오는 옷과 장신구 그리고, 악

      기들에 시선을 주었다. 

      저것들을 다 팔면 일반 평민들 1년이 넘을 정도의 식비가 나올거라는 생각을 하며 

      방긋 웃고있는 비센의 얼굴을 삐딱하게 바라보던 칸은 입술을 깨물었다. 

      성대에 이상이 생기거나, 다리가 부러지지 않은한 의뢰받은 일을 거절한 무희단의 

      선례를 들은 적이없다. 어쩔수없이 한번쯤은 지나쳐야 할 관문이지만, 거부감이 드

      는 것은 어쩔수 없는 거다. 

      미간을 찌뿌리고 옆에 멀찍히 떨어져 있던 에스에게 시선을 주자 어서 대답하라는 

      듯이 볼을 실룩 거리는 모습에 시야에 들어온다. 

      "그대의 춤이 무척이나 기대되는 군요. 무척이나 아름다울거라 생각합니다."

      "하..하하하. 뭐 그렇지. 내가 또 한춤하니깐."

      "그렇습니다. 하-아, 좀더 있고싶지만, 이만 실례하도록 할께요. 필요한게 있으면 

      주저말고 밖에 대기하고 있는 시녀들에게 시키면 됩니다. 물론 저에게 할말이 있다

      면 언제든지 불러 주셔도 무관하고요."

      가슴에 손을 올리고 정중하게 말하는 비센의 향해 웃어 보이는 칸이지만, 설령 일

      이 있다 하더라도 네놈을 부르는 일은 절대 없을거라 생각하는 그였다. 

      가흔을 찾는데 이용해 먹을때를 제외하곤 말이지. 

      어색한 웃음을 주고받던 둘은 비센의 노집사가 그를 부르는 것으로 종결 되었다. 

      도련님을 데리고 가는 노집사가 노려보는 것을 콧웃음으로 넘겨버런 칸은 자신의 

      행동에 볼을 씰룩거리며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하게 변한 노인에게 혀를 내밀어 버

      리며 문을 닫았다. 

      한바탕 일을 치루고 난것도 아닌데 괜히 피곤해진 칸이 자리에 앉기위해 뒤를 돌아

      본 순간 보이는 상자더미에 입술을 씰룩 거렸다. 

      여장했다지만 이렇게나 선물을 보내는 녀석들의 마음을 모르겠다. 

      한번도 여자에게 무언가를 줘 본적이 없었던 칸이기에 더더욱 그 심리를 이해할수 

      없는 것이리라. 

      "춤이군요. 칸님."

      "........."

      "기대하겠습니다."

      슬그머니 옆으로 다가와 옆구리를 찌르며 말하는 에스의 얼굴을 노려보며 상자속

      에서 하늘하늘한 연한 천을 들어올린 칸의 얼굴은 딱 사약 받기 전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비센 도령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질 않아 일단 큰소리를 치긴 했지만, 근 10여

      년 동안 춤은 커녕 음악도 제대로 감상하지 않았던 그다. 도대체 무슨 수로 춤을 추

      고 노래를 부를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조금씩이나마 떠오르는 멜로디를 사람들 앞에서 표현할수도 없는 노릇

      이고... 그것들은 대게가 이제는 사용하지 않은 언어와 맬로디로 되어 있으니, 수가 

      없다 해서 그런 것을 사람들앞에 보였다간 저 지식의 탑의 마도사들에게 끌려 갈지

      도 모르는 일이다. 

      놈들은 과거의 유산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보기 위해 혈안이 된 놈들이니.... 

      "근래에 유행하는 노래나 춤... 알고있어?"

      "알리가 없습니다. 전 칸님을 만나고 부턴 사교쪽 과는 담을 쌓았다고요."

      "..........어쩌지?"

      ".....글쎄요?"

      오늘 저녁 당장 사람들 앞에서 재롱을 떨어야 하는데 하는 방법을 모르겠다. 

      난감한 표저을 짓던 두사람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시녀의 모습에 예리한 눈빛을 교

      환했다. 예로부터 민간에 퍼지는 노래나 이야기들은 저택의 시녀들에게 우선적으

      로 들어온다. 

      그녀들에게 감옥같은 저택에서 일만하는 중에 그런 이야기나 노래들은 유일한 취

      미이자, 놀이였으니.. 미소를 교환하던 둘은 방안의 낌새가 이상하게 돌아간다 판

      단하고 다시 나가려는 시녀의 어깨를 잡았다. 

      .........일단 위기는 모면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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