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화 (17/55)

      딱.

      딱.

      "...제길..."

      따-악!!

      손목에 걸린 구속구는 손목의 충격을 인내하고 아무리 바닥에 찍어도 풀어질 생각

      을 안한다. 

      이런 단단한 재질의 금속이 겨우 이따위 충격에 벗겨지지 않는 다는 것은 그 누구

      보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세상엔 알고 있는 것을 굳이 거부하고픈 마음이란

      게 있는 법이니깐. 

      시중을 드는 시녀들이나 가끔가다 자신을 노려보는 기분나쁜 마도사가 곁에 있을

      때는 얌전히 침대위에서 뒹굴거리는 에스이지만, 이렇게 주변에 사람이 없을 때에

      는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에 자리를 잡은 후 묶인 구속구를 풀기위해 열심이었다. 

      그렇게 해서 쉽게 풀어지는 거라면 악취미의 귀족들에게 그처럼의 인기가 있을리

      가 없는데 말이다. 

      "설마하니 이런것에 묶이는 경험을 하게 될줄은..."

      일반적으로 성노예들이 도망가는 것을 막기위해 주로 쓰이지만 경도가 강한 것은 

      맹수나 전사들을 포박하기 위해 쓰이기도 한다. 

      아무래도 자신이 차고 있는 것은 후자의 것같다. 

      카일이라는 놈은 도대체 자신을 뭘로 취급하는 것인지... 

      이를 간 에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침대위로 올라갔다. 

      어차피 풀어지지 않을 장비 부수는데 힘을 쏫을 필요엔 차라리 얌전히 체력을 비축

      해 두는 편이 좋았다. 

      노웬등이 누구든 사람을 보내 자신을 구하러 올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니깐.

      "...꽤나 얌전히 있는 군."

      여전히 기분나쁜 녀석이다. 

      에스는 방안으로 들어온 마도사의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자신이 그쪽을 맘에 들지 않아 하는 것처럼 상대방도 자신을 상당히 싫어하는 눈치

      지만, 자신관 다르게 노골적으로 싫은 감정을 들어낸다. 

      일반적으로 표정이 없는 마도사답지 않게 꽤나 감정의 표현이 풍부한 자다.  

      무표정하게 자신을 올려다 보는 에스의 얼굴에 기분나쁘다는 듯이 눈썹을 오려보

      인 마도사지만, 그것에 대해 직접적으로 맘에 안드다는 표현을 하진 않았다. 

      이미 저 에스라는 자에게 마력탄을 날려서 카일에 대한 자신의 평가가 안 좋은데 

      또다시 그 비슷한 일을 하면 완전히 버려질지도 모른다. 

      고작 저런 볼품없는 녀석때문에 자신이 눈치를 보며 행동하게 된 것에 대해 상당히 

      불만족스러웠지만 어쩔수가 없다.

      자신은 다른 자들처럼 비참하게 카일에게 버려지고 싶지는 않다.

      "할말이 없으면 그만 나가주시는게 어떨까요? 아무리 저라지만 노골적으로 싫은 

      기색을 내뿜는 사람하고 함께 있는 것은 상당히 껄끄러운 일이니 말입니다."

      ".....몸조리나 잘 하시지. 조만간 카일님께서 밤에 찾아 오신다니깐." 

      마도사의 말에 울컥하고 치미는 것이 있었지만 간신히 억눌렀다. 

      마도사로써 가장 기본적인,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도 못하는 저런 애송이 녀석에

      게 표정을 들어내는 것이 상당히 수치스러운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상대하기 싫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는 에스의 모습에 팔장을 끼고있던 팔을 풀고 주

      먹을 쥐던 마도사지만, 애써 화를 참으며 거친 발걸음으로 방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푸른눈의 단정한 사내를 발견한 마도사는 표정을 이

      그러 뜨렸다. 

      어느새 돌아와 있었던 것인가. 

      "상당히 무례한 짓을 하는구나."

      "......카일님."

      무척이나 놀란듯이 눈을 치켜뜨고 자신을 올려다 보는 마도사에게 시선을 준 카일

      은 그의 뒤로 보이는 에스의 모습에 눈가에 준 힘을 풀었다. 

      걸치고 있는 것은 하얀가운이 전부인 그가 한쪽 다리를 올린채로 불량스럽게 팔을 

      올리고 있는 모습에 상당히 이채로웠던 것이다. 

      흔들리는 눈동자로 자신을 올려다 보는 마도사를 밀치고 안으로 들어선 카일은 등

      뒤의 문을 닫았다. 저 마도사에겐 전에 꽤나 신세를 졌지만 에스가 있는 이상, 더이

      상 필요가 없다. 

      마도사로써의 능력은 필요한 것이지만. 

      "..........."

      생선을 바라보는 고양이와 같은 카일의 눈초리에 굉장히 싫다는 표정을 지은 에스

      는 카일을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창가에 눈길을 주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보이지 않아 상당히 좋아했었는데, 이제서 나타나는 이유는 뭐란 

      말인가. 구속구를 푸는 것도 포기하고 다른 이들의 도움을 기다리는 와중에 나타난 

      모습이 자신을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할만큼 해도 넌 도망갈수 없다는 것같은... 

      끼익

      "뭘 그렇게 뾰로퉁해 있는 거지?"

      표정을 굳힌 자신이 귀엽다는 듯에 곁에 다가와 앉아 은근히 말하는 투에 화가 난

      다. 

      '이런 녀석하곤 말하고 싶지않아'라는 표정이 여과없이 드러나는 에스의 얼굴을 내

      려다 보던 카일은 눈을 가늘게 접으며 풀어져 가슴까지 닿는 에스의 금발을 매만져 

      보았다. 

      평상시엔 함부로 다뤄서 결이 약간 상하긴 했지만 모친을 닮은 황금빛 머리카락은 

      조금만 다듬으면 무척이나 아름다워 진다. 

      "만지지마."

      "조금 만진다는데 때가 타는것도 아니고 무슨 상관이야?"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감으며 입술에 대고 웅얼거리는 모습에 에스는 표정을 기

      괴하게 이그러 뜨렸다. 

      손목은 하나로 구속되어 있어 이 녀석을 뿌리칠려면 몸을 움직여야 하는데, 자신이 

      입고있는 것은 가운 하나뿐으로 누구의 변태적인 취향 덕분에 조금만 움직이면 사

      이가 벌어지는 재질이다. 

      덕분에 몸을 움직이는데 있어 얼마나 조심을 기해야 했던가. 

      "훗."

      차마 뿌리치진 못하고 눈을 부릎뜨고 자신을 노려보는 에스의 눈빛을 마주하자니 

      가슴 근처가 근질근질해진다. 

      입가를 올려보인 카일은 손을 뻗어 에스의 어깨를 잡아 보았다. 

      원체 뼈대가 작은 집안답게 손안에 잡히는 어깨는 상당히 가느다랗고 촉감이 좋다. 

      만족의 웃음을 지으며 점점 자신에게로 얼굴을 들이대는 카일의 행동에 에스는 안

      색을 달리했다. 

      이 변태가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건가. 

      "미친거 아냐? ! 당장에 이손 못치워! !" 

      "상관없잖아. 우리 둘뿐인 이곳에서..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어."

      "눈이 삔거냐?? 내가 부끄러워 하는 걸로 보이는 건가?! !"

      오히려 너무 싫어서 닭살이 돋은 자신의 팔을 보여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 동

      안 어느새 에스의 몸을 침대위로 넘어가 있었다. 

      그동안 모습을 안보인다 해서 안심을 하고 있었더니 갑자기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건

      가. 위에서 음흉스런 미소를 짓는 카일을 올려다보는 에스의 얼굴은 그야말로 우거

      지상. 

      앞으로 예견되는 일을 애써 거부하며 그는 떠듬거리는 입을 열었다.

      "모..모처럼 만난거니깐. 차나 마시는게 어때?"

      "목이 마른건가?"

      자신의 말에 한쪽 눈썹을 치켜 세우며 뒤로 물러나는 카일의 모습에 모습에 에스는 

      쾌재를 불렀다. 이번에 녀석이 일어나면 잽싸게 자세를 바로잡고 절대로 놈의 흉계

      대로 끌려가지 않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회심을 미소를 짓고 있던 에스는 그러나 자신의 허리 위에 올라탄 채 손을 뻗어 테

      이블 위에 물병을 집는 카일의 행동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팔 한번 길다는 생각을 

      하던 에스는 물병속의 물을 마셔버리는 카일의 행동에 눈을 부릎 떴다. 

      아주 어렸을 적에 묘한 책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왠지 모르지만 눈앞의 사내의 다

      음 행동이 책에 나온 그것을 할것 같기도 하다. 

      저도 모르게 몸을 반쯤 일으켜 뒤로 물러 나려던 에스지만, 카일에게 까린 몸은 쉬

      이 움직여 지지 않는다. 

      밑에서 꿈틀 거리는 에스의 모습을 바라보며 물병을 입에서 땐 카일은 망설이지 않

      고 에스의 머리로 손을 뻗어 자신쪽으로 끌어 당겼다.

      "으-악! ! 변태 뭐하.........읍! !;;;"

      꿀꺽.

      손으로 턱을 억지로 벌리고 혀와 함께 들어오는 액체에 에스는 눈을 질끈 감았다. 

      사래걸려 콜록대는 와중에 당한 경험이 있기에 그대로 넘어오는 물을 열심히 마시

      는 에스의 모습에 눈을 가늘게 뜬 카일은 다른 손으로 누워있는 자의 허벅지를 쓰

      다듬었다.

      " ! ! "

      엄청난 소름에 감았던 눈을 뜬 에스는 카일과 자신의 몸 사이에 낀 손으로 위에 녀

      석의 몸을 마구 두들여 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이가 투정을 부리는 것 같다며 에스의 필사의 저항을 순순이 맞아들이는 

      카일의 움직임은 망설임이 없었다. 

      누워있는 에스의 얼굴을 보며 초조해 하기가 몇일인가. 

      슬슬 자신의 욕망을 풀어주어도 무관하지 않을까 한다. 

      꽤나 이름있는 의사 녀석이 에스의 몸상태가 지극히 건강한 상태라고 했으니깐. 

      꿈틀대는 움직임을 즐기며 에스의 입안 구석구석 핣아 대던 카일은 일부러 소리를 

      내며 입술을 떼내었다. 

      입술과 입술사이로 이어지는 투명한 타액에 에스의 얼굴에 눈에 띄게 붉어진다. 

      지금껏 안아왔던 그 누구와도 다른 순진한 모습에 카일은 심장 한 구석이 뻐근해지

      는 것을 느꼈다. 

      에스를 닮은 녀석들이 아닌 진짜 그를 안고 있다는 것이 실감되었던 것이다.

      "전처럼 어리지 않은 두사람이니.. 즐기자고."

      "이.. 미친 변태가...! !"

      진정하려고 하지만 놀란 마음에 울먹임이 멈추지 않는다. 

      한손으론 여전히 다리 이곳저곳을 건드리는 카일의 손길을 느끼며 그를 죽일듯이 

      노려보던 에스는 이를 갈았다. 

      이런 곳에서 또다시 놈에게 당할줄 알았으면 위험해도 칸님과 함께 탈출하는 길을 

      택하는 건데..! ! 

      죽어도 칸을 두고 도망가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에스 그 다웠다. 

      반쯤 풀어 해쳐진 가운 사이로 들어나는 피부와 묶인 두손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자신을 노려보는 에스의 모습에 하체가 뻐근해짐을 느낀 카일은 자신의 입술을 혀

      로 축이며 상의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털썩.

      속에 받쳐 입고 있던 최고급의 옷까지 거칠게 벗어던진 카일은 하체만 입은 상태로 

      천천히 에스에게 몸을 숙였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카일의 얼굴과 단단한 그의 상체 사이로 쉴새없이 시선을 주던 

      에스는 이를 악물며 눈을 감았다. 

      이대로 당하고 마는 건가....! ! 

      탕.

      탕.

      "..............."

      탕.

      막 시작하려는 찰나 문을 두들이는 소리에 카일은 굉장히 짜증나는 표정을 지었다. 

      이미 하체는 부풀어 오를대로 올라 아래에 까린 에스를 처절할 정도로 원하고 있건

      만, 어느 쳐죽일 놈이 지금 문을 두들이는 건가? 

      무시하고 행동을 다시 시작하려던 카일은 그러나 일정한 간격으로 계속해서 문을 

      두들이는 소리에 이마에 핏줄을 올리며 테이블 위의 화병을 들어 문쪽으로 내던졌

      다. 

      굉장한 기세로 부딫힌 화병은 그 자리에서 산산조각났다. 

      "어느 놈이야?!! 죽고 싶은 거냐?! !" 

         

      그의 노성에 잠시 조용해지던 문밖이지만, 이번엔 노크소리 없이 문이 열린다. 

      그 것에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가에 두었던 검을 빼들려던 카일은 그러나 시야에 들

      어오는 하얀 얼굴에 움직임을 멈췄다. 

      "꽤나.. 볼썽 사나운 모습이로군, 카일."

      ".................황제...."

      카일의 아래에 깔려있던 에스는 안색을 굳히며 낮게 읖조렸다. 

      그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카일은 황망히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 위에 널려있던 시트

      로 에스의 몸을 감쌌다. 

      칸크빌레 일행까지도 세세히 아는 황제가 중심 역활을 하는 에스의 얼굴을 모를리

      가 없었다. 적에 대해선 뱃속의 아이조차도 용서가 없는 그이기에 카일은 최악의 

      사태가 되면 황제에게 검을 빼들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카일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코웃음을 친 황제는 자세를 삐닥히 했다.

      네가 무슨짓을 해도 내가 당할리가 없다는 듯이 무척이나 편안한 자세를 잡는 그 

      모습에 카일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3일안으로 네 사병들을 데리고 서쪽 여왕의 안식처로 와라. 카일."

      "...........에?

      갑자기 나타나 어디로 오라고?

      황제의 느닥없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 카일은 그러나 황제가 말을 마치자 마자 

      연기처럼 사라지자 안색을 달리하며 에스의 위에서 일어나 문가로 다가갔다.

      문을 완전히 열고 밖을 확인한 카일은 피부가 따끔해질 정도로 느껴지는 마력 잔조

      량에 눈살을 찌뿌렸다. 

      이런 마력을 사용한데다 갑자기 사라졌다면 황제가 순간이동을 했다는 것인데.. 

      그런 체력에 소모가 큰 마력을 사용하면서 까지 무슨 이유로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일까. 문가에 한팔을 기대고 곰곰히 생각하던 카일은 문득 뒤에서 부시럭 거

      리는 소리에 얼굴을 돌렸다.

      ".........."

      이번에 손을 대면 가만 안두겠다는 투지를 불태우는 에스의 눈동자를 확인한 카일

      은 한숨을 쉬며 신경질 적으로 머리를 뒤로 넘겼다. 

      그가 그런 표정을 짓는다 해도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끝가지 갈수도 있다. 하지만 

      3일만에 서쪽으로 가려면 지금 당장 여장을 꾸린다 해도 빠듯하다. 

      아무리 황제라 하지만 제일 좋을때에 잘도 타이밍 좋게 나타나는군 싶었다. 

      반쯤 풀어진 바지의 버튼을 잠근 카일은 밖에 서있는 시녀에게 손을 들어 보았다.

      "바단을 불러와라."

      뭐, 어차피 자신의 손에 들어온 이상 장소가 어디든 문제이겠는가. 

      마차안에서의 정사도 꽤나 기분좋은 것이지. 

      에스를 위해 가장 좋은 곳에서 하려고 했지만 상황에 받쳐주지 않으면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자기 좋을대로 해석한 카일은 시트를 온몸에 감고 자신을 바라보

      는 에스를 향해 이를 들어내 보이도록 환한 미소를 지어 보냈다.    

      그 미소에 에스의 얼굴에 새하얗게 변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금방 다녀 올테니깐 두사람 모두 내리지 말고 얌전히 있으십시오."

      "날 뭘로 보는 거야? 빨리 가서 먹을거나 사오란 말야."

      서쪽을 들어서기 이전에 있는 경유로라는 작은 마을에서 뭔가를 사러 잠시 내리게 

      된 노웬이지만, 가흔은 그렇다 치더라도 저 칸을 두고 가려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자신을 뭘로 보냐며 가슴을 두들이는 그 모습을 못 마땅하게 바라보던 노웬은 더이

      상 시간을 지체할수 없는 노릇이기에 자신을 보며 웃고있는 젤에게 칸을 부탁한다

      는 눈빛을 보냈다. 입가를 손으로 가리고 웃어 보이는 젤에게서 일만의 불안함을 

      느낀 노웬은 어쩔수 없이 마차 문을 닫았다. 

      가끔가다 젤이 칸보다 더한 돌발 행동을 하곤 하니... 

      도대체가 자신의 집단은 맘을 놓을만한 인재들이 없으니 문제다. 

      "여기는... 무척이나 사람이 많군요."

      한바퀴를 다 돌아서야 귀족전용 자리에 마차를 댈수있던 가흔은 빽빽하게 들어찬 

      마차와 사람들의 머리숫자를 보고 질린듯 말했다. 

      그 모습에 웃어보인 젤은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이 근처에선 서쪽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유일하게 있는 마을이니깐요. 작지만 하루

      동안 엄청난 양의 물건의 거래가 이어지죠. 

      그에따라 사람도 자연히 많아 질수밖에요."

      "서쪽에서 구하면 되는게 아닌가요?"

      "금욕적인 서쪽에선 구할수 없는게 꽤나 되지요."

      "......흐-음... 에? 칸?! !"

      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가흔은 문득 어깨에 느껴지던 칸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

      자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다 비어버린 자리를 발견하곤 경악의 소리를 질렀

      다. 

      그런 가흔의 소리에 고개를 돌리던 젤의 얼굴도 마찬가지로 살짝 굳었다. 

      오른편은 벽이었기에 반대편 젤쪽으로 몸을 내밀어 문을 연 가흔은 멀리서 보이는 

      검청의 머리카락에 입술을 깨물었다. 

      저 사람은 도대체가 자신이 적들이라는 사람들에 의해 죽을뻔 한걸 잊고 또 저렇게 

      혼자다니는 건가. 

      "데리고 오겠습니다."

      "아, 가흔군! !"

      탁.

      마차문을 닫고 칸을 향해 달려가는 가흔의 모습에 젤이 몸을 일으키고 다시 문을 

      열었지만, 이미 가흔이나 칸의 모습은 인파에 묻혀 그녀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잠시동안 그런 두사람의 흔적을 찾아 눈동자를 굴리던 그녀이지만, 의아하다는 시

      선을 보내는 주의에 이내 안색을 달리하고 마차의 문을 닫았다. 

      안으로 들어가 커튼을 들어올리며 밖의 상황을 확인하던 젤은 초조하다는 듯이 자

      신의 손톱을 깨물었다. 

      "--칸--!"

      급하게 따라 잡는다고는 하나 이미 그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도대체 어떻게 벽쪽에 있는 문뿐인 곳에서 빠져 나갔는지 알수는 없지만, 여러모로 

      행동에 빠른 사람이다. 

      그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간다면 좋을 일이지만.. 

      매번 이렇게 사고를 치는데만 사용하니 같이 다니는 사람으로선 두통이 느는 일이

      다. 정신없이 주위를 둘러보다 지나는 인파와 부딫히는 일도 있어서 정신이 없는 

      와중에 사과를 하고 다시 걸어가다 부딫히고. 사과하고. 

      이러다간 칸을 찾기전에 여기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과를 해야 할 판이다. 

      한숨을 쉰 가흔은 거리 한복판에 서있을 수도 없는 일인지라 오른쪽 벽쪽으로 가 

      등을 기댔다. 

      쉬려고 이쪽에 온 사람은 자신뿐만이 아닌지 꽤나 많은 이들이 벽에 붙어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자리에 서서 머리위의 반다나를 눈밑으로 끈 가흔은 혹여나 자신의 

      머리카락이 빠져나오지 않았을까 해서 주변을 정리했다. 

      머리카락에 보이지 않게 된후로 조금이나마 자신을 바라보던 시선이 줄었다. 

      하지만 외모가 독특하니 가만히 서있는 자신에게 시선을 돌리는 자들도 꽤나 되어

      서 고개를 숙인 가흔은 눈동자를 굴려 칸의 모습을 찾았다.

      "먹으래?"

      "........에?"

      계속해서 눈을 굴리던 가흔은 갑자기 눈앞에 내밀어 지는 붉은 과일에 눈을 동그랗

      게 떴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보이자 칸보다 약간 큰 키를 지닌 망토를 눌러쓴 

      사람이 자신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다.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는 그의 태도가 재미있었던 모양인지 쿡쿡하고 웃어보인 그

      는 어서 받으라는 듯이 손에 든 과일을 흔들어 보였다.

      "독이 들었다거나 상한건 아니니깐."

      "...고..고맙습니다."   

      상대의 말에 자신이 그런 이유로 받으려하지 않았던게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

      해 가흔은 서둘러 내밀어진 과일을 받아 들었다. 

      이 과일은 에스의 저택에 있었을 때 본적이 있는 거다. 

      망고처럼 생겼지만 색이 붉은 이 과일은 당도가 무척이나 짙어 칸이 즐거 먹었던 

      것이다. 

      "아까부터 누군가를 찾는것 같아서 말야. 나도 비슷한 사정이니 동류감이 들었다고

      나 할까?"

      "그렇군요."

      "응. 그나저나 덥군."

      망토의 목부분을 잡고 가흔의 옆에선 상대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던 가흔은 그의 

      키나 미성의 목소리로 보아 칸의 또래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빤히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리고 웃어보이는 상대방의 모습에 얼굴

      을 붉힌 가흔은 '잘 먹겠습니다.'라는 말을 하며 들고있는 과일을 한입 베어 물었

      다. 

      시원하게 달콤한 그 맛에 피로가 잠시 사라지는 느낌이다.

      "서쪽으로 가는 중?"

      "아? 예."

      "흐-음.. 그렇다면 이거 읽어 볼래?"

      소년이 건내는 물체에 가흔은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망설이다 아까처럼 소년을 의심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손에 받아든 물체가 책이라는 것을 확인한 가흔은 고개를 들어 눈앞의 소년에게 시

      선을 주었다. 

      시선을 받으며 입가를 올려보인 소년은 약간 나른하다 싶은 그 목소리로 입을 열었

      다. 망토에 가려 눈은 보이지 않지만, 도톰한 붉은 입술과 갸름한 턱선이 꽤나 미형

      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해준다.

      "서쪽으로 가려면 이틀이나 남았잖아. 

      이렇게 만난것도 인연이니 뭔가를 주고 싶어."

      "아.. 저.. 전 그러니깐."

      소년의 말에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지어보인 가흔은 뭔가 줄것이 없나 주머니를 뒤져 

      보았으나, 동전하나 없이 빈몸으로 다니는 그에게 줄만한 것이 있을리가 없다. 

      허둥지둥하는 그 모습에 미소를 지어보인 소년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

      려 보았다. 

      사람들에 치여 자신쪽으로 다가오는 분홍빛 머리카락을 지닌 꼬마숙녀의 모습에 

      미소를 지어 보인 그는 손을 벌려 그 작은 몸을 안아 들었다.

      "이자크님. 어딜 그렇게 다니셨던 거예요? 오라버니가 찾으신다고요."

      "스완, 너에게 걱정을 끼치게 했군."

      "저기서 예쁜 리본을 사주시면 용서해 드릴께요."

      갑자기 나타나 소년의 품에 안긴 작은 여자애의 모습에 한손에 책은 든채인 가흔은 

      그가 곧 떠날것 같자 서둘러 머리에 쓰고 있던 반다나를 풀어 주었다. 

      마땅히 줄만한 것은 아니지만, 저번 에즈에게서 이 반다나가 꽤나 고가의 물건이라

      는 것을 들은대다 어제 세탁을 했으니.. 

      그다지 더럽다곤 생각치 않지만 괜찮을까? 

      "저기.. 이거라도. 마땅히 지닌 물건이 없거든요."

      "............"

      "...와.. 검은 머리카락."

      바람에 흩날리는 가흔의 검은 머리카락에 소년의 품에 안겨있던 스완이라는 소녀

      가 입을 가리며 작게 탄성을 낸다. 

      그 모습에 머쩍은 표정을 지은 가흔은 고개를 숙인채 들고있는 반다나를 묵묵히 바

      라보고 있는 소년의 모습에 안색을 굳혔다. 

      역시나. 이런것을 주는 것은 예의가 아닐까? 

      걱정스런 가흔의 생각과는 달린 소년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손안의 반다나를 집

      어 들었다.

      "무척이나 귀한 선물. 감사하다."

      "아..."

      반다나를 받은 것에 안도해 하는 가흔의 모습에 반다나를 품속에 잘 갈무리한 그는 

      스완의 몸을 고쳐안고 다시 입을 열었다.

      "내 일행들도 서쪽으로 가는 길이야. 인연이 있다면- 또다시 만날거다."

      "안녕~"

      소년의 품에 안긴 소녀가 손을 흔들자 반사적으로 손을 흔들어 보인 가흔은 몸을 

      돌리고 인파속으로 묻혀가는 소년의 뒷모습에 순간 기시감을 느끼곤 고개를 갸웃

      했다. 

      분명 처음 만나는 사람인데 어디선가 만났던 적이 있는 것 같다. 

      아까 소녀의 입에서 소년을 이자크라고 불렀었지. 

      입안에서 맴도는 이름을 몇번 굴려보인 가흔은 좋은 이름이라며 들고있는 책을 받

      쳐 햇빛을 가렸다. 머리를 가려주던 반다나가 없어지니 아까보다 자신을 주시하는 

      시선이 두배나 더 는 기분이다. 

      멎쩍음을 느끼던 가흔은 멀리서 한짐을 든채로 자신에게 달려오는 칸의 모습에 반

      색을 지었다.

      문제만 일이키는 사람이지만, 이런 상황에서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다.

      "칸. 도대체 어딜 간거예요?!"

      "짜-잔. 특산지 명물이야. 먹을래? 마차안에서 우리 둘만 먹자-"

      ".........이런걸 사려고 마차에서 내린 겁니까?"

      칸의 품속에 안겨있는 잡다한 음식들과 불량품인 것 같은 먹거리에 가흔은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가흔의 얼굴을 올려디본 칸은 이를 들어내며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여행길의 묘미는 뭐니뭐니해도 먹거리지-"

      그 신나하는 모습에 가흔은 한숨을 쉬며 이마에 손을 집을수 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걱정이었다고. 

      칸님이랑 대부분의 일행들이 빠지니 왜이리 적막하던지."

      "아무튼 모두가 와서 다행이야- 에스님의 안부가 걱정이긴 하지만."

      서쪽에 도착하기 전에 넘어야 하는 산길에서 전의 일행 대부분을 만나게 된 가흔은 

      율시아가 빌려준 화려한 저택에서 내려 전에 머물렀던 마차위로 옮겼다. 

      예전처럼 마차에 턱을 받치고 나른하게 앉아있는 가흔의 모습에 노웬들의 일행인 

      사내들이 웃어며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사내들의 장난섞인 말에 미소로 답해보인 가흔은 멀리 앞서 간 칸이 마차위에 서서 

      난동을 부리자 그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것은 가흔에게 말을 걸던 두사람의 남자

      들도 마찬가지로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한다.

      "무슨일이지?"

      "칸님께서 여행중에 배운 춤과 노래를 보여주실 거라는 데요?"

      "....엥?"

      지나치던 어린 용병이 해주는 말에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던 사내들은 마차안의 가

      흔에게 같이 가보자는 말을 건냈지만 가흔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칸의 그 추태는 여기까지 오는 마차안에서 질릴 정도로 보았던 것이다. 

      그렇게나 노웬이 비웃고 젤이 구박했는데도 또다시 사람들 앞에서 하려고 하다니. 

      못 말린다는 표정을 지은 칸은 멀어지는 사내들의 등뒤로 시선을 주고 눈을 감았

      다.

      부디 엄청난 야유만은 피해주길.

      덜커덩.

      "..........책이나 읽어 볼까."

      아무도 없는 곳에서 멍하니 밖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이상하기에 안으로 들어온 칸

      은 앞서 들린 마을에서 이자크라는 소년에게서 받은 책을 꺼내 들었다. 

      책을 읽을라치면 심심하다고 방해를 하는 누구덕에 책은 커녕 표지 구경조차 제대

      로 할수 없었던 것이다. 모처럼 혼자있게 된 시간을 얻은 가흔은 모포를 깔아 엉덩

      이 아래에 댄다음 편한 자세를 잡았다.

      "제목은 없는 책인가..."

      붉은 표지로 된 책을 앞뒤로 흩어보다 앞장을 넘겼다. 

      딱딱한 표면에 꽤나 읽지 않은 것 같았다. 

      "...헤-에."

      글을 꽤나 배웠다고 하나 아직 읽는 것에 미숙한 가흔은 그러나 책 표지를 열자마

      자 눈에 들어오는 글자에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분명 다른 책과 마찬가지인데 읽는 것이 훨씬 수월하고 쉽다. 

      편집의 문제인건가하고 생각하던 그는 이내 말머리에 시선을 주었다. 

      [그는 왕이 될 제목이 아니다.라고 황제가 말했다.

      왕관을 쓰지 않은 자가 그 권위를 위협하려 할때는 합법한 댓가가 치뤄지는 법. 

      케시오스 황제는 자신의 맏아들인 장차 살해왕에 대한 추방령을 내리려 했으나 그 

      날 저녁 그 뜻을 접어야 했다. 살해왕의 사병들이 성에 난입하며 무력으로 사람들

      을 제압하고 그 부친인 케시오스 황제의 목을 베었다. 

      이는 중앙국 역사상 가장 치욕적이며 수치스러운 역사로 남을 것이니...]

      "..............."

      [당시의 사람들은 케시오스의 황제에 대한 폭정으로 지쳐 있어 칸크빌레의 보위에 

      대해 환영을 뜻을 내비쳤으나, 그가 전대의 길을 그대로 걸어가리라는 것을 알았다

      면 그처럼 기뻐했을지 의문이다. 그가 멸명시킨 나라는 수십에 헤아리며, 동쪽의 

      나라중엔 살해왕을 공적으로 세우는 자들도 부기지수. 

      대륙의 안정을 다스려야 할 중앙국의 뜻에 크게 차질을 빛는 현상이 벌어졌다. 

      살해왕이 죽인 자는 남녀노소 그 수를 헤아리기가 힘이 들며, 개중엔 역사에 이름

      이 남을 만한 인재들도 부지기수이니 이는 대륙의 장래에도 크게 해를 끼칠만한 일

      이었다.]

      ".....수십만의.. 사람들."

      읽는 와중 저도 모르게 내뱉어진 소리에 가흔은 안색을 달리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이내 다시 눈을 내려 책의 내용을 대충 흩어보기 시작했다. 

      [당시 살해왕의 공포에 진실을 말할수 없었으나, 지금에 와서는 말할수 있다. 

      그의 폭정과 부당한 정치에 대해..... ....무력으로 인간을 지배하는 자의 말로는 그

      야말로 참담한 것이다. 설마하니 전대 왕과 같은 길을 걸어갈 줄은 살해왕 그조차

      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지니.. ...........현 황제이 의해 목이 베인 살해왕의 목은 중앙

      성 문앞에 무려 3달간이나 걸려져 그 얼굴은 결국... ...............수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은 그의 악명에 치를 떨고있다. 

      후세인들에 대한 경고와 충고를 주기위해 이 책을 남긴다. 

      - 헤르 마샬력 1525년 - ]

      저자의 후기인 듯한 내용에 가흔은 미간을 접으며 다시 앞장을 넘기려고 했으나 마

      차를 뒤흔드는 야유 소리에 안색을 달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차의 천을 걷고 앞을 바라본 가흔은 용병들이 야유를 하며 손가락을 내려보이는 

      모습에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보나마나 칸의 춤과 노래를 보고 저러는 것이겠지. 

      잠시 미소를 지어보인 가흔은 고개를 내려 자신이 들고있던 책을 바라 보았다. 

      이 책의 주인공은 아무래도 툴가 저택 밑에서 보았던 그 칸크빌레라는 자의 이야기

      같다.

      "..............."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칸크빌레를 그 누군가라고 짐작하는 자신에게 더더욱이나 흥미로운 이야기이긴 했

      지만... 멀리서 야유하는 용병들에게 칼을 휘두르며 조용하라고 하나 소리가 더 커

      지자 쩔쩔메며 자신에게로 달려오는 칸의 모습이 보였다. 

      무척이나 억울하다는 듯한 그 모습에 뒤에 서있던 용병단이 크게 웃어 재낀다. 

      그 모습을 보던 가흔은 들고 있던 책을 미련없이 마차 밖으로 내던졌다. 

      모처럼 받은 책이지만,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는 내용이다. 

      "예술을 모르는 무식한 놈들이야. 가흔도 그렇게 생각하지?"

      얼굴을 붉히며 투덜거리는 칸의 팔을 잡아 마차에 오를수 있게 도와준 가흔은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 춤과 노래가 얼마나 엉망인지 아는 그로써는 그의 말에 긍정적

      인 답변을 줄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만 그에게 화를 풀라는 말을 할는수 밖에는..

      와---아! !

      " ? "

      또다시 들려오는 함성에 가흔과 칸은 고개를 돌렸다. 

      맨앞줄에서 들려오는 그 탄성은 점점 뒤로 전파되어 나중엔 떠들석한 웃음소리까

      지 합해져 그들 무리가 순간 시장 바닥에 되어버린 것 같았다. 

      어리동절한 가흔의 얼굴과는 다르게 뭔가를 짐작한 건지 칸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

      지며 가흔의 손을 잡아 흔들었다.

      "서쪽나라가 보이는 모양이야. 잘됐다. 당분간은 맘놓고 푹 쉴수 있겠어! !"

      "서쪽에 도착한 건가요?"

      "응. 이야- 고생스러운 여행길이였지. 드디어 도착하는 군. 난 가흔에게 그곳 구경 

      못 시켜주는 줄 알고 꽤나 걱정했다고."

      들뜬 듯한 칸의 말을 들으며 마차 앞으로 몸을 내민 가흔은 절벽쪽을 들어섬에 따

      라 아래쪽이 훤히 보이는 위치가 되자 멍하니 입을 벌렸다. 

      ".....세상에...."

      절벽 아래는 푸른 바다가 지평선 넘어까지 뻗어 있었다. 

      온통 푸른색의 물길로 넘실되는 그 가운데 자리한 하얀색의 나라를 발견한 가흔은 

      자신의 눈을 비볐다. 

      "배를 타고 들어가면 되는 거야. 

      그리고 저 하얀나라 가운데에 뻗은 금빛기둥이 여왕의 안식처지." 

      바다 가운데에 떠있는 나라는 원모양으로 그 주변엔 크고 작은 배들이 쉴새없이 움

      직이고 있었다. 그런것에 시선을 주던 가흔은 이내 하얀원 가운데 하늘까지 뻗은 

      황금빛 기둥에 시선을 주었다. 

      기둥 주변에 육안으로 확연히 보이는 붉은빛의 문양들이 그곳이 얼마나 넓고 거대

      한지 알게 해준다. 

      밑에 시선을 준 가흔은 천천히 황금기둥을 따라 시선을 위로 들었다. 

      하늘까지 이어진 기둥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구름사이로 뻗은 햇빛이 아닐까하고 고개를 갸웃하던 가흔은 옆에 앉아 작은 목소

      리로 중얼거리는  칸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온 건가."

      무언가를 회상하는 듯한 그 음성에 표정을 굳힌 가흔은 다시 시선을 아래로 내렸

      다. 

      믿을수 없으리만치 아름답고 몽환적인 곳. 

      자신들은 드디어 서쪽에 도착한 것이다. 

      "으아악~~ 싫어~~;;;"

      "것참 되게 난리네. 얌전히 못있어?! !"

      "으아아아아아---! !"

      곧 죽어 넘어갈것 같은 꼬마의 비명소리에 항구에 모여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몰린

      다. 그 시선에 소리없이 오브와 유크렌의 주위에서 물러나는 칸들이었다. 

      눈에 띄지 않게 다녀야 하는데도 일행이 워낙 화려하다 보니 시선이 많이 쏠리는 

      편인데, 저런 쇼까지 벌여서 아주 구경거리가 될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신들은 모르는 일이라는 듯이 여기저기 분산해 있는 일행들을 바라보며 이를 갈

      던 오브는 밧줄로 온몸이 포박당해 징징대는 유크렌이 바둥대는 발에 머리를 맞아 

      고개가 비뚤어지자 음산한 웃음을 흘렸다. 

      도대체가 말이다. 

      아무리 자신이 직업없는 백수라지만 이런 애물단지 꼬맹이를 자신에게 맡겨놓고 

      나몰라라 하는 모습들이라니...

      휘--익

      "읏? 용! ! 무슨 짓이예요? 오브! !"

      들고 있던 용을 마차에 오르는 짐위로 던지는 모습에 멀찍히 칸의 옆에 서있던 가

      흔이 안색을 달리하며 달려든다. 

      그런 가흔을 싸늘하게 바라보던 오브는 손가락을 세우며 한손을 허리위로 올렸다. 

      "그런 말할거면 댁이 한번 저녀석을 맞아 보시지."

      ".........그냥 올라가죠."

      "흥."

      배를 타고 서쪽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물이 싫다며 난리를 부려대는 용의 모습을 익

      히 봐왔기에 선뜻 그를 맡는다는 말을 할수가 없다. 

      실제로 용을 포박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내들의 얼굴에 화려한 얼룩이 생겼던가. 

      짐들 위에서 지렁이처럼 몸을 꿈틀대며 자신을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용의 

      시선을 애써 외면한 가흔은 다른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대륙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온다는 것은 허언이 아니였는지 항구는 온통 사람

      들과 마차, 짐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적어도 3일전부터 배편을 알아봐야지 배를 탈

      수있다는 말대로 몇몇 무리들은 탈 배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한다. 

      상인에서 일반인, 그리고 귀족들로 보이는 사람들까지 정말이지 가지각색의 사람

      들이 모여있다. 

      "이봐. 좀 비키라고."

      "아, 죄송합니다."

      한짐을 들고 투명스럽게 말하는 남자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보인 가흔은 칸들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원채 사람들이 많다보니 다른곳을 구경하다 일행을 놓치면 큰일이다. 

      안 그래도 갑자기 사라진 가흔을 찾던 칸의 얼굴에 그를 확인하자 마자 화색이 돈

      다. 무척이나 걱정했다는 듯이 가까이 다가 가자마자 투덜대는 칸의 모습에 웃어보

      인 가흔은 나른한 몸에 기운을 불어 넣기위해 기지개를 폈다. 

      왠지 모르지만 이곳에 온후로 몸이 나른해 진다. 

      눈가를 주무르는 가흔의 모습에 옆에 서있던 젤이 걱정스러운 듯 묻는다.

      "어디 안 좋은 곳이라도 계신건가요?"

      "아..아뇨. 그냥 컨디션이 안좋은 것 같아서요."

      " ? 컨디션? 그게 뭐야?"

      "아, 몸 상태가 평소같지 않다는 말입니다."

      가흔의 설명에 컨디션이라는 단어를 몇번 웅얼거린 칸은 미소를 지으며 멀리 서있

      는 라프헨과 라헨에게도 달려간다. 

      아무래도 새로 배운 단어를 사용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런 모습을 미소 지은채로 바라보던 가흔은 여전히 자신에게 시선을 주는 젤의 모

      습에 자신의 얼굴을 쓰다 듬었다. 

      확실히 몸상태가 전같진 않지만, 그게 그렇게 티가 나는 건가? 

      얼굴을 쓰다듬는 가흔의 모습을 바라보던 젤은 작게 미소지으며 얼굴을 가까이 했

      다.

      "서쪽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 신성력이 월등히 강하게 작용하는 곳입니다. 다른 세

      계에서 온 가흔군의 몸상태가 안좋은 것은 그런 이유인 것 같네요. 

      정 안 좋으시다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

      "네, 걱정마세요."

      걱정해주는 젤이 고마워 웃어보인 가흔은 멀리 자신에게 손짓하는 라프헨의 모습

      에 그쪽으로 뛰어갔다. 

      멀어지는 가흔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젤에게 멀찍히 있던 샤한이 껄렁한 걸음걸이

      로 다가온다. 

      "무슨 일이야. 저 꼬맹이가 어디 아프데?"

      "아무래도 다른 곳에서 왔으니 말이죠. 서쪽의 강한 파장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

      는 것이 있겠죠."

      "흐-음."

      칸과 라프헨 사이에 껴서 곤란한 표정을 짓는 가흔을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젤은 

      눈을 가늘게 떴다. 

      추측이건데 가흔의 마력을 무효화하는 능력이 이곳에서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닐까? 

      그것에 득이 될지 해가 될지도 모르는 일. 

      마찬가지로 자신의 옆에서 칸들을 바라보며 입술을 비죽이는 샤한을 향해 얼굴을 

      돌린 젤은 나즉막하게 말했다. 

      "만약이라는 게 있으니. 가흔군의 감시를 부탁드립니다."

      "감시? 그런 귀찮은 걸 시켜서 어쩌자는 거야. 무엇보다 정말로 내가 저런 녀석따위

      를 진심으로 지켜줄거라곤 생각치 않은 거겠지."

      "물론 입니다. 단지 감시만 부탁드릴 뿐입니다."

      싸늘한 비웃음을 입가에 단 젤의 모습은 가흔 앞에선 한번도 보지 않은 얼굴이었

      다. 그 얼음조각이 떨어질 것같은 미소에 샤한은 혀를 차며 뒷주머니에 손을 넣고 

      삐딱하게 섰다. 

      적의를 들어내는 자신보다 속을 숨기는 이런 여자가 더 무서운 법이다. 

      그러나 저 가흔이라는 녀석은 그걸 모르고 있지.

      "아무것도 모르고 이용 당하는 건가. 불쌍한 녀석."

      조롱하는 투에 잠시 표정을 경직시킨 젤이지만 딱히 그의 말에 반박하지는 않았다. 

      "기운 좋구만--"

      멀리 활발하게 움직이는 칸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이는 만원경을 눈에서 땐 카일은 

      담배를 하나 입에 물고 뒤로 물러났다. 재수좋게도 녀석들과 같은 시일에 도착하게 

      되어 항구가 잘 보이는 곳에 여장을 풀게 된것이다. 

      이번 일은 황제가 나서는 일이니 그만큼의 신중을 가해야 하는 일이기도 해서 녀석

      의 눈에 띄이면 안되기에 놈들이 먼저 떠난 다음에 출발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맘에 안 드는지 중간에 합류한 요크발의 안색이 영 안 좋다. 

      적은 베고, 잘못은 근본부터 잘라 버리는게 그의 스타일. 

      탐색에 관찰을 통해 최고의 찬스를 잡은 자신과는 근본 부터가 다른 수를 사용하는 

      자이다.

      "초조해 하는 걸 모르겠는 건 아니지만, 황제폐하도 함께 계시는 자리이니 인상좀 

      피라고."

      "............"

      "게다가 엄청난 사병들을 끌고 나다는 것은 놈들에게 봐달라고 광고하는 것과 같은 

      것이지. 적어도 녀석들이 항구를 떠난 다음에 요란한 출발을 해야지."

      "들어가 쉬겠다."

      자신의 말에 맞다는 것을 알지만 저놈의 불같은 성미가 받아 들여지지 않는 것이겠

      지.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 침대위에 늘어져 있는 에스에게 시선을 주고 미간을 찌

      뿌리는 요크발의 모습에 카일은 속으로 혀를 찼다.

      "아무리 너라지만 에스를 그런 식으로 보는건 기분 안좋아. 

      설마하나 칸크빌레 대신으로 화풀이라도 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흥."

      아주 틀린 지적은 아니였는지 잠시 안색을 달리한 그가 거칠게 망토를 잡으며 문을 

      열고 방에서 나갔다. 

      벽 근처의 그림이 떨어질 정도로 강하게 문을 닫고 나가는 요크발의 모습에 어쩔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은 카일은 에스가 누워있는 침대로 다가가 그 옆에 몸을 뉘

      였다. 

      얌전히 있으라고 해서 순순히 있을 그가 아니기에 잠시 자도록 약을 먹였는데, 그 

      효과가 꽤나 쎈 모양인지 아직까지 깨어날 기색이 없다. 

      감고있는 황금빛 눈썹을 손가락으로 건드려 보인 그는 손을 내려 도톰하게 올라온 

      입술을 건드려 보았다. 한동안 잠든 에스의 옆모습을 바라보던 그는 얼굴을 들어 

      그 입술에 입을 맞춘 다음 에스의 몸을 자신쪽으로 끌어 안았다. 

      앞으로 출발하려면 좀 시간이 걸릴테니 그때까지 에스와 같이 잠이라도 자두는 것

      이 좋을 것 같다.

      새근거리는 에스의 숨소리를 들으며 카일은 눈을 감았다. 

      배안에 탑승한 가흔은 창에 턱을 받치고 밖의 상황에 시선을 돌렸다. 

      아까까지 나른한 몸이 이제는 미열에 어지럼증까지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에 와서 몸상태가 이렇게나 안 좋아진 것은 처음있는 일인지라 본인도 본인이

      지만, 주위 사람들이 더 당황하며 쉬라고 방으로 밀어 넣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모여 시끌벅쩍한 항구에서 칸들이 탄 배는 이제 막 떠나려던 참이었다. 

      "출항한다--! !"

      배의 함장인 것 같은 우락부락한 사내가 소리를 지르며 포두주가 든 병을 선미에 

      달려있는 황금의 공에 있는 힘껏 던진다. 

      병이 공에 맞아 산산히 부숴지자 다른 사내들이 포효를 하며 돛을 끌었다. 

      한시간 밖에 걸리지 않은 항해지만, 신성한 여왕의 품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그 이

      상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라고 라프헨의 귀뜸해 주기는 했는데, 저들의 행동은 그중 

      하나인 모양이다. 

      처음보는 광경이니 이왕이면 배에 올라가서 자세히 보고 싶었는데 말이다. 

      따끈따끈하게 열이 오르는 이마에 손을 집던 가흔은 창가에 기대고 있는 것도 힘이 

      들자 일어나 침대위로 쓰러졌다. 

      튕겨지는 몸을 느끼며 눈을 감은 가흔은 미간을 찌뿌렸다. 

      왠지 모르지만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는 것처럼 나른하기만 하다.

      덩컹.

      "가흔 아직도 안 좋은 거야?"

      ".........칸."

      침대에 누워있는 가흔의 모습을 확인한 칸은 안색을 달리하며 그에게로 다가갔다. 

      땀에 젖은 검은색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칸은 그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대다 이

      내 알수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열은 없는 것 같은데 땀을 이토록 흘리다니.. 

      몸에서 열이 아는 걸까?

      "괜찮아요. 왠지 몸이 좀 나른한것 밖에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엄청 안좋아 보인다고."

      괜찮다는 듯 애써 웃어보이는 가흔의 모습에 미간을 접은 칸의 그의 곂에 앉아있다 

      자신이 들고온 음식 바구니에 시선을 주었다. 

      아플때는 먹을것이 최고라서 이것저것 싸들고 오기는 했는데, 이렇게 누워있는 모

      습을 보자니 뭘 먹으라고 권하는 것도 미안하게 느껴진다. 

      난감함에 머리를 긁적이던 칸은 이내 떠오르는 생각에 두손을 마주쳤다.

      "밖에 나가자."

      "..네?"

      "안에서 이러면 더 안좋아 지는 법이라고. 밖으로 나가자. 

      바다 공기를 쐬면 더 좋아 질꺼야."

      "아...아니."

      칸의 말에 손을 저으며 사양하려던 가흔은 자신의 몸이 붕뜨는 느낌에 반쯤 감긴 

      눈을 커다랗게 떴다. 가흔보다 5센치정도 작은 칸은 그의 몸을 시트채 감싸 안아 

      든 다음 방에서 빠져 나왔다. 

      자신보다 어린 모습의 칸에게 안겨 이동하는 모습은 상당히 부끄러운 일이었고, 사

      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는 것은 정말 민망스런 일이었다.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끼고 품으로 파고드는 가흔의 모습에 칸은 웃었다. 

      계단을 올라 가판으로 올라선 칸은 망설이지 않고 바로 선미로 뛰어 올라갔다. 

      그런 곳은 탁승객이 가서는 안되는 곳이지만, 형이 아파서 구경좀 시켜주고 싶다는 

      칸의 말에 뱃사람들은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며 선뜻 가게 냅두었다.

      "자. 봐봐. 정면에서 보면 더 멋지다고."

      ".........."

      "그렇지?"

      칸의 말에 시트에서 얼굴을 내민 가흔은 서쪽 여왕의 나라에 시선을 주었다. 

      하얀 섬은 그렇다 치지만 똑바로 뻗어있는 황금빛 기둥은 확실히 절경이었기에 가

      흔은 몸상태도 잊고 정신없이 그것을 바라 보았다. 

      어느새 칸의 품에서 빠져나온 가흔은 가판에 팔을 기대고 푸른 하늘과 뱃머리에 갈

      라지는 바다에 시선을 주었다. 

      가슴이 탁 트이는 감각에 눈을 감은 가흔은 모처럼의 평온한 기분을 맛봤다. 

      이곳에 와서 이렇게 안정된 기분이 든 적이 도대체 몇일이나 될까.

      ".....정말 좋네요."

      "응. 알고 있으니깐 가흔에게 보여주려고 하거야." 

      "고마워요."

      양손을 허리에 댄채로 의기양양해 하는 칸에게 웃어보인 가흔은 자신들의 뒤로 다

      가오는 라프헨과 오브들의 모습에 손을 흔들어 보았다. 

      아파서 방에 누워 있다는 가흔이 밖에 있기에 잠시 놀란 표정을 지은 그들은 가흔

      의 옆에 붙어있는 칸의 모습에 상황을 파악했다. 

      보나마나 아픈 사람을 밖에 있는 것이 더 좋다며 억지로 끌고 왔겠지.

      "가흔님 몸이 안 좋을 때는 방에서 쉬는게 제일이라고요."

      "무슨 소리! 방에만 있으면 없던 병도 생기는 법이라고! !"

      "칸님의 말을 듣고 밖에서 설치다가 폐렴에 걸릴뻔 한지가 언젠데 그런 말을 하시

      는 거예요-! !"

      칸의 막무내기 행동에 당한 바가 많았던지 라프헨은 얼굴을 붉히며 허공에 주먹을 

      휘둘렀다. 

      그런 라프헨의 모습에 혀를 내밀어 보인 칸은 가흔의 뒤로 몸을 숨긴다. 

      그들의 장난스러운 모습을 바라보고 미소짓고 있던 가흔은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바람에 고개를 들었다가 여왕의 섬을 둘러싼 푸른 장막을 발견했다. 

      마치 구슬처럼 투명한 재질의 그것은 육안으로도 확연히 보이건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은 모양이다. 

      전에 오브에게 남들이 보이지 않거나 할수없는 일에 대해선 말을 삼가라는 충고를 

      들었던 터라 묵묵히 서서 다가오는 장막을 주시하던 가흔은 어깨를 두들이는 손길

      에 얼굴을 돌렸다.

      "뭘 보고 있는 거야?"

      "아, 예.. 무척이나 신기하구나 싶어서..."

      "헤-에. 여왕의 기둥은 무척이나 유명해서 왠만한 촌구석이 아니면 모르는 이는 극

      히 드문데.. 가흔은 의외로 촌사람?"

      놀리는 듯한 그의 말투에 가흔은 웃을수 밖에 없었다. 

      다른 일행들은 자신이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을 모르는 오브는 자

      신이 마력을 무효화 하는 동쪽의 어느 속국에서 온 사람인줄 알고 있는 것이다. 

      굳이 말을 해서 그에게 쓸데없는 혼란을 줄 필요는 없다. 

      고개를 젖던 가흔은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투명한 막을 발견하곤 안색을 달리했다. 

      갑자기 기분이 나빠져 저도 모르게 뒷 걸음질을 치니 곁에 서있던 라프헨이 걱정스

      러운 안색으로 괜찮은 거냐고 묻는다.

      "...아무래도 방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아요." 

      "정말 안색이 안 좋네요. 거봐요. 칸님 때문에 가흔군이 더 탈나면 어쩔거예요?"

      "나... 나. 그냥 가흔의 기분전환을 시켜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

      라프헨의 질책과 보기에도 안좋아 보이는 가흔의 안색에 얼굴을 붉힌 칸은 억울함

      에 반박했다. 그런 칸의 모습에 변호하고픈 가흔이었지만 울렁이는 속에 손으로 입

      을 틀어막고 서둘러 선미에서 내려왔다. 

      가흔의 갑작스런 행동에 언쟁을 하던 칸과 라프헨은 동시에 입을 다물고 가흔의 이

      름을 부르며 그리로 달려갔다. 

      "가흔- 부축해 줄께요..! !"

      라프헨의 팔이 자신의 어깨에 닿는 순간 가흔은 땅과 하늘이 뒤집히는 것 같은 감

      각을 느꼈다. 

      확하고 뒤집어 지는 가흔의 상체는 계단에서 미끌어져 아래로 떨어졌다. 

      그 모습에 가흔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던 라프헨은 자신의 입을 가리며 낮은 비명

      을 올렸다.

      "가흔--! !"

      손을 입으로 막고 있는 라프헨의 몸을 밀친 칸은 가까스로 가흔의 손을 잡아 자신

      의 품안으로 잡아 끌었다. 바로 눈앞으로 육박한 바닥에 눈을 질끈 감은 그는 필사

      적으로 몸을 돌려 가흔대신 밑으로 깔렸다. 

      바닥에 부딫히는 순간 덮치는 충격에 칸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콰--당! ! !

      "무슨 소리냐?!!"

      "아이와 소년이 선미에서 떨어졌다! ! 의사를 데리고 와! !"

      탕.

      탕.

      바닥에 떨어진 충격에 머리위로 쏫아지는 잡다한 물건들을 손으로 막아낸 칸은 자

      신의 아래에 파리한 안색으로 쓰러진 가흔의 모습에 심장이 멎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가흔.. 가흔! 이봐 정신차려! !"

      찰싹. 

      찰싹.

      하얀 볼을 가볍게 두들여 봐도 감은 눈이 떠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엄청 당황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흔의 몸을 안아 들었다. 

      "이봐! 꼬맹이. 떨어진 사람은 함부로 움직이는게 아냐-!"

      "씨끄러! !"

      머리에 충격이 갔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무턱대고 가흔을 들어올리는 칸의 모습에 

      다급하게 충고를 한 오브는 칸의 노성에 입을 다물고 뒷 걸음질을 쳤다. 

      보통 녀석은 아니라곤 생각했지만, 닭살이 돋을 정도의 이 기백은 뭐란 말인가. 

      안색이 백지장같이 굳은 오브를 노려본 칸은 자신의 노성에 움직임을 멈추고 이쪽

      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제치고 선박에서 내려왔다. 

      그런 칸의 모습을 바라보던 라프헨은 옆에서 자신의 옆구리를 치는 오브의 행동에 

      정신을 차리고 다급하게 칸의 뒤를 따랐다. 

      도대체 무슨일이 벌어진건지 라프헨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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