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23/55)

      "난 유헌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나가나 싶었더니 또 저런 소리다. 

      더이상 언쟁을 하는 것도 귀찮아진 사내는 눈을 들어 눈앞의 소년을 올려 보았다.

      "사람을 저렇게 만든 사람이 이상하지 않다고?"

      "그건.. 어쩔수 없는....! ! !"

      반박하려는 가헌의 얼굴앞에 손을 들어보인 사내는 한숨을 쉬었다. 

      어쩜 이렇게 처지 곤란할 정도로 사람이 변했단 말인가. 

      전에는 가헌과 유헌의 사이가 좋아진 것에 대해 다행이라고만 생각했던 그였지만, 

      상황이 이렇게 진행되고 나니 둘 사이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볼 필요성을 느낀다. 

      자신을 바라보는 가헌의 저 눈동자는 분명 본 기억이 있다. 

      바로 유헌이 자신을 바라보던 그 눈빛. 

      가헌을 변호하려던 그 눈이다. 

      자신을 바라보진 않지만 그래도 형제로서는 자신을 인정하고 있을거라는 헛된 믿

      음을 가지고, 그리고 애써 믿고 싶어하던 그 눈빛이다. 

      산넘어 산이라더니... 

      유헌이 감정을 접으니 이제는 가헌이 그에 대해 마음을 주고 있었나 보다.

      "내가 둘의 부친에게 말을 꺼내 일이 이렇게 된 것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말야. 

      나도 어쩔수 없었어. ..........생각해 보라고 가헌군."

      "뭘 말입니까?"

      "그러니깐. 그렇게 범죄자 보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면 나도 할말이 없어지는게..

      하-아."

      당황해서 약간 핀트가 어긋나는 말을 해버렸다. 

      한숨을 쉰 사내는 이마위에 흘러내린 머리를 뒤로 넘기며 뒤죽박죽인 생각들을 정

      리하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감정이란게 없는게 아닌가하고 생각할 정도로 무감한 아이였던 가헌이 

      누군가에게 집착을 하고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가벼이 다루다 둘다 이상해 지면 집안의 전속 정신과 주치의인 자신의 자리는 물론

      이거니와 목도 위험해 지는 것이다. 

      이길을 걸어온지 근 10여년, 최대의 의기가 닥쳐온 것이다. 

      "유헌은 주기적으로 한가지 이상이 지속되곤 했지. 우울중이든 인격장애든 말야. 

      그리고 이번엔 이유를 알수없는 폭력성 같은게 나타나고 있어. 게다가 엄청나게 증

      폭된 괴력도 보여주고 있지."

      "그게 뭐 어떻다는 겁니까."

      "갈수록 일의 빈도가 커지고 있어. 지금은 저 정도지 아주 최악의 가정을 들자면 사

      람을 죽일수도 있을 정도의 정신불안 증세를 보이는 아이를 다시 사회에 풀어놔야 

      겠다는 건가?"

      "그렇다고 사람을 일방적으로 정신병으로 치부하고 저렇게 감금해도 되는 겁니

      까?!! 이건 당신 자질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

      콰당! !

      "선생님, 유헌군이 사라졌어요! !"

      갑자기 들어온 간호사의 말에 가헌의 안색이 급속도로 창백해 졌다. 

      그런 가헌을 바라보던 의사는 입술을 깨물며 쥐었던 주먹을 폈다. 

      그들에게 들은 공이 얼만데 그것도 모르고선 자질을 운운하는 가헌에게 주먹을 날

      릴뻔 했던 것이다. 때리지 않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간호사의 말의 심각성을 알아차

      린 그는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가운을 집어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명의 사내들이 감시하고 있는 그곳에서 도대체 어떻게 빠져나간 건지는 모르지

      만, 이번에 잡히면 조금도 못 움직이게 하얀 구속복을 입혀두어야 겠다. 

      띠-딕.

      띠-딕.

      일정한 포물선을 그리며 움직이는 것에 시선을 주던 유헌은 눈을 깜박이며 침대의 

      여인을 바라 보았다. 갈

      색으로 변화된 피부와 벗겨져 버린 머리, 그리고 푹파여진 눈등은 바로 쳐다보기가 

      두려울 지경이었다. 미간을 찌뿌리며 뒤로 물러나려던 유헌이지만, 자신을 올려다 

      보는 미할라와 옆에 서있는 딱딱하게 굳은 정현의 얼굴에 입술을 깨물었다. 

      외양이 어떻든 이 사람은 미할라다. 그녀의 육신인거다. 

      하지만 도대체 무슨 이유로 몸이 이렇게 된 것인지...

      유헌의 의문을 알아차린 정현이 입을 열려했으나, 자신의 육체에서 몸을 때낸 미할

      라가 먼저 설명했다.

      "깨어나게 하기위해 수번의 수술과 약물을 투입한 결과지. ...추하지?"

      "..그..그러진..."

      "추하잖아. 자신의 몸인데도 난 이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냥 숨이 붙어있

      는 시체잖아."

      피부로 느껴지는 엄청난 악의에 유헌은 놀라 미할라를 바라 보았으나 말과는 다르

      게 그녀의 표정은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잠시 침묵의 시간이 세사람을 감싼 가운데 일정한 주파음이 울린다. 

      그것을 듣듯이 눈을 감고있던 미할라는 이내 결심을 굳힌 모양인지 눈을 떠 유헌과 

      정현을 바라 보았다. 모친의 생각을 이미 짐작하고 있는 정현의 표정은 조금만 건

      드려도 금이 갈만큼 딱딱하게 굳어져 있다. 

      그런 정현을 의아하게 바라보던 유헌은 자신의 어깨위에 손을 올리는 미할라의 얼

      굴에 시선을 주었다.

      "내 생각이지만, 유헌 넌 이 세상에 그다지 미련이 없다고 생각해. 오히려 칸크빌레

      가 있던 그 세계가 개인적으로 더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고 느꼇어. 그렇지?" 

      "........맞아요."

      이곳을 아주 떠난다면 물론 그리워 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은 아주 짧은 시일을 같이 지냈던 칸과 일행들을 잊을수가 없다. 

      그들을 다시한번 볼수만 있다면 이런 곳따위- 기꺼이 버릴수 있다고도 말할수 있

      었다. 

      단단한 결심이 어린 유헌의 얼굴을 바라보던 미할라는 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그를 위한다고 하나 어쩌면 이곳은 자신이 가장 원하고 있었던 일일지도 모른다. 

      "널 지금 저곳으로 보낼꺼야."

      자신의 말에 화색을 짓는 유헌의 얼굴을 바라보던 미할라는 속이 불편했다. 

      다음에 이어질 말이 있기에 그의 얼굴을 마주하고 미소를 지을수가 없다. 

      망설이던 미할라의 옆으로 다가온 정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을 바라보던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분명 이 둘에게 상처가 될 일이겠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그들의 마음에 남아 괴롭

      히는 기억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대신 부탁이 있어."

      "제가 할수있는 거라면 뭐든지."

      "...그럼 부탁해 볼까?"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유헌의 얼굴을 바라보며 서글픈 미소를 지은 미할라는 숨

      을 들이 마셨다. 

      이럴때 술에 취할수 없는 자신의 체질이 원망스럽다. 

      이런 말을 어떻게 제정신으로 할수가 있단 말인가. 

      눈을 감고 가만히 서있는 미할라의 모습에 의아한 표정을 짓던 유헌은 '그럼 말할

      게.'라는 그녀의 말에 미소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이 무엇이든 자신이 할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들어주고 싶다. 

      그렇게 해서 칸들을 다시 만날수 있게만 된다면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지금 당장 산소 호흡기를 떼내줘."

      자신의 육체에 달려있는 호흡기를 가르키며 말하는 미할라의 말에 유헌의 얼굴이 

      급속도로 굳어진다. 그 얼굴에 초조함을 느낀 그녀는 유헌의 양 어깨에 손을 올려

      놓고 잘 들으라고 엄포를 놓은 뒤에 입을 열었다. 

      "당장 저 세계에 넘어가려면 그만한 충격이 필요해. 저쪽과 이쪽의 경계를 흩틀어 

      놓을만한 그런 충격이 말야. 칸크빌레가 내 성지 위에 피를 흘렸을때, 발생했던 파

      장보다도 더 큰것이 말야."

      "....미...."

      "아무 말도 하지마. 날 죽이라는 뜻이 아냐. 단지, 단지......."

      유헌의 양 어깨에 손을 올려놓은 미할라는 자신을 바라보는 정현의 눈빛을 확인하

      며 입술을 떨었다. 

      그에게 상처가 줄것이다. .....앞으로 자신이 할말은. 

      하지만 이 말을 하지 않는다면 눈앞의 착한 아이는 절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꼭 저 세계로 돌아고 싶지만 자신을 죽여서까지 갈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깐.

      "난......지쳤어..  

      ...........이젠...지쳤다고."

      그녀답지 않은 약한 소리에 유헌은 안색을 굳혔다. 

      눈가가 붉어진 채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정현과 자신의 어깨에 양손을 올리고 

      흐느끼는 미할라를 바라보며 유헌은 도대체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해야할지 알수가 

      없었다. 

      단지 얼굴을 굳힌채 눈앞의 두 사람을 바라 볼뿐이었다. 

      "이쪽에선 20년이지만, 저쪽에선 500년이야. 

      육체는 죽었는데 정신만 떠다니는게 옳은거라고 생각해?"

      "..........."

      "사랑했던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봐 주지 않아. 물론 정현이 날 알아봐 주긴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그런 그를 매도하지. 보이지 않는 존재를 보이는 것처럼 한다고.. 

      그런 그의 모습을 볼때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할것 같아? 

      ...............무슨 행동을 할수 있을것 같아?"

      숨을 삼킨 미할라는 볼을 따라 흘러내린 액체가 바닥을 젖시는 것을 바라 보았다. 

      지금 고개를 들어 유헌과 눈이 마주치게 된다면, 지금 당장 자신을 죽여 달라고, 이

      런 고통에서 당장 자신을 풀어 달라고 울부짓을 것 같았다. 

      애써 격해 지려는 감정을 추스르며 그녀는 눈을 감았다. 

      "살인이 아냐. 난 이미 죽어있는 상태인걸. 저대로 두었다간 3년안에 죽을거야. 

      난 그렇게 죽긴 싫어. 그렇게 의미없이, 시간이 되서, 아무것도 못하는 저런 나약한 

      모습으로 죽긴 싫어. 

      그런거 절대 용납할수 없어. 난...!"

      ".............."

      "난 여왕이잖아? 난 아주 대단한 사람이잖아?"

      어깨를 조여오는 미할라를 가만히 바라보던 유헌은 입술을 깨물었다. 

      밝아 보이는 외향만을 바라보니 그 본질을 알아볼수 없었던 것이다. 

      오로지 자신만이 이해해줄수 있는 것인데, 누구보다 괴로웠을 그녀의 마음을 알아

      주지 못했다. 

      이곳에선 20여년 동안 식물인간의 상태로 지내는 데다 그쪽 세계에선 억지로 봉인

      을 당해 500여년 동안 황금의 기둥을 떠 받들여야 한다. 

      그럼에도 자신은 점점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져 자신을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없어진다는 것은..... 

      오로지 혼자서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유헌은 상상조차 할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렇게 살아온 것이다. 

      살고 있다고도 죽었다고도 할수없는 불완전한 삶을 살아온 것이다. 

      "난.. 마지막으로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 널 도와주고 싶어."

      "미할라..."

      "그러니 부탁할게. 오로지 너만히... 날 자유롭게 해줄수 있어. 너라는 존재에게 밖

      에 의지할수 없는 내 마음을.... 괴롭겠지만 이해해줘."

      괴로운 일을 하게해서 미안해.라고 말하는 그녀를 바라보던 유헌은 손을 들의 미할

      라의 머리위에 올려 놓았다. 

      과거 사람을 한번 죽인 적이 있었다. 

      그때는 엄청난 죄책감과 공포에 참을수 없으리만치 스스로에게 악감정을 터트렸

      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한없이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끼며 유헌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순전히 칸쪽으로 넘어가기 위한 목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더라면, 자신은 미할라의 

      호흡기를 떼는 동시에 여기서 뛰어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에 아니기에 유헌

      은 어깨 위에 올려져 있는 미할라의 손을 떼내고 뒤로 물러났다. 

      자신을 바라보는 정현의 음울한 눈동자에 잠시 경직된 유헌이지만, 그의 얼굴을 애

      써 외면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를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서다. 

      그동안 고통을 받아온 한 여성을 구하기 위해서야. 

      그리고 그로써 자신도 이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그녀가 죽음으로써 미할라와 자신은 구원받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생각치 않으면 이런짓 할수 있을리가 없다.

      ".............미안."

      누구를 향해 말하는 건지 미묘한 모습으로 사과의 말을 건낸 미할라는 서서히 허공

      으로 부숴져 내려갔다. 그리고 누워있는 미현이라는 사람의 속으로 완전히 살라지

      자 미약하게 흔들렸던 생명 곡선이 좀더 크고 깊게 움직인다. 

      그것을 바라보던 유헌은 부들거리는 다리를 움직여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자신과 미할라를 위해서. 

      반드시 자신이 해야만 할 일.

      띠-딕.

      띠-ㄱ

      서서히 미현의 얼굴에 붙어있는 호흡기로 다가가는 유현의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정현은 입술을 깨물며 유헌의 손위에 자신의 손을 얻혔다. 

      자신의 행동을 제지하려는 것인가해서 안색을 굳히던 유헌은 그러나 자신을 손을 

      잡고 앞으로 끄는 그의 행동에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돌렸다. 

      함께... 할 생각인 거다. 

      "어머니는..."

      정현은 쉰듯한 자신의 목소리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헛기침을 하더니 다시 입

      을 열었다.

      "어머니는 정혼자가 있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어. 

      난 강제로 가지게 된 아이고."

      유헌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정현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날 임신한 어머니는 차도로 뛰어 드셨고.. 식물인간 상태가 되셨지. 

      한때 소생의 기회가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또다시 목숨을 끊을거라는 정혼자의 두

      려움이 그녀를 이렇게 만든거야. 그리고 난 식물인간의 상태인 어머니의 뱃속에서 

      무려 3년간이나 머물다 태어나게 되었지. 

      .................괴로웠을 거야."

      호흡기에 손이 닿자 잠시 몸을 경직시킨 정현은 눈을 감았다 뜨며 마음을 진정시켰

      다. 손에 힘을 빼고 자신의 다음 움직임을 기다리는 유헌의 행동에 경직된 미소를 

      지어준 그는 호흡기를 잡아 당겼다. 

      단단하게 메어져 있을거라는 생각과 달리 너무도 쉽게 떨어져 나가는 그것에 정현

      은 속에서 올라오는 울음을 삼키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띠-딕.

      "이제....."

      띠-ㄱ.

      "자유롭게 해드리고 싶어."

      삐---------------------------

      서서히 줄어들던 곡선이 일자로 그어지자 유헌은 눈을 감았다. 

      정현과 그의 손안에 있는 자신의 손은 더이상 떨고 있지 않았다. 

      ".............."

      귀가 멍멍한 것이 왠지 너무나도 지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정현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던지 유헌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뗀 그는 한숨

      을 쉬며 침대에 양손을 올려놓고 몸을 숙였다.

      "두사람은 상처가 깊어. 어머니는 저렇게 살다 가셨지만."

      "...정현."

      "..............유헌, 너만이라도 행복하길 바란다."

      침대 위에 맥없이 올려진 미현의 손에 떨어지는 은색의 물방울을 바라보던 유헌은 

      저도 모르게 볼을 타고 흘러 내리는 눈물에 당황하며 손을 들어 입을 막았다. 

      울어야 할사람은 자신이 아닌 미할라의 아들은 정현이다. 

      알고 있지만,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흘러 내리는 눈물과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끅끅대는 목졸린 울음소리에 유헌은 더 당황하며 정신없

      이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이렇게나 슬픈 기분은 처음이었다. 

      부친의 냉대도, 가헌의 무시도 이 정도의 고통과 슬픔을 유헌에게 주지는 못했다. 

      그런데 지금의 이 느낌은 무엇이란 말인가. 

      "..웁."

      그것은 아마도... 

      미할라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었기 때문이리라. 

      자신도 저렇게 슬프게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너무나 강렬하게 느낀 나머지 

      격해진 감정이 추스려지지 않는 것이다.     

      "미..미안.. 나... 난...!"

      미현의 침대에 엎드린채 소리없이 눈물을 흘려대는 정현의 모습에 입술을 깨문 유

      헌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와 동시에 미현이 있던 병실의 문이 부숴질듯 열리고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들이 닥친다.

      "둘다 잡아! ! !"

      "......유헌아 ! ! !"

      발에 걸리는 전선들과 수많은 호수들을 마구 떨쳐내며 들어 오려는 사내들과 그 사

      이로 보이는 새하얀 얼굴에 유헌은 입을 떼었다. 

      가헌.

      그리고 그와 동시에 순식간에 눈앞을 채우는 파랗게 넘실거리는 물살에 유헌은 눈

      을 감으며 천천히 몸을 뒤로 눕혔다. 

      마지막으로 비명같은 가헌의 목소리와 당황하는 사내들의 아우성이 귓가를 때렸지

      만, 몸을 감싸는 포근한 감각에 유헌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감싸안는 따

      뜻한 온기에 매달렸다. 

      어머니가 아기를 안듯이 자신에게 매달리는 유헌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넘기

      던 미할라는 그의 머리에 얼굴을 묻으며 눈을 가느다랗게 떳다.

      - 내가 가장 슬픈게 뭔지 알아? 바로 정현이를 한번도 안아주지 못했다는 거야. 

      - 난 몸이 없으니깐, 그를 안아 줄수가 없었어. 그저 쓰다듬어 줄뿐.

      - 그에게 어머니의 체온을 안겨주지 못한게 제일 슬프고 괴로워.

      그렇구나. 

      미할라의 나직한 말에 수긍한 유헌은 그녀의 따뜻한 품에 고개를 문질렀다. 

      이렇게나 따뜻하고 부드러운데.. 그것을 알지 못하는 정현이에게 애잔한 느낌이 든

      다. 그런 유헌의 정수리를 손가락을 툭툭 문지르던 미할라는 고개를 들어 유영하는 

      도착지점이 눈에 보이자 품속의 유헌을 떼어내고 그쪽으로 밀어 냈다. 

      미할라. 

      손을 자신에게로 뻗는 유헌의 모습을 바라보던 그녀는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었다.

      - 칸을 찾아봐. 

      - 시간을 되돌려 놨으니 요크발이라는 자에게 찔리기 전에 만날수도 있을 거야. 

      자신의 말에 환한 얼굴을 짓는 유헌에게 미할라는 다시 한번 물었다.

      - 내가 가장 행복 했던 때가 언제인지 알아?

      - 정현이를 낳았을 때야. 

      ............

      유헌은 숨을 죽인채 부드럽게 미소짓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 보았다. 

      그러나 이내 눈을 가늘게 접으며 입가에 미소를 띄었다. 

      그렇구나.

      - 응, 그래.

      그런거야.

      '그런거야.'라며 유헌을 말을 따라한 미할라는 무척이나 상쾌하다는 듯이 소리높여 

      웃었다. 

      그와 동시에 몸을 감싸던 물이 진동하는 것을 느끼며 유헌도 마찬가지로 웃었다. 

      갑자기 물살이 강해져 머리위에서 쏫아져 들어오는 황금빛으로 물든 원모양으로 

      빨려 들어가는 유헌을 바라보며 미할라는 입을 열었다. 

      - 여왕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엄숙하게 말하던 그녀는 이내 장난스럽게 윙크를 하며 손가락을 세워 황금빛의 원

      을 가르켰다.

      - 가.

      가라.

      마지막으로 미할라의 모습을 눈으로 담은 유헌은 입술을 깨물며 그녀가 가르키는 

      곳으로 있는 힘껏 물살을 가르며 나아갔다.

      칸이 있는 세계로. 유헌이 닿아간다.

      탁. 

      여왕의 기둥의 중심에 도착한 요크발은 바로 기둥 반대편으로 몸을 숨겨 칸과 그 

      밑에 깔린 신관의 모습을 주시했다.

      틈은 순간에 노리는 것으로, 칸크빌레의 헛점이 보이는 순간 바로 공격에 들어가기 

      위해 검집에서 검을 빼든 그는 한발 앞으로 내밀었다. 

      "이 놈을 그냥--! !"

      이러한 신성한 곳에서 소리를 지르다니, 여전히 천박한 행도을 하는구나 라고 생각

      하던 그는 손을 올리는 칸의 모습을 포착하는 순간 칼을 세우고 앞으로 돌진했다. 

      사각 지대를 이용했기에 그와의 사이는 불과 열걸음도 채 미치지 못한다.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는데도 눈치채지 못하는 칸의 모습에 요크발은 회심의 미소

      를 지었다. 

      .....이것으로 네놈은 끝이다. 

      이를 악문 요크발은 여기서 칸을 베게되면 자신도 같이 죽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

      었지만, 휘두르는 검의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칸크빌레에 대한 증오심이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게 한 것이다. 

      "끝이다. 칸크빌레! ! !"

      창--! ! 

      살을 가르는 감촉을 기대했던 요크발은 그러나 귀를 울리는 검명과 손아귀가 찟어

      질것 같은 강한 마찰감을 느끼고 붉은 눈동자를 크게 떴다. 

      눈앞에 흔들리는 검은 눈동자와 새하얀 얼굴위로 두들어진 흑빛의 눈동자. 

      ......분명 기억에 있는 얼굴. 

      요크발의 얼굴이 기묘하게 이그러 졌다. 

      "뭐..? ! 어라???"

      막 신관녀석을 내리치려던 칸은 등뒤에서 들려오는 검명에 안색을 달리하고 뒤를 

      돌아보다 자신의 앞을 버티고 서있는 익숙한 등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흔?"

      "칸, 떨어져요!"

      멍하니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칸의 음성에 눈에 열이 오른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은 무척이나 꼴사나운 것이라는 것을 알기

      에 유헌은 마주한 요크발의 검을 뒤로 밀며 이를 갈았다. 

      치사한 변태녀석, 뒤에서 공격을 하다니..! ! 

      "비겁한 놈!"

      "무슨 소리....윽?!"

      자신의 비겁한 놈이라 칭하며 발길질을 하는 가흔이라는 소년의 모습에 여유로운 

      미소를 띄우던 요크발은 엄청난 속도로 다가온 유헌의 발에 배를 걷어 채이고 저만

      큼 굴러 떨어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앞에서, 게다가 게중엔 얼굴을 아는 요인들도 적지않은 상황

      에서 소년에게 배를 걷어차여 바닥을 굴렀다는 것에 충격을 받아 딱딱하게 굳어진 

      요크발의 얼굴을 확인한 칸은 자신이 처한 상황도 잊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그대로 

      내뱉었다. 

      자신의 배를 부여잡고 바닥을 구를듯이 웃어 재끼는 칸의 모습에 입술을 깨문 유헌

      은 몸을 날려 그의 몸을 껴안았다.

      "억...!! 가.. 가흔..! !"

      갑작스런 유헌의 포옹에 칸의 얼굴에 발갛게 달아 오른다. 

      칸의 무슨 생각을 하든간에 가흔의 머리속엔 어서 이곳을 빠져 나가자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보이지 않아도 느낄수가 있다. 

      보이지 않은 사각지대에서 저 요크발처럼 몸을 숨기고 칸의 노리는 수많은 사람들

      의 적의와 그보다 더한 감정을 발산하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이자크라는 존재가. 

      자신과 칸의 힘으로만 빠져 나가는 것은 무리다. 

      이를 악문 유헌은 볼에 떨어지는 황금빛 부스러기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들

      어 하늘에 닿아있는 여왕의 기둥을 바라 보았다.

      미할라.

      "가흔. 왜 그러는 거야?"

      황금빛 기둥을 불안하게 바라보던 유헌은 품속에서 바지락 거리는 칸과 저만치 떨

      어져 자신과 칸을 노려보는, 금방이라도 덤벼 들듯한 요크발에게 시선을 주었다. 

      자신들의 이곳에서 안전하게 빠져 나갈수 있으려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 

      입술을 깨문 가흔은 칸을 안고 있는 두팔에 힘을 주며 기둥을 바라보며 숨을 들이

      켰다. 

      숨을 들이쉼에 따라 가슴이 상승하기에 칸은 가흔이 왜 이러는 건가하고 의문의 시

      선을 던졌다. 아파서 쓰러지더니 아직 열이 내리지 않아 정신이 제대로인 상태가 

      아닌건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큰일이라는 생각에 안색을 달리한 칸이 고개를 들어 가흔에게 뭔가를 말하려

      는 순간 그보다 빨리 그가 입을 열었다.

      "미할라! !"

      갑작스런 고함에 귀를 감싼 칸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 가흔의 모습이 무척이나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칸은 그가 바라보는 여왕의 기

      둥에 시선을 주다 시야에 들어오는 광경에 놀라 입을 벌렸다. 

      "..저런..! !"

      여왕의 기둥에 금이 가기시작 했던 것이다. 

      요크발이 검을 들고 오기는 했지만, 벨려고 했던 상대인 자신은 손끝하나 다치지 

      않은 상태로. 피같은 것을 흘렸을 리가 없다. 

      쓰러진 요크발이 안색을 달리히며 자신의 몸을 살피다 여전히 경직된 얼굴로 여왕

      의 기둥을 바라보는 것으로 보아 그도 상처를 입은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여왕의 기둥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는 것인가!! 

      "도..도망가라! !"

      "으아악--! ! !"

      실제로 여왕의 기둥에 균열이 가는 것에 대해 경험한 적은 없지만, 그 뒤에 이곳이 

      물에 잠긴다는 것은 그 동안의 교육과 실제로 벌어진 참사의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었다. 

      이런대서 물에 잠겨 죽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미친듯이 뛰어가던 사람들은 그러

      나 서서히 균열이 가던 기둥이 반으로 갈라져 황금빛 가루를 뿌리며 서서히 사그라

      지는 모습에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 믿을 수 없는, 그러나 너무나도 아름다운 모습에 시선을 빼앗긴 칸은 자신들의 

      몸을 감싸는 따듯한 기류에 눈을 떴다. 

      자신과 다른 이 마력의 흐름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당황하는 칸의 몸을 강하게 안은 유헌은 고개를 숙여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미할라예요. 칸."

      ".....에?"

      알수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 보는 칸에게 미소를 지어보인 유헌은 자신들

      의 몸을 감싸는 황금빛 무리에 기분좋은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그와 동시에 두 사람 사이에 강한 빛이 터지더니,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칸크빌레! !"

      황금빛의 가루에 감싸이더니 흔적도 사라진 가흔과 칸의 모습에 요크발은 안색을 

      굳히며 그리로 달려 나갔다. 

      여왕의 기둥에 균열이 갔지만 중심은 물에 잠기지 않았고, 하늘까지 쏘아져 있던 

      기둥은 산산히 부서져 어두운 밤하늘 사이로 사라졌다. 

      이해할수 없는 이 사건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멍하니 서있는 자들을 밀쳐내며 

      앞으로 달려나간 요크발이지만, 이미 두사람의 모습이 있을리가 없었다. 

      혀를 차며 땅바닥에 발로 찬 그는 신경질 적으로 머리를 뒤로 넘겼다. 

      여전히 운이 좋은 녀석이다. 칸크빌레는. 

      나지막히 욕설을 뱉어내던 그는 문득 시선을 아래로 내리다 배 중앙에 그려져 있는 

      발자욱에 미간을 찌뿌렸다. 

      "제길.."

      아직도 배가 욱신거리는게 통증이 사라지지 않는다. 

      전에 만났을 때는 자신이 일방적으로 상대했었는데, 아까는 자신의 회심의 일결을 

      너무도 쉽게 받아 넘기고 되려 엄청난 속도와 힘으로 배를 걷어 찼다. 

      남에게 걷어 채이는 것은 굴욕스러우나 도무지 이해할수 없는 사건들에 요크발은 

      화를 낼 기분조차 들지 않았다.

      "칸크빌레는?"

      " ? ! "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눈을 부릎뜨고 뒤를 돌아본 요크발은 기사들 3명의 

      가운데 망토를 눌러쓴 채인 황제를 발견하고 허리를 숙이려 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의 작용으로 다시 허리를 펼수 밖에 없었다. 

      눈에 띄는 행동은 삼가라는 건가. 

      눈을 가늘게 뜨며 황제를 바라보던 요크발은 붉은 입술이 작게 달싹이자 안색을 달

      리했다.

      "칸크빌레는.이라고 물었다. 요크발."

      ".......놓쳤습니다."

      평소같지 않은 서늘한 한기가 도는 목소리에 요크발은 안색을 굳혔다. 

      뭐가 뭔지 모르지만, 황제의 심기가 평소보다 더 안 좋은 것 같았다. 

      그게 비단 칸크빌레를 놓쳐서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던 그는 황제의 주위에 서있는 

      기사들의 안색이 하나같이 창백하게 질려있자 동정의 웃음을 지었다. 

      저런 표정을 지을만큼 황제의 기가 날카롭다는 거다. 

      도대체 무엇이 그의 기분을 저토록이나 언짢게 한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던 요크발

      은 황제의 입에서 나오는 이름에 의아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가흔..이라는 소년 말씀이십니까?"

      "그래, 이곳에. 

      ..........칸크빌레와 함께 사라진 거겠지." 

      물어보는 것이 아닌 확인을 위한 물음에 요크발은 생각없이 고개를 끄덕이다 숨을 

      막힐 것 같은 살기에 안색을 굳혔다. 

      엄청난 살기를 가릴 생각도 안하고 자신의 기운을 있는대로 개방하던 이자크는 숨

      을 몰아쉬며 천천히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노력했다. 

      고작 그런 녀석때문에 자신이 감정의 소비를 할 필요가 없다. 

      "뒷일은 너에게 맡길테니, 빈틈없이 처리해라."

      "............네."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하는 요크발을 서늘하게 내려다본 황제는 기사들을 대동하고 

      몸을 돌려 숲으로 들어갔다.

      바스락.

      분명. 투명하게 변해선 사라지기 직전인 모습으로 달려나가다 산산히 부숴진 기둥

      에서 쏫아져 나오는 물길에 휩싸였다. 가흔이라는 이름을 지닌 이계인은. 

      그런데 지금의 이 상황은 무엇이란 말인가. 

      기둥은 부숴졌으나 그대로 사라지고 물은 폭사되지 않았다. 

      칸크빌레는 상처를 입지 않았고, 이계로 돌아간 가흔이라는 소년이 다시 나타나 그

      와 함께 도망갔다. 

      탁.

      여왕의 중심에 머물러 있던 거대한 기가 사라진 것이 이번일이 벌어진 원인일테지. 

      분명 그녀의 도움으로 가흔이라는 녀석이 돌아온 거고, 시간의 흐름이 잠시나마 역

      으로 흐른 것이다. 

      고단수의 마법이나 이자크는 이미 한번 시행을 해보았다. 

      그것에 대해 착각할리가 없는 것이다.

      "제법 하는군...."

      자신의 검에 찔려 헐떡거리던 가흔의 모습을 떠올리던 황제는 입가를 조금 올려 보

      았다.

      진심이 되어 버렸으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 

      "반드시 죽여줄테다."

      나지막하게 중얼거린 이자크는 멈춰 서있던 걸음을 다시 옮겼다.

      황제의 주변을 둘러싼 기사들은 누구에게 저토록이나 진한 살기를 뿜어내는진 몰

      랐으나, 다만 그 당사자가 되는 상대방에게 지독한 동정심이 드는 것은 어쩔수가 

      없었다. 

      서로의 얼굴의 보며 한숨을 쉬던 그들은 저만큼 떨어진 황제의 모습에 당황하며 서

      둘러 그의 뒤를 따랐다.

      탁탁탁.

      여왕의 중심지로 달려 나가던 샤한은 공기의 수근거림에 안색을 바꾸고 고개를 들

      었다. 그리고 서서히 금이가는 여왕의 기둥을 발견하곤 걸음을 멈추고 저도 모르게 

      노웬의 옷자락을 잡아 당겼다. 

      역시나 금이 가기 시작하는 여왕의 기둥을 바라보고 있던 젤과 노웬은 숨을 죽이고 

      머리속을 스쳐지나가는 한 인영에 안색을 파랗게 질렸다. 

      저것은 분명 여왕의 중심지가 잠기기 전에 보이는 형상이다. 

      그렇다면 혹여나 칸의 신상에 무슨 문제가 생긴것은 아닐까? 

      입술을 깨물며 뛰어 나가려던 노웬의 옷자락을 잡은 젤은 손가락을 들며 외쳤다.

      "틀림니다!! 그런 현상이 벌어지기에 필요한 마력량이 아닙니다! ! 저건.. 단지."

      말을 채 끝맺지도 못하고 얼버부리는 젤의 얼굴을 바라보던 노웬은 다시 고개를 돌

      려 반으로 갈라져 허공으로 사라지는 기둥의 모습을 확인했다. 

      마치 물보라가 허공에서 사방으로 흩뿌려 지는 것 같은 그 장관에 숨을 죽이던 노웬

      은 정신을 차리고 여전히 멍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샤한과 젤의 정신을 챙겼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칸님을..! !"

      파-악.

      좁은 골목이 대낯같이 환해질 정도로 강한 빛에 노웬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검쪽

      으로 손을 내뻗었다. 자신들을 발견한 적들인건가하고 서서히 사라지는 빛에 시선

      을 주던 노웬은 점차 뚜렷해 지는 두 인영에 눈을 크게 떴다. 

      "윽.. 뭐야. 이건?;;"

      "칸. 일어나 봐요."

      갑자기 밝은 빛을 발하며 나타난 칸과 가흔의 모습에 노웬과 젤, 그리고 샤한은 입

      을 다물었다. 그런 그들을 미쳐 알아채지 못한 유헌과 칸은 이동시 있었는 어지럼증

      에 머리를 털며 서로를 바닥에서 일으켜 세워 주었다. 

      옷을 털고 있는 자신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는 칸의 모습에 미소를 지어보인 유헌

      은 갑자기 목이 메어오는 느낌에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돌렸다. 

      눈가가 붉어진 채로 고개를 돌리는 모습을 아파서 그런거라고 착각한 칸은 안색을 

      달리하며 그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그런 칸의 팔을 치워내며 괜찮다고 말하려던 유

      헌은 그의 뒤로 보이는 세사람의 모습에 입을 다물고 눈을 크게 떴다. 

      그렇게 친하지 않은 사람들이지만, 저들조차도 반갑기 그지없다. 

      ".......칸, 노웬이예요."

      "에?"

      가흔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칸은 그의 말에 입을 벌리며 자신의 뒤를 바라 보

      았다. 갑자기 나타난 두사람에 놀란 표정을 지은채인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

      보던 칸은 미간을 찌뿌리며 혀를 찼다. 

      하나같이 벙~한 모습이 상당히 피곤해 보인다.

      "도대체 어딜 싸돌아 다니는 거야? 얌전히 여관에서 잠이나 자지."

      그를 찾으러 나선 자신들을 보고 눈살을 찌뿌리며 하는 말에 노웬등을 이를 갈았다. 

      도대체가 일이란 일은 죄다 본인이 저질러 놓고도 저런 말을 해댄다. 

      막 뭐라고 하려던 노웬은 그러나 칸의 어깨를 두들이며, 묻는 가흔에 의해 입을 다

      물었다.

      "그런데 칸은 어째서 그런 곳에 있었던 거예요?"

      "에? 아...아! 그게 말야."

      가흔이 무엇을 묻는 것인지 몰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던 칸은 손뼉을 치며 품속에 

      넣어 두었을 약초를 찾았다. 

      '내가 여왕의 중심에 갔었던 이유는 널 낮게 하기위한 약초를 찾기 위해서야.'라는 

      멋진 말을 하고 신관에게 강탈한 약초를 건내주려던 칸은 그러나 품속에서 으깨진

      채로 나오는 파란 식물에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이걸 찾으려고 그 개고생을 했는데, 이런 으깨진 모습으로 나오다니.. 

      이렇게 되면 가흔에게 줄수도 없잖냐 말이다. 

      귀를 내린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짓는 칸의 손에서 약초를 받은 유헌은 그것을 바라보

      다 이내 웃는 얼굴을 보였다. 

      그가 왜 이것을 꺼내 들었는지 이유를 알것 같았기 때문이다.

      "칸."

      "..미안. 원래는 좀더 예쁜 모양인데..."

      잔뜩 풀이 죽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유헌은 허리를 숙여 그의 입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부드럽고 말랑한 살이 맞닿는 느낌에 눈을 감았던 유헌은 입술을 떼

      고 숨소리가 닿을 만한 거리에서 눈을 떴다. 

      원래 세계에서도 이처럼 자신을 위해주는 사람이 있엇던가. 

      칸이라는 존재가 있음에 감사하며 유헌은 눈을 가늘게 휘었다.

      "고마워요"

      "............."

      "돌아가죠. 모두가 걱정할거예요."

      키스로 인해 잠시 정신이 나간 칸의 팔을 잡아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노웬등에게 

      다가간 유헌은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거냐는 듯한 눈빛으로 웃어 보였다. 

      "왜 그래요? 이곳은 위험하지 않나요? 저 요크발을 봤는데 말이죠."

      "......일단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가죠."

      전과는 다른 잔잔하게 고여있는 유헌의 눈빛을 확인한 노웬은 말을 하고 몸을 돌렸

      다. 

      자신의 향해 눈짓을 보내는 샤한에게 손가락을 들어 입에 대보이는 것으로 조용히 

      하라는 표시를 해보인 노웬은 뒤에서 칸과 함께 걸어오는 가흔을 바라 보았다. 

      그와 떨어진 시각은 불과 반나절에 불과하다. 

      그런데 뭔가 저 분위기는..

      "노웬님."

      자신과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거는 젤에게 시선을 준 노웬은 정

      면을 바라보며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저 칸을 제외하고 모두가 가흔의 변화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칸님! !"

      가흔과 함께 들어오는 칸의 모습을 확인한 라프헨은 울먹이는 표정으로 칸에게 달

      려들어 연신 '돌아와서 다행이예요, 칸님. 가흔군.'이라고 쉴새없이 중얼거려 두사

      람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곤란해 하는 두사람을 위해 라프헨을 그들에게서 때어난 라헨은 들어가서 쉬라는 

      말을 건내곤 자신의 동생의 손을 잡고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훌쩍이던 라프헨의 울음소리가 금새 그치는 것을 보아 역시나 라헨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도대체 어딜 발발거리는 거냐. 네 놈은?"

      "..............."

      " ? 어라? 이놈 왜 이래?"

      평소라면 자신의 말에 발끈하고 덤볐을 칸이 얌전히 있자 미간을 찡그린 유크렌이 

      오브의 품에서 내려와 그의 눈앞에 자신의 작은 손을 흔들어 보인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미소짓은 채로 바라보던 유헌은 유크렌의 눈이 자신을 바라보

      자 더 미소를 진하게 지으며 그 작은 몸을 안아들어 볼에 자신의 얼굴을 마구 비볐

      다. 

      부드럽은 피부와 어린아이의 높은 체온이 안정과 기분좋음을 느끼게 해준다.

      "으갸갸갸~ 이게 무슨 짓이야?! !"

      "보고 싶었어요. 용."

      자신의 얼굴을 마구 밀쳐대는 용의 모습을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며 미소짓는 

      유헌의 모습에 주변에 있던 자들이 묘한 표정을 짓는다. 

      왠지 모르게 분위기가 변한것 같다. 

      여전히 아둥바둥대는 용을 품에 안은 채인 유헌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오브에게 

      왜 그러냐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그런 유헌의 모습을 아래 위로 흩어보던 오브는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가흔... 머리카락이 좀 긴것 같은데? 키도 좀 자라고."

      "아? 그런가요?"

      "게다가 옷도 이상해."

      오브는 비잔힐 상가의 전 가주였던 자다. 

      후처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가문에 밀려나긴 했지만, 그 재능이 퇴색되지는 않는 법. 

      사람의 얼굴과 특징을 잘 기억하는 그의 특기가 가흔을 보자마자 요란한 소리를 울

      려대는 것이다. 

      머리카락도, 키도, 분위기도, 입고 있던 옷도 전-부 다르다고. 

      그런 오브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하던 유헌은 자신의 모습을 흩어 보았다. 

      옷은 정현이 준 것을 입어 이곳과 그 디자인부터가 틀리니 어쩔수 없다고 해도 어느

      새 머리카락과 키가 자란 모양이다. 

      하긴 원래 세계에서 근 2달을 지냈으니 자라지 않는게 오히려 이상한 건가? 

      "아마도 아파서 그런게 아닐까요?"

      "...아프다고 머리카락이나 키가 자라진 않아."

      "예외라는 것도 있죠. 샤한."

      아무래도 분위기가 묘해진 유헌의 주변을 알짱거리던 샤한은 자신을 바라보며 입

      끝을 올리는 그의 모습에 몸을 굳히며 그 자리에 굳었다. 

      전에 녀석이라면 자신의 말에 굳이 대답하지 않고 단지 귀찮다거나 상대할 필요성

      을 느끼지 못한다는 시선을 던졌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의 말에 대답을 해주는 그 모습에 굉장히 묘한 느낌을 받은 샤한은 순간이나마 

      그의 얼굴을 넋놓고 바라본 자신을 깨닭곤 안색을 굳히며 방밖으로 뛰쳐 나갔다. 

      그런 샤한의 모습에 잠시 일행들이 시선이 몰리는 순간 유헌은 자신의 팔을 잡아끄

      는 칸의 행동에 얼굴을 내려 '왜요?'라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그런 가흔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칸은 가타부타 말없이 그의 팔을 잡아 라프헨이 

      들어간 옆방으로 들어갔다. 

      "에? 잠깐.. 칸님!" 

      칸에게 오늘 일에 대한 충고와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말라는 엄포를 하려했던 노웬

      은 방으로 들어가는 둘의 모습에 당황하며 손을 뻗었지만, 이미 안으로 들어간 그들

      은 문까지 잠그는지 요란한 소리를 내다 잠잠해 진다. 

      손을 뻗은 채로 굳은 노웬의 모습을 바라보던 젤이 소리소문없이 나타나 둘이 들어

      간 방문에 손을 대며 노웬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잠갔네요."

      억양에 변화없이 단조로운 젤의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던 방안의 일행들은 하나 둘

      씩 자신들이 배정받은 방으로 들어갔다. 

      칸과 가흔이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은 늦은 새벽. 

      뭔가를 하더라도 일단은 자고봐야 하는 것이다.  

      끼-익.

      거침없이 방문을 잠그고 자신을 침대위에 앉히는 칸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유

      헌은 '이래도 괜찮을 까요?'하고 물었지만, 칸의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잔뜩 굳은 얼굴로 낡은 방 여기저기를 뒤져 마른 수건을 찾은 그는 잠시 고심하던 

      표정을 짓더니 그것을 그대로 들고와 여전히 앉아있는 유헌의 어깨를 밀어 침대 위

      로 눕힌다.

      털썩.

      "어..어라. 칸."  

      갑작스런 칸의 행동에 당황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유헌은 그가 이불을 끌어 목

      까지 덮어주고 물기없는 수건을 이마에 올려 놓은채 낡은 침대위로 올라와 앉자 입

      을 다물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유헌에게 웃어보인 칸은 '좋아.'라는 말을 하며 팔을 걷어 붙이고 

      누워있는 유헌의 가슴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스삭스삭하고 조용한 방안을 울리는 마찰음에 귀를 기울이던 유헌은 눈동자를 올

      려 알수없는 행동을 하는 칸을 바라 보았다. 

      "저기.. 이게 무슨 행동이지요?"

      "아팠다며."

      "....네?"

      "아파서 머리카락이랑 키가 자랐다며. 그건 좋은 일일수도 있지만, 문제는 아프다는 

      것. 내가 고쳐 주겠어."

      칸의 말에 유헌은 입을 다물었다.

      머리위에 올려진 마른 수건과 자신의 가슴을 쓰다듬던 그의 행동도 그런 의미의 것

      이었단 말인가. 

      갑자기 속에서 치미는 뜨거운 것에 '욱'하고 입을 일자로 다문 유헌은 막을 생각도 

      하기전에 흘러 나오는 눈물에 당황하며 손을 들어 눈가를 눌렀다. 

      너무나 격해진 감정에 딸국질까지 나와 어쩔줄 몰라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칸

      은 얼굴을 붉히며 앉아있는 침대에서 일어나 유헌의 앞에 거의 엎드리다 싶이 한 자

      세로 말을 더듬었다. 

      "무..무무무.. 무슨 일이야?!! 내.. 내가..가 무..무슨 자..잘못을..."

      "....아..아니.... 흡"

      "그..그런데.. 어..어째서..누..누누누...."

      가흔이 눈물을 흘리는 것따윈 한번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물론 바로 이날의 낮이었던 때에 정신이 없는 가헌이 눈물을 몇방울 흘리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정신이 없었을 때의 일이다. 

      이런, 이렇게 무방비한 모습으로.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울지는 않았단 말이다. 

      가흔이 아파서 우는건데 이상한 생각을 하며 얼굴을 붉히는 자신은 짐승이라는 생

      각이 마구마구 들었지만 어쩔수가 없다. 

      끅끅거리며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는 유헌의 모습을 내려다 보던 칸은 천천히 손을 

      뻗어 그의 얼굴 옆에 손을 대었다.

      끼-익.

      무게에 눌려 낡은 침대가 비명을 지르는 것이 들리지만, 칸의 신경은 오로지 유헌 

      한사람에게만 쏠려 있었다. 

      "울지마."

      네가 울면 난. ......어찌해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어. 

      유헌의 바로 앞까지 고개를 내린 칸은 훌쩍거릴 때마다 콧끝으로 흘러 들어오는 가

      흔의 향기에 아찔함을 느끼며 혀를 내밀어 눈물을 흘리는 눈가를 핣았다. 

      분명 짭잘한 맛일텐데, 왜 이렇게 입안에 침이 고일 정도로 달콤한 걸까. 

      예상외의 맛에 놀라 자신의 입술에 손가락을 댄 칸은 눈에서 손을 때고 자신을 바라

      보는 가흔과 눈이 마주치자 숨을 들이켰다. 

      "...가흔."

      가슴앞에 모아진 팔을 잡아 자신의 등에 두르도록 한뒤 유헌의 입술을 엄지로 쓰다

      듬은 칸은 서서히 고개를 내렸다. 

      윗입술에 닿은 칸의 뜨거운 숨결에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문 유헌은 괜찮다는 듯이 

      자신의 볼을 쓰다듬는 칸의 손가락을 느끼며 서서히 몸의 힘을 빼냈다. 

      할짝.

      가흔의 윗입술과 아래입술을 핣은 칸은 입맛을 다시며 입을 벌려 유헌의 도톰한 입

      술을 덮었다. 목구멍을 간질거리며 넘어가는 유헌의 숨에 온몸을 긁고 싶은 충동을 

      느낀 칸이지만, 이내 참아내고 계속해서 그의 입술을 빨았다. 

      서서히 벌어지는 가흔의 입술에 그 주변을 배회하던 칸의 혀가 안으로 빨려 들어간

      다. 물컹한 물질이 들어오는 감촉에 눈을 꾹 감은 유헌은 안고 있는 칸의 등을 강하

      게 끌어 앉았다. 

      끼-긱.

      낡은 침대가 두사람의 무게를 이깆 못하고 낮은 비명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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