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33/55)

      콰-앙! !

      성을 뒤흔드는 굉음에 노파는 안색을 굳혔다.

      "샤르비나님! !"

      "......유모 날 따라와- 나머지 녀석들은 저들의 발길을 잡아라! !"

      샤르비나는 노파의 손을 잡고 성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불안하게 바라보던 시녀들과 시종들은 샤르비나의 마지막 말

      을 따올리곤 서둘러 성의 입구로 뛰어갔다. 주인님이 도망갈때까지 몸으로 저들을 

      막아야 하는것이 그들에게 내려진 명령인 것이다. 

      그들에게 잔인한 명령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쩔수가 없었다. 

      안의 칸크빌레나, 샤한 그리고 나머니 일행들이 무사히 도망갈때까지 저들이 쳐들

      어온 자들의 발목을 잡아야 하는 것이다. 

      턱까지 차오른 숨을 고르며 계단을 오른 샤르비나는 저 앞 식당에서 나오는 칸크빌

      레 일행들을 발견하고 걸음을 좀더 빨리했다.

      "샤르비나! ! 이건 무슨...!"

      "칸님 일단 저를 따라 오세요. 이때를 대비하고 비밀문 몇개는 만들어 두었습니다."

      "칸님은 샤르비나를 따라 먼저 가십시오. 

      저희들은 뒤를 본다음 기회를 노려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유헌이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모르는데. 나도 남겠어!"

      식사중 사라진 유헌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그의 걱정에 극도로 불안한 표정을 짓는 칸의 얼굴을 바라보던 노웬

      은 손을 들의 그의 볼을 가볍게 쳤다. 심각한 상황과 맞지 않게 복도를 울린 날카로

      운 소리는 일행들의 소란을 단숨에 잠재우는 효과를 거두었다. 

      한손을 볼에 댄채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는 칸의 황금빛 눈동자를 뚫어져라 주시한 

      노웬은 평소보다 더 서늘한 음성을 내뱉었다.  

      "지금 저들이 노리는게 샤르비나같습니까? 바로 당신을 노려 벌이는 일이라는 것

      을 왜 모르시는 겁니까? 지금 상황에서 당신이 날뛰다 저들의 눈에 들어가는 것보

      다 몸을 숨기는 것이 우리들에게 더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노웬! !"

      "유헌군이 없어서 못 가시겠다고요? 지금 그걸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당신은 그동안 돌봐주었던 우리들보다 그 유헌이라는 이계인이 더 소중하다는 말

      씀을 하시고 계신 겁니까?"

      노웬의 말에 칸의 얼굴이 이그러졌다.

      "당신이 그토록 소년에게 집착해서 일을 그리치려 한다면 저에게도 수가 없습니다. 

      그자로 인해 일이 망치거나 그르치게 된다면 유헌의 안전도 보장하지 못한다는..!"

      "노웬! !"

      "죽일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지금 당장 이곳에서 피하란 말이다! ! !"

      점입가경인 노웬의 말에 안색을 달리한 칸이 노성을 지르며 말을 막았지만 그보다 

      더 큰 목소리로 노웬은 싸늘하게 내뱉었다. 말에 담긴 노골적인 의미와 분노는 칸

      만이 아닌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순간에 굳게하는 것이었다. 

      파랗게 질려서 자신을 바라보는 칸의 얼굴에 시선을 주던 노웬은 곁에 서있는 마찬

      가지로 안색이 안좋은 샤르비나에게 칸크빌레와 함께 가라는 말을 전했다. 

      노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샤르비나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으려는 칸의 팔을 

      억지로 끌어당겨 비밀계단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이 복도로 쭉 올라가다보면 중간에 풍경화가 걸린 그림이 있답니다. 그 뒤에 비밀

      통로가 있으니 만약의 경우 지체하지 마시고 오십시오. 샤한, 뒤를 부탁한다."

      "걱정말고 칸크빌레님과 피하기나 해요."

      투명스럽게 말을 받는 동생의 모습에 미소를 지은 그녀는 이내 어둠속으로 사라졌

      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그들의 가슴속에 표현할 길없는 찹착함이 서린다. 

      칸에게 노웬이 심한말을 했다곤 생각하나 아주 부정을 할수없는 것은 만약이란 사

      태가 벌어지면 자신들을 유헌은 죽이고 칸을 선택할것이기 때문이리라. 

      이런저린 일로 시간을 잡아먹은 그들은 귓가에 들려오는 요란한 함성에 안색을 굳

      히고 앞으로 뛰어갔다. 

      "노웬님은 젤과 멀리서 지원해 주십시오. 앞은 라헨과 제가 맞죠."

      에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노웬은 젤의 손에서 활을 건내 받았다.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갑자기 쳐들어온 무리들, 자신들과 함께 싸운다고 남아있던 칸크빌레. 

      ........하지만 결과는 엉망이었지. 

      그렇기에 두번다시 그런 어리석은 일을 되풀이 하지 않는다. 

      입술을 깨문 노웬은 멀리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사내의 이마에 활을 쏘았다. 

      정확하게 이마에 박힌 것을 확인한 그는 손을 들었다.

      "그분이 무사히기 전까진 절대로 이곳에서 물러나지 말아라! ! !"

      그와 동시에 무리지어 달려드는 사내들의 모습에 노웬은 입술을 깨물고 다시금 활

      을 장전했다. 

      ".....어중이 떠중이들, 개중엔 알짜베기도 있군."

      요란한 함성을 외치며 성으로 밀려드는 자들을 바라보던 융텐은 쳐들어오는 무리

      중 검은 망토로 몸을 감싼 마도사의 모습에 눈을 가늘게 떴다. 인간의 기준으로 실

      력은 괜찮지만, 뭔가에 집착을 하고 있는 모습이 죽음의 냄새를 풍긴다. 

      갑자기 쳐들어온 자들로 인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유헌 일행들을 바라보던 그는 턱

      에 손을 올린채 어쩔까하고 생각해 봤지만,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유크렌의 모습에 

      이대로 얌전히 있자고 결정한다. 

      품안에 있는 존재를 조금이라도 몸에 떼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은 굉장한 낭비

      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가장 위험할때가 되면... 도와주기로 할까나."

      팔자좋은 소리를 한 융텐은 유크렌의 얼굴에 자신의 볼을 대었다. 

      차-앙! !

      도끼같은 것으로 머리를 내려치려는 사내의 손목을 잡아 뒤로 비튼 유헌은 자신에

      게로 날라오는 물체를 받아치며 잡고있는 사내의 손을 들어 창가로 던져 버렸다. 

      요란하게 창이 부숴지는 소리와 남자의 비명이 귀를 괴롭히는 동시에 다시금 달려

      드는 사내들의 모습에 '쳇-'소리를 낸 유헌은 계단을 오르며 근처에 놓여있던 화병

      이나 가구들을 계단 밑으로 던졌다. 

      몇개는 사내들의 몸에 맞았지만 대부분은 빗나가 자신의 뒤를 따르는 인간들의 수

      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잡아라-! ! 이곳의 인간들중 하나인 모양이다! !"

      "시녀들을 방패로 쓰고 도망가다니.. 비겹한 놈들! !"

      처음엔 엄청난 괴력과 실력을 보이는 소년의 모습에 경직된 분위기의 사내들은 그

      러나 점점 같은 편의 수가 늘자 표정을 달리하며 유헌에게로 달려들고 있었다. 

      차마 베지는 못하고 상처를 입히는 것으로 끝내기에 유헌을 둘러싼 자들의 숫자는 

      서서히 늘어나고 있다. 혀를 찬 유헌은 빠른 걸음으로 맞은편 계단으로 뛰어내려가 

      자신에게 몽둥이를 휘두르는 사내의 얼굴을 인정사정없이 후려쳤다. 

      허공으로 몸을 뛰운 그가 밑의 사내들에게 부딫혀 계단을 오르던 몇몇이 밑으로 굴

      러 떨어지는 것을 확인한 그는 다시 몸을 돌렸다. 

      막 일행들에게 달려가려는 순간 기분이 이상해 짐을 느끼고 성 뒷편으로 달려와 봤

      더니 벌써 수십의 남자들이 침입해 있었다. 

      그것으로 이들의 편이 성안에 있었음을 확인했다. 

      누님이 있는 곳이니 안전하다고 지껄인 샤한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는 상상을 하며 

      뛰어가던 유헌은 머리로 날라오는 화살을 피하며 장식용 돌을 집어 그쪽으로 강하

      게 날렸다.

      "커억!!"

      "이런, 당했다! ! 빨리 가서 잡아, 고작 꼬맹이 하나잖아! !"

      꼬맹이도 꼬맹이 나름이라는 생각을 하며 유헌은 근처에 놓여진 철갑옷을 입은 장

      식용 기가의 손에 들린 창을 빼들어 사내들에게 있는 힘껏 날렸다.

      "죽기 싫으면 피하는게 좋을 거다! !"

      외치기도 전에 구석으로 피하는 자들의 모습에 미소를 지은 유헌은 다시 몸을 돌렸

      다. 어느새 점점 멀어지는 사내들과의 간격에 유헌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의식하고 있지 않았지만, 몸이 너무나 가볍게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는 기분이다. 

      게다가 저들의 움직임이 느릿한 거북이처럼 보이는게 아무리 많은 수가 덤벼들어

      도 자신이 질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전과는 확연히 틀린 감각에 주먹을 쥐어보인 유헌은 코너를 돌아 다시 나타난 계단

      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에스의 모습에 눈을 크게 떴다. 

      "에스! !"

      "....유헌군! ! ! 큿-! !" 

      유헌의 모습에 놀라 눈을 크게 뜬 에스는 그러나 뒤에서 날라오는 마력탄에 안색을 

      굳히며 바닥으로 몸을 굴렀다. 

      몇바퀴 굴러서 다시 자세를 잡으니 아까까지 자신이 서있던 자리가 까맣게 타있다. 

      그것을 보고 안색이 파랗게 질린 에스는 놀라서 이쪽으로 다가오려는 유헌에게 손

      을 저어 보였다.

      "위험하니깐, 다른곳으로 피해있어요! !"

      "그런, 도대체 무슨..! !"

      들고있는 무기 사내들의 모습에 훈련을 받지않은 자들의 모임이라고 생각했는데, 

      설마하니 마도사도 함께 있을줄은 몰랐다. 

      그냥 가라고, 안전한 곳으로 가있으라며 소리치는 에스를 바라보던 유헌은 그에게

      로 날라오는 날카로운 빛과 마력의 기운에 숨을 들이켰다.

      "피해요. 에스! !"

      "에?.. 윽! ! !"

      자신에게 다가오는 마력탄을 피해 몸을 날리던 에스는 왼쪽 가슴에 느껴지는 화끈

      한 통증에 이를 악물었다. 자세를 바로잡지 못해 벽에 놔동그라진 그는 가슴에 박

      힌것이 활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안색을 달리했다. 

      마도사라 마력만 날릴 줄 알고 그것만 신경을 썼더니 이런 실수를 한 것이다.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뜨거운 핏덩이를 뱉어내고 숨을 몰아쉰 에스는 자신의 모습

      에 안색을 달리하고 이쪽으로 달려오려는 유헌에게 오지말라는 말을 하려고 했지

      만, 목은 뜨거운 숨을 뱉어낼 뿐 말이 되어서 나오질 않는다. 

      갑자기 피로가 몰리는 감각에 눈을 가늘게 뜬 그는 자신이 들어온 문 사이로 들어

      나는 마도사의 모습에 입술을 깨물었다. 

      카일을 바라보는 눈동자도 그렇고 자신을 바라볼때의 적의를 확실히 느끼긴 했지

      만, 이렇게 집요하게 자신을 죽이러 올지는 몰랐다. 

      이번 일은 칸크빌레를 노리는 것일수도 있지만, 그 이전에 자신을 노린 저자의 농

      간으로 인해 벌어진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 살아있었군. 쥐새끼같은 녀석."

      "흥. 당신이야 말로 붙어다니던 녀석은 어디에 두고 혼자 여기에 와있는 겁니까?"

      ".......알 필요없다."

      "알 필요없다라..설마하니 버려진거 아닐까요?"

      ".........."

      자신의 말에 정곡을 찌른 듯 대번에 안색이 바뀌는 마도사의 모습에 에스는 쾌재를 

      불렀다. 이런 상황에서 놈을 도발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겠지만, 가만히 당

      하고 있으려니 도저히 못참겠다. 

      여기서 죽는다고 해도 일단 저놈의 속을 뒤집어 놓았으면 한다. 

      그게 비록 엄한 말을 내뱉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아아- 불쌍해라. 그의 사랑을 받고싶은 마도사의 거련한 몸부림이라니- 

      역사상 주인의 사랑을 받는 마도사는 극히 드물다더니... 이제야 알 것 같군."

      "....닥쳐라."

      "이렇게 음험한 일들을 벌이니 어디 정이나 가겠어. 카일도 마찬가지지-"

      이를 갈며 자신을 죽일듯이 노려보던 마도사는 손을 들어 손끝에 희미한 마력을 끌

      어 모은다. 

      지금 입안에 맴도는 이 말을 내뱉으면 자신은 반드시 죽을 것이다. 

      하지만.. 뱉어내고 싶어서 도저히 못 참겠다.

      "아무리 네녀석이 그에게 매달려도 카일이 사랑하는 건 나라고-"

      "네 이놈! ! ! ! !"

      귓가를 울리는 엄청난 노성과 눈앞에 터지는 빛에 에스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고 입

      술을 깨물었다. 

      마도력의 실현은 발열과 동시에 나타난다. 

      빛이 시야를 가로막는 동시에 온몸이 타들어가는 감각을 상상했던 에스는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자 실눈을 뜨며 앞에 서있을 마도사를 바라 

      보았다.

      "...유헌.."

      에스는 마도사의 손을 잡아 위로 비튼 유헌이 그의 가슴에 검을 박고있는 모습에 

      멍하니 입을 벌렸다. 

      유헌의 뒷모습만이 보이는 각도에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에

      스는 가슴에 박힌 활에 대한 통증을 잊을 정도로 놀라고 있었다.

      ".........네..네..놈은.."

      "............."

      "...제..길... 이런..데..서.."

      눈을 가늘게 뜨며 투명한 액체를 뱉어내는 마도사의 가슴에 박힌 검은 비틀자 핏물

      을 뱉어낸 그의 무릎에 꺽인다. 

      서서히 바닥으로 쓰러지는 그는 유헌이 잡고있는 손이 들어 올려진 상태라 목을 뒤

      로 넘겨진채 자신을 바라보는 검은 눈동자를 바라 보았다. 

      아무런 감정이 섞이지 않고 단지 일렁이기만 하는 저 눈동자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난.. 잘..못하....않..아.."

      .............난 잘못하지 않았어. 

      단지 그의 관심을 받고싶어서 이런 것인데 잘못이란게 뭐야. 

      마지막으로 생명의 불꽃을 강하게 일렁이던 마도사의 눈빛이 차갑게 죽어가자 잡

      고있던 손을 놓은 유헌은 검을 빼들었다. 

      뜨거운 핏물이 옷을 젖셨지만, 그는 아무런 감흥이 들지 않았다. 

      단지 점점 차가워지는 마도사의 몸을 바닥에 바로 눕히고 그의 눈을 감겨 주었을 

      뿐이다. 

      "..유..유헌."

      "........."

      "...죽은..건가요?"

      에스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 유헌은 눈을 감고있는 마도사를 가만히 바라 보았다. 

      분명 사람을 죽였는데, 처음과 같은 죄책감이나 참기힘든 소름이 돋는 감각이 생기

      지 않는다. 

      다만 고요할 뿐. 잔잔한 냇가에 돌을 던질때 생기는 미미한 파문이 가슴에 그려지

      는 감각만이 막연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사람을 죽였다. 그러나 아무 감각이 들지 않는다. 

      이것이 칸이나 다른 이들이 말하던 무감이라는 것인가. 

      하도 많이 죽여서 더이상의 감흥도 그런 감정의 소모조차도 생기지 않는 상태. 

      아니면 너무나 마음이 아파해서 더이상의 슬픔을 줄수없는 상태인건가. 

      마도사의 눈을 감긴채 아직 떨어지지 않은 손끝으로 죽은이의 온기가 전해진다.

      "..............."

      아무것도 모르겠다. 

      알수있는 것은 단지 자신이 이자를 죽이지 않았다면 죽어있는 것은 에스였다는 것

      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무척이나 슬퍼했겠지. 

      그는 친분이 없는 마도사보단 좀더 가깝고 수많은 대화를 하고 함께 지내온 소중한 

      동료이니- 굉장히 슬퍼했을 것이다. 

      그러니 괜찮다. 

      자신은 살인을 한게 아니라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행동을 한것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하자. 

      ..............그렇지 않으면 미쳐버릴지도 모르니.

      "나머지 일행들은 어디에 있나요?"

      "성 정문쪽에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쪽에 많은 수가 쳐들어 와서 말이죠. 

      그런데 유헌은 이런데서 뭐한 겁니까?"

      "뒷쪽으로 몇몇이 들어왔더라고요. 일단 따돌리긴 했지만, 조만간 나타날 지도. 

      그런데 에스 혼자서 이자를 상대하려고 한건가요?"

      "뭐.... 나만 노리는것 같으니.... 

      위험해도 일행들을 말려들게 할수 없으니 혼자서 일탈했죠."

      그다운 행동에 유헌은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마지막으로 마도사에게 시선을 준 유헌들은 일행들과 합류하

      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탁.

      ".............."

      걸음을 돌리는 순간 자신들을 주시하는 문앞에 서있는 사내를 발견한 에스의 안색

      이 단번이 굳는다. 이렇게 근접할 정도로 기척을 알아보지 못한것은 둘째치고 느껴

      지는 기가 상당하다. 

      게다가 복면을 하고 있다지만, 저 얼굴은 분명 기억에 있는 것이다. 

      상대방 또한 에스를 알아본 것인지 의외라는 듯이 눈을 조금 크게 떠보이더니 이내 

      가늘게 접으며 웃어 보인다. 

      "오랜만입니다. 에스군."

      "...그쪽이야 말로 오랜만이군요. 사이키."

      에스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유헌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주시하는 보라빛의 

      남자를 바라 보았다. 

      사이키라는 자는 초반에 일행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나온 이름이다. 

      하지만 그때는 일선에 나서기보다 뒤에서 조종하는 자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이번

      일에는 이렇게 가까이 접근을 한 것일까. 의아한 듯한 표정을 짓는 두사람을 바라

      보고 미소를 지어보인 사이키는 씁쓸함을 느꼈다. 

      얼마전 외양에 변화가 온 황제는 어찌된 일인지 칸크빌레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

      에 대해선 모두 척살할 마음을 지니고 있는것 같았다. 굳의 그의 뜻을 거역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나, 칸크빌레의 일행들은 다들 중요한 위치의 인물들이 대다수이다. 

      그런 그들이 무참히 죽어나가는 것을 지켜 볼수는 없기에 일단 몇몇은 뒤로 빼돌리

      려고 했지만, 자신의 이런 마음을 상대들이 순순히 믿어 줄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같이 데리고 온 농민들이 분위기의 상승을 타 여기저기서 거친 행동들을 해

      대니.. 이래서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쫒겨날 판이다.

      "나름대로 목적이 있어서 온 것이지만... 그리 뜻대로 되지 않는군요."

      "그 목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렇게 만난 이상 그냥 돌려 보내드릴 수는 없

      습니다."

      ".........뜻대로."

      에스의 말에 묵묵히 검을 빼든 사이키는 유헌을 겨냥했다. 

      에스는 가슴에 피를 흘리고 있는 상태이니 정당한 결투가 될수는 없다. 

      눈앞의 소년은 약해 보였지만, 아까 마도사를 죽이던 기술이나 속도를 직접 목격한 

      이상 방심을 할수는 없다. 검을 자신에게 내미는 사이키라는 사내의 행동에 유헌은 

      자신의 옆에 서있는 에스를 바라 보았다. 

      누군가에게 이 자에게 대한 말을 들을때, 적이라고는 하나 다들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평가를 했었던 것이다. 어떤 상황일때는 도움을 줄때도 있었다고.. 

      그런자에게 검을 휘둘러도 되는 건가? 

      유헌의 난감한 얼굴을 바라보는 에스의 표정도 그다지 좋진않다. 

      이런 일에선 자신이 저자를 상대해야 하는데 벌써 부상을 입었으니.

      "계속 생각만 하실거면 이쪽에서 먼저 갑니다."

      " ! ! "

      갑자기 휘둘러지는 검에 안색을 달리한 유헌은 곁에 서있는 에스를 밀쳐냈다. 

      그 사이를 파고드는 검날헤 급하게 팔을 빼들었지만, 길게 상처가 생긴 후였다. 

      따끔거리는 손을 바라보다 사이키에게로 시선을 돌린 유헌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 남자 진심으로 덤벼들려는 것인가. 

      "카일이나, 요크발처럼은 아니지만, 저도 꽤나 실력이 좋죠."

      "...........흠."

      입까지 덮은 복면을 내린 사이키는 자신을 바라보는 소년의 서늘한 눈동자에 입을 

      다물었다. 의외로 힘든 일전을 벌일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사이키는 자신에게로 달려드는 물체에 숨을 죽이고 반사적

      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요란한 금속성 울림과 팔을 저릿하게 만드는 통증에 사이

      키는 순간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저런 체구에서 이런 힘이라는..

      "유헌! !"

      생각보다 훨씬, 아니 그 보다 훨씬 더 잘 싸우고 있는 유헌의 움직임에 에스는 저도 

      모르게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가슴에 박힌 활을 뽑고 지혈을 해야 하건만, 그것에 신

      경을 쓸수없을 정도로 유헌의 화려한 검놀림에 시선을 빼앗긴 것이다. 

      손에 박힌 근육이라던가 검을 잡을때의 자세같은 것을 볼때 처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설마하니 저 정도의 실력자였던가. 

      자신보다 약간 아래의 수준이라고 지금까지 생각해 왔는데, 주위에서도 같은 결론

      을 냈었고. 그래도 자신과 비슷한 검술 실력의 사이키가 점점 구석으로 몰리자 에

      스의 표정이 굳는다. 

      적이라도 상대하기에 몇수접어주는 자가 있기 마련인데, 사이키가 그런 사람이었

      다. 

      때론 골치가 아플 정도로 몰아 붙이다가도 손속에 인정을 두었던 자인 것이다.

      챙! !

      "...큭..! !"

      날라간 검의 궤적을 바라보던 사이키는 욱씬거리는 손을 다른 손으로 잡아 눌렀다. 

      빠지려는 검을 억지로 쥐고 있었더니 손바닥에 길게 찟어지는 상처가 생긴 것이다. 

      근육의 손상 정도를 보아 쾌유하려면 꽤나 시일이 걸릴것 같았다. 

      그것도 이곳을 무사히 빠져 나간 다음에 생각할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

      자신을 바라보는 보라색 눈동자를 지닌 미모의 사내를 주시하던 유헌은 발바닥에 

      걸리는 느낌에 시선을 내렸다. 

      아까까지는 없었던, 눈앞의 사내가 빠뜨린 듯한 펜던트가 바닥을 구르고 있다. 

      사이키의 움직임을 좇으며 무릎을 굽힌 유헌은 바닥에 떨어진 펜던트를 집어 들었

      다. 그런 자신의 행동에 안색을 달리한 보라빛의 사내가 반사적으로 가슴쪽을 더듬

      는 것을 보아 분명 저자의 것인게 분명한 것 같다. 

      달칵.

      화려한 금세공의 목걸이의 표면을 내려다 보다 주인에게 건내주기 위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던 유헌은 그와 동시에 열라는 펜던트에 표정을 굳혔다. 

      굳이 볼 생각은 아니였는데.. 혹여나 하는 마음에 시선을 드니 사이키라는 자는 그

      렇게 기분이 나빠보이진 않는다. 

      귓가에 울리는 아름다운 맬로디에 헛기침을 한 유헌은 펜던트를 닫기위해 손가락

      을 움직이다 시야에 들어오는 작은 그림에 안색을 굳혔다. 

      손바닥의 4분지 1정도 되는 그곳엔 동그랗게 잘려진 한 소녀의 그림이 정성스럽게 

      끼워져 있었다. 열려진 부분이 많이 낡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림의 손상이 적은 것을 

      보아 주인인 자가 얼마나 이 것을 애지중지하는지 알려준다.

      "이..소녀..는?"

      분홍빛의 머리카락과 그보다 짙은 색의 눈동자를 치켜뜬 얼핏보기에도 꽤나 예쁘

      게 생긴 여자아이였다. 

      그리고 유헌은 이 소녀를 분명 어디에선가 만난 적이 있었다.

      "....동생이다. 너에겐 필요하지 않은 것이니 돌려주지 않겠나."

      사이키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순간 그와 오버랩되는 미성의 음성이 

      있다.

      - 스완.

      이 소녀의 이름이다. 

      분명 서로 가는 길목에서 황제임을 몰랐던 이자크와 대화중에 나타난 작은 소녀. 

      이 소녀의 오빠가 저자였던가. 

      바람에 날리는 검은 머리카락을 보고 사심없이 신기한 표정을 짓던 소녀의 얼굴을 

      떠오리던 유헌은 들고있던 검을 내리고 동시에 펜던트를 사이키에게로 던졌다. 

      펜던트를 받아 무척이나 소중하다는 듯이 품에 넣은 그는 몸을 돌려 에스에게로 걸

      어가는 유헌의 모습에 한쪽 눈썹을 올렸다. 

      자신을 그냥 이대로 두고 돌아가는 것인가. 

      "에스, 일어날수 있겠어요?"

      "아..뭐, 괜찮....지 않은 모양입니다."  

      갑자기 자신에게로 걸어온 유헌의 모습에 당황해 몸을 움직인 에스는 현기증에 다

      리에 힘이 풀려 그의 어깨에 손을 집었다. 헥헥대는 그 얼굴을 바라보던 유헌은 어

      쩔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안쪽에 손을 넣어 에스를 부축했다. 

      자신과 떨어져 문으로 걸어가는 두사람의 모습에 사이키는 안색을 달리하며 그들

      에게 걸어갔다. 

      "이대로 저를 두고 가시면 나중에 후회하실 겁니다."

      황제의 명이라면 언제 다시 나타나 그들의 앞을 가로 막을지 모르는 일이다. 

      게다가 육탄적은 모르지만 계략으론 자신은 꽤나 걸치적거리는 상대인 것이다. 

      지금 처리하지 않으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거라는 뜻을 내포한 보라빛의 눈동자

      를 확인 후 유헌은 고개를 저었다.

      "당신을 죽였다간 스완이라는 소녀가 꿈에서 나올것 같아서 말야."

      "...........당신 어떻게 그 아이를..."

      "만난 적이 있다는 거야. 그러니 이번은 이만 끝내자고요."

      스완을 알고 있는 것이 어지간히 의외였던지 눈을 크게 뜨는 사이키의 모습에 한숨

      을 쉰 유헌은 에스를 부축한 손을 바로하며 그를 지나쳐 걸어갔다. 

      밖은 얼만큼 진정이 되었는지 소란이 많이 죽은 것 같았다. 

      그래도 꽤나 많은 숫자였는데, 칸크빌레들은 괜찮을까 모르겠다.

      "다음엔.... 이대로 돌아가지만은 않을 겁니다."

      사이키의 나지막한 말에 손을 흔들어 보인 유헌은 자신을 바라보며 입가를 비죽히 

      올리는 에스의 모습에 시선을 돌렸다. 

      적이지만 살려 보내는데 잘했다는 듯한 눈빛은 마주하긴 부끄러운 느낌이다. 

      고개를 돌린 유헌의 옆얼굴의 귀가 붉게 물든 것을 확인후 에스는 뭔가 대견한 기

      분이 들었다. 그래도 무턱대고 검을 휘두르지 않아 다행이다. 

      일시적으로 살인에 대해 무감해 지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은 나중에 한번에 터지면 

      손쓸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 예를들면 전에 칸크빌레처럼.. 

      "저기다! ! 저놈들만이라도 잡아-! !"

      ".......유헌!"

      저 멀리서 자신들을 발견한 것인지 여전히 엉성한 무기들을 들고 달려오는 사내들

      의 모습에 유헌과 에스는 안색을 굳혔다. 

      에스는 다친 상태인데다 저쪽의 수는 지나치게 많다. 

      유헌 그가 혼자서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힘들어 질지도 모르겠다. 하다못해 에스의 

      몸에 성했다면 도망을 갈수도 있었을 텐데. 

      일단 에스를 그늘로 옮긴 유헌은 허리에 달린 검을 빼들었다. 

      "..큭."

      "유헌군, 괜찮나요?"

      융텐의 치료로 일단은 괜찮아 졌다고 생각했던 허리의 통증이 갑자기 느껴진다. 

      상처같은 것은 아물게 해도 군육같은 것까진 완벽하게 치료를 할수 없었던 모양이

      다. 한쪽 허리를 잡고 '끙'하는 소리와 함께 얼굴을 들어보니 벌써 코앞에 다가와 

      몽둥이를 휘두르는 사내들이 보인다. 

      집단이란건 무서워서, 처음에 꺼려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뭐가 뭔지도 모른 상황

      에서 일을 치르고 만다. 

      지금 유헌의 앞에 서있는 사내의 눈동자엔 광기가 번들거리는게 지금은 어린 유헌

      을 해치는데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다가 나중에 이 일이 끝나서야 죄책감에 

      빠지게 될것이다. 

      "쳇..! !"

      일단 덤비는 사람부터 상대하려고 한 유헌이 검을 듬과 동시에 옆으로 날카로운 호

      선과 동시에 익숙한 마력탄이 날라와 상대방 남자들에게 쏘아진다. 

      갑작스런 상황에 고개를 드니 중간에 난 계단에서 노웬과 젤의 모습이 보인다. 

      "노웬님, 젤! !"

      "어서 이리로 오십시오! !"

      손을 흔드는 노웬의 모습에 벽에 기댄 에스를 부축한 유헌은 빠른 걸음으로 그쪽으

      로 다가갔다. 

      시골에서 농사만 짓던 농부들에게 젤의 마력탄은 상당한 공포감을 주는 것이었다. 

      앞서 상대한 사내들도 몇번 마력탄을 쏫아주니 움직임이 멈춰지더니 이번에도 마

      찬가지다. 입가를 조금 올려보인 젤은 복도의 기둥에 몇발을 더 쏘아 보내고 자신

      들에게 오는 유헌과 에스를 엄호하며 계단을 내려갔다. 

      이미 다른 사람들은 비밀통로로 빠져 나갔으니 자신들만 피하면 된다. 

      "에스군 갑자기 중간에 사라져서 놀랐습니다."

      "그럴 일이 좀 있었죠. 유헌군 덕분에 살았답니다."

      "...........그가?"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에스와 그 옆의 유헌을 바라보는 노웬의 시선이 묘하

      다. 그런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인 유헌은 서둘러 젤의 뒤를 따랐다. 

      "유헌, 이쪽입니다! !"

      통로의 끝에서 남은 일행들을 초조하게 기다리던 라프헨은 익숙한 얼굴들이 속속

      들이 보이자 화색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화살을 맞은 에스와 파에 

      젖은 유헌의 옷을 본 순간 안색이 급속도로 변한다. 

      자신에게 다가온 라헨에게 에스를 넘긴 유헌은 피에 젖어 몸에 달라붙는 옷에 미간

      을 찌뿌린채 내려다 보았다. 

      너무 가까운 거리라서 그 마도사의 피를 그대로 뒤집어 썼다. 

      몸에 달라붙는 느낌도 느낌이지만, 코에 맴도는 혈향이 그닥 좋지만은 않다. 

      게다가 미관상에도 좋지만은 않은 듯 손을 부들부들떤 라프헨이 안색을 푸르죽죽

      하게 만들며 자신에게 걸어온다.

      "어..어디 다친건가요?"

      "아, 아닙니다. 상대의 피예요. .....약간 다친곳은 있지만.."

      멋쩍어하며 팔을 내미는 행동에 라프헨이 양손으로 잡는 것이 보였지만, 유헌은 괜

      찮다며 손을 빼들었다. 

      아무래도 융텐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치료는 몸에 잘 들지않는 것 같으니 그가 

      힘을 쓴다해도 그건 낭비일 것이다. 아무것도 못해준 것에 대해 미안한 표정인 그

      가 곧 울것같은 표정을 짓자 난감해진 유헌은 에스의 치료를 부탁했다. 

      유헌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라프헨을 데리고 가는 라헨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인 유헌은 옷자락을 뜯어 팔을 지압하기 시작했다. 

      방심을 해서 당한 것이긴 하지만 예상외로 깊이 베인듯 피가 그치지 않는다. 

      그 치료만 해주는 쓸모없는 흑룡은 어디에 있는지, 꼭 필요할때는 코빼기도 보이질 

      않는다. 혀를 차며 몇번 손목을 흔들어 보인 그는 일행들이 다시 이동한 기미를 보

      이자 그리로 걸어갔다.

      "괜찮나요? 에스."

      "괜찮아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꽤나 아프군요."

      이미 화살을 빼고 그 위에 치료를 받고있는 에스의 표정은 파랗게 질려있다. 

      급한 상황이다 보니 마취도 못하고 생살을 찟어 활을 빼었으니 당연한 것일거다. 

      대충의 응급처치로 자리에서 일어날수 있게된 에스는 라헨과 오브의 부축을 받고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일행의 뒤를 따르며 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던 유헌은 그러

      나 이내 다른 곳으로 피해있을거라는 생각이 미치자 다른 것으로 관심을 돌렸다. 

      여러번의 일로 이들은 자신보다 칸의 안위를 더 챙기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에대한 

      걱정은 필요없을 지도 모른다. 

      그 샤르비나라는 여자와 함께 먼저 피신해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곳에.. 비밀 통로같은 것이 있군요.." 

      "처음엔 없는데, 필요에 의해 우리들이 만들었죠."

      " ? "

      "성안의 물건들을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면서 빼돌릴수는 없는 법이죠. 이 통로들을 

      이용해서 그녀가 제공하는 것들을 운반하거나 어쩔수 없는 상황에선 찾아와서 쉬

      거나 했어요."

      라프헨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 유헌은 거친 벽의 표면을 손가락으로 흩어 보았다. 

      묻어 나오는 축축하게 젖어있는 작은 돌알맹이를 손가락으로 비벼보던 그는 앞에

      서 빛이 들어오자 미간을 찌뿌렸다. 

      앞서 도착한 일행들이 횃불을 키고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다. 

      그의 생각이 틀리지만은 않았는지 나오는 입구에 초조하게 서있던 칸이 유헌의 모

      습을 발견하자마자 안색을 달리하며 그에게로 달려온다. 

      그리고 몸에 묻어있는 피와 붕대가 감겨진 팔을 발견하곤 대번에 안색을 굳는다.

      ".......이건."

      "경미한 부상일뿐 괜찮아요."

      전처럼 상처를 보고 호들갑을 떨지않는 그 모습에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유헌은 미

      소를 지어 주었다. 그러나 자신의 미소를 바라보던 칸의 안색은 더 안좋아지더니 

      입술을 깨물고 연신 팔의 상처를 쓰다 듬는다. 

      그 모습에 어색해서 뭐라고 말도 못하고 그냥 칸에게 팔을 내밀고 있던 유헌은 자

      신들에게 다가오는 샤르비나라는 여성을 발견하고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상당한 여성이라는 것을 알고나니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감을 잡을수가 없는 것이다. 

      어색한 표정을 짓던 유헌은 그러나 샤르비나와의 대화 중 율시아에 대해 그냥 지나

      칠수 없는 말을 들었던 것이 떠올라 표정을 굳히고 칸을 올려다 보았다. 

      연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팔을 잡고있는 이 남자가 그 율시아님과 부부라

      는 것일까. 

      그렇다면 율시아님의 아들은 돔은 그의 아들이라는 말이다.

      "유헌 안색이 안좋아."

      "...그다지."

      볼을 만지는 칸의 손을 피한 유헌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샤르비나에게 다가갔다. 

      자신의 그런 행동에 굳는 그의 몸이 느껴지지만 작은 심술쯤은.. 부려도 되겠지. 

      "계속 여기에만 있는 건가요?"

      "아뇨, 밖에 사람들이 올때까지 여기에 있는 것 뿐입니다."

      그녀와 면식은 있지만, 말을 놓을만큼 막역한 사이가 아니기에 존대말을 하는 것뿐

      인데, 막상 샤르비나도 존대를 해와서 유헌은 조금 눈을 떴다. 

      그런 그에게 유쾌한 눈빛을 보낸 그녀는 몸을 돌려 칸을 올려다 보았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이일을 알고선 왕의 기사들이 올겁니다. 

      그치. 저에게 꽤나 촉각을 세우고 있거든요."

      "너에게 미안한 일이군."

      "다른 분들은 크게 상관은 없지만, 칸크빌레님과 유헌군은 다소 분장이 필요할 것 

      같군요. 칸님의 모습은 너무 유명하고 유헌군의 머리카락이나 외모는 상당히 튀거

      든요. 대륙에선 드래곤 외엔 존재하지 않은 색이니-"

      그녀와 대화하기 이전에 이런말을 들었다면 자신을 비꼬는 것으로 오해 할수도 있

      겠지만, 걱정해 주는 말임을 알기에 작게 고개를 끄덕인 유헌은 어떻게 변장을 해

      야할까 하고 고민을 하다 자신의 팔을 잡는 손길에 놀라 얼굴을 들었다. 

      유크렌을 한쪽 어깨에 걸친 채의 융텐이 자신의 팔을 잡고 여기저기 살펴본다. 

      갑자기 나타난 것은 둘째치고, 일행들이 침입을 받아 고전하고 있을때 보이지도 않

      고 저렇게 유크렌을 함부로 대하는 모습에 울컥한 유헌이 입을 열려는 찰나 융텐의 

      손에게 투명한 빛이 나온다. 

      치료해주는 그 행동에 입을 다문 유헌이지만 화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였다. 

      "적개심을 줄여주지 않겠어? 

      마력을 무효화하는 몸에 치료를 하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라고."

      "............흥."

      "그래, 자아- 다됐다."

      융텐의 손에서 팔을 빼낸 유헌은 묶여있던 천을 벗기고 상처를 확인해 보았다. 

      과연 드래곤의 마력이라서 그런지 상처는 잘 아물어져 있었다. 묻은 피만 닦아내면 

      상처를 입은지도 모를 것이다. 상처를 확인한 유헌은 얼굴을 들어 어깨에 맨 유크

      렌을 바로 안는 흑룡의 모습이 괘씸해 입술을 일자로 만들었다. 

      유크렌이 반려라해서 집착하고 그에게 심한 행동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저렇

      게 짐짝 들듯이 대해도 되는 것인가. 

      이래뵈도 유헌은 처음 유크렌을 만나 어린 육체일때의 그때부터 돌봐오던 사람인

      지라 이 작은 용에게 동생같은 마음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식으로 유크렌을 대할거면 차라리 저에게 주십시오."

      "............싫어."

      "싫다고 다 되는 문제입니까? 무엇보다 당신과 있는 후부턴 유크렌이 계속 잠들고 

      있는데, 일부러 그러는거 아닙니까? 

      그도 저희들의 일행이니 자유롭게 행동하도록 해야할 권한이 있습니다."

      그답지 않게 말을 길게하는 모습에 놀라 이채롭다는 표정을 띈 융텐은 그러나 비웃

      음을 지으며 입가를 우그러 뜨린다.

      "인간인 네가 무슨 권리로 드래곤인 우리들의 일에 끼어 들겠다는 건가?"

      "유크렌의 보호자 입니다! !"

      "............엥?"

      "유크렌이 숲에서 길을 잃었을 때부터 그를 보호해 온 저이니 보호자라 칭해도 별

      다른 무리는 없겠죠. 자-아. 그를 이리 주세요. 더이상 괴롭히지 말란 말입니다."

      "이녀석, 생리중인가...."

      왜이리 땍땍대는 거야-라는 눈빛을 보내는 융텐은 그러나 생리운운하는 말을 할때

      는 목소리를 죽였다. 

      그것을 들으면 눈앞의 인간이 또 시끄럽게 굴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혹여나 하는 생각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멀리서 이쪽을 바라보는 칸의 얼굴은 버림

      받은 강아지의 그것이다. 

      아-아- 그런건가. 정말로 귀찮은 녀석들. 

      단호한 표정으로 손을 내민 유헌과 멀리 자신을 바라보는 칸의 모습을 보고 마지막

      으로 품에 안긴 유크렌의 얼굴을 내려다 본 융텐은 한숨을 쉬었다. 

      녀석, 그동안 어리버리하게 다니더니 의외로 인심을 쌓아둔 모양이다. 

      대견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한 마음에 그냥 이대로 사라져 버릴까하고 생각하던 융

      텐은 그러나 자신의 생각을 눈치챈 것인지, 옷자락을 잡고 다시 팔을 내미는 유헌

      의 모습에 투덜댈수 밖에 없었다. 

      마력을 무효화 시키는 녀석을 때고 가는것은 꽤나 힘이 들지만 드래곤인 자신에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억지로 이동을 하다간 눈앞의 소년이 다칠 우려가 있다.

      "..젠장.. 나처럼 무른 용이 세상천지 어디에 있냐고.."

      투덜대며 품의 유크렌을 넘긴 융텐은 텅빈 가슴에 사무치는 추위를 느끼고 손을 들

      어 팔장을 꼈다. 유헌의 품으로 들어간 유크렌의 안색은 창백하기 그지없다. 

      .......자신이 좀 너무하긴 한건가. 

      새삼스런 죄책감에 머리를 긁적이던 융텐은 유크렌을 안고있는 유헌에게 걸어오

      는 오브라는 인간의 모습에 안색을 달리하고 앞의 녀석의 옷자락을 끌었다.

      "너, 절대로 저 인간녀석에게 유크렌을 맞기지 말아라-"

      "....네?"

      "절대로절대로절대로야- 안 그러면 유크렌을 다시 데려갈테니 말이다."

      이 용이 뜬금없이 왜 이러나 하고 미심쩍은 듯이 바라보던 유헌은 어쩔수 없이 고

      개를 끄덕이고 유크렌을 눕힐만한 장소를 모색했다. 

      자신이 계속 들고 있기는 유크렌의 몸이 너무나 무거웠던 것이다. 작은 아이일때가 

      좋았다고 생각하는 와중 샤르비나가 앉아있는 옆에 잘 펴진 담요가 보인다. 

      그리로 걸음을 옮기는데 걱정스런 표정의 오브가 유크렌을 가만히 내려다 본다.

      "..........안색이 안좋네."

      "저 변룡이 어지간히 괴롭혔으니 말입니다."

      융텐이 들으면 난리를 칠것이 분명하기에 낮게 중얼거린 유헌은 '응?'라는 표정을 

      짓는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샤르비나의 곁으로 걸음을 옮겼

      다. 

      "...........친구?"

      "동생같은 사람입니다."

      "동생치곤 덩치가 너보단 큰데?"

      악의없는 그 물음에 미소를 지어보인 유헌은 유크렌을 바로 눕히고 머리카락을 뒤

      로 넘겨 주었다. 어지간히 시달린 듯 얼굴에 식은땀과 동시에 창백하게 질려있다. 

      새삼 융텐에 대한 분노가 올라오는 가운데 유헌은 자신을 바라보는 얼굴을 돌렸다. 

      유헌을 빤히 바라보던 샤르비나는 특유의 고양이같은 눈을 치뜨며 입술을 달싹였

      다.

      "아까 칸님께 왜 그런거야?

      굉-장-히 상처받은 표정이라서 이쪽 가슴이 아팠다고-"

      아까 존대말을 한 것은 칸의 앞이여서 그랬나 보다. 

      곁에 있는 오브에게 유크렌을 부탁한 유헌은 한숨을 쉬며 그녀와 마주보는 자세로 

      앉았다. 

      ".....그냥.. 여러가지 일들이 떠올라서 말이죠."

      "여자의 직감으로 찍어보면 내가 율시아님을 운운해서 그런거 아냐?"

      ".............."

      "맞췄네."

      두눈을 빛내며 생글하고 웃어 보이는 눈앞의 여자는 의외로 적을 많을지도 모른다

      는 생각을 해본다. 

      유헌이야 그녀가 어떤 성격인지 대충 감을 잡아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수도 있지

      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속마음을 들키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니 샤르비나의 경우 

      위치와 외모를 함께 따져볼때 좋아하는 사람보다 싫어하는 사람들의 수가 더 많은 

      것 같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유헌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샤르비나는 자신의 말로 칸

      님이나 이 소년의 사이가 틀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둘어 입을 열었

      다.

      "하지만 말야, 칸님과 그 계집은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으셨지. 초야땐 칸크빌레님

      이 노웬과 함께 다작을 하셨다고 하는 말도 있었고... 무엇보다."

      " ? "

      갑자기 음성을 낮추는 모습에 유헌은 저도 모르게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돔이라는 아이는 칸님의 자식이 아니라는 소문도 있었지."

      "..........."

      "관계가 아예없다는 말도 있었으니 말야. 하지만 그 당시 칸크빌레님의 성격상 그 

      돔이라는 아이를 태자로 봉하신 것을 보면.. 뭔가 아리송한 느낌도 없지않아 있지."

      스스로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샤르비나의 모습에 유헌은 착찹함을 느꼈다. 

      율시아라는 부인에 돔이라는 아들인가.... 전에 오브가 돔이라는 사내가 칸과 닮았

      다고 했을때 자신은 왜 그냥 지나쳤던 것인가.

      여전히 미간을 찌뿌린 채의 소년의 모습에 샤르비나는 한숨을 쉬며 곱슬거리는 머

      리카락을 빙글빙글 돌렸다. 질투심이 많은 노인네 덕분에 남자아이는 커녕 어떤 사

      내와도 한시간 이상 대화를 해본적이 없으니 당당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사실은 

      유헌을 상대로 무슨말을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칸크빌레는 어떤 왕이었나요?"

      ".......응?"

      "전 그에 대해선 요 몇달동안 얻은 것이 다예요. 지금의 그 의외에 다른 모습에 연

      연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에 대해선 좀더 알고 싶달까..? 

      그런 기분이 들어서..."

      샤르비나는 유헌이 무엇을 묻고 싶은지 알아 차렸다.

      "좋은 분이지. 

      귀족들에게 걸려 끌려 갈뻔한 나와 맞아 죽을뻔한 샤한을 구해주신 분이야."

      "........그런.."

      "덕분에 상대 귀족들 녀석은 모조리 죽은데다 그 가문들이 멸문을 당했지만, 말야. 

      나와 샤한은 이렇게 살아있어서 조금이나마 그분의 도움이 되어 드리고 있어. 

      너는 그 의미를 알겠어?"

      무척이나 부드러운 표정으로 미소를 짓는 모습에 유헌은 입을 다물었다.

      "우리같은 천민들을 위해서 몇개의 귀족가를 멸문하게 해 그 반발이 심했었지. 

      그럼에도 그분은 우리들을 버리지 않으셨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엔 어떠한 

      적들이 생겨도, 비난을 받아도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이야. 덕택에 적들도 많았지

      만, 우리들과 같은 사람들도 많아서 그의 도움이 되기위해 노력하고 있지."

      "............."

      "도움이 안되는 우리같은 것을 위해서 노력하시는 그분의 노고를 알기에 우리들이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거야. 아무도 우리들이 하는 일을 인정하지 않고, 어쩌면 쓸

      데없는 짓일지도 모르지만. 그분이 있기에. 

      아직은 살아계시기에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어."

      당시 자신들을 구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그런것이 아니라고 해도 상관은 없었다. 

      단지 그때 입은 은혜를 조금이라도 보답할수만 있다면, 자신과 샤한은 지금 당장이

      라도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 소년이 묻고자 하는 것에 대해 확실히는 모르지만, 자신의 말을 듣고 느끼는 바

      가 있어 칸크빌레님에게 좀더 잘해 주었으면 한다. 

      눈앞의 소년도 좋지만 자신에겐 칸크빌레의 존재가 더 소중하다. 

      그가 상처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이 소년도 마찬가지 일테지. 

      "평판은 주변의 잣대야. 그런것에 가려 소중한 사람을 잃도록 하지는 마라."   

      "..........난..."

      고개를 숙이고 작게 웅얼대던 유헌은 멀리 아군이 왔다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두손에 뭔가를 들고온 에스가 자신과 히자스의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린 듯 바로 옷

      가지를 건낸다.

      "어서 움직일 채비를 하죠. 머뭇거려 좋을 일은 없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유헌군은 이것을 쓰도록-"

      자신에게 건내진 천을 펼쳐보니 무슨 우비같은 모양의 옷이다. 

      어떻게 입어야 하는건지 멍해있는 유헌의 곁으로 다가온 라프헨이 그의 겉옷을 벗

      기며 설명을 해준다.

      "저와 칸님. 그리고 유헌군은 견습 신관이 되는 거예요. 

      지금에선 이것이 최선의 방법이니 말이죠."

      "...그냥 뒤집어 쓰기만 하면 되는 거죠?"

      "그전에 이 옷들은 벗는게 좋겠어요. 피가 굳어서 냄새가 날지도 모르니깐요."

      라프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옷을 벗던 유헌은 멀리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황금

      빛 눈동자에 움직임을 멈췄다. 자신의 갑작스런 차가운 모습에 당황한 듯 금빛의 

      눈동자는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다. 

      그에 따라 자신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입술을 깨문 유헌은 결국 칸을 노

      려보며 혀바닥을 길게 내밀었다. 그런 자신의 행동에 칸의 눈이 크게 벌려지고 옆

      에 있던 라프헨이 의아한 표정이 짓는 것이 보였지만, 코웃음을 친 유헌은 얼굴을 

      반대편으로 돌렸다. 

      언제나 일을 제공하는 것들은 그의 입이 아닌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에 대

      한 작은 심술이다. 

      이런 자신의 행동에 칸따위- 실컷 고민이나 하라고 생각하는 유헌이었다.    

      "후덥지근 하군."

      선실에서 나온 돔은 손부채질을 하며 뒤돌아 보았다. 

      동은 이런 기후였던가 싶을 정도로 심한 더위와 갈증을 그에게 느끼도록 해주고 있

      었다. 동은 다른 어떤 나라와도 틀린 다양한 환경을 지니고 있다고 하는데, 그것도 

      경계의 차가 심해서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은 사막인 것이다. 

      사막과 사계절의 차가 확실한 곳이라.. 

      그중에서 왜 하필 이곳에 온건지는 모르겠지만,  위에서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으

      니 수가 없다. 머리를 긁적인 그는 몸을 돌려 계단으로 내려갔다. 

      혼자서 무엇을 할지 모르니깐, 요크발에게나 가봐야 할 것 같다. 

      "...실례합니다."

      근처에 지나가는 기사들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보인 그는 계속해서 아래의 계단

      을 내려갔다. 

      요전번엔 숙취와 가벼운 멀미가 나서 쭉 그와 가벼운 대화조차 갖지 못했다. 

      들리는 말로는 요새 요크발이 꽤나 침울해 있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알수가 없으

      니- 고개를 까닥이며 목을 주무르던 돔은 요크발의 방 맞은편에서 나오는 사내의 

      모습에 숨을 죽였다. 

      하얀 머리카락과 단단한 체구, 그리고 자신과 꼭 닮은 얼굴. 

      중앙국의 현황제 이자키엘이다.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킨 돔은 걸음을 멈췄다. 그런 자신을 알아본것이지 아름다운 

      얼굴이 서서히 들려져 그의 붉은 눈동자에 시선을 준다. 

      ".........일찍 일어났군."

      "아..예."

      잠시 고개를 들어 요크발의 방을 들여다본 황제는 슬쩍 입가를 올리며 돔을 지나쳐 

      계단을 걸어 위로 올라갔다. 

      황제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몸의 긴장이 풀린 돔은 들리지 않은 숨을 내쉬며 

      갑자기 밀려오는 피로에 고개를 저으며 벽에 몸을 기댔다. 

      저자와 만나게 되면 알수없이 피곤해 진다. 

      마치 전에 칸크빌레와 마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개를 저은 돔은 걸음을 옮겨 요크발 앞에 서서 문을 두들였다. 막 두번째로 두들

      이려고 손을 드는 순간 붉은 머리카락을 지닌 아름다운 얼굴이 눈앞에 나타난다. 

      "돔이냐."

      "......일어나시지 않은 것 같아 깨우러 왔습니다."

      "그래."

      그에게 말을 건내려던 돔은 그러나 창백한 안색의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얼핏봐도 굉장히 피곤해 보이는 얼굴의 그는 미간을 문지르더니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는지 얼굴을 들고 미소를 지어 보인다. 

      탁.

      "위로 올라가자. 밑에만 있었더니 골치가 아파."

      문을 닫고 팔을 잡아끄는 그의 행동에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따라나선 돔은 요크발

      의 몸상태가 나쁨에 대해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런 잔 걱정에 대해 내색하는 사람

      이 아니니 묵묵히 뒤를 따랐다. 

      자신을 따르는 돔의 발걸음을 느끼는 요크발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 졌다. 

      그러나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간판위로 나온 그는 머리위로 내리쬐는 강렬한 햇빛

      에 눈쌀을 찌뿌리며 손을 들어 보였다. 

      자신들이 정박한 항구의 마을을 제외하면 이 밖은 전부 사막이다. 

      소수의 생명체만이 살아가는 곳. 

      이곳으로 온 이유는 아마도 루드빌을 위해서 인가. 사막만큼 적룡과 상성이 잘 맞

      는 곳이 없는 법이다. 쓴웃음을 지은 요크발은 한숨을 쉬며 돔에게 시선을 돌렸다. 

      복잡한 기분이긴 하나 이 기분 그대로 있을수만은 없는 법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이 청년은 주위에 의지할 만한 사람이 없으니 그를 챙겨주어야 하

      고 만약의 일을 대비해 황제를 보호하기도 해야 하는 것이다. 

      "사막은 처음이겠구나."

      "그렇습니다. 정말로 아무것도 없군요. 게다가.. 덥고."

      "이곳에서 내려 일단 시원한 재질의 옷으로 갈아입어야 겠군."

      몸에 달라붙는 옷을 떼어내며 중얼거리는 요크발은 어느새 밑으로 내려간건지 짐

      을 옮기는 사람들 사이로 삐죽히 보이는 청색의 머리카락을 발견하곤 손을 들어 그

      의 이름을 불렀다. 

      세번쯤 부르자 그제서야 알아들은 카일이 얼굴을 들고 손을 들어 보인다. 

      정말이지 이런 일엔 손이 빠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어 보이던 카일은 

      그에게 접근하는 사람을 알아보곤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보라빛의 저 머리카락은 분명 사이키다. 

      배에 탔을때 그의 모습을 보지 못했던 기억을 떠올린 요크발은 그가 어째서 이곳에 

      있는가하고 의문의 표정을 지었다. 

      "붉은머리 두개가 붙어있으니 더 더운것 같군. 안그래?"

      ".........그런가요?"

      카일의 장난스런 말에 대충 대답을 한 사이키는 자신을 내려다 보는 요크발에게 작

      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다음 주위를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엄청난 양의 물건과 사람들이다. 

      이자들은 전부 황제의 편의를 위해 데려온 자들인가 아니면 다른 일을 꾸미기 위해 

      온 자들인가. 

      주먹을 쥔 그는 손바닥안에서 느껴지는 따끔한 통증에 작게 미간을 찌뿌렸다. 

      아직 유헌과의 일전때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다. 

      "자네가 이곳에 있을 줄은 몰랐지. 

      이렇게 되면 중앙의 주력부대가 다 모인 것인가?"

      "그렇군요. .........황제폐하는 어디네 계시는 겁니까?"

      "루드빌이라는 용과 먼저 여관에 들어가셔서 쉬고 계실가야. 

      뭔가 드릴 말씀이라도 있는 건가?"

      "오히려 들을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말이죠."

      자신의 말에 의문을 표시하는 카일에게 슬쩍 미소를 지어보인 사이키는 허리를 집

      고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쳐들어 갔다가 오히려 칸크빌레 일행에게 한방먹고 물러나는 자신의 앞으로 황제

      의 마도사가 나타났다. 분명 중앙성의 지하에서 미래를 점지해 주는 여자라고만 생

      각했던 그녀는 황제가 부른다며 자신과 함께 이곳으로 이동해 온 것이다. 

      사이키는 카일의 마도사라며 접근한 그 사내가 황제의 명을 받고 온자가 아닐까하

      는 생각을 했다. 

      그럴듯한 말로 자신으로 하여금 칸크빌레를 습격하도록 하려는 의도를 지닌-   

      굳이 그것이 아니더라도 너무 타이밍 좋게 나타난 것에 대해서 미심쩍은 부분들이 

      많이있다. 

      혹, 황제는 자신이 하는 일을 처음부터 알고 지켜보고 있다가 이제서야 자신을 부

      르는 것이 아닐까. 

      "그동안 얼굴이 잘 안보이더군. 어디서 뭘하고 있었던 거야?"

      "...오랜만에 모교에도 들리고, 스완과도 놀아주고 그렇게 지냈죠." 

      "스완이라. 예쁜 아가씨였지. 많이 자랐나."

      '아직 애입니다.'라고 중얼거린 사이키는 눈앞의 사내를 경계어린 눈빛으로 바라 

      보았다. 설마하니 이자도 황제같은 묘한 취향이 있어 자신의 귀여운 동생을 노리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잠시 든 탓이다. 

      하지만 이 사내는 에스라는 남자에게 엄청난 집착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닭곤 어깨

      에 힘을 풀었다. 카일이 그런 자신을 이상한 시선으로 보는 것을 느껴졌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사이키는 유헌이라는 소년이나 황제에 대한 것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속

      이 꽉차 언제 터질지도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이 사내에겐 에스라는 자를 만났다는 것에 대해 알려줘도 무관하겠지. 

      "아, 그러고 보니 에스라는 남자를 만났습니다."

      ".............어떻게?"

      대번에 안색을 바뀌며 자신의 어깨를 강하게 잡는 손길에 사이키는 안색을 달리했

      다. 그의 마도사가 에스라는 자를 죽이려 했다가 오히려 유헌이라는 소년에게 죽임

      을 당했다는 말을 하려던 그는 입을 다물기로 한다. 

      에스라는 이름을 입에 담았을 뿐인데도 이런 반응인 그에게 부상을 당했다느니 죽

      임을 당할뻔 했다느니 하는 말을 했다간 감당 못할 일이 벌어질 것이다. 

      안색을 달리한 사이키는 어깨에 올려진 카일의 손을 잡으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이곳에 오기전에 이동하는 칸크빌레 일행과 우연히 만났습니다. 

      ...........건강해 보이더군요."

      "그래?"

      그답지 않게 안도의 표정을 짓는 것을 보아 카일이라는 남자가 정말로 에스라는 사

      내에게 애정이라는 감정이 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애꿋은 사이키에게 감정을 내비친 카일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어깨를 두들

      이고 짐을 옮기는 사내들 사이로 걸어갔다. 멀어지는 그의 등을 바라보던 사이키는 

      자신을 향해 배에서 내려오는 요크발을 확인하곤 그리로 걸음을 옮겼다. 

      이런 곳에서 중앙국의 유명인사들을 다 만나게 되는 모양이다. 

      "그동안 격조했습니다."

      "오랜만이군. 너도 이곳에 오게 된건가? 배안에서 보지 못했는데."

      "중간에 황제의 부르심을 받고 왔습니다. 그쪽은..."

      계단을 뛰어서 넘어온 사내를 확인한 사이키의 얼굴이 묘하게 변한다. 

      붉은 머리카락에 칸크빌레를 꼭 닮은 외모. 

      하지만 그것은 현황제의 얼굴과도 꼭 닮은 것이다. 

      한때 꽤나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르락 거렸던 아이가 벌서 성인이 된것에 묘한 감흥

      을 느낀 사이키는 돔에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사이키라고 합니다."

      "........꽤나 얼굴이 낯이 익는군요."

      "아주 어릴적에 몇번 뵈었습니다. 기억 못하시는 줄 알았는데, 잊지않고 계시군요."

      묘한 표정을 짓고 자신을 바라보는 사이키에게 시선을 주던 돔은 자신의 삼촌에게

      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 돔에게 다른 곳에 가서 구경을 하라고 말한 요크발은 근처

      에 서있는 기사에게 그의 보호를 부탁했다. 

      자신에게 붙는 기사들에게 시선을 주던 돔은 요크발이 사이키라는 사내와 할말이 

      있는거라는 것을 깨닭고 어쩔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근처의 시장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멀어지는 돔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사이키는 감회가 새롭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많이 자랐군요. 이제는 사내로 대접해야 겠습니다."

      "어른들이 무관심해도 아이들은 자라기 마련이지."

      묘한 요크발의 말에 쓴웃음 지은 사이키는 머리위로 쏫아지는 햇볕을 올려다 보았

      다. 굉장히 덥고 텁텁한 날씨다. 

      이런 곳은 황제와 그다지 잘 맞는 곳이 아닌데 걱정이다. 

      "이곳에서 무슨 일을 하실거랍니까. 황제께선-"

      "...내 알바가 아니지."

      " ? "

      "무슨 짓을 하든 내 알바가 아니라는 거다."

      붉은 눈동자가 이토록 서늘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던가. 

      그답지 않게 차가운 미소를 베어문 요크발은 얼굴을 들어 푸르게 펼쳐진 푸른 바다

      를 바라 보았다. 한동안 물결치던 수면에 시선을 주던 그는 사이키가 자리를 옮기

      려 할때쯤 알수없는 말을 던진다.

      "유적지에 루드빌이 간다더군."

      " ? "

      "칸크빌레를 제외한 다른 녀석들을 일망타진 할 생각인거지."

      씁쓸함이 묻어있는 그 음성에 사이키는 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 보았다. 

      그들이 무슨 짓을 하든 단지 바라보고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그런거 자신과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그에대해 적극적으로 반항

      하거나 대적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너무도 고요한 자신의 모습에 이질감을 느끼며 팔장을 낀 요크발은 계속해서 바다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갑자기 자신의 누이인 율시아가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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