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개의 달 [하]-1화 (36/55)

[네르시온] 두개의 달 下

        [장편] 두개의 달 [하] 

      탕-!!

      텅-텅! !

      "...제길! !"

      벽으로 온몸을 날린 유헌은 그러나 꿈쩍도 안하는 그것에 미간을 찌뿌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도 포기 할수는 없어 주먹을 쥐고 있는 힘껏 뻗으려는 찰나 옆에 있

      던 파요가 그런 자신을 손을 잡고 고개를 젖는다. 

      더 이상하면 손이 남아나질 않을거라는 그 무언의 뜻을 전해들은 유헌은 입술을 깨

      물며 쥐어쥔 주먹을 풀었다. 이미 뼈마디가 다 헤져 핏방울을 베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발목까지 물이 찬 이상 어찌할 방도가 없다. 

      차라리 마력으로 출구가 봉쇄되어 있었다면 자신의 능력으로 어떻게든 이곳에서 

      빠져 나갈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이곳에 자신들을 가둬놓은 자가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깨닭게 된다. 

      "하-아."

      지친듯이 자리에 앉은 유헌은 엉덩이에 닿은 물에 미간을 찌뿌렸지만, 다리가 닿은 

      부분은 시원해서 좋았다. 

      돌이 원체 미끌거리는 제질인데다 조금씩 물이 흘러 들어오고 있어, 눈치를 채지 

      못했는데 막상 물이 들어온 다는 것을 깨닭게 된 후부터는 바닥에 물의 채워지는 

      양이 빨리지고 있었다. 

      처음엔 발바닥을 젖시기만 했는데, 이제는 발목까지 차오른 것이다. 

      그것에 당황해서 다리에 금이 갔다는 것을 관가하고 심하게 몸을 움직였더니, 다리

      는 퉁퉁 붇고 쓰라린 통증이 엄습해서 더 이상은 걸을수가 없을 것 같다. 

      이럴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얌전히 있었을 것을....

      "..제길! !"

      "쉬었다가 하는게 어때?"

      "시끄럽다. 꼬맹아-! ! 잇! !"

      말은 들은채도 안하고 철창으로 다시금 검을 내리치는 샤한의 모습에 유헌은 얼굴

      을 저었다. 

      깡-! !

      내리치는 순간 손바닥에 전해지는 충격에 샤한은 이를 악물고 겨우 버텨냈다. 

      하도 두들여 댔더니 검날이 다 빠지고 검을 쥔 손바닥에선 불이 난다. 아무래도 찟

      어진 것 같았지만, 도저히 그만 둘수가 없다. 

      이대로 죽게 된다면 그건 죽어서도 부모님의 얼굴을 보지못한 수치다. 

      발목에서 찰랑거리는 물에 손을 대고 식히던 샤한은 자신의 뒤에 앉아있을 녀석들

      을 바라 보았다. 

      지금은 물이 이 정도밖에 차지 않았으니 앉아 있을수 있는 거겠지만, 조만간 물이 

      더 차서 허벅지까지만 차게 된다면 안아도 체온을 잃게 되것이고, 그렇다고 서있는

      다 해도 체력을 빼앗겨 서서히 죽어 갈 거다. 

      차라리 깨끗하게 한방으로 끝낼일이지 이런 치사한 방법을 사용하다니. 

      이를 갈며 손바닥에 물을 턴 샤한은 이를 악물로 다시금 검을 들어 올렸다. 

      이런 곳에서 죽는다니- 절대로 그럴수는 없다! !

      카-ㅇ! ! !

      "기운이 넘치는 사람이군요."

      "아아- 일단 살고 싶으니깐."

      샤한의 보며 중얼거리는 파요의 말을 받아치며 유헌은 자조했다. 

      만약에 한쪽 다라기 성했다면 자신도 그처럼 미친듯이 벽에 달려 들었을 것이다. 

      모처럼 새로운 인생을 그와 함께 살기 위해서 왔는데, 이렇게 죽는다면- 그건 정말 

      웃기지도 않은 거다. 원래 있었던 세계와 가족들과 미할라의 희생으로 여기에 온것

      은 이런식으로 개죽음을 당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바닥에 손을 집고 손등에서 찰랑거리는 물을 가만히 바라보던 유헌은 눈을 감고 격

      해진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노력했다. 좀더 생각을 해보다. 

      다른 생각을 해보면 의외로 쉽게 이곳을 빠져나갈 길이 보일지도 모른다.

      "도대체 누가 이런곳에 우리들을 넣어 둔 걸까요."

      ".......글쎄."

      "너무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왠지 현실성이 떨어지네요."

      한탄조로 말하는 파요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유헌은 머리를 긁적였다. 

      물에 젖은 손으로 머리카락을 잡으니 그다지 기분좋은 느낌은 아니다. 정신을 차리

      기 위해 이물로 세수나 해볼까하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이내 관두기로 한다. 

      자신만이 아닌 세명의 인간들이 흑발로 왔다갔다 한 물이니...  

      한숨을 쉬며 손바닥안에서 찰랑거리는 물을 바라보던 유헌은 이게 깨끗한 물이었

      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세수도 할수있고, 마실수도 있을 텐데.. 

      아, 그러고 보니 목이 조금 마른것 같기도 하다. 침을 삼키며 약간의 갈증을 달랜 

      유헌은 손바닥에 묻은 물기를 털며 벽에 머리를 기댔다. 

      뒷통수를 적시는 액체에 정말로 싫다는 표정을 짓는 유헌의 얼굴을 바라보던 파요

      는 웃을 상황이 아닌데도 베어져 나오는 미소에 손을 들어 입가를 눌렀다. 

      처음에는 어른스럽운 차분한 사람인줄만 알았는데, 알고보니 애같은 사람이다. 

      뭐, 그게 더 좋긴 하지만...

      "음- 어딘가에 비밀문이라던가 있지 않을까요?"

      "설-마. 영화도 아니고..."

      "네? 영화라뇨?"

      ".....사람의 상상이 극대화 시킨 상자속의 마법이랄까나?" 

      "헤-에. 그런게 있었나요?"

      '과연 신관, 과연 모르는게 없네.'라고 중얼거리던 파요는 그의 다리가 괜찮을까하

      고 시선을 내려 유헌의 왼쪽 다리를 살펴 보았다. 

      옷에 가려 상처는 잘 보이지 않지만, 걱정되는 마음에 손가락을 들어 유헌의 옷자

      락을 들어 보이던 파요는 그의 다리 사이에 반짝이는 것을 발견하곤 묘한 표정을 

      지었다. 

      뭘까? 이것은.... 

      빛나는 무언가가 점점 키지고 있다.

      "........신관님."

      "응? 왜요?"

      "...이거 혹시 신관님의 축복?"

      자신의 다리 사이를 보고 알수없는 말을 해대는 파요의 모습에 미간을 찌뿌린 유헌

      은 귀찮은 듯이 자세를 바로 했다. 

      몸하나 까닥하기 싫을 정도로 힘든데 이 녀석은 무슨 소릴하고 있는 거지? 

      '끄-응.'하고 자세를 바로한 유헌은 파요가 가르키는 방향을 내려다 보았다. 

      그러다 멍하니 입을 벌렸다.

      ".....뭐야...이건?"

      "뭐냐고 물어도.. 그건 제가 먼저 물은 건데요?"

      파요가 손가락이 가르키는 것은 자신의 다리 사이로, 그곳에서 하얀빛이 점점 커져

      가고 있었다. 이내 자신이 앉은 자리를 전부 차지하던 빛은 더 멀리, 넓게 퍼져 지

      쳐 쓰러진 샤한의 자리까지 다다랐다. 

      놀란 샤한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닥의 물을 떠보곤 손바닥 안의 잡티하나 없는 

      액체에 멍하니 중얼거렸다.

      "뭐야 이건.. 왜 이렇게 맑아. 왕성에서 받는 성수같아.."

      성수? 맑다고?? 

      샤한의 말을 들으며 손바닥으로 물을 퍼올린 유헌은 아까 자신이 분명 이 물이 깨

      끗해져 먹을수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헉?!! 신관님! !"

      가만히 손바닥 안의 물을 유심히 바라보던 유헌이 냅다 그것을 입으로 옮기자 경악

      하며 손을 뻗던 파요는 그러나 눈앞에서 움직이는 새하얀 목의 율동에 손을 뻗은 

      그래도 굳어 버렸다. 

      옆에 있던 어린 기사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던 말던 손바닥에 묻은 물기까지 핣은 

      유헌은 자신을 미친놈보듯이 바라보고 있는 샤한을 바라 보았다.

      "마실수 있어! !"

      "...그렇다고 마시는 녀석이 어딨어? 이상한 놈.."

      "보기만 그렇지 우리들을 속이려는 게 아닐까요? 다시 뱉어 내세요."

      당황하며 자신의 등을 두들이는 파요의 손을 치워낸 유헌은 벽을 집고 자리에서 일

      어났다. 

      그런 유헌의 모습에 당황한 파요가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부축해 준다. 

      안그래도 다리의 통증에 그대로 쓰러질 뻔한 유헌은 자신을 지지해 주는 소년에게 

      고맙다는 표시로 웃어 보인다음 숨을 들으 마셨다. 

      자신이 생각하자 물이 깨끗해 졌다. 

      이것이 어떤 현상인지 알수는 없지만, 자신도 모르게 마력을 운용했기에 벌어진 일

      이 아닐까하고 짐작한 유헌은 확인차 다시한번 더 해보기로 했다. 

      물을 깨끗하게 했으면 이번엔 이 벽을 무너뜨려 보는 거다. 

      "또 무슨짓을 하려는 거냐?"

      파요에게 기댄채 허공을 올려다 보는 유헌의 모습에 샤한은 이가 다 나간 검을 검

      집에 집어 넣으며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어느새 종아리 차오른 물에 앉아있는 것조차 부담스러워 진다. 

      물이 젖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샤한은 눈을 감고 숨을 고르는 유헌을 바라보다 

      될대로 되라는 생각에 수면을 발로 차며 벽에 기댄채 대자로 누워 버렸다.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되는 상황이라면 저 놈에게 희망을 걸수밖에 없는 거다.

      "그나저나.. 정말 높군."

      위로 뻥 뚫린 감옥을 올려다 보며 샤한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태어나서 별에 별 감옥들을 다 가봤지만 이런 모형은 듣기만 했지 처음이다. 

      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위로만 뻗어진 그곳의 끝을 보기라도 하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이마에 손을 올린 샤한은 시야가 이지러 지자 눈을 비볐다. 

      긴장한 채로 몸을 격하게 움직였더니 눈이 피로해 진다. 

      손을 내리고 다시 위를 올려다 본 샤한은 그러나 좀더 확실히 그리고 커지는 이지

      러 짐에 혀를 차고 자세를 고쳐 앉은 후 양손을 들어 눈을 비볐다. 

      너무 피곤한 건가?

      찰랑.

      비빈 손을 물에 헹구고 다시 위로 올려다 본 샤한은 여지없이 흔들리는 공간에 멍

      하니 입을 벌렸다. 

      끝이다. 

      자신은 이렇게 한물가는 것인가. 

      갑자기 누님과 칸크빌레, 노웬, 기타등등의 얼굴들이 휙휙 지나간다. 

      미안하다. 변변찮은 도움도 되지 못하고...

      "과연- 됐다! !"

      뭐가? 

      희열에 찬 유헌의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샤한은 자신을 바라보며 위로 

      손가락을 가르키는 모습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벽이 무너지고 있어요! !"

      "........내 눈이 잘못된게 아니라는 거지."

      파요의 말에 멍하니 중얼거리던 샤한은 벽을 집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로 뻥뚫린 벽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수면으로 떨어지는 크고 작은 돌

      맹이들을 바라보던 샤한은 도대체 어떻게 된거냐고 중얼거린다. 

      "이곳의 벽이 뚫리는 상상을 했더니 이렇게 됐네요."

      "굉장- 굉장해요- 다른 견습 신관들도 유헌님처럼 할수 있는 건가요?"

      유헌을 마냥 존경스럽다는 듯이 쳐다보며 무너지는 벽들을 바라보던 파요는 순간 

      자신의 머리위로 덮치는 엄청난 물의 양에 소리를 질렀다.

      "읍..! ! 이게 뭐야?! !"

      ".....설마."

      순식간에 유헌과 파요를 뒤덮은 커다란 물줄기가 천장에서 쏫아지자, 가슴까지 찬 

      물살을 헤치며 머리에 달라붙는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샤한은 고개를 들어 위를 올

      려다 보았다. 

      쿠르릉하는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엄청난 양의 물이 자신의 머리위로 

      쏫아진다.

      "여기....물속에 있던 감옥이었던 거냐! !"

      멍하니 중얼거리다 이내 고함을 지르던 샤한은 순식간에 덮쳐진 물살에 정신의 끈

      을 놓았다. 

      정말로 후덥지근한 날이구나 싶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은 론은 아직도 잔뜩 남아있는 빨래감들을 보고 한숨을 쉬었

      다. 날이 더워서인지 주인인 요크발이 옷 갈아입는 횟수가 눈에 띄게 늘었다. 

      자유로운 행동을 할수없다는 것 때문에 그 스트레스로 괜한 옷들을 입고 갈아입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론이 하루에 빠는 양은 엄청났다.

      게다가 요크발만이 아닌, 돔이라는 사람것 까지도 함께 처리하고 있으니.. 

      코를 훌쩍인 론은 옷을 들어 다시금 빨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그 돔이라는 사람 자신과 비슷하게 생겼다. 그 돔이라는 사람도 자신

      과 같은 생각인지 처음 만났을 때 꽤나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지. 

      "혹시.. 가흔이라는 분이 말씀하신 칸이라는 분과 그 사람도 닮은 걸까?"

      손안에 느껴지는 기분좋은 느낌을 음미하며 눈을 감은 론은 툴가의 집에서 빠져 나

      온 그 사람들은 무사할까나 하고 생각해 본다. 

      검은 머리카락에 아름다운 얼굴을 지닌 가흔이라는 소년과, 역시나 예쁜 얼굴에 키

      가 엄청 컸던 오브라는 사람. 또 하나 기운좋은 귀엽게 생긴 유크렌이라는 아이 하

      나. 모두모두 좋은 사람들도 무사히 빠져나가 지금쯤 다른 곳에서 행복하게 살았으

      면 한다. 

      "헤-헷."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늘에 떠있는 해를 바라보던 론은 턱을 타고 흐르는 땀을 닦고 

      열심히 손을 놀렸다. 

      이런 빨래감들은 한시라도 빨리 헤치우고 요크발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자- 

      그분은 다른 사람의 손이 없으면 은근히 여기저기 흘리며 다니는 분이니. 

      기분좋은 얼굴로 빨래를 빨던 론은 머리위로 쏫아지는 천뭉탱이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기저기로 흩어지는 옷가지를 모아 가슴에 안은 론은 고개를 들어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는 돔을 올려다 보았다. 

      "빨아둬, 점심시간 이전까지."

      "아? ..........으음. 앞으로 몇분 안 남았는데 점심 이후로 빨면 안될까요?"

      지금 이것들을 안 빤다고 해도 돔이 준 빨래감들을 헤치우려면 꽤나 시간을 많이 

      걸릴지도 모른다. 고심하던 론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런 론의 말에 잠시 미간을 지뿌린 돔은 고개를 옆으로 숙이더니 마지못해 점심이

      후까지 하라고 말을 정정했다.

      그의 말에 론이 환하게 웃어 보인다.

      "감사합니다."

      "..........그럼, 그때까지 해오도록-"

      밝게 웃는 론의 얼굴을 내려다 보던 돔은 미간을 찌뿌리며 몸을 돌려 저택으로 걸

      어갔다. 

      처음 저 녀석을 봤을때, 빛의 역광탓인지 한순이나마 칸 녀석인줄 알았다. 

      하지만 아마색의 머리카락이라던가 누른 빛의 눈동자에 이내 녀석이 칸이 아니라

      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녀석답지 않게 덩벙대고 뭔가 얼빠지고, 멍청해 보이는 녀석

      은 알고보니 요크발의 시종역으로 온 녀석이라는 것이다. 

      한낯 시종이니 신경쓰지 말자고 하면서도 자꾸만 시선이 간다. 

      역시 그 칸이라는 녀석을 닮았기 때문이겠지.  

      "지긋지긋 하군."

      적발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돔은 산책을 할겸 숲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런 더운 사막지대인 곳이라도 황제가 묶는 곳답게 황실보다 못하나 나름대로 아

      름다운 화원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부러 잡아 둔것같은 새들이나 작은 동물들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던 

      그는 저멀리 하늘에서 붉은 기운이 피는 것을 발견하곤 그리로 걸음을 옮겻다. 

      워낙에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보니 알수없는 일들이 생겨도 그다지 놀라지 않게 되

      었다.

      "...심심해."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으나 성에 남아있으라는 황제의 명을 어기고 요크발에게 부

      탁해서 이곳까지 온 자신은 뭔가를 할수있는 입장에 아니였다. 

      이른바 객식구라는 것이니 블편이 있어도 따질수가 없는 것이다. 

      요크발이 있고, 원래 지닌 신분이 있으니 눈에 띄게 홀대하는 부분은 없었지만, 스

      스로가 이곳에 있는 것에 불편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런 느낌을 지니는 것은 너무 사치인건가.

      부시럭.

      시야를 가리는 나무가지를 옆으로 치워낸 돔은 빈 공터에 그려진 커다란 마법진에 

      숨을 들이켰다. 

      들리는 말로 칸크빌레 일행을 잡는다 하지만, 아무도 움직일 기세가 보이질 않아 

      그냥 손놓고 있나 싶었더니 이런 곳에서 은밀히 일을 진행하고 있었던가. 

      미간을 찌뿌리며 숲에서 나온 그는 마법진을 밟지 않도록 주위하며 그 주변을 돌아 

      보았다. 

      일단은 전 황제의 아들로 되어 있으니 자신은 일정한 집단에 소속되거나 친구들을 

      사귈수가 없었다. 자신의 작은 움직임이 혹여나 반역이나 모반의 혐의를 뒤집어 쓸

      수 있는 일인거다. 

      주변의 사람들까지 말려들수 있는 일이기에 지금까지 조용히 혼자서 적막한 인생

      을 살아온 돔은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다양한 방향의 학문을 연구하고 학습했다. 

      다행이도 보통 사람들보다 뛰어난 두뇌는 딱히 스승이 없어도 책의 내용들을 잘 이

      해시켜 주고 있었다. 

      그런 그가 봤을 때는 이 마법진은 상당히 복합적인 것으로 봉인이나, 환술, 또는 일

      정한 공간을 이그러 뜨리는 진을 표시하고 있었다. 

      "....드래곤이라고 잡으려는 건가. 뭐가 이렇게 복잡하지."

      난생 처음 보는 문자와 마법진의 어마어마한 크기에 이것을 그려놓은 자는 중앙국

      의 드래곤 루드빌이라 짐작해 본다. 

      멀리서 보았던 자신과 같은 붉은 머리카락에 아름다운 얼굴은 무척이나 인상에 남

      는 것이어서 돔은 때때로 그녀이 잔상을 찾곤 했다. 

      왠지 모르게 끌리는 느낌이 들어서 였다. 

      여차하면 자신이 황제가 될수도 있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니, 어쩌면 당연한 현상인 

      건가. 여기저기 기웃해 보던 그는 이 마법진을 건드리거나 계속 봐봤자 아무런 소

      용이 없다는 것을 깨닭고 한숨을 쉬며 물러났다. 

      슬슬 점심때가 되면 요크발이 자신을 찾으러 방에 내려올테니 미리미리 들어가 있

      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키-잉.

      " ? "

      귓가를 건드리는 미묘한 음에 미간을 찌뿌린 돔은 그 자리에 서서 아래의 마법진을 

      내려다 보았다. 

      커다란 진 가운데 부분이 묘하게 이그러 진다 싶더니 서서히 지워지고 있었다. 

      그 알수없는 현상을 자세히 보기위해 몸을 앞으로 내민 그는 자신의 발목이 잡히는 

      감각에 숨을 들이키며 뒤로 물러났지만, 오른쪽 다리가 움직이지 않아 넘어졌다. 

      마법진에서 나온 하얀팔이 자신의 발목을 잡고있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상당히 소

      름끼치는 일이다. 이를 악물며 잡힌 발목을 떼내기 위해 허리춤의 검을 뽑으려던 

      그는 그러나 주위의 풍경이 서서히 이그러 지자 안색을 달리했다. 

      무슨 조화인지는 모르겠으나 마법진에서 나온 이 손이 자신의 육체와 접촉을 했기 

      때문에 그또한 이 마법진에 서린 마력에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

      "어리석은..! !"

      이대로 순순히 끌려갈수는 없다는 생각에 검을 뽑아든 돔이 크게 휘두르려는 찰나 

      주변이 완전히 무너지고 새로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손을 향해 휘두른 검이 애꿋은 수면을 치고 자신의 얼굴에 물이 튀자 정신을 차린 

      돔이 주신이 있는 곳을 둘러 보았다.

      "..........유..적?"

      끝없이 펼쳐진 사막 가운데 하얀고 웅장한 기운을 뿌리는 유적이 있고, 자신이 있

      는 곳은 오아시스인 듯 그는 언덕에 걸터앉아 한발은 물에 집어넣고 있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말 그대로 되어버렸다는 것은 갑자기 난대없는 곳에 끌려 들어온 그

      의 황당함을 표현하는 것이리라. 

      원래 있었던 곳또한 주변에 사막이 있긴했지만, 이렇게 끝도 안보일 정도는 아니였

      고, 무엇보다 그곳에는 자신들의 일행이 있었다. 

      이런 아무도 없고, 알수없는 장소가 아니였을 터인데-

      "푸-학! !"

      " ? ! "

      "쿨럭, 켁! ...으.. 죽는 줄 알았네.."

      잠잠한 수면을 박차고 갑자기 나타난 인물에 돔은 반사적으로 검을 바로 잡았다. 

      물에 반쯤 잠긴 오른쪽 다리를 지지해서 점점 수면위로 올라온 인물은 이내 돔이 

      앉아있던 곳에 몸을 기대며 연신 기침을 해대고 있었다. 

      흔들리는 작은 어깨와 목에 달라붙은 검은 머리를 확인한 돔은 묘한 표정을 지었

      다. 

      이 사람, 그리고 이 목소리는 익히 알고있던 그 누군가와 닮았다.

      "아-아. 정말 죽는 줄 알았네."

      검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고 하얀 얼굴을 들어낸 사람이 주변을 살펴보다 돔을 발

      견하고 그를 바라본다. 한참을 주시하던 그 검은 눈동자와 새하얀 얼굴을 바라보던 

      돔은 역시나하는 느낌에 얼굴을 묘하게 찌뿌렸다. 

      칸이라는 한때 아버지라고 불렀던 그 무정한 인간이 무척이나 집착하고 답지않은 

      애정을 보였던, 어쩌면 유일하다고 불릴만한 존재. 

      분명, 무척이나 특이한 이름이었다. 

      그래, 그 이름이..

      "돔?"

      가흔.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이름은 막 부르는게 아니다."

      서늘한 음성에 다소 움츠려드는 표정을 지어보인 가흔이라는 소년은 한참동안 자

      신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뭐라 표현할수 없는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물속에서 나와 얼굴을 마구 문지르던 그는 '좋아! !'라는 기합을 내며 

      단숨에 물속에서 나온다. 그 이상한 행동에 멍한 표정을 짓던 돔은 그러나 자신을 

      바라보는 소년의 시선에 안색을 굳히며 애써 안면근육을 가다 듬었다. 

      이런 녀석에게 빈틈을 보일수는 없다. 

      물에서 나와 머리를 털고 옷에 물을 짜던 가흔이라는 녀석은 한동안 수면을 바라보

      다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오아시스 근처를 돌아 다닌다. 

      한참동안 그런 행동을 취해보인 그는 여전히 한쪽발을 물속에 집어넣고 앉아있던 

      돔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여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혹시 나말고 다른 사람이 더 나오지 않았나요?"

      "..........하?"

      "그러니깐, 청바지 색깔의 머리카락을 지닌 소년기사와 붉은 머리를 지닌- 알고 있

      을지도. 샤한이라는 사람인데, 그 두사람이 먼저 나오거나 이 근처에서 보지 않았

      나요?"

      파요와 샤한들과 함께 있던 감옥안에서 넋두리 한, 바닥에 차오르는 물들이 마실수 

      있었으면 하고 생각한데로 깨끗해 지자 유헌은 약간의 모험을 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눈을 감고 감옥이 무너지는 상상을 했는데, 실제로 벽들이 갈라지고 위의 

      돌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곳에서 빠져 나갈수 있다는 생각과 자신이 바라는 대로 일들이 이루

      어 지자 유헌은 설레이는 기분 반, 묘한 흥분상태에 있었다. 

      벽들에 금이 가게 하는 힘이 자신이 익히 신경쓰고 있었던 마력의 기운이라는 것을 

      운용시키는 것을 인지한 유헌은 이곳을 빠져나가면 젤에게 기본적인 마력운용을 

      배우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좀더 칸이나 다른 일행들에게 도움이 될수있는 거다. 

      그렇게 마냥 희망에 부푼 자신이 미소를 짓고 있는 순간 엄청난 양의 물에 머리위

      로 쏫아졌다. 물속에서 들리는 샤한의 '물속에 있던거냐-'라는 처절한 음성에 그제

      서야 자신이 있던 감옥이 수중에 있는 것이며, 그것의 영향으로 물들이 서서히 차

      오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이미 해치워 버린 일이다. 

      자신의 팔을 강하게 잡던 파요가 물살에 밀려 떨어지는 것에 당황한 자신이 손을 

      뻗었지만, 이미 사라져 버린 그의 손은 아무리 팔을 휘저어도 찾을 수가 없었다. 

      숨은 막히고 강한 수압에 정신의 끈을 놓으려던 찰나 손끝에 걸리는 것을 강하게 

      쥐었는데.. 

      설마하니 저 돔이라는 녀석의 발이었을 줄이야.

      "정말이지. 우연치곤 너무하다고."

      저 칸크빌레의 아들이 아닌가. 

      한숨의 쉬며 중얼거리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돔의, 성장한 칸의 얼굴을 꼭 빼

      닮은 그 얼굴을 주시하던 유헌은 구석에 가서 늘어지게 한숨을 내뱉고 싶은 심정을 

      억누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사적을 감정을 제하고 일행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니...

      "그러니깐, 그 두명을..."

      "모른다. 그리고 내 알바 아니니 알려줄 필요성도 못 느끼겠군."

      ".........하-아?"

      정떨어지는 말투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유헌의 손을 치워낸 돔은 자리에서 일

      어난 몸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흠뻑 젖은 오른쪽 다리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뿌린 

      그는 신경질 적으로 얼굴을 들며 이곳이 어딘가하고 생각해 봤다. 

      순간적으로 마법진의 효력에 휘말려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여력이 없었으니 마력의 

      파장이라던가 방향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그렇다면 자신은 완전히 미아가 된 상태란 말인가. 

      "....흐-음."

      왠지 모르게 초조해 보이는 그 얼굴을 한참동안 바라보던 유헌은 몸을 돌려 근처 

      볕이 잘드는 돌위에 앉았다. 

      일단 자신이 이곳에서 나왔으니 계속해서 기다려 보면 샤한이나 파요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무엇보다 저 돔이라는 녀석을 가만히 두고 갈수가 

      없었다. 

      말은 그렇게 해도 행동이나 표정을 보면 영락없이 길을 잃은 게다. 

      내색을 하기 싫어 일단 뻗대긴 했지만, 자신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거겠지. 전혀 

      의외인 곳에서 칸과의 유사점을 발견한 유헌은 헛웃음이 나왔다. 

      저래뵈도 칸의 아들이라 이건가- 알수없는 씁쓸함에 턱에 손을 집고 딴곳을 바라

      보던 유헌은 갑자기 걸음을 옮기는 돔의 모습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봐 어딜 거는 거야?"

      "........말해야 하나?"

      칸의 아들이라고 생각하니 존대를 할수가 없어 말을 놓았더니 그것에 상당히 거슬

      린듯 미간을 찌뿌리며 투명스럽게 답한다. 그리고 다시 걸음을 옮겨 숲으로 들어가

      는 모습에 한숨을 쉰 유헌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런 자신의 모습에 왜 따라오는 거냐고 묻고 싶지만, 말을 하기 싫기에 입을 꾹다

      무는 돔의 모습에 유헌은 미간을 찌뿌렸다. 

      저런 제멋대로인 녀석, 절대로 걱정되서 따라가는 게 아니라 그냥 가만히 있는게 

      싫어서 그런거다.

      "....칸의 아들만 아니였다면...."

      성질대로 한방 날렸을 거라고 중얼거리며 큰 보폭으로 사라지는 돔의 뒤를 밟는 유

      헌이었다.    

      "론! !"

      "아, 요크발님."

      시트를 정리하고 있던 론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는 사내의 모습에 당황하며 침대

      에서 내려왔다. 그런 론의 앞으로 다가온 요크발은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소

      년의 어깨에 양손을 올리며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돔이 어디에 있는지 아나? 점심전에 널 찾아갔다고 하는데-"

      ".....돔님이요? 일단 빨래감을 주시고 저택으로 돌아가시는 것 같았는데?"

      "그것밖에 모르는 거냐?"

      "에엣? 그..그러니깐, 점심후까지 빨래를 해오라고 하셔서 일단 마른 옷들은 돔님

      의 방에 올려 두었는데, 그때는 못 뵌것 같네요."

      다급한 요크발의 표정에 그에 대한 답을 제대로 할수없었던 론은 미안해 하며 이것

      저것 말하기 시작했다. 뭔가 단서를 잡을 만한 것들이 있나해서 귀를 기울이던 요

      크발은 들으나마나 한  대답에 손을 내저으며 그만하라고 말한다. 

      자신을 올려다 보는 노란빛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한숨을 쉰 그는 초조한 듯이 방안

      을 왔다갔다 했다. 

      일이 있어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다음에 저택으로 돌아왔더니 요크발이 보이지 않

      는다는 소리를 들었다. 당황한 그가 직접 나서 여기저기 돌아다녀 보았어도 그의 

      흔적을 찾을수가 없었다. 

      그의 나이가 나이이니만큼, 저택내에서 길을 잃었다고 볼수는 없으니, 어느 한곳에 

      있을수도 있으려만 사람이 푼지 한참이 지났어도 그의 모습을 볼수도 찾을수도 없

      다. 이렇게 저택을 이 잡듯이 뒤지는 데도 찾을 수가 없다면 그건 분명 그의 신상에 

      일이 생겼다는 거다.    

      "..요크발님. 돔님께 뭔가 일이 생겼나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론에게 손을 저어보인 요크발은 빠른 걸음으로 그의 방에서 나와 루드빌에 묵고있

      는 방으로 걸어갔다. 

      그녀에게만은 가고 싶지 않았지만 일이 일인이상 체면을 차릴때가 아니다. 

      걸음을 빨리하며 자신들에게 허리를 숙이는 기사들을 대충 눈으로 흩던 그는 계단

      에서 내려오는 카일과 사이키의 모습에 걸음을 늦추었다.

      "요크발, 돔은 찾았나?"

      손을 들며 묻는 카일의 말에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얼마나 난리를 부렸으면 저 무심한 남자가 돔이 부재를 알고 있는 건가. 

      평소에는 냉정한 자신이 가족들이 해당한 일이면 물불을 못가리는 모습을 타인에

      게 보이는 것만큼 약점은 잡히는게 없으니 자중하려 하지만, 변변히 이런 꼴이다. 

      안색이 안좋은 요크발의 얼굴을 바라보던 사이키는 그 마음을 익히 알고있어 걱정

      스러운 듯 입을 열었다.

      "영리하신 분이니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밖에도 사람을 풀어 두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동안 칸크빌레 일행을 쫒느라 자주 부딫혔더니 미운정이라도 들었나 보다. 

      일을 할때마다 요크발의 성미에 밀려 변변히 실패를 해와서 그닥 좋지않은 사이였

      지만, 언제나 당당하던 그가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여간 불편한 일

      이 아니다. 

      걱정해 주는 사이키에에 고맙다며 다시 걸음을 옮기려던 그는 어디를 가냐는 카일

      의 물음에 간단히 내뱉었다.

      "적룡에게-"

      "아, 그녀라면 자리에 없는데. 우리들이 이미 가보고 내려왔지."

      "........없다고?"

      "시녀들의 말로는 몇일전부터 뜸하게 모습을 보이더니 오늘은 내내 보이지 않는다

      더군. 뭔가 일을 꾸미는게 아닐까 싶어."

      "설마.........."

      그럴리는 없지만, 돔의 부재가 루드빌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에 요

      크발의 안색이 급속도로 굳는다. 

      그 표정에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예상한 카일이 괜한 짐작이라며 가볍게 

      웃어 보였지만, 딱딱하게 굳은 요크발의 얼굴이 풀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다시금 입을 열려던 요크발은 계단 중간에 서서 대화를 나누는 자신들을 내려다 보

      는 황금빛의 눈동자를 발견하곤 입을 다물었다. 

      그의 표정변화를 눈치챈 사이키와 카일이 얼굴을 돌려 계단위에 서있는 황제를 발

      견하곤 다급히 허리를 숙여 보인다. 

      "카일, 요크발. 가서 칸크빌레를 잡아와라-"

      "........네?"

      "장소는 따로 일러둘테니, 먼저 준비를 하고 있도록."

      갑작스런 통보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카일은 황제의 아름다운 얼굴에 주름이 

      생기자 당황한 표정으로 알았다며 여전히 가만히 서있는 요크발의 팔을 잡고 아래

      로 내려갔다. 

      "카일, 난 돔을 찾아야-"

      "내가 보모짓은 그만 두랬지. 요크발."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요크발에 맞추머 낮게 중얼거린 카일은 자신의 말에 안색

      을 굳히는 적발 미남의 얼굴을 확인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도 걸음을 멈추지는 않아서 멀어진 황제를 확인한다.

      "그 아이를 위해서라도 황제의 눈에 거슬리는 짓은 하지마- 

      현재 가장 냉정해야 네가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그게 무슨 꼴인가."

      "............"

      "냉정을 찾으라고, 돔의 일은 사이키가 알아서 할테니깐 말야. 

      지금은 칸크빌레나 황제에 대해서만 생각하자고."

      ".......그렇군."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오는 요크발의 얼굴에 그의 어깨를 두들인 카일은 그제서야 

      잡고있던 손을 떼었다. 앞서 걸어가는 카일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요크발은 답답한 

      가슴을 문지르며 돔에 대한 걱정을 일단 접기로 했다. 

      그를 위해서라도 칸크빌레에 대한 일은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미간을 찌뿌린 그는 이내 원래의 서늘한 얼굴로 일정한 보폭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이키."

      걸어가는 두사람의 등을 바라보던 사이키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안색을 

      굳히고 몸을 돌렸다. 어느새 내려온 건지 자신보다 세계단정도 위에있던 황제가 자

      신을 빤히 내려다 본다. 

      전에 어리고 색향을 풍기는 모습도 그렇지만, 지금의 성인의 모습의 황제는 여전히 

      번잡하기 힘든 묘한 분위기를 뿌리고 있었다. 

      그가 자신을 어째서 이곳으로 부른건지, 왜 저 둘만 보낸건지 알수없는 사이키는 

      그가 자신에게만 다른 일을 시키는 걸까하고 막연히 생각해 보았다. 

      그런 그를 한동안 바라보던 황제는 품속에서 하나의 책을 꺼내든다.

      "잘 읽었다."

      "....예?"

      "그럼."

      사이키가 건낸 책을 받고 멍한 표정을 짓자 그의 어깨를 두들인 이자크는 망설임없

      이 몸을 돌려 다시 계단위로 올라갔다. 기사들의 인사와 호위를 받으며 멀어지는 

      황제의 등을 바라보던 사이크는 손에 들린 책을 묘한 표정으로 내려다 보았다. 

      왠지 낯익다 했더니 전에 황제가 자신의 집에서 빌려간 책이다. 

      아직 읽기전이니 돌려줘서 고맙긴 했지만.. 

      "...여전히 속을 알수없는 사람."

      한동안 책을 내려다 보던 그는 한숨을 쉬며 나지막히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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