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랑.
물을 뜬 유헌은 그것을 파요의 입안에 넣어 주었다.
열에 들떠 헛소리를 하는 그의 상태가 정말이지 걱정이다. 안색을 굳힌 유헌은 파
요의 머리위에 올려진 물수건을 들어 찬물로 헹군 다음 다시 올려주었다.
그리고 다른 천으로 그의 몸을 닦아준다.
자꾸 땀을 흐르니 그대로 두면 몸이 식고, 끈끈해 질테니 제때에 닦아주는 것이 좋
다. 파랗게 질린 그의 얼굴을 내려다 보던 유헌은 문득 파요의 팔에 시선을 주다 미
간을 찌뿌렸다.
벌려진 살이 검게 변색되는 것을 보면 분명 잘라내야 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아직 어린 그의 기사로써의 미래도 함께 사라지는 되는 것인데..
어떻게든 돌아가면 유크렌이나 융텐에게 부탁해 이 소년의 팔을 완전히 낳게 해달
라고 부탁을 해야 할거 같았다.
"..........어째서 안되는 거야."
앞의 감옥일도 있고, 루드빌이라는 용도 처리했기에 이번에도 마력을 사용해 파요
의 상처를 치료할 생각이었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자신이 바라는 그런 일은 일어나
지 않는다. 하다못해 파요의 상처만이라도 낳게 하려고 있는 힘껏 바래도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그런 자신의 모습에 샤한은 용의 브레스를 받거나 하는 것에 너무 기운을 많이 써
서 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아무리 뛰어난 마도사라도 일정한 양의 힘을
사용하면 회복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고..
그런 그의 위로에 고개를 끄덕이던 유헌이지만, 자신의 능력에 불신감을 생긴다.
목숨이 경각에 달할때만 사용할수 있는 능력인 것일까.
그렇다면 정작 다른이들이 위험에 빠졌을때 자신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말과 같다. 입술을 깨문 유헌은 피곤한 듯이 등을 두드리다 나무가지를 한가득 안
고 돌아오는 샤한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많이 주워왔네요."
"당연하지. 이런 사막에 싱싱한 나무가지를 구하는게 더 어려운 일이라고."
유헌에게 대꾸한 샤한은 미리 파놓은 구덩이에 나무가지들을 집어 넣기 시작했다.
곧 있으면 저녁에 되는데 사막은 밤이 드리워지면 온도가 최하점으로 내려간다.
그에 대비해 많은 나무가지들을 모아두는 것이 상책이다.
그럴거면 차라리 유적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낳겠지만, 이무리 안전한 곳일지라
도 적룡이 나타난 곳엔 들어가고 싶지않은 두사람이었다.
한동안 샤한의 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유헌은 한숨을 쉬며 더위가 많이 가신 사막을
바라 보았다. 끝없이 펼쳐진 이곳에서 어떻게 벗어나 일행들과 만날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유헌의 모습을 바라보던 샤한은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아무 말이나 하자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그 적룡이 그렇게 다쳤으니, 요크발도 무사하진 않겠는 걸."
"..............왜?"
의아한 듯이 물어보는 유헌의 물음에 되려 샤한이 얼굴을 들며 '모르는 거냐?'라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말해선 안될것을 말했다는 양 입을 가린다.
그런 그의 모습에 뭔가 냄새를 맡은 유헌이 그에게로 다가서며 은근히 묻는다.
"어째서 그 적룡이 다쳤는데, 요크발이 무사하지 않는 거지?"
"내...내가 어떻게 알아? 그리고 너 말야, 다른 사람들한테 다 존대말쓰면서 왜 나한
테는 반말을 하는 거야?"
나름대로 화제를 돌리기 위해서라곤 하지만 샤한의 빈곤한 몸부림에 미간을 찌뿌
린 유헌은 '가끔가다 하잖아.....요-'라며 샤한의 붉은 눈동자를 빤히 바라본다.
그런 그의 시선에 잠시 식은땀을 흘린 샤한은 속으로 말할것 인가, 말하지 말아야
할것인가에 대해 엄청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말하자니 중앙의 비밀이라는 것을 탄로하는 것이고, 말하지 말자니 나름대로 동료
로 인정한 유헌이 상처를 받을 것 같아 꺼려진다.
정말로 궁금하다는 듯이 눈을 땡그렇게 뜨고 발을 모은채인 유헌의 모습을 흩어보
던 샤한은 어쩔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이 녀석이 남들에게 이것저것 떠벌리고 다닐 타입은 아니니 말해도 그닥 큰일은 벌
어지지 않을거다.
"요크발은 선조는 드래곤과 혼인했지."
".............에?"
"저 괴물인채인 모습이 아닌 인간의 모습으로 폴리모프한 드래곤과 혼인을 한거야.
역사상 그런류의 드래곤과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난 사례는 몇몇있지만, 요크발 가
문은 그 유형이 무척이나 특이하지."
자신의 말에 숨을 죽이는 유헌의 모습에 왠지 모를 재미를 느낀 샤한은 들고있던
나무가지를 땅에 내려놓으며 맞은 편에 앉아 어릴적에 칸에게 들은 이야기를 떠올
리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자신도 저 칸이나 노웬에게 지겹게 졸라 들은 이야기다.
"인간으로 분한 드래곤이 자신의 자질을 그대로 간직하고 인간과의 사이에서 아이
를 낳은 거야. 그렇다면 태어난 아이는 어떤 괴물이 만들어 지는 걸까?"
"............인간의 모습에...드래곤의 ...능력?"
"그래 그런식으로 성장한 가문이다 요크발의 집안은-
덕분에 일개 귀족의 서열에서 단숨에 공작의 지위로 상승하고 중앙국의 황제나 여
왕들과 혼인을 하는 동안 그 재력과 권력을 점점 더 강해져 어떤 왕조때는 황제보
다 공작의 권력이 더 강할때가 있었다는 군.
뭐 그렇다고 해도 칸크빌레님이 재위한 때도 공작의 권세가 만만찮았지."
그 덕분에 칸크빌레 황제가 엄청난 고생을 했었다고 중얼거린다.
"그런데 말야 , 인간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은 용은 그대로 사라지지 않고 몇백년
동안 그 일족에게 머물러 있어 수호를 해주다가 중앙과의 혼례가 이루어지자 그때
부턴 그곳의 수호자가 되었지. 자연히 이루어진 교체라는 걸까."
"그게.. 루드빌?"
"그래, 그 루드빌이다. 다른 용들처럼 한대의 유희뿐만 아니라 여러대의 후손들과
함께 살아가는 용같지 않은 용이지. 그녀는말야. 자신이 남간 후손에 대한 애정이
엄청나- 그래도 한때는 그 용이 미친, 광룡이라는 설도 나왔었지.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중 하나고 말야.
여튼 요크발가에서 중앙의 성으로 자리를 옮긴 루드빌은 그것을 구실로 꽤나 정사
에 관여를 해서 말야. 칸크빌레님은 그런 그녀를 아주 싫어했지.
그래서 그 율시아님을 자신의 정실로 들인거고..."
"에?"
"아무것도 아냐."
율시아를 말할 때 웅얼거린 덕분에 유헌이 못 들은 모양인지 눈을 크게 뜬다.
인정하긴 싫지만 나름대로 칸과 잘되고 있는 녀석에게 율시아에 대해 말할만큼 샤
한은 둔한 남자가 아니였다. 못들은 내용에 대해 물으려는 듯 몸을 앞으로 빼는 그
모습에 됐다는 듯이 손을 내저은 샤한은 서둘러 입을 열었다.
"그런거다. 루드빌의 후손이 요크발이고, 칸님의 몸에도 그녀의 피가 흐르기에 그
분또한 루드빌의 후손이지. 지금은 이렇지만, 한때는 루드빌도 칸크빌레님에게 엄
청난 애정공세를 퍼부었었지. ......지금은 아닌 것 같지만 말야."
"흐음."
"그래서 저 요크발이나, 칸크빌레님을 위시한 루드빌의 피가 흐르는 사람들은 엄청
난 능력을 지니고 있어. 하지만 그에 대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서 말야."
"그게 그녀와 상처와 요크발과 관련되는 사항인건가요?"
"그렇지- 부작용은 본체로 돌아간 그녀가 상처를 받을 경우 그녀와 가장 가까이 이
어진 자가 똑같은 통증을 느끼게 되는 거지.
그런 식으로 따지면, 지금쯤 그 녀석.. 꽤나 안좋은 상태일지도...."
드래곤의 피를 이어받아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지만, 부작용이 있어 루드빌의 본체
가 상처를 입으며 그와 비슷한 통증을 느끼게 된다-인건가.
용이 느끼는 통증과 인간이 느끼는 통증은 차이가 있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번일로 요크발이라는 자가 쇼크로 인해 죽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의도하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루드빌은 자신의 브레스를 자신의 몸으로 받았으니.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유헌은 일순 생각나는 칸의 얼굴에 고개를 들고 다시금 나
무 가지들을 정리하는 샤한을 바라 보았다.
"루드빌이 중앙성으로 자리를 옮겼다면, 그녀와 가장 이어진 자는 요크발이 아닌
칸이어야지 않아?"
"아아- 괜찮아."
건성으로 대답하고 나머지 나무 가지를 올려둔 그는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몸의 먼지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난 샤한은 자신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는 유헌을 내
려다 보며 걱정말라는 듯 손을 저었다.
"칸크빌레님은 용과의 연결의 스스로 끊어버리셔서 무사해."
덕분에 루드빌의 엄청난 분노를 사기는 했지만 말이지.
중앙의 수호자인 용이 황제를 죽였다는 일화를 남았을 지도 모르던 과거의 일을 떠
올리던 샤한은 쓴웃음을 지으며 허리를 두들였다.
그때는 정말로 그 적룡이 미쳐 날뛰어서 칸이 죽는다고 생각했다.
아까 용을 만날때완 비교도 안되던 엄청난 공포를 떠올리던 그는 하늘을 올려다 보
았다.
"하지만.. 그는 어떨지 모르겠군."
용과의 연결을 이어가고 있는 중앙의 형황제, 이지키엘은 말야-
"쿨럭."
후두둑.
"요크발님! !"
용이 걸어둔 마법진으로 다시 저택으로 돌아와 요크발을 옮기려던 기사들은 그가
토혈을 하자 안색을 굳히며 의사를 불렀다. 그래봤자 쓸모없는 일이라고 말하려 했
지만, 목구멍에서 치미는 비릿한 혈향에 요크발은 입을 다물수 밖에 없었다.
이런 통증은 정말로 오랜만에 느끼는 것이라서 견디기가 힘에 부친다.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감고있던 그는 이마에 닿는 서늘한 감각에 숨을 들이켰다.
"몸에 힘을 빼는게 좋을 거다. 요크발-"
익숙한 음성에 기사들에게 부축을 받은채로 사지의 힘을 빼던 요크발은 몸의 통증
에 점점 엷어지자 실눈을 뜨며 자신의 이마에 손을 올리고 있는 인물을 올려다 보
았다. 백발의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은 이자크는 자신을 바라보는 요크발의 시선에
눈을 가늘게 휘어 보이더니 이마에 댔던 손을 떼내었다.
"루드빌이 그 모양으로 돌아와서 너 또한 이럴 줄 알았다.
그래도 살아있어서 다행이군."
"..........황제폐하."
"그녀의 상처의 크기에 너, 쇼크로 죽을 줄 알았다."
장난섞인 어조였으나 그 말에 담아있는 걱정의 무게에 요크발은 입술을 깨물었다.
거의 다잡은 물고기였다.
그런 기회는 쉽게 오지 않을 뿐더러, 어쩌면 마지막이었을 지도 모르는 공격이었
다. 그런데 칸크빌레와 조우한 기사들은 우왕좌왕하고 자신은 그 망할 드래곤이 다
치는 바람에 죽일수 있었던 칸크빌레를 눈앞에 두고 도망온 것이다.
게다가 카일은 그들에게 붙잡혔다.
그 남자의 성격이라면 스스로 원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중앙의 요직 인물을
두고 온 것은 꽤나 큰 실책이다. 입술을 깨물고 분해하는 요크발의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 보던 이자크는 뒤에 서있던 사이키에게로 몸을 돌렸다.
"네가 요크발을 도와줘라."
"네."
"난 루드빌에게 가 있을테니, 할말이 있다면 그리로 와라."
멀어지는 황제의 몸을 바라보던 요크발은 나직히 욕설을 내뱉으며 자신을 부축한
기사들을 밀어 내었다. 설령 자신들의 입장이 반대였다 하더라도 이 멍청이 같은
놈들이 정신을 바짝 차렸다면 이런 최악의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엄연히 이자키엘이라는 황제가 존재하고 그를 위해 기사가 된 놈들이 10여년 전에
죽어 사라진 칸크빌레의 환영을 잊지 못하고 일을 이모양 이꼴로 만든 것이다.
엄청난 살기에 그의 주변에 있던 기사들이 고개를 숙이다.
"그만 들어가서 쉬시는게 좋습니다."
옆에서 나직히 말하는 사이키의 얼굴을 바라보던 요크발은 입술을 깨물었다.
만약에 황제가 이 사실은 안다면 어떻게 될것인가.
칸크빌레의 모습에 넋이 나간 이 멍청한 기사놈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해서 눈앞에
서 놈을 놓치고 일을 엉망으로 만들었다고- 어쩌면 그는 일의 실패보다 기사들이
칸크빌레를 만났다는 것에 더 분노할 것이다.
자신을 둘러 싼 십여명의 기사들가 숙소로 돌아갔을 것이 분명한 나머지 기사들의
이름과 얼굴을 천천히 곱씹던 요크발은 입을 열었다.
"일단 오늘은 일은 잊어라."
".........."
"어떤 일이 있든지- 발설한다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
요크발의 살벌한 기운에 도열해 있던 기사들의 몸이 미미하게 흔들린다.
그런 모습을 냉정하게 흩던 요크발은 옆의 사이키의 팔을 잡으며 걸음을 옮겼다.
도대체 무슨일이 벌어지건지 알수없는 사이키는 그의 그런 행동과 기사들의 반응
이 의아했지만 직접적으로 묻지는 않았다.
이렇게나 기분이 저조한 그에게 물어봤자 제대로 된 답이 나올리가 없다.
"사이키, 중앙으로 연결을 해 50명의 기사를 더 보내라고 해."
"네? 하지만 이곳에 더 이상의 인력은 필요 없습니다. 이미 꽉찬-"
"조만간 비게 될것다. 50개의 자리가."
서늘한 그의 말에 사이키는 걸음을 멈추고 붉은 머리카락을 지닌 사내를 바라 보았
다.
"설마.... 당신."
"...........봐서는 안될것을 보았어. 살려둬선 화근을 남기는 꼴이다."
나직히 말하는 그 어조에서 그가 이미 결단을 내렸다는 것을 눈치챈 사이키는 입술
을 깨물었다.
봐서는 안될것이란 칸크빌레를 말하는 것이겠지.
어린 모습의 그가 아닌, 황제처럼 성장한 그의 모습을- 대답없는 자신의 모습에 몸
을 돌린 요크발이 서늘한 붉은 색의 눈동자로 바라본다.
그런 그의 눈에 시선을 주던 사이키는 탄식하듯 알았다고 대답했다.
"........괜찮은 건가?"
넓은 침상에 누워있던 루드빌은 방으로 들어온 이자크의 모습에 입술을 깨물더니
시선을 피했다. 자신을 믿으라고 그렇게나 큰소릴 쳤는데 당하고 돌아온 것에 수치
스러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고개를 살짝 저어보인 이자크는 느긋하게 걸음을 옮겨 그녀가
누워있는 반대편에 앉았다.
침대의 충렁거림을 느끼며 눈을 감던 루드빌은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뱉었다.
"꼴 사나워."
"그마나 알고 있으니 다행이군."
"이자크. 위로해 주지 않는 건가."
답지않게 투정을 부리는 것을 보아 단단히 삐뚤어 졌다.
자신의 팔을 잡으며 얼굴을 드는 그녀의 모습에서 쓴 웃음을 지을수 밖에 없었다.
괜찮을 척 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붉은 눈동자는 타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유헌이라는 소년은 자신이 손을 쓰기도 전에 적룡의 먹이가 될터이다.
"분명히 말했다. 만만치 않은 상대라고-"
유헌이라는 소년에 대해 그렇게 평가한 자신에게 코웃음을 친 루드빌은 녀석의 목
을 가져오겠다고 호언장담을 하며 일을 꾸미기 시작했다.
어떨땐 적룡답지않게 계략을 꾸미기도 하지만, 그 본성은 변하지 않아 이렇게 단순
하게 밀어 붙이다가 큰코 다친 경험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대표적인 예로 칸크빌레의 일을 들수가 있겠지.
아직 일행들과 있을 칸의 모습을 떠올리던 이자크는 그래도 그 유헌이라는 소년과
헤어진 것에 대해선 일단 만족하기로 한다.
칸크빌레는 절대로 행복해져선 안됀다.
행복해지면.... 분명 자신을 잊을 터이니.
"몸은 괜찮은 건가?"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루드빌은 이자크의 얼굴을 쓸어 내렸다.
그녀의 손길에 눈웃음을 지어보인 황제는 그녀의 무릎을 베고 누우면 눈을 감았다.
"네가 칸크빌레가 아닌 이상 난 괜찮아."
".....그렇지."
눈을 감고 있는 이자크의 얼굴을 부드럽게 쓸던 루드빌은 그의 이마에 입술을 댔
다. 그런 자신의 행동에 잔잔한 미소를 짓는 이 작은 존재를 지켜주고 싶다고, 그렇
게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과의 피의 연결을 끊고 저 칸크빌레와 이어 줬지만, 그것 때문에 괴로
워 하는 그와 자신을 비난하는 요크발을 볼때마다 가슴이 쓰리다.
아무리 자식들이 부모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하나 이렇게나 어긋나다니-
그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면 바랄수록 오히려 더욱 불행해 지는 아이들의 모습에
루드빌은 눈썹을 찌뿌렸다.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손길에 느긋하게 눈을 감던 이자크는 나른하게 중얼거렸다.
"오늘 저녁에......갈꺼야."
"녀석들에게?"
루드빌의 물음에 황제는 누운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칸크빌레 잔당들이 모여있는 폴유간- 완전히 부숴 놓을 테니.."
"............나도 가자."
전부터 계획하던 일이니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지만, 루드빌이 함께 가자는 말에 이
자크는 눈을 떠서 그녀를 올려다 보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며 루드빌은 자신의 턱에 손을 올려 보았다.
그 유헌이라는 소년이 자신의 브레스를 손으로 막은 후부턴 알게 모르게 그쪽으로
만 신경이 쏠린다. 이렇게 불편한 마음으로 있을 바엔 차라리 인간들을 상대로 다
시 한번 쏘아보는 것도 좋은 테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그쪽으로 얼굴을 돌린 그녀는 화사하게 웃어 보였다.
"폴유간은 경비가 삼엄하다지?
정 안될때는 내가 직접 나서서 문이고 뭐고 다 박살낼꺼니깐 말야."
칸크빌레들은 부족한 인원을 채우려 분명 그들의 아지트인 폴유간으로 가고 있는
중일꺼다. 그런 곳을 자신들이 한발 앞서 박살을 낸다면..
묘하게 들뜨는 기분에 루드빌은 무릎에 이자크를 올려둔채 뒤로 몸을 뉘였다.
그런 그녀의 행동을 주시하던 금빛의 눈동자는 조금 흔들리는가 싶었지만, 곧 평소
때의 잔잔함을 들어내며 날카롭게 빛났다.
"유크렌, 아-"
"자-아."
".........죽을 것 같아."
창에 얼굴을 대고 웅얼거리는 칸의 모습에 밖에서 말을 모는 에스가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아무리 모습이 변했다지만, 용의 기를 뿌리는 융텐을 알아보지 못하고 푹
빠진 유크렌이 그에게 이것저것 집어주는 모습은 꽤나 인상적인 것이다.
게다가 유헌이 곁에 없는 칸은 베알이 꼴려 죽겟다며 연신 끙끙대고 있는 것이다.
융텐이 언제 유헌의 기를 눈치채고 그를 데려올지 알수없다며 그들과 같은 마차를
타기를 원한것은 칸 본인이니 투덜거려도 수가 없다.
그것을 자신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칸도 크게 불만을 표시하지 않고 마차에서 시
선을 돌려 밖을 바라보며 투덜대고 있는 것이다.
입술을 비죽히 내민 칸의 얼굴을 내려다 보던 에스는 그런 그를 바라보고 있는 주
위의 기사들을 바라보며 헛기침을 하고 몸을 앞으로 숙였다.
어찌어찌해서 저들이 칸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것에 대한 해결은 저 요크발들을 상대하는 것보다 더 처지곤란한 일이 될지도 모
른다. 그러니 일단 칸이 알아서 모습을 숨겨 주었으면 한다.
답답해서 모습을 숨기기 싫다면 하다못해 무게감있게 행동해 준다면 자신들도 이
렇게 일일이 간섭을 하지 않아도 될터인데 말이다.
"칸님 안으로 들어가 계세요. 주변에 보는 눈들도 있으니-"
"........."
"저희들은 이렇게 모습을 들어내선 안된다는 걸 잘 아시죠?"
".......쳇."
뭐라고 하려던 칸은 자신을 바라보며 미소짓는 에스의 얼굴에 투덜대며 얼굴을 마
차안으로 집어 넣었다.
그리고 처진 천 뒤로 '니들 그만 좀 붙어 있어라-! !'라고 외치는 그의 음성이 들린
다. 그 소리를 들으며 헛웃음을 흘리던 에스는 뒤에서 따라오는 한 마차에 시선을
주었다.
언제 녀석들이 다시 나타날지 알수 없다며 샤르비나의 환궁을 도와달라는 기사들
의 요청에 어쩔수없이 동행하고 있지만, 다음번에 도착하는 마음에선 헤어져야 할
것이다.
샤르비나가 원래 타고있던 마차는 복면인의 습격으로 엉망이 되어서 그녀는 이쪽
에 제공해준 마차안에 들어가 있었다.
그것도 카일이나 노웬, 그리고 오브와 함께 말이다.
그 묘한 조합에 잠시 한숨을 쉬어 보이던 에스는 점점 그쪽으로 신경이 쏠리자 혀
를 차며 그쪽으로 말을 옮겼다. 그 남자가 노웬이나 샤르비나에게 무레를 저지르지
나 않나해서 감시차 가는 것이지 결코 딴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다.
전처럼 카일을 무심하게만 볼수없는 자신에게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어느새 그쪽으
로 다가간 에스는 천을 들어올려 안을 바라 보았다.
그다지 대화가 없었던 듯 약간 하품을 하던 샤르비나가 자신을 발견하곤 반색을 한
다.
"에스-"
"....샤르비나."
상황이 급박해서 몰랐는데 샤르비나는 앞서의 공격으로 노모를 잃었다고 한다.
그녀를 도망보내기 위해 몸으로 막았다는 소리 전해듣고 그녀를 위로하려던 에스
는 전혀 내색하지 않고 밝은 표정을 짓는 모습에 이야기를 꺼낼수가 없었다.
"무슨 일? 뭔가 이상이 있는 거야?"
이쪽으로 몸을 내미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옆에 앉은 카일에게 시선을 주던 에
스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피하며 눈을 아래로 내렸다.
"뭔가 불편한 점이 있나해서......"
"그다지- 칸님은 뭐하고 계셔? 이쪽에까지 목소리가 들리던데."
'건강해 지신 것 같아 다행이야-'라며 웃는 그녀의 얼굴에 마찬가지로 미소를 지어
보인 에스는 뚫어져라 바라보는 시선에 눈을 들었다.
카일이 푸른색의 눈동자를 빛내며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무엇을 보고 있느냐고 말하려던 에스는 그러나 떨어지지 않는 입에 당황했다.
앞에서 샤르비나가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는지 노웬이 미소짓는 것을 보며 마
찬가지로 웃어 보이려던 에스는 그러나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은 얼굴 근
육에 당황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점점더 당황해서 어찌할바를 모르겠다.
고삐를 잡은 손안에서 땀이 촉촉히 베이는 것을 느끼며 입술을 열기위해 부던히 애
를 쓰던 에스는 옆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그리로 얼굴을 돌렸다.
"유크렌은 여전히 그 흑룡과 함께 있는 거야?"
"..........아, 뭐."
오브 덕분에 입을 열수가 있었다.
눈에 띄지않게 안도의 표정을 지은 에스는 카일을 피해 오브에게 시선을 주었다.
"유크렌은 원래 좀 특이했잖아요.
융텐을 못 알아보고 그런 행동을 취한다 해도 어쩔수 없죠."
"정말 바보 아닌가. 용끼리 협응하는 건 밥먹기보다 쉽다고- 그런것을 눈치 못채고
제 인생을 망친 융텐이라는 흑룡에게 답싹 안기다니 말야."
유크렌에 융텐과 함께 있는 것이 어지간에 꼴보기 싫은 듯 거칠게 내뱉는 그의 모
습에 에스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인간의 입장에서 원하지 않은 임신은 고통이지만, 용들끼리의 경우는 다르다.
그 수가 적다보니 원하든 원하지 않던 상태이건 간에 아이가 생기면 무조건 축복해
주는 것이다.
그러니 융텐의 아이라지만 임신한 것에 유크렌이 꼭 싫어한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굳이 입밖으로 내뱉어 오브의 신경을 거스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에스는
그저 웃어 보일 뿐이었다.
그런 자신의 얼굴을 아직도 바라보는 카일의 시선을 느낀다.
도대체 왜 그런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인가.
"샤르비나."
"네? 노웬님."
자신의 부름에 미소를 지어보이는 미녀의 모습에 마찬가지로 미소를 지어보인 노
웬은 입을 열었다. 아까부터 계속 말하고 싶었지만, 다른 자들의 시선때문에 적당
한 타이밍을 재고 있었던 것이다.
"서로 상황이 그다지 좋지않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우리들은 계속해서 그대들과
함께 다닐수 없다는 것을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물론이죠. 저희도 다음 마을에서 다른 방안을 모색할 생각이랍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다지 기분 나빠하지 않고 딱 부러지게 샤르비나는 다음 말을 이었다.
"이번 여행은 참으로 즐거웠습니다. 평민들에게 침입을 당해보기도 하고, 전설의
칸크빌레 황제폐하를 닮은 사람도 만나게 되었고요.
저나 다른 기사분들 모두 그것만에 만족할겁니다."
"..........부탁드립니다."
칸크빌레가 아닌 그를 닮은 사람을 만난것이다라는 대답을 들은 노웬은 그제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언젠가 그의 존재를 알리겠지만, 아직은 그 적기가 아니다.
중간에 부득이 하게 그의 외모를 기사들에게 보이게 되었지만 그 문제는 이 똑똑한
여성이 알아서 해결해 줄것이다.
안도의 표정을 띄는 노웬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던 샤르비나는 요란하게 울
리는 칸의 비명에 눈을 크게 뜨며 몸을 마차 밖으로 내밀었다.
".........무슨 일?"
"가보도록 하지."
샤르비나의 질문에 답한 에스가 안색을 굳히고 칸이 있던 마차로 다가간다.
중간에서 달리던 칸이 탄 마차가 멈추고 뒤를 따른 마차들이 줄줄이 멈춘다.
그리고 무슨 일인가 싶어 얼굴을 내미는 기사들과 말에 올라탄 자들의 흥미로운 표
정에 에스는 이를 갈았다.
눈에 띄는 짓을 하지 말라고 그렇게나 말했건만 이건 또 무슨 짓이란 말인가.
이렇게나 계속 일을 저지를거면 마차에 타지말고 차라리 말에 올라 혼자가라고 해
야 겠다.
"에스! !"
멈춘 마차에서 구르듯이 튀어나온 칸이 자신의 발견하자마자 구세주를 만난것처럼
이름을 부른다. 그런 그의 기세에 놀란 에스는 눈을 깜박이며 저도 모르게 무슨 일
이냐고 묻고 만다.
에스의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맹렬히 고개를 끄덕인 칸은 부들거리는 손가락으
로 안의 두 드래곤을 가르킨다.
"이 돌댕이들이 말야, 유헌만 생각하고 샤한을 잊어버린 거야!!!"
"...........에?"
"유헌의 마력이 느껴지지 않으면 이쪽에 살고있던 샤한의 기를 찾으면 될거 아니냐
고! !"
" 아 ! "
칸의 말에 저도 모르게 탄성을 지른 젤이 쏠리는 시선에 자신의 입을 막는다.
무슨 일인가 하고 고개를 밖으로 내민 라헨과 라프헨은 '맞아, 그런 방법이 있었구
나-'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것은 다른 이들이 모두가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하다못해 저 샤르비나의
기사들도 자신의 손바닥을 내리치며 알았다는 탄성을 지르는 것이다.
그런 인간들을 바라보던 칸은 자신의 머리를 쥐어 뜯으며 절규했다.
"새머리 밖에 없는 거냐- 이 집단에! !"
그러는 칸도 미쳐 생각치 못했냐고 말하고 싶었던 다른 일행은 그러나 샤한을 기를
찾으면 된다는 것을 그나마 제일 먼저 알아차린 그이기에 뭐라 할말이 없었다.
서로의 눈치를 살살보는 가운에 노웬과 함께 마차를 타고있던 카일이 진푸른 눈동
자를 들어 눈앞의 은발의 미남을 바라본다.
"설마해서 묻지만 말야."
".........."
"설마설마설마- 그대도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니겠지?"
대답없이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는 노웬의 모습에 한숨을 쉰 카일은 밖에 시
선을 주었다.
"알았다. 더 이상 안 묻도록 하지."
이런 녀석들에게 자신들은 번번히 참패를 한 것인가하는 생각에 카일은 다소 힘이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자-자. 빨리 해."
"..........제길."
기세가 등등해진 칸이 발로 툭툭쳐도 융텐은 차마 뭐라고 못하고 하는대로 당하고
만 있다.
다른 녀석들도 똑같이 샤한은 찾으면 된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는데, 왜
유독 자신만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거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들은 인간이
고 자신은 드래곤이다.
저 인간들보다 몇백배나 되는 우수한 두뇌를 지닌 자신이 인간들과 비슷한 사고를
한 것에 대해 엄청난 수치심을 느끼는 그는 차마 뭐라고 반발도 못하고 칸이 하는
대로 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부득부득 갈며 자신에게 쏠리는 인간들의 시선을
느낀 융텐은 묵묵히 바닥에 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무가지를 들고 바닥에 이런저린 모형을 그리는 융텐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샤르비나가 얼굴을 옆으로 숙이고 노웬에게 말을 건다.
"못 믿어서가 아니지만, 정말로 용?"
"그렇습니다. 드아글라 산맥의 흑룡 융텐님이죠."
"아, 그 북의 수호자인- 그런데 저런 사랑스러운 꼬마인 줄은 미쳐 몰랐네요."
"뭐 사랑스러운 것은 외관만입니다만-"
샤르비나가 손에 얼굴을 대고 흥미로운 눈빛을 빛내는 것을 확인한 노웬은 필사적
으로 말을 바꾸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
이 샤르비나라는 여자는 자신조차 함부로 할수없는 기가 센 사람이라 칸을 다루는
것처럼 할수가 없다. 난감함에 한숨을 쉰 노웬은 그러나 그녀가 더이상 융텐에 대
해 흥미를 보이지 않고 융텐이 그리는 마법진을 진지하게 바라보자 입을 다물었다.
유헌과 함께 사라진것은 그녀의 동생이고 자신을 구하기 위해 온 기사다.
장난으로 기분을 풀고 싶어도 두사람의 걱정에 표정이 딱딱해 지는 것은 어쩔수 없
을 것이다. 처음에 가볍게 농담을 주고받던 사람들도 융텐의 마법진이 완성됨에 따
라 팔장을 끼거나 마차에 기댄채 입을 다문다.
사라진 자들 중 여기서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나타날수 있을 까요?"
"나타나지 않으면 이번에야 말로 칸이 용으로 변해 찾으라고 할껄."
"......한번에 나타나면 좋겠군요."
라프헨의 중얼거림에 고개를 끄덕인 라헨은 흘러내린 천을 들어 그의 몸을 감싸 주
었다. 유크렌의 치료로 머리의 상처는 다 나았지만, 라헨은 자신이 피를 흘리는 모
습에 어지간히 놀랐는지 이번에 말을 타지않고 함께 마차에 타 자신을 간호해 주고
있었다.
그런 러헨의 가슴에 얼굴을 댄 라프헨을 융텐이 마법진을 다 그리고 자리에서 물러
나자 숨을 죽였다.
다른 일행들의 사기나 칸님을 위해서라도 사라진 모두가 나타났으면 하다.
"쳇, 나타나기만 해라."
사라진 놈들 덕분에 졸지에 드래곤의 위신에 먹칠을 당했다.
입술을 깨문 융텐은 그러나 뒤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칸의 무시무시한 시선을 느끼
며 입술을 비죽히 내밀었다. 저런 녀석때문에 자신이 이런 일을 당하는 것은 탐탁
치 않지만, 저 멀리서 자신을 바라보는 유크렌을 위해서 하는 거다.
애써 자위하면 눈을 감은 융텐은 샤한이라는 녀석의 마력을 찾기 시작했다.
아주 모르고 시작하는 것이 아닌 그의 누이라는 샤르비나라는 여자의 마력을 맡아
두었으니 생각보다 수월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샤한이라는 놈과 유헌이 함께 있을 것인가 이다.
그 녀석이 없으면 이 짓은 하나마나다.
".....찾았다."
정신을 집중하며 유영을 게속하던 융텐은 그 샤한이라는 녀석의 기척을 발견하곤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샤르비나와 유사한 마력패턴과 그 주변에 몰려있는 2명의 존재에 그것이 유헌과
파요라는 소년기사를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챈 융텐은 손을 벌리며 이동주문을 외
우기 시작한다.
"빛이 나기 시작한다."
"........빛이라기 보단.. 저건 흑기로군."
누가 흑룡아니랄까봐 그려진 진에서 올라오는 검은 기운에 오브는 헛웃음 지으며
옆에 있는 유크렌을 바라 보았다.
저렇게 확연하게 그 존재를 나타내고 주변에서 융텐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데 이
머리나쁜 용은 그가 자신을 괴롭히던 그라는 것을 익식하지 못하고 있다.
젤은 무의식적으로 좋아하는 것에 매달리는 유아퇴행현상이라고 유식하게 말했지
만, 오브는 속이 부글부글 끌어올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자신에게 달라붙어 있었던 용이 다른 녀석에게 달라붙어 쭉쭉 빨아대는 것을 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딱, 건달같은 놈을 데리고와 결혼한다고 난리치는 딸내미를 바라보는 심정이다.
투덜대던 오브는 진에서 흑색 기운이 점점 진해지고 흐릿하게나마 인간의 영상이
그려지자 눈을 크게 떴다.
정말로 유헌과 샤한이 나타나는 건가.
"........됐다."
세사람을 완전히 이곳으로 부르는 것에 성공한 융텐은 벌리던 손을 내리고 자신을
어깨를 주물렀다.
이제 저 흑기가 완전히 사라지만 망할 세놈들이 나타날 것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칸을 향해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어보인 융텐은 이내 입가에 미소
를 지으며 유크렌에게 달려갔다.
"잠깐, 너 어디에 가는 거야?!!"
"이거놔, 원하는 대로 모-두 데리고 왔잖아-! !"
"무슨 소릴 하는거냐, 오긴 누가 왔다고!!"
진을 그리고 흑기만 내뿜게 하고선 그대로 내빼는 융텐의 뒷목을 잡은 허공에서 아
둥바둥대는 그에게 이를 들어내 보았다.
이 망할 흑룡이 이번에도 거짓말을 하는거라면 이번엔 달리는 마차에서 던져버릴
테다-라고 생각하던 그는 옆에 서있던 샤르비나가 샤한의 이름을 외치며 진 안으
로 달려가자 잡고있던 융텐의 뒷목을 놓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진안에 나타난 세명의 사람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쿨럭, 쿨럭-"
"그렇게 하는게 아니지. 이래서 도련님들은-"
".......제길."
겨우 불 못 붙인다고 아까부터 도련님이 어쩟네, 귀하게 자랐구먼-이라며 조롱하
는 샤한에게 이를 간 유헌은 다시금 불씨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훅훅대며 바람을
불었다.
열이 내던 파요도 점점 안정되가고 샤한에게만 일을 시키는 것도 미안해서 그를 대
신해 불씨를 살리기 위해 바람을 불었는데, 연기만 나오고 불은 타오를 생각을 안
한다. 눈과 코를 맵게하는 연기에 그만하고 싶었지만, 아까부터 기회라는 듯이 놀
려대는 샤한때문에 오기가 생겨 도저히 중간에 그만 둘수가 없다.
이를 악문 유헌은 눈을 감고 있는 힘껏 바람을 불었다.
"그렇게 하면 안돼. 불길이 올라오는 방향과 잘 맞추면서 해야지. 이렇게."
입으로 안불고 가볍게 손을 휘젖는데 그 부분에서 금방 연기가 나오고 불씨가 커진
다. '알겠어?'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이는 그의 모습에 이를 악문 유헌은 반드시 불
씨를 피우고 말테다-라는 결의를 다지고 허리를 숙였다.
불씨를 피우지 않으면 점점 내려가는 사막의 기온에 버틸수가 없다.
생존의 문제이기도 해서 그것에 매달리던 유헌은 갑자기 주변의 공기라 흐려지는
것에 고개를 들었다.
" 응? "
불씨를 피우다 말고 얼굴을 드는 유헌의 행동에, 이 녀석이 하기싫어 꾀를 부리는
구나 싶어 자신이 대신하려던 샤한은 그러나 유헌의 딱딱하게 굳은 안색에 반사적
으로 검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는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은 때려치고, 저 유헌이 이상하다 느끼면 무조건 경계하
기로 결정을 내렸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유헌은 적들을 엄청 잘 감지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
"무슨 일이 있는거.... .........어래?"
검에 손을 대고 유헌에게 달려가던 샤한은 휙하고 변한 주변 환경에 눈을 크게 떴
다. 자신들은 분명 숲 가운데에 있는 동굴로 거쳐를 옮겨 불을 피우고 있었는데, 이
곳은 뭔가.
숲은 커녕 그냥 황량한 길이 나있는 광경에 눈을 크게 뜬 샤한은 자신을 멍하니 바
라보는 기사를 발견하던고그가 왠지 눈에 많이 익다고 생각했다.
"샤한-! !"
"켁?! !"
날카로운 고음의 음성이 들리고 등에서 느껴지는 충격에 앞으로 나자빠질뻔 한 그
는 간신히 중심을 잡으며 자신의 뒤에 매달려 연신 '다행이다-정말정말 다행이
야-'이라고 중얼거리는 샤르비나의 모습에 멍하니 입을 벌렸다.
목에 둘러진 팔을 잡고 샤르비나를 등에 매단 채 몸을 돌린 샤한은 자신을 향해 어
서 오라는 듯이 손을 흔드는 익숙한 사람들의 모습에 순간 코끝이 찡해짐을 느꼈
다.
저 그리운 사람들은 다시는 못 만나는 줄 알았다.
감격에 목이 메어 입을 열려던 샤한은 그러나 엄청난 속도로 달려든 칸이 자신을
밀치자 그대로 바닥으로 놔동그라 졌다.
샤르비나가 뒤에 매달려있어 반사적으로 몸을 돌리는 기특한 짓을 하기는 했지만,
덕분에 턱이 까지는 상처를 입은 그는 쓰라린 턱을 만지며 유헌에게 매달린 칸의
뒷모습에 시선을 주었다.
전에는 엄청 꼴사납다고 느끼던 모습들인데 이제는 보기좋기만 하니 이상한 노릇
이다.
"유헌! !"
"..........칸?"
유헌은 자신의 얼굴과 몸을 매만지며 연신 괜찮냐고 묻는 사내의 얼굴을 멍하니 바
라 보았다. 그런 유헌의 모습에 당황한 칸이 유크렌을 부르자 융텐을 안고있던 그
가 유헌에게로 달려온다.
멍하니 칸의 얼굴에만 시선을 주던 유헌은 유크렌이 자신의 이마에 손을 올리자 그
제서야 정신을 차리며 이마에 올려진 손을 잡아 아래로 내렸다.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다.
"유크렌 정신이 들었군요."
"그러는 유헌이야 말로 정신이 든거야?"
".......아, 칸."
어깨를 잡고 걱정스러운 빛을 띈 황금빛 눈동자를 바라본 유헌은 작게 고개를 끄덕
이며 괜찮다고 말했다. 유헌의 괜찮다는 말에도 칸은 여전히 걱정스러워 유헌의 얼
굴과 몸을 연신 쓰다듬었다.
자신의 몸을 쓰다듬는 칸의 손길에 유헌은 정말로 눈앞에 있는 것이 칸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얼굴은 왜 이래? 이건 뭐지? 옷도 흙투성이고 말야, 어디서 넘어진 거야?"
불을 피우다 생긴 연기로 얼굴은 얼룩덜룩 말도 아닐 것이다.
게다가 한번 물속에 들어가긴 했지만, 루드빌의 일로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 썼으
니, 여러가지 일들이 있어 모두 칸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유헌은 그러나 무엇을 먼
저 말해야 할지 감을 잡을수가 없었다.
"어쩌지? 어딘가 몸이 안좋은 게 아닐까? 응? 유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연신 자신의 안부를 묻는 그의 모습에 그제서야 자신의 눈앞
에 있는 것이 정말 칸이라는 것을 인식한다.
눈가가 뜨거워 지는 느끼며 유헌은 손을 들의 칸의 어깨를 끌어 안았다.
순순히 자신쪽으로 다가와 조심스럽게 등을 쓰다듬는 손길을 느끼며 몸의 긴장을
푼 유헌은 입술을 깨물며 자신을 안은 사람의 체취를 맡아 보았다.
틀림없는 칸이었다.
어쩌다 보니 루드빌이라는 드래곤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게 되었지만, 까닥 잘못했
다면 팔을 두르고 있는 이 사람을 만나지도 못하고 죽을 뻔 했다.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할뻔 한 것이다. 자신은-
"칸.. 칸."
"왜그래? 뭔가 심한 일을 당한 거야? 응?"
어깨에 얼굴을 묻은 유헌의 볼을 양손으로 잡은 칸은 그의 이마에 입술을 누르며
더할나위 없이 부드럽게 묻는다. 그런 그의 말에 고개를 저은 유헌은 뭔가를 말하
고 싶었지만, 가슴에 무거운 돌이 내려 앉은 것처럼 언어를 내뱉을 수가 없다.
그냥 고개를 저으며 눈을 뜨고 칸의 얼굴을 올려다 본 유헌은, 그의 볼에 손을 대고
입술을 겹쳐 보았다.
입가에 묻어내는 따뜻한 체온에 정말로 안심해 버려서 그대로 깊은 수면에 빠졌으
면 하던 유헌은 순간 파요에 대해 생각이 미치자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 보았다.
"왜 그래?"
"아니, 그 파요가 많이 다쳐서-"
".....파요?"
칸과의 만남에 너무 감격해 버려서 그 소년기사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었다.
당황하며 주변을 살피던 유헌은 구석에 눕혀진 그가 유크렌과 젤에 의해 치료를 받
고 있자 눈에 띄게 안도하는 표정을 지으며 칸의 품으로 들어갔다.
나머지 일행들이 있으니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저 소년도 유크렌의 치료
가 있으면 팔의 상처도 다 나아 전처럼 검을 휘두를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신을 지키려고 하다 생긴 상처이기에 계속해서 신경이 쓰였는데, 커다란 짐을 하
나 내려놓은 것 처럼 안심이 된다.
"이봐."
"........응?"
칸의 품에 얼굴을 부비던 유헌은 자신의 어깨를 두들이는 감각에 눈살을 찌뿌리며
고개를 들어 자신을 건드린 인물을 바라 보았다.
그리고 '여-어'하며 손을 들어올리며 입가에 미소를 짓는 10살정도의 흑발을 길게
기른 엄청난 미형의 아이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일행중에 이런 아이가 있었나하고 생각하던 것도 잠시 그의 몸에 흐르는 익숙한 마
력의 흐름에 손을들어 입술을 누르며 저도 모르게 '융텐?'이라고 중얼거린다.
그런 그의 반응에 만족의 미소를 뛴 융텐은 맞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부득이 하게 이런 모습이지만, 도마뱀보다 나은 모습이니 이해하라고-"
".........도마뱀이요?"
".......실언했다. 잊도록 해."
유헌의 지적에 잠시 몸을 굳힌 융텐은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머리를 뒤로 넘기
며 다른 곳에 시선을 주었다. 왠지 모르게 유헌은 안고있는 칸의 녀석의 눈빛이 빛
나는 것을 느낀 것 같았지만, 어디까지니 과잉 신경증이겠지.
헛기침으로 주위를 환기한 융텐은 아이의 모습이 되어선 아마도 처음이라고 할만
큼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유헌은 내려다 보았다.
"너하고 긴히 할말이 있으니, 일단 여기는 서둘러 떠나도록 하자."
".........그러죠."
아직 융텐의 아이 모습이 적응이 안되는 유헌은 그런 그를 빤히 보며 칸의 부축으
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몇몇의 기사들이 파요에게 다가가 무척이나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이 보였지
만, 그들도 서둘러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걱정은 되지만 이곳에서 더이상 머물러
없음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샤한과 샤르비나가 어느 마차안으로 들어가자 칸의 손을 잡은 유헌은 자신은 어디
에 가면 되냐는 듯이 칸을 올려다 보았다.
칸은 여기저기 검은 거웃이 묻은 유헌의 얼굴을 닦아주며 무척이나 부드러운 미소
를 지었다.
"유헌은 나와 같은 마차에 타면 돼."
"하지만 융텐이 뭔가 할말이 있다고-"
"아, 그 변태룡도 함께 탈거니깐 걱정하지마."
유헌에게 하는 말과 다르게 무척이나 띠껍게 말한 칸은 유헌의 옷을 갈아입히기 위
해 젤에게로 걸어갔다.
파요의 상처를 대충 마무리한 모양인지 막 마차안으로 들어가려던 젤은 유헌과 칸
의 모습을 발견하고 마차에서 뭔가를 꺼내 이쪽으로 걸어온다.
"이것으로 갈아입으면 될겁니다."
"아, 고맙습니다."
필요한 것을 미리 알고선 건내는 젤에게 인사를 하며 유헌은 옷가지를 받았다.
유헌은 자신의 모습을 보자마자 옷가지를 줄만큼 옷 상태가 그렇게 좋지않나라는
생각에 옷을 내려다 보았다. 그냥 생각하는 것과 달리 보고나니 옷은 온통 진흙 투
성이라 이런 꼴로는 도저히 사람들 앞에 설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정도이다.
얼굴이 붉힌 유헌은 칸의 팔을 잡고 몸을 뒤로 숨겼다.
단정치 못한 모습을 보이려니 부끄러운 것이다.
칸이 왜 그러냐고 물었지만, 대답없이 고개를 숙인 유헌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얼굴을 들어 젤을 올려다 보았다.
"..........."
사람이 아닌, 물체같은 것을 관찰하듯이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에 유헌은 순
간적이나마 등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칸의 옷자락을 잡은 유헌은 그를 끌고 융텐과 유크렌이 들어갔던 마차로 걸어갔다.
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마차로 걸어가고 있는데, 이상하게 자신들에게 쏠리는 시
선들이 많다. 의아함에 고개를 든 유헌은 근처의 기사들이 흘깃거리며 자신과 칸을
바라보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그에게 둘렀던 팔을 풀었다.
"왜 그래?"
"주변에서 보는 것 같아서..."
"아아- 그거. 내가 칸크빌레라는 것을 알아채서 그래."
떨어진 손을 다시 팔로 감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칸의 소리를 들으며 유헌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군요..'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한동안 대화없이 걸음을 옮기던 유헌은 이내 눈을 크게 뜨고 칸을 바라보며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을 들어 보인다. 그런 그의 모습에 어색한 미소를 흘린 칸
은 유헌의 벌어지려는 입을 손으로 덮으며 마차에 집어 넣었다.
탁.
"도대체 어떻게 된거예요? 당신이 칸크빌레라는 것을 알다니요?"
그러고 보니 칸크빌레가 쓰고 있었던 터번과 망토가 사라졌다.
근처의 시트를 끌어 막무가내로 칸의 몸을 감싸던 유헌은 그러나 자신의 손을 잡고
손등에 볼을 비비며 웃는 칸의 모습에 움직임을 멈췄다.
그런 유헌의 모습에 눈가를 더더욱 휜 칸은 어무렇지도 않은 듯이 입을 열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요크발들이 쳐들어 왔어거든."
"....요크발이.."
그라면 엄청난 사람들을 끌고 왔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닥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것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유헌의 몸을 끌어안
은 칸은 검은 머리카락에 코를 묻었다. 머리카락 속에 흙이 들어가 있어 꺼끌거렸
지만, 그 특유의 체향이 마음을 가라 앉혀준다.
기분좋은 느낌에 유헌을 안은채로 눈을 감고 있던 칸은 지나가는 투로 '무슨 일같
은 건 없었어?'라고 물었다.
바로 앞에 유크렌과 융텐이 있어 칸의 품에서 벗어나려던 유헌은 그런 그의 질문에
좀 머뭇거리다 입을 연다.
"저..그게, 루드빌을 만났는 데."
자신을 안고 있던 칸의 몸이 경직되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한동안 숨을 쉬던 그는 유헌의 몸을 떼내더니 더할나위 없이 진지한 얼굴이 되어서
시선을 마주한다.
".......인간의 모습일때?"
"아니, 저...드래곤의 모습이었는데.. 처음보는 거였어...윽?! !"
드래곤의 모습이었다고 말할 때 칸의 눈초리가 너무 날카로와 당황하며 말을 바꾸
려던 유헌은 다짜고짜 자신의 옷을 벗기는 그의 행동에 비명을 질렀다.
마차 안이긴 했지만, 전처럼 자신들만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갑자기 이러는 건가 싶
어서 달려드는 칸의 머리를 손으로 밀어내던 유헌은 그런 자신의 손을 잡아채고 얼
굴앞에 나타난 황금의 눈동자에 숨을 죽였다.
눈앞의 얼굴도 신경쓰이지만, 옆의 자리에서 눈을 빛내며 자신들을 바라보는 융텐
과 유크렌은 더 신경쓰인다. 붙어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 칸의 몸을 어떻게든 떼
어낸 유헌은 그의 몸에 감겨있던 시트를 빼내 자신의 몸에 감았다.
정말이지, 몸이 자랐더니 시도 때도 없이 덤벼 들다니.
"어디 다친 곳은 없어?"
"..에?"
"다친 곳 말야. 그 빌어먹을 용이 너에게 접근하다니-"
정말로 분하다는 듯이 중얼거린 칸이 유헌의 몸에 감겨진 시트를 잡아 끌며 몸의
여기저기를 살핀다.
그런 그의 얼굴을 바라보던 유헌은 자신의 착각을 깨닭곤 얼굴을 붉혔다.
그가 발정해서 덤벼드는 줄 알았더니 걱정이되어서 그런 거였나 보다.
화끈거리는 얼굴에 손부채질을 하며 자세를 바로한 유헌은 다친곳은 아무대도 없
다고 말했다.
자신의 말에도 미심쩍은 칸의 얼굴은 펴질 기미가 없다.
"...재미없네."
한탕 할줄 알았던 두사람이 갑자기 수줍은 모습으로 마주하고 있자 융텐은 심드렁
하니 중얼거린다. 그런 융텐의 모습에 귀여워 유크렌은 연신 미소를 지으며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있었다.
다른 인간들을 몸이 어려졌다지만, 본질은 그대로인 자신에게 흠뻑빠진 유크렌의
모습에 상당히 어이없는 듯 하지만, 융텐은 전혀 어이없지가 않았다.
유크렌은 본질이니 뭐니하는 복잡한 것들은 딱 질색인 타입으로 오로지 눈에 보이
는 것만을 제일로 치는 용인 것이다. 오죽하며 녹룡중에 적룡이라 부르겠는가.
지혜롭기로 백룡과 견줄바인 녹룡이 무식의 대명사인 적룡으로 불리는 것은 엄청
난 수치다. 그래서 그를 낳은 용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하지만 멍청해도 이렇게나 사랑스러우니 괜찮지 않은가.
자신을 바라보며 더할나위 없이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유크렌의 얼굴을 바라보며
융텐은 그를 아는 모든이들이 봤다면 그대로 쓰러질만한 엄청나게 사랑스러운 미
소를 지어 주었다.
그것에 넘어가 눈이 하트가 되어버린 유크렌의 몸을 껴 안으며, 칸이 쳐준 시트안
에서 옷을 갈아입기 시작하는 유헌에게 시선을 돌린 융텐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그 여자랑 만나고도 용케 무사히 돌와 왔구만- 뭐 이렇게 될거라고 예상
은 했지만, 정말일 줄이야- 그 여자 너한테 브레스같은 건 안 내뿜더냐?"
"........브레스..머리 위에서 쏘던데요?"
".........................뭐?"
유크렌과 함께 있어 더할나위 없이 나른한 융텐은 아무 의미없이 던진말에 유헌이
긍정을 표하자 그렇구나 라고 고개를 끄덕이다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그것은 시트를 들고있던 칸도 마찬가지로 갑자기 굳어버린 분위기에 눈치를 보던
유헌은 윗도리를 입고 바지춤에 집어 넣었다.
꾸물럭 거리는 유헌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융텐은 그가 장난을 친건가 하고 다
시 물었지만, 그는 '붉은 빛의 브레스, 바로 머리위에서 쏘았어요-'라고 산책하다
돈을 주었어요라는 톤과 비슷하게 답한다.
"그런데 살아있어? 도대체 어떻게 된거냐?"
"유헌, 다시 벗어봐!! 제길, 루드빌 녀석-! !"
"드래곤의 브레스는 같은 드래곤이 맞아더 엄청난 치명상을 준다고-! !
그것을 피할 방법은 피하거나 방어력을 피는 것 뿐인데, 아. 그렇군. 네 능력으로
루드빌의 마력을 끌어 방어를 한건가?
아니면 그 미친용이 드디어 노망이 들어 너희에게 못 맞춘 거구나-"
"유헌 다시 벗으라니깐, 겉은 괜찮아 보여도 속은 다 상한거 아냐?"
"아, 저기..."
자신도 루드빌의 브레스에 관한 부분은 상당히 예민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자신보다 더 당황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유헌은 어쩔줄을 못하며 시선을 돌
렸다. 유크렌에게 안겨있는 융텐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이런저런- 자신이 이해한
한도내의 이야기를 뱉어내고 있었고 칸은 분명 자신이 상처를 입었을 거라고 생각
하며 옷부터 벗기려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내뱉는 융텐이나 칸이나 둘다 패닉상태인 것 같아 유헌은 저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다.
"브레스 손으로 내려 왔어요."
".............."
"아, 말이 좀 이상한데.. 그러니깐, 용이 쏜 브레스가 손으로 들어와서 그게 다시..."
자신이 이야기를 하자마자 융텐의 몸을 안고있던 유크렌조차 얼굴을 들어 자신을
바라본다. 한번에 3명의 시선을 받게 된 유헌은 입술을 혀로 핣으며 뒤로 물러나며
작은 목소리로 뒷말을 이었다.
"루드빌이라는 용에게 되쏘아져서....그 적룡은 돌아갔어요."
완전히 표정이 사라진 세사람은 말이 끝났는 데도 시선을 돌릴 생각을 안하고 뭔가
알수없는 희귀한 동물을 보듯이 유헌을 바라 보았다.
그런 분위기는 익숙치 않은 것이라 어깨를 움츠린 유헌은 '그렇게 된겁니다-'라고
작게 웅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