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42/55)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에스."

      앞으로의 계획 덕분인지 구속당하지 않은 쾌적한 환경에서 독서를 하던 카일은 문

      을 열고 들어오는 에스의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얼굴을 들지않고 책을 계속해서 읽는 사내의 모습에 입술을 깨문 에스는 그

      에게로 걸어가 읽고있던 책을 빼든다. 

      어쩌면 그의 덕으로 지금의 상황을 모면할수도 있다고 할수도 있지만, 이 남자가 

      순순한 호의로 그런 말을 꺼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른 일행들은 각자 맡은 일을 하고 있고, 자신들도 뿔뿔이 흩어진 인물들에게 연

      락을 해야하지만, 그 전에 이 사내의 심증을 알아볼 생각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읏?!"

      털썩. 

      "순순한 호의야-라고 하면 믿어주지 않겠지."

      ".......이것 놓지 못해."

      "싫-어."

      자신의 말에 눈을 부릎뜨고 노려보는 에스의 얼굴을 확인한 카일은 숨을 죽이고 웃

      었다. 

      그가 왜 이곳에 왔고, 그것을 빨리 말해주지 않으면 단단히 삐질거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와 함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아 다른건 모르고 그냥 붙어 있고만 싶다. 

      침대에 쓸어뜨린 에스의 위에 재빨리 올라선 그는 몸을 꿈틀거리며 몸을 빼내려는 

      에스의 옷안으로 손을 집아 넣었다. 

      서늘하고 부드러운 피부가 손가락 끝에 걸리고 그와 동시에 에스가 푸른 눈동자가 

      급격하게 굳는다. 망설임없이 그의 몸위를 쓰다듬던 카일은 손끝에 걸리는 돌기를 

      지분거리며 입가를 비죽히 올렸다. 

      인질로 잡혀 구속당할거라고 생각했을텐데, 이런 상황이 되어 버렸으니 얼마나 분

      할까. 

      본노로 이글거리는 에스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한 그는 더없이 부드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순순한 호의가 될지, 아니면 시꺼먼 흑심이 될지는 전부 너에게 달렸어."

      "...........무슨."

      "무슨 말인지 자신이 더 잘 알잖아."

      눈을 가늘게 휜 카일은 에스의 입술에 혀를 대었다. 

      부드럽게 핣고 잠시 맛을 음미한 그는 서로가 입술이 닿을만큼 가까이 하며 속삭였

      다.

      "내 마음을 누구보다 더 잘않아. 이제 나도 한계라서 말야- 

      그러니 부디 내 마음을 받아 주라고."

      ".........."

      "그렇게만 되면 모든 게 잘 될거야. 설령 일이 생겨도 그대를 봐서 내선에서 처리하

      겠어. 날 믿어주고 마음을 준다면...  

      난 말이지. 에스라한." 

      언제나 여유롭고 끈덕지던 카일의 눈동자가 절실한 빛을 뛰었다고 생각되었다. 

      그런 그는 잠시 자신의 입술을 깨물더니 시선을 돌려 밑에 있는 에스의 얼굴을 한

      참이나 내려다 보았다. 

      뭔가 스스로 결심을 세우는 듯한 그 모습에 마찬가지로 표정을 굳힌 에스는 눈앞에 

      있는 어둠에 잠식된 검은빛으로 조차 보이는 카일의 파란 눈을 주시했다.

      "네가 나에게만 온다면- 에스."

      "............온다면?"

      "..................................

      ...........................

      ...............황제조차 배신할수 있어."

      카일의 입에서 나온 엄청난 말에 에스의 눈을 크게 뜬다. 

      그런 그의 얼굴을 바라보던 카일은 그제서야 자신이 정말로 말했다는 것을 인식하

      고 쓴웃음을 지으며 에스의 입에 키스를 한후 몸을 일으켰다. 

      옷속에 집어 넣었던 손을 빼고 그의 옷가지를 바르게 한 카일은 자신보다 작은 몸

      을 일으켰다. 망연히 자신을 바라보는 에스의 얼굴에 비져나온 머리카락을 발견한 

      그는 긴손으로 부드럽게 바로 잡아준다. 

      그렇게 앞머리를 잡아 그 사이로 보이는 푸른색의 눈동자에 카일은 미미한 통증을 

      느꼈다. 

      눈이 돌아갈 만한 미인은 아니다. 

      마른 몸의 귀엽게 생긴 사내일 뿐인데 어째서 이렇게나 빠져버린 걸까하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같지.

      "네가 좋아. 그러니깐, 내가 정말로 싫은게 아니라면 조금은... 

      기대할수 있게 해주지 않겠어?"

      ".....카일.. 난..."

      "밖에 일행들이 기다릴꺼야. 난 일단은 인질이니 너에게 뭔가 해를 가할지 알수없

      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거다."

      ".....네가 그런 짓을 할리가 없잖아.."

      에스의 대답에 놀랍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뜬 카일은 얼굴을 숙인채인 뭔가 지친

      듯한 에스의 얼굴을 확인하곤 눈을 가늘게 휘었다. 

      반쪽을 가린 철가면이 입가가 올리는 것을 땡기게 하지만 지금은 그런것따위 조금

      도 신경쓰이지 않는다. 한없이 부드러운 미소를 보여준 카일은 '아아-그렇고 말

      고..'라는 웃음기가 베어든 음성으로 중얼거리더나 에스의 무릎을 툭툭친다. 

      어서 나가보라는 그의 손길에 입술을 깨문 에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뒤돌아보지 않

      고 방에서 나섰다. 

      탁.

      카일의 걱정은 기우가 아니였던지 복도끝에 얼굴을 빼곰히 내민 라프헨이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곤 손을 흔들어 보인다. 

      그런 그에게 마찬가지로 손을 흔들어 보인 에스는 몽롱한 정신을 깨우기 위해 볼을 

      몇번 두들이다 젤이 있는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공주의 결혼식이 있는 것은 앞으로 일주일. 

      그 안에 일행들을 전부 뮤트롱에 잠입하게 만들어야 한다.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일행들을 다 찾아내는 것은 분명 엄청난 중노동이 될것이

      다. 

      라프헨을 지나치면서 차를 부탁한 에스는 숨을 들이키며 씩씩하게 계단을 올랐다.  

      "......그렇게 하면 되는 건가요."

      "그래 루드빌이 드래곤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면 한번 해봐."

      웅텐이 가르켜준 방법을 의외로 간단한 것이었다. 

      적룡이 나타나면 그의 앞에서 손바닥을 찟어 피를 흘리다음 그녀를 향해 내밀고 그

      가 알려준 주문을 외우면 되는 것이다. 

      이 세계의 언어는 아니지만 많이 닮은 음성 주문은 낯선 것이라 그가 다섯번 정도

      를 읊어야 겨우 외울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불안해서 입안으로 주문을 웅얼거리

      던 유헌은 침대가에 앉아 여유롭게 발을 까닥이는 융텐의 얼굴을 바라 보았다. 

      어린아이로 변했다고는 하나 성인일때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어서 낯설지 않다. 

      그런 그가 어까는 어째서 자신의 목을 조르려고 한 것인가.

      "융텐.. 아까는 왜 그런 거였죠?"

      "............흐-음."

      시퍼렇게 나있는 목의 손자욱은 마력으로 치료를 해 주었다. 

      하지만 그때의 감정을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라 뭔가 굉장히 서운한 눈동자로 자신

      을 바라보는 유헌의 시선에 복잡한 감정을 느낀 그는 한숨을 내뱉으며 몸을 바로 

      했다. 

      "너희 인간들이 취급하는 동물들이 말을 한다면 어쩔래."

      "..........에?"

      "지식을 지닌다면, 너희보다 번식력이 우수해서 대지를 바글바글하게 채운다면, 두

      다리로 걸어 위홤감을 조성한다면?"

      갑작스런 그의 말에 유헌은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거냐는 표정을 지으며 피

      식하고 웃음을 지었다. 

      그런 유헌의 옆얼굴을 바라보던 융텐은 단조롭게 말했다.

      "용들의 사회에서 적용되는 그런 비슷한 경우의 일을 네가 해낸거야. 

      그런 것을 해낸 너의 존재를 용인 내가 가만히 두어야 하는 건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단순한 용의 치기로 치부하려던 유헌의 미소가 굳는다.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을 해내 대륙의 질서를 흔들리게 된다면 넌 더이상 유헌이라

      는 인간이 될수없지."

      "...................."

      "괴물이 되어서 배척당하기 싫다면 이 자리에서 죽거나 내가 시킨대로 해. 

      물론 그 뒤로도 네가 지켜야 할일은 많이 남아 있으니 행동에 신중을 가해라." 

      미할라와 아는 사이가 아니라면, 저 유크렌과 아는 사이가 아니라면, 히자스와 아

      는 사이가 아니라면.....

      하다못해 자신과 아는 인간이 아니였다면 망설이지 않는다. 

      정보를 접하는 즉시 죽였을 것이다. 

      유헌이라는 눈앞의 이 인간을 모르는 그냥 보통의 드래곤이었다면 말이지. 

      딱딱하게 굳은 유헌의 볼을 두들인 융텐은 심술궃게 웃어 보인다.

      "나도 그 빌어먹을 여자의 피를 이어 받아서 너무 인간들에게 무른 것 같아."

      "............응?"

      융텐의 말에 다소 풀이 죽은 유헌은 그의 장난스런 어조에 자신없이 묻는다. 

      그런 모습은 아마도 처음보는 것이라고 할수있는 것이라서 눈살을 찌뿌린 융텐은 

      새삼 그 여자의 마음을 알것 같기도 하다. 

      약간이라도 정이 가는 이런 인간들조차 약한 모습을 보는게 영 기분좋지 않은데 피

      를 이은 자들이면 어떻겠는가.

      "루드빌은 내 부친이야."

      "...............아-아."

      복잡한 얼굴로 가볍게 얼굴을 끄덕이던 유헌은 이내 얼굴을 굳히고 융텐을 바라 보

      았다. 아까의 심각한 분위기는 다 치워버리고 눈만 댕그랗게 뜬 유헌의 볼을 톡톡 

      두드린 융텐은 이를 들어내며 시원하게 웃어 보인다.

      "그러니깐 내가 그녀의 술수에 이렇게 힘도 못쓰고 있는게 아니겠어. 하하하하."

      ".......그녀라고 하지 않았나요...?"

      "용들은 아이를 지닐 때 단지 아이를 배는 쪽과 그것에 기운을 부여하는 쪽으로 나

      뉜다고. 루드빌이 날 낳지 않았으니 모친이라고 할수는 없지. 그런거야."

      조잘대던 융텐은 칸이 오는군-이라는 말을 남기고 침대에서 내려온다. 

      그러고 보니 유크렌에 돔에게서 융텐의 냄새가 난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런 이

      유인가. 하지만 칸에게서도 그녀의 기운이 느껴져야 하는게 아닐까. 

      아, 그는 루드빌과의 연결을 끊었다고 했으니 그래서 느끼지 못한걸까. 

      그렇다 쳐도 칸과 유크렌은 상당히 궁합이 안 좋았지. 

      하지만 율시아도 그쪽 계통의 사람인데... 이런저런 생각에 안색이 굳은 유헌의 모

      습을 확인한 융텐은 한숨을 쉬었다. 

      의외로 단순한 녀석이라서 다른 것을 던져주니 그쪽에만 매달려 다행이다. 

      뭐, 자신이 넘겨준 것이 좀 엄한 내용이기에 그런점도 없지않아 있지만 말이다. 

      탁.

      "........네가 왜 여기에 와있는 거야."

      "유헌이 심심한 것 같아서 말야."

      "......유크렌에게 쫒겨난거 아냐?"

      융텐의 볼에 나있는 상처에 칸의 입가가 비죽히 올라간다. 

      그런 칸의 모습에 울컥하고 화가 치민 융텐은 그러나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으며 비죽히 입가를 올려 보았다. 

      원하지 않은 것이긴 하나 자신 덕분에 유헌의 상태가 많이 우울해진 것이다. 

      그런 녀석의 기분 풀어주려 애교나 떨어나 한심한 인간아- 이를 들어내며 으르렁 

      거리는 융텐을 가만히 내려다 본 칸은 그를 지나쳐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등뒤에서 닫이는 문에 융텐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라면 뭐라고 좀더 지껄어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지금은 묘하게 어둡다. 

      고개를 옆으로 수그리던 융텐은 그러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느끼고 안색

      을 달리하며 그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리고 반쯤 열린 문 사이로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유크렌의 모습에 식은땀을 흘린

      다.

      "..........."

      조용히 하얀팔이 나오더니 들어오라는 듯이 손짓을 하는 모습에 속으로 눈물을 흘

      린 융텐은 그리로 걸음을 옮겼다. 

      인간들도 임신한 부인에게 벌벌 긴다는데 유독 헤츨링의 수가 적은 드래곤의 사회

      에선 그런 풍토가 강하다. 아이를 벤 용을 버리고 간 부친의 경우는 언제나 욕을 바

      가지로 먹고 암묵적으로 용들의 사회에서 외면 당하는 것이다. 

      저 루드빌이 용들에게 위안을 얻지 못하고 저런 인간들에게 붙어서 마음의 안식을 

      얻는 것과 같은 원리일 것이다. 

      다가감에 따라 번쩍이는 유크렌의 눈동자에 그냥 이대로 내뺄까하고 생각해 보던 

      그는 그러나 그랬다간 두번다시 자신의 아이는 커녕 유크렌을 볼수 없을거라는 생

      각에 질질거리며 유크렌에게 다가갔다. 

      왠지 모르지만 아이의 기운을 몸을 담은 유크렌은 묘하게 기가 쎄진 것 같아 부담

      스럽다. 

      끼-익.

      "어디...다녀 온겁니까."

      "....밑에.....하-아."  

      융텐 덕분에 울적한 기분이 되어서 칸에게 뭔가 위로를 받고 싶었던 유헌은 그가 

      한숨을 내쉬자 몸을 굳혔다. 

      그런 유헌의 모습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손을 들어보인 칸은 하지만 전혀 펴지

      지 않은 얼굴에 미소가 지어지지 않자, 이를 들어내며 억지로 입술 끝을 올려 보인

      다. 

      ".........칸."

      굳어진 표정에 입만 웃고 있다. 

      상당히 무서운 모습이었기에 유헌이 어이없다는 듯이 이름을 부르자 억지로 웃는 

      얼굴은 관두고 다시 한숨을 쉰다. 

      나머지 일행들이 있다는 곳에 간다는 것에 유헌은 상당히 기대를 했었고, 나머지 

      일행들도 그들을 다시 만난다는 점에서 들뜬 상태였다. 

      그런데 이런 의외의 상황이라니... 

      한결같이 자신을 믿어주던 사람들이 있던 곳이었다. 

      저들에게 같이 있던 사람들이 모두 죽임을 당했어도 폴유간에 되돌아 가면 될거라

      고, 그렇게 믿고 있었는데- 

      다시 정비를 해서 출발하자-!라고 기세좋은 생각만을 했는데, 이런 상황이라니. 

      이런 말도 안되는 일들을, 이자크가 한 것이다.

      "..........칸?"

      ".......모르겠어." 

      "..칸."

      중얼거리는 칸의 옆 얼굴에 손을 대어보인 유헌은 입술을 깨물었다. 

      눈물을 보이진 않았지만 그보다 더한 울적함을 들어내는 그의 모습에 가슴이 아프

      다. 볼에 대어진 유헌은 손을 끌어 손끝에 입을 대보인 칸은 입술에 머무는 유헌 특

      유의 체향과 따뜻함에 눈을 감았다. 

      아무리 이런 상황이라지만, 포기를 할수는 없다. 

      10여년 동안 자리한 곳이 하루밤새에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도 결코 포기 

      할수는 없다. 이런 자신을 믿어준 그들과 자신의 손안에 있는 이 소년을 위해서도 

      절대로 포기를 할수는 없는거다. 

      십여년 전의 그때의 상황을 두번씩이나 되풀이 할수는-

      끼익. 

      무릎을 들어 칸의 얼굴을 안은 유헌은 그의 정수리에 입술을 대었다. 

      상체에 달라붙은 유헌의 몸을 쓰다듬던 칸은 몸을 뒤로 물려 그를 자신의 앞으로 

      앉혔다. 칸의 무릎에 안힌 상태가 되어 그의 목에 얼굴을 묻은 소년을 가만히 내려

      다 보던 칸은 지긋히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는 아무것도 없어서 자포자기한 심정이 되었지만, 지금은 아니지. 

      어떤 이유든지 자신을 통해 꿈을 이루고자 수많은 사람들이 칸크빌레라는 이름을 

      따르고 있다. 

      그런 자들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널 위해서 절대로.. 이대로 물러나진 않아."

      "..........."

      그가 왜 이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안고있는 팔에 힘을 준 유헌은 눈을 감았다. 

      이내 입술에 닿는 익숙한 감촉에 몸을 푼 유헌은 몸을 쓰다듬는 손길이 기분좋게 

      맡아 들었다. 

      사락.

      침대에 눕히고 둘사람의 위에 시트를 덮는 칸의 행동에 유헌은 웃으며 하얀 천을 

      통해 보이는 빛을 바라 보았다. 손을 올려 시트를 든 그 사이에 얼굴을 들이민 칸은 

      눈을 가늘게 휘며 그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장난스러운 그의 행동에 소리내어 웃어보인 유헌은 이내 목에 손을 두른다.

      드래곤의 사회에서 이질적인 인간. 

      그렇다는 것은 인간들의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란 의미다. 

      융텐이 남긴 의미심장한 말과 그가 하라고 한 행동들. 그렇게 해야지만 자신의 능

      력이 그나마 가려진다는- 융텐이라는 흑룡의 눈에 잠시나마 떠오른 자신을 꺼려하

      는 검정들- 

      복잡한 심정에 잠시 입술을 깨문 유헌은 손가락을 쓰다듬는 감각에 입을 벌렸다. 

      익숙한 것이 밀려 들어오자 손을 들어 시트에 덮인 칸의 목을 끌어안은 유헌은 그

      의 손길을 도와 허리를 들었다. 

      한 손가락에 들어갈 만큼 적은 횟수이지만 묘하게 익숙해 졌구나 싶어 괜히 부끄러

      워 진다.

      "유헌."

      " ? 응."

      "....아니야."

      유헌의 검은 머리카락에 손을 묻은 칸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이마에 입술을 눌렀

      다.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자신과 일행, 그리고 유헌은 위해서 좀더 노력해 보자라는 결의를 다진 칸은 품안

      에 안긴 몸을 강하게 끌어 안았다. 

      서로 다른 고민에 빠져있는 두 사람이지만, 서로를 통해서 약간의 안도감을 느낀

      다. 

      "수장들에겐 뮤트롱으로 오라는 전갈을 보냈습니다."

      "나머지 일행들은 새들을 날리기로 했으니 어떻게든 올겁니다."

      "......중간에 빠져나가는 사람들은."

      중앙의 황제다 직접 나섰다는 소문의 파장은 의외로 커서 협력을 약속했던 몇몇의 

      집단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가고 있었다. 

      날뛰는 자신들에게 그다지 제지를 가하지 않아 중앙의 세력이 약해지거나 내부에 

      아군이 있었던 건가하고 생각을 했지만, 이런 식으로 일이 진행되니 그쪽에서도 당

      황스러운 거겠지. 

      사실은 봐주고 있었다는 것이 명백해 지자 위험한 도박에 자신들의 목숨을 걸수가 

      없어진 거다. 분한 마음이 들기 이전에 어쩔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쓴 웃음을 지은 

      노웬은 눈앞에 서있는 젤에게 시선을 주었다.

      "동맹을 맺은 곳중에 현재까지 4군데가 빠져 나갔고, 10여군데는 앞으로의 상황에 

      따라 생기는 변수에 대해 생각을 해보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폴유간에서 빠져나온 자들 중에 탈퇴를 한 자들은 없습니다."

      "........의외군."

      "칸님의 복귀를 위함에서 동료들의 복수라는 목표가 하나 더 생긴 거지요."

      "그런가."

      쓴웃음 지으며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젤에게 나가보라는 말을 건내며 몸을 뒤로 눕

      혔다. 아직 하루채 지나지 않은 기간동안 무척이나 많은 정보를 모은 그녀에 대해 

      친창을 해주고 싶었지만, 자신은 물론 이거니와 그녀에게 앞으로의 할일이 많다. 

      사적인 일은 나중에 여유가 생겼을 때 웃으면서 건내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테이블 위에 어지러이 놓여진 서류들을 살피며 꼼꼼이 체크하던 노웬의 손이 이내 

      멈춘다. 

      칸크빌레의 모습으로 분장해서 폴유간을 침략했다는 것인가. 

      이자크의 어이없는 행동에 헛웃음이 나오기 이전에 이런 막무내기 식의 공격을 감

      행하는 그의 행동에 더 걱정을 느낀다. 

      아마도 칸의 옆에 붙어있는 유헌의 존재가 그를 직접 나서게 한 원인이 되었겠지. 

      시기를 늘리기 위해서라도 그의 접근을 막으려 했으나 칸이 저토록나 좋아하니 어

      쩔수가 없다. 

      만약의 경우는 저 둘이라도-라는 생각마저 드는 요즘이다.

      ".......괴롭군. 형제들의 싸움을 보는 것은..."

      게다가 그의 아들이다.

      의자에 몸을 눕힌 노웬은 묶은 머리카락을 풀고 손안에 들려져 나온 금빛을 내는 

      끈을 내려다 보았다. 언뜻보면 그냥 금색의 끈이구나 싶겠지만, 직접 그것을 살펴

      본 자들이라면 경악을 할 것이다. 

      드래곤의 심줄을 하나하나 엮어서 만든게 겨우 머리끈인가-하고 말이다. 

      쓴웃음을 짓던 그는 끈을 쥔 손을 올려 그곳에 얼굴을 묻었다. 

      가끔씩 생각나는 얼굴이 있다. 

      저 칸크빌레와 닮은- 

      검청의 머리카락과 황금빛의 눈동자를 지닌, 더없이 서늘한 표정밖에 지을수가 없

      어 많은 사람들의 오해를 받은 감정표현을 어색해 하는 요령나쁜 남자가- 

      오로지 자신과 칸만이 그를 이해해 주었지. 

      왠지 눈가가 따끔해 짐을 느끼며 한숨을 쉰 노웬은 다시 머리를 묶고 나서 테이블

      위에 서류를 집어 들었다. 

      감상에 젖어있을 시간따위 자신에겐 없는 것이다. 

      ".....형님이?"

      집사가 건낸 서찰을 잃어본 비센의 눈가가 묘하게 이그러 진다. 

      금발의 푸른 눈동자를 지닌 미남자는 한동안 무척이나 불쾌한 표정을 지어보이더

      니 다시금 집사에게 서찰을 넘기고 알았다고 대답한다. 

      그런 그의 불쾌함이 남아있는 얼굴을 안절부절 못하며 바라보고 있던 그는 왜 안나

      가냐는 듯한 시선이 돌아오자 어쩔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몸을 굽히고 밖으로 나

      선다. 

      탁.

      문이 닫히자 속에서 올라오는 한숨을 쉰 비센은 서찰에 휘갈져 있던 유려한 문체를 

      떠올려 보았다. 뮤트롱 가문의 행사에 직접 갈테니 얼굴이나 보자는- 예전과 같은 

      카일의 행동에 비센을 주먹을 쥐며 나직해 욕설을 내뱉었다. 

      불과 반년전만 해도 무척이나 사이가 좋던 둘이지만, 얼마전 발챠의 그의 저택을 

      들리면서 사이가 틀어졌다. 

      다름 아닌 한 무희 때문으로, 지금까지 단한번 마음을 주었던 무희단 소녀가 카일

      의 별장에서 실종되어 아직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많은 여성들과 염문이 있던 카일이지만, 그다지 이성에 집착하는 편은 아니고 자신

      이 마음에 들어하는 여성에게 손을 뻗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 

      소녀가 없어졌다고 했을 때 보여준 소홀함이 서운해 아직도 마음에 앙금이 남아 있

      는 것이다.

      ".......그녀는."

      그 소녀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검청색의 머리카락과 황금빛의 눈동자를 지닌, 스스럼 없이 환한 미소를 지을 줄 

      아는 그 무희단의 작은 소녀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모친 몰래 수많은 사람들이 풀어 보았지만, 그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얻을수가 없

      었다. 지금도 찾고있는 그녀에 대해 이번에 카일을 만나면 다시 한번 물어 보기로 

      결심한 비센을 굳힌 표정을 풀며 자리에 앉았다. 

      마음에 상해도 모친의 동생인 사람이다. 

      일단 알았다거나 만나서 대화를 나누자는 답장을 주는 것이 예의인 것이다. 

      "....휴.."

      방안에서 난폭한 기색이 느껴지지 않아 안도의 기색을 뛰운 집사는 종종걸음으로 

      안채로 걸어갔다. 비센과 나머지 가신들은 얼마남지 않은 뮤트롱의 차녀의 결혼식

      을 위해 이미 입성해 있었지만, 그때까지 할일이 많았던 것이다. 

      바쁜 걸음으로 옮기던 그는 결혼식때 다시 만나게 될 카일과 비센의 사이가 전처럼 

      좋아지기를 바란다. 그 신분도 없는 무희단의 소녀때문에 그라센가의 두 기둥이 될 

      사람들의 사이가 틀어지다니 있을 법할 일인가.

      그 소녀를 비센이 데리고 왔을때, 적극적으로 말렸어야 했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고 그 소녀는 사라졌으니 두 사람의 사이만 전같이 돌아가면 걱정할 일은 

      없다.

      "그나저니 이번엔 어떤 가문의 영양들께서 오실까나-"

      비센의 시중말고도 그의 신부를 물색하는 것도 집사의 몫이다. 

      눈알을 굴리며 쟁쟁한 이름이 올려져 있던 참석명부의 이름을 떠올리던 그는 이내, 

      어떻게 하면 자신의 도련님이 눈치채지 못하고 그녀들과의 만남을 성사시킬수 있

      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폴유간은 중앙국의 황제 칸크빌레의 복귀를 바라는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모여있

      는 곳이었다. 과거 하나의 나라였다던 그곳은 지하에 깊숙히 위치하고 미로처럼 꼬

      여있어 관계자가 아닌 이상 직접 들어설수도 입구를 찾을수도 없는 곳이다. 

      관계자의 수는 한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며 그 외의 사람들은 이곳에 오려면 한참을 

      해메이다 이쪽의 판단에 따라 적으로 분류되면 바로 척살을 당하는 것이다. 

      그 까다로움이나 철저함에 있어 이자키엘 황제조차도 함부로 건들수 없는 곳이 바

      로 폴유간이었다. 

      지형의 복작함도 하나의 이유였겠지만, 무엇보다 이곳은 각층의 인물들이 모여있

      는 바 그중에 중앙이 함부로 건드리면 피곤한 자들도 다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안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가 이런 참담함을 불러 일으킬 줄 누가 알았겠는가.

      "....크..윽.."

      온몸에 느껴지는 화끈한 통증에 신음을 터트린 사내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

      지 알수가 없었다. 

      분명, 칸크빌레님이 돌아왔다고 흥분해서 외치는 남자들의 음성이 동굴과 통로를 

      가득 메웠고, 각자의 일에 매달려 있던 수백의 인간들이 동시에 입구로 달려 들었

      다. 

      자신들이 그토록이나 보기 원했고, 따르기를 원했던 살아있는 전설이 되어버린 남

      자를 보기위해, 그를 보고 열렬한 환영을 보여주기 위해, 아직도 자신들은 그를 따

      르고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 그래서 통로의 문을 활짝열고 그토록이나 요란하게 

      밖으로 나갔는데, 엄청난 불꽃이 머리위로 쏫아 졌다. 

      제 이의, 삼의 불꽃이 연속으로 내뿜어지고 사내들은 비명도 채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산화되어 버렸다. 

      사내는 머리위에서 쏫아지는 흙더미 덕에 간신히 목숨을 유지할수 있었지만, 이런 

      부상이라면 지금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리라- 다시금 언습하는 통증에 

      이를 악물던 그는 몸을 덮치고 있는 흙을 밀어내며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도대체 무슨일이 벌어진건지 두눈으로 똑똑히 확인해 봐야 한다. 

      칸크빌레님의 이름을 부르던 자들이 왜 갑자기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이런 어

      이없는 개 죽음을 당하게 된건지 이 두눈으로 똑똑히 봐야 하는 것이다.

      투둑.

      "........?"

      벌레처럼 땅위를 기어오르던 사내는 머리위로 떨어지는 흙더미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위에도 자신과 같은 사람이 있어서 구하러 온건가하고 흐릿한 시야에 힘을 주던 사

      내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보였다. 두개, 세개의 잔영으로 보이던 인물이 점점 하나

      로 모아지고 뚜렷해 지는 모습에 사내는 망연히 입을 벌릴수 밖에 없었다. 

      정말로 그 인가- 

      자신들이 그토록이나 기다리고 원했던 그 사람이 맞는가. 

      ........역시나 이 일은 환상에 불과한 것이었다. 

      저 분께서 와 주셨는데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질리가 없는 것이다.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한 뭉큼의 피를 쏫아낸 그는 손등으로 입가를 닦으며 위로 기

      어는 가는 몸에 힘을 주었다. 저 분앞에서 이런 추한 꼴을 보이는 것 자체가 불경이

      니, 어떻게든 이곳에서 벗어나 그에에 예우를 차리고 싶었다. 

      설령 그게 환영이라도-

      몸은 피투성이나 환희에 차있는 사내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황금빛의 눈동자

      를 지닌 청년은 입가를 비죽히 올려 보았다.

      "....님.. 카..칸크빌레..님.."

      부들거리는 손으로 망토를 잡는 것을 가만히 내려다 보던 그는 손을 들어 옆구리의 

      검을 빼들었다. 

      이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열망에 찬 눈빛으로 자신이 아닌 칸크빌레를 바라보는 

      이 자들이, 공기가, 시선이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시금 자신이 아닌 다른 자의 이름을 부르는 사내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 보던 

      이자크는 표정을 굳히더니 망설임없이 검을 내리쳤다. 피가 튀어 얼굴에 몇방울이 

      묻었지만 신경쓰지 않은 그는 검을 빼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어딘가에 남아있는 잔당들이 있을 것이다. 

      모두 처리하지 않으면 이 불쾌함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어두운 주위를 바라보던 이자크는 검청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망설임없이 걸음을 

      옮겼다. 

      이 곳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입술을 깨물고 걸음을 옮기던 그는 귀가에 울리는 높은 고음에 미간을 찌뿌렸다. 

      ".............루드빌..?"

      침대에 누워 눈가를 비추는 밝은 빛을 바라보던 이자크는 미간을 찌뿌리며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나 적룡은 다른 곳에 가있는지 대답이 없다. 

      자신이 필요할 때는 언제나 곁에 붙어 있으라고 그렇게나 말을 해뒀는데 또다시 어

      디를 간건가- 불쾌한 듯 찌뿌려진 미간을 필 생각을 안하던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

      나 옆에 준비되어 있는 대야에 손을 집어 넣었다. 

      차가운 물안에 손가락을 꼼지락 대 보이던 그는 젖은 손으로 얼굴을 가볍게 두들였

      다. 오늘은 늦잠을 잔 모양인지 물이 식어있다. 

      세수하기 이전에 샤워나 하자고 욕실로 걸음을 옮기려던 이자크는 문을 두들이는 

      소리에 그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황제폐하- 요크발입니다."

      "........들어와라."

      자신의 기척을 느끼고 그것에 맞추어 문을 두들였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하려면 도대체 언제부터 서 있어야 하는 것일까하고 생각하던 그는 문을 열

      고 들어오는 적발의 사내의 모습에 한쪽 눈썹을 올렸다. 무척이나 피곤해 보이는 

      안색이라던가 빠진듯한 볼살이 한눈에 봐도 알아차릴수 있을 정도이다. 

      일부러 그런 모습을 해서 자신의 관심을 끌 생각을 할만큼 요령좋은 사내는 아니

      니, 요새 자신이나 다른 문제로 꽤나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모양이다. 

      옆에 걸려진 가운을 걸친 이자크는 소파로 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무슨 일이지?"

      "카일경이 뮤트롱가의 공주의 결혼식에 참석한다는 정보를 얻었습니다."

      ".........하-아?"

      어이없다는 황제의 반응에 요크발은 들고있던 서류를 내밀었다. 

      "가신들 30여명과 더불어 오는 신하들 50여명, 그리고 잡다한 인물들 50정도-입니

      다."

      "........재미있는 짓을 하는군. 카일녀석-"

      날카롭게 빛나는 황금빛의 눈동자에 그가 얼마나 불쾌한 심정인지 알수있게 해준

      다. 

      인질로 잡힌 사내가 갑자기 나라의 행사에 참여하는 데다, 그 인원도 수상하기 짝

      이없는 무리들이다. 카일이라는 남자의 성격과 그가 현재 누구에게 푹 빠져있는 지

      를 안다면 도대체 무슨을 꾸민 것인지 알수있게 해준다. 

      어찌보면 칸크빌레 일행들을 유인해 이리 오라는 의미로도 해석할수 있지만, 그런 

      눈에 보이는 것만에 움직이는 자는 이중에 없다. 

      동은 여러 세력이 나누어진 만큼 그 수많은 지역이 연계되어 유지되어온 곳이다. 

      개중 뮤트롱가와 다른 두개의 가문은 동의 삼국이라하여 여타의 왕국과 비슷한 세

      력과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중앙국의 황제라지만 그런곳을 멋대로 쑤시고 다닐수는 없을 뿐더라 그럴 

      마음도 없다. 자신의 가문이 아닌 뮤트롱가로 굳이 그 일행들을 끌어 들인것은 일

      석이조의 결과를 노리는 것이겠지. 

      가벼운 계략으로 적대국에 타격을 입혀 보이겠다는 발칙하고 같잖은 생각. 

      "일단 제 이름으로 참석한다고 전갈을 보내 두었습니다."

      "..........재미있군."

      "불쾌하시다면- 저 혼자가도."

      "아니."

      붉은 빛의 눈동자에 시선을 주며 입가를 우그린 이자크는 나지막히 이를 갈았다.

      "나도- 가겠다."

      더 이상 빙빙돌며 칸크빌레의 주변을 하나씩 무러뜨리는 것은 지쳤다. 

      그런식으로 한다해서 쉬이 무너질 사람이지도 않을 뿐더러 그런 것은 자신이 원하

      지 않는다. 이런 짓을 꾸미는 데도 직접 나서지 않고 주시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칸은 기다리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자긴이 직접 나서서 일의 결말을 짓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니 가만히 앉아서 손만 빨고 있을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예의가 아니지."

      극을 벌인 장소와 인물들, 기타 장비들이 모두 갖춰져 있었다.

      외교라든가 동맹따위 알게 뭔가. 

      만약의 상황이 생기면 뮤트롱은 축제의 장소가 아닌 전쟁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예리한 금빛의 눈동자를 빛내는 이자크의 얼굴을 요크발은 음울한 눈동자로 내려

      다 보았다. 

      잘못 되었다고 느끼자 마자 일은 완전히 틀어져 그대로 굴러가고 있다.

      어긋난 부분은 다시 맞물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타오는 불길과 막혀버린 동굴. 

      그리고 칸크빌레의 모습을 빌린 악마와 그의 뒤에 버티고 있는 드래곤의 모습. 

      사내는 미칠것 같은 공포와 절망감을 느껴야 했다. 

      어째서 저 공포의 용이라는 존재가 이곳에 있는지, 그토록 믿고 따르던 칸크빌레라

      는 존재가 자신들에게 검을 휘두르는 것인지- 

      사내의 혼란을 눈치 챈 동료들이 칸크빌레가 아니라며, 저건 황제폐하가 아니라고 

      볼을 두들이며 외쳤지만, 사내의 눈과 귀에는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자신들을 둘러싸던 동료들이 하나둘씩 쓰러지며 이내 황금빛의 눈동자를 지닌 괴

      물이 검을 들었을때 반사적으로 생각했다.

      죽는다-라고.

      "...헉! !"

      지독한 악몽에서 깬 사내는 거친숨을 내쉬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자리에서 일어나 아직 어두운 내부에 손을 뻗은 그는 손끝에 걸리는 물잔에 다짜고

      짜 입안에 차가운 물을 집어 넣었다. 

      시원한 물이 너무나 갑작스럽게 목으로 넘어가자 날카로운 통증이 내달린다. 

      어느새 눈가에 액체가 맺혔지만, 상관없이 다 마신 그는 숨을 고르며 턱에 흘린 물

      과 눈가를 문질렀다. 

      몇일이나 지났고, 자신이 본 존재가 그 분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간간

      히 꾸는 꿈은 그를 절망하게 만든다. 그때의 그 공포는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것이

      건만- 자신들은 왜 그것을 되풀이하며 꾸는 것인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악몽을 꾸는 듯 몸을 뒤트는 사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여 깨운 

      그는 맨발로 바닥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대부분이 사막으로 되어있는 동이지만, 저녁과 새벽은 꽤나 차가운 공기를 지니고 

      있어서, 창을 열자맏자 들어오는 서늘한 공기를 몽롱한 그의 정신을 깨우기에 충분

      했다.

      ".............."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한동안 밖을 내다보던 사내는 밑을 지나가는 인물의 모습에 

      미간을 좁혔다. 

      분명 성장한 진짜 칸크빌레님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던 소년이었다. 

      검은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던 이름이.....

      "이봐, 추우니깐 문좀 닫으라고-"

      "..아. 미안하네."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밑의 소년에게 시선을 준 사내는 혀를 차며 창을 닫았다.

      이름이 막 기억나려던 찰나였는데 말이다. 

      "유헌- 잠이 안 오나요?"

      "......에스."

      이미 잠든 칸의 눈앞에 몇번이나 손을 흔들고 확인차 몰래 나온 유헌의 행동은 그

      보다 먼저 일어난 에스에 의해 물거품이 된다. 

      모처럼 조용히 사색을 즐길까하던 유헌은 이미 들켜버린 일이기에 어쩔수 없다는 

      미소를 지으며 에스의 곁으로 다가갔다. 

      건물의 밑에 자리한 작은 나무의자에 앉아 새벽공기를 마시고 있었던 듯 무척이나 

      편안한 표정을 짓고있는 그의 옆에 앉은 유헌은 아직 사라지지 않은 안개로 쌓인 

      성의 모습에 시선을 주었다. 

      카일의 동에서의 위상을 알려주는 듯 갑작스럽게 찾아온 자신들에게 지대가 높고 

      화려하기 그지없는 분가된 성이 주어졌다. 분명 전에 묻던 사람이 있었지만 성의 

      통보와 카일의 존재에 아무 불만없이 순순히 물러났다 한다. 

      백에 헤아리는 사람들에 대해 제지도 없이 바로 성으로 입성해 이런 거대한 숙소를 

      얻고 바로 왕과 알현을 하는 카일의 모습에 유헌은 감탄했다. 

      사람은 겉모습만을 보고 판단하면 안된다더니- 

      그런 남자이지만, 나름대로 대단한 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수 밖에 없다. 

      그가 없었다면 칸크빌레 일행과 자신은 아직까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겠지.

      "이 많은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리고 안으로 들어오게 하느라 꽤나 피곤했을 텐데, 

      더 안자는 건가요?"

      "이 시간에 깨는게 몸에 익어서 몸은 피곤한데 눈을 떠지더 군요."

      "........칸도 그런 점은 배웠으면 하네요."

      "칸님께 그것만은 절대 무리입니다. 10년의 생활리듬은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니-"

      에스의 말에 유헌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10여년의 버릇은 고치기 상당히 어려운 것일거다. 

      그래도 자신이 일어날 때는 귀신같이 알아채고 잠에서 깨니 기특하다고 해야 하

      나? 입가에 미소를 띈채인 유헌의 옆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에스는 그의 목에 나

      있는 붉은 자욱에 괜히 얼굴을 붉히며 얼굴을 돌렸다. 

      저 두사람들은 나름대로 뜨겁구나-라는 생각이 절로든다. 

      처음에 나왔을때 닭살이 돋을 정도로 추운 날씨가 이쯤되자 약간 훈훈함이 감돈다. 

      동은 다른 것은 다 좋지만, 낮과 밤의 온도차가 너무 커 살기엔 그다지 좋지 않은 

      곳이라는 생각을 하며 에스는 덮고있던 담요를 내려 놓았다.

      "앞으로 어떻하면 좋을까요."

      ".........글쎄요. 현재는 그닥 잡히는 방법이 없군요."

      "계속해서 이곳에 있을수는 없으니- 

      결혼식이 끝나면 카일이라는 자의 조국에 들어가게 되는 걸까요?"

      "...............그건.. 아닐것 같습니다."

      카일의 이름만 들어도 저도 모르게 얼굴을 굳는다.

      이곳에 오기 몇일전 그가 보여준 진지한 얼굴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이 안하던 짓을 하면 족을 징조라던데 그 사내도 그와 같은 것이 아닐까. 

      입술을 깨물며 이곳에 도착하자 편하게 쉬라는 말을 거낸 카일의 모습에 잠시 떠올

      리던 에스는 자신을 바라보는 유헌의 시선을 느끼며 손을 들어 자신의 볼을 만져 

      보았다.

      "뭔가, 묻은거라도 있나요?"

      ".....아뇨. 그냥.."

      자신의 말에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에스의 모습에 유헌은 우물쭈물했다.

      자신이 그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상당히 주제넘은 짓을지도 모른다. 

      "카일은.. 에스를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던데... 

      .........에스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건가요?"

      "............."

      "그냥, 왠지 모르지만 그냥...가만히 보고 있기가 뭐해서. 

      정말로 에스가 싫다면 분명 동료들이 그 남자의 접근을 막아 줄거예요."

      ".......유헌군도 동료에 포함되는 거죠."

      "아아- 뭐, 그렇겠죠."

      유헌이 어깨를 으쓱이자 에스는 한숨을 내쉬며 미소를 지었다.

      둔감한 줄만 알았는데, 의외로 감이 좋아 어느새 카일과 자신의 관계를 눈치채고 

      기특하게도 걱정을 해준다. 

      다른 이들은 걱정이 되면서도 자신이 알아서 잘 해결할 거라는 생각에 가만히 지켜

      보고만 있지만, 때로는 이런 식으로 직접 물어봐 주는 것을 원하기도 한다. 

      씁쓸한 미소를 베어문 에스는 과거의 일을 회상해 보다 옆에 앉은 유헌의 존재를 

      깨닭고 괜찮다-라는 말을 한다.

      "사람은 각자가 너무나 많은 과거와 고민들을 가지고 있어, 그것을 알아내기가 힘

      들고 또한 말하기도 힘들죠. 한쪽이 말을 하면 다른 쪽은 다른 말을 하니깐요- 

      그것과 같습니다."

      " ? "

      ".........카일 그 사내가 모르는 것을 알기에 전 그의 마음을 받을수가 없어요."

      ".........."

      에스의 말은 여러번 들은 적이 있는 것이라 그에게 고개를 돌리던 유헌은 이어지는 

      말에 표정을 굳혔다. 

      그가 무슨 고민을 안고 과거를 알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로써 그 카일이라는 남

      자가 고생할 길이 뻔해진 것이다. 

      적이기는 하지만 보이는 성의가 괘씸해 중간 다리역을 해보고도 싶었던 유헌은 자

      신의 주제넘은 행동을 비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볍게 산책을 하고 들어갈 생

      각이었는데 에스와 대화를 하는 덕에 그 시간을 다 쓴 것 같았다. 

      자신이 옆에 없으면 분명 걱정할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은 유헌은 에스에

      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러세요. 칸님을 깨우시면 중간홀로 오셔서 같이 식사라도 하죠."

      중간에 100여명의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합류하게 되었다.

      어쩌면 오늘 아침은 그런 그들을 만나는 첫자리가 될수도 있음이고, 칸의 일행들에

      게도 오랜만에 만나는 친우들이 될거다. 

      그것도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무척이나 씁쓸한 만남이 될수도 있겠지. 

      에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유헌은 서서히 걷어지는 안개에 

      시선을 주었다.

      "............."

      한동안 걷다가 이내 멈춘 유헌은 안개에 휩싸여 흐릿하게 보이는 주변의 모습에 알

      수없는 기분을 맛봐야 했다.

      도대체 자신의 존재란 건 무엇이란 말인가.

      현실세계에서도 붕뜬 존재여서 이곳에 오기를 그토록이나 바래 겨우 왔고, 자신이 

      살아있을 이유에 대해 차차 알아가고 있는데, 그런 자신의 앞에 보통사람들과 다른 

      내가 모습을 들어내고 있다. 

      그런 모습이 완전히 들어나게 된다면, 그렇게 되어도 주변의 사람들은 전과같은 모

      습을 보여줄 것인가.

      ..............난 도대체 어디에 있어야 하는 걸까.

      딛고 서있는 지반이 점점 좁혀지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끼며 손을 들어 입을 막은 

      유헌은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았다. 눈을 감고 한동안 호흡을 고르던 유헌은 멀리 

      익숙한 음성이 들려오자 감고있던 눈을 떴다.

      "...........헌!!"

      "........."

      "......유..헌! !"

      - 칸.

      자다가 일어난 것인지 바지하나만을 입은채 뛰어오는 사내는 분명 칸이었다.

      손을 내려 쪼그리고 있는 무릎에 올려둔 유헌은 자신을 발견하고 이쪽으로 달려오

      는 사내의 모습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한참을 돌아 다닌 듯 윤기나던 검청의 머리카락이 어지럽게 볼에 달라붙어 있다. 

      "유헌! 도대체 어딜 간거야?"

      ".......칸."

      "한-참-을 찾았네. 힘들었다고~"

      마찬가지로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긁적이던 칸은 '힘들었다고-'라고 뾰로통하

      게 중얼거리며 유헌의 얼굴을 바라본다.

      자신의 얼굴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칸이 금빛 눈동자를 멍하니 바라보던 유헌은 이

      내 눈을 가늘게 접으며 미소를 지었다.

      자신은 눈앞의 이남자를 보기위해 이곳에 온것이다.

      그를 지켜주고, 사랑하고, 일생 곁에 있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이다.

      그러니 나머지는 알바 아니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 그런 머리아픈 고민을 하는 

      동안 칸과 있을 시간이 무의미하게 지나가는 것을 절대 사양이다. 

      자신도 알수없는 이런 마음이 어디서 생겨난 건지라고 드는 의문도 잠시, 몸을 털

      고 자리에서 일어난 유헌은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칸의 손을 잡아 끌었다.

      "배고프네요- 뭔가 먹을 게 있을 까요?"

      "먹을거? .....음 식당에 가 음식을 만들라고 해야 겠군."

      "그전에 옷부터 입어야 겠어요."

      바지만 입고 상체를 벗은채의 칸의 모습은 훌륭했지만, 문제는 등에 나있는 유헌의 

      손톱자욱이었다. 

      얼굴을 붉혀야 할 사람이 도리어 눈빛을 빛내며 장난스럽게 말하자 당황한 칸이 손

      을 뻗어 자신의 등을 가리기에 급급한다. 

      그 모습에 점점더 진한 미소를 띄운 유헌은 칸의 팔에 손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좋군."

      "우리들처럼?"

      창가에 기대고 앉아있던 라헨은 품에 안겨있던 라프헨이 얼굴을 돌리고 묻자 짓굳

      은 미소를 지었다. 당연하지-라며 미소를 지은 그는 품안에 안긴 작은 몸을 자신 

      쪽으로 강하게 끌며 들어난 이마에 입술을 겹췄다.

      그런 라헨의 입맞춤에 라프헨의 얼굴에 그린듯한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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