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크의 물러가라는 말에 칸들의 일행이 있는 곳으로 가 유헌의 위험을 알려주려
던 돔은 그러나 자신의 앞을 막는 기사들에 안색을 달리한다.
갑자기 나타나 길을 막는 것은 황제가 왔을 때부터 뒤를 따랐다는 의미로 그들의
눈치를 본 돔은 이들을 물리치고 자신이 빠져나갈수 없음을 깨닭는다.
눈앞에 이 존재들은 황제를 제외한 그 누구의 명령도 듣지 않는다.
요크발이나 카일같은 자들의 말은 간혹 듣기는 하지만, 자신같은 애송이의 말을 들
을리가 없다.
암담함에 굳어지던 돔은 이내 생각을 바뀌 이들을 물리치고 돌파하자고 결심한다.
생각을 하고나니 정말로 그렇게 하고 싶어진다. 이를 악물고 기사들을 밀쳐 내려던
돔은 그러나 그들 사이로 나타나는 인물에 눈을 크게 떴다.
".........사이키경."
"돔님. 무모한 짓을 하지 마십시오."
'설마하니 이 기사들이 당신을 놓칠 것 같습니까?'라는 의미가 담긴 그 말에 돔의
얼굴이 붉어진다.
분한 듯이 노려보는 돔의 붉은 눈동자를 바라보던 사이키는 여전히 미소띤 얼굴로
그에게 어서 오라는 듯이 손을 내민다.
물론, 자신의 손을 가만히 바라보는 그에게 결단을 빨리 내리도록 덧붙이는말을 잊
지 않는다.
"요크발님께서 지금 쓰러지셨습니다."
"..........뭐?"
"다른 사람들보단 당신이 곁에 있어주는 것이 그분에게도 좋을 테지요-"
"..............."
사이키의 말에 돔은 입을 다물었다.
누가 쓰러져?
그 요크발이라는 사내가, 단단하고 아파도 아플 것 같지 않은 그 사람이??
멍하니 생각하던 돔은 자신의 팔을 잡는 손길을 뿌리치지 않았다.
그가 자신에게 칸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지 않았다고는 하나, 그동안 정말로 아껴주
었다. 모친도 그처럼 자신에게 깊은 애정을 보이진 않았다.
속인 것에 대해 분함을 느끼는 한편 쓰러 졌다는 그가 걱정된다.
요크발이 쓰러졌다는 소리에 안색을 굳힌채 눈동자만 굴리는 돔의 모습에 의아함
을 느꼈지만, 기사의 손길에 순순히 끌려오는 모습에 얼굴을 돌렸다.
요란하게 하는지 황제가 들어간 복도는 간간히 검명이 들려오기도 한다.
"..........가자."
한동안 그곳을 바라보던 사이키는 기사들과 돔을 데리고 걸음을 옮겼다.
"이봐."
"무슨 물어볼 말이라도 있으십니까? 돔님."
"......그는 괜찮은 거겠지."
얼굴을 숙이며 요크발의 안부를 묻는 모습에 사이키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어지간히도 사이가 좋은 두사람의 모습이 썩 보기 좋았다.
"그동안 피로가 쌓여 쓰러지신 것이니, 곧 일어나실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몇걸음 더 걸어 복도를 벗어난 사이키는 어느 전신 거울에 다가가 면을 문지른다.
그 순간 물이 퍼지듯이 그려지는 원에 돔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 주변은 루드빌이 걸어논 주술로 안과 밖에 닫혀져 있기에 이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면 자신들도 빠져 나갈수가 없다.
그나마 만일을 위해 배치해 둔 이 비밀통로는 혹여나 안에 들어와있는 자들에게 보
여서는 안되는 것이기에, 의아해 하는 돔의 팔을 잡은 사이키는 거울안으로 들어간
다.
갑자기 거울로 걸어가는 사이키의 모습에 기겁을 한 돔은 그러나 부딫히지 않고 거
울 속으로 묻히는 그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이 거울은 다른 공간을 이어주는 매게인 모양이다.
눈을 감고 거울을 통과한 돔은 온몸을 쓰다듬는 불쾌한 감촉에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불쾌함도 잠시 피부를 감싸는 서늘한 온도에 눈을 뜬 그는 달리진 주변의
모습에 입술을 벌렸다.
분명, 요크발이 묶던 방이다.
알고 있었지만, 갑자기 바뀌는 환경은 신기하다.
"자- 이쪽으로."
"........."
사이키의 안내로 침대에 누워있는 요크발의 모습을 확인한 돔은 미간을 찌뿌렸다.
많이 회복한 듯 안색은 좋아 졌지만, 들어간 볼살이 안타까운 기분이 들게한다.
입술을 깨물며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돔이 근처의 의자를 끌어 침대가에 앉
는 것을 확인한 사이키는 근처의 기사들과 함께 방에서 나온다.
방 밖에 두줄로 도열해 있는 기사들을 모습을 확인한 그는 딱딱한 어조로 입을 연
다.
"쥐새끼 한마리도 이곳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라.
안의 두분은 앞으로 중앙국에 중요한 사람들이 될 분들이다."
"예."
"그대들을 믿지만, 불미스런 일의 댓가는 죽음뿐이라는 것을 잊지 말도록-"
사늘한 사이키의 경고에 침을 삼킨 기사들을 도열을 정비한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만족을 표정을 띈 사이키는 복도 끝에서 걸어오는 소년의 모습
에 한쪽 눈썹을 올렸다.
그런 그의 모습을 알아차린 것인지 대야를 들고있던 론이 고개를 숙여 보인다.
칸과 많이 닮은 소년을 한동안 내려다 보던 사이키는 한숨을 쉬며 방문에서 비켜선
다.
"안의 두분을 잘 부탁한다."
"저는 시중을 들뿐입니다. 부탁이라니 당치도 않아요."
"..........그래."
사이키에게 인사를 한 론은 방으로 들어와 요크발의 근처에 앉아있는 돔의 모습에
걸음을 멈췄다.
사람의 기척에 고개를 든 돔은 문앞에 서있는 론이 모습에 숨을 들이킨다.
그리고 점점 붉어지는 얼굴에 헛기침을 하며 얼굴을 돌린다.
그런 그의 모습에 마찬가지로 고개를 돌린 론은 요크발에게 다가가 그의 이마에 놓
여진 수건을 새걸로 바꿔주었다. 열이 많이 나서 한 것이지만, 지금은 나아져서 내
려도 좋을 것 같아도 만약이라는 것이 있으니 좀더 둬보기로 한다.
요크발을 사이에 두고 별다른 말없이 앉아있던 둘은 머쓱함을 이기지 못한 돔이 입
을 연다.
"..몸은.. 괜찮은 건가."
"에? 아..아아. 괜찮아요. 전- 몸은 익숙하니깐-"
"익숙해도 아프다고 들었어. 굳이 안 아픈척을 하지 않아도 좋아.
.........나로썬 아프지 않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편해."
"그..그런가요. ..그렇군요."
돔의 말에 론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는 듯 수긍한다.
그런 그의 순수한 모습에 돔은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이렇게나 맑은 아이도 있구나 싶다.
"배가 좀 땡기고, 걸을 때마다 좀 쓰리긴 하지만 못 버틸정도는 아닙니다.
돔님은.. 굉장히 상냥하게 해주셔서-"
"그..그런 것도 아는건가?"
론의 구체적인 말에 돔의 얼굴이 붉어진다.
그런 돔의 얼굴을 보며 눈을 가늘게 휘어보인 론은 '느껴져요.'라며 고개를 끄덕인
다. 론의 모습에 차마 얼굴을 똑바로 볼수없던 돔은 헛기침을 하며 얼굴을 돌린다.
그의 모습을 여전히 미소지은 채 바라보던 론은 누워있던 요크발의 손가락이 미미
하게 흔들리자, 그리로 시선을 준다.
그와 동시에 열려진 붉은 눈동자에 화색을 띈 론이 돔의 이름을 부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자신이 곁에 있을때는 눈을 뜰 생각조차 하지 않더니 돔이 곁에 있으니
금방 정신을 차렸다.
역시나 아플때는 혈연이 있는 것이 낫다-라고 생각하던 론은 자신에게 날라오는
요크발의 서늘한 눈동자에 숨을 죽였다.
"무슨 말을 한거지-"
".....요크발님?"
평소의 그답지 않게 살기마저 띈 눈동자에 당황한 론은 뒤로 물러나며 손으로 입을
막는다. 그런 요크발의 행동에 당황한 것은 론뿐만이 아닌지라, 안색을 달리한 돔
이 그에게 다가가 왜 그러냐는 듯이 몸에 손을 올린다.
그런 돔의 손을 잡은 요크발은 손에 힘을 주며 나직히 이를 간다.
"방금, 내가 들은 두 사람의 대화가 뭔지 묻는거다."
.............들었던 건가.
저도 모르게 론과 시선을 마주한 돔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는다.
그것은 론도 마찬가지인지라 요크발이 왜 이렇게 분노하는지 알아차린 그는 그 자
리에 엎드린다.
이상한 자들이 꼬이지 않도록 그토록기나 애지중지하던 돔과 자신이 관계를 가졌
다는 대화를 들었으니 그의 분노가 얼마나 클지 상상할수도 없다.
파랗게 질린 얼굴로 엎드려 벌벌떠는 론의 내려다 보던 돔은 누워있던 요크발이 몸
을 일으키자 당황하며 그를 부축한다. 그러나 돔의 손을 뿌리친 요크발은 자리에서
일어나 엎드린 론을 가만히 내려다 본다.
"방금 내가 들은게 뭐냐고 묻는거다.
설마하니 네놈이 돔과 한 침실을 사용했다는 것은 아니겠지?"
"..........요..요크발님..저..저기."
"긍정하는 거냐-"
차마 대답을 못하고 벌벌 떨기만 하는 론의 모습에 입술을 깨문 요크발은 침실근처
에 놓여져 있던 검을 빼들었다.
"그만두십시오!!"
"이것 놔라-! 이런 비천한 것이 감히 너와 자다니-
그런 수치스러운 일은 이 자리에서 묻어 버리겠다!! !"
검을 빼든 채 외치는 요크발의 말에 돔의 안색이 굳는다.
진심으로 검을 휘두를 기세인 그 모습에 이를 악문 돔은 엎드린 론의 앞을 가로 막
는다.
그 모습에 요크발의 안색이 대번에 변해 들고있던 검을 내린다.
"설마하니.. 그 녀석에게 맘이 있는 거냐."
"마음이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이 애꿋은 사람을 죽이러 하는데 가만히 보고만 있
으라는 겁니까? 그럴수는 없습니다!"
"애꿋은게 아니다. 너와 잠자리를 함게 한 것만으로도 죽을 이유가 충분해-"
"그런 말도 안되는 일로 이렇게나 아끼던 아이에게 검을 드시는 겁니까?!"
지금까지 이토록이나 반발하는 돔의 모습을 본적이 없다.
요크발은 망연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막는 돔을 바라 보았다.
언제나 자신을 믿고, 따르던 착한 아이였는데 왜 이렇게 변해버린 것인가.
헛웃음을 터트리던 크는 돔의 뒤에 엎드린 론이 슬그머니 얼굴을 들자 이를 악물며
돔의 몸을 옆으로 밀쳐낸다.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돔과 몸을 섞은 이 녀석만은 용서할수가 없다.
다른 무엇에도 침범당하지 않도록 깨끗하고, 당당하게, 혹여나 때가 탈까 봐 손에
서 놓지 못하고, 애지중지하며 키운 아이다.
그런 아이를 이런 비천한 놈이 더럽힌 것이다.
"죽어라!!"
"그만 두시란 말입니다! !"
밀쳐진 돔은 끝끝내 요크발에게 떨어지지 않고 그의 옷자락에 매달린다.
그런 돔의 모습에 더한 초조함을 느낀 요크발은 이를 악물며 저 론을 반드시 죽여
야 한다고 느꼈다.
그렇지 않으면 돔이 더 이상하게 변할 것이다.
"이러 녀석을 위해서 네가 이러면 더더욱 살려 둘수가 없다!"
"하지 말란 말입니다! 날 위로해준 사람입니다!! !"
"위로? 네가 위로가 무엇이 필요해. 너처럼 당당하고 남 부러울 것이 없는 네가, 그
렇게 키운 네가 무엇이 부족해 위로가 필요하단 말이냐! !"
"칸크빌레가 제 부친이 아니지 않습니까!! !"
극도의 흥분에 검을 든 손으로 허공을 내젖던 요크발의 움직임 단 한순간에 굳는
다. 멍하니 뜨여진 눈으로 돔을 내려다 본 요크발은 다시한번 말해 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두사람의 대치에 여전히 떨고있던 론은 자리에서 일어나 요크발에게 매달린 돔에
게 기어갔다. 여기서 저 요크발앞에서 돔에게 가까이 접근하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
는 일이지만, 이토록이나 상냥하고, 작고, 상처받기 쉬운 소년이 또다시 눈물을 흘
리는데 가만히 있을수가 없다.
손을 들어 요크발에게 매달린 돔의 어깨를 집은 론은 그의 얼굴을 가슴으로 끌어
당겼다.
"아니잖아......아니였어."
"..........돔."
"칸크빌레 따위... 내 부친은...."
벌벌 떨리는 몸에 목소리를 제대로 나오게 하지 않는다.
돔은 귓가에 들려오는 론의 '괜찮아요- 괜찮아.'라는 말을 들으며 쥐어 짜내듯이
입을 열었다.
"..........저 중앙의 황제인 이자키엘이잖아."
요크발의 검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경악으로 굳어진 그는 고개를 저으며 돔과 론에게서 물러났다.
그들에게 붙어있으면 금방 죽을 것 같이 창백한 안색을 지은 그는 뒤로 좀더 뒤로
물러난다.
그런 요크발을 놓칠수 없다는 듯이 잡고 있던 옷자락을 강하게 잡아 끌던 돔은 그
러나, 쿨럭하는 소리와 함께 코끝을 스치는 비릿한 향에 감고있던 눈을 떴다.
"..쿨럭.. 컥.. 크..."
돔의 말에 너무나 충격적이라 온몸에 달리는 통증을 미쳐 눈치채지 못했다.
서서히 몸을 구부린 요크발은 바닥을 젖시는 피웅덩이에 시선을 준다.
이 피가 흐린 것은 자신이 부상을 당해서가 아니라- 자신과 이어진 그녀에게 이상
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심장에 이런 통증과 함께 피를 토하는 거겠지.
새파랗게 굳은 채로 자신의 몸을 안아드는 돔의 얼굴을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여 보
였지안 언어가 나오질 않는다.
계속해서 흘러내리는 피에 안색을 굳힌 요크발은 마지막 힘을 끌어냈다.
말해 주어야 한다.
칸크빌레가 네 부친은 아니지만, 사실은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어쩔수 없는 것이었다고-
네가 태어날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쁨을 느꼈는지 아느냐고.
그런 자들을 위해서라고 그렇게 슬퍼하면 안된다고.
그렇게 말해야 하지만, 말할수가 없었다.
"밖에서 사람을 불러와!! !"
"요크발님!!"
"당장에 의사와 치료 술사를 데려오란 말이다! !"
요크발의 몸을 안아든 돔은 미친듯이 소리쳤다.
론은 단지 낮은 비명을 지르며 요크발을 바라 볼 뿐이었다.
"..큭?! !"
루드빌에게 달려 들려던 라헨은 발을 띈 그 순간에 또다시 넘어져 요란하게 바닥을
굴러야 했다.
이런 다급한 상황에 이게 무슨 짓이냐고 자신에게 소리치고 싶은 심정에 구르면서
도 욕설을 내뱉던 그는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고개를 들어 유헌의 안부를 살피기 위
해 얼굴을 들었고,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입을 벌렸다.
그것은 유헌도 마찬가지로 검에 찔려 입가에 피를 흘리는 루드빌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 보았다.
".........칸.."
유헌이 저도 모르게 칸의 이름을 부르자 정신을 차린 그가 숨을 들이키며 반쯤 잡
고있던 이자크에게 시선을 돌린다.
칸에게 매달려 엉성한 폼으로 앉아있던 이자크는 내뻗은 손에 힘을 주었다.
루드빌의 배에 깊숙히 박힌 검이 비틀어지며 더 많은 피가 바닥을 젖신다.
망연히 자신을 바라보는 루드빌과 수많은 시선을 느끼며 이자크는 가만히 입술을
열었다.
"그가 죽으면 칸이 슬퍼해."
".........너.. 이자키엘.."
"칸크빌레에게 상처를 줄수있는 자는 나뿐이다. 루드빌."
그에게 상처를 줄수있는 자는 나뿐- 유헌을 죽일자도 나이다.
이자크의 금빛 눈동자를 바라보던 루드빌을 헛웃음을 터트리며 뒤로 물러난다.
그에 따라 이자크의 검이 끌리며 더 많은 피를 쏫는다.
다른 자의 검이였다면, 다른 알지도 못하는 인간의 검이었다면 이렇게 깊숙히 찔리
지도, 상처를 입지도, 통증을 느끼지도 않는다.
칸크빌레와 이자키엘, 그리고 유헌에 시선을 주던 루드빌은 뭔가가 툭하니 끊어지
는 것을 느낀다.
".............차라리 모조리 죽어버리렴."
야차같이 이그러지는 루드빌의 얼굴과 동시에 그녀의 주번에 붉은 기가 대량으로
생겨나 뭉친다. 그 모습에 숨을 들이킨 칸은 이자크의 몸을 일으키고 동시에 유헌
의 손목을 잡아끈다.
"........헌신인가."
태양이 기우는 문턱으로 몰리는 대량의 적기에 미간을 찌뿌린 융텐은 허리에 시트
를 감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전의 성인의 모습으로 돌아온 그는 창턱에 앉아 적기와 맞물려 느껴지는 익
히 아는 인간의 기운을 감지하며 한동안 그대로 있었다. 그러나 침대위에 누워있던
유크렌이 작은 신음 소리를 내며 몸을 비틀자 서둘러 일어나 그에게로 걸어간다.
뱃속의 아이는 자신과 닮은 흑룡.
동시에 저 적룡 루드빌라겔의 피를 이어받았다.
그녀의 분노가 자신에게 느껴지는데 유크렌의 뱃속의 아이라고 못느끼라는 법은
없다. 식은땀을 흘리는 유크렌의 이마를 손으로 집으며 몸의 힘을 뺀 융텐은 주문
을 위우며 마력을 뿜어낸다.
유크렌의 뱃속으로 마력이 잘 들어가도록 심혈을 기울이던 융텐은 아이의 기가 많
이 안정되자 그제서야 감았던 눈을 뜬다.
어느새 깨어있었던 건지 초록색의 눈동자로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유크렌에게 미
소를 지어준 융텐은 시트를 끌어 그의 목까지 덮어준다.
"루드빌의 헌신인건야?"
"아마도... 녀석들 고전하겠군."
"...........죽을수도 있어."
'그래도 괜찮겠어?'라는 듯이 묻는 듯한 그 시선에 융텐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들에 대한 걱정은 저신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그가 이런 모습을 보이니
조금 재미있다.
입가를 올려보인 융텐은 복잡한 심정에 표정을 굳히고 창가에 시선을 던졌다.
어찌할까- 도와줄 것인가, 말것인가.
"인간은."
" ? "
"인간은 한번 도움을 받으면 그 후를 계속해서 원하게 돼.
어떤 결과가 있던 우리가 끼어들면 안돼."
끼어들면 더이상 인간들의 싸움이 되지 않는다.
저 루드빌이 관여한 순간에 인간들 싸움운운하는 것도 웃기지만 어쩔수가 없지 않
은가. 당장이라도 달려나가고 싶지만, 배속에서 꿈틀거리는 작은 생명에 유크렌은
몸을 돌려 창과는 반대 쪽에 시선을 주었다.
그런 유크렌의 모습을 바라보던 융텐은 그 옆에 가지런히 눕는다.
침대가 한쪽으로 기우는 것을 유크렌은 나직히 한숨을 쉬었다.
자신은 몰라도 저 제멋대로의 흑룡은 그들을 도와주러 가지는 않을까하고 생각했
던 것이다.
유크렌의 실망을 눈치챈 것인지 융텐의 입가에 쓴 웃음을 지어진다.
이내 손을 들어 몇번 흔들어 보이자 자신들과 노웬 일행이 있던 건물에 흑색의 장
막이 걸쳐진다.
"이건?"
"우리들이 있는 곳이니 날파리들이 꼬여서는 안되잖아."
"헤-에."
"하지만, 용에게만 한해서야 인간에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적어도 무사하겠지."
건물안에 있는 인간들은 용의 공격에 안전하게 되었다.
그답지 않은 행동에 한쪽 눈썹을 올려보인 유크렌은 이내 침대에 엎드렸다.
안심을 한 모양인지 코를 골고 잠이 든 유크렌의 바라보던 융텐은 한숨을 쉬며 손
을 깍지 껴 팔배게를 했다.
유헌이, 만약에 그가 자신이 생각하는 그 능력자라면, 그래서 자신이 시키는 대로
잘만 한다면 저들은 살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루드빌은 무사하지 못할테지.
".....제길.."
그래도 부친이라서 그런지 약간 씁쓸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중간에 부친의 역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떠난 그 덕분에 자신은 적룡
으로 태어나지 못하고 흑룡으로 태어나게 되었다. 일정의 마력을 주던 부친이 사라
져 버렸으니 모친의 배속에 있는 헤층링의 미래는 죽음뿐이다.
그런 자신을 죽도록 놔둘수 없었던 모친 백룡은 자신과 친분이 있던 흑룡에게 부탁
해 끊긴 마력의 공급을 요청한 것이다.
덕분에 흑룡으로 태어났지만, 기질은 적룡에 더 가깝다.
덕분에 벌인 기행으로 얼마나 많은 욕을 먹었던지- 자신이 벌인 과거의 일중에 유
크렌도 끼어있다.
그나마 자신이 한일 중에 제일 나은, 아니 최고로 현명한 행동이었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융텐은 작게 중어거렸다.
"안녕히- 루드빌라겔."
완전한 죽음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한 결말이 네 앞에 놓여지길 기대하지-
"이건...뭐지?"
라헨에게 통신을 해보려 한 젤은 그러나 중간에 막고 있는 것에 번번히 실패를 하
고 거진 포기한 상태였다.
그런 그녀에게 뭔가 묘한 감각이 느껴진다. 감던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
는 주위를 둘라보다 이내 창가로 다가가 문을 열어 보았다.
안은 아무런 이상이 없으니, 일이 있다면 그것은 밖일 것이다.
적들이 뭔가 일을 꾸민것인가하고 생각했던 젤은 그러나 밖에 나있는 저택을 감싸
는 거대한 흑막에 입을 벌렸다.
이런것을 할수있는 것은 융텐이다.
그가 이런 행동을 하다니- 놀라움 반, 고마움 반을 느끼던 젤은 등을 타고 올라오
는 소름이 몸을 떨었다.
"젤님, 밖에-! ! !"
다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온 사내는 젤이 연 창 사이로 보이는 이제는 완전히 현상
을 띈 거대한 생물체에 뒷걸음 질을 쳤다.
"........맙소사."
완전히 모습을 들어낸 적룡의 모습에 노웬은 나지막한 탄식을 내뱉었다.
꿈에서도 잊을수 있을것인가.
유일하게 마음을 주었던 사람을 구석까지 몰아 넣었던 화근을 만든 저 존재를-
옆에서 입을 벌리고 눈을 부릎 뜬 비센을 지나쳐 걸어간 노웬은 마침 방으로 들어
오는 젤의 모습에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노웬에게 다가간 젤은 아니라는 대답을
듣고 싶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리며 묻는다.
"설마하니... 저곳에 칸님이 있는 것은 아니겠죠?"
"아니길 바래야죠-"
젤의 말에 웅얼거린 노웬은 그러나 비센의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
"칸을 놓친 부근입니다- 저곳은."
콰-앙!! !
"제기랄-! !"
머리 위로 날라 온 꼬리를 간신히 피하니 이번엔 발로 밟으려 한다.
이자크를 엎고 유헌의 손을 잡고 요령좋게 요리조리 빠져 나가는 칸의 얼굴을 그야
말로 사색이다.
이런 일이 생길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중앙국을 상대한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현신한 적룡과 겨루게 되다니!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용을 잡는 드래곤 슬레이어 같은건 전부 전살의
존재일 뿐 실제로 있을리가 없으니, 평범한 자신들은 이대로 깔려 죽을 판이다.
잘도 피하는 칸들의 모습에 열이 받은 루드빌은 높은 괴성을 지르며 다시 다리를
든다.
브레스를 쏘으면 금방 끝날이지만, 아직 이자크에 대한 마음이 사라지진 않았다.
다른 녀석들은 몰라도 저 이자크는 빼내고, 이 성에 있을 다른 아이들도 무사히 구
해야 한다.
브레스를 쏘면 인간들의 성따위 한순간에 재가 될테이니. 사랑스런 아이들이 이런
녀석들을 상대하느라 쏫은 기운에 더불어 폐가 가는 일은 절대로 사양이다.
[쥐새끼같은 놈들, 얌전히 있지 못하겠느냐-! !]
"가만히 있으면 죽을거라는 걸 아는데, 그런 멍청한 인간이 어디이겠나-
뭐 그대는 충분히 그러도고 남지만 말야!! !"
[네 이놈! !]
칸의 빈정거림에 본노한 루드빌은 입을 벌려 칸들이 서있는 곳으로 달려 들었다.
집 하나가 들어갈만한 크기에 엄청나게 예리한 이가 박혀진 입이 머리 위로 쏫아지
는 것은 압권의 공포를 느끼게 한다.
괜히 용을 도발한 것인가하고 후회해 봤자 이미 저지른 일이다.
어깨에 집어진 이자크를 숲으로 던진 칸은 유헌의 손을 잡고 그 방향으로 몸을 날
렸다. 간발의 차이로 자신들이 있던 곳에 루드빌의 공격으로 푹 파여진 것을 본 유
헌의 안색이 파랗게 질린다.
역시나 미쳐 날뛰는 용은 두려운 것이다.
[모두 죽여 주겠다! !]
인간이 용을 상대로 싸울수 있을리가 없다.
용의 뒤로 다가선 라헨이 그의 꼬리에 맞고 저만치 날라가는 모습에 유헌은 숨을
죽였다. 그리고 동시에 튀어나가는 칸의 모습에 기겁했다.
도대체 무슨 일을 꾸미려고 저런 무모한 행동을 하는거란 말인가-! !
던져진 이자크가 멍하니 눈을 뜨고 몸을 반쯤 일으키는 것을 본 유헌은 입술을 깨
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런 그의 모습에 이자크는 눈을 가늘게 뜬다.
"무리다. 인간이 용을 당할 것 같은가- 결국 개죽음이다."
"..........당신이랑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쪽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충고는 곱게 받아 들이는 것이 이로울 거다."
"............."
이자크의 말에 무시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유헌은 칸이 달려간 반대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칸의 모습에 루드빌의 신경이 그쪽으로 몰리고 몸을 튼다.
거대한 몸이 이동을 할때마다 건물이 무너지는 탓에 머리 위로 떨어지는 돌들을 주
위하며 쓰러진 라헨에게 다가간 유헌은 그를 부축했다.
꼬리에 채이기는 했지만 그다지 심한 부상은 아닌듯 그는 웃어 보이며 단숨에 자리
에서 일어난다.
"너는 이 뒤로 가서 나머지 사람들을 피신시켜라- 이곳은 나와 칸이 맞도록 하지."
"제 능력을 아시잖습니까. 제가 이곳에 남는 편이-"
말을 이으려던 유헌은 그러나 자신의 머리에 덮어지는 커다란 손에 입을 다물었다.
저쪽에선 칸 혼자서 적룡을 상대하고 있기에 빨리 가서 도와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라헨의 눈동자에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처음으로 연상으로서 단단한 사내의 눈빛을 지어보인 라헨은 입을 연다.
"네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다고 한들, 20도 못넘긴 애송이다.
그런 어린아이에게 자신의 싸움을 떠 넘길 만큼 한심한 놈은 여기에 없다."
".............라헨."
"더이상 말할 시간이 없으니, 이만 가보겠다. 무훈을 빌어 주라고! !"
묘하게 이그러지는 유헌의 얼굴을 확인하며 손을 들어보인 라헨은 칸에게로 달려
갔다.
장소도 비좁고 얼마 이동을 하지않아 금새 대치한 용에 다가선 라헨은 있는 힘껏
검을 휘두르지만, 단단한 용의 비닐에 흠집하나 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오기로 버틸거다라는 마음에 이를 악문 라헨이 검을 높이 들어 올린
다.
[이런, 버러지 같은 것들이-!]
라헨에게 고개를 돌리는 순간을 이용해 뛰어오른 칸이 루드빌의 눈을 노리지만, 기
겁한 용이 휘두른 손에 막아 저만치 나가 떨어진다.
"칸! !"
"............칸크빌레..!"
숨을 죽이며 소리친 라헨은 다시금 자신에게 쏠리는 용의 붉은 눈동자에 이를 갈며
검을 다잡았다.
내 일생 이렇게 용을 상대로 검을 휘두르게 될지 그 누가 알았단 말인가-
이를 악문 그는 몸을 피하며 드래곤이 내리치는 손길을 피해 건물과 떨어진다.
건물과 뒷편에 라프헨이 있는 곳까지 꽤 떨어져 있지만, 모르는 일이라 멀리 유인
을 하는 라헨은 용이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구나 싶었다.
이곳엔 용이 지칭하는 죽어야할 버러지같은 인간들뿐만이 아닌, 칸크빌레와 이자
키엘이 있기 때문인가.
그러고 보니 용의 힘을 워낙에 대단하니 그것에 휘쓸릴 그녀의 아이들의 걱정에 제
대로된 힘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승산이 있는 것인가.
"하지만 그것도 공격이 먹혀야지! !"
이를 악문 라헨은 내리치는 꼬리를 피해 그 위에 올라가 루드빌의 몸에 검을 휘두
른다.
"....흥."
잘도 뛰어다니는 구나 싶다.
저 사내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 왕국의 기사당장이었다고 하던데 과연 실력이 좋다.
루드빌이 칸을 후려칠 때 놀라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킨 이자크는 절뚝거리는 폼으
로 쓰러진 그에게 다가 가려한다.
아까 칸이 집어 던질때 다리를 접지른 모양이다.
지금 자신이 나간다해서 뭔가 바뀌는 일은 없지만, 그의 상태를 살피는 것도 좋을
테지. 그는 그 누구도 아닌 나에 의해서만 괴로워하고 상처를 입어야 한다.
이런 일에 다쳐서는 안되는 것이다.
".......카..."
조용히 그의 이름을 부르려던 이자크는 자신보다 빠르게 접근하는 유헌의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칸, 괜찮은 거예요?!"
"....으다다다;; 이거 장난이 아닌걸.. 3층에서 떨어진 것 같아."
가슴을 움켜쥐고 신음을 흘리는 모습에 유헌의 표정이 굳는다.
그런 유헌을 위해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으려 하지만, 아픈건 아픈거다.
이를 악문 칸은 억지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자, 가서 도와주자고- 유헌은 피해있어."
".........에?"
"위험하니깐 저기로 피해 있어."
다른 용이 접근하지 않는 곳을 손가락질 하며 바라보던 칸은 멍하니 서있는 이자크
를 발견하곤 몸을 굳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눈을 가늘게 휘어보인 칸은 아직 무릎을 꿇은 채인 유헌의 팔
을 잡아 일으켜 주곤 손을 들어 보인다.
"나와 라헨이 알아서 할테니, 둘은- 피해있어."
"칸....."
"자, 간다! !"
멍한 표정을 짓는 유헌의 어깨를 두들인 그는 기합을 넣더니 라헨과 합류하기 위해
그리로 달려 간다.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유헌은 자신에게 절뚝거리며 다
가오는 이자크에게 시선을 주었다.
묘하게 딱딱하게 굳은 그는 천천히 검을 빼어들며 유헌을 가르킨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에게 공격을 하려고 하다니, 역시나 이상한 사람이다-라고 멍
하니 생각하던 유헌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모두가 저 용이랑 싸우고 있는데, 나에게 검을 드미는 건가."
"일단 지금은 네놈을 상대하겠다."
"................싫다면?"
".........뭐?"
"싫다면-이라고 하는 거야. 칸의 얼굴과 같은 널 이젠 상대하기 싫어졌다고-"
유헌이 말에 이자크의 얼굴이 묘하게 굳는다.
그런 그의 얼굴에 시선을 던지 유헌은 루드빌을 상대하는 두 사람에게 시선을 주었
다.
자신이 더 강할지도 모른다. 아니, 더 강하지.
이세계인의 특유의 능력, 그것은 일반인들의 생각을 초월하는 것이다.
그 힘을 지니고 있는 자신조차 가늠할수 없다면, 도대체 얼마의 크기일까.
용이 마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소용없는 능력이지만, 부상을 당해도 다른 자들처럼
그것에 고통을 당하는 것은 순간일 뿐, 다시금 마력을 몸에 받는다면 순식간에 낳
게 할수있다.
실제로 이자크에게 입은 상처는 그의 마력으로 치유되었지 않은가.
그런 나인데, 피하라니.
정말로 중요한 순간에 자신은 함께 싸우는 동료가 아닌, 지켜 주어야 할 존재로 인
식되어 있는 점이 신기했다. 그렇게나 날 약하게 봤는가-라고도 생각할수 있는 문
제이지만, 그 이전에 걱정해 주는 그 마음을 먼저 느낄수 있다.
입술을 깨문 유헌은 가슴에서 올라오는 통증에 고개를 돌려 이자크를 바라 보았다.
상대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말에 표정을 경직시킨 그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칸이 피해있으라고 했습니다."
"............."
"그러니깐, 당신과 싸우지 않아."
나만이 아닌, 당신과 함께 피해 있으라는 말이다.
유헌의 말에 이자크의 얼굴이 서서히 이그러 진다.
그 얼굴을 확인한 유헌은 빠르게 그에게 접근해 검을 들고있던 손을 비틀었다.
너무나 갑작스런 유헌의 공격에 검을 떨어뜨린 황제는 이자가 자신을 방심시켜 공
격하는 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붕뜨는 몸에 눈을 크게 떴다.
그런 이자크의 상태에 아랑곳 않고, 그의 몸을 든 유헌은 근처의 수풀에 집어 던졌
다. 또다시 집어 던져지는 데다 풀위에 구르게 된 이자크는 얼굴을 붉히며 유헌을
바라 보았다.
그런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유헌은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입에 대보인
다.
"조용히 이곳에 있는게 좋을 겁니다."
".........네 이놈, 날 뭐로 보고-"
"칸크빌레의 동생이지."
".......뭐?"
동그렇게 떠진 그 눈동자과 정말로 칸과 같아서 유헌은 가슴에 퍼지는 사랑스러움
에 묘한 표정을 지었다.
"칸크빌레의 동생이니...........싸우지 않아."
함게 피하라는 말, 그를 자신과 함께 잡고 도망을 치던 칸의 모습.
전부터 느끼던 것이지만, 칸은 아직도 이 사람에 대해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이자를 죽이거나 상처를 입는다면, 내색은 못해도 굉장히 슬퍼하
겠지.
그런 그의 모습 절대로 보고싶지 않다.
만약의 경우- 칸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이용하거나 그를 죽이려 할때를 제
외하곤 저 사내에게 검을 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가만히 이자크를 바라보던 유헌
은 몸을 돌렸다.
하지만,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걸음을 멈춘다.
"이렇게 그냥 가버리면 나중에 후회할꺼다."
"............상관하지 않아."
"내 가진 모든 힘을 가지고 너희들을 상대할수도 있어."
"적룡인 루드빌에 이곳에 있잖은가- 이미 가진 모든 힘과 싸우고 있는게 아닌가.
우리들은-"
"웃기는 군."
예의 서늘한 표정으로 돌아온 이자크가 올려다 보자 유헌은 마지막까지 참고 있었
던 말을 내뱉는다.
"정말로 미워하고 있는 건가 당신은-"
".....................뭐?"
"당신은 나와 같아."
나와 같다.
형을 바라보던 자신과 자신을 돌아봐주지 않은 형.
그래서 자연히 스스로가 망가지는 거다.
이렇게 될터인데도 안봐주는 건가해서 계속해서 자기 자신을 파먹는 행동을 멈추
지 않는거다.
이그러지는 이자크의 얼굴을 바라보며 유헌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대는 칸크빌레를 증오하는게 아니라, 단지 그에게 애증을 표현하는게 아닌가."
"아....! !"
유헌의 말에 울컥한 이자크가 입을 열려는 순간 멀리 라헨의 고함이 울려 퍼진다.
당황한 두사람은 설마하니 칸에게 무슨 일이 생긴건가 싶었지만, 그가 아닌 다른
자에게 얼굴을 들이미는 루드빌의 행동에 유헌은 숨을 들이켰다.
저쪽에서 자신들의 안부가 걱정이 되서 온것인지, 벽에 몸을 지지한체 벽에 기대고
있던 라프헨의 얼굴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적룡의 모습에 사색이 된다.
에스에게 힘을 다하고 쓰러지기 직전이었지만, 라헨의 안부가 걱정되어 카일에게
서 회복제를 얻어 마시고 기다싶이 해서 이곳에 왔는데 저런 적룡의 모습이라니.
힘을 너무 써서 적룡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숨을 들이키며 뒤로 넘어진 라프헨은 반사적으로 두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라프헨! !"
"피하란 말이다! ! 차라리 굴러-!"
당황한 라헨과 칸이 미친듯이 달려 갔지만, 그전에 저 루드빌의 이빨이 라프헨의
몸을 갈갈이 찟어 놓을 것이다. 사색이 된 라헨이 비명을 지르고 검을 집어 던지지
만 루드빌의 얼굴은 멈출 생각을 안한다.
그러나 막 라프헨의 몸에 이를 박으려는 순간 루드빌은 온몸에 느껴지는 위화감에
움직임을 멈췄다.
알수없는 이 소름은 무엇이란 말인가.
"라프헨-!!"
"라헨...!"
너무 놀라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는 라프헨의 몸을 안아든 라헨은 멍하니 코앞에 정
지한 적룡의 얼굴에 이를 갈았다.
움직임을 멈췄다곤 하나 언제 다시 이를 들어내며 덤벼들지 모르기에 라프헨의 몸
을 안고 서둘러 그곳을 벗어난 라헨은 칸이 내미는 손을 잡았다.
라헨을 잡아끈 칸은 저 용이 왜그러나 하는 시선을 보낸다.
원래부터 미친용이니 뭐니하는 말을 많이 듣는 만큼 괴이한 행동을 많이하는 녀석
이지만, 오늘은 특히나 더 하는 것 같다.
도대체 무슨일이 벌어진건가 하는 마음이 드는 한편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걱정되
기에 유헌들이 있는 곳에 시선을 던진 칸은 눈에 들어오는 광경에 미간을 찌뿌렸
다.
"..............유..헌?"
- 루드빌과 만났을때 손바닥에 피를 내고 알려준 주문을 외우면 된다.
- 이게 뭔가 효과가 있는 건가요?
- 알고 있을지 모르겠군. 용의 기사에 맹약이라는 거다.
- .........좋은 건가요?
- 아아, 아주 좋은 거다.
용의 기사에 맹약.
루드빌과 자신의 몸을 내달리는 감각에 융텐이 무엇을 지시한 건지 지금에서야 알
수있을 것 같다.
손바닥을 적시며 바닥에 떨어지는 피의 양에 미간을 찌뿌린 유헌은 굳어진 루드빌
사이로 빠져 나가는 라헨과 라프헨,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칸의 얼굴에 시선을
주며 숨을 들이켰다.
옆에 있는 이자크가 자신의 모습을 보며 뭐라 말하는 것이 들렸지만, 더이상 잡생
각을 하고 있다면 큰일날 판이다.
융텐이 알려준 기묘한 문자를 떠올리며 유헌은 입을 열었다.
= 지금 이곳에 있는 위대한 그대의 이름을 빌려 나 당신과 함께 시간을 공유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어둠이 가로막고 빛이 눈을 멀게 하더라도 난 그대를 떠나
지 않으며 그대또한 날 떠나지 않을 것이니.
이는 주종의 맹세- 그 우위는 정할수 없는 예측인 것이다.
[그만둬라! ! !]
= 한없이 유한한 시간에 노출되어 괴로워 하는 그대의 반신이 되어 함께 생을 나누
려 하니 이를 거부하지 말고 단지 받아들일 지어다.
유헌의 입에서 나오는 언어에 칸의 얼굴이 굳는다.
그것은 라프헨과 라헨, 이자크도 마찬가지 였다.
일방적인 계약의 이행에 루드빌은 몸속이 피가 뛰자 당황하며 노성을 지른다.
미친듯이 유헌에게 달려 들어 내리치려던 루드빌은 온몸을 구속하는 눈에 보이지
않은 사슬에 당황하며 사방을 둘러본다.
멍하니 단지 자신을 바라볼 뿐인 아이들과 인간들의 모습.
자신을 도와줄수 있는 동족은 없는 건가.
이렇게 일방적인 계약을 순순히 받아 들여야 하는 건가-! !
당황해 얼굴을 좌우로 흔드는 용의 모습에 칸은 나직히 중얼거린다.
"용의 기사의 맹세다. ...........유헌은.. 루드빌의 기사가 될 생각인가-"
"말도 안되는..! 그건 몇백년 전에 사라진 것입니다.
지금와서 다시 할수 있을리가..! !"
".......하지만,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군."
지금으로부터 수백년전- 지금보다 많은 용들이 존재하고 있었을 당시 용의 기사라
는 것이 존재하고 있었다.
무한한 삶을 사는 용들의 반신이 되어 그들과 함께 생을 영위하며, 지켜 주었다는
인간들보다 몇배는 더 강한 존재들-
그러나 대륙에 마력이 만연하고 전란의 시대가 도래하자 암묵적인 계약을 맺은 용
들은 인간들에 대해 손을 떼고, 숙면에 들어가기 시작.
그에따라 기사들의 존재는 하나둘씩 사라지게 된다.
잠이 든 용을 지킬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서서히 지워지던 존재가 이제는 아주 찾아볼수 없는 이럴 때, 그리고 인간
과 맺어 지기를 거부하는 용들의 존재에 아주 사라졌다고 하는 그 기사의 맹약이
유헌에 의해 다시금 재현되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하나 용과의 상호 거래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 아닌, 유헌의 일방적인
계약이니 뭔가 묘한 모습이기도 하다.
.......이계의 인간은 저런것도 가능한 건가.
"주문을 외우는 순간 루드빌의 마력을 공유하게 된 거다.
그것을 가지고 그녀를 속박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지."
라헨의 말에 안색을 굳힌 라프헨은 유헌과 적룡을 뚫어질 듯이 바라본다.
[....이....이놈! !]
분노에 두눈을 이글거린 루드빌은 여전히 손을 내밀고 주문을 외우는 유헌을 죽일
듯이 노려본다.
저 인간녀석 처음 볼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간의 몸인 주제에 브레스를 막아 낼때부터 알아 봤어야 했다.
게다가 녀석은 이계에서 온 자. 지금껏 이곳으로 넘어온 녀석들이 얼마나 많은 능
력을 보여 용들을 귀찮게 굴었는가.
인간들과 어울려 잘 살고있는 자신들을 어둡고 서늘한 지하로 내려가게 만든 것도
전부 저들인 것이다. 몸의 마력이 유헌에게 끌려가는 것을 느낀 루드빌을 이를 갈
며 목을 앞으로 내밀었다.
파직-
붉은 정전기가 튀고 유헌에게 접근할수 없었던 용의 목이 점차 그에게 접근한다.
그것도 모르고 계속해서 주문을 외우는 유헌의 모습에 안색을 달리한 칸이 루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리로 달려간다.
"유헌- 위험하니 그만둬-! !"
서서히 벌려지는 루드빌의 입과 엄청나게 뿜어지는 붉은 기운들.
자신의 말을 들리지 않는지 여전히 눈을 감은채인 유헌의 모습에 이를 간 칸은 루
드빌의 뒤로 돌아가 그녀의 등을 찌를 생각이었다.
자신을 앞을 이자크만 아니였다면-
"그만두는게 좋아. 맹약의 진행에 껴든 인간이 무사한 전례가 없다."
".......하지만..! !"
"루드빌의 피를 이은 자가 맹약의 중간에 끼어든다면, 그 영향이 미치지 않으라는
법은 없지."
몸을 밀어 재끼며 지나가려던 칸은 그러나 그의 말에 움직임을 멈춘다.
분하긴 하지만, 이자크의 말이 옳다.
자신들은 저 용의 피를 이어받았으니, 유헌의 일방적인 맹약이 자신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 다고 장담 할수가 없는 것이다.
분한 듯 이를 간 칸은 그러나 루드빌의 얼굴이 유헌에게 접근함에 따라 안색을 창
백하게 굳이며 저도 모르게 한발 앞으로 내딫딘다. 그런 칸의 앞을 손을 뻗어 제지
한 이자크는 입술을 가만히 깨문다.
앞을 가로막는 이자크와 주문을 외는 유헌의 모습을 번갈아 보던 칸은 저도 모르게
한발 뒤로 물러난다.
지금 그가 할수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이대로 중간에 끼어들면 유헌의 주문에 영향을 받을수 있고, 그의 행동을 멈추게
되면 또다시 저 용의 공격을 받게된다. 그렇게 되면 어느쪽이든 승산이 없어진다-
분한 듯 이를 갈며 순순히 뒤로 물러나는 칸의 모습에 이자크는 씁쓸함을 느낀다.
십년동안 지금까지 단 한번도 만난적이 없건만, 마치 어제 만나 헤어진 것 마냥 그
의 모습이 익숙하다.
그런 감정을 칸도 느끼는 얼굴을 들여 이자크의 안색를 살핀다.
".............오랜만이군."
"설마하니 이런 장소에서 그런 말을 할줄은 몰랐어."
"이쪽이야 말로. 네놈은 도대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거냐.
과거 내 행동을 비꼬는 건가?"
"그다지- 좋은 방법은 언제든지 되풀이되는 법이지."
만찬에 참석한 자들에게 돌려진 잔에 독을 넣은 것에 대한 말이다.
그것은 칸크빌레가 막 제위한 시절 왕권을 위혀하던 재상일파를 일시에 헤치웠을
때 사용한 방법이다. 위험 부담이 커 그들의 피해도 컸지만, 어찌 되었던 반대세력
을 일시에 쓸어버린 것이다.
여유로운 이자크의 얼굴을 바라보던 칸은 시선을 돌린다.
전에는 한없이 약해서 주변 사람들의 의견에만 끌려다니던 아이였다.
그래서 그가 검을 들어 왕위에서 끌어 내렸을 때에도, 중앙이 공격을 해와도 그것
은 이자크의 뜻이 아니라 주변인들의 의견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그의 얼굴을
보니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알게된다.
지금까지의 일든은 전부 그의 뜻대로 인가-
너무나 변해버린 이자크의 모습을 차마 볼수가 없다.
"어째서 죽이지 않는 건가."
"............."
"이건 좋은 기회라고, 그동안 귀찮게 굴었던 중앙의 황제를 살해할수 있는 기회란
그리 흔치않은 법이지.
"그런 식으로 말하지마."
빈정거리는 이자크의 모습에 칸은 나직히 이를 갈았다.
뒤에선 라헨과 라프헨이 불안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앞에서 유헌이 일방적인 기사
의 맹약을 맺고 있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이자크와 여유있게 대화를 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를 눈앞에 두고 가만히 있을수가 없다.
서늘한, 마치 과거의 자신같은 눈빛을 지니게 된 이자크의 모습에 묘한 연민을 느
끼게 된다.
칸의 눈동자에서 애처로움을 읽은 이자크의 얼굴이 구겨진다.
"그런 눈으로 날 보는 건가."
"..........이자키엘."
"너무나 나약해 졌군. 믿을수가 없어! 부친을 죽이고 왕좌에 오른 그 칸크빌레가 맞
는가- 내 앞에 서있는 자가! !"
"돌아가신 분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리는게 아니다."
'너의 부친이기도 한 분이다-'라고 말하는 칸의 얼굴을 노려보던 이자크는 이를 갈
았다.
지금와서 그가 자신의 부친이라고 말하는 건가.
아직은 나약했던 한없이 어리기만 자신이 손을 내밀때는 매정하게 뿌리치더니, 시
간이 흘러 이런 상황이 되자 자신을 그의 안으로 받아 들여준다.
과거가 아닌 지금 그런 대우를 받아도 기쁘기는 커녕, 모멸감을 느낄 뿐이다.
이를 간 이자크는 검을 빼들어 칸에게 겨누었다.
아까부터 이쪽을 불안하게 바라보던 라헨이라는 자가 숨을 들이키며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지만, 이내 시선을 돌린 이자크는 칸을 바라 보았다.
저렇게 자신을 바라본 적이 얼마만 인가.
".......10년전 이후로 처음이군."
"무슨 말이지?"
검을 빼든 이자크를 견제하며 천천히 뒤로 물러난 이자크는 눈을 가늘게 뜨며 입술
을 깨물었다.
"당신이 날 똑바로 바라봐 준것이 말야."
그때 이후로 지금이 두번째이다.
십년전 자신으로 인해 억지로 폐황제가 되었을 때, 피투성이인 모습으로 원한 찬
눈빛을 던지던 그때 이후로- 두번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