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화 (52/55)

      [귀국은 중앙의 일방적인 통보에 대해 자세한 해병을 요구하는 바입니다. 

      아무리 위대하고 강대하신 용의 분부이시기는 하나 대륙은 인간들의 땅, 그것을 관

      가한 독주에 장단을 마추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통신기를 통해 뻣어나온 빛에 벽에 동그란 원이 생성되고 그안에 한명의 여성이 움

      직인다. 

      청색의 머리카락을 단정히 묶어 하얀색의 옷을 단정히 입은 그녀의 머리 위엔 금빛

      의 왕관과 매를 상징하는 붉은 보석이 눈부시게 빛을 발하고 있다. 치켜 올라간 눈

      은 그녀의 미모와 맞물려 결코 무시할수 없는 단단함을 느끼게 한다. 

      [이에대한 불만 사항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다시 연락을 주시면 성의 있는 답변을 

      드리도록 하죠]

      한쪽 눈썹을 위로 올리며 입꼬리를 드는 미모의 여성의 모습에 신관은 숨을 죽인

      다. 인간임에도 루드빌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다. 

      그녀가 말을 마치자 마자 구슬의 빛이 사라지고 미모의 그라센 국의 여왕의 얼굴이 

      사라진다.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던 신관들의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답변을 적룡에게 보낼수는 없는 것이다. 

      들려주는 즉시, 자신들은 분명 목이 잘린채 바닥을 구르게 될터이니. 

      하지만, 지금까지 온 답변 중에선 가장 강대국의 것이다. 가만히 두자니 적룡에게 

      올린 보고가 없어질테고, 들려 준다해도 무사한다는 보장이 없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던 신관들인 이내 안색을 

      굳히며 구슬을 들어 하얀 천위에 올려 두었다.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보고를 안하는 것또한 반역이다.  

      "갑시다."

      무겁게 입을 연 신관들은 적룡을 알현하기 위해 걸음을 옮긴다. 

      전에 있던 이자키엘이나 전전대의 황제 칸크빌레가 있을때도 자신들은 숨을 제대

      로 쉬지 못하고 지내왔다. 하지만 지금의 적룡이 있던 때보단 나았다. 

      가느다란 실위에 서서 춤을 추는 듯한 느낌이 이 중앙성에 감도는 것이다. 

      대륙에 퍼져있는 칸크빌레의 생환과 아직 살아있는 이자키엘 황제를 버리고 중앙

      으로 돌아와 새로운 왕은 천거한 적룡. 

      그것에 대해 의견이나 말이 많고, 분위기 또한 차갑게 가라앉는 성에 찾아오는 귀

      족들의 수도 급격히 줄어 중앙성은 마치 죽은 자들의 묘같았다. 

      거대한, 하늘과 맞닿은 묘지말이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신관들의 얼굴을 어둡기 그지 없었다.

      "아무도 없군."

      조용히 내뱉은 루드빌은 걸터앉은 창턱에서 일어나 돔에게로 다가갔다. 

      햇볕을 쬐기 위해서 테라스 쪽에 앉혀 두었지만, 슬슬 안으로 들어오게 해야 할것 

      같았다. 그에게 다가와 돔의 무릎에 앉은 적룡은 감정없이 멍하니 풀린 붉은 눈동

      자를 바라 보았다. 

      한동안 그 눈동자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던 그녀는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나에게서 태어난, 나의 뜻대로 움직이는 착한 아이다. 

      이 아이만은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좋지 않느냐. 종종 이렇게 빛을 쬐러 나오는 것도. 내일중에 너를 위해 파티를 열 

      생각이다. 아직 어리지만, 그에 맞는 짝을 찾아야 겠지. 뭔가 원하는 여성타입이라

      도 있느냐. 그렇다면 대륙 각지를 뒤져 내 앞에 내놓으마."

      돔의 대답을 바라는 것은 아닌 듯 연신 중얼거린 루드빌은 눈을 가늘게 떴다.

      "너와 내가 선택한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아이는 분명, 더 사랑스럽겠지."  

      그렇지 않다면 나와의 사이에서 다시금 아이를 만드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돔의 가슴에 얼굴을 묻는 루드빌의 얼굴을 편안하기 그지없다. 한동안 그렇게 돔의 

      품에 안겨 있던 적룡은 문을 두들이는 소리에 눈을 뜨고 미간을 찌뿌린다. 

      이렇게 좋은 시간을 지니고 있는데, 감히 어떤 놈이 방해를 하는 것인가.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무형의 힘으로 문을 열어재낀 그녀는 문에 채여 뒤로 

      넘어가는 대신에게 서늘한 눈빛을 보낸다.

      "저..적룡이시여-"

      "무슨 일인데 황제와 함께하는 시간을 방해하는 거야."

      이를 갈며 서늘하게 내뱉는 그녀의 모습에 대신을 숨을 삼키며 머리를 더욱 밑으로 

      조아린다. 그녀에게 과연 자신이 알아낸 것을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재상은, 밖에 서있는 시녀들의 눈도 있고 하니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루드빌의 얼굴에 불쾌한 감정이 스친다.

      "허락도 안 했거늘, 감히 네놈따위가 이곳에 발을 디디는 것이냐?"

      "그..그럴리가 없습니다!"

      적룡의 호통에 안색을 달리한 재상은 반쯤 일으킨 몸을 다시 바닥에 엎드렸다. 

      그런 그의 모습은 길바닥에 붙은 개구리를 연상케 하는 것이라서 주변에 서있던 시

      녀들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지만, 자리가 자리이고 인물들도 인문들인 만큼 

      애써 표정을 굳힌다.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진정시킨 재상은 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저렇게 기분이 안 좋을때 찾아오다니 자신의 운도 정말 없다고 느껴진다. 

      "동에 계시던.. 황제께서 중앙국의 변방에 다다르셨다고 합니다."

      "황제? 황제가 언제 중앙성을 벗어나신 적이 있다더냐.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는 

      자가 이 중앙국의 황제이거늘, 감히 누구와 헷갈려?!! 이런, 불충한 인간놈이-!"

      "죄..죄송합니다!!!"

      "도대체가 언제부터 중앙성에 이리도 인재가 없어졌단 말인가."

      칸크빌레 황제가 물러날 때부터 였습니다라는 대답을 반사적으로 할뻔한 재상은 

      자신의 입술을 깨물었다. 

      이놈의 방정 맞은 입 때문에 언제가 반드시 경을 치게 될 것이다. 

      식은땀을 흘리며 벌벌떠는 인간을 바라보던 루드빌을 붉은 입술을 비죽히 내밀며 

      돔을 바라 보았다. 자신의 뜻으로 이 아이를 중앙국의 신왕으로 봉했지만, 그 이자

      키엘이라는 자도 그동안 소중히 대했던 인간이다. 

      그런 그가 한번뿐이지만, 잘못을 했다고 그대로 버리는 것은 너무 매정하지 않을

      까. 자고로 부모란 골치아픈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올바르게 키워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이다. 

      한동안 고민을 하던 루드빌은 조금 자비를 베풀어 보기로 한다. 

      "이자키엘이 이 근방에 나타나면 나에게 말하라. 직접 그를 맞이 하겠다."

      "예?  ..아..예에!"

      "됐으니 너는 그만 가봐라. 모처럼 좋은 기분이 완전 망쳤어-"

      "죄송합니다!! 시..신은 이만 물러 가겠습니다!!"

      바닥에 몇번이나 머리를 조아린 재상은 루드빌이 코웃음을 치고 고개를 돌리자 재

      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적룡의 시야에서 벗어난다. 

      서둘러 달려가느라 자신을 따르는 시녀들이 다급하게 쫒아오는 것이 느껴졌고, 성

      내에서 달려선 안된다는 것을 떠올렸지만, 그의 머릿속엔 온통,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도대체가 재상이 되면 좋다고 한 자가 누구인가. 

      이런 살얼음 판에서 하루종일 서있느니 차라리 집안을 정리하고 변방으로 나가 사

      는 것이 나았다. 자신이 이런 말을 하면 철없는 아내와 자식들은 반대를 하겠지만, 

      가장인 자신이 그렇게 하겠다는 데 감히 누가 말을 어기겠는가. 

      그래, 지금 바로 저택으로 돌아가 짐을 싸도록 하자. 

      좋은 생각에 입가를 미소를 지은 재상은 너무 뛰어 목까지 찬 숨을 고르기 위해 잠

      시 자리에 섰다.

      "....하-아."  

      너무 급하게 달렸더니 어느새 성을 벗어나 정문을 빠져 나가는 계단까지 왔다. 

      이것을 다른 자들에게 말해도 믿지 않을거라는 생각을 하며 조금 안정된 기분에 미

      소를 지으며 난간에 몸을 기대던 그는 멀리 밑에서 올라오는 인물에 눈을 크게 뜬

      다. 

      아직 성인기를 거치지 않은 소년기의 중간인 듯한 소년의 모습에 저런 귀족이 있었

      던가 하는 느낌이 들어 근처의 시녀들에게 묻기 위해 고래를 돌린 그는 그러나 아

      무도 없는 자신의 주변에 미간을 찌뿌렸다. 

      아는 것은 잘생기고, 매력있는 귀족 남자들 뿐인, 그렇다고 일을 잘하는 것도 아닌 

      것들이 왜 이리도 굼뜨단 말인가. 투덜대며 다시 얼굴을 돌린 재상은 어느새 계단

      을 중간에 다다라 자신을 바라보는 소년의 모습에 숨을 들이켰다.

      검은 머리 카락에 눈동자. 

      그리고 아름다운 얼굴과 알수없는 분위기. 

      지금까지 저런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지닌 인간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그렇다는 것은 저 자는 인간이 아닌 용이라는 것이다. 

      루드빌이라는 적룡이 이곳에 있으니 저런 흑룡도 중앙성에 들이는 구나.  

      안색을 달리한 재상은 소년의 입이 열리자 저도 모르게 기대던 난간에서 몸을 뗐

      다.

      "말씀 좀 묻겠습니다."

      "무엇이든지 물으십시오!! !" 

      ".....그렇게 엎드리시면 물어 볼수가 없습니다."

      "그..그렇습니까? 실례 했습니다!!"

      흑룡이라 추정되는 소년의 말에 엎드린 자세에서 일어나 재상을 무릎을 꿇은 채 그

      를 내려다 보았다. 엎드리면 물을수가 없다는 말에 일단 몸을 일으켰는데, 자신보

      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본다고 뭐라고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 

      불안한 듯 눈알을 굴리던 재상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던 소년이 입을 열자 몸을 굳

      힌다.

      "이곳에 루드빌에 어느 곳에 있는지 아십니까?"

      "..역시..."

      "네?"

      역시 적룡과 아는 흑룡이었다-라고 내뱉으려던 재상은 자신을 의아하게 바라보는 

      눈초리에 입을 다물고 서둘러 그녀가 있는 곳을 설명한다. 

      "이곳으로 쭉 올라가시면 가운데에 위치한 커다란 계단이 있습니다. 그리로. 그 가

      운데로 주욱 가시면 왕의 알현실 중간에 들어가는 길목에 거대한 복도가 있는데, 

      그 끝에 있는 황제의 침실에 계십니다."

      "........흐음... 죽 가다 올라가서 오른쪽으로 꺽으면 되는 거군.."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소년의 모습을 힐끗힐끗 바라보던 재상은 눈이 마

      주치자 기겁을 하며 얼굴을 숙인다. 그런 그의 모습이 약간 멎쩍은 느낌이 든 유헌

      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그만 일어나라고 한다. 

      하지만, 여전이 바닥에 붙어 얼굴을 들 생각을 못하는 노인의 모습에 난감한 기분

      이 든다.

      "일어나시는게 어떻까요? 조금 불편한 기분이 드는데 말이죠."

      "불편하십니까? 일어 나겠습니다!! !"

      그냥 한말이었는데 지나치게 과민하게 반응한다. 

      머리카락을 쓰다듬던 그 자세 그대로 굳은 유헌은 어설픈 미소를 지었지만, 그와 

      동시에 사색으로 변하는 노인의 모습에 입을 다문다. 

      그와 동시에 안색을 원래의 것으로 변한 노인이 연신 자신의 눈치를 살피자 옆으로 

      걸음을 옮긴 그는 조심스럽게 계단을 오른다. 

      끝까지 다 오르고 나서 조심스레 눈을 돌렸지만, 아직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던 

      건지 노인과 정면으로 눈이 마주친다.

      ".....저기.. 실례하겠습니다."

      "네! 그러십시오!!"

      다시금 엎드리는 노인의 모습에 자신이 어떻게 할수가 없다는 것을 깨닭은 유헌은 

      머리를 긁적이며 걸음을 옮겼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이전 하늘로 높이 뻗은 성의 탑들과 아래로 깔려 은은하게 

      둘러 쌓여진 구름들의 모습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묘한 표정으로 그것들을 바라보던 유헌은 연신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노인을 피해 

      빠르게 안으로 들어섰다. 

      자박

      전체적으로 투명한 이미지의 성안 하얀 색으로 은은한 분위기를 띄고 있었다. 

      편안한 기분을 불러 일으키는 한편 묘한 위압감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기둥도 크고 천장도 높았으며 중간마다 놓여진 장식품들 하나에 격조가 묻어난다. 

      과연-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중앙성은 훌륭한 곳이었다. 

      이곳을 칸크빌레가 십년동안 통치한 것이다. 

      용과의 감응이나 옅보는 식의 원치 않은 방법으로 중앙성을 몇번 본적은 있었지만, 

      이토록이나 생생한 느낌이 들 정도로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다. 

      탁.

      계단을 오르기 전에 멈춘 유헌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칸을 떠올리곤 쓴 웃

      음을 지었다. 

      자신이 그의 곁이 아닌 이런 중앙성에 와있다는 것을 알아채면 분명, 기겁하겠지.

      ".........."

      아무도 없고 투명한 이미지의 성은 무척이나 쓸쓸해 보인다. 

      그것을 바라보던 유헌은 다시금 걸음을 옮긴다. 이런 곳에서 머물거릴 시간이 없는 

      것이다. 

      빨리 적룡과 결판을 내고 되돌아가 아파하고 있는 칸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살아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칸크빌레와 손을 잡기로 했으니 이렇게 되돌아 온거야. 

      그러니 그런 표정을 하지마."

      "손 치워."

      볼은 만지는 카일의 손을 치워낸 에스는 미간을 찌뿌리며 그를 지나쳐 칸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자신의 어깨에 올려진 손이 강하게 몸을 잡아 벽에 누른다. 

      전처럼 화려하고 질좋은 옷이 아닌 붉은 계열의 금빛이 수놓아진 옷을 입은 카일에

      게선 묘한 박력이 느껴진다. 그런 그의 기세에 눌린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에스는 

      더 고집을 부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에스의 굳은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카일은 눈을 가늘게 휘며 그가 방심할 때를 

      노려 이마에 입을 맞춘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이런 상황이니깐 하는거지. 여유가 있으면 잘도 빠져 나가잖아."

      밉살스런 카일의 말에 에스는 할말을 잃는다. 

      기가 막히다는 듯이 입을 벌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에스에게 미소를 지어보인 카일

      은 그가 들고 있던 물이 든 바구니를 근처의 턱에 올려 둔다. 

      무슨 짓을 하는 거냐라는 듯한 에스의 모습에 말없이 그를 껴안는다.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도대체가 안의 칸님이 상태가 어떤지 알아?!"

      "알고 있으니깐, 금방 끝내고 싶으면 얌전히 있으라고."

      ".......하."

      카일의 말에 몸을 힘은 뺀 에스는 자신의 목에 얼굴을 묻는 행동에 미간을 찌뿌렸

      지만,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쉰다. 한동안 그렇게 카일의 품에 안긴 에

      스는 아직도 내리는 비가 창을 두들이는 것을 바라본다. 

      만약에 그때 카일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다른 사람은 모르더라도 칸은 반드시 탈출을 했을 것이나, 입은 상처를 빠르게 치

      료하지 않는다면 분명 목숨에 위험이 생겼을 것이다. 

      활을 맞고 쓰러진 칸과, 동시에 혼란스러웠던 아군들. 

      그 순간을 노리고 덮친 적들. 

      그런 그들을 물리치고 자신을 데리고 중앙에 들어가기 이전에 거치는 동의 변방으

      로 와 이런 장소를 제공한 것은 전부 카일이다. 그것에 대해선 고맙다고 해야 하지

      만 순순히 입을 열기싫다. 

      그것은 아직 가슴에 담고있는 의혹 때문이리라.

      "무엇 때문에 이렇게나 경계를 띄우는 거지?"

      "..........이자키엘님을 탈출시킨 것은 당신의 짓이지."

      "나외에 그런 것을 할수있는 사람이 있던가."

      "너란 인간은..!!"

      미간을 찌뿌리며 카일의 가슴을 밀어낸 에스는 이를 갈며 그를 노려본다. 

      "도대체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그런 일을 하는 거야. 대륙에 칸님의 얼굴을 뿌리고 

      그가 살아있다고 말을 한 것도 너이지! 

      덕분에 이런 고생을 하는데다 칸님께서 상처를 입었잖아."

      "황제를 빼돌린 것은 사실이지만, 후자쪽은 기억에 없군. 

      그 정도로 날 최악으로 보고 있었다니 조금 쇼크-라는 느낌."

      ".............아닌건가."

      "물론, 칸크빌레의 얼굴을 알렸다면 이렇게 도우러 오지도 않았다."

      그의 말이 옳다. 

      자신의 말이 너무 지나쳤다는 것을 깨달은 에스는 안색을 굳히며 시선을 피한다. 

      입술을 만지작 거리며 미안해 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카일은 다시 얼굴을 내려 

      이마에 입술을 대려 했지만, 당사자가 얼굴를 밀어내는 통에 성공하지 못한다. 

      왜 그러냐는 듯한 불만에 찬 그 얼굴에 에스는 기가 막혔다. 

      이 남자의 머리속엔 오로지 자신에게 입을 대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는 것인가. 

      게다가 칸이 있는 방문 옆에서 누군가 왔다갔다 할지도 모르는 노릇인데 말이다.

      "어째서 이자키엘님을 데리고 간거야. 덕분에 칸님이 엄청 걱정하셨다고-"

      에스의 말에 그의 몸에서 손을 뗀 카일은 입가를 조금 올리며 자조한다.

      "난 말이지, 아직 소년기였을 때부터의 칸크빌레와 이자키엘을 알고 있었어. 

      그리고 십년동안 황제로써의 칸크빌레를 곁에서 도와왔고, 나머지 십년동안은 이

      자크의 수발을 들어 주었다. 그런 나인데- 

      둘중 하나를 골라 섬기라는 것을 강요하는 건가."

      "..........그..그건."

      "불가능하지. 그건- 게다가 인간은 기억에 좀더 남아있고 접촉하던 사람을 더 위하

      는 법이니, 칸크빌레보다 이자키엘을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잖아."

      "....그렇다면 다음 번에도 이런 일을 벌일거라는 거야?"

      "아니. 그런 일은 없겠지."

      없어야 한다. 

      미묘한 말에 안색을 굳히는 에스에게 시선을 던지던 카일은 복도 맞은 편에서 걸어

      오는 노웬의 모습을 확인한다. 잡고있던 에스의 어깨에서 손을 내린 카일은 딱딱한 

      표정을 짓는 노웬을 바라보며 입을 연다. 

      "칸크빌레의 몇몇의 사람을 두고 주요 인물들은 따로 모아 주었으면 하는군."

      "......어째서지?"

      "긴히 할말이 있다. 들어두는 편이 너에게도 칸크발레도 좋아."

      한손을 허리에 올리고 삐딱한 자세로 입을 여는 카일의 모습에 미간을 찌뿌리던 노

      웬은 에스에게 시선을 주다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사람을 모으라고 말하는 한편 칸의 안부를 묻는다.

      "독은 일단 빨아 들이긴 했지만, 계속해서 열이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계십니

      다."

      ".....그 정도라면 조만간 일어날수 있겠군요."

      고개를 끄덕인 노웬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앞으로 한달 안에 중앙국에서 제대로된 신왕을 내세우지 않는다면 그라센가는 중

      앙을 침공할 거다."

      자신의 말에 눈을 크게 뜨는 오브를 무시하며 카일은 다시 입을 열었다.

      "동에 테라크와 그라센 가와의 사이에선 이미 암묵적으로 거래가 끝난 내용이다. 

      그리고 이자키엘 황제에게 당한 분을 풀기위해 뮤트롱가의 왕 또한 이쪽과 연락을 

      하고 있지. 중립국인 남과 여왕의 안식처인 서를 제외, 북은 이쪽과 은밀히 연락을 

      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내가 너희들에게 알려줄 내용이지. 

      자- 들은 소감은 어떤가?"

      ".....소감을 묻는다 해도...그런 어이없는 일을 듣고 무엇을 말하란 거야?"

      "생각하지 않으면 중앙국은 초토화가 된다고, 용이 버티고 있다지만 수십만의 군을 

      대동하는 인간들을 상대로 무사할 것 같아?"

      서늘한 카일의 눈동자에 입을 다문 샤한은 반쯤 일으킨 몸을 뒤로 눕힌다. 

      갑작스럽게 이런 말을 듣는다 해서 당장에 자신들이 무엇을 할수 있을리가 없다. 

      단지 안색을 굳히며 초조한 반응을 보이는 일행들을 바라보던 카일은 자신을 바라

      보는 은빛의 눈동자를 확인하곤 눈을 가늘게 뜬다. 

      머리가 좋은 사내이니 현재 대륙이 돌아가는 상황을 단박에 눈치챈 것이다. 

      "무엇 때문에 갑자기 그런 결단을 내리게 된거지?"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는 자들은 없습니다."  

      궁금함에 입을 연 라헨은 젤의 말에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천년동안 이어진 중앙의 세도는 가히 엄청나죠. 그동안 그 대단한 중앙에 눌려 있

      었던 다른 나라들이 이런 좋은 기회를 순순히 넘어 갈리가 없다는 겁니다."

      "황제가 살아있는 데도 신왕을 세운 적룡에 대한 견제, 나라에 와서 소란을 피운 황

      제에 대한 보복, 과거에 선조들의 원한을 갚으려는 후손들의 복수, 하다못해 인간

      들의 일에 간섭을 하는 용이란 존재의 반발, 천년동안 인간들의 제국이라는 명성을 

      얻은 중앙에 대한 질투- 명분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이 그 명분을 들어내며 공격을 가할수 있는 기회인 겁니다."

      "게다가 십년전에 죽었다는 칸크빌레가 살아있다는 소문에 대한 진상의 파악을 요

      구하는 것이나, 그의 죽음에 대해 허언을 한 중앙에 비난 등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

      노웬. 젤, 그리고 카일에 이어지는 말을 듣는 동안 방안에 있던 자들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 진다. 

      "그동안 눈의 가시였던 중앙을 무너뜨릴수 있는 최고의 기회라는 거군요."   

      "인간들의 지배자로 존재했던 것에 대한 질투와 선망은 실로 두려운 것이지. 

      이번을 빌미로 중앙이 누렸던 것을 자신들이 지니고 싶은 거다."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유헌의 얼굴을 바라보던 융텐은 '그런거지-'라는 

      말을 하며 누워있는 칸의 얼굴을 바라본다. 

      칸의 곁에 있는 것은 유헌으로 결정이 되어 남아있는 대신 융텐의 도움으로 거실에

      서 오가는 일행들의 말을 들을수 있다. 

      생각외로 심각한 상황에 흑룡인 융텐의 얼굴마저 굳는다. 

      인간이란 자신의 권력을 위해선 이리도 머리가 잘 굴러가는 것들인 거다. 

      만약에 정말로 카일이 하는 말대로 되면 대륙에 엄청난 피바람이 일어날 것이다.

      ".....융텐 만약에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루드빌에게 보내 달라고 하면 어쩔래요?"

      "마력만 약간 보낼테니, 알아서 가-라고 말할까."

      "당신다운 대답이네요."

      소리내어 웃어보인 유헌은 침대에 누워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칸을 바라 보았다. 

      이번에 일어나면 그의 머리를 아프게 할 또 다른 일이 생기는 구나 싶었다. 

      안타까운 기분이 들기도 하도 쉬지도 않고 잘도 터지는 사건들이 재미있기도 하다. 

      한동안 그를 바라보던 유헌은 얼굴을 들어 융텐을 바라 보았다.

      "지금 이들이 할수있는 방법이 뭘까하고 생각해 보고, 내가 무엇을 할수 있을까도 

      생각해 봤지만, 나오는 결론은 언제나 하나예요."

      ".........유헌."

      "주제에 무슨 영웅심리냐는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이런 칸을 볼때마다 생각

      하죠. 역시 그 적룡은 사라져야 한다고."

      "그렇게 되면 녀석이 아끼는 이자키엘이라던가 돔이라는 녀석도 무사하진 못해."

      "어떻게든 해볼겁니다."

      수가 없든, 방법이 없든, 최악의 길 밖에 없다고 해도 좋은 방향으로 갈수 있겠끔 

      노력할 것이다. 지금 칸이 일어난다 해도 일행들이 아무리 노력을 한다해도 차라리 

      자신이 하는 것만 못하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이 모든 일들이 자신으로 인해 틀어진 것이라고도 할수있는 것이다. 

      끈은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이 묶은 끈은 자신이- 절룡 루드빌이 맺은 끝은 그녀가 풀어야 한다. 그것이 

      싫다고 이렇듯 도망만 다닌다면 이쪽도 어쩔수 없이 강제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전처럼 윽박을 지르거나 부정적인 말을 한다해도 물러날 것 같지 않은 유헌의 옆 

      얼굴을 바라보던 융텐은 한숨을 쉬었다.

      더 이상 말리는 것도 지쳤고, 이러는게 꼭 그를 위해서만도 아니라면.... 

      어쩔수 없는 건가.

      "이봐-"

      "네?"

      부르는 소리에 얼굴을 돌렸던 유헌은 융텐의 눈동자에 서려있는 복잡한 감정에 묘

      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흑룡은 한숨을 쉬며 '들어둬도 나쁘지 않는 

      거니 잘 기억해라-'라며 입을 연다. 

      "과거 대륙에 용들이 사이로 전해지는 이야기다. 

      일부 인간들이 알고 있기는 했지만, 대다수가 늙은이들이겠지."

      "무슨-?"

      "첫번째 아이는 기초를 잡았고, 두번째 아이는 나라를 세웠고, 세번째 아이는 대륙

      를 강대하게 했다. 그리고 네번째 아이는 역사를 꽃피웠고, 다섯번째 아이는 흐름

      을 바로 잡았다-라는 거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왕족들이 그동안 이룩한 업적들인 건가요?"

      "업적이랄수도 있지만, 조금 틀린 부분도 있지. 

      이건 왕들이 한게 아니라 너같이 이 대륙으로 넘어온 이계인들이 꾸민 일들이니." 

      "........에?"

      놀랐다는 듯이 눈을 치뜨는 유헌을 바라보던 융텐은 앉아있던 상태에서 다리를 꼬

      며 한손을 무릎에 올렸다. 

      다음 말을 재촉하는 유헌을 바라보던 그는 이내 한숨을 쉬며 입을 열수 밖에 없었

      다.  

      "난 네가 여섯번째 아이라고 생각한다."

      "....여섯번째 아이라고요?"

      "일단 이계인들이 그동안 벌인 일들 중 가장 크고 화려하게, 이 대륙에 미친 영향을 

      보고서 그들끼리 지은 말과도 같은 거야. 이제는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었서 나도 

      가물가물 하던 것이었지만, 유헌 널 마나고 나서 불현듯 떠오르 더군.

      그 이상 능력과 현재 대륙의 흐름. 그리고 네가 차지하는 비중, 난 네가 여섯번째 

      아이로 이 대륙에 뭔가를 희생하는 것은 아닐까-하고 걱정했었지."

      "여섯번째의 아이로 희생을 한다는 겁니까? 제가요? 무엇 때문에-?"  

      정말로 당황한 듯이 가슴에 손을 올리고 따지 듯이 묻는 유헌에게 진정 하라는 듯

      이 손을 들어 보인 융텐은 한동안 망설이다 다시금 말을 이었다. 

      "그냥 추측이지만, 만약의 경우라는 것이 있으니깐, 네가 루드빌과 대치한 후  힘에 

      휘둘리거나 완전히 그 힘에 눈을 뜬다면.....아아- 생각하기 싫다. 

      다른 것을 몰라도 이것 하나는 알고 있다고."

      "........."

      "지금까지 그 다섯의 아이들 중 잘된 사람은 없었다. 

      네가 알고 있는 미할라가 어떻게 끝을 맺어 여왕의 기둥이 사라졌는지는 모르겠지

      만, 그녀는 믿던 사람들에게 산채로 그 기둥속에 봉인을 당했다고. 이 대륙은 너희

      들에게 새로운 꿈을 줄수는 있지만,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수는 없어. 

      그것은 용들이 인간으로 분해 꿈을 꾸는 것과 마찬가지인 거라고 난 생각하지."

      어쩌면 용들보다 더 비참할수도 있다. 

      인간과 용이 생각하는 것에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있으니깐. 

      정에 매달려 연연하고 고통을 받는 인간에 비해 용들은 그저 꿈속에 하나의 경험으

      로 생각하고 묻어버리고, 그냥 잊을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용들이 있기는 하

      지만, 그것은 소수의 경우로 대다수가 그와 같이 행동한다. 

      딱딱하게 굳은 유헌의 얼굴을 바라보며 융텐은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좀더 이 꿈을 꾸고 싶다면, 그냥 이대로 있는 것이 좋아. 

      굳이 일을 꾸미고 크게 만들어서 손해를 보는 것은 결국 너인거다."

      흑룡의 말을 가만히 듣던 유헌은 얼굴을 내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칸을 내려다 

      보았다. 아까는 괴로운 듯이 식은땀을 흘리더니 이제는 많이 괜찮아진 건지 안정된 

      숨을 쉬고 있다. 

      만약에 여기서 칸이 일어난다면 그는 카일이 가지고 온 정보를 듣게 될 것이고, 두

      말하지 않고 당장 중앙으로 갈 것이다. 치료를 받았다곤 하나 체력이 상당히 떨어

      진 상태에서 여정을 지속하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일거다. 

      게다가 그것은 그를 따르는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 

      그 적룡을 상대하려면 그들은 자신의 나라였던, 그 나라의 같은 백성이었던 사람들

      과 검을 겨누게 되겠지. 

      칸은 이 일을 수습하기 위해 자신의 백성이었던 사람들일 헤치워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용은 칸이 자신에게 오기까지 기다릴 테지. 

      검에 수많은 인간들의 피를 묻혀 죄책감에 떠는 그가 도착하면 그때서야 여유있게 

      덤빌 것이다. 

      그런, 최악의 성격을 지닌 자이다. 

      "..........그런거 두고 볼수만은 없어요."

      가슴을 묵지하게 누르는 용의 기운, 그녀와 이어진 가느다란 끈. 

      결코 원하지 않은 관계이다. 

      그런 관계를 그 적룡은 수많은 자들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게중에 그것을 원하는 자들도 있겠지만, 그것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일까. 그럼에도 

      그것을 끊지 못하고 질질 끌려가는 자들도 있을거다. 

      그들은 그 용과의 연결을 끊지 않아. 끊을수 없을 거다. 

      원하지 않던, 원하던 수백년을 이어진 고리인 것이다. 

      그리고 그 고리는 자신에게 거대한 힘을 주었을 테지. 

      황제 이자키엘, 요크발, 돔을 떠올리고 그리고 칸을 바라보던 유헌은 조금은 제멋

      대로 되어 보자고 결심한다.

      "난 그녀가 이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너.."

      "그러니,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을 겁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유헌은 허리를 숙여 고른 숨을 내쉬는 칸의 이마에 입술을 댔다. 

      손을 잡고 한동안 그의 이마에 입술을 누르던 유헌은 이내 몸을 일으켜 융텐을 바

      라 보았다. 

      그런 유헌의 얼굴을 바라보는 융텐의 얼굴을 딱딱하게 굳어져 있다.

      "내 마음대로 할거에요. 

      무슨 일이 있든, 무슨 일이 터지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거예요."

      자신이 먼저 나서서 힘들어 하는 일행들의 짐을 덜어주고 싶다. 

      나섬으로써 일이 더 틀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가만히 있을수가 없다. 

      나서고 싶다. 내가 처리하고 싶다. 자신에게 맡겨진 의무인 양 확신에 가까운 고동

      을 들으며 유헌은 흑룡을 내려다 보았다. 

      의자에 앉아있던 융텐은 몸을 뒤로 젖히며 피곤한 듯 한숨을 쉰다. 

      한참을 그러고 있던 그는 천천히 얼굴을 들어 유헌에게 하나의 조건을 제시한다.

      "하나만 약속하면-"

      " ? "

      "살아서 돌아와라. 네가 죽으면 슬퍼할 인간들이 너무 많아."

      ".............아아- 물론이지요."

      융텐의 말에 숨을 들이킨 유헌은 이내 눈을 가늘게 휘었다.

      뭔가 따뜻한 기분이 드는게 왠지 머쓱한 기분이 들게 한다. 

      얼굴을 붉히며 다른 곳을 보는 유헌은 바라보던 융텐은 손을 들어 올린다. 

      "내가 해줄수 일은 여기까지다. 나머지는 알아서 해라."

      "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어떤 일을 거치든 그것은 네 책임이라는 것도 잊지마."

      "물론입니다."

      아까부터 계속해서 미소를 짓는 그 얼굴이 마치 산책을 나가는 자의 그것같아 안타

      까운 마음이 든다. 

      숨을 고른 융텐은 손끝에 모이는 흑기를 의식하며 나직이 내뱉는다.  

      ".......잘 다녀와라."

      입 모양을 길게하며 '네-'라고 말한 듯한 유헌의 음성을 순식간에 사라진 육체와 

      더불어 융텐의 귀에 닿지 않았다. 

      그가 사라진 자리를 가만히 바라보던 융텐은 열려진 창가에 커튼이 휘날리는 것에 

      시선을 주며 들고 있던 손을 내려 자신의 목을 주무른다. 뭔

      가 가슴을 답답하게 누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크게 한숨을 쉰 그는 의자를 뒤로 

      젖히며 온몸의 힘을 뺀다.

      "바보같은 놈아- 네 짝이 위험하게 생겼는데, 아직도 자빠져 있는 거냐."

      중얼거린 그는 그것도 바보같은 느낌이 들어 입을 다문다. 

      가만히 눈을 감고 의식이 없는 칸과, 카일과 모여있는 다른 일행들은 저 유헌이라

      는 인간이 홀로 루드빌을 상대하러 갔다는 것따위 조금도 알지 못할 거다. 

      자신이 말하거나 그들이 묻기 전까진-

      "무사히 돌아와라."

      그의 무사 귀한을 빌며 융텐은 눈을 감았다.

      탁.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것 같다. 

      자신이 서있는 곳을 둘러보던 유헌은 일렬로 늘여진 기둥들과 비추는 빛을 받아 하

      얗게 빛나는 대리석의 바닥을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돌려 아까부터 보던것에 시선

      을 주었다. 

      발챠의 툴가라는 사내의 저택의 지하에서 보았던, 그 초상화들이 일렬로 늘여져 있

      었다. 이미 본 사람들에게 흥미가 없던 유헌은 중간에 걸려져 있는 자의 얼굴을 바

      라 보았다.

      칸크빌레 두르 판 라켈화넬 유헬시스 36세.

      그 옆에 놓여진 칸의 부친인 카르키엘과 다른 편에 놓여진 이자키엘, 그리고 새로 

      걸린 듯한 돔의 초상화를 바라보던 유헌은 왠지 모르게 묘한 느낌이 들었다. 

      칸의 얼굴만을 볼때는 그저 잘생긴 얼굴이구나-싶었는데, 이렇게 줄줄이 연결된 

      것을 보니 조금 웃기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상당히 재미있는 

      구경을 하는구나 싶어 피식하고 웃은 유헌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채 걸음을 옮겼다. 

      걸어감에 따라 점점 루드빌이 기가 강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있는 힘껏 기가 방출되는 것을 막고 있으니- 

      "아-"

      멀리 지나가는 시녀를 발견한 유헌은 길을 묻기위해 다가갔으나, 자신의 처지를 상

      기하곤 빠르게 몸을 숨겼다. 

      입고있는 옷은 아무리 봐도 이곳을 드나들 만한 자들의 것이 아니다. 

      게다가 조용히 루드빌을 찾아가야 하는데 저 시녀가 혹여나 자신의 행태에 놀라 비

      명이라도 지르면 큰일인 것이다. 살짝 얼굴을 내민 유헌은 시녀가 나왔던 곳으로 

      들어가 정면에 나있는 계단을 빠르게 올랐다. 

      이곳에 온 후로 이렇게 빠르게 움직인 것은 처음이라 할 정도로 재빠르게 달린 유

      헌은 멀리 보이는 거대한 황금의 문에 숨을 들이킨다. 대략 4미터는 될듯한 그 문

      은 빼곡히 알수없는 문자가 대칭되어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런데도 결코 조잡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저곳이 왕의 알현실인가..."

      왠지 모를 중압감과 위엄이 느껴지는 그 거대한 문이 알현실이라고 판단한 그는 얼

      굴을 내밀어 오른편을 살펴 보았다. 

      생각대로 중간에 나있는 복도에 고개를 끄덕인 유헌은 근처에 사람이 있나없나를 

      확인한 후에 빠르고 소리없이 그쪽으로 걸어갔다. 

      마치 사람이 살지 않은 것같은 거대한 성에 자신의 발걸음 소리만이 들리는 것은 

      뭔가 묘한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 왠지 모를 작은 두려움마저 느껴지는 분위기에 

      조금 용기를 내며 두 다리에 힘을 주던 유헌은 앞에 보이는 문에 걸음을 멈추었다. 

      전에 보았던 알현실의 문에 비해 절반 정도는 더 작은 문이지만, 만만찮게 화려하

      다. 중간에 성을 구경하느라 길을 헷갈리기는 했지만, 용케 이곳까지 왔다. 

      천천히 걸음을 옮긴 유헌은 문에 손을 올리며 그곳에 귀를 대보았다. 

      안에 루드빌이나 다른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보려던 그는 그러나 뒤에서 들

      려오는 사람들의 발자욱 소리에 안색을 달리하며 문의 손잡이를 돌린다.

      끼-익

      탁

      재빠르게 방안으로 들어와 눈에 보이는 커다란 탁자에 늘어 뜨려진 천을 위로 올리

      고 안으로 들어간 유헌은 두근거리는 심장에 손을 올렸다. 

      이런 각도와 위치라면 조용히만 있으면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방에 누군가 있어 자신의 행동을 보거나 복도에서 다가오던 자들이 수상

      한 낌새를 느끼고 사람을 부르면 큰일이다. 한동안 그러고 있던 유헌은 그러나 안

      에서도 밖에서도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의아함에 바닥에 깔린 천을 조금 올

      려 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열리는 문에 기겁을 한다.

      "황제시여- 안에 계십니까."

      ".......저곳에 계시는 군."

      의례적으로 문을 두들여 보았지만,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자 그냥 문을 연 신관

      들은 앞에 열려진 커다란 창 사이에 놓여진 의자로 다가간다. 

      적룡의 천거로 황제에 오른 저 돔이라는 소년이 실제적으로 루드빌의 꼭두각시라

      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런 행동을 할수 있는 것이다. 적룡이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을 

      보았으니, 저 의사가 없는 인형에게 대충 보고를 하고 돌아가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 이 일에 대해 따지는 적룡에게 대신 얼버부릴수가 있는 것이

      다. 

      테라크의 왕비의 전언을 전하는 것을 피할수 있게 되었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신관은 들고있던 통신구를 바닥에 떨어 뜨리는 행동을 하고야 만다.

      "..이런!"

      "통신구가!!"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대신관의 뒤를 따르던 어린 소년신관은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않으며 바닥을 굴러

      가는 구슬을 잡기위해 손을 뻗는다. 그 전에 테이블 밑의 천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구슬에 당황한 신관은 반사적으로 내려진 천을 들어 위로 치켜든다. 

      안으로 들어간 구슬을 찾기위해 한 행동이었건만, 그 속에 들어나는 것이 구슬이 

      아닌 검은 머리카락을 지닌 인간이라는 것에 소년신관은 놀라 순간이나마 심장이 

      멈추는 느낌을 맛봤다.

      "....아..안녕하세요?"

      "............"

      경직된 소년에게 손을 흔든 유헌은 그러나 자신을 향해 손가락 질을 하며 누구냐고 

      목청을 높이는 노인들의 모습에 입술을 깨문다.

      "제길-"

      "병사- 밖에 병사는 없는 것인가?!! 황제의 처소에 괴한이 침입했다!!"  

      큰일났다-라고 반사적으로 생각한 유헌은 안으로 들어와 집어 들었던 붉은 구슬을 

      꽥꽥 소리를 지르는 노인들에게 집어 던졌다. 

      통신구가 자신들에게 날라오자 황망해 하며 손을 뻗은 대신관은 그러나 엄청난 속

      도와 힘으로 날라오는 붉은 구슬에 이마를 맞고 바닥에 쓰러진다.

      "대신관님!! 병사는 어디에 있나?! ! 

      황제를 시해하려 들어온 괴한에 대신관님께 해를 가했다!!"

      "고의가 아니라고..! !"

      너무나 갑작스럽게 진행된 일에 정말로 당황한 유헌은 그러나 멀리 밖에서 들려오

      는 발소리에 안색을 굳혔다. 복도가 텅텅비어 있어 안심하고 있었는데, 이런 작은 

      소동에도 저렇게 빨리 오는 것이다. 

      과연 중앙국이라는 건가- 표정을 딱딱하게 굳힌 그는 아까 방으로 들어온 신관들

      의 대화로 이 방에 돔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고개를 돌려 그의 모습을 찾던 유헌은 오른편 커다랗게 뚫려있는 창가에 있는 의자

      에 눈을 크게 뜨며 그리로 달려 들었다.

      "저-런, 황제폐하!!"

      "..찾았다."

      역시나 의자에 앉아 멍한 표정을 짓고있는 돔의 모습에 입술을 깨문 유헌은 그의 

      몸을 안아 들고 그대로 난간에서 뛰어 내렸다. 자신의 돌발행동에 뒤에 있던 신관

      들이 요란하게 비명을 올리는 것이 들렸지만, 그것에 미적거릴 자신이 아닌다. 

      이층에 위치한 곳이지만, 층마다 워낙 높이가 높아 마치 3층에서 뛰어 내린듯한 느

      낌이 든다. 돔을 어깨에 맨 상태로 점점 다가온 풀바닥에 눈을 질끈 감은 유헌은 다

      리에 지면이 닿는 느낌이 드는 동시에 무릎을 굽히고 몸을 굴렸다. 

      덕분에 돔이 근처 바닥으로 널부러 졌지만, 다리는 부러지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저리잖아.. 아프다."

      "저기-!! 아래다!! ! 저런 무례한 놈이 황제폐하를 바닥에 내팽게 치다니!!"

      ".........젠장."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요란한 병장기가 부딫히는 소리에 얼굴을 든 유헌은 당장

      에라도 뛰어 내릴 듯한 자세를 취하는 병사들이 모습에 이를 악물며 돔의 몸을 들

      어 어깨에 집어진다. 

      아까는 너무 급해서 미쳐 몰랐는데, 무게가 상당하다- 반사적으로 무릎이 꺽일뻔

      한 유헌은 간신히 자세를 바로 잡으며 숲으로 뛰어 들어간다. 

      어찌어찌 돔을 찾는데는 성공을 했지만, 녀석의 상태는 정상적이 아닌 것 같다. 

      게다가 이 요란을 벌였으니 적룡이 눈치채지 못할리가 없다. 

      불안하게 울리는 두근거림에 이를 악문 유헌은 정신을 집중하며 이 곳에서 게중 가

      장 맑은 기가 나오는 곳으로 달려갔다. 

      맑은 기가 느껴지는 곳이란 분명, 신전일 것이다. 

      용이 신전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말을 들어보진 않았지만, 이런 곳에서 무턱대고 싸

      우는 것보다 그런 장소에서 붙는 것이 더 유리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파삭! !

      저벅

      눈을 가리는 나무가지를 치워낸 유헌은 얼굴을 타고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멀리 보

      이는 하얀 건물에 숨을 헐떡인다. 

      돔을 들고있어 안 그래도 걸음이 느린데 신전은 저리도 멀리있다. 

      한숨을 쉰 그는 뒤에서 좇아오는 병사들의 소리에 탄식의 한숨을 내쉬며 후들거리

      는 두 다리에 힘을 주었다. 몸이 지쳐가니 괜히 배짱을 부린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직 루드빌이 나타나지 않았으니 조금의 가능성이 있는 건가. 

      우선 돔을 저 신전안에 밀어넣고 나서 그녀를 상대해야 할지도 모른다. 

      탁탁탁

      자꾸 미끌어지는 돔을 바로 안은 유헌은 자신이 아무리 용을 서도 돔을 데리고 저 

      신전에 갈수 없음을 깨닭고 근처에 있는 커다란 나무뒤로 몸을 숨겼다. 

      그와 동시에 수풀을 헤치고 나온 병사들이 돔과 함께 숨어있는 나무를 지나쳐 달려

      간다. 사극을 볼때, 이런 상황의 주인공들을 보면, 저렇게 엉성하게 숨은 것을 왜 

      못찾는거냐고 비웃었던 기억이 있었는데, 이런 상황이 되다보니 제발 알아차리지 

      못했으면 한다. 

      나무에 등을 기댄 돔을 안고 몸을 숙인 유헌은 지나가는 자들의 수를 헤아려 본다. 

      적어도 20은 될것 같다. 

      아무리 능력자라지만, 저런 숫자를 혼자서 상대하는 것은 무리다.

      어떻게 한다.

      "......돔?"

      혹여나 그가 도움이 될까하고 돔의 얼굴을 두들인 유헌은 그러나 감정이 없는 듯 

      멍하니 뜨여진 붉은 눈동자에 숨을 죽인다. 

      마치 영혼이 사라진 듯한 인형같은 모습이다. 

      이것도 그 적룡의 짓이라고 생각하니 분함이 치밀어 오른다. 

      이런 상태의 그를 데리고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다고 판단한 유헌은 돔을 다시 어

      깨에 메고 몸을 숙였다. 그를 안전하게 숨길데가 없을까하고 살펴보던 유헌은 나무 

      바로 옆에 있는 커다란 덩굴밑에 돔의 몸을 밀어 넣었다. 

      당장은 들키지 않겠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의 모습을 찾을수 있을 것이다. 

      근처의 나무잎들을 모아 돔의 몸에 뿌린 유헌은 자신을 지나쳐 갔던 병사들이 이쪽

      은 아니것 같으니 다른 곳을 살피자는 말을 듣고 재빠르게 나무위로 올라갔다.

      파삭

      작은 나무가지를 건드려 소리가 났지만, 작은 소리여서 그런지 눈치챈 자들이 없

      다. 바쁘게 왔다갔다하는 병사들의 모습을 살피며 다른 나무로 뛰어든 유헌은 다시 

      바닥으로 내려가 있는 힘껏 바닥을 치며 달리기 시작한다. 

      "?!! 저쪽이다!! 빨리 잡아!!"

      "황제폐하는 어디로 숨긴 거냐?!! 근처를 더 뒤져봐라!!"

      달리면 자신만은 좇을 줄 알았는데, 돔이 없는 것을 알아채곤 꽤 예리한 명령을 내

      린다. 

      혀를 찬 유헌은 자신을 쫒아오는 병사들을 피해 지그재그로 달리기 시작했다. 

      근처 어딘가 몸을 숨길때가 없을까 하고 둘러보던 유헌은 멀리 보이는 신전을 발견

      하곤 그리고 걸음을 옮긴다. 

      현실세게에 있을때, 신전엔 일반인들이 출입을 금한다고 들었다. 

      부정이 탄다던가, 신분이 높은 자들만이 이용할수 있다는 곳이 신전이라는 설명에 

      당시엔 이상한 곳이군-라고만 생각했지만, 이런 상황에선 상당한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신전으로 갈 셈인가- 잡아라!! 당장에 잡으란 말이다!!"

      중간에 합류한 기사단은 신전으로 달려가는 유헌의 행동에 이를 갈며 병사들을 재

      촉하지만, 그들이라고 해서 저만큼 달려가는 유헌을 잡을 방법이 있을리가 없다. 

      단지 죽을 힘을 다해 달릴뿐인 그들은 뒤에서 말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오자 그제

      서 안도의 숨을 내쉰다. 

      기사들이 말을 꺼내온 것이다. 

      "신전으로 들어가기 전에 저자를 잡아라-! 

      황제폐하의 안부를 물어야 하니 죽이진 말아라!!"

      "감히 중앙성에 침입을 하다니..!"

      임시 부단장인 사내는 벌서 신전의 영영 안으로 들어선 자의 모습에 혀를 찼다. 

      이런 일은 처음있는 지라 적룡이 기사들을 물릴때에도 적극적으로 반대를 하지 않

      았건만, 저런 자가 침입을 해 황제를 납치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결코 자신이 맡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를 간 그는 말의 배를 차며 있는 힘껏 내달리기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팔에 덧대어진 활을 날려 보지만,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는 괴한의 등

      엔 맞지 않고 번번히 빗나갈 뿐이다.

      "칫! 신전안으로 들어서면 눈앞에서 놓치는 꼴이 아닌가-!"

      이를 갈며 외치는 기사들의 음성에 유헌은 속으로 잘 됐다를 연발한다. 

      역시 자신의 생각대로 신전내엔 무기를 든 자들은 들어설수 없다는 거다. 그렇다면 

      일단 저 안에 들어서 상황을 봐서 행동하는게 제일 좋을 것 같았다. 

      이를 악물며 달려가던 유헌은 그러나 뒤에서 다시 들려오는 사내들의 음성에 안색

      을 굳힌다.

      "이런 시급한 때에 신전의 규율을 치지고 앉아있을 순 없다. 누가 뭐래도 황제폐하

      의 안위가 우선- 주춤하지 말고 신전안으로 들어가 저 괘씸한 놈을 잡아라-!"

      "이런- 신전 안으로 들어오다니.. 그거 신 모독죄는 아닌건가?"

      이크하며 옆으로 날라온 활을 피한 유헌은 중얼거렸지만, 그런식으로 따지면 그는 

      할말이 없다. 루드빌을 끌여 들어 싸움터로 이용할 생각이었으니- 혀를 차며 계속

      해서 달려가던 그는 점점 숨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멈출수가 없었다. 

      눈으로 흘러 들어간 땀을 뿌리며 헐떡이던 유헌은 정면에서 자신을 향해 날라오는 

      날카로운 예기에 안색을 굳히고 몸을 숙였다. 

      덕분에 중심을 잡지 못한 그는 달려오던 속도탓에 흙 바닥을 몇번이나 구르는 신세

      가 되었다.

      "윽?! !"

      "잡았다!! 목숨을 살려두면 돼니, 알아서 잡아라!!!"

      크게 외친 기사는 바닥에 쓰러져 몸을 갸누지 못하는 유헌은 향해 창을 내리 찍었

      다. 그와 동시에 몸을 피해 날카로운 창을 피해냈지만, 식은땀이 나는 상황이지 않

      을수 없다. 

      조금만 피하는 것이 늦었고, 늦장을 부렸다면 이 창에 꾀이는 것은 흙이 아닌 자신

      의 몸이 었을 거다. 창을 피해낸 유헌의 행동에 안색을 굳힌 기사는 말의 다리를 들

      어 그대로 밟아버리려 한다. 

      그러나 창을 피하며 몸을 뒤로 일으킨 유헌 덕에 그 의도가 무산된다.

      "이런 빌어먹을 놈이..!"

      "의외로 입이 더럽군, 명색이 기사이면서 말야."

      중얼거린 유헌은 말의 고삐를 잡아 당기며 자신에게 달려드는 사내의 모습에 혀를 

      차며 땅의 흙을 발로 차낸다. 눈에 흙에 들어간 말이 주춤한 사이 그 속으로 파고든 

      유헌은 말의 다리를 세게 걷어차 넘어 뜨린다. 

      덕분에 뒤에 따르던 몇개의 말과 기사들이 한번에 바닥을 구르는 진풍경이 벌어졌

      다. 그 모습에 당황한 것은 기사나 병사들로, 말을 타는 기사들이 저런 꼴불견인 모

      습을 보였다는 것에 얼굴을 굳히며 다시 달려가는 유헌은 좇으라고 명령한다. 

      그와 동시에 앞으로 튀어 튀가나던 기사들과 병사들은 앞서 달려가던 괴한의 앞으

      로 나타난 여성의 모습에 숨을 죽이고 걸음을 멈출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유헌도 마찬가지로 이 소란을 눈치챈 건지 모습을 들어낸 루드빌에게 묘한 

      표정을 짓는다. 

      "........적룡.."

      분명 상대하러 온 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게 되니 뭔가 묘한 기분이 든다. 

      이것이 용의 기사에 맹약에 대한 폐해인가-하고 생각하던 그는 살벌하게 이그러지

      는 그녀의 모습에 표정을 굳힌다.

      "이런 버러지 같은 인간이 이 곳이 어디라고 오는 건가-" 

      엄청나게 감정이 실린 음성이다. 

      그 말투에 감정이 상한 유헌은 입을 열려다 이내 냉정을 찾기로 한다. 

      저런 여자에게 발끈해 넘어가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게다가 저렇듯 증오를 

      보이지만, 루드빌이 자신에게 해를 가할수 없다는 것을 안다. 

      자신이 죽으면 그녀가, 그녀가 죽으면 자신이 죽는 다는 것을 누구보다 강하게 알

      고 있고, 느끼고 있다.

      "어차피 같은 배를 탄 사인데 밀어내지 않은 편이 좋지 않은가-"

      "말은 번지르르 하게 하는군. 난 말이지, 네놈의 그런점이...." 

      '아주 싫다-'라는 음성이 귀에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서늘해지는 감각에 반사적으로 손을 든 유헌은 가슴으로 다가온 루드

      빌의 공격을 맞았다. 그녀와 무릎과 팔이 닿는 순간 저릿한 통증이 내달렸지만, 참

      아낸 그는 있는 힘껏 주먹을 휘둘렀지만, 용을 피해 저만치 물러난다. 

      저번 뮤트롱에서 이자크에게 당한것과 같은 공격법이었다. 

      그에게서 가슴뼈가 부러지는 대가를 내고 학습을 당하지 않았다면 이번 공격에 맥

      없이 당했을 것이다.  

      "과연............비겁하군."

      중얼거린 말을 들었는지 대번에 안색이 변한 루드빌이 옆구리에 채여져 있던 검을 

      힘껏 집어 던진다. 

      몸을 앞으로 숙여 피하긴 했지만, 엄청난 살기가 묻어있는 일격이었다. 

      안색이 변한 유헌은 자신을 바라보며 씨근덕 거리는 적룡의 손짓에 자신으 둘러싸

      는 기사들의 모습에 이를 악물며 몸을 움츠린다. 

      그 모습에 루드빌이 악의적인 미소를 보낸다.

      "죽이지는 말아라- 단, 다리나 팔정도는 끊어도 좋아."

      ".......!"

      "팔, 다리가 없다고 죽는 것은 아니지."

      끝까지 저렇게 나오겠다는 건가. 

      음울하게 눈을 빛낸 유헌은 이쪽으로 검을 휘두르는 말의 탄 기사의 검을 피하며 

      몸을 앞으로 숙였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수의 병사들과 기사들이 유헌에게 달려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