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화 (53/55)

      "왠지 모르지만, 성안이 시끄러운 것 같군."

      "그래봤자 안의 기사들이 알아서 처리할텐데 뭘 그래. 

      우리들은 경비만 잘 서면 된다고."

      "그런 그렇지..........그나저나 요새들이 사람들 참 안 오는 군."

      전에는 황제게에 아부를 하러 성의 문턱이 닳아질 정도로 오던 귀족들도 코빼기가 

      안 보인다. 현제 중앙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왜 이러는지 모르는 것은 아니기에 

      병사들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자세를 바로한다. 

      그렇게 한동안 잡담을 나누던 그들은 멀리 이쪽으로 향한 한 무리의 군단에 안색을 

      굳힌다.

      "저놈들은 왠 녀석들이지? 감히 중앙성을 향해 무리를 이끌고 오다니..!!" 

      위협을 느낀 병사가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가려는 옷자락을 자은 다른 병사는 왜 

      그러느 냐는 듯한 동료의 표정에 손가락을 들어 보인다. 

      적어도 백은 넘을 것 같은 자들의 맨 앞을 가르킨 그는 확인차 묻는다. 

      "저 앞줄에 계신 분.........이자키엘 황제가 아니신가?"

      "에? 그럴리가- ...........정말이잖아."

      "........문을 열자."

      "에?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안에는 돔이라는 황제폐하가-!"

      용이 천거한 황제가 있는데 전 황제를 받아 들이다니. 

      당황한 동료를 바라본 사내는 이를 갈며 나직히 말한다.

      "그런 도마뱀이 정한 황제따위 진심으로 모실리가 없잖은가- 

      당장에 문을 열고 황제폐하를 모시자고!!"

      "........어쩔수 없군...."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인 그는 근처에 놓아진 하얀 깃발을 들어 흔든다. 

      그것을 확인한 밑의 병사들이 서둘러 문을 올린 장치를 해제시키고, 커다란 굴레를 

      돌린다. 

      쿠구궁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리는 중앙성의 입구에 이자크는 묘한 표정을 짓는다. 

      적룡의 손안에 들어가서 자신의 모습이 나타나자 마자 공격을 할거라고 생각했는

      데 아니였던가. 말을 멈추고 한동안 내려지는 다리를 바라보던 이자크는 표정을 굳

      히며 천천히 말을 몬다. 

      그의 입성을 바라보기 위해 몸을 앞으로 빼든 사내는 이자크가 얼굴을 들어 약간의 

      미소를 지어 보이자 얼굴을 붉히며 몸을 뒤로 뺀다. 왠지 모르게 묘한 느낌이 드는

      게, 용에게 지지말고 열심히 하십시오-!라는 말이 나올 뻔 했다. 

      하지만 이미 연호가 사라진 황제대신 신왕이 등극한 중앙에서 이자키엘 황제를 운

      운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 었기에 단지 주먹을 쥐며 힘내라고 빌수 밖에 없

      었다.  

      "상당히 소란스럽군."

      "그렇습니다. ..........검명이 들리는 것도 같군요."

      사이키의 말에 묘한 표정을 지은 이자크는 말에서 내려 기사가 건낸 망토를 걸친

      다. 한동안 그렇게 서있던 이자크는 몇명의 기사들을 대동하고 소음이 들려오는 쪽

      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제위한지 십여년동안 침묵으로 감싸였던 중앙성이기에 작은 소음이라도 자세히 들

      리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때문에 이리도 씨끄러운 건가-하고 걸음을 옮기던 그

      가 소음이 신전쪽에서 들려옴을 확인하고 좀 더 걸음을 빨리한다. 

      말없이 빠른 걸음을 옮기는 이자크의 뒤를 따르던 사이키는 신전쪽으로 나있는 중

      간 숲에서 대화소리가 들려오자 안색으로 굳히며 기사들에게 손짓을 한다. 

      그와 동시에 걸음을 멈춘 기사들은 이자크의 주변을 둘러싸며 숲쪽을 바라본다.

      "조심히 옮겨라- 옥체에 조금의 상처라도 있으시면 우리들은 죽을 목숨이라고-"

      "잘도 저런 곳에 두었군. 어디 긁히신 부분은 없으긴건가?"

      "....그나저나 정말로 무감한 표정이군."

      '기분나빠-'라고 중얼거리던 병사는 돔을 들고있던 기사가 노려보다 안색을 달리

      하며 시선을 돌린다. 

      그런 병사를 한동안 바라보던 기사는 등에 엎힌 돔의 몸을 고쳐 들며 열심히 걸음

      을 놀린다. 신전으로 달려간 괴한을 좇던 자들과 황제를 찾는 무리로 나뉜 자신들

      은 어렵지 않게 신왕을 찾을수가 있었다. 

      동굴식으로 얽혀있던 덩불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황제를 발견하고 안도의숨을 내쉰 

      그들은 돔을 엎고 서둘로 성으로 들어가려 걸음을 옮겼다. 저쪽에 있던 괴한이 언

      제 이곳에 나타날지 모르고, 그 동료가 있을수도 있는 것이다. 

      이번엔 그 적룡이 무슨 말을 하든지 자리를 이탈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던 기사는 

      등에 느껴지는 무게에 묘한 느낌이 드는 것을 느낀다. 

      적룡의 제멋대로의 행동에 반발하여 신왕을 지킨다고 생각하지만, 정말로 그를 인

      정하는 것은 아니다. 

      전 황제인 이자키엘 황제가 아직 동에 살아 계시다는 것과 칸크빌레 폐황제가 살아

      있다는 정보를 얻은 마당에 신왕을 인정하다니 가당키나 하는 소린가. 

      "정말로 제멋대로 군...." 

      "에? 무슨 소립니까?"

      "아무것도 아니다."

      기사는 단지 왕을 따를 뿐인가. 

      하지만 인간은 이상 마음을 결정할 권리 정도는 있어야 하는게 아닐까 싶다.

      중앙국의 폐왕으로 불리웠던 칸크빌레를 제치고 선택한 이자키엘 황제다. 

      그런 분을 모시기 위해 이런곳에 남아있는 거였다. 자신은 아무리 위대하다지만 인

      간이 아닌 용이라는 존재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인형은 아닌 것인다. 

      이를 갈며 앞을 가리우는 풀을 걷고 길가로 나온 기사는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

      했던 곳에 일단의 무리가 있자 안색을 달리한다. 

      그것은 다른 자들도 마찬가지로 검을 뽑아들고 신왕을 업고 서있는 기사의 주변을 

      둘러 싼다.

      "도대체 어디서..................................에?"

      검은 망토를 걸치고 있어서 몰랐다. 

      대여섯명의 검은 망토를 걸치고 있는 자들의 얼굴이 익숙하다는 것과 망토 밑에 숨

      겨진 익숙한 복장에 안색을 달리한 기사는 그들이 둘러싸고 있는 인물을 발견하고 

      눈을 치켜뜬다.

      "..황제폐하!!"

      자신을 바라보며 경악의 신음을 내뱉는 기사를 바라보던 이자크는 그의 뒤에 엎혀

      진 돔에 시선을 준다. 

      어깨에 기대어진 그 얼굴을 눈을 뜨고 있었지만, 동공이 풀려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이자크는 손을 들어 기사를 향해 내민다.

      "돔을 이리로-"

      "........에?"

      "이리로- 나에게 넘겨라."

      황제의 말에 주춤한 기사들은 서로의 눈치를 본다. 

      과연 이자크의 말대로 신왕을 넘겨야 하는 것일까. 

      넘겼다가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한다면? 

      돔이라는 자는 루드빌에 의해 신왕으로 책봉되었으니 결과적으로 이자키엘의 자리

      를 빼앗은게 되고, 이자키엘 황제가 몰아 낸 칸크빌레 폐황제의 아들이다. 

      이 자를 과연, 넘겨도 좋은 건가. 

      불안한 눈초리에 입가를 올린 이자크는 서늘하게 내뱉는다. 

      "해칠 것 같은가? 아무리 나라도 아들을 죽이진 않는다." 

      "...........네?"

      "폐하-!"

      이자크의 갑작스런 말에 놀란 사이키는 반사적으로 그의 얼굴에 시선을 준다. 

      그런 사이키의 시선을 무시한 이자크는 여전히 손을 내밀고 돔을 넘기라는 자세를 

      취해보인다. 

      그런 그의 모습에 머뭇거리던 기사는 안고 있던 신왕을 그에게 넘기는 것이다. 

      "무슨 일이지? 소란스럽군."

      돔의 몸을 안아든 이자크는 멀리 신전쪽이 있는 곳을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연다. 

      그런 그의 행동에 정신을 놓고있던 기사는 당황을 하며 성에 괴한이 침입해 난동을 

      부렸다고 대답했다. 

      그 말에 미간을 찌뿌린 이자크는 자신을 바라보는 사이키에게 고개를 돌린다.

      "성안에 돌아가겠다. 가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봐라."

      "하나, 혼자서 다니시는 것은 위험....."

      "내집에 내가 다닌다는 데 무슨 위험이란 말인가."

      날카로은 금빛의 눈동자에 사이키는 입을 다물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다른 기사들로 마찬가지로, 루드빌이 있으니, 혼자서 있는 것은 위험하다는 

      말을 하려던 자들은 입을 다물며 고개를 숙일 뿐이다. 

      그런 자들을 바라보던 이자크는 미간을 찌뿌린다.

      "언제부터 중앙국의 황제가 이렇게 납치를 당하는 상황까지 되었단 말이냐."

      "그..그건.. 적룡께서 호위는 필요없으시다 하여-"

      "기사가 보호할 것은 황제가 아닌가, 그런 것을 그녀의 명을 받고 자리에서 이탈한 

      건가?"

      지레 짐작한 것이지만, 자신의 말에 안색을 굳히며 얼굴을 돌리는 자들의 모습에 

      쓴웃음이 나온다. 

      성안에 울리는 검의 소리, 요란한 분위기. 거기다 숲에서 기사의 등에 업혀온 돔의 

      모습에서 대충 추측한 것인데 용케 들어 맞았다. 

      품에 안겨있는 돔의 눈동자가 풀어진 것을 확인한 이자크는 눈살을 찌뿌린다. 

      적룡에게 이지를 빼앗겨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태다. 

      돔이 이런 상태라서 손쉽기는 하나 이 성에 진입해 황제를 납치하다니 괴한은 의외

      로 거물일지도 모른다. 

      "괴한의 생김새는 어떻지?"

      "아, 예. 특이한 자였습니다. 

      멀리서 보았을때 검은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었던것 같습니다."

      "........검은 머리카락?"

      "예, ......뭔가 이상한 점이라도?"

      표정이 변하는 얼굴에 기사가 미심쩍은 표정을 짓는다. 

      서둘러 고래를 저으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 이자크는 그대로 몸을 돌려 성으로 

      들어간다. 정말로 성에 들어갈 듯한 그 모습에 안색을 달리한 사이키는 데리고 온 

      몇몇의 기사들을 대동하고 그의 뒤를 따른다. 

      갑작스런 이동에 당황한 나머지 기사들과 병사들은 머뭇거리다 이자크의 뒤를 따

      른다. 

      자신의 뒤를 졸졸 따르는 자들의 모습에 이자크는 미간을 찌뿌린다.

      "왜 따라오는 거지. 난 분면 저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 보라고 했을 텐데-"

      "그 정도는 두, 세명이면 됩니다. 나머지 자들은 뒤를 따르게 해주십시오."

      사이키의 얼굴을 바라보던 이자크는 어쩔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걸

      음을 옮긴다. 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사이키는 뒤를 따르는 기사를 신전쪽으로 보내

      고 다시 황제에게 다가간다. 

      언제 어디서 적룡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동안 그녀가 황제에게 보여준 모습을 보았을때, 그리 쉽게 해를 가할거라고 생각

      하진 않으나 인간과 다른 자들이니 자신의 관점으로 생각하는 것은 금물이다. 

      일단 중앙성에 진입을 하게 되었지만, 저 루드빌이 나타나 이자크에게 해를 가할지

      도 모르는 일. 그런때를 대비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잔뜩 기합에 들어간 사이키에 대해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돔을 안고 걸음을 옮기

      던 이자크는 성내로 들어서는 계단을 오르며 머리속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정말로 그들의 말대로 중앙은 루드빌에 의해 돔에게 넘어간 상태였다. 

      루드빌에 정말로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 용은 원래부터 자신이 소유한 것을 버린 다는 것에 대한 개념자체가 없다. 

      끝없는 욕심, 손에 들어온 것은 마지막까지 지녀야 하는 지독한 소유욕. 

      그 루드빌이 자신이 아닌 돔을 황제로 세운것은 좀더 말을 잘듣는 아이를 원했기 

      때문이겠지. 이런 일을 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단신의 몸으로 이곳에 온 유헌이라는 소년의 존재다. 

      대륙에 흑용을 제외한 검은 머리카락을 지닌 인간은 없다. 

      보나마나 그 유헌이라는 소년이 같잖은 영웅심리만으로 이곳에 온 것일거다. 

      다른 무리들과 함께가 아닌 단신으로-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하지만 가만히 둘수는 없지.."

      작게 중얼거리는 이자크의 말에 곁에 따라온 사이키의 묘한 표정을 짓는다. 

      그의 상태를 살피지 않은채 계단을 오른 이자크는 이내 걸음을 돌려 다른 방향을 

      향해 걸어간다. 

      유헌은 분명 루드빌과 결말을 내려 이곳에 온 것일꺼다. 

      자신은 그의 행동을 단지 바라보고만 있을 뿐인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거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이자크는 자신의 품에 얌전히 안겨있는 아이를 내려다 보았

      다.

      ...........결국, 할수밖에 없는 건가.

      "폐하- 어디를 가십니까?"

      "여기까지- 더 이상 따라오지 마라."

      ".......폐하?"

      "가서 요크발을 지키라, 만약의 상황이 벌어질 경우-" 

      몸을 돌린 이자크는 숨을 삼키며 뒷말을 내뱉었다.

      "중앙의 황제는 그이다."

      갑자기 등에 통증이 느껴졌을 때는 정말로 놀랐다. 

      눈을 크게 뜨는 유헌이라던가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들, 그리고 바닥에 점점 

      가까워 지고 의식이 멀어지자 정말로 죽는건가-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아직 자신

      은 살아있는 모양. 

      절대로 죽을 수 없다고 간절히 바란 것이 도움이 되었던 모양이다. 

      멍하니 눈을 뜬 칸은 뻣뻣하게 굳은 얼굴을 들어 주변을 살펴 보았다. 

      목이 마른 것이 먼가 차가운 액체를 마시고 싶었다. 

      "무사히 돌아와라."

      난대없는 말에 칸은 눈살을 찌뿌렸다. 

      의자에 몸을 뒤로 눕힌 융텐의 모습에 그가 한말이라 짐작해 보지만, 무사히 돌아

      오다니. 설마하니 이 용은 자신을 염려해 이런 말을 하는 것인가. 

      물론 그럴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묘하게 감동스러운 것이 입을 열게 한다.

      "융텐...."

      " ?! "

      "....역시나 아니였군."

      쉰 자신의 음성에 놀라 자세를 바로하고 눈을 크게 뜨는 모습에 칸은 얼굴을 찌뿌

      린다.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면, 저런 표정보다 좀더 부드러운 태도를 취하는 게 옳

      지. 저런 유령을 본 듯한 시선은 좀 아니다 싶다. 

      뭐라고 투덜대고 싶었지만, 온몸이 물에 젖은듯 손끝 하나를 움직이기도 힘들다. 

      그러나 계속해서 누워 있을수만은 없는 노릇이라 미간을 찌뿌리며 자리에서 일어

      난 칸은 딱딱하게 굳은 어깨를 주물렀다. 

      등의 상처는 이미 치료한 모양인지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 

      몸의 상태가 이런 것을 치료를 위해 체력이 떨어졌기 때문인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칸은 이내 방안에 있는 것이 융텐뿐이라는 것을 깨닭고 미간을 찌뿌렸다. 

      나머지 녀석들은 전부 어디에 갔길래 이런 칙칙한 흑룡만 옆에 앉아있는 건가.

      그보다 유헌이 곁에 없다는 것이 더 이상하다.

      "유헌이나 노웬은 어디에 있어?"

      "......너라는 인간도 참으로 타이밍을 못 맞추는 군."

      "에? 뭐라고 하는 거야."

      뭔가 허탈한 듯한 음성에 기분이 나빠진 칸은 얼굴을 찌뿌린다. 

      융텐은 그런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흘릴수 밖에 없었다. 

      유헌은 중앙성으로 보내고 나니 거짓말처럼 녀석이 눈을 떴다. 

      대체로 이런 전개는 그닥 좋지않은 결말을 내곤 했기에 자연히 굳어진 융텐은 여전

      히 어깨나 팔을 주무르며 근육의 감각을 되살리는 칸을 바라 보았다. 

      녀석에게 유헌이 어디있는 지를 솔직히 말해야 할까 말까에 대해 고민하던 융텐은 

      그러나 문일 열리고 라프헨이 들어옴에 따라 입을 열 타이밍을 놓친다.

      "칸님-! 일어 나셨군요."

      반색을 하며 달려드는 라프헨에게 손을 들어보인 칸은 눈을 들어 그의 뒤를 바라 

      보았지만, 여전히 유헌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금새 실망스러운 얼굴로 변하는 칸의 모습에 라프헨은 저도 모르게 뒤를 바라 보지

      만, 그에게 그런 표정을 짓을 만하게 하는 것은 보이질 않는다. 

      자신의 얼굴에 뭔가가 묻어서 저러는 건가하고 본을 쓰다듬던 라프헨은 그러나 여

      전히 시무룩한 칸의 모습이 염려스러워 들고 있던 대야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조

      심스레 입을 연다. 

      "왜 그런 표정을 지으시는 거죠? 몸이 안 좋으신 건가요?"

      "몸은 괜찮아. 별거아냐, 갑자기 일어나서 조금 어지러운 것 같군."

      유헌의 모습이 보이질 않아 이러는 거다-라고 솔직히 말할수 있을리가 없다. 

      교묘하게 말을 돌린 칸은 그러나 자신을 알고 있다는 듯이 음흉한 미소를 짓는 융

      텐과 눈이 마주치자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한다. 

      평소에 자신의 곁을 떨어지지 않은 사람이니, 지금은 분명 일이 있기에 잠시 자리

      를 비운 걸거다. 조만간 돌아올 텐데 괜히 못난 모습을 보인 것 같아 민망해진 칸은 

      슬그머니 화제를 돌린다.

      "나머지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아아- 그게....조금 일이 생겨서..."

      "일? 무슨 일? 그러고 보니.. 이곳은 어디지?"

      노웬에게서 대륙이 돌아가는 정세를 그에게 말하지 말라고 당부 받은 라프헨은 그

      저 눈을 굴리며 칸의 시선을 피할수 밖에 없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수상하기 이를데 없지만, 그를 추궁하기 보다는 우선 목을 축이

      는 것이 우선이다.

      "미안하지만, 가서 마실 물좀 갔다 주겠어? 목이 타는군."

      "알겠습니다. 그전까진 누워 계세요. 체력이 상당히 떨어 지셨을 테니."

      "그렇긴 하겠지만... 분하다고 활에 맞아 정신을 잃다니."

      말을 타고 낙마한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 

      그것이 어쩔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꽤나 속이 쓰린지 투덜대는 칸의 모

      습에 미소를 지은 라프헨은 마실 물을 가지러 방에서 나온다. 

      닫히는 문과 다시 자리에 눕는 칸을 바라보던 융텐은 생각을 했다. 

      이대로 유헌의 행동을 녀석에게 숨길 것인가, 아니면 물어볼때 사실대로 불것인가. 

      한동안 생각을 하던 융텐은 그러나 '너말고 다른 녀석은 없는건가- 칙칙하다고.'라

      며 투덜대는 칸의 모습에 사실대로 말하기로 한다. 

      "대륙에서 중앙에 공격을 할 모양이더군."

      "........응?"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하는 거냐며 팔배게를 한채로 칸은 융텐을 바라본다. 

      그 시선을 받으며 융텐은 다시 입을 연다. 

      "그라센, 테라크, 뮤트롱. 동에 자리한 이 세개의 국가는 이미 마음을 잡은 것같고, 

      북도 호의적인 반응을 한다던데. 다들 중앙에 하나씩 앙심을 품고 있는 자들이니 

      어쩔수 없다만, 그렇게 되면 이자키엘이 상당히 난감하겠어."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

      몸을 반쯤 일으켜 이쪽을 바라보는 칸을 바라보던 융텐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

      다.

      "도대체가 이렇게 일이 꼬이는 인간들은 처음이라 너무 당황스럽군. 

      뭐- 인간들만이 개입된 게 아니니 어쩔수 없는 건가."

      "융텐, 말을 돌리지 말고 아까의 내용을 좀더 자세히 말해라."

      "말하고 뭐도 없다. 그렇다는 거야. 중립국인 남과 서를 제외한 다른 모든 나라와 

      지역들이 한달 후에 중앙국에 총공격을 할지도 모른다는 것 말야. 

      그리고 이런 말을 듣는다 해서 네가 무슨 행동을 할수 있어?"

      "..........너.."

      "넌 이곳에서 그냥 칸이라고 불리우는 자일뿐이지. 그것도 주세력을 잃은 자-말야. 

      그런 녀석이 이런 상황에 무엇을 할수 있다는 거냐? 부상을 당해 침대에 누워있는 

      것? 인간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잔존량에 매달려 과거의 영광을 빌붙어 이용해 먹

      는 놈? 뭐냐, 뭐가 있어, 너같은 한심한 인간에게."

      서늘한 융텐의 음성에 반발하려던 칸은 입을 다문다. 

      뭐라고 하고 싶지만, 그의 말이 사실이니 반박을 할수가 없다. 

      분한 듯 이를 갈며 시선을 내리는 칸의 모습에 그를 조금 더 건드릴 필요성을 느낀 

      흑룡은 다리를 꼬며 그위에 손을 올려 놓았다.

      "그래서 유헌에 간거야."

      ".............."

      "유헌이 중앙으로 간거라고."

      차마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눈을 크게 뜨는 칸의 모습에 상황에 맞지 않게 희극적

      으로 보인다. 들어서는 안 될것을 들은 그 모습과 미미하게 떨리는 손등에 시선을 

      주던 융텐은 갑자기 뭔가가 울컥하는 것을 느꼈다. 

      이런 표정을 보일거면 차라리 처음부터 자신이 일을 끝맺었으면 좋지 않은가. 

      질질 끌다가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을 연루시키고 구질구질하는 구는 인간들의 습

      성을 도저히 이해할수가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유크렌이 언제 아이를 낳을지도 모르는데 이런 녀석들과 더 이상 함께 다니는 것도 

      한심하고 자신이 그 루드빌의 피를 이어받아 인간에게 약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도 싫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융텐의 모습에 칸또한 침대에서 일어나 손을 뻗었지만, 차가운 

      음성에 움직임을 멈춘다. 

      "자신들의 일을 다른 곳에서 온 꼬맹이에게 맞기다니 그동안 나이먹은게 부끄럽지

      도 않냐? 한심한 녀석."   

      인간들은 그들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했다. 

      물론 그들이 그것들을 해결할 만한 능력이 있다지만, 그것을 해결 한 다음에 피해

      를 보는 것은 언제나 그들이다. 

      이곳으로 넘어온 이계인들. 

      몇몇 아는 얼굴들이 머리속을 스쳐 지나간다. 

      건방지게 굴어도, 자신이 챙길것을 다 챙기다가도 정에 얽매여 최악의 상황으로 자

      신을 몰아넣은 어리석은 인간들의 모습이- 

      그리고 그들은 용은 자신이 처음으로 인간에게 마음을 여는 기회를 준 자들이다. 

      "하나 말해주지. 유헌은 루드빌을 사라지게 할수도 있어. 

      그녀에게 연결된 끈또한 끊어버려 애꿋게 죽는 인간들을 만들지도 않을거야. 

      그만한 각오를 한 녀석이니깐, 그런 각오로 적룡에게 간 놈이니깐. 

      하지만 정말로 그런 일을 하게 된다면 녀석은 더이상 인간으로 살수가 없어. 

      그런 일을 벌이는 존재를 인간으로 치부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위협이지."

      ".............."

      "그것을 알면서도 간거다. 왜냐고? 상처입히기 싫거든. 너를 너를 아는 사람들과 

      네가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일방적으로 치부한 자들을 죽이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

      런 거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자신을 버려가며 적룡에게 간 놈이란 말이다. 

      그것에 비해 칸크빌레, 너는 어떻게 할거냐." 

      융텐으로서의 물음이 아니라 흑룡으로서의 질문이다. 

      극도로 흥분한 상태의 용은 대답여부에 따라 자신을 죽일지 살릴지를 결정할 것이

      다. 침대에 걸터앉은 칸은 자신을 내려다 보는 검은 눈동자를 올려다 본다. 

      저런 눈동자를 알고 있다. 검은 빛이지만, 저보다 훨씬 부드럽고 상냥한 자신만을 

      바라봐 주는 눈빛을 지는 소년을 알고 있다. 

      융텐의 말을 듣는 내내 둥중한 무언가로 머라를 세게 얻어맞는 느낌이 들었다. 

      덜컹

      "칸님 마실 물을..."

      가만히 앉아있던 칸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라프헨에게 시선을 준다. 

      방안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놀란 라프헨이 저도 모르게 뒷걸음 질을 치며 융텐의 

      뒷모습과 칸의 창백하게 굳은 얼굴을 바라본다. 

      조용히 앉아있던 칸은 천천히 입을 연다.

      "........난..."

      어떤 이유로든 그가 이곳에 없다면 망설일 필요없이 그를 찾으러 간다. 

      그리고 자신의 곁에 두는 것이다. 

      그런 자신의 결심을 입밖으로 내밀려던 칸은 그러나 등을 타고 오르는 감각에 눈을 

      크게 떴다. 

      알수없는 기운이 자신의 몸을 감싸려 한다. 

      "이건..."

      "칸크빌레!"

      "칸님!! !"

      이름을 부르는 음성에 고개를 들던 칸은 그러나 눈앞의 이지러 짐에 안색을 굳힌

      다. 이것은 과거 언제가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감각이다. 

      결코,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던 감각이 다시금 자신의 육체를 건드려 원하지 않는 

      장소로 소환하는 것이다. 

      10여 년전 이것에 의해 안전한 곳에서 빼돌려진 자신이 죽음 직전까지 몰아졌던 기

      억에 안색을 굳힌 칸은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몸안으로 말려드는 기를 있는 힘껏 

      밀어내려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몸속을 파고드는 감각이 더 선명해 진다. 

      벗어날수 없다는 생각이 듬과 동시에 욕설을 내뱉은 칸은 이를 갈았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잘도 이런 짓을 하는구나 싶었다. 두번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았던 이런 악취미의 감각을 다시금 느끼게 해주는 구나 싶었다. 

      한동안 그렇게 혼란으로 제대로 된 사고를 할수 없었던 칸은 부유하고 있던 발에 

      무언가가 디뎌지는 감각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그리고 앞으로 넘어진 그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얼굴이 바닥에 부딫히는 

      꼴을 면했다.

      "...도대체 이건..."

      중얼거린 칸은 손으로 디딘 바닥에 무척이나 낯익었다. 

      그리고 천천히 얼굴을 든 그는 붉은 문양으로 그려진 거대한 진 안 가운데에 무릎

      을 꿇고 앉아있는 자신의 모습을 인식한다.

      한동안 그렇게 그 마법진과 주변을 둘러싼 하얀색의 건물에 시선을 주던 그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중얼거린다. 

      "중앙성....."

      "그리운 장소이지 않은가."

      자박

      " ?! "

      음성과 발소리에 안색을 달리한 칸은 그 자리에서 일어난 기둥 뒤에서 나타난 사내

      의 모습에 숨을 들이켰다. 

      그런 칸을 가만히 바라보던 이자크는 기둥에서 나와 앞으로 몇걸음 더 다가선다. 

      그렇게 마법진의 밖 쪽에 서게 된 그는 안에 서서 이쪽을 바라보는 칸에게 진한 미

      소를 지어 주었다. 

      "십년전에도 이런 식으로 소환을 당해, 호된꼴을 당했지."

      "........이자크.."

      "그리운 장소이지 않은가. 그대에도 나에게도...."

      가만히 중얼거리던 이자크는 안색이 변한 칸이 자신을 바라보자 손을 들어 올리며 

      뒤쪽을 가르킨다. 그런 그의 행동을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견제하며 얼굴을 돌린 

      칸은 어느새 나타나 뒤에 서있는 돔의 모습에 놀라 입을 벌렸다. 

      외관은 괜찮아 보였지만, 문제는 정신쪽인 듯 멍하게 풀린 눈동자는 마치 인형과 

      같다. 돔을 바라보다 다시 얼굴을 돌려 이자크는 바라본 칸은 아까부터 든 위화감

      에 입을 연다.

      "어째서 네가 이곳에 있는 거지? 중앙성은 루드빌에 의해 장악된 것이 아니였나?"

      "그녀는 손가락으로 사람들을 다루는데 취미가 있지, 그보다 더 깊은 인간의 마음

      에 대해선 무지하지. 돔을 신왕으로 세우면 모든것이 끝날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지

      만..... 유감스럽게 기사들은 아직 나를 더 따르더군. 

      그래, 마치 나보다 칸크빌레 그대를 더 따르는 것처럼 말이야."

      "........이자크.."

      "무슨 먹이사슬 같군. 루드빌 위에 나, 내 위에 당신. 그리고 그 위엔 누가 있을까. 

      아아- 그렇군."

      혼잣말을 즐기는 듯 한동안 중얼거리던 이자크는 얼굴을 들어 칸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접는다.

      "그 유헌이라는 소년이 당신보다 한단계 더 위에 있는 자인가."

      ".......그는 어디에 있는 거냐."

      "알리가 없잖나. 이 성에 들어와 당신을 불러 들이러 시간을 소비했으니- 

      그쪽도 마찬가지 일거다."

      '반시각 정도를 흐름속에서 유영한 것 치곤 꽤나 팔팔하군-'라며 얼굴을 기우는 이

      자크의 모습에 초조함을 느낀다.

      이쪽에서 원해서 다른 곳으로 공간 이동을 하는 것과 달리 소환의 경우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는 시간이 길다. 

      길면 일주일 짧아도 약간의 오차가 생기는 방법인 것이다. 

      자신이 반시각 정도를 이동하는데 소비했다면 먼저 중앙성에 와있는 유헌에게 뭔

      가 일이 생겼을 수도 있는 것이다. 누군가의 걱정으로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진 칸

      의 얼굴을 확인한 이자크는 표정을 굳혔다. 

      여전히 그의 그런 모습은 보기 싫은 것 중 하나이다. 

      한동안 침묵후 칸이 먼저 입을 연다.

      "날 왜 이런 곳으로 부른거지?"

      "어차피 올테니 이쪽에서 수고를 한 것 뿐-"

      "......무엇을 꾸미는 거냐? 루드빌이 널 해치진 않겠지만, 전처럼 대하지는 않을 거

      다. 게다가 네가 돔을 데리고 이렇듯 활보할수 있다는 것은... 

      아직 이곳에 있다는 것을 그 적룡이 모르고 있는 것인가."

      "그렇겠지. 그녀는 지금 유헌이라는 소년과 대치중일테니."

      " !! "

      대번에 안색이 굳는 칸의 모습에 이자크는 손을 들어 보인다.

      "지금 가서 네가 무엇을 할수 있다는 거지? 

      차라리 이곳에서 내일을 돕는 편이 훨씬 더 유용할거다."   

      "..유용? 뭔가를 꾸미는 건가?"

      "글쎄- 어찌될까."

      조용히 중얼거린 이자크는 초조한지 눈을 굴리는 칸을 바라 보았다. 

      그와 이런식으로, 이런 모습으로 마주할줄은 생각해 본적도 없다. 

      십년전 그를 죽이지 못하고 성을 빠져 나가는 것을 지켜볼 때 그와의 악연을 그것

      으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굳이 그와 관련되는 것을 피해 요크발이나 다른 자들이 놀수있을 만큼의 제

      지를 가한 것이지만, ......정말로 그에게 개입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었던 건가. 

      사실은 이런 재회를 바라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무수한 일들이 서로에게 있었지만, 지금의 칸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어릴적과 사뭇 다른 모습이지 않은가. 

      입가를 올린 이자크는 칸을 향해 눈을 가늘게 휜다. 

      처음으로 보는 그의 미소에 칸은 숨을 들이키며 저도 모르게 뒷걸음 질을 친다.

      "그때 날 죽인다는 것을 들키지 않았다면 너는 이런 귀찮은 일따위 격지않고 지금

      도 황제로 있을수 있었을 텐데-"

      ".............에?"

      "아쉽게 되었군."

      입가를 올리는 그의 모습에 칸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지금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누가 누구를 죽인다는 건가. 자신이 이자크를- 십년전에 죽이려고 했다는 건가? 

      그런 짓따위-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무슨 소리를....."

      쿠-웅!

      " ? ! "

      지반을 흔드는 거대한 충격에 안색을 달리한 칸은 얼굴을 돌려 창쪽을 바라본다. 

      가만히 서서 칸을 바라보던 이자크는 신전쪽으로 얼굴을 돌린다. 

      "루드빌이 절룡으로 헌신했군. .........의외로 대단하군..."  

      유헌의 얼굴을 떠올리던 이자크는 무감하게 중얼거린다. 

      피-잉

      "..큭?!!"

      날라오는 창을 피하는 것은 좋았지만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화살에 유헌은 기겁

      을 한다. 저도 모르게 귀를 손으로 잡은 그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말을 탄 기사들

      과 병사들의 모습에 이를 갈았다.

      이런 일은 미쳐 생각하지 못했다. 

      단지 루드빌을 만나 대결만을 생각했던 유헌에게 개미떼처럼 몰려드는 사내들의 

      모습은 그를 당혹스럽게 했다. 그런 유헌을 구경하듯이 멀찍히 떨어진 루드빌은 무

      척이나 평온해 보인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꼬며 요리조리 잘 피해가는 유헌의 모습에 간간히 실소를 흘린

      다.

      "죽이지만 않으면 그 무엇을 해도 상관없다."

      기사의 맹약을 맺었기에 몸의 고통도 공유할수 있다. 

      하지만 용인 자신이 이토록이나 저 인간의 감각을 지우고 있는데, 그것을 뚫고 자

      신에게 느낌을 전할수 있을리가 없다. 

      숲의 나무에 등을 기댄채 자신을 바라보는 적룡의 시선을 느끼는 유헌은 분한 마음

      이 들 뿐이다. 잘도 저런 비겁한 행동을 하는 구나 싶다. 

      창을 들이미는 기사의 행동에 이를 간 유헌은 창대를 잡아 비틀었다. 

      "엇!!"

      소년의 모습을 한 유헌이 설마 이런 괴력을 발휘할줄 몰랐던 기사는 창을 끝까지 

      잡고있다 그대로 낙마한다. 빈손에서 무기가 생긴 유헌은 창대를 반으로 부러뜨려 

      덤벼드는 병사들에게 집어 던지고 몸을 돌려 신전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한다.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당황한 기사들은 이내 활을 날리며 그의 뒤를 좇는다. 

      역시나 중앙국에 숨어둔 인물답게 생긴것 답지않은 능력을 보이고 있다. 

      좀더 조심을 기하자는 의사를 교환하며 이를 악문 사내들은 말에서 내려온다. 

      몇번 말을 타고 덤벼 들었던 동료들이 꼴사납게 당한 모습을 본지라 다시 그와같은 

      공격은 먹히지 않음을 깨닭은 것이다. 

      말을 타고 오면 더 빨랐을 것을 달리며 뒤를 따르니 자연히 처지게 된다. 

      따돌릴수 있다고 생각하던 유헌은 그러나 붉은 빛의 마력탄이 바로 앞에 직격하자 

      안색을 굳힌다. 

      "도망가지 않는게 좋다. 맞추지는 못해도 방해는 할수 있지."

      여유로운 폼으로 손을 내뻗은 루드빌은 입가를 올리며 '네가 피하면 애꿋은 자들이 

      위험해 질수도 있단다-'라고 중얼거린다. 적룡의 행패에 안색을 굳힌 유헌은 입술

      을 깨물며 푹 파여진 구덩이를 뛰어 넘는다. 

      단순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노련하다. 몇천년을 살아 왔으니 당연한 건가. 

      쓴웃음을 지은 유헌은 바로 뒤에 있는 기사들과 자신을 바라보는 루드빌의 사이에

      서 다른 방법을 찾을 필요성을 느낀다. 

      계속해서 피하면 체력은 떨어지고, 저 용의 농간에 애꿋은 자들이 다칠수도 있다. 

      언제부터 이렇게 착해진 거냐고 다른 사람들이 묻는다면 유헌은 어쩔수 없다고 대

      답할수 밖에 없다. 

      자신 때문에 다른 자들이 다치는 꼴을 보는 것은 사양이다.

      "그렇게 다른 자들에게 도움을 받다니- 용으로서 부끄럽지 않은가?!!"

      "나를 지켜주는 인간들이다. 그들에게 보호를 받겠다는데, 무슨 상관일까."

      코웃음을 치는 루드빌의 모습에 시선을 주던 유헌은 옆구리를 파고드는 검을 막아

      내며 허리를 뒤로 뺀다. 

      창으로 공격을 막고, 하면서 입을 여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안일한 태도를 취하니 그들이 전부 손에서 빠져 나가는 거지!!"

      ".........."

      "카르키엘 황제도- 칸크빌레도 이자키엘도 요크발도 전부 너의 그 이기적인 태도

      에 지쳐 떠난 거야!!!"

      챙!!

      검을 막아내려 창을 세운 유헌은 그러나 반토막 나는 면에 안색을 굳히며 땅바닥을 

      발로 차 흙먼지를 상대방의 눈에 뿌린다. 자신의 말이 진행 됨에 따라 딱딱하게 굳

      어지는 루드빌의 모습에 회심의 미소를 지은 유헌은 마지막 말을 내뱉는다. 

      "하지만 이번엔 오래가겠군. 

      애초에 딴 생각을 못하게 아주 바보를 만들어 났던데-!"

      "이 놈!! 말을 삼가라!!"

      자신의 말에 분노를 표출하며 검을 휘두르는 기사의 배를 발로 찬 유헌은 루드빌이 

      있는 곳을 향해 두팔을 벌리며 과장된 표정을 얼굴에 떠올린다.  

      "그런 식으로 밖에 인간들에게 어울릴수 없는 거지. 너라는 미친 용은-"

      "................네놈."

      "나는 얼마든지 그들의 삶에 끼어들수 있는지만 말야."

      말을 마친 유헌은 그린 듯한 미소를 지었다. 

      갑작스런 유헌의 행동과 엄청난 살기를 뿌리는 적룡의 모습에 움직임을 멈춘 기사

      들은 두 사람의 모습을 불안하게 바라본다. 

      공격하기 더할나위 없이 좋은 기회이건만 그리 할수도, 할고 싶지도 않다. 

      저 소년이 하는 말은 다들 한번쯤 생각해본 적룡의 평가인 것이다. 

      우물쭈물하는 기사들이나 병사들이나 자신의 성질을 건드리는 저 유헌이라는 인간

      도 전부 맘에 들지 않는다. 

      기대던 나무에서 일어난 루드빌은 이를 들어내며 웃어 보인다.

      "네놈이 정녕 죽기를 각오하지 않고서야 그런 헛소릴 지껄일리가 없겠지."

      나직히 내뱉은 루드빌은 눈을 빛내며 유헌을 향해 달려든다. 

      엄청난 속도로 달려드는 그녀에 안색을 굳힌 유헌은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올렸지

      만, 부딫히는 순간 뒤로 밀려났다. 

      바닥에 그어지는 자신의 발자욱에 질린 표정을 지은 유헌은 다시금 주먹을 휘두르

      는 루드빌의 모습에 이를 갈며 반대편으로 들어가 배에 주먹을 꼽는다. 

      피하긴 했지만, 흥분한 상태여서 그런지 약간 스칠수 있었다. 

      보통의 힘이 아니기에 꽤나 충격이 큰 듯 숨을 들이키는 루드빌의 모습에 고소하다

      는 표정을 지으려던 유헌은 그러나 그녀와 마찬가지로 느껴지는 복부의 통증에 혀

      를 찼다. 설마하니 상처까지도 공유를 하게 될 줄이야. 

      공유를 하는 상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루드빌과 유헌 둘다 서로에게 끔찍하다는 얼

      굴을 짓게 한다.

      "정말이지 네놈은 갈갈이 찟어 죽이지 않은 한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다."

      "나보단 낫군. 난 너를 완전히 사라지게 할 생각인데 말야."

      "......헛소리."

      "하지만 얼굴이 굳었잖아. 진지하게 받아 들이는 건가."

      능글맞는 유헌의 태도에 루드빌은 이를 갈았다. 

      반드시 죽인다-라는 생각이 점점 머릿속을 지배한다. 

      눈앞의 녀석을 치워 버리면 당장에 죽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위험하게 빛나는 붉

      은 눈동자를 확인한 유헌은 안색을 달리하며 빠르게 뒤로 물러난다. 

      그리고 그 순간 루드빌이 몸이 붉은 빛으로 감싸이며 순식간에 적룡의 모습으로 헌

      신한다.

      "........질리겠군.."  

      붉은 기에 휩싸여 포효하는 용과 몸속에서 요동치는 적룡의 마력에 유헌은 가슴을 

      움켜쥐며 미간을 찌뿌린다. 

      이것으로 자신도 마력을 사용할수 있게 되었다. 

      루드빌이 단순하기 짝이없는 적룡이라는 것이 새삼 고마워진다. 조금의 가능성이 

      보이는 상황에 입꼬리를 올린 유헌은 포효하는 루드빌을 올려다 본다. 

      "유헌이 저곳에 있는 건가!!"

      "있어도 다치진 않을 거다. 그를 해치면 자신이 죽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을테니, 

      어리석은 짓은 안하겠지."

      조용히 중얼거리는 이자크에게 시선을 준 칸은 그에게 다가간다. 

      이자크가 무슨 의도로 자신을 이곳에 부른건지 알수는 없지만, 우선 그와 말을 끝

      내야 이곳을 벗어날수 있을거라는 느낌이 든다. 

      "도대체 무슨 의도로 이곳에 날 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유헌에게 가봐야 하니 

      그다지 용무가 없으먄 이만 가보겠어."

      "가봐도 상관없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곳에 있는 편이 더 나을걸."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이런 곳에서 무엇을-"

      초조함에 신경지를 부리며 손을 내뻗는 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이자크는 툭

      하고 내뱉는다.

      "주문으로 루드빌을 묶어두는 곳은 이곳밖에 가능하지 않아."

      ".........에?"

      갑작스런 말에 눈을 크게 뜨는 칸을 바라보던 이자크는 한걸음 앞으로 디딘다. 

      그와 동시에 붉은 문양으로 된 마법진에게 황금의 기운이 서리는 것이 육안으로 확

      인된다.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뒷걸음을 질은 친 칸은 이자크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너를 이곳에 소환했을 때도 이런 현상이 벌어졌지. 

      뭐.. 하지만 이번은 타겟이 변했으니 그리 겁먹지 않아도 돼."

      "겁먹을 내가 아니다. ..루드빌을 봉인한다니- 두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말 그대로 일 뿐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않나?"

      대답한 이자크는 칸의 앞에 서서 그의 얼굴에 시선을 준다. 

      똑같은 눈빛과 얼굴을 지닌, 머리카락이 다를 뿐인 두 사람의 대치는 참으로 묘한 

      광경이었다. 게다가 칸의 뒤에 서있는 돔 또한 그들과 같은 얼굴, 그것을 확인한 이

      자크는 문득 웃고 싶다는 느낌이 든다. 

      결코 평범한 얼굴이 아닐진데 이렇게나 닮은 사람이 많다니- 

      게다가 모두 혈연이 있는 사람들. 세상엔 같은 얼굴이 3개나 존재하다던데 그들은 

      그것을 찾기도 전에 이렇 듯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으니 뭔가 묘한 느낌이다. 

      루드빌이 용으로 돌아감에 따라 몸에 울리는 둔중한 고동이 점차 짙어진다. 

      그것은 저곳에 서있는 돔도 마찬가지 인듯 안색이 영 좋지않아.

      만약에- 유헌이라는 소년이 루드빌에게 해를 가한다면 본인은 물론이거니와 자신

      들도 무사하지 못하겠지. 

      강제든 자의든 어떻게든 이어져 있는 거다. 

      적룡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그녀와 더불어 가는 것은 사양이다. 

      그러니 그 전에 끊어 버리겠다. 눈앞에 자신을 바라보는 칸크빌레라는 자가 용과의 

      고리를 끊어버린 것과 마찬가지로.

      "적어도 내 밑을 이을 자에겐 두려움의 요소를 배제시켜주고 싶은 마음일 뿐이야."

      "돔의 안위를 위해 이런 일을 한다는 거냐?"

      "굳이 그를 위해선만도 아니겠지. 이것은 나를 위하는 것이기도 해."

      "이어진 것만이라면 끊을 수가 있어. 그것은 돔도 마찬가지다. 

      굳이 이런 일을 벌어지 않아도 돼."

      "........네가 모르는게 더 있거든."

      루드빌의 피를 받아 힘을 얻게 된것따위 알고 있지 못하기에 그런 말을 하는 거다.

      네 말대로 연결만을 끊는 거라면 이런 복잡한 일따위 벌어지 않고 혼자서도 가능하

      지만, 용의 피를 받은 영향이 자신의 직계인 아들에게도 보이지 않게 연결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 못하는 거다. 

      눈을 가늘게 휜 이자크의 모습을 바라보던 칸은 미심쩍음에 다시 입을 연다.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겠어."

      "알지 않아도 돼. 이일을 끝내고 너는 유헌에게 난 다시 황제로 돌아가는 것 뿐. 

      봉인되는 것은 루드빌이니 서로에게 좋지않나."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정말로 그런 것을 원하는 거야?! 

      적룡과 그렇게나 잘 어울린 주제에!"

      "말이 이상하군. 용과 어울리는 인간따위 어디에 있어."

      "여기에 있잖아. 용과 결탁해서 그동안 날 해하려고 한 네가! 이곳에 있잖아!! 

      십년전에 그렇게나 날 죽이고 싶어 했으면서, 어떻게 보면 좋은 기회이기도 한 지

      금에 와서 루드빌을 봉인 한다고?!! 설마하니 그 용의 악독함을 이제와서 알게 된

      건가?! 네말은 신용할수가 없어!!"

      윽박을 지르는 칸의 얼굴을 바라보던 이자크는 점점 속에서 뭔가가 끓어 오르는 것

      을 느낀다. 

      자신의 일을 협력하고 유헌을 도우러 가도 된다는. 이 일을 도우면 오히려 그들에

      게 득이 되는 일을 하고 있는데도 무엇이 불만이길래 이런 자세를 취하는 건가. 

      게다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마치 자신과 루드빌의 관계를 알고 비난하는 듯이 들린

      다. 칸에게 그런 권리가 있나하고 생각해 보지만, 답은 아니다-이다. 

      그는 나게에 비난을 할 권리가 없어. 애초에 그가 먼저 잘못을 하지 않았나. 

      탑에 가두고 쓸모가 없어지자 루드빌을 시켜 자신을 죽이려 하지 않았나. 

      처음으로 부탁한 일이었을 텐데- 적룡이 그것을 들어주지 않고 자신과 함께 있으

      니 질투를 하는 건가. 

      그런것 따위 정말 꼴불견이다. 칸크빌레.

      "십년전에 내가 죽었으면 이런 일은 없었지! 루드빌과 화해한 너는 여전히 중앙의 

      황제일테고, 만인의 우러름을 받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루드빌은 나를 선택했고, 

      중앙의 황제는 나야!! 그런 그녀를 나쁘게 말하지 마라!! 

      날 죽이라는 명을 거절했다고 그녀가 악독한 용이 되는 건가?!!"

      ".....무슨 소리를...."

      "미친 용이라고 불리고, 실제로 그러하지만 나에게 은인같은 존재다!! 후세를 위해 

      이런 일을 하는 나도 마음이 편하지 않아!! 

      얌전히 따르고 저 유헌이라는 놈과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란 말이다!!!"

      윽박을 지르는 이자크의 얼굴을 바라보는 칸의 얼굴은 돌같이 굳어진다. 

      그의 말에서 결코 그냥 넘어갈수 없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리라.

      "내가 루드빌을 시켜 널 죽이게 했나?"

      "물론이지. 이제와서 그것을 부인하는 건가- 

      탑에 있을 당시 지금으로부터 십년전에 그런 명을 내렸잖나."

      그리고 루드빌은 날 죽이지 않고, 나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고 두개의 길을 제시했

      지. 이대로 죽을 것인가, 아니면 칸크빌레를 치고 황제가 될 것인가. 

      그런 상황에서도 아직 너에게 미련이 있을 것 같은가. 루드빌의 피를 받아 힘을 얻

      게되어 너를 쳤을 때의 그 증오와 분노를 네가 알기나 하는가. 

      "너는 아무것도 몰라."

      얼마나 기다렸는지- 얼마나 믿고 있었는지.

      지금은 자신을 그런 차가운 곳에 두지만, 언제가 반드시 풀어 줄거라고 그것만을 

      믿고 살아갔던 나에게 내민것은 바로 죽음의 패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상황이 바뀌었으니 재미있지 않나. 

      악의적인 미소를 짓고 있는 이자크를 바라보던 칸은 천천히 고개를 젖는다.

      "그런 명령따위 한적이 없어."

      "루드빌이 증인이야, 이제와서 발뺌하는 것만큼 꼴불견인건 없다. 칸크빌레."

      "........믿는 거냐? 그 적룡을?"

      "나에게 살길을 마련해 준 존재다. 믿지 못할리가 없지 않은가."

      입꼬리를 올리는 이자크의 모습을 바라보던 칸은 손을 들어 그의 양쪽 어깨에 손을 

      올린다.

      그렇게나 순하고 그에게만 있어서는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전달할지도 못했던 이

      자크가 왜 이리도 변했는지 지금에서야 알것같다. 

      왜 이리도 변해 그 그렇게나 강해져서 자신의 앞에 나타났는지- 

      어째서 그런 적룡과 함께 있는지 알 것 같다.

      전부- 모든 것이 그 용의 농간인거다.

      "생각해 보는게 좋아. 이자키엘. 

      당시의 나는 부덕함이나 간계나 음모를 치떨리게 거부했지. 그래서 죽음을 각오해 

      용과의 연결을 끊고 그녀를 멀리하는 동시에 반세력을 지닌 너를 탑에 가둔거다. 

      십년전 그때까지도 약해졌다 하나 그 마음을 버리지 않은 내가 루드빌에게 그런 명

      령을 내리겠는가."

      ".............."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있어. 지금에선 너에게 사과를 빌 마음밖에 없다. 

      하지만 십년전에 그러지 않았지. 사람이 많이 변하기는 했지만 하나 변하지 않은게 

      있다. 그것이 뭔지 아나?"

      잡힌 어께에서 뜨거운 감각이 전해진다. 

      눈을 크게 뜬 이자크는 눈앞의 존재를 바라 보았다. 

      크게 뜨여진 그 눈은 오로지 칸을 바라볼 뿐, 흔들림도 깜박임조차 일으키지 않는

      다. 

      "소중하게 생각한 존재를 끝낼 때는 남의 손을 빌리지 않아. 스스로 처리한다-"

      부친인 카르키엘을 살해하고 황제 자리에 오른 것 처럼-

      딱딱한 가면을 쓴 것처럼 표정의 변화없이 자신을 바라보던 이자크의 눈속에 작은 

      균열이 인다. 

      그것을 발견한 칸은 이를 악물며 자신과 닮은 존재를 강하게 끌어 안는다.

      "네가 믿든 그렇지 않든 하나는 확실하지. 널 십년동안 탑에 가두고 그렇게나 괴롭

      게 한 존재가 나라는 것. 

      그리고 그 점에 대해선 넌 사과를 받아야지 해야 할 사람이 아니다."

      안은 몸에 미세한 경련이 인다. 

      크게 벌려진 눈에 번들 거림이 스치고 무겁게 닫혀진 입술이 열린다. 

      "루드빌은 당신이 날 죽인다고 했어. 그것이 ..........아니라는 건가?"

      난 또시 속은 건가. 

      쉰 음성이 귓가에 들리자 이를 악문 칸은 이자크의 몸을 더 강하게 끌어 안았다. 

      믿었던 존재에 의해 내쳐지는 것은 생각보다 더 끔찍한 것이다. 

      그것은 지금 이자크가 맛보고 있는 것이다. 

      분명 루드빌이 자신을 물러나게 하기위해, 자신을 죽이기 위해 이자크에게 거짓말

      을 해 두사람 사이를 이간질 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수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이자크에게 그것을 말해줄수 있는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모습과, 이런 자신의 말을 믿어주는 것에 대해 알수없는 감정이 생겨난다. 

      자신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기에 몇번의 대화만으로도 그 진위를 파악한 거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그것을 깨닭고 무너져선 안된다. 

      이자크의 몸을 때낸 칸은 다시 입을 연다.

      "이건 네가 판단 할 문제다. 

      네말대로 지금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수도 있으니." 

      "....지금 거짓을 말한건가?"

      금새 불신의 눈빛을 보내는 이자크의 모습에 미간을 찌뿌린 칸은 '그러니깐 네가 

      판단할 문제라는 거다.'라고 중얼거리고 뒤로 몇걸음 물러난다.

      "루드빌을 믿을 건지, 나를 믿을 건지 선택하는 것은 너지 다른 사람이 아니야. 

      하나 내가 더 말할수 있는 것은 난 거짓말따위 하지 않아. 

      .........그것은 아마도 네가 더 잘 알테지."

      씁쓸하게 중얼거린 이자크를 바라보다 몸을 돌려 그곳을 빠져 나온다. 

      이번엔 막을 생각이 없는지 잡지 않는 이자크를 느끼며 돔에게 다가간 칸은 그 멍

      한 얼굴에 입술을 깨문다. 

      이런 것들을 볼때마다 생각하는 것이다. 

      역시나 적룡 루드빌을 사라져야만 하는 존재라고. 등을 돌리고 사라지는 칸의 모습

      을 바라보던 이자크는 손을 들어 펼쳐진 손바닥을 내려다 본다. 

      - 칸크빌레가 널 죽이라고 하더군

      지금도 잊을수 없는 루드빌의 말. 

      "............"

      주먹을 쥐고 그것을 입술에 대고 누른 이자크는 불안하게 떨리는 눈동자로 이미 사

      라져 보이지 않는 칸의 뒷모습을 좇았다. 

      어느쪽이 진실인가- 

      단 하나 알수있는 것은 루드빌은 그동안 자신을 돌바 주었고, 칸크빌레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 다는 것. 

      무언가를 할때, 자신과 관련된 자를 처치할 땐 그만한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예로 부친은 카르키엘도 그의 손으로 직접 해하지 않았던가. 

      - 소중한 존재는 ...스스로 처리한다.

      ".......제길."

      도대체 어떻게 된건가. 

      돔의 모습을 바라보던 이자크는 가슴속으로 루드빌의 이름을 불러본다. 

      이번일은 그녀에게 물어야 한다. 

      그래서 어느쪽이 진실인지를 물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진실을 들은 다음에 자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루드빌의 말이 옳다면 칸크비레를 죽어야 하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루드빌을 봉인인 아닌 사라지게 해야 하는 건가. 그렇게 되면 자신

      은 물론이거니와 돔과 요크발도 무사하지 못한다. 

      한동안 그렇게 서있던 이자크는 가만히 서있는 돔에게 다가가 그의 몸을 안아 들었

      다. 확인을 해야 하는 거라면 더이상 망설일 수가 없다. 

      칸이 사라진 방향으로 그는 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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