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래곤 둥지의 수호자들-1화 (프롤로그)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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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드래곤 둥지의 수호자들]

*프롤로그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일들이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내가 살던 대한민국과는 또 다른 인간계, 언더 에스트. 그곳에서 나는 수많은 이를 동료로 얻었고, 또한 수많은 적을 만들었다.

물론, 드래곤의 몸으로 살아가는 것은 꽤 흥미로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몸으로 오랜 세월을 살아왔기에 이제 인간의 기억은 종이 한 장의 두께만치도 못한, 마치 미세한 먼지처럼 희미해져 버린 지 오래였다.

나는 인간인가, 드래곤인가.

빌어먹을 여신이 내게 해놓은 정신조작 때문에 아직도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 기억하고 있다. 처음 시작은 인간이었고... 아니, 시작이 인간이라는 말 자체가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래, 나는 인간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인간인가?

드래곤의 몸으로 오랜 세월을 살아온 내게, 인간으로서의 이십 년 남짓한 짧은 시간은 '나는 인간인가.' 그 의문을 가지는 것조차 의아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러한 사실에 대하여 여러 가지 감상이 떠올랐으나,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진득한 핏물은 지금 상황에 다른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사치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레이어드, 생각은 좀 해봤니?"

눈앞의 여신은 얄밉게도 빙글빙글 웃고 있다.

당장에라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지만, 아직... 아직 부족했다. 서럽고 또 서러운 사실이지만 권능을 가진 존재를 발아래에 두는 것은 '아직은' 무리였다.

여전히, 내 대답은 변하지 않는다.

"거절입니다, 빌어먹을 여신님."

"푸하하하! 역시 입담이 거친 아이라니까? 뭐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거야?"

"......"

피식-

천천히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믿는 구석이라... 그래, 확실히 믿는 구석이 있고말고.

"어레레? 웃어? 꽤 여유롭네?"

"......"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 여신에게 더욱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는다.

아직까지 눈치채지는 못한 것 같지만, 내게는 느껴진다. 애시당초 이 공간은 여신을 잡아두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마련한 장소였고, 이날을 위해 준비해두었던 모든 것들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프롤로그 종료.

-Guardians of Dragon Nest-

[드래곤 둥지의 수호자들]

Start.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

아침 일찍 일어나 간단히 씻고, 옷을 입고. 자취방을 나와서 몇 분을 걷다 보니 대학교에 도착. 오후에 제출해야 할 과제물을 다시 한 번 점검한 뒤, 영혼이 빠진 표정으로 교양 강의를 듣는다.

"자, 이렇게 고조선의 역사를 살펴보면, 제대로 된 증거 자료는 없이 '삼한이라는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해서 신라 시대에 부각된 것이 많지 않았는가' 하는 의견이 주축을 이루어..."

우리나라의 역사 정도는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여 선택한 과목이건만, 솔직히 교양 과목의 강의명에 포함되어 있는 '이해'라는 단어처럼 그 깊이가 중학교 때 배운 국사와 별반 다를 게 없는 것 같다.

"후우..."

그저 F학점의 권총을 맞지 않기 위하여 수업을 들을 뿐, 이 지루한 강의는 수업 시작과 중간에 예고 없이 한 번 더. 즉 출석을 두 번 부르기 때문에 은근슬쩍 빠져나가기도 쉽지가 않다. 뭐, 심할 때는 세 번 부르기도 했지.

차오르는 졸음을 느끼며 눈을 감는다.

약간 흥미 있는 점도 몇 군데 있기는 했지만, 결국은 다 아는 내용이다.

원래 역사라는 것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기에 읽는 재미도 제법 쏠쏠해서 한때 재미가 들린 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 본 적도 있고. 음, 그렇게 멋진 역사를 가진 나라는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나라의 역사는 국민이라면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겠지.

"자! 수강생 여러분 일어나요! 지금 말하는 내용 시험에 반드시 나옵니다!"

번쩍-

시험에 나온다는 교수님의 말씀에 기계적으로 볼펜을 잡고 필기를 시작한다. 음, 이걸로 일단 한 문제는 세이브치고 가는군.

사각- 사각- 사각-

펜촉이 종이 위를 긁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역시 이럴 때만 다들 열심이라니까.

잡생각을 뒤로 넘겨 버리고는 여전히 시험에 나온다고 계속 강조하고 있는 교수님의 말을 귀담아들으며 중요한 점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밀려드는 졸음을 애써 쫓아낸다.

-Guardians of Dragon Nest-

"아, 오빠! 이 강의 들으세요?"

이윽고 강의가 끝나고 뒷문으로 빠져나오는데, 한 여자아이가 자연스레 말을 걸어온다.

아, 소윤이구나.

요즘 여성 분들의 미모는 확실히 아름답다. 큰 눈, 오똑한 코, 부드러운 턱선.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뭐랄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비슷비슷하게 생긴 것 같아서 오히려 개성적인 매력을 찾기가 힘들어진 것 같다. 이름도 모르는 여성들을 무작위로 50명가량을 뽑아 일렬로 주우욱- 세워 놓으면 그중에 30명 정도는 비슷해서 누가 누군지도 헷갈릴 것 같다고나 할까?

"아, 소윤이도 이거 들어? 이상하다, 소윤이 같은 이쁜이를 내가 못 알아볼 리가 없는데... 어째 지금까지 못 알아봤네?"

복학하기 전에 사회에서 2년 넘게 영업직을 뛰면서 사람들 기분을 마구 업업! 시켜주는 화술 같은 건 지겹도록 익혀 두었으니, 그저 단순한 느끼 멘트로 들리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 느껴지는 접대용 멘트를 날리는 일은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다.

"에이- 오빠, 하여간에 이쁜 건 알아 가지구!"

"......헐."

자뻑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그 끝을 향하여 힘차게 내달리고 있는 소윤이의 언사에 '뜨악 -'하는 표정으로 짓궂게 장난을 치자, '아, 진짜 -'하고 내 어깨를 툭- 치며 '푸훕!'하고 예쁘게 웃음 짓는다.

"아, 근데 이쁘다는 거... 솔직히 아주 쪼오끔은 인정."

"에, 쪼오오- 끔요 -? 쪼오끔?"

나의 칭찬 같지도, 놀리는 것 같지도 않은 모호한 말에 소윤이가 '아, 이 오빠가 진짜 나 화병 돋게 하려고 -' 하고 그 작은 얼굴 옆으로 앙증맞은 주먹을 흔들어 보이면서도 계속 웃음을 터뜨려 온다.

음... 확실히 절대미, 이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렇지만 과학의 힘을 빌리지 않은 자연 미인이라는 점에서 한 표를 주고 싶다. 지금은 화장하지 않은 것 같지만, 화장이 예쁘게 잘 먹은 날에는 나도 살짝 흔들릴 뻔한 적도 있으니까 두 표.

"응, 오늘은 화장을 안 했는데도 '쪼오끔' 이쁘네."

"앗! 아, 시험 기간이라 화장 안 한 건데. 보지 마요!"

그러면서 고개를 휙- 하고 돌리며 작게 툴툴대는 소윤이다. 그녀의 말처럼 시험 기간이기에 화장할 틈이 없었다는 것은 알겠지만, 음... 하긴, 화장을 안 해도 예쁘긴 하다. 소윤이 눈이 평소보다 조금 작아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예쁜 건 인정해줘야겠지.

"아, 이야기가 하나 떠올랐어."

"네? 갑자기 무슨 얘기가 떠올랐다는 거예요?"

은근하게 말하는 내 어조에 소윤이가 침을 꼴깍- 삼키고는 자신의 생얼을 손바닥으로 가리며, 그 손가락의 틈 사이로 나를 빤히 바라본다.

"옛날 옛적에 말이지, 토끼와 거북이가 달리기 시합을 했거든? 근데 토끼가 경기 중에..."

그즈음에서 말꼬리를 살짝 흐리자, 소윤이가 김샌다는 표정으로 입술을 비죽 내밀어 온다. 물론 손바닥에 가려서 입술이 어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만, 예전에도 이런 같은 반응을 보인 적이 있으니까. '말하지 않아도, 보이지 않아도 알아요'라고나 할까?

"아, 토끼가 잠이 들어 버려서 느린 거북이가 토끼를 이겼다고요? 무슨 유치원생도 다 아는 얘기를..."

비죽- 내밀어 져 있는 입술과는 달리 소윤이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며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 왜냐하면.

"아니, 거북이가 졌어."

내가 꺼내는 이야기들은 보통 그렇게 뻔한 결말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소윤이는 알고 있기 때문이지.

"네? 토끼가 잠이 들어 버려서 거북이가 이겼다는 그 동화 아니에요?"

"아니, 그 이야기가 아니야. 네 말대로 토끼는 잠이 들었고, 거북이가 지나가다가 잠을 자고 있는 토끼를 봤는데... 토끼가 오늘의 달리기 시합 때문에 화장도 안 하고 나왔는데도 자는 토끼 얼굴이 너무 예뻐서 거북이가 그 자리에서 선 채로 멍- 하니 보고 있었더니, 잠에서 깨어난 토끼가 거북이의 얼굴을 보고 놀라서 골인 지점까지 단숨에 달려가 버렸어. 그래서 토끼가 승!"

"에에? 그게 뭐..."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에이 -, 그게 뭐예요.' 하고 말하려던 듯, 입을 조그맣게 벌리다가 여전히 씨익- 웃고 있는 내 얼굴을 보고 잠시 멈칫 -!

자, 카운트 다운 들어갑니다.

원.

투.

쓰리.

"...설마 화장 안 했다는 토끼가 저 말하는 거예요? 아, 진짜... 사람 부끄럽게! 오빠, 그런 얘기는 대체 어디서 주워듣고 오는 거예요?"

빙고 -!

"제 이야기가 맘에 드셨으면 '쫗아요!!' 오키?"

최대한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운 뒤 '쫗아요' 표시를 해 보인다.

"푸흡! 아, 쫗아요! 쫗아! 푸후흐흣!"

그에 맞추어 소윤이도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며 맑은 웃음을 터트린다.

그렇게 기분 좋게 실컷 웃다가, 다음 수업에 들어간다는 소윤이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머릿속으로 오늘 있었던 일을 하나의 소재로 남긴다.

나는 대학생이다.

그리고-

소설작가이다.

-Guardians of Dragon Nest-

자취 중인 원룸에 돌아오자마자 컴퓨터를 켠다. 조심스레 말하자면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며 이 대학교까지 어찌어찌 오기는 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매우 지친 상태였다.

매일 방송되는 뉴스에는 희망적인 내용보다는 '앞으로 더 힘들어지겠다'는 생각을 저절로 만들어주는 보도가 즐비했으며, 꿈도 희망도 그저 나날이 사라져 가는 것을 어떻게 붙잡지도 못한 채로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런 나에게 새로운 한 줄기의 빛이 되어주는 것이 소설이었다. 나의 상상 안에서 만들어지는 세계에는 꿈도, 희망도 존재했고. 글로 작성하는 것은 나의 상상 속의 이미지를 더욱 탄탄하게 가꾸어 주었기에, 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보다 좋은 꿈을 꾸며 잠들 수 있었다.

그에 따라 나는 몸을 사리지 않으며 이렇게 노력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우스운 이야기지만은, 소설을 위해 지금 이 지옥 같은 현실을 살아가고 있었으며 현실의 이야기는 더욱 유쾌하게 다듬어져 소설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이렇듯 나의 하루하루는 아이디어 노트와 컴퓨터의 텍스트 문서 파일 내에 꾸준히 써내려 가며 새로운 소재로 태어난다. 어떨 때는 더욱 달달하게,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타다닥, 타닥타닥-

손가락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혼자 사는, 조용한 방 안으로 번져 나간다.

타다닥, 타닥타닥-

요즘 들어 30연참을 5일만에 찍는 기록을 세우느라 코피를 몇 번 쏟기는 했지만, 약속은 약속이었기에 수행해야 했고, 그 후유증으로 인하여 피곤함이 몰려오는 눈을 부비적거리며 '하루에 한 편 이상은 꼭 연재를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작업을 계속 이어 나간다.

그런데... 글이란 것이 참 오묘한 게.

분명 쓸 때는 등장인물에게 몰입해서 혼자서 연기도 해보고, 즐거운 기분으로 검토도 하며 '아, 이 정도면 잘 쓴 것 같아'하고 생각하는데, 업데이트를 마친 후 다시 읽어보다 보면 똥망글.

한 마디로 똥망글이다. '오·탈자에, 문체도 어색하고, 띄어쓰기는 어디로 갔니? 이건 뭐 글이야 똥이야?' 이런 느낌으로 와 닿아서 몇 번이고 고치게 된다.

타다닥, 타닥타닥-

앗, 다른 생각을 하다 보니 또 똥망글을 내리 작성하고 있다. 음... 지우고 다시 써야겠네.

탁, 스으으으-

백스페이스 키를 누른 뒤의 효과음은 내가 착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내 상상 속에서 만들어 낸 환청이라거나.

그렇게 잘못 삽입된 이야기를 지우고 다시금 줄거리를 이어 나가기 위해서 옆에 놓아둔 '아이디어 노트'를 참고한다.

"음... 그러니까 이제 여기서 로열 고블린들이... 정찰을 끝내고 돌아오면..."

노트의 내용을 대강 흩어보며 줄거리를 재정비하고는 다시금 키보드에 손을 올리면서 모니터를 바라보는 -

"...어? 이게... 무슨..."

['전쟁과 불화의 여신 바탈리아'와 '죽음과 황혼의 여신 엑시투스'는 신들이 창조해낸 세계의 전역에 오랫동안 이어져 온 평화로 인하여 자신들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머리를 맞댄 채로 고민하고 있었다.]

"...뭐야, 이건 내 소설 중에는 나오지도 않는 신들인데? ...일단은 지울까."

탁, 스으으으-

백스페이스를 다시금 누르며 인상을 찌푸린다.

"뭐야, 악성 코드라도 있는 건가? 아니면 바이러스나 크래커(cracker)가 침입하기라도 했다거나."

뭐, 요즘 세상은 워낙 신기한 일도 많고 하도 기가 막힐 일들이 많으니 그저 이것도 그러한 일 중의 하나로 치부하기로 했다. 그래도 혹시 모를 악성 코드 창이 숨어서 나의 글을 모니터링 하고 있을까 봐, 컨트롤, 알트, 델리트 키를 한꺼번에 눌러 프로세스 창을 점검한다.

"음... 딱히 악성 코드로 보이는 건 없는데... 하긴, 이렇게 해서 나오면 누가 백신을 만들고, 팔고, 사거나 하겠어."

고개를 살짝 저으며 알 수 없는 오묘한 기분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리고 알트, 탭 키를 눌러서 다시 소설을 작성하던 창으로 변환하니.

[고심 끝에 두 여신은 한 가지 방안을 떠올렸다. 바로 이 세계에 혼란을 불러올 자를 데려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자는 지금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다.]

"......"

살짝 소름이 돋기 시작한다.

나는 분명 이러한 것을 타이핑 한 적이 없다.

요즘 기술력이라면 나같이 컴퓨터 점검이라고는 겉절이만 한 녀석은 알아챌 수도 없게 조작할 수도 있겠지만, 이 글의 내용은 마치 나를 가리키고 있는 것만 같았기에 당황스러움이 밀려들었다.

"...이게... 무슨...?"

탁, 스으으으-

다시금 백스페이스를 눌러 글을 지운다.

백지가 되어버리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살짝 생각에 잠겨있는데, 그 모니터 위로.

[지우지 마.]

"......!"

크래커인가?

긴장한 얼굴 위로 살짝 땀방울이 흐른다. 미친 상황인 것 같다. 분명 이건 '텍스트 문서' 파일인데 누군가와 채팅을 하는 꼴이다.

손가락을 조심스레 움직인다.

타닥탁탁-

[넌 누군데?]

그렇게 글을 올린 채 '녀석'으로 추정되는 자의 글을 기다린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쓴 글자의 밑으로 녀석이 타이핑하는 글이 달려온다.

[신.]

"...병신인가."

어이가 없다, 이 크래커 새끼가 뭔가 잘못 먹은 것이 분명하다. 단순히 나랑 장난치자고 이러고 있는 건가?

차오르는 황당함을 뒤로 감추며 키보드를 두드린다.

[방해하지 말고 가, 나 바쁜 사람이야.]

[쉿, 한낱 인간에게 거부할 권리 따위는 없지롱!]

"이, 이게 뭐야...?"

지금 이게 뭐하는 꼴인지 모르겠다. 안 그래도 독자분들에게 선물할 200화 이벤트를 준비해야 해서 시간이 빠듯할 지경인데, 자신을 신... 그래, 신이라고 말하는 정신병 돋는 크래커와 대화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신? 알았으니까 딴 애 거나 크래킹 해, 나 시간 없어 나올 돈도 없고.]

그렇게 글을 작성한 뒤 삐딱한 시선으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자, 자칭 '신'이라는 녀석의 글이 다시금 올라온다.

[우리는 시간이 아주 많아, 너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고. 그러니까 우리의 목적을 위해 너에게 주어진 흐름을 바꿀 거야.]

"이게 뭔 똥 같은 소리인지... 어처구니가 없네."

이 녀석과 계속 이야기해봤자 시간 낭비라는 생각에 앉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 바빠, 너 계속 이러면 그냥 피시방 가서 쓸란다. 너 알아서 해 봐.]

"아... 이 녀석 내 정보까지 크래킹한 것이 아닐까?"

순간 크래커가 내 개인정보를 모두 크래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다급해져 온다.

꾸욱- 위이이이- 위이잉- 후웅...

컴퓨터의 전원 버튼을 눌러 강제로 종료시키고, 인터넷 선과 콘센트에 연결된 코드를 모두 뽑아내고 외장하드마저 분리해낸다.

"음, 컴퓨터를 포멧해야 하는 건가. 오래 쓰기는 했는데, 그래도 개인 정보가 중요하겠지."

쓰던 글을 마저 작성하기 위해 피시방에 가기로 결정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디어 노트를 챙긴 후, 주섬주섬 옷을 입고 현관에 다가가 신발을 챙겨 신었다.

"으음... 피시방에 쓰는 돈이 좀 아깝긴해도... 독자 분들과의 약속은 지켜야 하니 어쩔 수 없나?"

탁- 탁-

신발을 바닥에 툭툭 쳐서 발을 완전히 집어넣고 도어락 버튼에 손을 막 가져다댈 때였다.

후웅... 위이잉- 위이이이-

"......"

컴퓨터가 켜진다.

"......"

그대로 시선을 돌려 콘센트를 바라본다.

"......"

코드는 모두 뽑혀있다.

"...뭐, 뭐야...?"

신발을 벗는 것도 잊어버린 채, 홀린 듯한 발걸음으로 컴퓨터 앞으로 다가갔다.

츠팟- 우우웅-

모니터가 켜지고, 텍스트 파일이 자동으로 실행된다.

"......?"

녀석과 나눈 대화가, 저장 따위는 한 적도 없는 그 내용이 컴퓨터를 끄기 전의 그대로 쓰여 있다.

====================

[지우지 마.]

[넌 누군데?]

[신.]

[방해하지 말고 가, 나 바쁜 사람이야.]

[쉿, 한낱 인간에게 거부할 권리 따위는 없지롱!]

[신? 알았으니까 딴 애 거나 크래킹 해, 나 시간 없어 나올 돈도 없고,]

[우리는 시간이 아주 많아, 너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고. 그러니까 우리의 목적을 위해 너에게 주어진 흐름을 바꿀 거야.]

[나 바빠, 너 계속 이러면 그냥 피시방 가서 쓸란다. 너 알아서 해 봐.]

====================

커서가 깜빡이고 있는 것이 멈춘 것이 아니라 여전히 실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

멍하니 그 글을 바라보고 있는 나의 시선에 다시금 -

[이제 대ㅎ]

글자가 저절로 쳐지는 모습이 들어온다.

[이제 대화 좀 해볼래?]

"......"

귀신이라도 들린 듯한 기분에, 홀린 듯 컴퓨터 앞의 의자에 주저앉았다. 키보드 위로 올리는 두 손이 바들바들 떨려온다.

[누구세요?]

[신. 정확히는 '신들'이지.]

정말 귀신이라도 들린 걸까...? 오묘한 기분이 온몸으로 덮쳐 들어온다.

[저한테 왜 이러세요, 다른 사람도 많이 있는데 왜 하필 저인 거죠?]

[가장 변태적이고 치사한 놈과 접촉을 시도했는데, 지금 이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너와 연결된 거야.]

"......"

[...받아들이기 힘드네요.]

[사실이기에 네가 선택된 것이니 부정 따위는 안 받아.]

"...뭐 이딴 신이 다 있어?"

대놓고 험담을 듣는 게 기분 좋을 리가 없었기에 투덜거리자, 내가 다음 글을 쓰기도 전에 텍스트 문서 위로 '신'이라는 녀석이 글을 쳐온다.

[불만 있으면 네가 신 하든가.]

[아닙니다...]

"아주 제멋대로구먼."

혀를 끌끌 차다가 문득, 글을 친 것이 아니라 혼잣말한 내용에 '신'이 답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소름이 돋아오는 팔을 문지른다.

[그러니까 불만 있으면 네가 신이 되든가, 짜샤!]

[......]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대는 내가 혼잣말하는 내용까지 다 알아듣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내가 아까부터 중얼거리던 말을 다 들었다는 소리인데...

불길한 기분이 들어오는 것을 애써 쫓아 버리려 노력하며 모니터에 집중한다.

[이 짓도 못하겠네, 네 앞에 있는 이... 그... 사각형... 그...]

[모니터요?]

[그래, 모ㄴ]

무언가 망설이는 듯해 짐작으로 모니터라고 알려주니, 기다렸다는 듯이 빠른 속도로 글이 쳐져 온다.

[그래, 모니터!]

[뭔지 모르셨구나.]

놀리는 듯한 어조로 문장을 작성하니, 잠시 반응이 없다가 다시금 글을 쳐온다.

[모... 모니터라는 것에 손을 바짝 붙여 볼래?]

뜬금없이 손을 대라는 말에 조금 의심스러웠으나, 그 말과 동시에 손을 모니터로 가져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 것은 이미 그 위로 손을 올린 후였다.

몸 주위로 이상한 빛이 떠오른다. 빛과 함께 창문도 닫혀 있어 바람 한 점 없을 자취방 안으로 세찬 바람이 몰아쳐 온다.

"...어?"

방 안의 조그마한 물건들은 그 바람에 의해 이리저리 나 뒹굴고, 나를 감싸오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빛의 강도가 점점 더 거세어져 눈을 제대로 뜰 수조차 없게 되었다.

그렇게 몰려드는 빛에 의해 눈이 저절로 감기고, 나를 감싸는 바람이 더욱 강해져 온다.

파아앗 - 쿵!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와 함께 몸이 붕 뜨는 듯한 기분이 들고, 점점 빛이 사라져 가는 것과 동시에 단단한 바닥에 엉덩이를 부딪쳤다.

"아야야... 여기는...?"

눈을 뜨자, 나를 향해 싱글벙글 웃고 있는 여인과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는 여인을 발견하고, 그 중 싱글거리고 있던 여인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반가워. 나는 죽음과 황혼의 여신, 엑시투스. 그리고 저쪽은..."

"바탈리아님이라 부르거라."

"...전쟁과 불화의 여신 바탈리아라고 해, 우리는 너를 여기로 불러온 이 세계의 '신'이야."

나는 도저히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Guardians of Dragon Nest-

============================ 작품 후기 ============================

'전쟁과 불화의 여신 바탈리아'와 '죽음과 황혼의 여신 엑시투스'는 신들이 창조해낸 세계의 전역에 오랫동안 이어져 온 평화로 인하여 자신들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머리를 맞댄 채로 고민하고 있었다. 고심 끝에 두 여신은 한 가지 방안을 떠올렸다. 바로 이 세계에 혼란을 불러올 자를 데려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자는 지금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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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포도토끼입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프롤로그는 제 소설인 (구)드둥수 중 외전 격인 '포도토끼와 샤방토끼'에서 대부분 발췌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구)드둥수의 게임 형식이 아닌 판타지+게임의 퓨전 형식으로 진행 됩니다. (사실 구둥수도 퓨전으로 바꾸어 진행하려 했었다는 것은 안 비밀)

새로운 드래곤 둥지의 수호자들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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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아스터님,페이탈로스님,rkrksk님,코이86님,사신무극님,와이쥬엘님,Quritelxp님,smone님,1and1님,Optolove님,Death_다크님,그라센 디 이드님,LunaticF님,Ulpius님,구름터의버들님,미리린님,알레이스터 크로울리님,블루스타즈님,오덕군자님,뉴타입무명님,DJ대중님,시로네님,ppk12님,天空意行劍님,엔틱보이님,광서자님,샤이닝쿠마님,Raik님,아크프리트님,구름터의버들님,rrrt1234님,소르니아님,didiren님,별을찾는여행자님,l아쳐l님,led2zepp님,Aㅏ잉여롭다님,마신제라드님,한룡and어스트님,이호성성님님,로미루스님,짝퉁족제비님,별거없어요님,데빌크로우님,마라마느님,마나리스님,holicnovel님,kiadreas님,펄미스트님,슈프림케익님,낙월희님,오시노님,giffmoneyss님,리자오르님,천화백부님,변함없는하루님,블랙크라운님,14C2A58H2님,철가면님,망각의샘님,검의마리아님,사트로넬라님.

외에도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여러분 덕에 저의 예상보다 빠르게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새롭게 연재 되는 드둥수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사랑해요, 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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