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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둥지의 수호자들-4화 (4/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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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을 자아내는 여신

[드래곤 둥지의 수호자들]

Start.

반항심 어린 눈으로 엑시투스를 바라보고 있으니, 여태껏 옆에서 말없이 우리를 지켜만 보고 있던 '바탈리아'라는 전쟁과 불화의 여신이 흐르는 듯한 어조로 말을 건네온다.

"인간의 몸으로 신이 된 자는 여럿 있었느니라."

"...네?..."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니, 바탈리아의 무심한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말대로 다. 인간이 신이 된 경우는 네 생각보다 많다, 다만 너희에게 주어진 정확한 증거나 사례가 없기에 모르고 있었을 뿐."

"...그럴 수가..."

딱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분명 그러한 이야기는 여러 전설이나 신화 등을 통하여 접해오긴 했으나, 그저 그 정도로만 치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존재들은 무려 '신'이었기에, 그들이 이야기하는 내용이 거짓일 리가 없었으므로 놀라움으로 부릅떠지는 눈꺼풀을 막기가 힘들었다.

다른 이야기를 해줄 줄 알았으나, 그것이 바탈리아가 꺼낸 이야기의 끝이었고, 잠시 멍- 하니 있는 나를 향해 엑시투스가 다시금 말을 건네왔다.

"그러니까, 바탈리아가 하는 말의 뜻은 아니꼬우면 니가 신이 되라는 거야."

"......"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나보고 신이 되라니. 엄두조차 나지 않았고 오히려 두려울 정도였다.

"우리가 다른 신들에게 들키지 않고 저 정도의 일을 꾸며내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약하면 조용히 닥치고 보기나 해, 무려 신이 보여주는 한 편의 영화잖아?"

영화라니... 저 비극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면 절대 그 정도로 생각되지 않는 것이 정상일 터였다. 이 자리에 있는 여신들은... 아니, 내가 알던 '죽음의 신과 전쟁의 신'은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결코 정상이 아니었다.

"하,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얼굴에 뻔히 보이는데? 야, 인간아. 너희의 그 도덕심이며 뭐 그 외에 귀찮은 것들을 왜 우리가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것들은 모두 너희끼리 동족을 죽이지 않기 위해 만들어 낸 것이 시작이라고. 신에게 의미가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거야?"

"......"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내 기준에서는 역시 옳은 것이 아니었지만, '신'의 입장에서 보자면 내가 생각하고 행동해온 모든 일은 그저 하찮은 피조물의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강하게 파고들었기 때문이었다.

"알아들었나 보네? 그럼, 집중해서 보기나 해. 저건 그냥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야. 내가 보여주고 있는 저 이야기가 끝나게 되면 저 속의 주인공은 네가 되는 거라고, 이 덜떨어진 인간 놈아."

"......"

어쩔 수 없이 화면에 보이는 소년과 소녀의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Guardians of Dragon Nest-

소년과 소녀는 그 후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고 가는 대화 속에 루시아가 알게 된 것은 부모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결국 소년은 고아가 되었으며, 하여 달리 갈 곳이 없었기에 드래곤 로드로부터 아담한 집 하나를 얻었고, 그곳에서 살고 있다는 것과 소년이 유별난 재능이나 강한 힘을 가지지 못하였기에 주위에 사는 또래의 해츨링들로부터 꾸준한 괴롭힘을 당해왔다는 우울한 사실들뿐이었다.

루시아가 딱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그런 그를 보고 있으니 '그런 눈빛도 익숙해' 하며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도 씁쓸한 웃음을 짓는 소년이었다. 그런 소년의 반응에 다시금 속이 터진다는 듯한 얼굴로 버럭- 소리치는 소녀.

"그러니까! 일방적으로 괴롭힘당하지만 말고 제대로 한 방 먹여주란 말야! 이 멍게! 해삼아!"

"멍게나 해삼이라는 말도 익숙해, 하하하."

"아오오! 이 바보 자식!... 그래! 좋아, 결심했어!"

"응? 결심하다니, 뭐를?"

앙증맞은 주먹을 들어 올리다, 무언가를 결심했다고 외치며 결연한 표정을 떠올리는 루시아를 보며 의아한 눈길을 보내는 소년. 그런 소년을 보며 루시아가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으며 가느다란 손가락을 좌우로 흔든다.

"네가 덜떨어진 바보라는 것은 충분히 알았으니까! 앞으로 이 누님이 너를 지켜줄게!"

"에... 지켜주다니, 애초에 내가 사는 지역과 네가 사는 지역이 가까운 것도 아니잖아."

의기양양하게 꺼내는 그 말에 소년이 떠오르는 사실 그대로를 말하며 조용히 반박하자 '윽!' 하고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짓다가, 얼른 수습하는 소녀다.

"그, 그야! 내가 여기로 이사오면...!"

"안 될걸, 너희 부모님이 그런 걸 허락해주실 리도 없을 테고."

또다시 '윽!'하고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으며 '꽤 하잖아, 이 녀석'하고 영문 모를 말을 중얼거리는 소녀. 그런 소녀를 바라보는 소년의 눈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순진한 눈빛이기에 소녀는 소년에게 무어라 구박할 수조차 없었다.

"하아, 그럼 가끔 들를 때마다 널 괴롭히는 애들을 내가 혼내줄게!"

"뭐...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기는 하지만."

너무나도 담담한 소년의 태도에 소녀는 조금씩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 소년은 자존심이라는 것도, 분노라는 감정도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혼자서 잘 적응해가며 살아가고 있는 소년에게 자신이 괜히 끼어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잠시 머리카락을 쥐고는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내는 소녀를 바라보던 소년이 접시 위에 놓여있던 겉모양이 망가진 스테이크를 잘게 썰어내어 포크째로 소녀에게 건네준다.

"뭐 안 좋은 일이나 고민이 있으면 일단 이거 먹고 생각해."

"너 때문이잖아! 이 말미잘 같은 녀석아!"

말미잘이라는 둥 험한 소리를 해대는 자신에게 '말미잘이라는 말도 익숙해' 하고 하하- 웃는 소년을 본 소녀가 '으아아아악-!'하고 소리치며 자신의 사파이어 빛 머리카락을 쥐어뜯는다. 그러자 자신의 머리카락을 세게 쥐어뜯는 소녀의 손을 소년이 강하게 잡아온다.

"그러지 마, 로드께서 여자의 생명은 머리카락이라고 하셨어."

진지하게 말하는 소년의 눈빛에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그를 멍- 하니 바라보던 소녀가 정신을 차리고는 세차게 고개를 젓는다.

"느, 느끼하잖아! 버터라도 한 움큼 집어먹은 거 아니야? 이 마... 말미잘아!"

"와우, 말미잘 같은 녀석에서 말미잘로 업그레이드된 건가? 아니, 다운그레이드인가?"

나이에 맞지 않게 능글거리는 소년을 보고 분통이 터진다는 듯 다시 '으아악!'하고 소리 지르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뜯기 위해 붙잡는 소녀의 손을 다시금 강하게 잡아오는 소년이다.

"그거 하지 말라고, 루시아."

"..... 흐, 흥! 네가 무슨 상관이야! 바보 주제에, 베에-!"

다시금 진지하게 바라보는 소년의 눈빛을 슬그머니 회피하면서도 베에- 하고 혀를 내밀어 보이는 소녀. 그런 소녀의 모습이 귀엽다는 듯이 소년이 하하- 웃어 보이자, 소녀가 '윽!'하고 짧은 헛바람을 들이키더니 고래고래 소리친다.

"바보! 너, 너 몇 살이야!!"

"나? 로드께서 말해주시기로는 올해로 120살이라고 하던데."

"으에에!? 나보다도 어리잖아! 앞으로 누나라고 불러, 이 꼬맹아!"

"헤에, 너보다 어린 나보다 키도 작은 주제에?"

자신보다 어린 레이어드의 나이를 알게 되자 앞으로 누나라고 부르라면서 눈을 치켜뜨는 루시아의 머리 위로 손을 올리고는 '키도 작은 주제에' 하며 하하 웃어 보이는 소년. 그에 루시아가 '이이익 -'하고 소년의 손을 탁! 하고 쳐내고는 크게 소리친다.

"키가 작은 게 뭐 어때서! 나보다 훨씬 약한 주제에!"

소녀는 말해놓고 아차, 싶은 기분이 들기는 했으나 어린아이 특유의 고집 때문인지 자신의 말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그런 소녀를 말없이 바라보던 소년이 자신의 내쳐진 손과 루시아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다, 이내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사과해온다.

"그래, 미안. 앞으로 이런 말은 하지 않을게."

"........"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스테이크를 들고 있는 포크를 루시아에게 다시 내민다.

"일단 이것 좀 먹어보지 않을래? 나도 먹어 봤는데 꽤 맛있더라고."

"싫어! 약한 주제에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자신의 말이 상대방에게 상처가 된다는 것은 루시아도 알고 있었으나, 한 번 불붙은 소녀의 고집은 꺾일 줄을 모르고 소년의 상처를 잔인하게 후벼 팠다.

"꼭 먹으라는 게 아니고 먹어보라고 말한 것뿐인데..."

"그게 그거잖아! 이 바보야!"

"..... 으응, 알았어."

낯빛이 눈에 띄게 어두워진 소년이 포크를 테이블 위로 조심스럽게 내려놓는다. 그제야 조금씩 화가 풀리기 시작한 것인지 어두운 분위기가 된 소년의 눈치를 살피는 소녀. 후회가 조금씩 밀려오기 시작했으나, 이미 내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었다.

두 어린 해츨링들 사이로 숨이 턱 막히는 침묵이 흘러간다.

소녀는 뭐라고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래서 소년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싶은 마음은 존재하고 있었지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도통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소녀는 평소 화술 공부를 게을리 한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소년은 말없이 자신의 앞에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소녀를 보고는, 약간 슬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 소년의 쓸쓸한 미소에 소녀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스스로 화를 주체하지 못한 채로 던지듯이 뱉은 말이 매서운 칼날이 되어 소년의 심장을 후벼 팠음을, 방금 자신이 오기 전까지 소년을 괴롭히고 있던 아이들이 때리고, 독설을 내뱉었던 것보다,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고 기뻐하고 있었을 쓸쓸한 소년에게 더할 나위 없는 큰 상처를 주었음을 깨달았다.

그 불편한 침묵을 먼저 깬 것은 다름 아닌 소년이었다. 소녀가 당황하건 말건, 소년은 스스로 고개 숙여 눈앞의 소녀에게 사과했다. 소년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낮추는 법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인지는 몰라도, 소년은 쓸쓸한 미소 한 줌을 입가에 베어 물고 있었다.

소년이 고개를 숙이면서 사과를 해오자, 소녀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분명 더 아픈 것은, 더 심하게 상처받은 것은 소년일진대, 먼저 자신에게 사과를 해오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언제나 사랑을 받고 언제나 칭찬을 받았으며, 자신을 향하는 언제나 호의적인 시선과 호의적인 태도만을 보아왔던 어린 소녀는 눈앞의 소년에게서 느껴지는 쓸쓸한 표정과 자신을 낮추는 분위기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소녀의 작은 손이 바르르 떨렸다. 후회하고, 후회했다. 장난이 섞인 것이기는 했지만 계속 '바보, 바보' 라고 놀려대기만 했던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가는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아무도 자신에게 '바보'라거나 비슷한 말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소녀는 당황스러움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자신이 바보라고 생각한 적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소녀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제일 머리도 나쁘고 성격도 나쁜 바보라고 생각했다. 자기보다 더한 바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까지 생각했다. 그렇게 소녀는 깊은 자괴감에 빠졌다.

소녀의 당황하는 표정과 어찌할 줄 모르는 몸짓을 눈치챘던 것인지, 소년이 어찌할 줄 몰라 꼼지락거리는 소녀의 작은 손을 마주 잡는다. 소녀는 당황했지만, 소년에게 또다시 상처를 주게 될까 봐 손을 쳐낼 수가 없었다. 소년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을 때 들어온 묘한 기분에 자신도 모르게 소년의 손을 강하게 쳐내었는데, 그 행동도 또한 소년에게 큰 상처를 주었을 거라는 생각이. 아니, 확신이 들었다.

소년은 여전히 쓸쓸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그 표정을 감추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소년에게 너무나도 미안한 감정이 든 어린 소녀는 어떻게 해야 소년에게 진심 어린 사과의 말을 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나 어떻게 말한다고 하든 간에 소년이 입은 마음의 상처는 되돌이키기가 힘들 것만 같았다. 그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사과, 진심 어린 사과라고는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소녀가 이렇게 짧은 순간에 사과하는 법을 터득할 리 또한 만무했다.

심각하게 고민하던 소녀가 소년에게 자연스럽게 사과를 할 수 있는 시점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그렇지만 어린 소녀는 그러한 사정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소녀의 마음을 알아챌 수 있을 리가 없었던 소년이 또다시 선수를 쳤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쩔 줄 모르는 소녀의 손을 잡고 있던 소년이 어색하게 웃고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 친구 하나 없던 소년에게 소녀는 생각보다 큰 의미가 있었기에, 소년이 소녀를 잃고 싶지 않았던 탓이기도 했다.

"미안해, 루시아. 다시는 키가 작다고 놀리거나 하지 않을게, 용서해줘."

불안한 듯 몸을 이리저리 꿈틀대던 소녀의 불편한 움직임이 더욱 심해졌다. 소년은 여전히 소녀의 손을 잡고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패닉 상태에 빠지기라도 한 듯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한 채로 몸을 불편하게 움직이고 있던 소녀가 이내 결심이라도 한 듯 소년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본다.

"레이어드는 약해!"

"...응... 맞아, 나는 약해."

역시나, 지금껏 사과해본 적이 없던 소녀는 끝내 소년에게 자신의 미안한 감정을 전달하지 못했다.

소녀의 입에서 나오는 반복 되는 단어에 소년의 표정이 다시금 눈에 띄게 어두워졌지만, 소년은 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소녀의 말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사파이어 빛 눈동자와 머리카락을 지닌 소녀는 눈앞의 소년을 반짝이는 눈동자로 응시하며 의기양양한 어조로 말을 꺼내었다.

"너는 약해! 그러니까... 루시아가 지켜줄 거야. 그러니까! 커서 어른이 되면 나랑 결혼해, 레이어드!"

탱그랑 -! 팅- 팅- 탱...

자기도 모르게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소년의 옷자락에 스친 포크가 테이블 밑바닥으로 떨어지며 작은 소음을 흘렸다.

-Guardians of Dragon Nest-

============================ 작품 후기 ============================

11화를 돌파하시면 조금씩 가벼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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