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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둥지의 수호자들-7화 (7/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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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을 자아내는 여신

[드래곤 둥지의 수호자들]

Start.

"킥킥..."

엑시투스가 작게 키득거려온다. 이 빌어먹을 여신은 또 무언가를 계획하는 것만 같았다. 그녀를 노려보기라도 하고 싶었지만 온몸이 완벽하게 제압된 나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었다. 그저 이 비극이 어서 끝나기를 바라는 수밖에...

휙-

그 정체 모를 힘에 의해 다시금 고개가 저절로 엑시투스를 향했다. 그녀는 잔인한 미소를 입에 띄워 올리고 있었다. 마치 보란 듯이 손을 들어 올린 그녀는 부드럽게, 아름답게 선율을 타는 것처럼 지휘를 시작했다.

천천히 그리고 느릿느릿하게.

부드럽게 쓰다듬는 것처럼 밀었다가, 강하게 잡아당겨 온다. 허공에 실타래가 있는 것처럼, 죽음의 여신은 무언가를 계속 자아내고 있었다. 비극의 물레가 쉼 없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더없이 진득한 공포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 여신은... 이번에는 도대체 무슨 극본을 짜고 있는 것일까, 누구를 어떻게 희생시키려고 하는 것일까. 공포로 인하여 몸이 바들바들 떨려오는 것이 느껴진다. 그런 나를 보던 잔혹한 여신은 입이 귀에 걸릴 것처럼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휘저어 나의 고개가 다시금 스크린 쪽으로 향하게 했다.

그곳에는 지금까지 봐왔던 것보다 더욱 잔혹한 내용을 담고 있는, 그러한 극본의 첫 페이지가 서서히 펼쳐지고 있었다.

-Guardians of Dragon Nest-

루시아의 처소, 그녀를 침대에 데려다 눕힌 레이어드는 말없이 그녀의 옆에 앉아 루시아가 정신을 차리기를 기다렸다.

탁하게 풀려있는 루시아의 눈동자는 그녀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말해주는 듯하였다. 침대에 누운 루시아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천장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녀의 입이 조그맣게 열렸다.

"거야..."

"...루시아?"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루시아. 문득 불안함이 스쳤지만 레이어드는 그녀가 이대로 정신이 나가 버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고 있던 차였기에, 그녀가 다시금 말하기를 재촉했다. 그러나 그 후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레이어드의 불안감을 더욱 가속하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다.

"죽일 거야. 죽일 거야. 죽일 거야. 죽일 거야. 죽일 거야. 죽일 거야. 죽일 거야. 죽일 거야. 죽일 거야. 죽일 거야. 죽일 거야. 죽일 거야. 죽일 거야. 죽일 거야."

"...루시아! 정신 차리라고!!"

초점이 없는 듯 멍하니 풀어진 눈동자로 누군가를 끊임없이 죽이겠다고 중얼거리는 루시아. 레이어드는 루시아가 말하는 대상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 '드-비샤' 자신의 연인. 루시아는 분명 그녀를 죽이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일 터였다. 수 없이 '죽일 거야'라고 반복적으로 중얼거리던 그녀가 침대에서 스르르- 일어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린다.

"죽일 거야."

"루시아! 제발 정신 차려!"

그녀의 어깨를 잡고 흔들자, 루시아가 초점 없는 눈을 돌려 레이어드를 바라보며 살포시 미소 짓는다.

"레이, 넌 그녀를 사랑하지?"

"...맞아, 난 그녀를 사랑해."

지금껏 살아오면서 루시아의 미소가 이토록 소름 끼쳤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레이어드는 등 뒤로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드-비샤'를 사랑한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었으므로.

"으응... 그렇구나. 그러니까 죽일 거야, 너의 그녀를. 그렇게 되면 레이는 나를 사랑하게 되겠지."

"그게 무슨 소리야, 루시아! 그만 좀 하고 정신 차리라고! 네가 비샤를 죽인다고 해서 내가 너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아니...!"

레이어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루시아가 스르르- 침대에서 일어난다. 레이어드가 그런 그녀의 손을 잡자, 루시아가 빙긋- 미소 짓는다.

"레이가 손을 잡아주니까 너무 기뻐, 그러니까 앞으로도 내 손만 잡게 할 거야. 레이는 내 것이니까... 그 누가 됐건 간에 너를 줄 수 없어."

섬뜩하게 미소 짓는 루시아. 닥쳐오는 혼란스러움을 털어 버리려 애쓰며, 그녀가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도록 그녀의 손을 꽈악- 잡는 레이어드. 루시아가 그런 레이어드에게 빙글빙글 웃음을 지어 보이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린다.

"레이가 손을 잡아주니까 너무 기쁜데... 너무 좋은데..."

뭔가 뒷말이 있음을 짐작한 레이어드의 불안감이 더욱 커지고, 그 불안함은 그대로 들어 맞았다. 섬뜩한 미소를 짓고 있던 루시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너무 좋은데... 지금은 좀 놓을게."

탁-!

그녀가 자신의 손을 쳐 내자, 재빨리 다시 잡아오는 레이. 진지한 눈빛으로 루시아를 바라보며 설득하려 하지만, 이미 초점 없는 루시아의 눈동자는 이미 눈앞에 뵈는 것이 없는 것만 같았다.

"이거 놔, 나는 분명히 말했어. 레이, 놔."

"안 돼, 루시아. 지금 그녀에게 가려는 거잖아. 나를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거야?"

레이어드가 강한 어조로 말하자, 루시아가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그를 응시한다. 그리고는 조용히 입을 열어온다.

"나는."

콰아앙-!!

루시아가 레이어드가 잡고 있던 손을 살짝 휘두르자, 레이어드가 손을 놓치고는 그대로 벽에 날아가 강하게 부딪힌다. 그런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루시아가 그대로 몸을 돌리고는 중얼거린다.

"분명히 말했어."

샤아아아-

그 말을 남기고는 빛무리와 함께 어디론가 사라져 간다. 자신의 몸을 덮친 강한 충격에 어질어질한 정신을 추스르며 레이어드도 품속에 손을 넣어 주문서를 꺼내 든다. 그리고 커다란 소음에 루시아의 방문을 똑똑- 두드린 아르텐시오가 문을 열고 들어와, 형편없이 쓰러져 있는 레이어드의 입가에 피가 흐르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고는 헐레벌떡 뛰어온다.

"레이어드! 이게 무슨 일이니! 루시아는?"

".....아르텐시오님, 서... 설명은 나중에...큽..!

울컥-

한 웅큼 피를 뱉어낸 레이어드가 주문서를 그대로 찢어낸다. 잠시 혼란에 빠져있던 아르텐시오가 이제 막 시전 되기 시작한 이동 마법의 범위 내로 서둘러 들어온다.

샤아아아-

이동 마법이 완료되고 스크롤이 무용지물이 된 직후, 두 드래곤이 목격한 것은 방금 막 드-비샤를 향해 마법을 시전 중인 루시아였다.

"안 돼, 루시아!"

레이어드가 재빨리 달려가려 하지만, 루시아의 마법이 한 발 더 빨랐다. 그래도 드-비샤도 그녀 나름대로 재빨리 대응한 덕분인지, 그녀로부터 연보라빛의 투명한 막이 생겨나 닥쳐오는 루시아의 마법을 막아내고 있다. 그러나 그 마력의 크기가 너무나도 차이가 나는 탓인지, 마법 방어막이 밀려오는 루시아의 공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금이 가며 조금씩 부서지는 모습을 보인다.

다행히도 그 짧은 찰나의 순간이 드-비샤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레이어드가 드-비샤를 안고 마법의 범위 밖으로 넘어지듯 회피한 것. 마법 방어막이 사라지자, 벼락으로 이루어진 강이 드-비샤가 있던 자리를 모조리 파괴하며 지나간다.

"레이이- 왔어?"

자신이 행한 일은 신경 쓰지도 않는다는 듯이 드-비샤를 구출해낸 레이어드를 보며 빙긋- 미소를 짓는 루시아. 그렇게 미소 짓는가 싶더니, 다시금 표정을 딱딱하게 굳힌다.

"그런데, 왜 그쪽에 있는 거야? 이리 와, 레이. 그녀는 죽어야 해. 그래야 네가 날 사랑할 거잖아?"

그렇지? 하고 고개를 기웃거리는 루시아의 입가로 다시금 잔인한 미소가 번져 나간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나자, 그녀가 있던 자리에 번개로 이루어진 작은 화살이 꽂힌다. 전격의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보자, 그녀의 어머니인 아르텐시오가 무척이나 화가 난 얼굴로 루시아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엄마?"

"루시,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니!"

루시아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태어난 이래 그녀의 어머니인 아르텐시오는 루시아 자신에게 단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 상황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의 어머니인 아르텐시오가 화를 내는 것도 모자라서 공격 마법의 대상을 자신에게 향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루시아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아르텐시오에게서 시선을 돌려 버린 채, 드-비샤와 레이어드에게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천천히 다가간다.

"레이, 그녀에게서 떨어져. 그렇게 붙어 있으면 너까지 다치게 된단 말야."

빙긋빙긋 웃으며 다가오는 루시아를 바라보는 드-비샤의 어깨가 자그맣게 떨리고, 레이어드가 자리에서 일어나 루시아의 앞을 막아선다.

"루시아! 그만해, 너를 지금 도를 넘어섰어!"

"...도?"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레이어드를 바라보며 다시금 고개를 갸웃거리던 루시아가 빙긋- 웃으며 레이어드에게 다가가 그를 다정하게 껴안는다.

"루... 루시아?"

당황한 그가 그녀의 이름을 작게 부르니, 레이어드를 껴안은 모습 그대로 루시아가 그의 귓가에 나지막하게 속삭인다.

"난 그런 거 모르는데."

파지지직 -!!!

세차게 떨리는 레이어드의 몸 전체로 매서운 전격의 기운이 퍼져 나간다.

"꺄아아아악 -! 레, 레이 -!"

"루시아, 그만! 그만하거라!!"

울려 퍼지는 드-비샤의 비명과 절망스러운 음성으로 크게 소리치는 아르텐시오가 바라보는 앞에서, 레이어드가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스르르 - 털썩.

레이어드가 힘을 잃고 쓰러진다. 드-비샤가 달려와 쓰러진 레이어드를 흔들며 급히 치유 마법을 시전한다.

"레이, 레이! 정신 차려요, 레이!"

번플루 일족은 저주 계열에 특화된 드래곤이었기에, 그녀가 시전하는 치유 마법의 빛은 극히 미약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드-비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한도로 레이어드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마력을 집중했다. 잠시 그런 그와 그녀를 바라보던 루시아가 드-비샤에게 눈길을 향한다.

"너 때문이야."

"으... 으윽... 으흑...! 루시아렌!"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는 연보라빛의 눈동자로 눈앞의 루시아를 노려보는 드-비샤. 그런 그녀의 도전적인 눈빛에 루시아의 굳은 얼굴 위로 또다시 잔인한 미소가 떠오른다.

"너, 눈빛이 마음에 안 드는데?"

그렇게 말하며 드-비샤를 향해 손을 들어 올리는 루시아. 드-비샤는 레이어드를 치유하는 데에 모든 마력을 쏟아 붓고 있었기에 이번에 루시아의 공격이 들어온다면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 드-비샤가 눈을 체념한 듯 감으며 고개를 푸욱- 숙인다.

짜악-!

그때, 뺨을 후려갈기는 소리가 적막을 깨버렸다.

루시아에게 걸어온 아르텐시오가 그녀의 뺨을 쳐버린 것. 힘없이 쓰러진 레이어드를 제외한 모두가, 심지어 아르텐시오 자신조차 도 놀라서 루시아의 뺨을 친 자신의 손을 잠시 멍- 하니 바라본다. 그러나 가장 먼저 정신을 수습한 아르텐시오가 루시아의 손을 강하게 잡아온다.

"돌아가자, 루시. 네가 지금 하는 일은 옳지 않아. 어서 돌아가자꾸나."

"...말도... 안 돼... 어... 엄마가 나를 때릴 리가... 그렇잖아?"

허탈하게 웃는 루시아를 바라보며 아르텐시오가 착잡한 표정을 짓는다. 너무 곱게 키웠던 탓일까, 하늘 높은 줄을 모르고 자라난 자신의 딸은 너무나도 이기적이었다. 후회가 밀려왔다. 엄하게 키웠어야 했다. 이곳에서 일어난 비극 모두가, 너무도 오냐오냐 키운 자신의 탓이었다.

그러나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루시아를 제대로 된 드래곤으로 바꾸어 놓아야 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루시아의 손을 잡고 드-비샤와 레이어드가 함께 이동되지 않도록 범위 내에서 벗어났다. 그리고는 곧바로 이동 마법을 시전하려 했다.

파앗-

그러나 아르텐시오가 시전하려 한 이동 마법은 루시아의 가벼운 손짓 한 번에 무효화 되어 버렸다. 그리고 루시아가 다시금 손을 살짝 흔들자, 아르텐시오의 손발이 무언가에 구속되기라도 한 듯 허공에 고정되어 버렸다.

"루... 루시! 이게 무슨 짓이니! 당장 이것을 풀거라, 루시!"

딸의 행동에 경악하며 마력을 집중하여 풀어내려 해보지만, 무언가에 묶인 듯 허공에 멈추어 있는 손과 발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르텐시오의 몸을 구속한 루시아가 드-비샤와 레이어드의 앞으로 걸어가 쭈그리고 앉는다. 그리고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레이어드를 지긋이 바라본다. 그렇게 한참 동안 레이어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드-비샤의 연보라빛 눈동자를 응시한다.

"흐... 흐윽...! ...흐윽...!"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으면서도 루시아를 죽일 듯한 눈빛으로 노려보는 드-비샤. 그런 그녀의 눈동자를 조용히 응시하던 루시아의 입이 조그맣게 열린다.

"너 때문이야."

"으... 으흑...!"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드-비샤를 바라보는 사파이어 빛의 눈동자는 너무도 차가웠다. 시린 그 눈빛에 맞서는 드-비샤의 연보라빛 눈동자 또한 흔들림 없이 루시아의 시선을 마주했다. 그렇게 서로를 마주 보고 있던 차에, 루시아가 크게 소리친다.

"다 너 때문이라고! 왜 그런 눈으로 나를 보는 건데? 마음에 안 들어!"

퍼어억-! 쿠당탕탕-!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루시아가 드-비샤의 가슴팍을 발로 걷어차 버리자, 드-비샤가 그대로 날아가 몇 번이고 땅에 부딪히며 구른다. 그리고 그녀가 날아간 목적지로 이미 블링크 마법을 통해서 이동해 있던 루시아가 그녀가 도착하자마자 발을 높이 들어 올려 그녀의 배를 내리찍는다.

퍼어억-!

"으흐윽...!"

드-비샤의 가녀린 입술 위로 고통에 찬 음성이 새어 나온다. 그 고통스러운 신음에 잔인하게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띤 루시아가 곧 드-비샤의 몸 이곳저곳을 짓밟는다.

드-비샤의 눈동자에 점점 힘이 풀려간다. 그때, 저항도 하지 못하고 있는 드-비샤를 사정없이 짓밟고 있던 루시아의 등 뒤로 다가온 누군가가 그녀를 강하게 껴안는다.

"그만... 그만... 해... 루시아..."

너무나도 듣고 싶었던 이 목소리, 너무도 느끼고 싶었던 이 감촉, 너무 그리웠던 이 설렘까지.

레이다. 레이가 나를, 자신의 의지로 나를 껴안아 주고 있다. 역시 드-비샤를 없애 버리면 레이가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이 맞았던 것이다!

루시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을 먼저 껴안아주는 레이에게 환하게 웃어주기 위해서 고개를 돌렸다.

"...레... 레이...?"

정신이 번쩍 들었다. 두려움에 손이 저절로 부들부들 떨렸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레이의 몸과 얼굴은 엉망진창이었다. 그의 입가에 범벅된 붉은 핏자국, 검게 그을린 자국투성이에다가 심각한 화상을 입은 목. 그리고 배에 난 큼직한 구멍에서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는 피까지.

당황이 온몸으로 덮쳐들었다. 그녀의 사파이어 빛 눈동자에 다시금 초점이 돌아왔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 보았다. 느릿느릿하게, 시간이 거의 멈춘 것처럼.

그렇게 자신의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는 루시아의 시야에 주변 광경이 들어온다.

자신의 마법에 의해 구속되어 있는 엄마, 아르텐시오. 새까맣게 죽어 버린 대지와 나무들. 자신의 발밑에서 정신을 잃은,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 드-비샤. 그리고 자신을 껴안고 있는,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심각한 상태처럼 보이는 레이어드까지.

털썩-

"아... 아니야... 이... 이런 건... 내가 원한 게 아닌데..."

그 자리에 주저앉은 루시아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불안한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린다. 그녀를 뒤에서 껴안고 있던 레이어드는 루시아가 갑작스레 자리에 털썩- 주저앉자 그녀의 등에 상처를 부딪치며 고통스러운 신음성을 내뱉었다.

"크읍... 후우..."

아픔을 억지로 참는 레이어드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루시아가 그를 돌아보며 눈물을 흘리기 일보 직전이 되어 애타게 호소한다.

"미안해, 미안해, 레이. 정말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내가... 내가 원한 건 이런게 아니었는데...! 미안해...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레이어드를 향해 애타게 용서를 빌던 루시아가 자신의 사파이어 빛 머리카락을 다시금 쥐어뜯으며 오열한다.

"내가... 내가 잘못했어...!"

"...루시아."

레이어드가 계속해서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있는 루시아의 손을 강하게 잡아온다. 그에 루시아가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는 사파이어 빛 눈동자로 레이어드를 바라본다. 잠시 그런 그녀의 눈을 바라보던 레이어드가 힘없이 미소 지었다.

"로드께서 말씀하시길... 여자의 생명은 머리카락이라고 하셨어."

울컥-

그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레이어드의 입가로 한 움큼의 피가 울컥- 올라와 그가 입고 있던 옷이 피범벅이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향해 힘없이 웃어 보이는 그를 바라보던 루시아는 결국 눈물을 쏟아 낼 수밖에 없었다.

-Guardians of Dragon Nest-

============================ 작품 후기 ============================

11화를 돌파하시면 조금씩 가벼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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