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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둥지의 수호자들-11화 (1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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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을 자아내는 여신

[드래곤 둥지의 수호자들]

Start.

음울한 눈빛으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와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웃음을 터트리는 엑시투스였다.

"도대체 왜..."

"이게 다 너를 위한 극본이었단다."

"아니... 어째서..."

"그런 질문은 필요하지 않아. 지금 네게 필요한 것은 그따위 질문이 아니라, '이제 어떻게 할 거죠?'가 맞는 질문인 거야."

"......"

문득 내가 처한 상황을 깨달았다. 가만히 있어도 절대적인 을의 위치에 자리해 있으면서도 죽음의 여신에게 대들었다가 단숨에 제압당해 버렸다. 그렇지만... 역시 이와 같은 상황이 반복되더라도 나는 전과 같은 선택을 할 것 같았다.

"자, 저기 쓰러져 있는 애 보이지? 거의 450년이 다 되어갈 동안 지겹도록 본 레이어드라는 돌연변이 드래곤 말이야."

"......"

내가 대답을 하건 말건, 그녀는 잔뜩 신이 난 어조로 말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었다.

"자, 이제 너의 이름은... '잊어'."

"......?"

엑시투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머릿속으로 무언가가 파고들어 헤집는 듯한 기분이 들어왔다. 그 묘한 기분에 잠시 혼란스러워하다가 정신을 차리니.

이름이 기억나질 않았다.

'내... 내 이름이... 뭐였지...?'

더 큰 혼란이 머릿속으로 짓쳐 들었다.

나는 누구지?

나는 누구였지?

내 이름이 뭐였지?

마치 백지가 된 것처럼 새하얀 그 기억에 몸이 저절로 떨려오고, 그 이유로 인하여 '혹시...' 하던 생각이 절망적이게도 확신으로 바뀌어 버렸다.

눈앞의 이 잔인한 여자는 '신'이다.

'잔인하다' 어쩌면 이것은 그녀가 말한 대로 인간들 사이에서나 통용되는 말일 수도 있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은 인간을 창조해낸 신 앞에서 너무도 무력했다. '신'은 개념이라는 것에 얽히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지금 내 눈앞에서 한 바퀴 빙그르르- 돌며 웃어 보이는 신은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었다.

"그래그래, 생각이 안 날 거야. 아주 깨끗이 지워버렸거든."

"...제 이름을 왜..."

"그야, 너는 이제부터 '레이어드'가 될 거니까?"

불행히도 예상이 들어맞았다. 화면에 비추어진 레이어드와 드-비샤는 오히려 죽지 않았다는 것이 의아할 정도로 상당히 심각해 보였고, 이 잔인한 두 여신은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극본을 짜왔던 것이다.

한 마디로 끔찍한 비극의 두 남녀가 된 연인은 모두 여신의 극본에 의해 놀아난 것이었다.

"자, 그럼... 앞으로 네가 해야 할 일을 말해줄게. 간단해! 지금껏 너의 속마음 깊숙히 숨겨왔던 파괴적인 본성을 이끌어내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는 거야. 그래, 네가 하고 싶은 모든 것들을."

"...제가 그런 일을 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응! 당연하지, 왜냐하면 너는 가장 변태 같고 치사한 인간이니까?"

"......"

서러웠고, 분노가 치밀었다. 이렇게 잔혹한 신으로부터 그러한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자체가 너무도 수치스러워서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네가 이 대륙의 판도를 뒤집어엎으면 엎을수록, 나와 바탈리아의 영향력은 점점 강해지겠지. 절규가 메아리쳐 바탈리아의 힘을 크게 올려 줄 거고, 셀 수도 없이 많은 죽은 자들이 나만이 드나들 수 있는 저승의 차원으로 유입되겠지. 음... 생각만 해도 신이 나는데?"

"...솔직히 말해서 저는 자신이 없어요. 제가 볼 때 당신은 미쳤어요, 신에게 이런 개념이 소용없다는 것은 알지만... 저는 인간이에요, 그것도 평범한. 도대체 뭘 믿고 저한테 이 일을 맡기려는 거죠? 저는 못하겠어요."

이를 악물고 말하였건만, 나를 바라보는 엑시투스의 표정은 변함없이 해맑았다.

"아아, 그래그래. 그렇게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닐 거라고 봐. 그렇다면 내가 제안을 하나 할게."

"...제안...요?"

"그으래! 제안!"

"...무슨 제안이죠...?"

손바닥을 짝- 마주쳐 소리를 내보이며 싱긋- 웃는 엑시투스. 여신의 얼굴 위로 루시아렌의 표정이 겹쳐 보이는 것은 왜일까... 설마, 그 섬뜩하게 웃던 표정마저도 엑시투스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났던 것일까?

잠시 딴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엑시투스가 다시 말을 걸어온다.

"잡생각 그만하시고요? 내가 할 제안은 이런 거야. 너의 본성인 잔인함과 치사함 그리고 그 왕 변태 같은 점을 최대한으로 이끌어 내어 대륙을 혼란에 빠뜨리고 우리의 목표량까지 달성한다면, 내가 너를 하위 계열의 신으로 만들어 줄게."

"...제가 이런 이야기를 좋아할 줄 아셨나요? 신이 된다고 다 좋은 것만은 아니잖아요, 저는 평범한 인간이에요. 억겁의 시간을 살아가며 당신처럼 미친 신이 되고 싶지 않다고!"

퍼억-!

"쿨럭...! 쿨럭...! 큭... 켁... 크훕..."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르기가 무섭게 둔기로 배를 강하게 내려치는 듯한 충격이 몰려온다. 엄청난 충격이었는데 기절하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 아니, 어쩌면 이 빌어먹을 죽음의 여신이 기절하는 것 조차 막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윽고 그녀가 그 생기발랄한 얼굴을 가까이해온다.

"자, 이상한 소리는 받지 않아요. 레이어드? 무려 신이 된다는 소리야. 분명 하위 계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꽤 솔깃하지 않아?"

"......쿨럭... 큽...!"

숨이 막혀오는 기분에 앓는 신음성만을 내뱉자, 그녀가 '이런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 같은데' 하고 싱글벙글 거린다.

"신이 된다면, 네가 하고 싶은 모든 것들을 할 수 있어! 얼마나 큰 메리트인지 아직도 실감이 안 가는 거야?"

"...쿨럭... 신이 되면... 당신을 죽일 수도 있나요?"

하고 싶은 모든 것들... 그 단어를 듣자마자 떠오르는 생각이었다.

"휴우, 바보네, 바보... 내가 만들어주는 건데 나를 어떻게 해하겠니? 게다가 내 하위 계열 신의 자리라고. 생각을 좀 하고 말하던가... 이거야 원, 자기가 알아서 자꾸 매를 버는 것 같은데?"

"......"

대답을 하지 않은 채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만 있자, 엑시투스가 몸을 살짝 떨어온다.

"으으, 최강의 변태가 나를 노려보고 있어. 완전 무서운데!?"

"......"

그녀의 장단에 맞춰주기도 힘들어질 지경이라, 그저 쓴웃음을 지었다. 이 여신은 나를 가지고 놀고 있는 것이다.

"흐음... 반응이 없으니 재미가 없네. 좋아, 그럼 특별히 음... 중급까지는 올려줄게. 너를 이곳으로 데려온 것도 정말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특별히! 그리고 중급 신이 된다면 나에게 상처 정도는 입힐 수 있을 거야. 희망을 가지라고, 젊은이!"

"......"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부터 대화가 이상하게 꼬여가고 있다는.

"내가 당신들이 맡긴 일을 수행하면... 당신들의 영향력이 커진다고 했죠?"

"응, 그렇지!"

"그럼 제가 아무리 날뛰어봤자 당신네 신들의 힘을 키워주기밖에 안 한다는 건데... 그렇다면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겁니다."

"음... 그게 네 생각처럼 쉽지는 않을걸?"

"......?"

입술을 짓씹으며 말했건만, 그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바라보는 엑시투스. 그에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그녀가 몇 번 깜빡이더니 다시금 입을 열어온다.

"내가 신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거야?"

"...그럴 리가요."

"그렇다면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는 알고 있어?"

"......?"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니, '하아 -, 이래서 미물들이란' 하고 작은 한숨을 내뱉는다.

"네 안에 있는 본성들. 인간의 기준으로 가장 추악한 본성들을 모두 끄집어 내어 그냥 인형처럼 부려 먹을 수도 있는데, 넌 그렇게 되고 싶은 거야?"

"...아니오."

절대 사양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이곳에서 무엇을 해보았자 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그래! 그렇게 되고 싶지 않겠지. 그러니까 기왕이면 너의 의지로 직접 움직이는 것이 낫지 않겠니?"

"......"

쉬이 대답할 수 없는 문제였다. 내 안에 있는 최소한의 인간성이 살려달라 울부짖고 있었고, 이대로라면 나는 분명 눈앞의 정신 나간 신의 사도가 되어 그녀의 뜻을 행하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달리 어떻게 할 방법도 없었다.

"...알겠습니다."

"좋아좋아, 그렇게 나와야지 우리도 재미있지! 인형놀이는 재미없다고?"

"...예."

내 대답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엑시투스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인다.

"자, 그럼 중급 신으로 딱! 하고 거래 성립이고... 어? 생각해보니 이 녀석 은근히 노리고 있었던 건가? 한 말빨 하잖아?"

"...전혀 아닙니다만."

"그으래, 뭐 네가 아니라면 아닌 거겠지. 하여튼 거래는 그렇게 하고, 이번에는 여신의 선물이야. 황송하지?"

"...무슨...?"

의문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꼬리를 흐리자, 엑시투스가 '깔깔' 웃음을 터트린다.

"서비스야, 서비스.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너는 우리에게 꽤 유용한 존재가 될 거야. 그러니 사양 말고 받아... 음, 너에게 선택권을 줄게. 너는 어떤 선물을 받고 싶니?"

"...선물..."

잠시 고민에 빠져들었다. 어떤 것을 말해야 가장 좋을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재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

"무슨 선물을 받고 싶니?"

"......"

"얘, 말을 해 봐. 감히 신을 기다리게 하는 거야?"

"...그럼... '행운'을 주세요."

"호오..."

엑시투스 뿐만 아니라 바탈리아도 눈빛에 이채를 띄며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그에 당황한 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작게 손사래 치는 엑시투스였다.

"아, 보통 인간이라면 '최강의 힘', '써도 써도 줄어들지 않는 돈', '신의 무기' 이런 것을 달라고 할 텐데, 역시 넌 뭔가 달라도 다른가 보구나?"

"...네? 그런 게 있다면... 역시 그걸로..."

"좋아! 너는 운으로 결정했다! 아하하!"

"아, 아니... 최강의 힘이라던가 무기라던..."

"좋아! 운이야 운! 아하하!"

일부러 안 듣는 것인지 못 들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전자에 한 표. 그렇게 벌레 씹은 표정을 짓고 있으니 엑시투스가 웃겨 죽겠다는 듯 배를 잡고 구른다.

"야! 야! 바탈리아, 들었어!? 운을 달래, 푸하하하!"

"......"

"푸후훕! 푸하! 아, 배, 배야...! 푸흐흡! 아... 흠흠...! 풉...! 아, 그러니까... 음... 죽음의 여신에게 운을 달라고 하는 게 웃기지 않니?"

"......"

전혀, 그 웃긴 이야기의 대상자가 나라서 하나도 안 웃겼다.

여전히 표정을 풀지 않고 벌레 씹은 얼굴을 하고 있으니,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멈춘 엑시투스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린다.

"그래, 운... 풉!... 흠흠! 네게 운을 줄게, 나는 행운의 여신이 아니라서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예상외로 꽤 도움이 될지도 몰라."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분은 전쟁의 신이라면서요? 저분이 운을 주신다면..."

"아니, 안 된다."

"...어째서죠?"

내 말을 단호히 끊어낸 바탈리아가 그 무심한 눈빛을 유지하며 대답해온다.

"전쟁의 운이란 내 개입이 없다면 본디 공명정대해야 하는 것, 그러한 전쟁의 운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유일하게도 나뿐이고, 그것을 너에게 주는 것은 내 명예를 주는 것과 같다."

"...명예요...? 인간들의 개념에는 상관이 없다고..."

"나는 다르다, 전쟁과 불화를 주로 담당하고 있지만, 명예 또한 내 힘의 주축이다."

"...그렇게 공명정대함을 따지는 분이 왜 이런 일에 끼어드신 거죠?"

움찔-

분명히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한결같은 행동만을 보이던 두 여신이 당황하는 모습을. 무언가 다른 속사정이 있다거나 하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깊게 파고들 생각은 하지 말거라, 네가 전쟁과 불화의 씨앗을 만들고 너 자신의 명예를 드높일수록 내 힘도 강해질 것이다. 그래서 나도 이번 일에 참여하게 된 것이지."

"......네."

그녀가 말하는 것 때문만이 아니리라. 이들에게는 분명 다른 이유가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여기서 절대 '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나로서는 딱히 그녀의 말을 반박할 처지도 되지 못하였기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 상황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아, 잠시만요!"

"...응? 왜?"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무언가 불안한 짓을 하려는 것처럼 보이는 엑시투스를 황급히 말렸다.

"선물 하나만 더 주세요!"

"...엥?"

"저는 저쪽에 있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온 거잖아요. 아무래도 저도 하고 있던 일이 있었는데..."

"...응? 너 별로 하는 것 없던데? 그 모니터인가 뭔가로 너와 이야기할 때는 너를 막 만났던 것처럼 말했었지만, 사실 우리가 너를 관찰한 게 하루 이틀이 아니야, 그쪽 세계에서 사라져도 전혀 영향이 없는 애들 중에 가장 치사하고 변태 같은 게 너였다고. 꼭 상처받을 만한 말을 해줘야 알아듣는 거야?"

"......"

갑자기 할 말이 없어지면서 속이 쓰라렸다. 역시 나는 잉여킹 정도였던 것일까. 할 말을 잃은 채 멍- 하니 있는 나를 보고 조금 안쓰러웠던 것인지, 엑시투스가 선심 썼다는 듯이 말을 꺼내온다.

"좋아, 기왕 선심 쓰는 거, 한 번 더 쓰지 뭐. 어떤 선물을 받고 싶니?"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생각하고 있던 내용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지금 제가 가게 될 세계에 게임 시스템을 씌워 주세요. 게임이 뭔지는 아시죠? 아... 모니터가 뭔지도 모르셨으니 게임도..."

"바탈리아가 게임 매니아라서 알려줬거든! 나는 관심 없어서 잘 모르지만... 하여튼, 게임 시스템은 왜?"

"저는 지금 생판 모르는 세계에 홀랑 떨어지게 되는 거라고요, 게다가 인간도 아닌 드래곤한테요. 아무것도 모르는데 저한테 좀 익숙한 점이라도 있어야 조금이나마 편해질 것 같아서요."

"흐음... 듣고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좀 아리송하네."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엑시투스에게로 바탈리아가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두드린다.

"응? 바탈리아, 왜?"

"안 된다. 그렇게 하면 다른 신들이 눈치를 챌 가능성이 너무 높아."

"흐응... 그런가...?"

바탈리아의 단호한 의사표현에 엑시투스의 생각이 그쪽으로 기울어져 가는 듯한 모습을 본 나는 더욱 다급해졌다.

"그!"

"...응?"

"...?"

갑자기 소리치듯 입을 여는 나를 빤히- 바라보는 두 여신. 뭔가 뻘쭘해지기는 했지만, 준비해두었던 말을 꺼낸다.

"그... 심심해서 이렇게 만들어 봤다고 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건 또 뭔 헛소리야?"

"그러니까! 신들은 너무 오랜 세월을 살다 보니 지루해 하는 것도 있을 거 아니에요, 아까도 그러셨죠. 저기 루시아렌이라는 드래곤을 이용해서 레이어드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게 요즈음 들어 가장 재미있었다고."

"...음, 내가 그렇게 말하기는 했는데... 그건 다시 할 수 없어.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만으로도 이미 다른 신들은 이상함을 느꼈을 거야."

"그러니까요!"

'다시 할 수 없다.' 그 문장이 나에게 열쇠를 가져다주고 있었다. 그대로 손을 뻗어.

"다른 신들도 모두 지루해하고 있을 것이 분명해요, 그러니까 이것만큼은 다른 신들에게도 알리고 '게임'을 관람하자고 제안하는 거죠."

"...호오... 그럴 듯한데?"

꿀꺽-

그녀의 작은 긍정에 절로 목으로 침이 넘어간다. 내 말을 들은 엑시투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괜찮은 생각 같은데'하고 고민하고, 바탈리아는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좋은 생각이다, 나는 게임을 좋아하는 편이니 너의 말에 찬성한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에, 뻗은 손 위로 올라온 열쇠를 낚아챈다.

"예! 분명 다른 신들도 반가워할 거예요!"

"흐음... 그래 뭐, 바탈리아가 찬성한다면 내가 굳이 반대할 이유도 없지."

"그리고 역시 재미라면 레벨 제한 같은 건 없어야 확실히 재미지지 않을까요?"

"흐응... 뭐, 그렇겠지?"

나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운과 제한이 없는 성장' 이 두 가지를 가지게 된다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엿 먹이고 있는 이 미친년들을 역관광시키는 것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아 보였다. 그들의 장난질에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의 복수를 내가 직접 해주는 것이다.

"그건 시간이 좀 걸릴 테니까, 일단은 쟤한테 들어가. 우리가 이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공을 많이 들였는데, 이대로 놓치면 너무 아깝잖아? 그리고 무언가를 얻으면 반드시 무언가를 잃는 법. 너는 나의 선물을 얻게 되었고, 잃는 것은..."

"...어, 어엇...?"

엑시투스가 손을 한 차례 휘젓고, 다시금 머릿속으로 파고들어 오는 이상한 기분에 눈을 몇 번 깜빡인다.

"...뭐예요, 이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니, 엑시투스 여신님께서 킥킥- 웃어 보이신다.

"너에게서 죄책감과 도덕의식이라는 것을 지워버렸지."

"...네?"

"그리고... 레이어드, 네 종족이 뭐였지?"

"...종족... 제 종족... 은..."

무언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엑시투스 여신님께서 나를 향해 손을 한 차례 휘저은 뒤, 아까 전과 마찬가지로 죄책감... 도덕심... 그런 것 이외에도 나는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그렇지만 그게 무엇인지 도통 생각나지를 않았다.

"제 종족은 드래곤이잖아요, 당연한 걸 왜 물어보세요?"

내 대답에 엑시투스 여신님과 바탈리아 여신님께서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셨다.

-Guardians of Dragon Nest-

============================ 작품 후기 ============================

'비극을 자아내는 여신' 파트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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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시스템에 대해서 말들이 많으신데, 후반부로 갈수록 그 색은 옅어집니다. 게임이 중심이 아니라 스토리가 중심이고, 엄연한 그 세계의 현실입니다.

가상현실이 아니라 현.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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