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래곤 둥지의 수호자들-303화 (303/311)

0303 / 0311 ----------------------------------------------

의혹

[드래곤 둥지의 수호자들]

Start.

파로스카그는 눈꺼풀을 내려 감고, 조그마한 손을 들어 자신의 관자놀이 부근을 꾹꾹- 눌렀다. 그렇게 둘 사이로 다시 답답한 침묵이 찾아왔다. 그녀가 다시 입을 열어보인 것은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

"그렇다면 그 신들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 세계에 간섭한 거지? 네게 맡겼다는 신들의 목적이 뭐냐, 레이어드."

"......"

잠시 고민했다. 말하는 게 맞는 것일까? 돌이키지 못할 일을 벌이는 건 아닐까? 여러 가지 의문들이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흔들리는 시선을 들어 파로스카그의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가 진실을 말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렇게 여러 가지 생각이 뒤죽박죽 섞여있는 동안 그녀가 나를 재촉하기라도 한다면 제대로 된 대답도 내놓지 못하고 더 큰 의심만 사게 될 것 같았다.

그러나 파로스카그는 나를 재촉하지 않았다. 그저 고요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문득, 조금 전에 겪었던 혼란이 다시 찾아왔다. 내가 만약 인간이었다면, 어째서 처음 이곳에 올 때의 나는 자신을 드래곤이라 철썩 같이 믿고 있었던 걸까?

아무리 힘이 봉인되어 있다고는 해도, 퀘스트를 수행하며 얻은 돌을 이용해 조금씩 봉인을 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왜, 어째서 나는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걸까? 드래곤이라면 숨쉬는 것보다 쉽게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게 정상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리하지 못했다.

"......"

또한 처음에는 날개를 움직이는 법도 몰랐다. 그 어느 것 하나 드래곤과 관계된 일이라면 마치 백짓장처럼 새하얗게 가려져 있었다. 아니, 처음부터 지식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건... 내가 처음부터 드래곤이 아니라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고, 또 가리키고 있었다.

파로스카그는 그때까지도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냉정하고 차분한 이성을 가진 드래곤은, 자신의 감정에 치우쳐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려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내려앉은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내게 찾아든 혼란이 가라앉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될 때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깊은 신뢰가 깃들어 있었다. 만나지 얼마 되지 않은 사이에 불과했지만, 그녀는 나를 완연히 믿고 있었다. 그 신뢰가 비로소 내 망설임을 부수고 마음을 움직였다.

"...파로스카그."

"그래."

"...죽음과 황혼의 여신 엑시투스, 전쟁과 불화의 여신 바탈리아. 두 여신이 나를 이곳 언더 에스트에 불러온 이유는 혼돈과 전쟁의 도가니에 세계를 밀어넣기 위함이야."

"음."

파로스카그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세계가 어떻게 되든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했다. 쓴 웃음이 밀려나왔다. 그렇다, 이게 바로 드래곤이었다. 이들은 지독히 자기 중심적이기에 자신에게 피해가 오지 않는다면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파로스카그가 나를 공격하지는 않을까하는 생각까지 했다. 이러한 사고 자체가 드래곤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확실히 인간이었던 것 같다. 그 확신에 두 여신의 의도가 궁금해졌다. 내 기억을 바꿔놓은 이유가 뭘까, 그런 의문이 머릿속을 들쑤셨다.

"그리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루시아렌과 레이어드에게 개입했어. 그리고... 내게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드-비샤까지 휘말렸을 가능성이 크지."

"...레이어드. 하나 빠뜨린 것이 있다."

"...그래, 그 빠뜨린 것에 대한 이유는 나도 정말 모르겠어. 도대체 왜."

"내가 카리네푸라와 연관이 되었느냐는 거다."

"...응, 그건 정말... 나도..."

"......"

그녀의 말에 제대로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그녀가 쓰게 웃어 보이고는 고개를 돌려 버리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어중간하게 아느니, 차라리 모르는 게 더 좋았을 지도."

"......"

겉으로는 태연한 것처럼 보였으나, 역시 그게 아니었나 보다. 이윽고 파로스카그의 돌린 고개가 밑으로 푸욱- 숙여졌다. 흐느끼거나 분노하거나, 그 무엇도 아닌 그저 침묵. 그 단어 그대로였다. 그녀는 그렇게 고개를 숙인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

"......"

그런 침묵이 흐르는 도중, 그녀를 넌지시 불렀다.

"파로스카그."

"...왜."

나지막하게 그녀를 부르자, 고개를 들 힘도 없는 것인지 조용한 목소리로 내 말에 대답해왔다. 그녀의 축 늘어진 어깨가 지금 이 순간에는 너무나도 처량해 보였다.

"네가 그렇게 말했지? 드래곤에게 개입할 수 있는 건 신 밖에 없고, 그것도 해츨링 때나 가능할 거라고."

"...확실한 건 아니지만."

파로스카그는 조금 자신 없는 투로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건 두 여신이 내게 해준 말과 같은 내용이었기에 의심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었다.

"나를 여기로 보낸 신도 내게 똑같은 말을 했어."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거냐?"

"그럼... 카린은 어째서 날 좋아하고 있는 거지?"

"......!"

파로스카그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방금 전까지와는 정반대였다. 그의 눈은 충격에 휩싸여 있었고, 나는 오히려 담담했다.

"너... 너...!"

"...네가 분명 그렇게 말했잖아, 카린이 어째서 날 좋아하게 된 거냐고."

"레이어드... 그만해라...!"

"네가 한 말이 맞잖아. 돌연변이가 태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위해 자신을 거는 미친 드래곤은 없다고."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말한 적은 없다!"

"어쨌든 비슷한 의미로 말한 건 맞잖아."

"레이어드! 그만하라고 했다!"

파로스카그는 그답지 않게 분노에 가득 차 소리쳤다. 그 모습을 보고 확신이 하나 생겼다. 처음에야 거짓된 감정으로 카린을 좋아하게 되었을 진 몰라도,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그 감정은 완연히 파로스카그의 것이 되었다는 확신이.

아무리 이성으로 가라앉혀 냉정히 생각한다고 해도, 그 밑바닥에는 카린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담겨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지금 이렇게 불 같이 길길이 날뛰며 내게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도발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파로스카그, 너는 카린을 사랑하고 있잖아. 궁금하지도 않아?"

퍼억!

"커흑...!"

파로스카그의 매서운 주먹이 얼굴에 날아와 꽂혔다. 무려 순혈의 드래곤이 진심을 담아 날린 주먹에 맞아서일까, 버지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의요망, 체력이 100% 에서 91% 만큼 감소, 9% 남았습니다. 이 자리를 벗어나시길 추천드립니다.]

"쿨럭..."

그거 한 방 맞았다고 죽기 직전이란다. 우습기 짝이 없었다. 버지나는 계속해서 경고음을 날렸고, 이빨이 두어 개 부러졌는지 비릿한 피맛이 느껴졌다.

"한 마디만 더 해봐라."

파로스카그는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그에 나는 씨익 웃으며 두 팔을 벌렸다.

"카린이 날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혹시 그것도 여신의 장난..."

"이 돌연변이 새끼가!"

파로스카그가 내지른 주먹이 눈앞까지 다가왔다. 어차피 피할 생각도 없었거니와, 굉장히 빠른 속도이기에 피하기도 어려워보였다. 달인 등급의 회피 스킬이라면 어떻게 피할 수 있을 지는 몰라도, 저건 좀 무리였다.

"킥."

퍼어억 -!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 시야가 온통 회색으로 물들었다. 설마, 정말로 죽은 건가? 그런 생각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하하, 게임이라더니.

아직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죽음이라 생각되는 것을 겪으니 모든 게 기억나게 되었다. 인간으로서 살아온 기억과, 모니터에 손을 대자마자 어디론가 빨려들어간 것. 루시아렌과 레이어드의 비극을 모조리 지켜본 것. 두 여신이 나를 완전히 가지고 놀았다는 것까지 모두. 그 빌어먹을 여신들은 내 기억을 바꿔놓은 게 아니라, 그저 숨겨놓고 덮어씌운 것 같았다. 뭐야, 전지전능한 신이라더니.

계속 웃음이 나왔다. 유쾌하기보다는 허탈했다. 이렇게 모든 걸 깨달았는데.

그때, 회색으로 물든 시야가 다시 돌아왔다. 흐릿해진 눈가로 흑발 미소녀의 분노에 가득찬 얼굴이 보였다.

"아직 멀었다, 이 돌연변이 자식아!"

퍽! 퍼억! 퍼벅!

파로스카그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진짜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팠지만, 계속해서 웃음이 나왔다. 지금 이 순간 버지나가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이 너무 우스웠다. 체력이 9%가 남았다고 말하면 내가 어떻게든 도망갈 거라고 생각한 걸까?

"그렇게 생각했어요, 여신님?"

"......?"

파로스카그는 나를 구타하던 행위를 멈추고는, 내 입에서 나온 그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봐요, 여신님. 왜 말이 없어요? 평소엔 그렇게도 잘만 떠들어댔으면서."

"...레이어드?"

"말 좀 해봐, 버지나. 나 지금 정말 우스워서 죽을 지경이라니까?"

"......"

버지나도 파로스카그도 말이 없었다. 그녀에게 맞은 부위에선 얼얼한 통증이 계속해서 올라왔으나, 기분은 산들바람이라도 맞고 있는 것처럼 시원하고 유쾌했다.

"푸훗... 파로스카그, 얘기해줄 게 더 있어. 그러니 진정하고 앉아봐."

"......"

파로스카그는 의아한 눈으로 나를 관찰하듯 바라보면서도, 마지못한듯 내 앞에 앉았다. 여전히 분노가 담긴 눈은 조금 무서웠으나, 진실을 알게 되었기에 그저 그러려니 하는 생각만 들었다.

"파로스카그, 나는 확실히 드래곤이야."

"...그건 또 무슨 개 같은 소리냐."

자꾸만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으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았기에 억지로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의 나는, 레이어드라는 몸을 완전히 가지게 된 드래곤이지. 그렇지만, 나는 원래 인간이었어. 영혼만큼은 인간의 것 그대로이지."

"......"

파로스카그는 분노한 기색을 지워내고 진지한 눈빛이 되었다.

"내가 이곳에 올 때부터 옆에 붙어서 쫑알쫑알대는 인공지능이라는 게 있거든? 근데 생각해보면, 이 녀석이 내게 해준 것은 얼마 없어. 보통 게임 시스템이라 하면 유저(User)가 잘 클 수 있도록 가이드를 해주고 도와주는 게 맞아."

"...난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파로스카그에게 이야기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이 시스템이란 건 이상할 정도로 너무 단순했어. 도움을 주기보다는 방해한 적도 있었지."

그 가장 대표적인 예가 내가 사용하는 드래곤 피어를 허세 피어로 바꿔버린 것이었다.

"허세 피어 같은 소리하고 있네..."

입꼬리를 비틀어올리며 자조적으로 웃었다.

"언제나 쫑알쫑알대며 나를 귀찮게까지 한 이 버지나라는 인공지능에 정이 조금 든 것도 사실이긴 한데, 내 생각이 맞다면 이 녀석은... 인공지능이 아니라 나를 이리로 내려보낸 여신이 연기하고 있는 것 뿐이야."

"...인공지능이라는 게 있다는 것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만."

"그래, 그럴 수밖에 없을 테지. 왜냐하면 원래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던 거고, 여신이 필요로 하지 않는 이상 이런 걸 부여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문득 드는 생각은 이러했다. 그렇다면 베스페르에게서 빼앗은 인공지능은, 콸모쿠가 족장의 자리를 차지할 때 얻은 인공지능은 어떻게 된 일일까.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여신은 교묘하게 인공지능처럼 보이는 이것을 몇몇 인물에게 내려보내, 인공지능이라는 것의 존재를 더욱 믿을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베스페르든 누구든 여신들의 장난에 속은 피해자라는 것이었다.

"...어렵군."

내 이야기를 들은 파로스카그는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려울 수밖에 없을 거야. 그리고 이 버지나라는 인공지능은 내 체력이 깎여나갈 때마다 경고음을 내보냈는데, 내 추측에는 이래."

"...어떤 추측을 말하는 거냐?"

"일정 이상의 충격을 받게되면 가장 안쪽에 숨겨놓은 내 원래의 기억이 밖으로 튀어나오게 되니, 내가 몸을 사리도록 계속 유도한 거지... 그렇죠, 빌어먹을 여신님?"

버지나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평소엔 심심하다며 노래를 부르기도 하던 이 녀석이 이렇게 조용해질 줄이야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너무 우스워서 땅이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레이어드... 너, 인간일 때의 기억을 완전히 되찾은 거냐?"

"...그래, 아마도. 이름은 여전히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의 내겐 레이어드라는 이름이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파로스카그에게 두들겨맞은 곳이 삐그덕거리는 느낌이 났지만, 못움직일 정도로 아픈 건 아니었다. 줄어든 체력이고 뭐고, 다 필요 없었다. 방금까지의 일로 확신이 들었다.

여긴 시스템이 덮어씌워졌다고 해도, 엄연한 현실이었다. 현실에서 그런 수치는 무의미했다.

"두 여신의 어리석음에 감사를."

가슴에 손을 얹고 중얼거리는 나를, 파로스카그는 그저 묵묵히 응시하고 있었다. 이제 내가 여신들에게 해줄 말은 딱 하나 뿐이었다.

"내게 엿을 준만큼 되돌려줄 테니, 이빨 잘 닦고 기다리시길."

-Guardians of Dragon Nest-

============================ 작품 후기 ============================

==============================

여러분의 추천 한 방이 제게 큰 힘이 됩니다.

m(. .)m 큰 절)

==============================

리코멘 -*

노스아스터 카린은 스토커니 대화를 스토커짓 하다가 듣고 알아버릴 겁니다!자연스럽게 드비샤하고 루시아도 알게 되고요!

= ? ㅋㅋ

jonfull 신께서 부르신다! 레이어드 이놈 -! 비밀을 말하다니! 레이어드 : 비밀이라고 한적 없잖아!!

= 훗...

루블리츠 ㅋㅋㄱㅋㅋㅋㅋㅋㅋ 베스트코멘트라니 ㅋㅋㄱㄱ

= 너무 정리를 잘해주셧더라구요 ㅋㅋ

토우지 드비샤랑루시아가알면...큰일날텐데...그리고 카린이 틈틈히 지켜보고있지 않았나요?만약 이대화를 들었다면?

= 그럼 알게되겠죠? ㅎ

노스아스터 이래서 어설프게 마인드컨트롤을 끝내면 안됩니다.아예안하든가 완벽하게 끝내놔야죠.두 여신님들은 오만하게도 어중간하게 끝내셔서 망하셨고요!고로 이제 두여신은 레이어드의 성노예화!★

= ㅋㅋ

향향공주 두 여신네들 어중간하게 MC물 찍었다 배드엔딩 루트 조건만 충족시켰구나.

= 룰루루루

LunaticF 해츨링때나 통하는 조작을 어떤식으로 해결할 것인가...

= 유후후후후

루카르샤 과연 어떻게 풀어나갈지... 매우 설레는 마음으로 보고있습니다!

= 설레는 걸 실망시켜드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겟숩니다 ㅎㅎ

짝퉁족제비 원고료 쿠폰 13장 투척!!!!

= 감사합니다!

짝퉁족제비 엌!!! 그저 기억나는데로 적었을 뿐인데 틀린 점이 없나보군요.

= 네 깜짝놀랄 정도로 정확하셧어요 ㅋㅋ

노스아스터 파로짱의 가슴도 크게 개조해야 하는데 말이죠.(츠릅)거유로리로!

= ㅋㅋㅋ

슈프림케익 슬슬 이제 로리로 인격개조가 될때가 됫는데 (쓰읍)

= ㅋㅋㅋ

天空意行劍 주인공의 호구력은 세계제일!

= 정신 차렸답니다 ㅋㅋ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