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5 서장 - 다른 세계의 새끼 고양이- =========================================================================
꿈을 꾼듯하다
귀여운 아기고양이와 인간의 몸을 갖은 토끼가 나오고, 처음보는 세상에 던져저서 죽도록 얻어맞는 황당한 꿈.
...내가 자초한 일이었던것 같지만 그냥 넘어가자.
눈을 떠보니 화성과비슷한 환경의 이세계가 아니라 익숙한 내방 침대위에 누워 있었다. 역시 꿈이었던거야.
"정신 차렸냥?"
꿈속에 있어야 할 큐비가 눈앞에 앉아있었다.
"우왓!?"
어째서? 꿈에서 깨어났는데 큐비가 현실에도 있는거야!?
"꿈속으로 돌아가!"
"무슨 헛소리냥?"
으음... 역시 꿈이 아니었나. 사실은 알고있었지만... 아직 감각이 확실하지 않아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영혼상태인지, 아님 다른 특이한 현상이었는지 어쨌든 한번 육체를 빠져나온 휴우증이 느껴졌다. 내몸이 내 의지에 잘 따라주지 않았다. 잠시뒤 그나마 좀 진정이된 후 에야 이곳이 내침대 위라는 사실을 인지했다.
"여기로 돌아왔다는건 저쪽에서 죽었다는 말이지?"
아바타만 죽고 본체는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다고 하더니 정말이었다.
"그렇다냥. 고블린한테 맞아죽었다냥. 한심해서 눈물이 날것같다냥."
"으윽! 아니 이상하잖아! 주인공이 고블린같은 허접한 마물에게 맥없이 당하다니!"
게임 시작하자 마자 주인공을 리타이어 시키는 시나리오 작가가 어디있냐!
"누가 주인공이란거냥?"
"나! 내인생의 주인공은 나!"
"그런 주인공이라면 지구에만 수십억명은 되겠다냥."
"아무튼 못해! 안해! 계약파기야!"
게임하는것 같아서 두근두근 했던 기분은 온데간데 없다. 세상에 그런 아픈 기억은 두번다시 격고싶지 않아!
큐비는 나의 막무가내 투정에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하아~ 계약을 맺어 놓고 이제와서 그런 소리를 해도 어쩔수 없다냥."
"몰라! 안해! 배째!"
으으~ 다시 생각해도 끔찍하다, 끔찍해. 분신체라고 해도 고통은 그대로다. 불만 있으면 한번 맞아죽어 보라고! 정말 살아있는게 이렇게 행복한 일인줄은 전에는 몰랐었다. 살아있는 내 몸의 감촉을 확인하고는 기쁨에 젖어 몸을 떨었다.
"그렇게 근성이 없어서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러냥?"
"무슨상관이야! 살아가는데 맞아죽는 고통을 요구할 정도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그렇게 삭막하지 않아!"
세상을 살아가는데 그런 고통이 동반된다면 하루에도 자살하는 사람이 수백, 수천은 될거다. 아니면 단체로 마조히스트가 되던가.
"나는 이곳 지구에 와서 오랜시간동안 강한이 너를 지켜봐왔다냥."
...뭐, 그럴거라고 생각은 하고있었지. 아무나 덜컥 계약을 맺지는 않았을터. 분명 넘치는 재능과 재치. 노력과 우정에 반해서 내게 계약을 제시했을테니까.
"강한이 너처럼 보통으로 한심스러운 녀석은 거의 못보았다냥."
이놈의 고양이가! 귀여운 얼굴로 독설을 내뱉다니!
"내 어디가 어때서! 그리고 보통으로 한심하다는건 또 무슨뜻이야!"
"외모도 어중간하고 학교성적도 중간 이하고, 교우관계도 어중간하고, 노력도 근성도 부족하고, 부지런한것도 아니고, 의욕이 있는것도 아니다냥."
"아니... 아무리 나라도 어디 한군데 장점이 있지않을까?"
나는 희망을 갖고싶어 매달리듯 물어보았다.
"그런거 없다냥."
크윽. 냉정하구나 너.
"청년 백수 100만의 시대다냥! 남보다 뛰어난 장점이 있어야 살아 남을 수 있는데, 강한이 너는 모든게 다 어중간하게 부족하다냥!"
"고양이 좋아하는건 아무에게도 뒤지지 않아!"
"흥, 정말로 고양이를 너무나 좋아했다면, 아무리 생활이 어려워도 한마리쯤 길렀을텐데, 너는 어렵다는 이유로 고양이를 키우는걸 거부했다냥."
윽... 아, 아니야 정말로 돈과 시간이...!
"그리고 고양이 좋아하는건 세상을 살아가는데 아무런 도움도 안된다냥!"
"고양이는 정의야!"
"정의가 밥먹여주냥!"
아니 네가 그런말 하면 안되지 않니?
"어중간한 대학에 어중간한 성적. 거기에 그렇게 생긴 얼굴로 취직이나 할수 있게냥?"
"그, 그래도 In 서울에 나름 명문사학인데..."
"서울에 대학이 도대체 몇개나 된다고 생각하는거냥! 거기에 어중간한 명문대학 졸업생이 취업이 더 힘든거 모르냥?"
확실히 졸업하고도 취직못해서 학교 근처를 배회하는 선배들이 수도없이 많기는 하다. 갑자기 그 선배들의 얼굴이 내 얼굴로 변해서 떠 오른다. 게다가 나는 우리학교 졸업생중 대부분이 입사하고있는 한 회사에 절대로 입사할 수, 아니 입사 안하기 때문에 취업문이 더 좁다.
아아... 뭔가 절망스러워 졌어...
"그렇다고 집에 돈이 있어서 사업을 할 수 있는것도 아니잖냥."
"집에 손벌렸다가는 아버지에게 맞아죽을거야..."
지금 살고있는 원룸도 겨우겨우 사정해서 얻어주신거다. 사업은 꿈도 못꾼다.
"사업한다고 해도 그런 근성가지고는 금방 망할거다냥."
흑, 맞는말이다. 성공할 자신이 없다. 안될거야 아마...
"네 인생은 앞으로 절망뿐이다냥. 나한테는 보인다냥. 백수로 평생 혼자서 늙어가는 너의 모습이!"
"싫어! 그런 인생은 싫다고!"
너무 리얼해서 정말로 그런 미래가 내 앞에 준비되어 있는것 같아!
너무나 큰 절망감에 다리의 힘이 풀려 주저않고 말았다. 그런 내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큐비가 말을 이었다.
"나는 그런 너에게 기회를 준거다냥."
"...기회?"
뭔가 큐비의 목소리가 달콤하게 들린다.
"솔직히 고통은 있다고 해도, 죽는건 아니잖냥?"
죽지는 않았지만 죽을정도의 고통은 느꼈다.
"...그래도 너무 아픈걸..."
"이번에는 처음이었고, 너무 방심해서 그런거다냥. 너는 하면 되는 아이다냥.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고블린 녀석들 따위는 한주먹도 안된다냥."
기분탓인지 큐비의 목소리가 점점 더 달콤해진다.
"...응, 그렇기는 하지."
솔직히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있겠나? 아픈만큼 성숙해 진다는 말도 있고!
뭔가 할수있을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하는데? 내 마음의 변화를 아는지 큐비가 더욱 달콤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강한이 너 돈이 필요하지 않냥?"
"나 돈 필요해."
"얼마면 되겠냥. 대기업 연봉따위는 쩜쪄먹을 정도의 고수익을 보장한다냥!"
눈이 번쩍 떠지는 정보다.
"정말? 돈도 벌 수 있는거야?"
"그렇다냥. 폴은 차원상인이라고 불리고 있다냥. 이곳 세상의 화폐도 가지고 있다냥. 몬스터를 쓰러트리고 마이너스 포인트를 모아서 돈으로 바꿀 수 있다냥. 달러로 바꾸면 환율때문에 더 이득일거다냥."
그러고 보니 폴이 자신을 차원사인이라고 소개했었지. 갑자기 폴이 위대하게 느껴졌다. 장비를 공짜로 주었을때부터 다른사람과 다른 품격을 느낄 수 있었다.
"강한이 네가 몬스터를 많이 쓰러트릴 수록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거다냥."
"그래! 사실 그 세계가 싫지는 않았어! 거기에 돈도 벌 수있다면!"
그러나 갑자기 맞았던 부위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실제로 맞은건 이 육체가 아닌데 영혼이 아픔을 기억하고 있는것 같다.
정말 아팠는데... 돈도 좋지만 아픈건 싫은데...
돈때문에 끌리긴 했었지만 맞아죽을때 느낀 고통은 정말 끔찍해서 지금도 식은땀이 날정도다. 트라우마 생길것 같아.
"그런데 또 죽으면 어떻게해? 내가 정말 그 세계에서 적응 할 수 있을까?"
"나만 믿어라냥. 내가 널 강하게 만들어 주겠다냥!"
큐비에게서 열혈 체육교사의 향기가 났다.
"정말! 믿어도 되는거야?"
"물론이다냥! 난 고양이다냥! 대답해라냥! 고양이는?"
"정의!"
어느세 내 머리속에는 계약파기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없었다.
좋아! 지금 내 몸은 하겠다는 의지로 넘쳐 흐른다. 지금 이 기분이라면 무슨일 이라도 가능할것 같아!
나의 뜨거운 의지가 큐비에게도 전해진듯하다. 믿음직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귀여운 아기고양이 큐비.
"원래는 고블린 상대로 마이너스에너지를 얻어서 여러가지 전투 준비를 시킬 생각이었는데 계산이 빗나갔다냥."
누가 고블린이 그렇게 강할거라고 생각이나 했겠냐고. 절대로 내가 약했던게 아니다.
"효율은 다소 떨어지지만, 안전하게 가자냥."
"응? 안전한 방법이 있어?"
"그렇다냥. 아셀탄트가 아니라 이곳 지구에서 500포인트만 벌어서 넘어가는 거다냥. 500포인트면 왕국이나 제국검법서를 살수있다냥."
"검법서?"
"검술의 기본을 얻을수있는 스킬북이다냥. 검을 휘두르는법, 힘의 분배, 다리의 움직임등 검의 기본이 되는것들을 익힐수있는 패시브 스킬이다냥."
"오! 그런 게임스러운 스킬이 다 있어?"
"강한이 너처럼 자질은 있지만 전투능력이 떨어지는 계약자를 위해서 만들어진게 바로 아바타 시스템이다냥."
그래, 그래. 아무런 대책없이 나같은 연약한 사람을 이세계로 던져넣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곳에서 500포인트를 어떻게 얻지? 여긴 몬스터가 없는데?"
"파리, 모기, 에초킬라 찍찍."
"엥?"
갑자기 왠 cm송을?
"파리나 모기를 잡아서 포인트를 버는거다냥. 한마리당 1포인트는 얻을 수 있을거다냥."
헐... 파리와 모기를 500마리나 잡아야 되나? 안전하기는 하겠지만 그걸 언제다 잡고 앉아있나? 아니 500마리나 잡으려면 온 동네를 다 뒤지고 돌아다녀야 할 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동네를 돌아다니며 모기를 찾아 해매는건 꺼려졌다. 동네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뭔가 좋은 아이디어가 없을까? 큐비가 전에 방법은 상관없다고 했었잖아.
파리, 모기보다 더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위해서 머리를 풀 회전시켰다. 요는 다른 이를 괴롭게 말들면 되는것이다.
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가능하다면!
"큐비야, 마이너스 에너지가 상대방을 고통스럽게 해서 얻을수 있는 에너지 라고했지?"
"그렇다냥."
"그럼 굳이 죽이지 않아도 에너지 얻을 수 있는거네?"
내 물음에 큐비가 잠깐 생각해 보더니 긍정의 대답을 했다.
"얻을 수 있는 에너지량이 줄어들기는 하겠지만 확실히 얻을 수는 있다냥."
"그럼 상대가 인간이라면 모기나 파리보다는 더 많은 에너지를 얻을수 있겠지?"
"물론이다냥."
"좋아!"
흐흐흐. 비록 고블린에게는 당했지만 상대는 약육강식의 세상의 몬스터. 하지만 이곳 세상의 인간들을 상대한다면 과연 어떨까? 지금 나의 능력은 일반인들에 비해서 월등하게 앞서있는 상태다. 힘, 스피드, 체력등등 모두 세배 이상! 이정도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게다가 성인이 아닌 고삐리들을 상대한다면 더욱 효과적일터.
"목표는 놀이터나 공원등을 점거하고있는 날라리 고삐리들!"
"괜찮겠냥? 경찰에 잡혀갈수도 있다냥."
"괜찮아. 모자쓰고 마스크쓰면 내가 누군지 모를거야. 목표들이 주로 서식하는 곳은 감시카메라의 범위를 벗어난곳. 완전범죄가 가능해!"
거기다 요즘 일진, 왕따등등 학교폭력관련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고 하는데, 일진들을 혼내주면 그녀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왕따들을 도와주는 일이되어 플러스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 이거야말로 일석이조의 나이스 아이디어!
자신만만한 내 계획을 큐비도 동의해 주었다.
"...이론상으로는 가능한 이야기다냥. 한번 해봐라냥."
후후. 왠지 내가 정의의 사도가 된느낌이다. 아무도 모르게 악을 물리치는 슈퍼 히어로! 하지만 그 정체는 평범한 대학생! 21c 홍길동의 등장이다!
기분이 업된 나는 검은색 모자와 하얀색 마스크를 착용하고 집을 나섰다. 밖이 너무 어두워서 선글라스를 쓰지 못하는게 약간 아쉬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