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3 1 장 - 와일드포스 야만의던젼 - =========================================================================
-전투가 끝나간다냥.
"그렇군. 압도적이었어. 별로 마음에 드는 방식은 아니지만."
인간을 소모품 취급하는 건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방식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이곳의 룰이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단지 이방인일 뿐이니까.
-전투가 끝나면 발바롯사 길드에서 이곳 진영을 통제할 것이다냥.
"통제? 무슨뜻이야?"
-점령한다는 뜻이다냥. 이곳이 발바롯사 길드의 소유가 된다는 말이다냥.
"엥?"
던젼의 소유권은 던젼의 주인이라는 놈에게 있는거 아니였어? 내 의문에 대해 큐비가 설명을 해주었다.
-물론 최후에 던젼의 주인을 쓰러트리는 길드 또는 개인이 던젼의 새로운 주인이 된다냥. 그리고 새 주인은 그 권리를 각 던젼이 위치하는 곳의 나라에 팔아서 이익을 얻는다냥.
여기까지는 이전에도 들은 이야기다. 그리고 여기서 부터가 새로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곳과 같이 몬스터진영이 있는 중앙구역이나 플로어마스터가 있는 엔트런스지역을 점령하는 길드나 개인에게 던젼에대한 지분을 나누어주게된다냥.
확실히 발바롯사 같은 경우에도 이곳을 점령하기 위해서 피해를 감수했다. 그정도 권한이 없다면 일부러 점령을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남들이 돌파하기를 기다렸다가 어부지리를 노리면 그만이니까. 바로 나 처럼.
-그리고 또 하나의 권한이 있는데 점령한 구역의 소유권을 인정해서 그곳을 지나는 길드나 개인으로 부터 통행세를 받을 수 있다냥.
그런식으로 점령하는데 들어간 비용을 회수할 수 있는것이구나? 발바롯사가 벌레어쩌구 하면서 싸게먹혔다고 헛소리한게 그런 뜻이었어.
"그럼 내가 공략한 지상에있는 2개의 구역은 내가 소유하는게 되는거네?
혼자서 그 고생을 하면서 점령했는데 당연히 내게 권리가 있겠지?
-그곳이 어떡해 변했는지 잊었냥? 거긴 이미 던젼이 아니다냥.
"말도안돼! 그럼 내가 한 고생에대한 보상은 누가 해주는데!?"
-그런 사소한것에 집착할 필요없다냥. 앞으로 강한이 넌 던젼 자체를 소유하게 될거다냥.
플로어 마스터는 물론 던젼의 주인을 처리하는게 내 목적이고, 역할이니까 당연한 말이긴 하지만, 왠지 아깝잖아.
-그리고 만약에 점령을 하고 실소유권을 인정 받았다고 치자냥. 그럼 통행료는 어떻게 받을 생각이냥?
아... 확실히 나는 혼자 돌아 다녀야 하는데 한곳에 눌러 앉아서 통행료나 받아먹고 있을수야 없지. 쳇, 아쉽지만 그냥 포기 해야겠다.
-결국 강해지면 되는거다냥. 강해지면 너를 당당하게 남들에게 들어내도 다른 이들이 함부로 덤비지도 않을테고, 일부러 통행세를 걷지 않아도 알아서 찾아와서 바칠거다냥.
자진납세라는거야?
"어째서?"
일부러 찾아와서 통행세를 지불하는 이유가 뭘까?
-중앙구역도 그렇지만 엔트런스도 다음 구역으로 가기위한 유일한 통로이다냥.
그렇긴 하지. 내가 고생해서 고블린진영을 돌파했던 이유도 다른 길이 없어서 였지.
-그런데, 자신에게 통행료를 지불한적이 없는 자들이 자신의 구역을 넘어왔다면 그 주인은 어떻게 하겠냥?
"당연히 따지겠지. 왜 통행세를 안내냐고."
-바로 그렇다냥. 그리고 힘있는 자들이 자신보다 약자의 잘못을 그냥 말로만 충고하고 넘어갈까?
음... 이건 사람에 따라서 다른것 같지만, 큐비의 생각은 다른것 같다.
-힘이 있으면 쓰고 싶은게 인간이다냥. 당연히 말로만 끝나지 않을거다냥.
아무래도 큐비는 좀 염세주의적인 부분이 있는것 같단말야.
-결국 살기위해서 일부러 찾아가서 통행세를 바치는거다냥.
"...응, 알았어. 결국 강해지면 되는거네."
큐비의 의견에 완전히 동의하는건 아니지만 또, 전혀 아니라고도 못하겠고, 괜히 논쟁할 필요는 없겠지.
-그럼 이야기를 되돌려서, 발바롯사 길드가 진영을 점령하기 직전이다냥.
응? 왜 굳이 그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는건데?
-이대로가면 진영의 주인이 오크에서 발바롯사로 넘어가는것이다냥.
"그래, 알고있어."
거기까지 말한 큐비가 갑자기 화를 내면서 말했다.
-알고있으면서 아직도 그러고있을거냥! 이번엔 강한이 네가 발바롯사 놈들을 격파할 생각이야?
...아... 아아아... 전투에 집중하다보니 내 목적을 깜빡 하고 있었다.
싸움구경이 목적이 아니라 서로 싸우고 있는 틈에 이곳을 통과하는 게 목적이었지!
"아직 늦지 않았겠지?"
-서둘러라냥. 거의 다 끝나간다냥.
확실히 발바롯사 까지 올라갔으면 게임 끝이라고 봐야지. 서둘러야 겠다.
"인비져빌리티!"
나는 투명화 마법을 걸고는 재빨리 언덕길을 뛰어 올라갔다.
언덕위 진영내에서는 마지막 전투가 끝나가고 있었다. 발바롯사가 험악한 얼굴로 노려보고 있는 가운데, 길드원들이 마지막 남은 오크기병 한마리와 대치하고 있었다. 이미 자신의 늑대를 잃어버린 전직울프라이더는 마지막 발악으로 길드원 한명의 가슴에 글레이브 자국을 내는데 성공했지만 이후 사방에서 찔러오는 검에 몸을 내주고 말았다.
"쿠엑!"
마지막 비명소리를 내지르며 오크기병이 쓰러졌다. 오크들의 저항은 격렬했고 발바롯사 길드는 한명의 사망자와 5명의 부상자라는 손실을 입어야 했다.
"한심한 밥버러지들. 다 이겨놓은 싸움에서 사상자를 내다니."
지금 막 전투를 끝낸 부하들에게 할 말은 절대 아닌것 같지만, 길드원들은 아무런 불평불만도 말하지 못했다. 발바롯사 길드는 전투방식도 그렇고 길드원들의 태도를 봐도 그렇고 마치 군대를 보고있는것 같다. 이 세계의 길드는 다 이런식인가?
"응?"
헛...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내가 속으로 발바롯사녀석의 험담을 하며 녀석의 옆을 스쳐 지나고 있을때 하필이면 녀석이 내쪽을 향해 시선을 돌린것이다. 녀석과 눈이 마주친 나는 그자리에서 꿈쩍도 못하고 멈추어야 했다.
"흠... 기분탓이었나?
휴우... 다행이 들키지는 않은것 같다. 놈이 시선을 돌릴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가, 녀석이 고개를 돌렸을때 조심스럽게 진영을 빠져 나갔다.
"큐비, 포탈을 열어줘."
-알겠다냥.
진영을 빠져나온 나는 눈에 잘 띄지 않는곳으로 이동하여 포탈을 열었다. 이것으로 진영을 돌파할 필요는 없게되었다.
"이번에는 무임승차 한것 같아서, 기분이 별로야."
이 느낌은 마치 새로산 장난감을 동생에게 빼앗긴 기분 이랄까? 재밌는 보스전을 치트로 싱겁게 깨버린 기분이다.
-그게 싫으면 하루빨리 강해져라냥.
"말 안해도 그렇게 할거야."
그리고 내가 기분이 나쁜 또 하나의 이유.
"빨리 장비들을 회수해! 언제까지 저렇게 놔둘거야!"
발바롯사길드의 선임인듯한 길드원이 동료길드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몬스터의 사체를 정리하고 (부산물이 돈이 된다고 하더라.) 죽은 노예들에게서 장비들을 회수했다.
풀플레이트를 장비하고 선두에 섰던 노예들 중에서 살아남은 이는 단 두명이었다. 그들역시 상처가 많았지만 전투가 끝난 뒤에도 쉬지 못하고 동료였던 자들의 시체에서 장비들을 회수하는 일을 해야만 했다.
저들은 같은 노예들의 시체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 요즘들어 이상하게 센티해지네. 조금 날뛰는게 부족해서 그런가?"
오크들 사냥할때는 렐리길드를 피해 다니느라 마음놓고 날뛰지 못했고, 전갈한테는 2번이나 죽어야 했다. 그리고 이번 전투역시 숨어서 구경만 했다. 그래서 이렇게 기분이 꿀꿀한 건지도 모르겠다.
멀리서 발바롯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야노. 너 지금 곧 하이레딘 형님께 가서 벌레들 50마리만 얻어와라. 2계층 중앙구역을 정렴했으니까 대금은 곧 지불하겠다고 하고."
꿈틀.
저놈, 또 노예들을 전투에 투입시킬 생각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이 차올랐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서 내가 저놈을 비난할 만한 이유가 없었다. 노예제도가 인정되는 곳에서 노예를 써먹는게 잘못된건 아니라고 생각을 하니까. 그럼 대체 뭐가 마음에 안드는 걸까?
그때 진영 아랫쪽에서 한 무리의 인영이 언덕을 걸어 올라왔다. 세리스를 비롯한 렐리길드의 사람들이었다.
한가지 눈에 띄는점은 파를로의 왼팔과 머리에 붕대가 감겨져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숫자도 한명 부족했다.
아래쪽 구역에는 오크들이 남아있지 않았을테니 저 상처는 아마도 전갈들때문에 생겨난것 같다. 제대로 붙었다면 전원 사망확정이었을테니 그때 세리스 혼자서 전갈에게 쫓겼던 것은 놈을 길드원들로부터 유인해 내기 위해서였던것 같다. 그리고 그 와중에 한명이 사망한 것이고.
아무튼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는 렐리길드 사람들에 표정을 더 어둡게 만드는 일이 있었으니, 바로 중앙구역을 발바롯사 길드가 점령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앙숙관계로 보이는 발바롯사 길드에게 통행료를 지불하게 생겼으니 기분 참 꿀꿀할것 같다. 그리고 발바롯사녀석은 그런 렐리길드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야노, 잠깐 기다려라. 우리에게 벌레 50마리를 기부해주실 분들이 찾아왔다. 기다렸다 받아서 가려므나."
"큿! 발바롯사!"
세리스가 분한듯이 발바롯사녀석의 이름을 부르며 이를 갈았다. 갈아먹고 싶다는 뜻이겠지.
"상황파악은 끝났겠지? 이곳을 통과하고 싶다면 두당 300골드를 내놔라."
"무, 무슨 말도안되는!?"
발바롯사가 통행세를 요구하자, 파를로가 말도 안된다는 듯이 소리쳤다.
골드? 이곳 화페의 단위인가?
"300골드면 얼마정도야?"
-50골드면 전투노예를 살 수 있다냥.
"손해를 만회하겠다는 생각이군."
-그 이상이다냥. 보통 50골드가 적정선이고 피해가 많으면 100골드까지도 올릴 수 있지만 그정도 피해를 입은것은 아니였으니 50골드가 적합한 통행세다냥. 던젼에 들어오는 길드는 렐리만 있는게 아니니까.
그런데 그걸 6배나 받아먹으려고 한거야? 세리스가 발바롯사를 죽일 듯이 노려보면서 말했다.
"정말로 우리와 해보겠다는 건가요?"
"무슨 소리를. 난 나의 정당한 권리를 요구했을 뿐이야."
발바롯사가 열받을 정도로 유들유들하게 말하며 세리스의 신경을 거슬렸다.
"그게 어떻게 정당한 요구라는거죠?"
"우리쪽의 피해가 너무 컷거든. 우리의 소중한 길드원이 50여명이나 죽어버렸어."
저녀석 잘도 뻔뻔하게 '소중한'따위를 입에 담는구나.
"그래도 한도라는게 있는거 아닌가요?"
세리스의 어조는 차분했지만, 목소리의 한기가 느껴졌다. 거기에 발바롯사가 결정타를 날렸다.
"좋아, 그럼 네년이 내 가랑이 사이로 기어서 통과한다면 특별히 무료로 이곳을 지나가게 해..."
챙!
기어코 폭발한 세리스가 자신의 세검을 빼어 들어 발바롯사에게 겨누었다. 그녀의 살기가 여기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 역겨운 자만심을 체우고 싶어서 그딴말을 짓거리고 있는거라면 사람 잘못골랐어. 지금 난 기분이 매우 안좋거든. 터무늬없이 부조리한 몬스터에게 습격당해 소중한 길드원 한사람을 잃었어. 그리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나를 대신에서 희생당했지. 지금 나는 정말 폭발하기 직전이야. 이 울분 네놈을 상대로 풀어볼까?"
역시, 길드원 한명이 희생당했구나. 그리고 그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라는건 아무래도 나를 이야기 하는것 같고.
평소처럼 세리스의 신경을 건들면서 도발했던 발바롯사는 세리스의 맹렬한 반응에 표정이 굳어졌다. 미안해 한다든가 당황한다든가 그런감정이 아니라 새파랗게 젋은년이 자신에게 살기를 내뿜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안드는것 이겠지.
"조약을 깰 생각인가?"
"먼저 시작한건 너야."
두사람의 살기가 주변을 가득 채울정도로 강하게 뿜어져 나왔다. 그와 함께 양측의 길드원들도 잔뜩 긴장을 한채로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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