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5 1 장 - 와일드포스 야만의던젼 - =========================================================================
트롤의 사체를 베이스캠프로 전송시킨 후 나는 3층계의 입구주변을 좀더 돌아다녀 보았다. 그동안 고블린, 오크들과 많이 마주쳤는데 트롤들 보다는 고블린과 오크들이 훨씬 많은것 같다.
오크로드는 돌연변이 오크로드와 마찬가지로 배틀엑스 투척을 사용해 왔는데 그 위력은 비교가 안될 정도로 약했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고블린들이 독침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2층계까지 고블린들은 홉고블린 포함해서 무조건 클럽 일변도였는데 이번층계에서 독침을 사용하기 시작한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고블린이 뭐 강해지고 그런일은 없었다. 독침도 약간 따끔거리기만 할뿐 마비되거나 중독되거나 그런일도 없었다.
-저항력은 마법뿐만 아니라 상태이상에도 대응한다냥. 강한이 너는 처음부터 저항력이 높아서 왠만한 상태이상은 무시해도 될것 같다냥.
솔직히 상태이상에 걸린다고 해도 고블린이 위험해질것 같지는 않다.
3계층에 들어서면서 만들어진 임시베이스캠프에 들어와봤다. 말 그대로 임시캠프 인지라 시설이 좋지는 않았다. 랭크 1때의 베이스캠프를 보는것 같았다. 하지만 안전지대의 역할은 충분히 하기때문에 있어서 나쁘지는 않을거다.
그보다 이곳을 사체들과 장비를 쌓아놓는 중간창고로 이용하면 좋을것 같은데? 다행히도 이곳과 베이스캠프와는 연결이 되어있어서 자유롭게 왔다갔다 하는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베이스캠프에 설치해 놓은 차원연결시스템의 서브시스템을 임시베이스캠프에 옮겨 놓았다.
"이러면 아리가 울것같은 표정을 짓는일이 없어지겠지."
베이스캠프가 집이나 마찬가지인 아리인데 그 집이 온통 몬스터사체로 가득한 상황인지라 정말 표정이 좋지 않았던 아리였다. 생각해보니 너무 무신경한 일이었네. 반성해야지.
임시베이스캠프에 아리를 데려가 정리를 시켜놓고 있는데, 시스템에서 알림음이 들려왔다.
[던젼에 새로운 길드가 입장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다. 많은 길드가 던젼을 들락날락 했지만 대부분 중소길드였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렇겠지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때 큐비가 말했다.
-이번에 들어온 녀석들은 좀 신경을 써야 한다냥. 익스퍼트가 2명이 포함된 길드다냥.
그러면 이야기가 다르지. 익스퍼트는 신경써서 주시해야하는 자들이다. 언제 나를 제치고 엔트런스를 제압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베이스캠프로 이동해 입구방향으로 걸어갔다. 전에는 숨어서 정찰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도 없다. 나도 어느세 이름이 알려져 있어서 새로 들어오는 길드도 나를 알정도였다.
입구로 향해 보니, 루이스가 처음 보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녹색 계통의 복식이였는데 갑옷이 머랄까, 갑옷 같지 않다고 해야하나? 아무튼 편해 보이기는 했다. 특히 여성의 갑옷은 누가 보면 절대 갑옷이라고 하지 않을 그런 형태였다. 뭐라해도 위에는 가죽재질의 비키니 수영복같았고, 밑에는 핫팬츠였다. 아무리 노출도가 방어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갑옷이 많다고 해도 어느 정도가 있지 저건 아무리 잘 봐줘도 그냥 옷이다. 단지, 노출도가 많은것에 비해 야한느낌은 나지 않았다. 그 복장의 여성이 파랑색 단발머리의 왈가닥처럼 보이는 외견을 가지고 있어서일까. 스포티한 느낌의 복장이다.
그 여성이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눈가를 찌프리고는 자신의 옆에 서있던 남자에게 뭐라고 쑥덕거렸다.
그 남자는 신장이 190cm 정도에 적당한 근육을 가졌고, 머리에는 노란색 밴다나를 착용하고 있었다. 얼굴에 수염이 없는것이 아직 20대 초반으로 보였다. 등 뒤로 커다란 양손대검을 착용하고 있었는데, 아마 파워타입의 전사인것 같다.
내가 다가가자 루이스가 나를 발견하고 인사를 건내왔다.
"아, 칸님. 아직 계셨군요."
"아니요, 3층계라면 갔다왔어요.
"...예?"
베이스캠프와 포탈의 존재를 모르는 루이스는 눈이 똥그랗게 떠지며 이해 못하겠다는 얼굴을 했다. 언젠가는 알려줄 생각도 있지만 아직 확실히 믿을 수는 없어서 당분간 비밀이다.
경계하고 있던 두사람이 루이스가 내 이름을 부르자 아, 하고 아는채를 했다. 역시 약간은 유명해진것 같다.
"당신이 칸인가?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강해 보이지 않는데. 기세가 전혀 안느껴지니 강한지 어쩐지 모르겠네."
그 남자는 나를 요리조리 흝어보며 혼자서 흐음흐음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모르겠군. 근육이나 자세를 보면 그냥 일반인과 차이가 나지 않는데 저런 결과를 만들어낸 강자란 말이지?"
남자가 고개를 돌려 몬스터사체의 산을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이남자 근육만 보고도 강자인지 아닌지 알 수있는거야? 기세를 파악하고 근육을 통해 기량을 파악하고, 역시 익스퍼트는 보통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인종인것 같다.
"난 랄프라고 한다. 당신, 나랑 한판 붙어보자."
뭐라는거야, 이사람. 내가 황당하게 그 남자를 쳐다보고 있자, 옆에 서있던 여성이 남성의 뒤통수를 딱하고 때렸다.
"처음보는 사람에게 무턱대고 시비걸지 말랬지, 랄프!"
"아얏! 뭐하는거야, 파라. 붙어보지 않으면 얼마나 강한지 알 수없잖아."
"그러니까, 처음보는 사람이 얼마나 강한지 왜 알아야 하는데!"
"만약에 강하다면 승부해보고 싶잖아."
붙어보는거랑 승부하는거랑 뭐가 다른 걸까? 그렇지만 처음보는 사람이 강한지 어쩐지 알고 싶어하는 마음은 이해한다. 나도 그러니까. 다만 나는 야만인이 아니라서 다짜고짜 붙어보자고 덤비는 대신 큐비에게 에널라이즈를 부탁했다.
-알았다냥!
랄프 파라
체력 5200 3900
기력 ??? ???
힘 33 21
지력 11 17
방어 27 16
민첩 21 32
저항 9 7
무기 320 320
갑옷 320 320
방패
부츠 2 2
랄프라는 자는 힘이 상당히 높았다. 발바롯사보다도 1이 더 많고, 체력도 높다. 파라라는 여자는 힘이나 방어력, 체력도 약하지만 민첩이 세리스보다 높았다. 장비는 두사람다 익스퍼트인데 비해서는 빈약한 편이였다. 음, 세리스의 렐리길드가 장비수준이 높았던것 뿐인가?
"칸 이라고 합니다. 몬스터 이외에 사람에게는 왠만하면 검을 휘두르고 싶지는 않군요."
나는 이미 너희들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있다. 내가 거부를 표현하자, 랄프가 오히려 반색을 한다. 응?
"오, 그렇다면 주먹으로 붙어보면 되는거네? 좋아, 주먹대결도 괜찮지!"
나는 벙찐 표정을 지어버렸고, 그 랄프의 뒷통수에 다시한번 파라의 손바닥이 작렬했다.
"왜 그렇게 되는건데? 아, 미안 나쁜녀석은 아니니까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말아줘."
파라가 나를 보고 대신 사과를 했다. 그런데 당신들 초대면의 사람에게 반말하는게 종특이니?
"이분들은 레너드 길드의 익스퍼트 분들이십니다."
레너드 길드?
-마스터 레너드가 만든 길드다냥. 단지...
"랄프라고 한다. 나중에 꼭 붙어보자고."
아직도 그소리냐.
"파라 라고 해. 만나서 반가워."
파랑머리의 파라가 손을 살살 흔든다. 활발한 성격의 여자같은 느낌인데 얼굴은 귀엽네.
"잘 부탁합니다."
나는 조금 예의를 지켜서 인사했다. 그러자 랄프가 마음에 안든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고 말했다.
"너무 딱딱하잖아. 나이도 비슷한것 같은데 말 편하게 하자고. 예의차리는건 렐리의 두명 만으로 충분해."
"세리스를 알아?"
나만 존댓말 쓰는건 열받아서 은근슬쩍 말을 놓았다.
"그야, 나이도 비슷하고 같은 직업 종사자니까 말이지. 그러는 너야말로 세리스와 친분이 있는것 같은데? 세리스라고 부르는게 보통사이가 아닌것 같아! 자, 불어보라고 그 얼음공주와 어떤 관계야."
그러면서 두꺼운 근육질 팔을 내 목뒤로 둘러왔다. 이녀석, 상당히 프렌들리 한 녀석이네. 찬영이도 쉽게 다가오는 편이었지만, 이녀석은 더했다. 보고있던 파라가 랄프를 뜯어 말렸다.
"자자, 그만해 랄프. 빨리 안으로 들어가서 숙영지 만들 자리 잡아야지. 길드원들이 기다리고 있잖아."
그제서야 랄프가 내 목을 놔주었다. 이런 타입, 좀 불편한데.
"아, 그랬지 참. 미안미안. 아, 그런데 지금 이 던젼 몇층까지 공략이 된거지?"
"3층계."
"오, 빠르네? 3층계 정도면 그래도 좀 움직이만 하겠군. 2층계 까지는 영 불편해서 말이야."
3층계도 불편함을 느낄 정도라면 아무래도 랄프는 최소 4등급 익스퍼트인 모양이다. 이공간형 던젼의 특징이 강하면 강할수록 저층게에서는 자신의 실력을 완전히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게된다.
"자, 그럼 가볼까. 어이, 칸! 나중에 꼭 한판 붙어보자고!"
랄프와 길드 일행은 나에게 손을 흔들면서 던젼 안으로 들어갔다. 아마 3층계에 도착하려면 한참은 걸릴테니, 아직 시간적 여유는 있다.
"레너드님이 돌아가시고 저 길드도 무너질줄 알았는데 이제는 완전히 되살아 난것 같군요."
"레너드? 그 마스터라는 사람 죽었나요?"
큐비에게 레너드라는 사람이 마스터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설마 죽었을거라는 생각은 못했다.
"모르고 계셨습니까? 몇년 되었지요. 마스터 테스탈과의 전투에서 패하고 사망했지요. 그 뒤에 길드가 거의 몰락했었는데, 그 제자들인 랄프님과 파라님이 여기 까지 일으켜 세웠죠."
렐리 길드와 마찬가지로 저들의 길드도 제자를 육성하는 방식의 길드였나 보다.
"저 모습을 보니 랄프님도 얼마 안가 마스터가 될지도 모르겠군요. 칸님도 그렇고 젊음이란 참 좋은것 같습니다."
40줄대의 루이스가 랄프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아련한 얼굴표정을 지었다.
그때, 레너드 길드와 엇갈리듯이 몇명의 사람들이 입구쪽으로 걸어왔다. 상당히 초라한 행색에 사람들. 중소 길드 연합의 생존자들 이었다. 잘보니 가장 처음에 만났던 그 생존자도 함께 있었다. 아마도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천천히 이동하느라 지금까지 걸린 모양이다.
그들의 얼굴을 확인한 루이스가 놀란 얼굴을 하였다.
"자, 자네들! 이게 어떻게 된건가?"
그러고 보니 루이스도 중소길드연합에 가입하려고 했었다가, 합류가 늦어지는 바람에 도중에 오크때를만나 합류를 포기하고 이곳으로 온거였지? 잘못했으면 죽을 뻔했었네? 인생사 세옹지마라니까.
"루이스! 자네도 살아있었군. 합류하기로 한 지점에 나타나지 않아서 사고라도 당한건가 걱정했었네."
"지금 내가 문제가 아니잖아. 루크! 다른 이들은?"
루이스가 루크라고 불린 사람을보고 다그치듯 물었다. 음? 내가 중소길드연합 소식을 루이스에게 전하지 않았던가?
중소길드연합의 회장 루크가 면목 없다는듯이 루이스에게 사실을 알려주었다.
"다 죽었네. 오크에게 당해서 다 죽었어! 겨우, 우리만 살아남았네. 200명중에 우리만...크흐흑..."
루크와 생존자들이 루이스를 만나서 감정이 복받쳐올랐는지 참았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루이스도 충격을 받은 모양이였다.
"어, 어떻게 그런일이..!"
"크흑... 처음부터 무리였던 거야... 우리가 아무리 세력을 모아도 실력이 없으면 이렇게 되는것을... 이게 다 쓸때없는 욕심을 부린 내 탓이네."
루이스의 얼굴에 슬픔과 안도감이 교차했다. 연합사람들이 죽은건 슬픈 일이지만, 죽을뻔한 자신은 살아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 것일테지.
루크와 생존자들은 잠시 흐느껴 울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서둘러 달려왔다.
"칸님 아니십니까? 벌써 와계셨군요?"
"마침 돌아와있던 참입니다.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이미 공략이 완료된 플로어는 안전하니까요, 오히려 사람이 문제지요."
루크가 쓸쓸하게 웃었다. 돌아오는 길에 무슨일이 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