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9 1 장 - 와일드포스 야만의던젼 - =========================================================================
베이스캠프 랭크3에 설치된 24인용 야전텐트에서 체력회복을 위해 잠을 청하고 일어났을때 내 몸위에 모포가 덮여있는걸 보았다. 자기전에 좀비처럼 흐느적 거리며 텐트에 들어왔던것 까지는 기억나는데 그 뒤의 기억이 없다. 아마 언제나처럼 침대에 엎어져서 그 대로 잠들었겠지. 그런데 내 몸위에 모포를 덮어 줄 사람은 이 곳에서 단 한사람뿐이다.
나쁜 기분은 아니네. 혼자 지내다 보니 이런 작은 친절에도 감동받는다. 나는 몸을 일으켜 텐트 밖으로 나왔다. 베이스캠프의 모습을 둘러보니 전과는 다른 분위기가 맴돌았다. 전에는 난민캠프와 다른점이 전혀 없는 분위기였는데 지금 보이는 이곳은 잘 정돈된 캠핑장 같은 느낌이 났다.
아마 아리가 열심히 정리정돈을 해 주었기 때문이겠지. 그 아리를 찾아 시선을 옮겼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후각을 자극하는 맛있는 음식 냄세가 났다. 나는 그 냄세를 쫓아 취사장으로 향하였다.
취사장에서는 아리가 열심히 무엇인가를 만들고 있었다. 그동안 아리는 내가 가져다 준 빵이나 도시락 등으로 끼니를 해결하곤 했는데 이제는 자신이 직접 요리를 하겠다고 나섰다. 재료는 루이스의 길드에서 나누어 받았는데 내가 처음보는 신기한 재료들도 많이 잇었다.
요리를 하고 있는 아리의 모습이 예뻐보였다. 아리는 좋은 신부가 될거야, 아마. 누군지 모르겠지만 데려가는 놈은 참 복받은줄 알아야 한다.
두근 두근
그때 심장이 심하게 두근거리며 감당할 수 없는 괴의한 충동을 느꼈다. 내가 나 이외의 다른 무언가로 변하려는 감각. 정상적이지 않은 어두운 감정들이 솟구쳐 올랐다. 무자비한 폭력. 무엇이든 걸리는 모든걸 때려 부셔버리고 싶은 충동.
그것이 눈앞에 아리에게 향하려는걸 깨닭고 필사적으로 밖으로 뛰쳐나왔다.
"뭐, 뭐야 이거! 내가 왜 이러는 거지!?"
-마이너스 에너지를 너무 많이 흡수한것 같다냥! 서둘러 포인트로 전환해라냥!
그러고보니 원래라면 베이스캠프에 들어오자 마자 마이너스 에너지를 포인트로 전환했어야 하는데 너무 피곤해서 그대로 잠들었었다. 나는 심장을 부여잡고 주저 앉은채 시스템을 불러냈다.
"크윽! 시스템! 마이너스 에너지, 포인트 전환!"
[ 사용자의 마이너스 에너지를 포인트로 전환합니다. 총 215000 포인트가 생성되었습니다.]
그제야 나를 괴롭히던 파괴의 충동이 점점 사그라들어 갔다.
"헉헉... 뭐였지... 방금...?"
충동은 가라앉고 점점 안정을 되찾아갔다. 방금 느낀 감각은 매우 두려웠다.
"이게 전에 말했던 그 미쳐버릴지도 모른다는 그거야?"
전에 큐비가 에너지를 너무 많이 가지고 있으면 미쳐버릴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반드시 베이스캠프에 돌아오면 에너지를 포인트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렇다냥.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마이너스의 감정이 소유자를 집어삼키려 한다냥. 그러니까 반드시 에너지는 포인트로 변환시켜야 한다냥.
거대전갈은 굉장히 강한 몬스터였기 때문에 에너지의 양도 어마어마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최상위의 몬스터는 분명 아니다. 그런 전갈이 십만이 넘는 에너지를 주었는데 이곳의 주인이라는 녀석은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겠는가? 그리고 그걸 쓰러트리면 어떻게 될까? 나는 순간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분명 그녀석을 쓰러트리는 순간 에너지에 집어삼켜져 미쳐 버릴지도 모른다.
"에너지의 한계를 늘릴 수 있는방법이 없는거야?"
만약 방법이 없다면 더 이상의 사냥은 불가능하다. 아무런 대책없이 미쳐버릴지도 모르는 행위를 계속 하는것은 바보같은 일일 것이다. 다행히 큐비는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
-있다냥. 바로 마스터가 되는것이다냥.
"그 마스터라는거 내 경우, 검술 랭크 5까지 올리면 됀다고 했잖아. 그걸로 가능한거야?"
실제로 마스터가 되어야한다면 무척 곤란하다. 나는 사실 검술의 검도 모르는 일반인 인것이다.
-당연하다냥. 마스터가되면 그릇이 달라질거다냥. 더 크고 넓게 변한다냥.
어느정도 안심이 되었지만, 마스터가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550만의 포인트가 필요하다. 변환하지 않고 둔다면 미쳐도 몇번을 미쳐버릴 위험이 있는 수치다.
-알았냥? 앞으로는 아무리 피곤하다고 해도 포인트로 변환하는 일을 빼먹어서는 안된다냥.
"응. 나도 그런 감정을 두번다시 느끼고 싶지 않아."
방금전의 느낀 그 감정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데, 큐비야. 마스터가 되면 그릇이 바뀐다는 이야기. 환골탈태랑 비슷한거야?"
큐비에게 환골탈태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주로 무협쪽 설정이지만.
-그런 극적인 변화는 없겠지만 신체적 변화가 있는것은 확실하다냥.
나는 은근한 기대로 부풀어 올랐다.
"괜찮으세요?"
언제부터 있었는지 아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말을 건냈다. 아리는 큐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옆에서 보면 심각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이상한 사람으로 볼 지도 모르겠다.
"응, 괜찮아. 아, 그거 아리가 만든거지? 혹시, 내 몫도 있니?"
"네!"
아리가 기운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곳에서 식사를 할 필요는 없지만, 모처럼 아리가 음식을 만들었으니까, 함께 먹는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다.
"그럼 같이 먹자."
"아, 네!"
조금쯤은 아리랑 친해진건가? 나쁘지 않은 거리감을 느끼며 나는 아리가 만든 스프를 입에 가져갔다. 음... 만들어준 성의를 생각해서 남기지는 말아야겠다.
나는 아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참 유익한 시간이었다.
식사 후 나는 시스템을 통해서 검술랭크를 3으로 올렸다. 드디어 짝퉁 익스퍼트를 벗어던지고 진짜 익스퍼트가 된것이다.
[왕국검술이 랭크3이 되었습니다.
데미지배율이 4배로 상승합니다.
공격속도가 4배로 상승합니다.
공격가이드가 4배로 상승합니다.
스테이터스 적용 한계치가 32가 되었습니다.
공격속성 '오러'를 습득하였습니다.
3랭크 검기 '오러 스트라이크'가 개방되었습니다.]
'오러'라고 하는 공격 속성이 추가되었다. 설명을 들어보니 공격 1회당 1의 기력을 소비해서 상대의 방어력을 1/2로 줄인다고 한다. 전갈 같은경우에는 방어력이 43이라서 내 검술이 통하지 않았는데 이제 기력을 1 소모하면서 방어력을 22까지 낮출 수 있게된다는 이야기 이다. 현실에서는 어떤식으로 이것들이 적용되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방어력이 높은 녀석들을 상대할 방법이 하나더 늘은것이다. 또다른 하나는 물론 마법이고.
바로 이어서 검기 '오러 스트라이크'도 5만 포인트를 지불하고 익혔다. 이 검기는 지상에 있는 적을 공중으로 띄운후 여덟 방향에서 공격을 가하는 기술이라는데 몇번 사용해 보면서 감을 익히도록 해야겠다.
포인트가 많이 남아서 차원상인 폴을 통해 원화로 조금 바꾸어 볼까 하다가 루이스와의 거래로 돈이 들어올 예정인걸 떠올리고 나중을 위해 아껴두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보니 전갈의 사체를 처분해야 하는데, 루이스에게 가능한 일일까? 한번 물어보아야겠다.
나는 루이스가 있는 베이스캠프근처의 숙영지로 향했다.
루이스의 길드가 작업을 하고 있는 곳에 루크와 중소길드연합의 생존자 7명도 함께 있었다. 내 생각에는 그런일을 격었으니 던젼이 싫어질만도 한데 아직도 이곳에 있다는게 신기했다.
"칸님! 마침 잘 오셨습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루이스가 나를 보고 반가운 얼굴로 이야기했다.
"무슨 이야기요?"
루이스는 잠시 루크와 다른 길드원들의 얼굴을 한번씩 바라보고는 다시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뭔가를 결심한듯 진지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사실, 저희는 길드를 해체하려고 합니다."
응? 드디어 던젼을 떠날 생각을 하게된건가? 조금 갑작스럽긴 하지만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루이스의 생각은 내 생각과 조금 다른 것이었다.
"저희들의 전투능력으로는 던젼에서 살아남기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길드를 해체하고 칸님의 밑에서 일을 하고싶습니다."
이건 좀 갑작스러운 이야기네. 내 밑에서 일하다니. 아리처럼 말인가?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봐야 할것 같다.
"너무 갑작스럽군요. 구체적으로 제가 어떻하기를 바라시나요?"
내 질문에 루이스 대신 루크가 나서서 대답을 했다.
"칸님은 길드를 만드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당황스러운 질문이다. 길드라... 솔직히 생각 안해본건 아니지만 나에게는 필요가 없는 조직이다. 솔직히 루이스나, 루크들은 내게 짐이될 뿐이니까.
"전 길드를 만들 생각이 없습니다."
내 생각을 루크에게 전했다. 그러자 약간 실망한 표정을 지었던 루크가 다시 표정을 바로 하고 말했다.
"그러실거라고 짐작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원하는 바는 전투 길드가 아닌 부산물 처리길드를 만드는 것입니다."
"몬스터 부산물을 전문적으로 처리하시겠다고요?"
"그렇습니다. 강한님께서는 무척강하신 분이시고 저희들은 전혀 전투에 도움이 안되겠지요. 하지만 저희가 다른 부분에서는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루크는 몬스터 부산물의 처분과 관리 보관등등의 일과 내가 점령한 지역의 통행료도 대신 수금해 줄 수 있다고 했다.
"통행료 수금이 쉬울까요? 아무래도 실제 무력이 없으면 힘들것 같은데요?"
"저희같은 약소길드라면 모를까 칸님을 무시할수 있는 길드는 아마 없을겁이다."
루크와 루이스는 마치 내가 마스터라도 되는양 행동하고 있다. 내가 오크들을 물리치고 이들을 구해준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최강인것은 아닌데 왜 이렇게 나를 신뢰 하는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지 모르는데 너무 나를 의족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전 길드를 만들 생각이 없어요. 그렇지만 여러분이 부산물을 처리해주는 길드를 만드신다면 저는 두분께 일을 맡기도록 할게요."
두사람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납득했다. 결국 지금까지와 다를바 없는 이야기로 돌아왔다. 당분간 이들은 내가 가져다준 몬스터사체를 이용해서 돈을 벌다가,그 돈으로 전력을 강화해서 나중에는 던젼안쪽까지 진출해서 직접 몬스터의 사체를 운반하는 길드를 만들겠다고 했다. 아셀탄트에 새로운 형태의 몬스터부산물 가공전문 길드가 생겨난 순간이다.
루이스와 루크가 새로운 길드를 만든다고 해도 하는일은 변함없이 내가 가져다준 몬스터사체를 분리하는 일이다. 그것만으로도 일손이 부족할 정도인데 다른 길드의 일을 맡을 수 있는 여력이 있을리가 없다. 거기에 더해 나는 더욱 엄청난 일을 그들에게 맡겨주었다.
"이, 이건!?"
"자이언트 전갈!?"
두사람이 깜짝 놀라서 펄적뛰었다. 그들은 감탄스러운 표정으로 전갈을 둘러보더니 이윽고 내게 다가와 미안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저희의 기술 가지고는 무리입니다. 다른 길드에게 맞기는 게 좋으실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매우 아쉬워 했다. 이 전갈이 상당히 비싼거라서 아마 수수료만 해도 엄청난 돈이 될터였다. 나는 아쉬워 하는 그들에게 전갈을 억지로 맡겼다.
"몬스터 부산물 전문 처리 길드를 만드실 생각이시라면 이정도는 당연히 처분할 기술이 있으셔야죠. 시간이 얼마나 걸려도 상관없으니 한번 해 보세요."
두사람이 감동받은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자이언트 스콜피온은 반드시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그럼 맡길게요."
두사람을 뒤로 하고 나는 바로 3층계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