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8 1 장 - 와일드포스 야만의던젼 - =========================================================================
5m가 넘어가는 커다란 키에 딱벌어진 어깨와 트롤과는 전혀다른 날렵해 보이는 근육. 허벅지의 크기가 내 몸보다 더 두껍다. 힘줄이 솟아있는 강인한 팔로 2m넘는 거대한 몽둥이를 들고있지만, 무기는 사실 의미가 없다. 힘이 엄청나서 한번 휘두르면 커다란 바위라도 가루가 되어 부서질 것이다.
지상 최강의 몬스터라는 오거의 모습이다.
캉!
방패로 막은 녀석의 공격에 내 몸이 뒤로 쭈욱 밀려나고 말았다. 정말 엄청난 힘이다. 돌연변이도 아니고 규격외몬스터도 아닌 녀석의 힘이라는게 믿어지지 않았다.
"저런 녀석이 이 위층계에는 우글우글 거릴 수 있다는 말이지?"
-적어도 한마리씩 움직이는 모습은 보기 힘들거다냥.
이곳 4층계는 그래도 인간의 힘으로 도달 가능한 곳이다. 익스퍼트를 앞세운다면 피해가 있을 수 있지만 길드의 힘으로 공략을 할 수있다. 저기 저 오거 녀석도 랄프정도의 실력이면 1:1로 충분히 쓰러트릴 수 있는 수준이고. 하지만 5층계의 싸이콜롭스 부터는 신화계 몬스터라고 불린다. 마스터가 되어야 겨우 한방 먹일 수 있는 수준이다. 그 윗층의 베히모스까지 가면 마스터라해도 목숨을 장담할 수 없게된다.
나도 아직 갈길이 먼것 같다. 지금도 오거 상대로 상당히 해메고 있다.
"인간! 죽인다!"
오거가 어눌한 어투로 말을 하지만, 내용과 전해져 오는 투기는 장난이 아니다. 다시한번 놈의 공격을 방패로 흘리고 안쪽으로 파고들었지만 놈의 다리가 먼저 나를 마중나왔다.
"큭!"
간신히 몸을 틀어서 발차기를 피했을때 놈이 몸을 빙글 돌면서 거대한 몽둥이를 휘둘러 왔다.
휙
머리위로 몽둥이가 지나가자 마자 그대로 엎어져서 옆으로 대굴대굴 굴렀고, 원래있던 자리에 오거의 몽둥이가 내려 꽃혔다.
퍽!
땅패이는것 봐라. 녀석의 힘도 힘이지만 전투센스도 장난이 아니다. 이건 뭐, 네임드 몬스터를 사냥하는 쪼렙전사가 된 기분이다.
"파이어 에로우!"
녀석의 눈을 향해 파이어에로우를 날렸다. 피해를 입히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틈을 만들기 위한 수작이다. 하지만 놈은 왼손으로 마법공격을 막아버리고는 달려들고 있던 나를 향해 그 몽둥이를 휘둘렀다.
캉!
달려가던 기세때문에 마음대로 피하지도 못하고 방패로 겨우 막아냈다. 흘리기를 시도할 여유조차 없었기 때문에 데미지가 상당히 쌓였다.
"인비져빌리티!"
어떻게든 공략법을 찾아보기 위해 갖은 시도를 다 해보기로 했다. 녀석은 잠시 나를 놓치고는 어리둥절 해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내가 공격을 위해 이동하자 마자 나를 향해 정확하게 몽둥이를 휘둘러 왔다!
캉!
다시 밀려나고 말았다. 아직 데미지를 제대로 입힌적이 한번도 없이 나만 체력이 줄어가고 있는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이렇게 밀린다고 해서 오거를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라이트닝볼트!"
"쿠우우우오!"
다행히 라이트닝볼트는 안정적으로 데미지를 줄 수 있었다. 그리고 4번의 라이트닝 볼트를 더 날렸다.
파지지지직!
오거의 체력을 절반도 줄이지 못했지만 이걸로 충분하다.
"오러 스트라이크!"
오거의 몸을 공중으로 끌어올려 사방에서 총8회의 공격을 가한후 마무리로 한번에 폭발적인 데미지를 입히는 3랭크 검기!
라이트닝볼트로 입혔던 데미지와 함께 오러 스트라이크로 오거의 체력을 0으로 만들었다.
"크으으윽..."
쿠당!
이미 공중에서 숨이 끊긴 오거의 거체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어찌되었던 1:1에서 무적인 이 검기가 있다면 오거 한마리쯤은 처리 할 수 있다. 기력은 거의 제로 가 되었지만 말이다.
"검이 안통하니 어쩔 수 없지. 설마 벌써 검술에 한계가 올줄은 몰랐어."
-기본이 안되어 있어서 그런다냥.
그래, 나 검술을 책으로 배웠다. 그것도 전자책. 심지어 읽지도 않았고. 신체능력으로 커버가 가능한건 트롤까지 였던것 같다. 신체능력도 나보다 좋고, 전투센스도 좋은 오거상대로는 내 검술이 안먹힌다.
물론 해결책은 있다. 검술을 올리면 그만이다. 공격력, 속도, 심지어 공격가이드까지 오르기 때문에 분명히 오거를 상대할만한 실력을 얻을 수 있을것이다. 문제는 검술을 올리기 위한 포인트가 턱없이 모자라다는 점이다. 포인트를 모을때 까지는 이렇게 한마리씩만 사냥할 수 밖에는 없다.
바닥난 기력을 체우기 위해 베이스캠프로 돌아온 후에 잠시 현실세계로 넘어갔다. 포인트가 아까웠지만 조금 머리를 식히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친구인 찬영이를 집으로 불렀다. 찬영이와는 대학 1년때부터 함께 게임으로 밤을 새우고는 했었다. 요즘에는 아셀탄트때문에 그런 기회가 없었기에 오늘은 오랜만에 마음껏 놀 생각이었다.
"어라? 너 고양이 키우는거야?"
찬영이가 내 침대위에 누워있는 큐비를 보고는 놀라워 했다.
"야~옹"
"...아는 사람이 잠시 맡겨두고 갔어."
큐비에대해 사실 대로 말할 수 없어서 그런식으로 둘러댔다. 찬영이는 큐비의 털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굉장히 얌전하고 착한 고양이네. 잘됐잖아 그렇게 고양이, 고양이하면서 노래를 부르더니. 그런데 이아이 이름이 뭐야?"
"큐비."
이름을 들은 찬영이가 눈가를 찌프렸다. 이름이 마음에 안드나?
"뭐냐, 하필 이름을 그런 불길한걸로 지었어?"
"내가 지은거 아냐. 그리고 큐비가 어디가 어때서?"
특이하고 좋은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찬영이는 생각이 다른가보다.
"아... 너 그러고 보니 마마마 안봤구나?"
"취향이 아니라서."
찬영이가 혼자서 납득하고는 '그러면 그렇지'라며 중얼거렸다. 뭐야, 대체.
찬영이와 나는 대충 분식같은걸 사와서 저녁을 해결한 후에 사이좋게 게임패드를 잡았다. 플레이한 타이틀은 옛날식 액션RPG. 용자일행은 길을 걷다가 몬스터 오거를 마주치게 되었다.
"오거는 힘만세고 무식하니까 마법이 직빵이지."
찬영이는 그렇게 말하며 조작하고 있는 케릭으로 마법을 난사했고, 곧이어 오거가 쓰러졌다. 우와... 약해라.
하지만, 찬영아. 오거는 힘만센게 아니라 몸놀림도 빠르고, 무식하지않고, 마법에 약하지도 않아. 너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게임케릭터는 아니지만 모처럼 마법도 쓸 수 있는데, 공격마법이 라이트닝볼트 하나라는 것도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반지를 얻어서 쓸 수 있는 마법이고. 지금 마법랭크가 3인데 3랭크 공격마법 하나정도는 익혀도 좋지않을까 싶었다.
아셀탄트로 돌아온 나는 아리에게 현실에서 사온 옷가지들을 한아름 넘겨주었다. 매일같이 백화점 카탈로그를 바라보면서 몽롱한 표정을 짓고는 하면서, 정작 무슨옷을 사달라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아리가 주로 보는 옷들을 체크해 두었다가 이번에 사온것이다.
"강한님... 감사합니다. 잘 입을게요."
아리가 미안하면서도, 기쁘다는 반응을 보였다. 뭐, 사실 선물은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기쁘게 하니까,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내 취향이 살짝 반영되었다는건 비밀이다.
"시스템! 3랭크 마법, 프레쉬 투 스톤! 마이너스 포인트 5만!"
큰맘먹고 5만 포인트를 투자하여 3랭크 마법 프레쉬 투 스톤을 익혔다. 마법이 걸리는 순간과 풀리는 순간에 2번의 타격을 주고, 무엇보다 마법에서 풀릴때 근육이 정상으로 돌아오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기 때문에 그때를 이용하면 큰 데미지를 입힐 수 있을것 같았다. 일단 실전에서 써먹어 보기로 했다.
"프레쉬 투 스톤!"
쩌저적!
오거의 거체가 잠시동안 석상으로 변했다가 깨어지면서 큰 데미지를 입었고, 그 순간 달려들어 오거의 몸통을 오러를 입힌 검으로 베었다. 첫번째 공격은 버텨낸 오거였지만 바로이어진 연격에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크으으윽!"
쿵!
프레쉬 투 스톤의 소비 기력이 150으로 높은 편이라, 많은 전투를 벌일수는 없었지만, 3랭크 검기를 딱 한번쓰고 끝났던 거에 비해서 사냥이 3배는 빨라졌다.
오거 3마리 혹은 워트롤을 사냥하고 나면 베이스 캠프로 돌아가서 휴식을 취했다. 그럴때마다 베이스캠프에서는 아리가 패션쇼를 하고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즐겁게 돌아다니다가 내가 나타나면 얼굴이 빨개져서 텐트속으로 쏙 들어갔다. 사냥을 갔다가 다시 돌아오면 이번에는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마음에 들은것 같아서 다행이다."
아리의 얼굴이 빨개졌다. 저렇게 좋아하니 나중에 다른 옷도 사다줘야겠다.
오거 사냥은 그런데로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단지, 시간이 조금 많이 걸리기는 했지만 어차피 다른 길드는 4층계에서 코빼기도 안보이고 있다. 여유를 가지고 사냥을 하기로 하고, 조금 탐색을 진행해 보았다.
이곳 4층계는 그렇게 마음에 드는 풍격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 몬스터가 없을때는 무작정 걷는게 지루하게 느껴졌다.
-지루하냥, 강한아.
큐비가 말을 걸어왔다. 따분해 하는게 보인건가?
"솔직히 좀 그러네, 뭔가 멋진 풍경도 없고, 하늘은 우중충하고 말이야."
-그럼, 잘됐다냥. 규격외 몬스터가 앞에 있다냥.
...이것봐. 큐비가 알려준 장소에는 검은색털의 거대한 원숭이가 한마리 있었다. 신장은 한 3m정도 되는것 같은데, 똑바로 서있는게 아니라서 2m 정도로 보였다. 녀석은 나를 발견하고는 흥분한듯 빽빽 소리를 지르며 발광을 했다. 그렇지만 이쪽으로는 다가오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큐비, 에널라이즈."
-알았다냥.
[ 자이언트 몽키 ]
체력 210000
기력 ???
힘 35
지력 19
방어 25
민첩 47
저항 21
다른 능력치 들에 비해서 민첩이 너무 높았다. 내가 지금 32로 제한이 걸려있는데 저녀석은 제한없이 47이다. 공격을 한다해도 일단 맞추기가 힘들어 보였다.
"그런데 저녀석, 왜 덤벼들지 않는 거지?"
내가 다가오는것은 무척이나 경계하면서도 자신은 그자리에서 비켜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에게서 시선을 때지 않고있다.
-녀석의 다리를 봐라냥.
다리? 큐비에 말대로 녀석의 다리를 쳐다보니, 꽃인지, 풀인지 구분이 어려운 어떤 식물이 땅위에 자라나 있었다. 책에서 본 인삼처럼 생긴것 같기도 하다.
"저게 뭔데 그래?"
-만드라고라다냥. 먹으면 몸에 아주 좋다냥. 그래서 저녀석도 저걸 차지하기 위해서 저러고 있다냥.
그럼 그냥 파내어 먹으면 될텐데 왜 저러고 있는거지?
-만드라고라는 대책없이 뽑으면 흉악한 비명소리로 인해서 큰 피해를 입고 죽게된다냥. 그래서 저걸 먹고싶으면서도 못먹고 저러고 있는거다냥.
저게 위험하다는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는 거구나.
"그런데 저 만드라고라가 어떤 식으로 몸에 좋은데?"
-강한이 네가 먹으면 체력과 기력을 올려준다냥.
그거 엄청나게 좋은거잖아. 체력도 기력도 중요하니까. 나는 씨익 웃으면서 검을 꺼내어 들었다. 힘들겠지만 저 거대원숭이를 쓰러트릴 가치가 있을것 같다.
내가 공격자세를 취하자 놈의 경계심도 극에 달했다.
"우키! 우키!"
놈이 이빨을 드러내고 방방 뛰면서 위협적인 행동을 보였다.
"미안하지만, 그 만드라고라, 나에게 꼭 필요해서 말이야. 꼭좀 가져가야겠어."
민첩성에 차이는 있지만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규격외 몬스터를 쓰러트렸을때의 보상을 생각하면 만드라고라가 없다고 해도 반드시 사냥해야 했다.
나와 녀석의 눈이 마주쳤다. 양보할 수 없는 싸움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 작품 후기 ============================
선작도 추천도 많이 늘었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