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3 인터벌 =========================================================================
렐리길드와 함께 렐리시티를 향한 여행을 시작한지 이틀째 되는 날 저녁무렵에 우리는 중간 지점인 이벨이라고 하는 마을에 도착을 하였다. 석양에 감싸인 이벨마을의 전경은 매우 아름다운 멋이 있었다. 마을이라고 불린만큼 시골같은 인상이었는데, 굉장히 안락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었다. 마을 외각에서는 가축들을 축사로 들여보내는 일에 한참이었고, 집집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며 맛있는 냄새가 가득차 있었다.
솔직히 시골하면 떠오르는 구수한 향기가 이곳에서는 전혀 나질 않았다. 분명 마을에는 논과 밭이 있고, 가축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는데도 전혀 시골스러운 향기가 나지 않는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뿐만아니라 도로도 생각이외로 잘 닦여져 있었고, 집들도 깔끔한 벽돌집들 이었다. 집들 사이에는 담이 없었고,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활기차게 뛰어놀고 있었다.
노예에대한 가혹한 처우를 보고 생활수준이 별로 좋지 않겠거니 생각했는데 의외의 모습이었다.
-몇백년 전까지만해도 이곳은 너희 세계의 중세유럽들 보다 못한 곳이었다냥. 그러나 약 200년전에 나타난 대마법사 페레인의 의해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었고, 좀더 청결하고, 좀더 세련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냥.
"대마법사 페레인?"
-천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6서클 마스터로서 마법의 정점을 찍은 자다냥.
이곳의 마법체계로 볼때 6서클은 보통 다른 세계의 9서클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그런 6서클을 마스터했다면 마법으로서는 최고의 자리에 오른자일것이다. 참고로 나는 아바타 시스템의 도움을 받더라도 5서클이 한계라고 한다.
"그럼 이곳의 동화속 세상같은 모습들은 그 마법사가 만든 마법의 의한 모습인거야?"
-마법사가 꾸민것은 맞지만, 마법이 아니고 기술이다냥.
큐비가 그런 말을 했을때, 나는 마을 한쪽에서 신기한 사람을 한명 발견했다. 키는 1m도 체 안되는 작은키에 다부진 체격을 갖춘 사람이었는데 아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몸에 털이 너무 많았다. 저 모습은 마치 영화에 나오는...
-드워프다냥. 대마법사 페레인은 그 옛날 드워프들과의 교섭을 통해 그들의 기술을 인간세상에 가져왔다냥. 물론 인간이 드워프들의 기술을 흉내내는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그 대신 드워프들이 인간세상에 활발하게 진출했다냥. 지금은 인간들의 마을에서 드워프를 만나보는것이 힘든일이 아니다냥.
이 마을의 깔끔함의 원인은 드워프들에게 있었나 보구나. 나는 솔직히 이 곳 아셀탄트의 도시를 상상해 보면서,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음습한 분위기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런 작은 마을이 이정도라면 대도시는 얼마나 멋진 모습을 보여줄지 상상만으로도 즐거워졌다.
이벨마을에서 하루를 머무른 우리들은 다음날 일찍 렐리시티를 향해 출발을 하였다. 그리고 하루밤을 노숙으로 지내고 다음날 점심무렵에 드디어 렐리시티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했어요, 칸! 저곳이 바로 렐리시티랍니다."
커다란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에서 세리스가 나에게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이 살고있는 도시를 소개시켜 주었다.
렐리시티는 분명 세리스가 자랑을 할만한 멋진 도시였다. 하얀색 성벽으로 둘러싸여져 있는 도시는 멀리 떨어져서 보기에도 상당한 규모로 보였다. 물론 현대적인 관념의 도시와는 그 크기의 차이가 심했지만 이곳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이정도면 대도시에 속한다고 할 수 있었다. 동서남북문으로 둘러싸인 한양정도의 크기를 생각하면 될것같다.
언덕을 내려와 도시앞까지 다가가자 활짝 열려져 있는 성문이 보였다. 그리고 그곳을 지나는 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모습을 감시하고있는 병사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들은 가까이 다가오는 무장한 인원들의 경계심을 보이다가 곧 렐리길드 특유의 복식을 알아보고 그 자리에서 부동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그들중에 대표자로 보이는 중년의 사내가 뛰어나와 렐리에게 경례를 올렸다.
"충! 영주님을 뵙습니다."
렐리는 이곳의 영주이지만, 시청과 시장은 따로있다고 한다. 도시를 지배하는건 렐리지만 도시를 다스리는건 시장인것이다. 물론 그 시장을 임명한것은 시민들이 아닌 렐리이기 때문에 렐리가 다스린다고 할 수도 있지만, 렐리는 정말로 도시를 경영하는건 관심이 없는듯 했다. 아무튼 성문을 경비하던 자들이 렐리를 향해 경례를 올리는건 당연한 일이다.
"아아, 알았어, 알았어. 가서 계속 하던일 해."
"알겠습니다. 충!"
다시 한번 절도있는 모습으로 례를 올리고 돌아가는 경비대장. 건성건성한 태도의 렐리와는 다르게 건실해 보이는 모습이다. 원래 이곳의 경비대들의 군기가 저정도로 잘 유지되고 있는건가?
-나도 많은 도시들의 상황을 아는것은 아니지만 저정도까지 절도있는 군기를 보여주는 도시는 몇 안된다냥.
그럼 더 의문인데? 렐리가 군기를 잡는 스타일로는 보이지 않고. 나는 세리스를 처다보았다.
"굉장히 군기가 잘 잡혀있는것 같은데?"
"그야, 이 도시의 시장님이 매우 엄격하신 분이니까요."
세리스는 이곳의 시장에 대해서 잘 아는듯 보였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분은 시민들에게는 매우 자상하시지만 관원들에게는 매우 엄격하시거든요."
이야기 만으로는 꽤나 훌륭한 목민관으로 보이는데? 그때, 렐리가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그 가족들에게도 엄격하지. 시장으로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가장으로서는 꽝인남자야."
그러면서 나를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당신은 그런 시시한 남자가 되지는 말라고. 내 제자를 나처럼 불행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러고는 먼저 말을 타고 도시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세리스를 바라보았다. 세리스는 약간 곤란한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시장님이 바로 스승님의 전 남편이시거든요."
렐리 유부녀였어!?
멀리서 바라본 렐리시티의 모습은 상당히 멋이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들어와서 바라본 모습은 더욱 더 대단한 모습이었다.
"정말 깔끔한 도시네. 집이 세워진 모습도 반듯하고, 거리에는 쓰레기도 거의 안보이고."
상하수도는 드워프들의 기술로 완비되었다고 해도, 거리의 쓰레기가 거의 보이지 않는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내 혼자말을 들은 세리스가 친절하게 대답을 해 주었다.
"쓰레기를 버리면 물게되는 벌금이 상당히 많거든요."
현실세계의 핀리핀같은 나라가 쓰레기 무단투기의 벌금을 세게물려서 길거리가 깨끗하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이곳도 그런식으로 거리를 깨끗하게 유지하는건가?
"몰래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하지? 잡아낼 수 있는 방법이라도 있는건가?"
그말에 세리스가 어느 한곳을 가르켰다. 등? 아직 낮이라 불이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모양으로 보기에 등으로 보이는것들이 거리마다 일정간격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저 마법의 등은 거리를 밝혀주는 역할 뿐만 아니라, 안에 설치된 영상기록 전송 장치로 인해서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을 감시하거나 할수 있어요."
감시카메라 역할도 하는거야? 마법이 꽤나 편리하게 쓰이는구나.
-마법만이 아니라 드워프의 기술이 합쳐진 결과다냥.
드워프가 인간사회에 자연스럽게 섞여지낸다고 들었는데 확실히 그 기술력이 도시 이곳저곳에 쓰이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촌놈이 도시구경하듯 여기 저기를 기웃거렸고, 세리스는 그런 나를 따라서 이곳저곳을 안내해주었다. 그러자 라냐가 불만을 표시해 왔다.
"도시관광이라면 나중에 실컷하고, 일단 본부로 돌아가요!"
아, 관광온게 아니였지. 이것참 의외로 아름답고 멋있는 도시의 모습에 빠져서 목적을 잃을뻔했다. 렐리길드에 들려서 던젼을 처분하는게 우선이다.
관광은 나중에 천천히 해야겠다.
잘 닦여진 길을따라서 약 30분간 걸어간 끝에, 상당히 큰 건물이 있는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3층높이는 되어보이는 하얀색의 벽돌로 지어진 세련된 모습의 건물이었다. 그곳에는 렐리길드를 나태내는 세검과 방패가 그려진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고, 문 앞에는 일단의 사람들이 나와서 있었다.
"다녀오셨습니까? 스승님."
그중에서 대표로 보이는 한 여성이 나와서 렐리에게 인사를 건냈다. 약 170cm정도로 보이는 여성으로서는 큰 키에 연보라빛 머리를 단정하게 기른 차분해 보이는 인상의 미인이였다. 렐리길드 특유의 여성갑옷이아닌 예복 비슷한 파랑색 계통의 옷을 입고있었는데 세리스는 저 복장이 렐리길드의 던젼아닌곳에서 착용하는 정복이라고 이야기 해 주었다.
"아, 피곤해, 피곤해. 뒤는 알아서 정리해줘, 이리아. 칸, 일단 푹쉬고 나중에 한번 보자고."
나중에 보자는건 설마 승부를 하자는 소리는 아니겠지? 렐리는 나를 보고 씨잇 웃더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리아 언니!"
렐리가 들어가고나자 라냐가 기세좋게 이리아라는 여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무거워! 정말 이렇게 안겨들지 말라고 이야기 했잖니."
"언니가 보고싶어서 힘들었는걸!"
음... 라냐가 저런 성격이었나? 굉장히 어리광을 부리는 모습이었다. 라냐가 신장에 비해서 볼륨이 상당한 편인데, 저 이리아라는 여성도 상당히... 흠흠
머리속에 거유자매라는 단어가 떠올랐지만 머리를 휙휙저어 날려버렸다. 그리고는 세리스를 바라보았다.
내 시선을 받은 세리스가 나서서 이리아에게 나를 소개시켜 주었다.
"이리아 언니, 전에 말한적이 있었지? 칸이라고 해."
한참 달라붙는 라냐와 실랑이를 벌이던 이리아가 나를 바라보고는 인사를 해왔다.
"아, 만나뵙게되어 영광입니다. 이리아라고 합니다. 말씀은 많이 들었어요."
대체 무슨 이야기를 들은걸까. 설마 흑역사와 관련된 이야기는 아니겠지.
"반갑습니다. 렐리가 던젼에 관한 이야기는 당신과 나누라고 하더군요."
"던젼이요?"
세리스가 보충설명을 해주었다.
"이번에 우리가 탐색을 시도했던 와일드포스의 던젼, 그 소유권을 칸이 가지고 있거든."
그제야 이해가 간듯, 이리아가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럼 자세한 이야기는 안에서 나누도록 하지요. 라냐, 그만 매달리고 손님을 안내해 드려야지."
"응, 언니!"
이리아에게 매달려 있던 라냐가 나를 보면서 이야기 했다.
"따라와요."
이리아를 대할때와는 완전히 다른 태도다.
그녀에게 안내 받아 들어간곳에 짐을 풀고는 바로 응접실로 나왔다. 던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다. 응접실에는 이리아가 먼저 나와 앉아있었다.
"그럼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도록 하지요. 먼저, 지분관계를 파악해 보도록 할게요. 던젼공략에 참여한 다른 길드로부터 지분에 관한 서류를 받으신것 있으신가요?"
중간구역의 거점이나 엔트런스를 제압한 길드가 있을경우 던젼 전체에 대하여 일정범위의 지분을 요구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 이외에는 그 던젼의 한 거점이라도 점령한 길드가 없으니 던젼은 완전히 내 소유인것이다. 유일하게 중간구역을 점령했던 길드는 완전히 박살이 나버렸다. ...나한테.
"던젼에대한 지분을 요구할 길드는 없습니다. 던젼 전체가 제 소유이죠."
이리아는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세리스와 라냐를 바라보고 한마디 했다.
"우리길드도 단 한곳도 점령하지 못한거야?"
"우윽..."
"안타깝게도..."
이리아가 골치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수입이 없었으니 재정을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곤란해 질수밖에 없는일이다. 그녀의 눈빛이 변하여 나를 바라보았다.
"최고의 조건으로 던젼을 처리해드리도록 할게요. 단, 수수료는 확실히 받도록 하겠습니다."
알수없는 포스가 느껴졌다. 그래도 믿음직 스러운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