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4 인터벌 =========================================================================
이리아는 던젼거래의 대상이 왕국이 될거라고 이야기 했다. 내 신분이 명확하지 않은 문제가 있기때문에 왕국과 직접 교섭하여 작위를 받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것이다. 신원보증은 마스터인 렐리가 해주겠다고 하니, 왕국에서도 받아들일거라고 예상하는듯 했다.
"다소 금액면에서 손해를 볼 수 있겠지만, 확실한 신분을 보장받고 그에 걸맞는 작위를 수여받는것이 앞으로의 행보에도 유리할것이라 생각합니다."
나로서도 금전적인면에 그렇게 집착하지는 않기때문에 왕국과 교섭하는 쪽이 더 좋았다. 이리아는 줄어드는 수수료 대신에 왕국과의 교섭과정에서 여러가지 이권을 얻어낼 생각을 하고있는듯 했다. 뭐, 알아서 하겠지.
이리아가 교섭을 위한 연락을 왕국에 넣었고,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렐리시티 관광에 나섰다. 그리고 그런 나를 따라서 아리와 세리스가 함께 했다.
"길드의 업무는 괜찮아?"
"전 현장전문 이라서 괜찮아요."
던젼에서 돌아온 길드는 매우 바빠보였는데 그중에서도 이리아, 라냐, 파를로는 정말 보고있기 딱할정도로 바빠보였다. 그리고 렐리와 세리스는 굉장히 한가해보였고. 세리스는 서류업무도 절할것 같은 이미지 였는데 솔직히 의외였다.
아무튼 정말로 한가했던 나와 아리, 그리고 자칭 한가한 사람인 세리스가 함께 렐리시티의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렐리시티는 겉보기도 훌륭하지만 주민들의 생활모습도 상당히 좋아보였다. 치안도 괜찮은 수준이라 주민들은 불안해 하는 일 없이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 도시에는 불법조직같은것도 없는거야? 뒷골목에 자리잡고있는 그런 어두운 조직."
아무리 감시카메라 기능을 하는 마법의 등이 설치되어있고, 시장이 법을 엄격하게 적용한다고 해도 그런 놈들은 어디가나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런 녀석들의 그림자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저희가 있으니까요. 렐리길드가 버티고 있는데, 그런 불법조직이 이 도시에 발을 붙일수는 없는일이예요. 몰래 들어와서 세력을 펴려고 해도, 저희가 곧장 무너트리곤 하거든요."
익스퍼트와 오러유저가 득실데는 길드가 도시에 붙어 있어서 어둠의 조직이 스며들 여지가 없다는건가?
-뭐, 모든 길드가 그런식인건 아니다냥. 렐리길드는 마스터가 소유하고 있는 길드이기때문에 그런면에서 조금 철저한것 뿐이다냥.
하긴 어둠의 조직과 손잡고 이득을 취하는 길드가 있다고 해도 이상할것 없겠지. 마스터쯤되면 사회적 체면도 있으니 그런 녀석들과 어울리는 일이 없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 도시는 시장의 엄격한 통치와 렐리길드의 존재로 인하여 참 살기좋은 도시가 된것 같다. 거대길드의 존재는 경제적으로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혜텍을 주기도 한다니까.
그래서인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여유가 넘쳤다.
"가까이에 정화가 완료된 새로운 던젼이 생겼으니, 이 도시는 더욱더 발전할 수 있을거예요."
세리스가 즐거운듯이 말했다. 이곳은 세리스의 고향이기도 하다고 했는데, 자신의 고향이 발전한다는 사실이 너무 기쁜듯했다.
아무튼 전 헬라일 영지이자 현 렐리시티의 토박이 세리스의 안내로 도시의 이곳저곳을 돌아보는 동안 드디어 왕국에서 교섭인이 도착하였다고 했다.
"공주?"
"그렇습니다. 현 국왕 라하드 전하의 셋째 딸인, 세렌시아 공주님이 직접 교섭인으로 오셨습니다."
보통 던젼의 소유권 교섭정도로 공주가 직접오는 일은 없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나라고 하는 새로운 마스터가 나타났기때문에 진위여부의 확인과 작위문제로 공주가 직접 나선것 같다고 이리아가 말했다.
"그럼 내가 그 공주를 상대해야 하는건가요?"
"칸님은 얼굴만 비추시면 됩니다. 나머지는 제가 다 알아서 할게요."
그렇다면 다행이다. 나는 그런 교섭같은건 자신이 없으니까.
세렌시아공주라고 하는 사람은 그림을 그려놓은듯한 전형적이고 고전적인 공주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길고 윤기나는 금발머리에 은빛의 티아라를 쓰고있었고, 이곳에와서 갈아입은것인지 여행용 옷대신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있었다. 전체적인 모습이 누가보더라도 공주님이라고 생각될 정도의 미녀였다.
"그대가 새로운 마스터, 칸 이시군요.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왕국의 세번째 공주, 세렌시아라고 합니다."
공주가 정중하게 인사해 왔다. 공주라고 콧대가 높거나 건방진 성격일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정중한 모습을 보여주어 살짝 놀랬다.
"반갑습니다."
예법에 맞는지 모르겠네. 나는 그런거 잘 모르니까. 하지만 공주도 그런 사소한것은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마스터 바토레이경이 신원을 보증한다고 하였지만, 저희쪽에서도 확인을 위해서 마스터 렌달경과 동행하였습니다."
바토레이는 렐리의 성이다. 공주가 시선을 자신의 우측에 서있던 다부진 모습의 갈색의 머리칼을 가진 중년남자를 향해 두었다.
-왕국 소속의 마스터다냥. 길드소속이 아니라 부딪칠 일은 없겠지만 일단 조심해라냥.
아까부터 분위기 잡고 나를 째려보고있는 사람이 누군가 궁굼했었는데 왕국소속의 마스터였구나. 그 렌달이라고 하는 마스터가 공주의 시선을 받고 앞으로 나섰다.
"솔직히 잘 모르겠군요. 전혀 기세가 느껴지지 않으니. 보고를 받기는 했지만 믿을 수 없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이런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당황스럽군요."
"그럼 마스터라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없다는 이야기인가요?"
공주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렌달에게 물어보자,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기세가 느껴지지 않지만, 마스터의 증명은 그것뿐이 아니지요. 가령 오러를 직접 보여주는 방법도 있고요."
그러면서 시선을 나로 향했다. 실력을 보이라는 뜻인가?
"이곳에서요?"
나는 공주를 힐끔 바라보면서 물어보았다. 이런 좁은 실내공간에서 공주가 가까이에 있는데 검을 뽑아서 오러를 주입해 보이라는 이야기인가?
내 신선을 눈치채고 렌달이 자신의 허리춤에있는 칼을 툭툭 건드리면서 말했다.
"괜찮으니 해보게."
네가 무슨짓을 벌여도 막을수 있다고 하는 자신감의 표현인 모양이다. 그럼 사양않고 실력을 보여줘야지. 나는 검을 꺼내들어 살짝 오러를 검에 흘러넣었다.
"이것이 오러유저의 수준이죠."
이번에는 좀더 오러의 양을 늘려서 검 전체를 오러로 감쌌다.
"그리고 이것이 익스퍼트 상태의 오러의 형태입니다."
응접실에 모인 모든 이들이 저놈 뭐하나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모르면 가만히 있어봐. 이거 꽤 중요한 행동이니까.
"그리고 이것이..."
이번에는 모든 오러를 쏟아부워 오러가 검을 벗어나 타오르는듯한 형태로 만들었다. 가까이서 바라보던 공주가 흠칫 놀랐고, 렌달이 그 앞을 막아섰다. 나는 그런 렌달을 향해 말하였다.
"이것이 바로 익스퍼트를 초월한 경지, 마스터의 증거인 하이퍼 오러입니다."
렌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전의 의미없는 행동을 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마스터가 틀림없습니다."
"... 그, 그렇군요. 마스터라는 사실은 렌달경이 확인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신원문제는 마스터 바토레이경이 보증을 해 주었구요. 절차에 문제는 없겠군요."
공주가 놀란 가슴을 쓰러내리며 다시 침착함을 되찾고는 말을 하였다.
"그럼 새로운 마스터이신 칸, 당신에게 제안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왕국에 소속하여 나라에 위기시에 그 힘을 국가를 위해 사용할 용의가 있으신가요?"
"네."
난 망설임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언제든 이곳을 떠나서 현실로 돌아갈 수 있기때문에 이곳에서의 의무나 권리는 있으나 마나한 것이다. 하지만 일단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던젼을 공략해 나가기로 정한 이상 거점은 꼭 필요했고, 작위는 있으면 편리한 것이다. 손해 볼것은 없겠지.
"좋습니다. 한가지더 물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왕실에 입관하실 생각은 있으신지요?"
공주가 은근한 어조로 물어보았다. 왕실에 입관한다는 소리는 옆에있는 렌달처럼 왕국소속의 마스터가 된다는 뜻이다. 뭐, 얻는건 그쪽이 더 많겠지만, 내 목표는 던젼의 공략이니까 당연히 거절이다.
"아니요. 입관하지 않겠습니다."
"...그렇습니까."
공주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왕국소속의 마스터가 많다는건 국력의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에 왕국의 공주로서는 내가 왕실에 입관하기를 바랬나보다.
"그럼 마스터 칸에게 약식이지만 국왕페하를 대신하여 제가 작위를 수여하도록 하겠습니다."
별다른 의식같은건 없었다. 단지 공주가 내게 여러가지 내용들이 빼곡히 적혀있는 문서를 하나 넘긴게 다였다.
"가문에서 사용할 인장과 가문명은 정하셨나요?"
인장은 생각못했는데.
"가문명은 정했습니다. 스텐베르크."
스텐베르크라는 성을 알고있는지, 공주가 순간 흠칫거렸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며 물어보았다.
"혹시 스텐베르크 자작을 알고계시나요?"
"스텐베르크 자작영애의 신변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아르시아 스텐베르크 자작영애는 노예의 신분이 되었다고... 아, 그럼 혹시 두분이 부부관계가 되신건가요?"
이 공주님도 그런 오해를 하시네. 노예에서 해방시켜준것 가지고 아내를 삼을 수 있다면 엣날에 이미... 흠흠. 아무튼 나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밝혔다.
"후견인에 가깝습니다. 그녀가 자립하는걸 도와주기로 하였지요."
그말에 렌달과 공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응? 왜그러지?
"혹시 프로스트 자작가에 복수를 하실 생각이십니까? 왕국법상 사사로운 보복행위는 금지되어있습니다."
아하, 그 영지전에 승리하고 아리를 노예로 팔아먹은 그놈? 뭐, 개인적인 원한은 없지만 아리가 원한다고 하면 복수에 힘을 보탤 생각은 하고있었지만, 왕국법으로 복수를 막고있는건가?
"그건 아르시아 영애에게 달려있지요. 저로서는 복수를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왕국법으로 금지하고 있다고 해도 사사로운 복수만 아니면 되는것이다. 나중에 무슨 핑계든 만들어서 영지전을 신청하면 되는거겠지. 아니면 몰래 영주성에 침투해서 납치를 해오던가.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곤란하기 때문에 스텐베르크의 성을 사용하는것은 상관없지만, 원래의 영지는 되찾아 드리지는 못합니다. 이미 그곳은 프로스트 자작령이기 때문이죠."
일단 성만 사용할 수 있다면 상관없다. 이걸로 아리의 가문을 부활시킬 수 있게된것이니까. 아마 새로운 마스터가 나타났고, 그 마스터가 가문의 이름을 스텐베르크라고 정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프로스트 자작이라는 자는 한동안 꿈자리가 뒤숭숭 할거다.
마스터인 나는 왕국으로부터 약식이지만 백작의 작위를 받았다. 그리고 영지는 나중에 따로 정해서 통보해 준다고 하였고, 나는 그러려니 했다. 그리고 던젼의 소유권에 관한 나머지 세세한 보상의 내용은 이리아가 나서서 조절했다. 이야기가 길어질것 같아서 나는 양해를 구하고 응접실을 벗어났다. 그리고 아리가 머물고 있는 방으로 향했다.
"그렇게 되서, 내가 스텐베르크라는 성을 쓰게 되었어. 뭐, 너도 알다시피 내가 이곳사람이 아니니까 나중에는 너나, 네 자손들이 스텐베르크라는 성을 쓰면 되겠지."
내말을 들은 아리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이고는 몸을 작게 떨었다. 아리의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나는 조용히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잠시후 진정을 되찾은 아리가 눈물을 흠치고 빙긋 웃으며 내게 말했다.
"방금 그말씀, 제게 프로포즈 하신건가요?"
뭐?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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