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9 2장 - 정글포스 탐욕의 던젼 - =========================================================================
얼굴을 찡그리고 유니콘을 바라보는 벨에게 물어보았다.
"왜 그래? 뭐,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라도 있어?"
벨이 여전히 유니콘을 바라보면서 오히려 내게 질문해 왔다.
"순결한 처녀라는 게 생물학적으로 순결한 처녀를 말하는 거겠죠? 내면적인 순결함이 아니라."
그런가? 내가 유니콘의 마음을 읽어본 것도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알려졌기는 하지.
"고작 막의 존재 여부로 사람을 가리는 게 마음에 안 들어요. 제 막은 강한님께 바치기로 되어있는데 그러면 저 유니콘도 태도를 180도 바꿀 것 아니겠어요?"
뭐, 뭘 바쳐? 나는 벨의 충격발언에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향해 날아가 버렸다.
그런 나를 향해 아리가 유니콘을 탄 채로 다가왔다. 그녀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말을 했다.
"강한님, 어쩌죠? 이 유니콘, 저를 따라오려고 하는 것 같은데."
내가 정신이 나간 상태로 아무 대답 못하고 있을 때, 벨이 옆에서 대신 대답을 하였다.
"어차피 처녀가 아니게 되면 떠날 녀석이니까 그때까지 이용해 먹어요, 아리언니. 그 이상한 촉수 괴물을 물리치는 효용이 있는 녀석이니까요."
자신을 구해준 유니콘을 이용한다는 게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아 하는 아리였지만, 촉수 괴물이 덤벼오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면 탐색에 큰 도움이 될 거라는 벨에 말에 어쩔 수 없이 수긍했다.
그렇게 내 정신이 안드로메다에 가 있는 사이에 유니콘의 합류가 결정되었다.
유니콘은 수풀이 우거진 정글에서도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덕분에 아리의 안전이 확보된 상태에서 회복도 하고 라이트닝 볼트로 견제도 하는 등 아리의 활동폭이 넓어졌다.
거기다 유니콘 자체의 전투력도 만만치 않았다. 단단한 뿔을 내세운 돌격이라던가 뒷발 차기는 매우 강력해서 바실리스크정도의 몬스터도 쉽게 쉽게 사냥하였다. 거기다 방어력도 높은 듯 공격을 받아도 별 상처가 나지 않았고, 그나마도 아리가 치료해주니 유니콘은 거의 무적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니콘의 뿔이 내 뿜는 기운이 효과가 있었는지 촉수 괴물이 접근조차 하지 않았다.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유니콘은 촉수 괴물의 천적이다. 냥. 촉수 괴물들은 유니콘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다 냥.
산맥을 따라가는 탐색은 계속 진행되었다. 거의 4 층계 전체를 반시계방향으로 돌아서 탐색을 진행했는데 남으로 꺾여져 들어간 곳의 끝 부분에 다다랐을 때 산맥의 끝자락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곳은 결계와 매우 인접한 곳이었는데, 산맥과 결계 사이에 지역에 수십 마리의 촉수 괴물들이 몰려있었다.
"꺄악! 징그러워요!"
벨이 그 모습을 보고 비명을 지르며 내게 안겨왔다. 저 광경은 나도 눈살이 찌푸려지게 하는 모습이었다. 촉수 괴물의 본체는 상당히 혐오스럽게 생겼는데, 여성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더 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떻게 할까? 유니콘을 앞세우고 강행돌파를 시도해 볼까?"
나는 아리가 타고 있는 유니콘을 슬쩍 보면서 이야기했다. 유니콘의 뿔의 마력으로 모여있는 녀석들을 홍해 바다처럼 갈라버릴 수 있을지 모르는데.
푸르르릉!
그 의견에 유니콘 자신이 강력한 거부의 입장을 밝혔다. 음, 싫다면 어쩔 수 없고. 그때 큐비가 새로운 의견을 제시하였다.
-유니콘의 뿔에는 강력한 마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마력의 힘을 빌리면 강한이의 마법의 위력을 급격하게 높이는 게 가능하다 냥. 한번 시도해 보면 어떠냥?
좋은 방법이긴 한데 저 녀석이 과연 순순히 협력해 줄까? 일단 물어보기라도 하자.
"유니콘아, 저 징그럽게 몰려있는 놈들을 마법으로 날려버리고 싶은데, 네 힘을 좀 빌려주지 않을래?"
푸르르릉!
녀석이 거칠게 투레질을 하면서, 내게서 고개를 돌렸다. 무슨 말인지 뻔히 알겠네.
그러자 유니콘위에 타고 있던 아리가 유니콘의 목 부위의 갈기를 상냥한 손길로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부탁할게, 유니콘. 강한님에게 힘을 빌려주지 않겠니?"
유니콘이 아리의 손길을 느끼며 기분 좋은 얼굴을 했다. 오, 통할지도 모르겠는걸?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벨도 유니콘에게 다가가서는 역시 유니콘의 갈기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나도 이렇게 부탁할게. 강한님에게 힘을 빌려주렴."
자신에게 츤츤거리던 벨까지 나서서 자신을 쓰다듬어주며 말하자, 유니콘이 크게 흥분해서는 고개를 들어 올리면서 콧김을 내뿜었다.
푸릉!
녀석이 내 쪽을 향해 천천히 다가와서는 내게 뿔을 내밀었다. 힘을 빌려주겠다는 뜻인가?
"그럼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뿔을 자르면 되는 건가?"
푸르릉!
녀석이 거칠게 투레질을 했다. 아닌가?
-유니콘이 힘을 빌려주겠다는 의사를 표현했으니까 된 거다 냥. 그 주변에서 마법을 사용하면 된다 냥.
그렇다는 말이지? 나는 조금 촉수 괴물들이 있는 곳을 향해 이동하면서 녀석들을 향해 마법을 사용했다.
"파이어 볼!"
내 기력이 소모됨과 동시에 유니콘의 뿔의 빛이 더욱 강해졌다. 오! 효과가 있는 건가?
나는 머리 위에 생겨난 거대한 불의 공을 가장 가까이에 있던 촉수 괴물을 향해 던졌다.
쾅!
굉장한 폭발음과 함께 놈의 몸이 순식간에 타올랐다. 엄청난 위력이군. 유니콘의 불로인한 마력증가로 촉수 괴물이 단 한방의 파이어볼로 체력이 0 이 되었다.
갑작스럽게 공격을 당한 촉수 괴물들이 이쪽을 향해 달려들려고 하였지만, 이쪽에 있는 유니콘의 뿔에 의한 마력으로 더는 접근을 하지 못하였다.
나는 그렇게 우왕좌왕 하는 촉수 괴물들을 향해서 계속해서 마법을 난사했다.
"파이어볼!"
쾅!
한방에 한 마리. 파이어 볼에 적중한 촉수 괴물은 반항도 하지 못한 체 죽어 나갔다.
촉수 괴물들이 이쪽을 향해 줄기를 뻗어왔지만, 그 줄기는 유니콘의 근처에도 오지 못한 체, 허공에 멈추어 섰다. 덕분에 나는 공격받을 염려 없이 마음껏 마법을 날릴 수 있었다.
기력이 거의 다 할 때까지 파이어 볼로 촉수 괴물들을 태워버렸고, 얼마지 않아서 그 장소에 있던 모든 촉수 괴물들을 전멸시킬 수 있었다.
"고맙다, 유니콘. 네 덕분에 쉽게 정리할 수 있었어."
나는 유니콘을 향해서 감사의 인사를 전했지만, 녀석은 내 인사 따위는 관심도 없다는 듯한 태도로 무시했다.
"고마워, 유니콘. 강한님의 힘이 되어 주어서."
하지만 아리의 나긋나긋한 손길에는 얌전히 몸을 맡기고 기분 좋은 표정을 짓는 녀석이었다. 정말로 순결한 처녀를 좋아하는 유니콘답다.
"그런데 이제부터 이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하지? 베이스캠프로 데려갈 수 있으려나?"
기력소모가 심했기 때문에 일단 베이스캠프로 돌아가려 했는데, 유니콘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두고 가야 하나?
벨이 나서서 말했다.
"찾아올 때도 알아서 찾아왔으니, 놓고 갔다가 다시 돌아오면 알아서 찾아오지 않을까요?"
유니콘에게는 한없이 쿨한 태도를 보이는 벨이였다. 유니콘은 벨을 굉장히 좋아하는 데 말이다.
"그럼 일단, 유니콘은 이곳에 두고가도록 하자. 아리? 그만 유니콘에게서 내려와."
나는 아리에게 유니콘에서 내려오라고 했지만, 아리는 유니콘 위에 올라 탄 체로 어쩔 줄 몰라했다. 유니콘이 아리를 내려줄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까.
"유니콘, 부탁이야. 나를 내려 줘."
푸르릉!
저 녀석, 아리를 내려놓을 생각이 전혀 없는 모양이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아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귀환, 아리!"
유니콘 위에 타고 있던 아리가 스르륵 하고 사라졌다. 아리가 사라지자 깜짝 놀란 유니콘이 그 자리에서 빙글빙글 계속 돌았다. 설마 아리를 찾고 있는 건가?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벨과 함께 포탈을 열고 베이스캠프로 돌아갔다.
베이스캠프에서 샤워와 식사와 휴식을 취하면서 정비를 하고 있을 때 큐비가 갑작스러운 소실을 전해 주었다.
-3 층계 엔트런스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냥.
"무슨 문제?"
-아르헨 길드와 브로틴 길드가 연합을 깨고 서로를 공격하고 있다 냥.
"그 사이좋았던 길드가 서로 싸우고 있다고? 무슨 일이지?"
그들이 치고받고 싸우든 말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기 때문에 내 버려둘까 했지만, 무슨 일로 싸우는지 궁금해 져서 한번 가보기로 하였다.
나는 아리와 벨에게 쉬고 있으라고 전한 뒤 3 층계 엔트런스로 향했다.
내가 3 층계 엔트런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전투가 한참 진행된 이후였다.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아르헨과 브로틴 길드원들은 이미 시체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샤브레를 쥐고 있는 아르헨과 대검을 휘두르는 브로틴의 싸움이 한참이었다.
"생각한 것보다 심각하잖아! 그냥 다투고 있는 수준이 아니야!"
두 사람은 생사 대적을 상대하듯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살아있는 한 사람을 보게 되었다.
"이봐요! 괜찮아요? 도대체 왜 두 길드가 싸움을 벌인 거죠?"
그자는 아르헨 길드의 복식을 하고 있었는데 어깨의 상처를 입었지만, 분명히 살아있었다. 그자가 나를 발견하고는 입을 열었다.
"크윽! 이 엔트런스에는 플로어 마스터가 없었습니다. 물론 누군가가 제압을 했다는 표시도 없었고요. 그래서 우리는 기쁜 마음에 점령하기로 했습니다만…. 그때, 알 수 없는 욕심이 생겨났습니다. 주인 없는 엔트런스를 독식하고 싶다는 욕망이…. 그런데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라, 결국에는 이런 꼴이 나버렸습니다. 도대체 왜 그런 욕심이 든 것인지... "
헐…. 주인 없는 엔트런스라니. 단지 표식을 남기는걸 깜빡한 것 뿐인데. 큐비가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 가끔 던젼을 공략하다 보면 플로어 마스터가 없는 엔트런스가 존재한다 냥. 게다가 아르헨과 브로틴은 익스퍼트 초급이라 3층 계가 클리어 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을 수 있다. 냥.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도 저렇게 치열하게 다툴 근거는 되지 못한다. 지금까지 사이좋게 지분을 나누어 왔던 두 길드가, 생사 대적인 양 서로를 죽이고 죽는 전투를 벌이다니!
-아마도 이곳 던젼의 에너지에 먹혀버린 모양이다 냥. 운이 나빴다 냥.
또 던젼의 에너지 이야기가 나왔다. 이곳 던젼의 이름은 욕망의 던젼. 설마 던젼의 에너지가 저들의 욕망을 자극했다는 말인가?
-보통은 저 정도로 던젼의 에너지에 침식당하지 않는데, 정말로 운이 안 좋았던 것 같다 냥.
나는 살아남은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자는 자신도 욕망에 휩싸여 전투를 치렀었다고 했지만, 지금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말로 던전의 에너지에 침식을 당했던 모양이다.
"큭! 내가 표식을 제대로 남겨두기만 했더라면!"
내 말을 들은 남자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경악한 감정이 들어나 있었다.
"서, 설마! 당신이 이곳에 있던 플로어 마스터를 쓰러트렸던 겁니까!?"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다가, 몸을 일으켜 아르헨과 브로틴이 서로 싸우고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멈추세요! 이 싸움은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하지만 그 남자의 목소리는 아르헨과 브로틴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그 남자가 필사적으로 그 둘에게 달려갔을 때, 마침 결정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르헨의 샤브레가 브로틴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와 동시에 브로틴의 대검이 아르헨의 목을 갈랐다.
"안돼!!!"
그리고 오러가 담겨있던 브로틴의 대검은 자신들에게 달려오던 유일한 생존자에게도 피해를 주게 했다.
"커헉!"
순식간에 세 명의 생명이 사라지는 모습을 나는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