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0 2장 - 정글포스 탐욕의 던젼 - =========================================================================
3 층계 엔트런스의 비극을 본 후, 간단히 장례식을 치러 준 후에 베이스캠프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엔트런스에 표식을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괜찮아요, 강한님. 강한님의 잘못이 아닌걸요."
가슴속의 상처도 치유해 줄듯한 따뜻한 아리의 목소리.
나는 아리와 벨에게 아르헨과 브로틴 길드의 이야기를 전해주었고, 의기소침해 하는 나를 두 사람은 따듯하게 감싸주었다. 덕분에 무거웠던 기분이 조금은 나아진 것 같았다.
잠시 마음을 가다듬은 후 다시 탐색을 위해 4 층계로 돌아왔다. 우리가 포탈에서 나오자마자, 유니콘이 달려왔다.
"설마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었던 건가?"
우리를 다시 찾아올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설마 이렇게 바로 찾아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녀석은 아리에게 다가가 얼굴을 아리에게 비벼댔다.
"아하하, 간지러워."
유니콘 녀석이 음흉한 짓이라도 저지르면 한 방 날려주려고 벼르고 있는데, 녀석은 애완동물이 주인에게 응석 부리는듯한 모습만 보여줄 뿐이었다.
아리가 유니콘 위에 올라탄 후, 우리는 탐색을 다시 시작했다.
하늘에 떠 있는 엔트런스를 가리키는 빛무리는 더는 산맥에 가려져 있지 않았다. 이대로 빛무리를 따라가면 엔트런스가 나오게 될 것 같다.
유니콘의 존재로 인하여 괴물 촉수는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상대하는 몬스터는 놀, 리자드맨, 바실리스크가 전부였다.
그런 몬스터를 상대로 아리를 등에 태운 유니콘은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었다. 무성하게 자란 수풀을 거리낌 없이 뛰어다니며 몬스터들을 몰아붙였다.
가까이 접근해서 뿔로 공격하고, 뒤에서 접근해 오는 적은 발차기를 먹이고, 거리가 떨어진 적은 아리가 유니콘의 마력을 얻어서 라이트닝 볼트로 정리했다. 거기다 유니콘의 체력도 아리가 회복시켜 주는, 그야말로 완전체! 신마합일의 경지를 보는 것만 같았다.
"제 역할이 줄어들어 버렸어요."
벨이 의기소침해질 정도로 아리와 유니콘의 활약은 정말로 눈이 부셨다. 그들의 활약에 나와 벨은 거의 산책하는 기분으로 전지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큐비가 새로운 사실을 알려왔다.
-약 250m 전방 우측 부분에 세리스를 포함한 렐리 길드를 발견했다 냥. 아무래도 전투 중인 것 같다 냥.
렐리길드가 벌써 이런 깊숙한 곳 까지 진출해 있었구나. 저번 야만의 던젼에서 아무런 수확도 올리지 못했다고, 이번에는 심기일전해서 도전한다고 하더니, 정말로 열심히 탐색한 모양이다.
"어떡할까나? 도움이 필요하면 돕겠지만, 남의 길드의 일에 참견하게 되는것도 그렇고."
내가 고민을 하는 틈에, 아리를 태운 유니콘이 큐비가 알려준 방향으로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꺄악~ 유니?!"
아리가 갑자기 달려나가는 유니콘의 이름을 부르며 비명을 지르면서 유니콘의 갈기를 꼬옥 감아쥐었다.
"저 녀석! 함부로 달려들다니!"
"설마, 세리스님이 위험한 일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니겠죠? 저 유니콘은 순결한 처녀에 관한 일이라면 물불 안 가리는 녀석이니까요."
"... 가능성이 있어. 우리도 가보자."
유니콘의 특성을 생각하면, 저런 모습을 보이는 건 세리스와 연관을 지어 생각하는 것이 맞는 추측인 것 같았다.
나와 벨은 유니콘의 뒤를 쫓아서 정글 속을 달려나갔다.
한참을 달려가다 보니 눈앞에는 커다란 호수가 펼쳐졌다. 입구 쪽에 있던 호수보다도 더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호수였는데, 그 아름다운 풍경을 무참히 무너뜨리는 존재들이 있었다. 바로 촉수 괴물들!
그중에 한 놈이 위세 좋게 줄기를 휘두르고 있었고, 그 앞에서는 아리를 등에 태운 유니콘이 있었는데, 촉수 괴물이 호수 가운데쯤에 있었기 때문에, 어쩌지 못하고 물가에서 발만 동동 굴리고 있었다.
말은 물속을 잘만 들어가던 것 같은데, 유니콘은 다른가?
"강한님! 저기 저 촉수에 붙잡혀 있는 사람, 세리스님 아닌가요?"
벨이 가리키는 방향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바로 유니콘이 노려보고 있던 대상, 그 촉수 괴물이 붙잡고 있는 사람은 세리스가 틀림없었다.
"이것 놔! 으읔! 기분 나빠!"
세리스는 어떻게든 자신을 붙잡고 있는 줄기를 풀어보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버둥거리면 버둥거릴 수록 즐기는 더욱더 몸을 옥좨 왔다.
"으읔! 이상한 곳 건드리지 마!"
촉수 괴물은 세리스가 아프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이 무자비하게 세리스의 몸을 촉수로 괴롭히고 있었다.
그리고 파를로를 비롯한 다른 렐리길드원들이 그런 세리스를 구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촉수줄기를 공격하는 중이었지만, 별로 효과는 없어 보였다.
"유니콘! 이쪽으로!"
나는 유니콘을 향해 달려가면서 소리쳤다. 호수 가운데 본체를 들어내고 있는 녀석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마법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유니콘의 마력!
유니콘 녀석도 상황을 이해한 듯 내 쪽으로 달려왔다. 순결한 처녀를 구하는 대는 도움을 아끼지 않는구나, 이 녀석.
유니콘과 합류한 나는 세리스를 붙잡고 있는 촉수 괴물을 향해 불덩어리를 날려주었다.
"파이어 볼!"
쾅! 화르르!
물 위로 노출되어있던 녀석의 본체에 불이 붙었고 물속으로 들어갈 틈도 없이 체력이 0 이 되어 쓰러졌다. 동시에 놈이 붙잡고 있던 세리스가 촉수 줄기에서 풀려나 호숫가로 떨어졌다.
풍덩!
호수에 빠진 세리스는 렐리 길드원들이 구해낼 수 있었다. 나는 세리스가 구출된 것을 확인한 후 나머지 촉수 괴물들에게도 파이어 볼을 날려주었다.
물론 세리스가 구출된 후 나머지는 흥미 없다는 태도로 호수를 벗어난 유니콘의 도움이 없었기 때문에, 한 방에 날려버리지 못하고 쫓아내는데 만족했을 뿐이었다.
"칸!"
내가 호수 밖으로 나오자, 세리스가 내게 달려와서 안겼다. 갑옷 너머로도 세리스의 부드러운 몸의 감촉이 전해져 왔고, 그녀의 기분 좋은 향기가 코를 자극했다. 생각 같아서는 잠시 그러고 있어지고 싶었지만 주변의 시선이 찌를 듯이 아파서 서둘러 세리스에게서 벗어났다.
"괜찮아, 세리스?"
"네, 칸이 구해 주셔서 저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칸은 언제나 제가 위기일 때마다 저를 구해 주시는군요."
세리스가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벌써 3번째인가? 내가 세리스를 구해 준 것이.
반면에 파를로는 뭣 씹은 표정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히이이잉~"
어느 순간 아리를 등에 태운 유니콘이 세리스에게 다가와 있었다.
"유니콘!?"
세리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유니콘을 바라보았다. 유니콘이 그렇게 쉽게 볼 수 있는 동물이 아니라고 했으니, 세리스도 보고 놀란 모양이다.
"어째서, 유니콘이 이곳에 있는 거죠?"
응? 세리스는 유니콘이 자신을 구하러 달려온 걸 보지 못했나 보지? 유니콘이 섭섭해 하겠는데.
"이 녀석도, 세리스를 구하기 위해서 노력해 주었어. 그러니까 보상으로 갈기 한번 쓰다듬어 주면 좋아할 거야."
내 말에 세리스가 약간 주저 주저 하면서 유니콘의 갈기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그랬었구나. 고마워, 유니콘아. 덕분에 살았어."
"히이이잉~"
세리스가 자신을 쓰다듬어주자, 유니콘이 기분 좋은 듯 앞발을 들어 올리면서 소리를 내었다.
"꺄앗!"
덕분에 유니콘의 등 위에 타고 있던 아리가 비명을 지르고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유니콘의 갈기를 손으로 꼭 붙들어 매어야 했다.
"후훗. 유니콘이 참 귀여운 것 같아요."
세리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나 보다. 뭐, 저런 식으로 애교를 부리니 귀여워 보이는 것도 당연한 건가? 그나저나 유니콘이 저렇게 세리스를 따르는 걸 보니 세리스는 틀림없이 순결한 처녀…. 흠흠.
그때 파를로가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 눈은 줄곧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설마, 이번에도 은혜를 입혔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요? 당신의 도움이 없었어도 우리의 힘으로 충분히 세리스를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얜 또 뭐라고 짖어대는 거야. 참는데도 한도라는 게 있는 법…. 응?
내가 파를로의 삐딱한 태도에 대응하기도 전에 세리스가 먼저 움직였다.
짝!
듣기만 해도 경쾌한 소리가 울리면서 파를로의 얼굴이 돌아갔다. 오러 익스퍼트의 용서 없는 스매슈에 파를로의 뺨에는 강력한 손바닥 자국이 새겨졌다.
"말 함부로 하지 마. 생명의 은인에게 감사는 하지 못할망정, 뭐니 그 태도는?"
나는 가끔가다 세리스가 무섭게 보일 때가 있다. 지금처럼. 파를로를 질책하는 지금의 세리스는 얼음공주라는 별명이 왜 붙었는지 이해가 되는 모습이었다.
"미안해요. 대신 사과할게요. 정말, 요즘 파를로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파를로를 길드원들이 있는 곳으로 돌려보낸 세리스가 내게 다가와 사과를 건넸다.
뭐, 기분이 나쁜 건 사실이지만, 이미 세리스가 한 방 먹여주었으니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나한테 한방 맞는 것 보다 세리스에게 한방 맞은 것이 충격이 더 클 테니까 말이야.
"그나저나 이곳까지 굉장히 빨리 왔네. 거리가 상당한데 말이야."
솔직히 우리가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움직인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포탈을 타고 이동하는 우리보다 더 빨리 이곳에 도착했던 렐리 길드의 기동력에는 무척이나 놀랐다. 혹시라도 플로어 마스터의 처리를 빼앗기게 되면 곤란해진다.
"저야말로 놀랐어요. 저희는 정말 힘들게 강행군을 거쳐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쪽은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는걸요."
세리스가 우리 일행의 모습을 흝어 보면서 말했다. 그야, 틈만 나면 베이스캠프로 돌아가 재정비를 했으니까 겉모습은 무척이나 멀쩡한 상태이다.
"이대로 엔트런스를 목표로 탐색을 계속할 거야?"
나는 서둘러서 화제를 전환했다. 포탈 이야기는 되도록 숨길 필요가 있으니까. 다행히 세리스는 거기에 넘어가 주었다.
"네. 이번만큼은 우리 길드도 실적을 올릴 생각이에요. 스승님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야죠."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렇다고 플로어 마스터를 양보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세리스에게 선언하듯 말했다.
"우리도 사정이라는 게 있어서 말이야. 양보 해줄 수는 없을 것 같군."
"어머? 설마 우리가 양보를 받아야 할 만큼 약해 보인다는 소리는 아니겠죠?"
"그럴 리가. 단지 우리도 최선을 다할 거라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어."
그 말에 세리스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지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응원은 해드릴게요. 그럼, 나중에 봐요!"
세리스가 아리와 벨에게도 인사를 하고는 자신의 길드원들을 향해 떠나갔다.
자, 그럼 우리도 서둘러서 엔트런스로 향해볼까?
결론부터 말하면, 유니콘을 앞세운 우리가 세리스의 렐리길드보다 먼저 4 층계 엔트런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니 나는 상당히 곤란한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그러니까, 저 괴상하게 생긴 식물이 남자만 노린다고?"
-정확하게는 남자는 먹이로 삼고, 여자는 그 자리에서 죽인다는 거다 냥.
그런 이상한 특성을 가진 녀석이 이곳 4 층계의 플로어 마스터였다.
[ 촉수 여왕 ]
체력 210000
기력 ???
힘 55
지력 15
방어 42
민첩 31
저항 33
촉수 괴물이 여자만을 노리는 몬스터였다면, 저 촉수 여왕은 남자를 먹이로 삼는다고 한다. 아리와 벨이 느꼈던 생리적인 혐오감을 지금은 내가 느낄 차례였다.
저 촉수 여왕이 나를 노리고 공격해 온다면, 유니콘의 도움을 받는 건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유니콘이 남자를 도와줄 리 없으니까 말이다.
나는 각오를 굳히고는 촉수 여왕을 향해 한 걸음 다가섰다.
============================ 작품 후기 ============================
예전에 제가 쓴 글을 확인해 보았는데, 분량이 참 어마어마 하더군요. 특히나 1화 부터 9화까지는 무슨 약을 빨고 글을 쓰면 저런 분량을 하루만에 쓸수있나 신기할 정도였어요.
지금은 도저히 무리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