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8 인터벌(2) =========================================================================
마무리 작업을 위해서 던젼에 남아있는 루이스에게서 짐마차를 하나 빌려서 타고, 우리 일행은 욕망의 던젼을 떠나서 렐리시티로 출발했다.
마차는 한 마리의 말이 끄는 아주 작은 짐마차였지만 마차를 끄는 말이 무척이나 건강한 녀석이라서 세 사람을 태우고도 아주 잘 걸어갔다. 물론 속도는 기대하지 말아야겠지만 말이다.
마차는 벨이 몰고 갔다. 나도 아리도 마차를 모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인데 벨도 능숙하지는 않았지만, 그나마 세 사람 중에서 가장 잘 몬다는 이유로 마부역을 맡게 되었다.
"입술에다가 키스해주세요!"
벨은 마차를 모는 조건으로 그런 요구를 하였고, 나는 그런 벨에 이마에다 딱 밤을 먹여주었다. 그래서 지금 벨은 입이 삐죽 튀어나온 상태로 마차를 몰고 있다. 왠지 마차가 심하게 덜커덩 거리는 것은 기분 탓일까?
나와 아리는 짐칸 안에 들어가 앉았다. 말 그대로 짐칸이기 때문에 탑승감은 심하게 좋지 않았다. 나야 신체 튼튼하니까 이 정도 불편함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우리 아리는 연약한 여자기 때문에(물론 일반인보다 몇 배나 튼튼하기는 하지만 내 입장에서 보았을때는 너무나 연약하단 말이다. 바람 불면 날아갈지도.) 이런 불편한 마차를 타고 가는 것이 힘들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기분 좋게 그녀의 쿠션이 되어주기로 했다. 내 몸 위로 그녀를 앉힌 것이다. 아리는 탑승감 최악인 짐칸에 앉지 않아도 돼서 좋고, 나는 그런 그녀의 감촉을 마음껏 즐길 수 있어서 좋고. 내가 생각해도 아주 좋은 방법이었던 것 같다.
"읍.... 하읍...."
아리는 내 손길이 은밀한 곳에 다음을 때마다 필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마부석에 있는 벨에게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지만, 오히려 그렇게 참으려고 내는 소리가 나를 기분 좋게 만들어서, 나는 더욱더 집요하게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탐색해 들어갔다.
그렇게 아리의 몸을 연주하면서 한참을 마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에, 우리 마차가 향하고 있는 곳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이 느껴졌다. 앞에 뭐가 있는 거지?
나는 아리를 잠시 놓아주고, 마부석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마차는 마침 약간 가파른 고갯길을 오르려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세요, 강한님?"
마차를 몰고 가던 벨이 약간 새초롬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얘 아직도 기분이 별로 안 좋은 건가? 나는 벨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전방을 주시했다. 사람들의 기세는 느껴지는데,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응? 이건 또 무슨 상황인 거지? 내가 잘못 느끼고 있는 건가?
마차가 고갯길을 거의 다 올라갔을 때, 마차의 주위에서 사람들이 일제히 몰려나왔다.
"꺅! 산적들이에요, 강한님!`
벨이 별로 놀라지도 않았으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수많은 몬스터를 상대로 싸워온 벨이 이 정도의 인원에 겁을 먹을 일이 있을 리가 없지.
슬쩍 보아도 약 30여 명 정도는 되어 보였다. 역시 내가 느낀 기감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구나. 그런데 왜 숨어있었던 거지? 정말로 산적들인가?
내가 고민을 하는 사이에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은 우리 마차를 완전히 둘러쌓다. 그리고 마차 앞으로 한 사내가 걸어왔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강한 기세를 가지고 있는 털옷을 입고 도끼를 어깨에 올리고 거만한 태도로 우리에게 소리쳤다.
"에바인 고개를 지배하고 있는 모스 의적단이다! 가진 것 다 내놓으면, 몸만은 성히 가던 길 가게 해 주마!"
헐, 정말로 산적들이었구나. 그러고 보니 저번에 렐리시티로 향하는 길목에서 산적질 하는 우르크들은 만난 적이 있었지. 하지만 인간이 산적질을 하는걸 보는 것은 처음이네. 그나저나, 이 왕국이라는 곳, 치안이 별로 좋지 않은 모양이다. 매번 이렇게 산적을 만나는 것을 보니 말이다.
"응? 여자? 허, 여자가 마차를 몰고 있었나?"
산적이 벨의 모습을 확인한 모양이다. 벨은 던젼을 나온 뒤에 평상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전사로는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벨의 겉모습은 상큼 발랄한 20대의 아가씨였기 때문이다.
벨을 바라보는 산적들의 눈이 탐욕으로 물들어갔다. 이 새끼들 보는 눈은 있어서!
벨이 내 것은 아니지만, 왠지 그런 눈으로 벨을 바라보니 내가 열이 받았다.
내가 열이 올라서 인상을 찡그리는 것을 벨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바라보았다. 흠흠!
척
나는 마차에서 내려서 산적들 앞에 섰다. 녀석들은 내 모습을 보고는 어이가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사내도 타고 있었나? 그런데 참 이상한 옷을 입고 있는 녀석들이군."
나 역시 갑옷을 입지 않고 난방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던젼 밖에서까지 갑옷을 입고 있을 필요는 없으니까. 이곳의 의복들은 나에게는 불편했기 때문에 현실에서 옷을 가져와서 입고 있었다. 저들의 눈에는 이상한 옷으로 비칠지도 모르겠군.
나는 산적들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인원은 정확히 29명이었다. 보이는 녀석들은 20명 정도였고, 9명은 숨어 있는 모양이었는데, 한 명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어서, 과연 이들의 동료가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한꺼번에 튀어나오는 게 아니고, 일부를 숨겨두는 모습을 보니, 생각 없이 덤벼드는 녀석들은 아닌 것 같다. 산적이란 녀석들은 다 이런 식인가? 인간으로 이루어진 산적을 만나는 건 처음이니 이게 보통인 것인지, 이 녀석들이 특이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뭐, 솔직히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지만.
나는 손을 뻗어 아공간에서 검을 꺼내어 들었다. 굳이 갑옷까지 입을 필요는 없겠지.
내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검을 꺼내어 들자, 산적들은 무척이나 놀라워했다.
"마법검!?"
흠. 위험한 상대라고 생각하고 전부 도망치려나?
하지만 녀석들은 그렇게까지 똑똑한 건 아닌 모양이다. 녀석들은 내 검을 보면서 군침을 흘리고 있었으니까.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는 걸까? 뭐, 외견만 보면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산적인데 사람 보는 눈 좀 길러야 하는 거 아닌가? 아, 정정. 전직 산적이지. 이제부터는.
"오러 프랏슈!"
다짜고짜 검기를 발동시켰다. 숨어있는 녀석까지 포함에서 28명의 인원을 타겟으로 설정했다.
파앗!
하늘 위로 쏘아져 나간 빛의 기둥이 28개의 갈래로 쪼개져서 각각의 목표물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크악!"
목표로 설정한 부위는 한쪽 다리. 다리 병신이 된 상태라면 더는 산적 질은 하지 못하겠지.
"죽일까요?"
벨이 짐칸에서 자신의 창을 꺼내어 들고 내 옆에 스며 말했다. 얘가 무슨 그런 살벌한 소리를.
"그럴 필요 없어. 무기를 빼앗고 한쪽으로 몰아서 묶어놓자."
나와 벨은 다리를 부여잡고 끙끙거리는 산적들의 무기를 빼앗고, 한곳에 모아두었다. 그리고 그 녀석들을 아리가 밧줄로 묶어두었다. 이러면 도망은 못 가겠지.
자, 그럼 이제 어떡할까나? 이대로 그냥 떠나도 상관은 없겠지만, 멀찍이 떨어져서 관찰하던 한 놈이 도망을 간 것도 신경이 쓰였다. 이 녀석들과 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던 녀석이라서, 일단 공격하지는 않았는데, 이 녀석들이 쓰러지자마자 한곳으로 도망을 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이 녀석들의 동료로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서 한 명이 망을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붙잡아둔 녀석들을 이곳에 남겨두고 떠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떠난 뒤에 녀석이 이놈들을 풀어주게 되면 조금 곤란해지겠지. 이 녀석들은 도시의 경비대에 신고해서 감옥에 집어넣을 생각이니까.
도망을 간 녀석을 계속 탐지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추적을 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혹시나 놈들의 본거지로 도망을 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그럼 따라가서 남아있는 놈들도 모조리 처리해버리는 것이 나을까?
좋아, 찜찜함을 남기는 것 보다, 깔끔하게 처리하고 가야겠다.
나는 벨에게 말했다.
"벨, 녀석들이 본거지를 찾아서 정리하고 올 테니까, 아리를 부탁할게."
"저는 걱정이 안 되시는 거예요?"
"너를 믿으니까 아리를 맡기고 가는 거야."
"믿어주시는 건 고마운데, 저는 조금 다른 보상을 원해요."
"돈으로 줄까?"
"...만약에 그런 짓을 벌이신다면 두 번 다시 강한님을 안 볼 거예요!"
음, 조금 무신경한 말을 해버린 건가? 벨이 진짜로 삐친 모양이다.
"미안, 농담이었어. 그 이야기는 갔다 와서 하도록 하자. 아리를 잘 부탁할게."
나는 벨을 달래준 뒤에 아리를 맡기고, 도망간 녀석을 쫓아서 움직였다.
도망간 녀석이 도착한 곳은 길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산채였다. 주로 나무로 건물과 방책을 만들어 놓았는데, 겉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이는 곳이었다. 안에는 약 50여 명의 인원이 있는 것 같았는데, 대부분이 미약한 기세를 보였는데 그중에는 오러 유저 상급 정도의 기세가 느껴지는 인물도 있었다. 아무래도 녀석이 이곳 산채의 두목인 모양이다.
혹시나 녀석들이 무기를 들고 우르르 몰려오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는데, 잠시 기다려 보아도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복수하겠다고 설치는 녀석들은 아닌 모양이다. 그쪽에서 오지 않겠다고 한다면, 이쪽에서 들어가 주지.
나는 목책 위에 만들어진 감시탑에 올라가 있는 산적을 우선 처리했다.
"파이어 에로우!"
내 머리 위로 생성된 불의 화살이 감시탑에 올라가 있던 산적을 향해 날아갔다.
불의 화살은 그 산적에게 정확하게 적중했고, 그 녀석은 감시탑에서 떨어져 내렸다.
"크악!"
큰 상처를 입었지만 죽지는 않은 모양이다. 몸을 부들거리는 것을 보면 말이다. 나는 녀석을 무시하고 목책을 바라보았다.
"파이어 볼!"
나는 다짜고짜 불덩어리를 목책을 향해 집어 던졌다. 애초에 조용히 잠입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화려하게 날뛰기로 마음먹었다.
쾅!
파이어 볼이 적중한 목책이 날아가 버리고 나는 구멍이 난 목책의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습격이다!"
굉음에 놀란 산적들이 건물 안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두목으로 보이는 오러 유저 상급의 녀석도 마찬가지로 무기를 든 채로 달려 나왔다. 역시나 산적답게 커다란 도끼를 들고 있었다.
"웬 놈이냐!"
"그, 그놈입니다! 고개에서 우리 동료들을 괴상한 기술로 전멸시킨 놈 말입니다!"
산적두목의 외침에 아까 도망 온 녀석이 나를 대신해서 대답해 주었다. 그러자 산적두목은 친절하게 대답을 해준 자신 부하의 엉덩이를 친절하게 걷어차 주었다.
"병신같은 놈! 꼬리를 달고 왔다는 말이냐!"
산적두목이 나를 노려보면서 외쳤다.
"겁도 없이 이곳까지 혼자서 쳐들어오다니, 죽고 싶어 환장을 한 모양이군."
대꾸해줄 가치도 없는 말이다. 혼자서 쳐들어온걸 보면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도 못 하나? 이미 자신의 부하들이 나에게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면서 말이다.
나는 조용히 나뭇가지를 들어 올렸다. 이곳에 오기 전에 대충 꺾어서 들고온 것이다. 산적 상대로 검을 휘두를 정도로 나는 무자비하지 않아서 말이야.
산적들은 내가 나뭇가지를 들어 올리자, 처음에는 모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표정이 경악으로 바뀌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휘두르는 나뭇가지에 자신의 동료들이 휙휙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30분도 채 되지 않아서, 30여 명의 남아있던 산적들을 모두 제압 할 수 있었다. 오러유저인 산적두목은 특별히 손바닥으로 뒤통수를 때려 주었다.
건물 안에 있는 나머지 20여 명의 사람들은 이 녀석들에게 붙잡혀온 근처 마을의 처녀들인 모양이었다. 그녀들은 내가 산적들을 제압한 것을 알고 환호성을 지으며 몰려나와서는 나를 둘러싸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일부는 펑펑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녀들에게 말해서 산적들을 묶어놓게 하고는 일부는 산적들이 모아 놓은 재산을 찾아서 가져오라고 시켰다. 산채의 규모나 잡혀 온 사람들의 인원수로 보았을 때 제법 많은 재산을 비축해 두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과연 상당한 액수의 금화와 보물들이 모여져 있었다.
"다들 필요한 만큼 챙겨 가세요. 이 녀석들에게 시달린 위자료라고 생각하시고요."
어차피 내게는 그렇게 큰돈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산적들의 재산은 붙잡혀온 사람들에게 넘겨 주었다. 이곳에 끌려와서 고생한 사람들에게 물질적 보상은 별로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없는 것 보다는 낫겠지.
나는 붙잡혀 온 사람들에게 병사들을 불러오겠다고 말해주고는 산채를 뒤로했다. 사람들이 불안한 듯 나를 따라나서려 했지만, 그들이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이런 곳에서 괜히 발목 잡히고 싶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 몰래 품속에 집어넣은 아티펙트의 감촉을 확인하고는 씨익 웃었다. 의외에 장소에서 의외의 수입을 얻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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