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젼헌터-마물헌터 가되 었습니다-89화 (89/110)

00089  인터벌(2)  =========================================================================

"다녀오셨어요!"

산적들의 본거지를 엎어버리고 마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니, 아리와 벨이 나를 맞아 주었다. 마차 주변에는 떠날 때와 다름없이 산적들이 묶여있는 상태로 한곳에 몰려앉아있었다. 아리가 산적들의 상처는 치료해 주었는지, 피를 흘리고 있는 녀석들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산적들을 쓰윽 훑어보자, 놈들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고개를 숙이고, 내게서 시선을 피했다.

살려달라고 울고불고 매달리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이미 체념을 한 것인지 뜻밖에 순순히 밧줄로 묶인 상태로 얌전히 앉아있었다.

나는 벨을 바라보며 말했다.

"별다른 일은 없었지?"

"네!"

"그럼 출발하자."

"저들을 저렇게 그냥 놓아두고요?"

"끌고 갈 수는 없잖아. 그냥 놔두고 갔다가, 경비대에 연락해서 끌고 오라고 해야지."

"그렇네요. 알겠어요."

나와 아리는 다시 마차의 짐칸에 자리를 잡았고, 벨이 마부석에 앉아서 마차를 몰았다.

짐칸 안에서 아리를 내 무릎 위로 앉힌 뒤에 나는 아공간 속에서 바로 전에 확보한 아티펙트를 꺼내어 보았다. 외견상으로는 평범한 모양의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꽃병이었다. 도자기가 흔하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귀족들 사이에서는 제법 고가에 거래되는 물품이지만 특별한 물건은 아니었다.

시스템이 알려주기 전에는 전혀 아티펙트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나야 시스템이 알려주었기에 미리 빼돌렸지만, 보통 이걸 아티펙트라고 생각하지는 못할 것 같다. 그래서 산적들도 이걸 대충 다른 물건들과 함께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고.

아리가 꽃병을 보고는 호기심을 나타냈다.

"꽃병이네요? 꽃을 기르시려고요?"

"아니, 이거 아티펙트야."

"네? 정말로요? 어떤 아티펙트인가요?"

"글쎄? 나도 아직 정확한 기능은 확인하지 않았어. 잠시만 기다려봐."

그저 남들 눈치 못 채게 급하게 아공간속에 집어넣었기 때문에 성능확인은 아직 하지 못했다. 나는 꽃병을 손으로 쥐어보았다. 그러자 시스템이 꽃병에 관해서 자세한 내용을 알려주었다.

[ 마르지 않는 신비의 물병 / 레전드 ]

사막에 사는 부족들의 간절한 염원을 이루어주기 위해서 만들어진 고대 시대의 유물. 물병을 기울이면 속에서 마르지 않는 샘물이 솟아난다.

- 갈증 해소 2배

- 작물 생산량 2배

레전드!?

나는 지금까지 얻었던 아티펙트들을 다시 떠올려 보았지만, 레던드라고 불린 아티펙트는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건 레전드라고 표시가 되어있다. 보통의 아티펙트보다는 훨씬 가치가 높은 물건인 것 같다.

그렇지만 문제는 내게는 쓸만한 용도가 없다는 점이었다. 전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물건이니까. 마실 물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이걸 어디다  써먹지?

현실 세계에 기부라도 해야 하나? 플러스 포인트는 상당히 많이 얻을 수 있겠지만, 이런 물건이 공개되면 난리가 날 것 같다.

일단, 아공간 속에 집어넣어 버렸다. 언젠가 쓸만한 곳을 찾을 수 있겠지.

아리에게도 이 꽃병이라고 생각했던 물병의 기능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러자 아리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며 이야기를 했다.

"꽃을 꽂아두면 예쁘게 자라겠네요?"

아무래도 레던드급 아티펙트는 꽃병으로 쓰이게 될 것 같다.

우리는 마차를 타고 2일 정도를 더 여행한 끝에 렐리시티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2일간의 여행 동안에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은 평온한 여정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렐리시티는 전에 방문했을 때와 달라진 점이 있었다. 도시 전체가 조금 들떠있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나는 성문을 지키고 있는 경비병에게 그에 관하여 물어보았다.

"도시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인가? 사람들도 많이 몰려오는 모양이고, 전체적으로 무척이나 밝은 표정들인데 말이야."

"그야, 일 년에 한 번 있는 축제가 얼마 후에 열리니까요. 관광객도 많이 찾아오고, 장사하는 사람들도 많이 찾아오고 있죠."

"축제?"

"아, 모르실 수도 있겠군요.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5년 전에 렐리길드가 이곳에 처음 자리 잡은 날을 기념해서 열리는 축제입니다. 정확히는 렐리님께서 이곳의 주인이 되신 날을 기념하는 것이지요."

전통 있는 축제는 아닌 모양이지만, 상당히 성대하게 열리는 모양이다. 이것 참 기대가 되는걸.

나는 아리를 바라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연인과 함께 축제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 될 것이 틀림없을 것 같다.

하지만 아리보다 벨이 더 들떠 하면서 내게 매달려왔다.

"축제래요, 칸님! 왕국의 축제는 한 번도 본적이 없어서 무척 기대돼요!"

아무래도 아리와 단둘이서 축제를 즐기기 위해서는 우선 벨부터 어떻게 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렐리시티에 들어와서 렐리길드가 아닌 여관을 우선 찾아갔다. 아무래도 파를로의 일도 있고 해서, 렐리길드에 신세를 지는 것이 조금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나는 방을 2개 잡아서, 나와 아리가 하나를 사용하고 벨에게는 독실을 하나 잡아 주었다. 그런데 벨은 자신의 방은 놔두고 나와 아리의 객실에 눌러앉아서는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내게 당당히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해왔다.

"여기까지, 마차를 몰고 온 저에게 상을 주셔야 해요, 강한님!"

"상? 뭐, 좋아. 그래 어떤 상을 원하니? 키스 같은 것만 빼면 뭐든지 들어줄게."

"정말이죠? 좋아요! 키스를 바라지는 않겠어요. 저도 자존심이 있는데 이렇게 매달리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흠. 다행이네. 벨이 키스해달라고 졸라오면 어쩌나 고민했는데 말이야. 벨은 내 눈을 바라보면서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를 아리언니와 동등하게 대해 주세요."

"..."

"아, 물론 여기서 동등하게 라는 것은 여자로 동등하게 대해달라는 거니까 다른 쪽으로 해석하시면 안 돼요!"

벨이 정말 사람 곤란하게 만드는구나.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솔직히 나도 마음이 동하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슬쩍 아리를 쳐다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아리가 내게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저도 부탁할게요, 강한님. 벨을 받아들여 주세요."

어쩜 저렇게 착할 수가 있는 걸까? 분명 마음속으로는 거부감이 있을 텐데, 그걸 참으면서 미소를 지을 수 있다니. 역시 아리를 슬프게 만드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

나는 벨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미안, 역시 안 되겠어. 다른 거라면 뭐든 들어줄게."

아리의 지원사격을 받아서 기대에 차있었던 벨의 눈에 실망의 감정이 깃들었다. 윽, 정말 미안해지네.

벨이 한숨을 푸욱 내쉬면서, 나를 조금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쩔 수 없네요. 아리 언니가 너무나 부러워요. 좋아요, 그럼 입술에 키스라도 해 주세요. 그걸로 만족할게요."

"벨…."

"더는 양보 할 수 없어요! 저를 너무 비참하게 만들지 말아 주세요!"

벨이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고, 나는 가슴이 아파져 오는걸 느끼고 있었다. 그래, 아리도 이렇게 양보해 주고 있는데, 키스 정도는 괜찮겠지.

나는 벨에게 천천히 다가섰다. 벨은 내가 다가서자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목 뒤로 손을 올리고 내게로 끌어당겨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에 내 입술을 가져갔다.

"!!!"

입술을 떼고 나서도 한동안 벨은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고, 아리는 역시나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억지로 웃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벨이 눈을 뜨더니 내게 방긋 웃어 보였다.

"고마워요, 강한님. 역시 저는 강한님을 포기하지 못하겠어요. 그래도, 오늘은 이걸로 만족할게요. 저는 이만 다른 곳으로 피해 드릴 테니까, 두 분 오붓한 시간 보내세요!"

그리고는 나와 아리의 객실에서 나가서, 자신의 객실로 돌아갔다.

벨이 나간 후에 시스템의 새로운 메세지가 떠올랐다.

[ 아티펙트 트윈 엔젤의 부활가능 횟수가 갱신되었습니다.

- 김강한 : 0회

- 베르나르 로렌츠 : 7회 ]

정말 이러다가 이계에서 하렘을 차리게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나는 아리 하나만 있어도 만족하는데 말이야.

나는 방에 남아있는 아리를 바라보았다. 괜히 아리에게 미안해져서 그날은 그녀에게 최선을 다해서 봉사해 주었다. 과연 그것이 그녀에게도 봉사로 느껴졌는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여관에서 하루 동안 휴식을 취한 뒤에 우리는 렐리길드를 찾아가기 위해서 여관을 나섰다. 거리는 축제 준비에 한창이라서 상당히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표정이 무척이나 밝은 것이, 억지로 축제에 참가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축제를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렐리길드의 본부에 방문했을 때, 세리스가 달려 나와 반겨주었다. 그녀는 내 뒤에 따라오고 있던, 아리와 벨에게 경계의 시선을 보냈지만, 아리와 벨은 세리스와는 달리 여유롭게 그 시선을 받아주어 세리스를 당황하게 하였다.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기 전에 나는 서둘러 세리스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 파를로는 어떻게 되었어?"

"응, 파를로가 한 짓이 있으니까요, 사부님은 파를로를 파문시키셨어요. 평소에 무척이나 파를로를 아껴 하셨는데. 정말 구제 불능의 멍청이라니까, 그 녀석은."

험한 꼴을 당한 세리스 자신도, 파를로의 파문을 안타까워 하는 듯이 보였다.

"파를로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데?"

"그게, 이상한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사실인지 어쩐지…. 너무 어려운 이야기라서요."

"무슨 소문인데?"

세리스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렐리 시티를 떠나서 왕도로 간 파를로가 그…. 커밍아웃하고는 왕도의 인기인이 되었다는데,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 거죠?"

"글쎄?"

나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뭐를 밝혔다는 거지?

아무튼, 인기인이 되었다니, 잘 된 것 같다면서 세리스가 미소를 지었다. 당사자가 그렇다면, 뭐 괜찮은 것이겠지.

나는 세리스에게 렐리길드의 재정과 교섭을 담당하고 있는 이리아를 불러주길 요청했다. 욕망의 던젼을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역시 칸이 그 던젼을 소유하게 되었군요. 정말 빠르네요. 벌써 2개의 던젼의 주인이 되었다니. 최고의 길드는 우리 렐리길드가 되어야 하는데, 정말 샘이나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 세리스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정말로 내 성공을 기뻐해 주는 것이 전해져 와서 기분이 좋아졌다. 세리스는 나를 먼저 응접실로 안내해 주고는 이리아를 불러온다면서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서, 세리스가 한 여성과 함께 돌아왔다. 길게 기른 연보라빛 머리를 한쪽으로 단정하게 묶어서 어깨 위로 걸쳐서 내려트리고, 렐리길드 특유의 파란색 계통의 깔끔한 정복을 몸에 두른 키 170cm 정도의 미인. 렐리길드의 이인자라고 불리는 이리아였다.

"정말 놀라워요. 새로운 던젼을 발견하신 것도 그렇고, 이렇게 단시간에 던젼을 점령해 내신 것도 말이에요. 사실, 저희 사부님도 파를로의 일이 없었다면 그 던젼으로 향하려고 하셨거든요. 그랬다면 분명 아무것도 얻는 것 없이 또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을지 모르겠네요."

"고마워요. 그래서 말인데, 그 던젼을 왕국에 팔아넘기는걸 또다시 렐리길드에 부탁하고 싶군요. 괜찮을까요?"

"물론 저희야 대환영이지요. 수수료를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이번에는 작위가 필요 없으니 정당한 대가를 요구할 수 있을 거예요."

이리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벨을 불러서 이리아에게 소개해 주었다

"그렇군요. 그리고 이번 교섭에는 이 아이를 대동해 주셨으면 합니다."

벨이 다가와 이리아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베르나르 로렌츠라고 합니다. 앞으로 칸님의 대외적인 업무를 맡아서 처리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이리아에요. 교섭에 참가하고 싶으시다고요? 그렇지만 수수료는 정확하게 받을 거예요.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이리아가 나를 보면서 물어보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물론입니다. 그리고 따로 수업료도 내지요."

그 말에 이리아는 벨을 대동시키려는 이유를 알았다는 듯이 벨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래요? 그렇다면 최선을 다해서 좋은 모습 보이도록 노력해야겠네요. 수업료까지 두둑하게 챙기려면요."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지만, 눈만은 매우 빛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