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0 3장 - 데드포스 암야의 던젼 - =========================================================================
"저 안에 이곳의 플로어 마스터가 기다리고 있는 거지? 좋아, 끝장을 내자."
-방심하지 마라 냥. 저 성은 녀석의 근거지다 냥. 함정이라던가, 몬스터의 매복이라던 가 여러 가지 준비하고 있을 거다 냥.
"상관없어. 충분히 돌파 가능해. 그 정도의 힘은 이미 오래전에 길러두었으니까."
나는 큐비에게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오만이나 자만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이건 자신이다. 이미 2개의 던젼을 클리어한 경험과 힘이 있는 나는 아직 4계층에 불과한 곳에서 헤맬 일은 없을 거라는 분명한 자신.
"지금까지 어려움은 충분할 정도로 겪어왔어. 이제부터는 거침없는 진격을 보여주겠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함정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는 신중한 발걸음으로 열린 성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성문 안으로 들어서자 성의 본관과 연결이 된 다리가 놓여 있었고, 그 다리의 밑은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낭떠러지였다. 그리고 그 다리 위에는 좀비와 굴, 그리고 스켈레톤까지 무수히 많은 언데드 몬스터가 바글거리고 있었다.
"환영인파가 엄청 나구나."
나는 검을 쥐어 들고는 바로 언데드 몬스터의 무리 속으로 뛰어들었다. 나의 거침없는 검격에 주변의 언데드들이 우수수 쓰러져 갔다. 이미 많이 익숙해진 핵을 직접 노리는 검술로 녀석들을 상대하였다. 속도의 차이도 있는 데다가, 내 검술이 무척이나 위력적 이었기 때문에 녀석들은 포위공격을 시도할 틈도 없이 쓸려나갔다. 1, 2 층계의 몬스터따위는 발목을 붙잡는 수준도 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거의 아무것도 없는 곳을 걷고 있는듯한 스피드로 몬스터를 쓸어버리며 벼랑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서, 성 본관의 입구에 도착하였다.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겠지. 이대로 성안으로 진입한다."
본관으로 향하는 문은 닫혀있는 상태지만, 이 정도는 오러의 힘으로 부숴버리면 그만이다. 그때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처음 듣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참으로 대담한 인간이로군. 혼자서 나의 성을 침략해 오다니 말이야."
"누구냐!"
나는 허공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서 주변을 경계하였지만, 눈에 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던 중 본관의 출입문 앞쪽으로 검은 연기 같은 것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연기는 사람의 모습을 취하더니, 서서히 그 윤곽을 드러냈다.
"나의 성에 들어온 것을 환영하네. 나는 이 성의 성주인 도라 큐리오 백작이라고 하네."
나타난 것은 백발 머리에 한쪽 눈에 외눈 안경을 걸치고, 검은색의 양복과 망토를 걸치고 있는 창백한 피부의 중년 남자였다. 마치 영화 속 뱀파이어가 그대로 튀어나온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곳의 성주란 말인가? 성주 스스로가 이런 곳까지 마중 나오다니, 대단한 자신이군. 이곳에서 승부를 보자는 말인가?"
"그건 아니라네. 단지 손님에 대한 예의로 인사차 나온 것 뿐이라네."
"미안하지만 나는 시간을 질질 끌 생각이 없어서 말이야. 여기서 사라져 주어야겠어."
"하, 성질이 무척이나 급한 인간이로군. 그리고 무척이나 오만하고."
"오만이 아니라 실력에 자신이 있는 거다."
"쿡쿡쿡. 감히 진혈의 뱀파이어인 이 몸 앞에서 그런 태도를 보이다니. 허나, 나 정도 되는 존재가 자네 같은 미천한 인간을 상대로 드잡이질할 수는 없는 법. 자네의 상대는 내 수하들이 하게 될걸세. 만에 하나 그들을 물리치고 내가 있는 곳 까지 올라오게 된다면, 그때는 친히 상대를 해주도록 하지. 하지만 과연 내가 있는 곳 까지 도착할 수 있을까?"
그런 말을 남기고 녀석은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검은 연기가 되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지금의 녀석…. 핵이 느껴지지 않았어. 핵이 없는 경우도 있는 걸까?"
-그 핵이라는 건 나로서는 잘 모르는 이야기다 냥. 단지 내가 알고 있는 건 방금 녀석은 본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냥.
"본체가 아니라고? 그럼 분신 같은걸 사용한 거란 말이니?"
-아마도 그런 것 같다 냥.
그래서 핵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은 것인가? 나는 가만히 정신을 집중해서 성안에 있는 핵을 찾아보았다.
"안되네. 성안에 너무나 많은 존재가 있는 것 같아서, 어떤 게 그 뱀파이어 녀석인지 구분이 안 돼. 이렇게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는 강약의 정도는 구분이 잘 안 되고 말이야."
할 수 없이 일단은 성안으로 들어가 보아야 할 것 같다. 나는 입구를 막고 있는 문을 부수기 위해서 검을 들어 올렸는데, 그 전에 알아서 문이 안쪽으로 향해서 열렸다.
"들어오라는 거구나. 좋아, 가서 박살을 내어주마."
나는 검과 방패를 힘주어 쥐고는 열린 문을 통해서 본성 안으로 들어갔다.
"중세의 성을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야."
-영화에서 나오는?
"어, 그것도 옛날 뱀파이어 영화 말이야."
요즘 뱀파이어들은 현대인과 섞여서 살아가는 모양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으니까 참고는 안 된다.
성의 안쪽은 무척이나 고풍스러운 실내장식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실내임에도 불구하고 몇 개의 촛불만이 켜져 있는 상태라 무척이나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유령 같은 존재가 돌아다녀도 이상할 것 없는 분위기야."
-실제로 와이트가 나타나도 이상할 것 없는 곳이다 냥.
그때, 큐비의 말에 호응을 하는 듯이 흡혈귀들의 무리가 어둠 속에서 나타나 나를 향해 다가왔다.
"캬아악!"
분위기에 딱 어울리는 몬스터다. 나는 영화 속의 나오는 뱀파이어 헌터가 된 기분으로 성안에서 나타난 흡혈귀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흡혈귀들의 핵을 거침없이 가르고 지나가는 검의 궤적. 점점 더 자연스러워지고 있는 그 궤적으로 내 앞에 나타난 흡혈귀 수십 마리를 빨리 정리해 나갔다. 얼마 안 있어 내 앞으로 다가서는 흡혈귀는 한 마리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좋아, 입구 쪽에 몰려있는 녀석들은 정리가 된 것 같으니 안쪽으로 들어가도록 해 볼까?"
나는 성안 쪽으로 이어진 복도의 길을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안쪽으로 들어가는 와중에도 흡혈귀의 습격은 계속되었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녀석들의 공격은 분명 위협적이 될 터였다. 대상이 내가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핵의 존재를 감지해 내는 나이기 때문에, 아무리 어두운 곳이라고 해도, 기습하는 의미가 없었다.
"캬악!"
또 한 마리의 흡혈귀를 물리치고, 나는 주변을 한번 훑어보았다.
"그런데 이 녀석들 대체 어디서 튀어나오는 거지? 분명 벽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데 말이야."
나는 흡혈귀들이 튀어나온 벽을 만져보았다. 분명히 손에 느껴지는 감촉은 단단한 벽이었다. 환영이나 그런 종류의 것은 아닌 것이 확실했다. 조금 전 흡혈귀들의 핵은 이 안쪽에서 느껴졌다. 그래서 경계는 하고 있었기 때문에 녀석들이 갑자기 벽에서 튀어나온 것이 그렇게 놀랍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건, 이 벽이 환영이나 그런 종류의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는데, 실제로 만져보니 그냥 단단한 벽이었던 거다.
-마법의 벽일 수도 있다 냥. 한쪽 방향으로만 통과가 가능한 마법이 걸려있다 냥.
저쪽에서는 이쪽으로 올 수 있지만, 이쪽에서는 저쪽으로 건너갈 수 없다는 말인가? 그것참 희한한 게 다 있구나.
"그렇다면, 이 벽 너머에는 통로가 있다는 이야기지?"
적이 매복하고 있을 게 분명한 길로 정직하게 걸어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나는 검에 오러를 싫어서 한 방향 통로를 부숴버렸다 .
쾅!
벽이 허물어지면서 안쪽으로 이어진 통로가 드러났다.
"이 길이 지름길이 되려나?"
나는 새로 나타난 통로를 향해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통로 안쪽으로는 외길이었는데, 좁은 복도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문이 있었고, 문은 잠겨져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문의 좌우 옆에는 청동으로 된 기사의 모습을 한 조각상이 세워져 있었다. 검으로 툭툭 건드려 보았지만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조각상들에서 관심을 끊고 문을 향해 집중했다.
"열쇠가 없으니, 부서 야겠네."
나는 복도의 벽을 부수었던 것처럼, 다시 한 번 오러로 문을 부숴버렸다. 문은 별다른 저항 없이 부수어졌고,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안이 너무 어둡네. 라이트!"
마법의 빛이 나타나 주변을 밝혔다. 그러자 어두운 방 안의 전경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것은 보고 있기가 너무나 힘들 정도로 잔혹한 광경이었다.
"큭! 그 뱀파이어 세끼! 대체 무슨 짓을!"
인간의 시체. 그것도 결코 정상적인 모양의 시체가 아니었다. 그 시체들은 너무나 잔인하고 소름 끼치는 모습으로 방안 이곳저곳에 걸려있었다. 마치 장식이라도 해 놓은듯한 모습이었다.
"대체 어디서 인간들을 잡아온 거지? 이 던젼은 봉인되어있던 곳이잖아?"
내 의문에 큐비가 대답을 해 주었다.
-이 던젼이 봉인이 되기 전에, 그리고 던젼 자체가 생겨나기 훨씬 전에 이 뱀파이어의 성은 아마도 지상에 있었을 거다 냥. 이 사체들은 그때 잡아온 시체들이겠지 냥.
던젼이 생겨나기 전이라고? 던젼이 생겨나면서 지상에 있던 성이 이곳으로 옮겨지기라도 했다는 말이야?
-시체들에는 보존 마법이 걸려있다 냥. 아마도 이 성의 주인인 뱀파이어의 짓이겠지 냥.
"악취미야. 사람의 사체를 마치 장식품처럼…!"
조금 전에 만났던 뱀파이어를 떠올렸다. 그 녀석의 짓이란 말이지.
면식 없는 인간들의 시체이지만, 그런 행동을 하는 녀석에 대한 혐오감이 가득 차올랐다. 서둘러 놈의 심장에도 검을 틀어박아 주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가자! 녀석에게 같은 인간으로서 복수해 주겠어!"
나는 그 방을 뒤로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왔다. 그때, 문의 양옆에서 갑작스럽게 핵의 기운이 느껴졌다.
"뭐!?"
나는 서둘러 앞을 향해 몸을 던졌고, 내가 서 있던 자리에 거대한 철검이 내리쳐졌다.
"조각상이 움직였어!"
나를 공격한 놈들은 문의 양옆에 세워져 있던 청동으로 된 기사 상들이었다. 그놈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삐걱거리며 내게로 검을 들이밀었다.
"되먹지 못한 함정을 준비해 두었군."
녀석들이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언데드 들과 마찬가지로 녀석들에게서도 핵의 존재가 느껴졌다. 그 핵이 청동 조각상들을 움직이게 하는 근원일 것 같았다.
장식품인 양 가만히 서 있던 청동조각상의 기습은 침입자를 격퇴하는 데 있어서 충분히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트랩이지만, 핵의 존재를 느끼고 공격을 피해낸 이상, 놈들은 단지 움직이는 고철 덩어리의 불과했다. 그리고 나는 가볍게 검을 두 번 휘둘러서 핵을 파괴하여, 놈들을 움직이지 못하는 고철 덩어리로 되돌려 주었다.
"사람 놀라게 하고 있어. 이곳에는 괜히 들어온 것 같네. 지름길도 없고, 기분 나쁜 광경만 보게 되고 말이야."
나는 투덜거리면서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왔다.
다시 통로로 되돌아온 후 길을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역시나 통로에는 좀비서부터 와이트와 흡혈귀까지, 많은 몬스터들의 습격이 이어졌다. 하지만 지름길을 찾지 못한 이상은 어쩔 수 없이 귀찮더라도 몬스터들을 물리치며 이 길로 전진할 수 밖에는 없었다.
"몰려드는 녀석들이 점점 많아지는 걸 보니 끝이 멀지 않은 모양이야."
다시금 몰려드는 언데드 몬스터들을 향해 검을 휘두르며 조금 떨어진 곳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핵의 존재를 감지해 냈다. 나는 몬스터들의 공격을 뿌리치면서 핵의 존재가 느껴지는 곳을 향해 달려나갔다. 그 앞에 커다란 문이 보였다. 핵의 존재는 그 앞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쾅!
앞을 가로막고 있던 문을 날려버리고 그 안으로 들어섰다.
"한참 찾았잖아, 뱀파이어씨."
문의 안쪽의 홀, 성의 가장 안쪽의 옥좌에 아까 만났던 뱀파이어가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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