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8 종장 =========================================================================
마법사 페레인은 젊었을 때부터 마법에 심취하여 높은 실력을 갖추었다. 동년배는커녕 그보다 나이가 한참이나 많았던 사람 중에서도 그를 따라잡을 만한 마법 실력을 갖춘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 유능한 마법사를 위해서 왕국에서는 최고의 대우를 해주었고, 페레인역시 조국인 왕국을 위해서 헌신했다.
페레인의 젊은 시절에는 이 대륙 여기저기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시대였다. 그리고 전쟁은 사람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심각한 범죄행위도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왕국의 편에 서서 전쟁을 치르면서, 전쟁을 경험한 페레인은 전쟁의 참혹함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과는 다르게 피폐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어째서 전쟁을 벌이는가.
사람들은 어째서 죄를 저지르는 것인가.
젊은 페레인은 생각했다. 인간의 어두운 감정, 마이너스적인 사고가 그 원인인 것이 아닐까. 그런 불필요한 감정이 없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인간에게서 어두운 감정을 배제할 수 있다면?
그리고 재능 넘치는 젊은 페레인은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가히 신만이 가능할법한 일이었지만 페레인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 끝내 그는 그 방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마법의 극에 달한 자였다. 그는 대륙에 존재하는 인간의 모든 마이너스 감정을 끌어모으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의 기대대로 인간들은 전쟁을 멈추고, 범죄행위를 더는 일으키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인간들에게서 끌어모은 마이너스의 감정은 너무나도 엄청난 에너지가 되었고, 그 엄청난 에너지양은 세계를 파멸시킬 정도로 거대했다.
그래서 페레인은 그 에너지를 가장 적합한 그릇들에 나누어 보관하게 되었다. 바로 몬스터들이 그 그릇이 되었다.
페레인은 대륙 곳곳에 던전을 만들어 놓고, 대륙에 존재하는 몬스터들을 필요로 분류하여 각 던전에 몰아넣었다. 그리고는 그 던전에 인간의 마이너스 에너지를 주입하여 던젼 안에서 그 에너지가 몬스터들을 통해서 순환을 이루도록 조절해 놓았다.
그리고는 그 던젼을 봉인함으로써 모든 작업을 완료했다.
나는 문득 궁금해져서 마법사 페레인에게 질문을 했다.
"그래서 인간들은 전쟁 없고, 범죄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나요?"
"자네가 보기에는 어떤가? 인간들이 마이너스의 감정을 품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던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드리는 질문이에요."
내 말에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처음에는 분명히 효과가 있었지. 전쟁도 멈추었고, 범죄도 일어나지 않았어. 하지만 그때뿐이었지. 인간은 다시 마이너스의 감정을 마음속에 키우기 시작한 거야."
"그럼 다시 한 번 그 마이너스 감정이라는 것을 뽑아내면 되는 거잖아요."
"인류 전체를 대상으로 그런 일이 쉽게 가능할 것 같은가?"
그가 고개를 저으면서 이어서 말했다.
"단 한 번 그 일을 하기 위해서 내 모든 것을 다 걸었다."
나는 머릿속에 하나의 가능성을 떠올렸다.
"모든 걸 다 걸었다고요? 설마 지금 이 상태가 된 것이 그 때문 인 건가요?"
"그래."
헐…. 무슨 이런 희대의 개 삽질이 다 있어.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그때는 정말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천재와 바보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건 뭐….
페레인이 눈을 들어 흡수한 에너지를 안정시키고 있는, 자신의 제자를 바라보았다.
"저 녀석의 야심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 설마 마이너스 에너지를 차지하기 위해서 그런 계획을 세웠을 줄이야."
페레인의 제자, 스레인은 야심이 큰 사내였다. 그는 자신 스승의 업적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면서 스승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만약 저 에너지를 자신이 이용할 수 있다면, 자신은 스승을 뛰어넘는 최고의 마법사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싹트게 되었고, 스승이 봉인을 마치고 영면에 든 이후에 그 에너지에 관하여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를 진행하면 진행할수록 제자의 마음속에 야망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그 에너지는 정말로 엄청나서 제대로 제어만 할 수 있다면 가히 신의 영역까지도 도달할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었다.
문제는 두 가지였다. 어떻게 저 에너지를 모을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에너지를 제어해 낼 것인가.
그때 기적처럼 제자는 어떤 아티펙트를 발굴해 내게 되었다. 바로 아바타 시스템의 원형이 된 아티펙트였다. 그 아티펙트는 에너지를 모으는데 최적화된 성능을 지닌 물품이었다.
제자는 그 아티펙트를 연구하여 그 구조를 파악해 내는 데 성공하였다. 그 제자의 능력은 아티펙트 연구에 한해서는 스승을 뛰어넘을 정도였었고, 제자는 그 아티펙트를 이용하여 아바타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아바타 시스템을 이용하면 스승이 몬스터들에게 뿌려놓은 에너지를 흡수하여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에너지로 변환할 수 있었다. 그는 바로 아바타 시스템을 가동해 보았다.
실패했다. 안타깝게도 그로서는 아바타 시스템을 가동할 수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 세계의 누구도 아바타 시스템을 가동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거의 미쳐 버릴 것 같은 심정으로 연구를 거듭했다.
그렇게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는 그때까지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이때 이미 제자는 자신 스승의 지식과 능력을 뛰어넘었을지도 몰랐다.
스레인은 인간이었다. 그 생에는 한계가 있었고, 육체는 늙어갔다. 아무리 강대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고 해도 몸이 버텨내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는 선택할 수 밖에는 없었다.
그는 과감히 인간의 육체를 포기했다. 고위 마법사인 그가 리치가 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리치가 되는 것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생명을 이어나갔다.
아바타 시스템을 개발하면서 익힌 새로운 육체에 자신의 정신을 집어넣는 방식을 그는 터득하고 있었고, 그는 자신이 만들 수 있는 가장 인간과 흡사한 종족의 육체를 만들어냈다. 그것이 바로 폴이었다. 아무튼, 인간이라는 종의 한계를 임시로라도 극복하는 데 성공한 슬레인은 다시 연구로 돌아갔다.
그리고 끝내 제자 슬레인은 아바타 시스템을 이용하는 방법을 찾아내게 되었다. 하지만 무려 차원을 넘어가야 하는 무척이나 힘들고 어려운 방법이었다.
그 방법은 차원의 건너편으로 넘어가 소질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을 찾아서 이곳으로 데리고 오는 것. 하지만 차원을 건넌다는 것은 보통의 방법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슬레인은 자신을 대신해서 차원을 건너갈 메신저를 만들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큐비였다. 큐비를 창조한 슬레인은 큐비에게 아바타 시스템을 넘겨주어 차원 너머에 있는 소질이 있는 자를 찾도록 명령을 했고, 큐비는 충실히 그 임무를 수행해 왔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큐비와 계약을 맺고 이 세계로 넘어와서 마이너스 에너지를 모으는데 협력했다.
물론 그 누구도 살아서 자신의 세계로 돌아간 사람이 없었다. 모두 마이너스에너지에 먹혀버리는 바람에 제정신을 잃어버렸다.
아바타시스템은 육체적인 죽음에서는 자유로운 시스템이지만 정신을 되살려주지는 못했고, 미쳐버린 그들은 다시는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제가 미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건, 역시나 당신의 덕택이었나요?"
"그렇지. 자네가 내 안배를 발견하여 나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 내가 자네를 보호할 수 있었던 것이네. 뭐, 편법이었기 때문에 자네의 기억 속에는 남아있지 않겠지만 말일세."
물론 전혀 기억에 없었고,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도 별로 안 들었지만, 일단 인사는 해 둬야겠지?
"덕분에 살았네요. 고맙습니다."
"됐네. 마음에도 없는 인사치레는…."
페레인이 내 속마음을 꿰뚫어 본 것처럼 이야기했다. 얼굴에 티가 났나?
"아무튼, 그리해서 지금까지 저놈은 그 일을 이어왔던 거고, 결국 자네에 의해서 목적을 달성하게 된 것이지."
길었던 이야기가 끝이 났다. 결국, 녀석은 목적을 달성했다. 바로 나로 인해서.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그래서 영감님이 원하시는 게 대체 뭡니까? 제게 뭘 원하시는 거죠?"
육체를 잃어버린 나는 이제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렇지만 아리와 벨을 놔두고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봐야 했고, 그 방법을 알려줄 사람이 바로 이 영감이다. 나는 희망을 담은 눈동자로 페레인을 쳐다보았다.
페레인이 입을 열었다.
"자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겠네. 하나는 이대로 자네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다른 하나는 나와 손을 잡고 저 녀석의 폭주를 막는 것이네."
"폭주요? 저 사람이 미치기라도 한다는 말입니까?"
신이 된다 어쩐다 하는 소리를 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스레인이라는 저 남자가 무엇인가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지 않나? 어째서 페레인은 그런 소리를 하는 걸까?
"저놈이 손에 얻은 막대한 에너지는 결국 인간의 사념이 깃든 마이너스 에너지일세. 저 놈이 원하는 데로 마이너스 사념을 걸러내고, 힘만을 얻을 방법은 처음부터 없다는 소리야."
"하지만 저 사람이 그것도 모르고 일을 시작했을까요?"
"욕심에 눈이 먼 것이지. 자신도 어느 정도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하지만 나는 알 수 있다네. 나는 아주 긴 세월 동안 이곳에서 마이너스 에너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네. 그래서 그 에너지의 본질을 알 수 있었지. 그 에너지는 절대로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성격의 에너지란 말일세."
페레인이 단언하듯이 말했다. 하긴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계획을 실행했고, 결과적으로 실패한 그 계획 이후에는 줄 곳 이곳에 갇혀있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 오랜 시간 동안 충분히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다. 그 깨달음의 결과, 그는 슬레인의 계획이 절대 성공할 리 없다고 확신을 한 것이고 말이다.
"알겠어요. 그럼 저 사람이 폭주한다고 합시다. 그럼 제가 뭘 할 수 있다는 말인가요?"
"자네를 다시 저 신체 안으로 돌려보내 주겠네."
"정말이요? 정말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그렇게 된다면 모든 게 해결이 된다. 아리와 벨도 되찾을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정말로 가능한 일이기는 한 거야?
"물론 가능하다네. 아니 이 세상에 오직 자네만이 가능하다고 해야겠지. 저 육체가 원래 자네의 것이었으니 말일세. 하지만 명심해야 할 일이 있다네."
"그게 뭐죠?"
페레인이 진지한 얼굴로 나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자네가 저 신체로 되돌아가게 되면 당연히 지금 저 신체를 차지하고 있는 슬레인과 몸의 소유권을 두고 겨루어야 한다네."
"저건 제 몸인데요? 주인이 당연히 되찾게 되는 거 아닌가요?"
"정확하게 말하면 아바타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신체지. 그리고 그 아바타 시스템의 주인은 바로 저 스레인 녀석이고 말이야."
읔, 그러고 보니 그러네. 진짜 내 몸은 지금 지구에 있는 내방 침대 위에 누워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아바타 시스템과 동화가 된 스레인을 내쫓고 저 신체를 차지하게 된다는 소리는 아바타 시스템의 소멸을 의미한다네."
나는 굉장히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 말은 더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못하게 된다는 뜻인가? 아리와 벨을 두고 지구로 되돌아 가야 한다는 말이야?
하지만 펠레인의 말은 내 생각과는 정반대의 말이었다.
"자네는 두 번 다시 원래의 세계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될 것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