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yo - 등 푸른 짐승 (上)
그 차가운 모습 때문에 절대로 고독함을 지니고 있지 않을 거란
세간의 평을 지닌 남자는 하나의 흐트러짐도 없이 단정하게 머리를 넘겼다.
시중을 받아 짙은 검정색 수트로 몸을 감싸고
번쩍번쩍 광이 제대로 난 구두를 신은 뒤 황금색의 롤렉스를 오른 손에 감는.
퍼억- 시계와 살의 마찰음이 울림과 동시에
코와 입으로 한 사발의 피를 토해낸 중년의 남자가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내가 요구한건 분명 지분 일 텐데?”
이따위 환각제가 아니지.
피와 살점이 붙은 롤렉스를 풀어 손으로 으스러뜨리자 하얀 가루가 담긴 비닐이 보였다.
툭, 부서진 롤렉스 속에서 나온 환각제가 중년인의 이마를 때리며 떨어져 내린다.
“미, 미안하네 도사장. 이, 이틀만 더 시간을 주면 어떻게든 마, 마련해 볼 테니...”
흉한 꼴로 바닥에 널 부러진 중년인은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검정 수트의 남자를 올려 다 보았다.
그의 발치에 개처럼 납작 히 엎드리곤 광 이 나는
검정구두 위에 튄 피 얼룩을 소매로 닦으며 호소도 해 보았다.
하지만 남자에게서 돼 돌아오는 것은 그의 얼굴만큼 이나 차가운 발길질 뿐 이다.
퍼억-
남자의 깨끗한 구둣발이 중년인의 복부에 꽂혔다.
끝까지 말을 잊지 못한 중년인은 구둣발의 충격 때문인지
침을 흘리며 머리를 땅에 찧어버렸고 그 바람에 혀를 물어버려 감내 해야 될 고통은 배가 되었다.
“그래... 마약 말고는 내놓을게 없던가?”
부들부들, 약을 끊은 중독자처럼 몸을 떨어대는 중년인을 잠시
바라보던 남자는 가벼운 손짓으로 등 뒤의 비서를 한발자국 나오게 했다.
안경을 쓰고 하얀색 양복을 착용한 그는 남자가 신뢰하는 첫 번째 사람이다.
“이 명세. 52세. 명신 제약 김 영현 회장의 사위.
김 회장의 둘째 딸 김 보영 과는 5년 전 사별, 대학에 다니는 두 아들이 가족의 전부.
기타, 춘천에 부동산이 있지만 사장님의 빚을 갚기엔 턱없이 부족합니다.
통장은 깨끗하고 다른 곳에서 돈을 당겨쓴 흔적이 없는 걸로 봐서는...
아마도 약 외에는 진짜로 내놓을게 없었나 봅니다.”
소리 나지 않게 파일을 덮은 비서는 무감동한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며 턱을 쓸어내리고 있는 사장을 보았다.
열자리를 간당간당 넘기는 돈을 빌려주고도 저렇게 태연히
창밖의 풍경만을 쳐다볼 수 있는 것은 역시나 그가 이 상황을 노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제약 회사 회장이라는 빽그라운드가 이 약물중독
빚쟁이의 빚을 지분으로 갚을 것 이라 생각해서 일까?
비서는 사장의 넓은 등을 바라보며 잠시 갈등하다가
무심한 그가 눈치 챌 수 없도록 살짝 고개를 저었다.
섣부른 판단으로 말을 꺼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자칫 실수(失手)를 낳을 수가 있고 이 세계에서 그것은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손 하나를 잃고서(失手) 변명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똑똑한 놈은 죽이고 멍청한 놈은 끌고 온다.”
“...예...”
갑작스런 사장의 말에 비서는 잠시 당황스러웠으나
이내 자신의 상사가 빼 먹은 주어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 수 있었다.
“부동산은 처분해서 이자로 채워라.”
“예.”
몸을 돌려 창밖에서 시선을 때는 사장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던 비서는 아직도 바닥에 머리를 찧고 엎어져 있는 중년인에게 눈이 갔다.
조금 전부터 아무런 움직임도 말도 없는 걸 보니 아마 사장의 발길질로 인해
기절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 보며 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빚쟁이는 어떻게 할까요?”
“...두개 달린 걸 전부 한쪽씩 잘라내서 김회장 한테 보내.”
“...불알은요? 그것도 두개잖습니까.”
“예외는 없지.”
알겠습니다.
사장의 간단한 대답에 비서는 사람을 시켜 꼴사납게 엎어져 있는 중년인을 내 보냈다.
피와 침을 함께 흘리며 눈동자가 풀린 채 끌려 나가는 모습이
제약회사의 간부였다고 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모습이다.
비서는 잠시 끌끌 혀를 차며 미간을 찌푸렸지만 그것이 동정은 아니었다.
갚지도 못할 사채를 쓴 쪽이 바보이고 그가 사채를 쓸 수밖에
없게끔 유도한 자신의 상사가 무서운 남자 다. 그 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