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4/33)

3.

이채라는 이름을 가진 가정부는 그 이름 그대로 이채로웠다.

마치 그의 성장 후에 개성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작명한 이름인 듯 ‘이채’ 는 이채에게 어울렸다.

"사장님이 아침을 거르게 하지 말라고 봉자할머니께서 당부하셨어요.

 그리고 새벽부터 일어나 밥하고 국 끓인 제 성의를 봐서라도 한술만 뜨세요.”

모처럼 일이 없는 주말이라 느긋하게 일어났고 그래서 입맛이 없어 

숟가락 대신 신문부터 주워 드는데 가정부가 자신의 팔을 잡아 주방으로 이끌었다. 

도정주는 자기의 팔에 닿는 이채의 가는 손가락에 물끄러미 시선을 두며 그가 이끄는 대로 순순히 걸음을 옮겼다.

이끌려온 주방에는 먹음직스런 음식이 소박하게 차려져 있었다.

고소하고 향긋한 냄새만으로 봐서는 늙은 여인의 음식과

비슷한 것도 같았지만 확실히 그녀보다는 소박한 식단 이였다.

“드세요. 특별히 가리는 음식이 없으시다 길래 아침은 채소를 위주로 했어요.”

가는 손가락을 때며 자신을 의자에 앉히더니 숟가락을 손수 쥐어준다.

따뜻한 국을 새로 푸고 밥그릇의 뚜껑을 열며 어서 먹으라는 눈짓을 하길래 

숟가락을 밥으로 가져가는데 이채의 손이 다시 자신의 팔을 잡는다.

“물부터요. 갑자기 드시면 안 좋아요.”

어느새 따라놓은 건지 미지근한 물 컵을 자신의 입 쪽으로 

밀어주는 손길에 도정주는 말없이 컵을 받아들었다. 

보리차로 마른입을 적시자 가는 손가락이 다가와서 물 컵을 받아간다.

“입에 맞으세요?”

조심스레 물어오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려다 생각을 바꿨다.

도정주는 파릇파릇한 봄나물 한 젓가락을 입에 넣고 천천히 씹으며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자 의도한 그 찌푸림이 먹혀들었는지 이채가 새 젓가락을 가져와 봄나물을 집는다.

“음...괜찮은데...짠가요? 아니면 신가요? 아니 어쩌면 단 걸지도...”

도정주는 작은 입으로 오물오물 나물을 씹으며 자신의 

미각과 맞지 않는 부분을 찾아내려 하는 이채의 모습을 보았다. 

이채는 한 참을 혼자 고민하더니 물로 입을 행구고 그 봄나물접시를 식탁에서 치웠다.

“죄송해요. 다음엔 입에 맞으시도록 잘 할 게요.”

“,,,기대하지.”

대답 없는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모습에 짧게나마 답 해주었더니 이채가 안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도정주는 다시 젓가락을 놀렸다. 이번에는 모양 좋게 굽혀있는 생선을 한 점 발라 입에 넣었다. 

쫀득한 생선살이 비린내도 없이 입에 맞았지만 그는 또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이채의 젓가락이 생선으로 날아왔다.

“음...이것도 괜찮은데...타지도 않았고, 비린 냄새도 없고...혹시 가시를 씹으셨나요?”

“아니.”

“그럼 역시 간이 안 맞으신가보네요. 죄송합니다.”

살짝 목례를 하더니 마찬가지로 생선 접시를 식탁에서 치운다.

그리고 도정주는 접시를 치우는 이채의 얼굴이 별 다른 동요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의 반응이 좋지 않을 시에 유달리 당황하거나 동요한다.

하지만 이채는 그렇지 않다. 그저 사과를 할 뿐이고 그런 다음엔 더 분발하겠다고 다짐한다. 

도정주는 이채의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접시를 가져와.”

“네?”

“네가 치운 것 말이다.”

밥을 뜨며 본격적으로 식사를 하기 시작하는 도정주의 느닷없는 말에 이채가 무슨 뜻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 했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애써 만들었으니 먹어야지.”

“...입에 맞지 않으실 텐데요?”

“맞지 않으면 맞춰간다. 이제부턴 네가 만든 걸 먹어야 할 테니까.”

그리고는 말없이 식사에 열중한다.

이채는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자신이 치웠던 봄나물과 생선을 다시 식탁으로 내 갔다. 

입에 맞지 않으면서도 도정주 사장의 젓가락은 편식이 없었다. 

이채는 그의 아침 식사가 끝날 때 까지 분주한 젓가락을 눈으로 쫒으며 이 남자에 대해 생각했다.

어쩌면 그는 무섭도록 잔인하다는 세간의 평과는 조금 다른 인물일지도 모르겠다.

.

.

.

.

장현기는 질 좋은 참나무 마루위에 앉아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커다란 유리 창문 밖으로 지조 높은 대나무 숲이 시원하게 펼쳐져있고 

그 옆의 인공 연못엔 색색의 잉어가 한가로이 물살을 가르고 있었다. 

장현기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춘풍이 대숲을 노닐며 솨아아 하는 청아한 바람 소리를 만들어 냈다. 

그는 자신의 조부께서 유달리 아끼셨다는 대숲에 대해 생각하며 시 한수를 읊었다.

나모도 아닌 거시 풀도 아닌 거시

곳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뷔연는다.

뎌러코 사시예 프르니 그를 됴햐 하노라.

“아, 아버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은 장남의 당혹스런 부름도 외면한 채 그는 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첨피기욱 瞻彼淇薁

 녹죽의의 綠竹猗猗

유비군자 有匪君子

 여절여차 如切如磋

여탁여마 如琢如磨

 슬혜한혜 瑟兮僩兮

혁혜훤혜 赫兮咺兮

유비군자 有匪君子

종불가훤혜 終不可諼兮

연달아 터져 나오는 탄식 같은 싯구가 끝나고 장현기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곧은 대나무가 아니라 떨떠름한 장남의 얼굴이다.

“내 너를 높이 날지 않고 길게 날라고 이름 지은 이유를 아느냐?”

“그, 글쎄요...”

장현기는 멍한 얼굴을 하고 앉아 있는 장남의 얼굴에서 개다리 소반위의 찻잔으로 시선을 내렸다. 

자글한 주름이 깊게 패인 투박한 손으로 찻잔을 들어 빙글빙글 두어 번 돌리자 가라앉아있던 차 찌꺼기가 찻물에 희석 되었다.

“높이 나는 새는 부던한 날개 짓을 했을 것이다. 날고 있는 높이만큼의 고행이 뒤 따랐을 테니까. 허나 그 뒤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겠느냐? 피로한 날개를 접고 딛을 수 있는 땅을 필요로 하겠지. 그것은 좋게 말해 휴식 이지만 사실은 추락 과 다를 게 없다.”

장현기는 희석시킨 찻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길게 나는 새는 말 그대로 창공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길다. 높이 날지도 않고 낮게 날지도 않지만, 땅을 필요로 하는 시기는 가장 마지막이다.”

“..,그러니까 절 더러 가늘고 길게 살란 말씀이신가요?”

떨떠름한 표정을 풀지 않은 장남의 얼굴로 다시 시선을 옮긴 장현기는 그걸 인제 알았느냐는 눈빛을 하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는 유리창 밖의 대숲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가 첫 번째로 읊은 시를 아느냐?”

“알 턱이 없잖습니까.”

“그나마 솔직해서 낫구나.”

장현기는 퉁명스레 내뱉는 장남의 말에 개의치 않고 계속 말했다.

“정철과 더불어 조선 시가에서 쌍벽을 이루는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니라. 곧은 것은 누가 시킨 것이며 속은 어찌 비었냐 하면서 곧아서 좋은 절개와 비어서 좋은 겸허를 기리고 있지. 그러면서도 사계절 내내 푸른빛을 잃지 않아 그를 좋아하노라 하며 사철 어느 때 나 변하지 않고 푸르러서 좋다고 하는구나.”

시의 구절을 풀이해 준 장현기는 아들에게 힐끔 시선을 주었다.

그의 예상대로 아들은 무릎 꿇은 다리가 저린지 온갖 인상을 쓰며 코에 침을 묻히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퍽이나 한심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전혀 내색하지 않고 자신의 아들에게 두 번째 시에 대해 물었다.

“시경(詩經) 위풍(衛風) 기욱(淇薁) 이란 시제(詩鶗)의 일부이다. 풀이를 할 줄 알겠느냐...고 묻고 싶지만 당연히 모를 테지... 저쪽 기수의 물가를 보아라, 푸른 대나무가 아름답구나, 고아한 군자가 거기 있네, 뼈와 상아를 다듬은 듯 구슬과 돌 갈고 간 듯 아름답고 위엄 있는 모습이여 빛나고 드러났으니 고아한 군자가 거기 있네, 결코 잊지 못하겠네...”

스스로 풀이한 싯구를 음미하듯 장현기는 아련한 눈빛으로 대숲을 바라보았다.

솨아아아. 자신의 곧은 절개를 알아주는 이에 대한 보답인걸까. 대숲이 몸을 떨며 청아한 소리를 냈다.

“내 조부...그러니까 네 증조부께선 유달리 대나무를 좋아하셨다는구나. 물론 나는 그분을 한번도 뵌 적이 없지만, 집안에 저렇게 대숲을 만드신 것만 봐도 그분의 대나무 사랑이 남달랐음을 알 수 있지.”

대숲에서 눈을 때지 않고 말하는 아버지를 보며 장우는 증조부께서 대나무를 사랑하신 이유는 도화정엔 복숭아나무가 있으니 거기에 대한 단순한 반발심일 뿐일 것이라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따지기엔 다리가 너무 저렸다.

“대나무는 속이 비었으되 단단하다. 화려하지 않지만 기품 있고 부러질 지언 정 휘지 않는 절개를 알고 있다.”

“완전 종놈의 나무네요.”

“뭐라?”

“그렇잖습니까. 알맹이 없이 단단하면 뭘 합니까? 화려하지 않지만 기품 있다고요? 부러지면 부러졌지 휘지 않는다고요? 빌어먹을... 아버지. 지금은 조선시대가 아닙니다. 매일을 탱자탱자 놀기만 한 무식한 저라도 대나무가 제왕의 나무가 아니란 것 쯤 은 안다고요!”

이마에 핏대를 세우는 아버지의 분노가 살짝 엿보였지만 장우는 다리가 저리단 사실도 잊은 채 점점 언성을 높여 갔다.

“길게 날면서 가늘고 오래 살라고요? 그래서 ‘장우’ 라고요? 네. 저도 압니다. 제가 둘째 놈 보다 셋째 놈 보다 못났다 건 아버지보다도 제 스스로 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뭡니까! 3대째 도화정 밑에서 굽실대다가 이제야 아버지 대에서 물러나면 뭘 하냐고요! 도씨 집안 아들이 장가가는 문제 하나로 스파이 짓 까지 해야 하는 마당에 길게 날면 뭘 합니까? 이 짓만 하면서 평생을 냉면가닥 보다도 더 가늘고 오래 살면 뭘 하냐고요!”

흥분을 삭히지 못한 장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랫동안 무릎 꿇은 탓에 잠시 휘청거려 아버지로 하여금 비웃음 담긴 눈빛을 받기도 했지만 지나치게 흥분한 장우에게 그런 것 쯤은 문제되지 않았다.

장우의 높은 언성이 계속 되었다.

“그리고 저 대나무도 그렇습니다. 휘지 않고 부러지고 절개를 지키면 뭘 합니까? 지금 세상에 그런 지조가 통하는 줄 아십니까? 도움이 되면 취하고 필요 없으면 버리고 내 치고, 마음이 동하면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리기도 해야 요즘 세상을 살 수 있다고요!!”

두 팔을 늘어뜨린 채 장우는 씩씩 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저 밖의 대숲에다 기름을 붓고 불이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마지막 남은 이성이 차마 그렇게는 하지 말라 말리고 있었다. 장우는 지나친 흥분 때문에 타들어 갈 듯 한 가슴 위에 손을 얹고 단정히 정좌하고 있는 아버지를 내려 다 보았다. 아버지는 개다리 소반을 보고 있는 건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장우는 어쩐지 그 말 없는 모습에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아버지도 이제 알건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모진 마음을 먹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그렇게 잘 아는 놈이 여자의 미색에 혹해서 그냥 돌아왔느냐.”

“!!......”

“그렇게 잘 난 놈이 청아 얘기는 붙여 보지도 못하고 넋 빠진 꼴을 해서 집으로 왔느냔 말이다, 응?”

역시나 아버지는 쉽게 좌절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잠시 죄책감을 가졌던 스스로의 멍청함을 탓 하며 장우는 차가운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아버지와 똑바로 마주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아버지가 금했던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어겨 버린 자신이 바보다. 선녀와의 만남이 장우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루어 졌다지만, 그래도 잘못은 직접 도화정을 찾은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도정주 사장의 선 날짜가 정해졌다.”

냉정한 아버지는 시선을 외면하는 아들을 더 이상 추궁할 마음이 없는 건지 이미 다 식어버린 찻잔을 들며 말했다. 쓴 찻물을 한 모금 두 모금 넘기는 그의 담담한 어조가 계속 되었다.

“가을 까지 총 일곱 번의 선을 본다는구나. 하지만 정해진 날짜는 아직 두 번 뿐이라고 하니, 그가 세 번째로 만날 여자는 꼭 청아가 돼야 한다.”

“...예...”

“명심해라. 새 에게는 날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땅을 필요로 하는 발도 있다. 너와 우리 가문이 길게 날기 위해서는 그를 잡아야 한다. 그의 날개 끝을 잡아야 우리도 함께 날 수 있다.”

“......그 새가 땅을 필요로 하면요? 우리도 같이 추락하는 겁니까?”

아들의 조용한 물음에 장현기는 탁 소리를 내며 개다리소반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유일하게 발이 필요 없는 새가 하나 있지. 그 새는 조용하고 잔인하지만 자신의 날개 밑에서 쉬고 있는 다른 새를 일부러 쫒아내지는 않거든. 때로는 깊이 있는 배려도 보여주는 새니까.”

“그 새가... 도정주 사장이란 말씀인가요?”

“그래. 그의 날개 말고는 우리가 쉴 수 있는 곳은 없다. 그러니 반드시 그가 청아를 만나게 해야 한다.”

또한 청아가 도화정의 안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어야 겠지요.

장우는 아버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일단은 그 말에 따르기로 했다.

발이 필요 없는 새 라고 하니 자신의 비행에 분명 도움을 줄 테니까.

그리고 그 비행은 엉뚱한 방향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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