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5/33)

4.

이채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에 관심이 많았다.

이를테면 돈, 명예, 권력, 세상 보다는 가난, 사랑, 사람, 감정 등.

같은 것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무수한 것들을 좋아했고, 그래서 그는 일요일 아침마다 미사를 드리러 간다. 그러나 자신이 관심 있는 항목 들 중 ‘가난’ 과 친해져 버린 그는 봉헌금을 오천 원 밖에 내지 못하는 현실이 조금은 슬펐다. 그리고 ‘가난’에 관심이 많았던 부유한 날 의 자신을 반성하며 고용된 일터로 돌아왔다.

“어딜 갔다 오는 거지?”

성당에요.

이채는 표정 없는 얼굴로 물끄러미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에게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남색 계통의 셔츠를 입고 소매를 걷은 그가 팔짱을 꼈다.

“신앙심이 있는 줄은 몰랐군.”

“믿지 않기에는 나약하니까요.”

비꼰다기 보다는 예상외라는 듯 말하는 남자를 이채는 담담히 마주보았다.

그리고 이 남자는 왜 이리도 표정이 없는 걸까 하는 궁금증을 품고 있는데 그가 다시 입을 연다.

“매 주 가는 건가?”

“아뇨. 원래는 매 주 가야하지만 저는 한 달에 두 번만 미사를 드려요.”

“왜 지? 네 신은 격주로 교회에 가는 걸 허락할 만큼 자비로운가?”

 “설마요. 단지 맹신하기엔 제가 확신이 없을 뿐이죠.”

“......”

맹랑한 건지 솔직한 건지 헷갈리는 이채의 대답에 도정주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호락호락 하지 않은 세상을 살기 위해 뭔가를 믿는다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처음 이채를 만났을 때도 지금도, 저 가는 몸 어디에서도 크리스챤의 분위기가 나지 않았기에 놀란 것일지도 모르겠다.

 “질문은 끝인가요?”

“...그래.”

“그럼 이제 들어가도 되죠?”

담담히 바라보는 눈길에 도정주는 슬쩍 몸을 틀었다.

그러자 이채가 천천히 신발을 벗고 거실로 올라선다. 봄 날씨라지만 아직 날씨가 쌀쌀한 탓인지 이채의 볼과 목덜미가 조금 창백했다. 도정주는 스쳐 지나가는 이채의 반 묶은 머리카락에서 봄 냄새가 나는 듯 한 착각을 느꼈다. 자기 몫으로 배정받은 방문을 반 쯤 열고 이채가 돌아보았다.

“어저께 한 비서님이 전화 하셨어요. 오늘 한 시 약속은 취소 됐으니 푹 쉬 시라던데요.”

도정주는 오른편에 끼고 있던 성경책을 왼손에 바꿔 쥐고 무언가 대답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이채의 모습에 알았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채가 머리를 고정시킨 끈을 풀며 방 문 너머로 사라진다. 봄바람 냄새를 가득 남기고서.

위이이잉-

소리 죽인 트롬이 빨래들을 빙글빙글 돌리는 것을 확인한 이채는 집안의 모든 창문을 활짝 열고 청소를 시작했다. 수석들이 놓여있는 선반과 꽤나 비싸 보이는 액자들을 정성스레 닦고 목제 가구와 tv나 오디오 같은 가전제품의 먼지도 다 털어냈다. 기다란 먼지 털이를 이용해 높은 곳의 묶은 먼지도 털어내고 신문지를 구겨 유리창도 다 닦아내니 얼추 청소의 반은 끝낸 것 같았다.

 이채는 깨끗한 수건을 반으로 잘라 새 걸레 하나를 만든 뒤 도정주가 앉아있는 쇼파쪽으로 다가갔다. 그는 이채가 분주히 움직이며 먼지를 털고 닦고 할 때도 신문을 펼쳐들고 앉아 있을 뿐, 아무런 도움도 말도 없었다. 그리고 이채는 그에게 도움을 받을 생각도, 청소 때문에 그의 신문 구독을 방해 할 마음도 없었다. 해서 그의 앉은 몸을 피해 가며 마호가니 테이블과 물소 가죽 쇼파의 광을 내는데 열중했다. 도정주의 오른편에 쪼그리고 앉아 테이블 밑의 날짜 지난 신문들을 정리하는데 소매를 걷은 그의 팔이 이채의 눈에 들어왔다.

 “상처가 있어요. 여기. 모르셨어요?”

걸레를 내려놓고 손가락으로 도정주의 왼쪽 팔을 가리키자 그가 신문에서 눈을 때며 천천히 자신의 손을 들어 올렸다. 손 등의 불거져 나온 마디위로 껍질이 조금 벗겨져 있는 상처를 확인한 도정주는 말없이 신문으로 눈을 돌렸다.

“별 것 아니지만, 그래도 연고를 바르는 게 어떨까요?”

“됐어. 상처는 늘 달고 사니까.”

“늘 달고 사시니 제 때 제때 치료 해야죠.”

그러고는 몸을 일으키더니 방으로 갔다가 다시 나온다.

이채는 튜브로 된 연고의 뚜껑을 열며 도정주 의 곁으로 갔다. 자신의 손 보다 크고 단단한 그의 손 위에 차가운 연고를 꼼꼼히 바르며 호 하고 입김을 불었다. 연고가 닦이지 않게 살색 밴드를 부쳐 마무리 하고는 다시 몸을 일으키는데 묵묵히 있던 그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생긴 상천지 안 궁금한가?”

이채는 반 쯤 일어나다 말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앞의 남자는 감정이 없는 걸까? 아니면 포커페이스 일 뿐인 걸까?

이제는 신문에서 관심이 사라 진 건지 그는 더 이상 신문을 읽을 마음이 없는 듯 종이 뭉치를 테이블 위로 던졌다. 그리고 이채는 물끄러미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그의 눈과 마주하며 어떤 말을 할 까 말을 골랐다.

“...김 회장님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갔었어요. 아버지는 몸의 반이 없어졌는데, 그게 사망 원인은 아니라더군요. 의사가 마지막으로 얼굴 확인을 하라면서 흰 천을 걷어 냈어요. 아버지 얼굴이 여기저기 뭉게 져 있고 껍질이 많이 까져 있었는데, 의사는 금속 물체로 얼굴을 긁힌 거라고 하더군요.”

“......”

“아버지는 항상 약을 시계태엽 안쪽에다 보관 하셨어요. 그리고 오른 손 잡이니 왼 팔에다 시계를 차시죠. 하지만 시체에는 오른 팔 만 달려있어서 시계가 어디로 갔는지 확인 할 수 는 없었어요. 아버지 뺨에 찍혀 있던 동그란 무늬가 없었더라면, 얼굴을 긁은 금속이 시계였다는 건 알 수 없었을 테죠.”

그의 눈을 단 한 번도 피하지 않고 말을 끝낸 이채는, 스스로의 대범함에 놀라워하며 도정주의 얼굴을 살폈다. 하지만 그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전혀 읽어 낼 수 없었다. 그가 여전히 처음과 같은 표정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 질린 듯한 이채가 내색하지 않고 말 했다.

“...혹시 아직 가지고 계신다면 돌려받고 싶은데요.”

“뭘? 시계? 아니면 잘라낸 팔 다리?”

“당연히 시계죠. 그리고 사장님이 잘라내신 건 왼 팔, 오른다리, 오른 쪽 눈, 오른 쪽 귀, 왼 쪽 불알 이였어요. 팔 다리 만이 아니 예요.”

담담히 바라보지만 그래도 완전히 화를 숨기지는 못했는데, 도정주는 이채의 큰 눈망울에서 그 것을 보았다. 가진 것 도 없고 보잘것 도 없는 주제에 너무나 맹랑한 게 아닌 가 싶으면서도 그는 이채의 발칙함을 용서했다. 그리고 이채는 그가 지금 난 생 처음으로 용서라는 걸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고집 있는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도정주가 말했다.

“시계가 있는 곳을 알려주지.”

“...정말...이세요?”

갑작스럽고 또 너무 쉬운 남자의 말에 이채는 이 집에 와서 처음으로 놀란 얼굴을 했다.

믿기 힘들다는 듯 조심스런 물음에 도정주는 이채가 뻣뻣하기만 한건 아니란 것을 알았고 이 상황이 재미있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리고 두 번째로 믿을 수 없다는 이채의 얼굴을 보며 그는 조금은 즐거운 듯 말했다.

 “한남 제약 꼭대기로 가 봐.”

“무슨...”

“그 건물 옥상에다 파묻었거든. 네 외할아버지란 작자가.”

이채는 눈에 띄게 굳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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