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7/33)

6.

제약 회사의 옥상에 항생제나 진통제가 잔뜩 쌓여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시멘트를 곱게 바른 화단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채는 인공의 화단이 있어야 할 직사각형으로 길게 움푹 페인 자리에 사람의 잘라진 몸 뚱아리를 넣고 시멘트를 쏟아 붓는 상상을 해 보았다.

 ‘몸의 절반이 사라졌네. 그것들이 돌아 올 때 까진 장을 치루지 않겠네.’

화장을 할 건지의 여부에 관해 묻던 세상에 김회장이 한 말이다.

이채는 복잡한 머리를 조금 흔들며 아버지의 무덤 아닌 무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 옥상 아래의 대로로부터 사람들의 활기찬 발소리와 들뜬 말소리가 들려오고, 회사 건물을 경계로 심어놓은 벚꽃나무들은 꽃잎을 흐드러지게도 날리운다.

문득 이채는 그들과 자신이 현재 다른 세상에 놓여져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을 했다.

슬픔을 잔뜩 누른 이채가 살짝 치열을 들어냈다가 소리 없이 입술로 감추어 버리더니 털썩 바닥에 주저앉는다.

“...저만 간신히 살아 왔어요. 그래도 친구라고, 끌려나오는걸 정유가 손을 써서 빼 줬거든요...”

이채는 마치 무료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처럼 어조의 변화가 없었지만 술 대신 눈물로써 아버지를 위로했다. 차디찬 시멘트 아래의 아버지가, 그것도 온전한 몸이 아닌 아버지가 자신의 말을 알아들을까 하는 의문도 있었지만, 그날 병실에서 마주했던 반 쪽 뿐인 아버지에게 했던 말을 똑같이 되풀이 했다. 반쪽씩 두 번을 들려준다면 늘 약에 취해 살던 아버지도 자신의 말을 온전히 이해 할지 모른다. 이채는 의미 없는 희망을 품은 채 말을 이었다.

“만일 형이 살아있다면...아버지가 잘 인도해 주세요...

원하는 대로 학교를 졸업하고 엘리트 샐러리맨이 되어서 환산 할 수 없는 연봉을 받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자기만큼 똑똑한 여자 만나서 결혼 하는 것쯤은 아버지가 도와 줄 수 있죠? 그렇죠? 거기서는...제가 바라는 걸 이루어 줄 만큼의 힘은 있겠죠?"

시멘트와 함께 단단히 굳어 버렸을 아버지는 대답이 없었다.

이채는 날리우는 분홍색 꽃잎의 물결 속에서 눈물을 감추며 네모 낫게 솟은 아버지의 무덤을 쓰다듬었다. 차갑고 거친 시멘트가 손바닥의 연한 살을 금세 벗겨갔다. 그러나 이채는 쓰다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이 아니면 이 아래의 몸을 꺼낼 수 있을 때 까지 다시는 여기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채는 조금 전 회장실에서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엄밀히 말해서 나는 진즉에 그자를 포기했다. 한때는 사위였다고 해도, 버린 놈 저승길 가는 노자 까지 마련해 주는 그런 늙은이가 아니다, 나는. 그러니 너도 일찌감치 네 살길 찾거라. 도사장이 무슨 생각으로 너를 살려뒀는지는 모르겠다만, 내게 와서 이러는 건 네 죽음만 더 재촉 하는 꼴이야.’

말 그대로 한 때는 사위였던 남자를 ‘그자’ 라고 부르는 늙은이는 지독했다.

자신의 손바닥에 피를 맺히게 하고 있는 이 시멘트 보다 더 까칠하고 따가운 노인네다.

이채는 껍질이 벗겨진 살에서 조금씩 피가 흐르는 것을 보고는 아버지를 쓰다듬는 것을 중지하며 가만히 무덤 위에 입을 맞추었다. 살게요. 살거예요. 나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있어요. 아버지를 죽인 것도, 아버지를 여기서 다시 빼 낼 수 있는 것도 그 남자겠죠. 그러니 춥고 외로워도 그때 까지만 기다려 주세요.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땠다.

시멘트 무덤을 눈과 머리에 새겨 넣듯 한참을 바라보고는 주저앉은 몸을 일으켰다.

조급하지 않게. 그렇지만 느리지도 않게.

이채는 고양이같은 발걸음으로 옥상을 빠져 나간다.

한 남자로부터 ‘가는남자’ 라는 평을 얻은 그가 한숨 같은 다짐을 한 것은 어느 봄 날 의 오후. 벚꽃이 너무도 많아서 슬픈 그런 날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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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 반창고 예요?”

중오는 출근해서 보는 신기한 광경에 안경을 밀어 올렸다.

그러나 다시보아도 사장의 큰 손등에 껌 딱지 마냥 붙어있는 것은 반창고가 맞았다. 정확히는 일회용 밴드겠지만.

“상처는 제 때 제때 치료해야 된다더군.”

“아니, 누가 그런 당연한 말로 사장님 손에 반창고를 붙였어요?”

“이 이채.”

서류뭉치에 시선을 두며 짧게 대답하는 도정주를 보면서 중오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이 이채, 이 이채, 이 이채, 이 이채......

그리고 그 이름의 끝에서 불현듯 떠오른 한 개의 단어를 놀랍다는 듯 내뱉었다.

“가정부 말예요?”

안경너머로 비서의 동그란 눈을 보며 만년필 뚜껑을 덮는 도정주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중오는 급하게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니 하면서 하늘을 쳐다보았는데, 눈이 부셔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태양은 분명 한 개가 맞다. 그 상태에서 고개를 아래로 숙여 도로를 바라보니, 20층 높이 때문에 아찔했지만 사람들은 분명 두 발로 서서 빠르게 걸어 다니고 있다. 중오는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미닫이 식 창문을 닫았다. 해 는 한개, 사람의 발은 두개. 그런데도 저 사장님이 가정부의 입 바른 한 마디로 반창고를 붙이고 나타나다니. 물론 이것은 별로 대수로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단지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만으로 봉자 할머니의 귀 따가운 잔소리를 무시하며 옆구리의 붕대를 풀던 남잔데. 그때가 아마 경쟁조직의 중간보스에게 칼침을 맞았을 때지?

“일은...잘 하던가요?”

무슨 소리냐는 듯 쳐다보는 시선에 ‘이채 라는 가정부 말입니다’ 하고 빠르게 답한 중오는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서는 사장을 눈으로 쫒았다. 그는 데스크와 테이블을 지나 방금 전 중오가 하늘과 땅을 쳐다보았던 그 창문을 열었다. 그리곤 물끄러미 밖을 응시했다.

“마, 마음에 안 드세요?”

중오는 사장의 침묵이 갑자기 곤혹스럽게 다가와 말을 더듬어 버린 자신의 멍청함을 저주하며 그의 뒷모습을 살폈다. 그러나 (중오가 알았다면 억울해 할 일이지만) 그는 가정부를 생각하느라 프로페셔널한 비서가 말을 더듬었는지도 몰랐다.

케이스에서 담배를 꺼내 무는 도정주가 말했다.

“성격은 단정하고 배경은 흥미롭더군.”

“네?”

“미인이지만 청승맞고 요리를 잘 하지만 귀가 얇아.”

“미인인데...청...승...요리가...얇다...고요?”

그 어벙벙한 중얼거림에 도정주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담배를 물고 한 참을 기다려도 불을 가지고 올 기미가 없는 비서를 슬쩍 쳐다보았는데, 아까보다 더 곤혹스럽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비서의 얼굴을 보니 어쩐지 불을 가져오라고 할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는 물었던 담배를 창 밖으로 툭 내던지며 아직 패닉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중오에게 덤덤히 말했다.

“이 이채의 파일을 가져와. 누가 작성했길 래 통과 됐는지 궁금하군.”

전혀 궁금해 하는 것 같지 않은 그 말투에 개처럼 맹렬히 고개를 끄덕이는 중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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