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4/33)

13.

어둠은 늘 소리 없이 스며들고 달은 자주 구름에 가리워진다. 늦은 밤은 고요와 적요가 내려앉아 지나치게 무서웠고 아래층에서 들려지는 아버지의 광적인 웃음은 밤이 주는 두려움을 한껏 고무시켰다. 이채는 또 그 꿈을 꾸었다. 아버지는 책장의 책을 모두 빼버린 뒤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주방으로 갔다. 차가운 냉동실과 냉장실의 야채 속 까지 샅샅이 뒤지고는 다시 선반으로 달려갔다. 실핏줄이 오른 붉은 눈을 하고 지나치게 많은 땀을 흘리며 그릇들을 하나씩 내던진다. 방을 비롯한 욕실과 거실, 심지어는 형과 자신의 방 까지 샅샅이 뒤지고 어지럽히고...

이채는 축축히 젖어오는 등의 감촉에 눈을 떴다. 머릿속에서 벌레가 기어가는 듯 기분이 나쁘고 땀으로 젖은 살갖은 따가웠다. 어딘가의 창이 열려있는 건지 푸른색 커튼이 유령처럼 나부끼는걸 보면서 이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꽤 늦은 밤인 듯 주위는 조용하다. 온몸에 달라붙은 옷이 찝찝해서 소매를 조금씩 걷는데 불긋한 반점 몇 개가 돋아나 있는게 보였다. 이채는 그 반점을 없애려는 듯 문지르며 침대에서 내려섰다. 창밖의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몇 걸음 내 딛는데 문득 들어오는 한기에 천천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맨 다리다.

 아마도 땀을 많이 흘린 자신을 위해서 누군가 벗겨준 듯한데, 이 집에선 아무도 자신을 간호 해 줄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채는 미간을 조금 찌푸리며 방문을 열었다.

 “...깬 건가?”

마찬가지로 어두운 거실 탓에 이채는 그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방문 앞에 선 그를 도정주라고 확인시켜주었다. 이채는 신기하게도 조금 안심이 되는 것을 느끼며 살짝 고개를 들어 그의 눈과 마주했다.

 “얼마나 잔거죠?”

“열 두 시간쯤.”

남자의 단호한 말에 이채는 조금 머뭇거렸다. 그리곤 그의 손에 들려져 있는 얼음주머니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제 건가요?”

“그래.”

“...감사하다고 해야 할까요?”

“좋을 대로.”

그는 복잡한 얼굴을 하고 멍하니 서있는 이채의 팔을 붙들고 다시 방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고 스탠드 조명을 켜고 땀에 젖은 이채를 살짝 밀어 침대위에 앉힌다.

“더 자도록 해.”

“아뇨. 여긴 사장님 방이잖아요.”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는 이채에게 그는 환자는 따지는 게 아니라며 누우라는 듯 턱짓을 했다. 그러나 이채는 고집스럽게 그 말을 듣지 않았다. 푸른색 커튼이 다시 나부끼자 이채는 반사적으로 팔을 쓸어내렸다. 땀에 젖은 몸이 한기를 느끼는 것 같아 이불을 조금 끌어당기는데 그가 침대가까이로 다가와 이채의 위로 팔을 뻗는다. 달칵, 하고 무언가 잠기는 소리가 나는 것이 아마도 창이 침대의 머리맡에 있었나 보다.

 “젖었군.”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스치듯 때 주는 도정주의 말에 이채는 새삼 자신의 팔과 가슴, 배 부근을 만져보았다. 축축하게 젖은 하얀색 남방이 심하게 끈적해서 씻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지만 샤워를 하며 거품으로 몸을 문지를 만큼의 힘은 남아있지 않았다. 몸에 들러붙은 옷을 잡아당기는데 그가 말했다.

“악몽이라도 꿨나?”

“......”

“죽은 듯이 자다가 앓는 소릴 내 길래.”

그는 별로 말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은 이채의 손에 얼음주머니를 넘겨주었다. 하얗고 가는 손가락이 차가운 얼음주머니를 움켜쥐는 것을 보며 도정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얼굴에 대고 좀 더 자도록 해. 날이 밝으려면 아직 멀었으니까.”

어디서 가지고 온 건지 나무 의자를 가지고 와 다리를 겹치며 앉는 그를 이채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직 몸에 감도는 미열 탓에 얼굴이 뜨거웠지만 이상하게도 손과 발만은 시렸다. 이채는 문득 꿈에서 본 아버지의 창백하고 볼 품 없던 얼굴이 떠올랐다. 숨겨 도 숨겨도 늘 소리를 지르며 약을 찾아내던 아버지. 주사바늘을 버리면 흡입을 하고 흡입을 못하도록 약을 감추면 기어코 찾아내어 통째로 입에 털어 넣던 독한 남자. 집도 일자리도 빼앗기고 더 이상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자 빚을 끌어다 쓰며 약을 사던 아버지. 눈앞의 이 차가운 남자에게 잔뜩 빚을 진 채 몸의 반쪽을 잃어버린 아버지. 아버지......

“...울 줄도 아는군.”

불순물을 내보내는 것처럼 눈물을 흘리는 이채의 눈으로 손을 뻗는 도정주가 나직하게, 그러나 조금 의외라는 듯 중얼거렸다. 속눈썹에 파르르하게 걸린 눈물을 닦아 내 주고 얼음주머니를 만지고 있어서 차가워진 큰 손으로 이채의 눈을 가만히 눌러주었다. 그러자 이채가 일별하듯 고개를 저어 그의 손을 밀어내려 했지만 남자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몇 번을 고개를 저어도 남자는 손을 거두지 않았다. 도정주는 손바닥 아래로 쉴 새 없이 느껴지는 습한 감촉이 사라 질 때 까지 이채의 눈가에서 손을 때지 않은 채 안아주듯 가까이 있었다.

 암흑 같은 밤은 아직도 길었고 몸도 마음도 젖어버린 이채는 또 다시 열이 올라 그의 침대위에서 밤을 지세야 했다. 온통 까만 세상 속에서 그의 큰 손에 의지한 채로. 의지 할 곳은 그 손뿐이었기에.

  희부연 햇살은 늘 거짓말처럼 어둠을 가른다. 고요는 장막이 거치듯 물러 같고 태양이 주는 신선한 공기는 사위를 맴돌았다. 이채는 스스로가 너무 오랜 시간 잠을 잤다고 생각하며 눈을 떴다. 밝은 방안엔 나부끼던 푸른색 커튼이 단정히 묶여져 있었고 비치름 하게 열린 방문사이로는 음식냄새가 솔솔 풍겼다. 이채는 조심스럽게 일어나서 문가로 갔다. 간밤에 앓은 축축하던 몸이 상쾌할 정도로 깨끗해져 있다는 것에 대해 의아해 하며 거실로 나가자 주방에서 경쾌한 휘파람 소리가 들려온다.

“고소하기로 따지면 한국산 깨를 따라올게 없지.”

정화는 연두색 앞치마를 둘러매고 국자로 냄비를 저어가며 정체불명의 노래를 불렀다. 한국산 깨는 고소함의 왕도라네 라는 급조한 티가 다분한 가사를 붙여가며 휘파람을 불기도 하는 그는 밤송이 같던 덥수룩한 수염을 말끔히 면도한 듯 턱이 깨끗했다.

 “다 됐다...그러니까 이채씨, 거기 그러고 섰지 말고 와서 앉아.”

그릇에 죽을 담으며 돌아보지도 않고 말하던 정화가 빙긋 웃으며 몸을 돌렸다. 그의 노래처럼 고소함의 왕도라는 깨죽이 허기진 이채의 배를 깨우려는 건지 사방으로 냄새를 풍긴다. 이채는 숟가락과 함께 가지런히 놓여지는 죽 그릇을 들여다보며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주방에 서서 앞치마를 매고 요리를 하던 것은 자신이었는데, 이렇듯 자신의 주방에 타인이 서서 무언가를 만든다는 행위가 조금 낮 설다. 정화의 배려로 따뜻하게 데워진 물 한 모금을 마신 이채가 머뭇거리며 말 했다.

“감사해요...제 일 일인데...”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하는 그 서투른 인사에 정화는 눈을 접으며 웃더니 고개를 젓는다.

 “아냐. 감사할일이 아니지. 왜냐면 이채씨가 내가 가져온 사과주 때문에 알레르기가 났으니까. 알레르기가 있으면 말을 하지 그랬어.”

도리어 미안해하는 정화의 말에 이채는 스스로도 사과에 알레르기가 있는 줄은 몰랐다고 대답했다. 지금껏 살면서 사과를 먹지 않은 것도 아니었고 열이 나거나 반점이 돋은 경우도 없었다.

“음, 그럼 아마 사과는 괜찮은데 사과로 담근 술은 안 되나 보다. 앞으로 술 마실 땐 조심해서 마셔야 겠어.”

손가락을 펴며 짐짓 어른스런 표정을 짓는 정화가 빙긋이 웃는다. 이채는 그 부드럽고도 개구진 웃음을 보면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앞으로 술을 마실 일이 생기면 조심할게요. 이채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아보는 식사 앞에서 조용한 다짐을 했다. 남이 해 주는 음식은 과연 어떤 맛이 날까. 눈처럼 소복이 쌓인 죽을 뜨자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퍼져갔다. 정화의 미소처럼 부드러운 죽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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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말이야 잠든 나를 중오가 쫒아냈다는 거 아니겠어. 참 나. 사장하고 비서가 어떻게 그리도 손발이 맞을 수가 있담.”

몸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는 듯 창백하던 얼굴에 기운을 되찾아 가는 이채를 앞에 두고 정화는 삼십 분 째 푸념을 늘어놓는 중이었다. 물론 본인은 푸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빙긋빙긋 웃으며 하는 그 말투 어디에도 형을 향한 원망이나 미움은 없어보였다. 그래서 이채는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정화의 푸념 아닌 푸념을 들어 줄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니까 안락한 집 대신 횅한 바람이 불고 있는데, 내가 얼마나 기가 막혔겠어.”

이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어깨 위로 들어올리는 정화의 팔을 보며 문득 새벽에 잠이 깬 자신을 돌봐주던 큰 손을 생각했다. 얼굴에서 한 참을 머물다가 목과 팔, 배 부근을 쓸며 지다가던 손은 따갑던 살깢을 기분 좋게 만져주었다. 뜨거운 자신의 몸과 같은 온도가 되면 다시 얼음주머니를 만져서 손바닥의 온도를 낮추던 차가운 손. 그 손은 분명 자상했다. 그런 손으로 사람을 때리고 죽인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정한 손길이었다.

“...이채씨, 뭐 해? 내 말 안 듣고 있지?”

부드럽던 눈동자가 서운하다는 듯 가늘게 좁혀졌지만 이내 다시 빙긋 미소 짓는다. 이채는 조금 머쓱해 하며 상념에서 벗어났다. 사실 정화는 본가로 가서 인사를 해야 하면서도 또 열이 나고 아플지도 모른다며 이채와 함께 빈 집에 남아주었다. 물론 그 내막에는 아침 일찍 회사로 나가던 도정주가 쫒아낸 그를 집으로 들여 이채의 간호를 명한 것에 있기도 했지만, 그 명령이 아니더라도 정화는 아픈 사람을 내버려두고 갈 만큼 모진성격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채는 빙긋이 웃으며 기지개를 활짝 켜는 정화의 매끄러운 턱을 보며 자신 때문에 쫓겨난 것에 대해 사과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미안하지 않아서라기 보단 여행을 자주 하는 남자에게 한데 잠을 잔 것에 대해 사과하는 것이 어쩐지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잠이 오는 듯 슬쩍 하품까지 곁들이는 정화를 보며 이채는 미안함 보단 죽을 끓여준 데 대한 고마움을 다시 표했다. 그러자 정화가 눈물을 닦더니 빙긋 웃는다.

“...사막에 베두인족은 말야, 친절을 세 번 베풀어준 상대와 결혼해야 하는 풍습이 있어. 물론 당사자에 따라 친절이라고 생각하는 정도가 틀리니까 해묵은 규칙 같은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게 뭔 줄 알아?”

이채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정화가 고양이처럼 눈을 빛내며 말 했다.

“고맙단 말을 세 번 한 상대와 결혼해야 하는 거야. 낙타 열 마리를 팔아 오아시스 근처에서 축제 같은 결혼식을 올리지. 신부는 터번 같은 면사포를 머리에 쓰고 신랑은 자신의 용맹을 보여주기 위해 몸에 난 상처를 신부에게 보여줘. 그래서 신랑은 항상 벌거벗고 결혼식을 치러.”

매끄러운 목소리로 유쾌하게 이야기 하는 그의 말을 이채는 흥미로운 듯 경청했다.

 “그리고 야자수 잎으로 엮어 만든 신방을 오아시스 바로 앞에다가 차리지. 벨벳 같은 휘장을 두르고 사막에서 잡은 동물의 뼈와 가죽으로 장식을 한 뒤에, 달이 없는 밤에 수줍게 나온 별빛 에만 의지해서 초야를 치르는 거야... 신랑은 신부의 긴 터번을 벗겨 내지. 그 곳엔 사막 부족의 여자다운 용기 있는 눈과 도자기처럼 매끄러운 이마가 있어. 신랑은 거기에 경배하듯 경건히 입을 맞춰. 이마와 눈과 콧 망울과 샛별같이 반짝이는 붉은 입술을 차례로 삼키듯이 빨아드려.”

베두인 족의 결혼 풍습이 정화의 입에서 적나라하게 밝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채는 점점 이야기에 몰입해 갔다.

“신랑은 발가벗은 자신의 가슴위로 신부의 손을 인도해. 열십자로 난 창상 같은 상처가 만져지지. 그럼 신부는 그 흉터에 입술을 대고 기도하는 거야. 신이시여, 이토록이나 용맹한 남자를 내려주시어 감사합니다...입술을 땐 신부는 신랑의 건장한 어깨와 등에 팔을 둘러. 신비로운, 하지만 용기 있는 눈으로 자신의 신랑을 바라보겠지, 지그시. 그 눈빛은 오랜 먼지와 더위에 지친 사막의 전사를 그녀 속으로 인도해. 천천히, 강하게, 태양아래 타오르는 모래구덩이 보다도 더 뜨겁게.”

정화는 이제 회상하는 여행자의 눈을 하고 있었다. 무언가 아련하기도 하면서 잡을 수 없는 별을 따는 사람의 눈. 이채는 그 사막의 전사가 혹시 정화가 아닐까 하는 혼란을 느끼며 이야기가 점점 다른 방향으로 새고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상상하려는지 눈을 감는 정화의 얘기가 계속 되었다.

“신부는 아랫입술을 가만히 깨물 거야... 아, 하는 탄식을 지르기도 하겠지. 자신 속에서 요동치는 또 다른 생명의 기운에 놀라워하면서 신랑을 더욱 꽉 끌어안아. 두 팔로 강하게, 두 다리로 절실하게...신랑 신부는 별빛에만 의존한 채 오아시스 물이 다 말라갈 때 까지 사랑을 나누어. 신부는 눈물을 훔치고 신랑은 진주 같은 그 물방울을 핥아 주겠지. 그리고 그 사랑의 끝에 남자는 다시 사막으로 떠나 가. 허무하게 말야.”

정화는 스르륵 눈을 떴다. 베두인 족의 신부가 불쌍하다는 듯 두 손을 가만히 모은 채 이채를 쳐다보며 동조의 눈을 구했다. 그러나 이채는 베두인족 신부 따윈 전혀 불쌍하지 않았다. 왜냐면 정화의 그 얘기가 지어낸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속았지만 담담한 표정의 이채가 말 했다.

“베두인 족 얘기를 책에서 읽은 적이 있어요.”

정화는 머리를 긁적이며 난감한 얼굴을 했다.

“신랑이 벌거벗고 결혼식을 치른다는 말 같은 건 한 줄도 없던데요.”

고개를 저으며 하는 이채의 말에 정화는 흠흠 헛기침을 하더니 이번엔 관자놀이 부근을 긁적인다. 그리고는 가만히 쳐다보는 이채를 향해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난 그냥 이채씨가 고맙단 말을 또 하길래, 조금 놀려주려고 그런 건데...알고 있었을 줄이야...이런.”

정화는 거짓을 말한 것에 대해 미안해하며 이채를 쳐다보았다. 담담하던 저 얼굴이 어쩐지 뾰루퉁해 진 것 같다는 착각은 괜한 것 일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이채가 웃었다. 술을 마신 저녁처럼 재미있다는 듯 보기 좋은 웃음에 정화는 이채가 자신을 용서한 것이라 생각하며 마주보면서 미소 지었다. 그러자 이채도 그를 보며 같이 웃는다. 비록 소리 내어 웃는 웃음은 아니었지만 정화는 이채의 웃는 얼굴이 아주 예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렇게 한 참을 서로 마주보며 마치 세상에 둘 뿐이라는 듯 미소 짓는 자신들을 향해 차가운 눈을 하고 있는 남자가 있다는 것을 두 사람은 전혀 알지 못했다.

“웃는걸 보니 살만한가보군.”

넥타이를 느슨히 풀며 거실로 들어오는 도정주의 말에 이채는 당혹스런 얼굴을 했다. 표정 없이 내려다보는 지금의 그와 새벽의 다정하고 기분 좋던 손의 감촉이 겹쳐지며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이채는 몸을 일으켜 그의 수트를 받아들었다. 냉정히 돌아서는 그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는데 한 번 더 그렇게 다정하게 자신을 만져준다면 좋겠다는 이해 할 수 없는 마음이 고개를 내밀었다. 정화의 거짓 이야기 속의 베두인족 신랑처럼, 용기 있는 신부처럼.

그러나 이채는 절대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마음이란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괜시리 마음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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