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화 (29/33)

29.

장우는 묶여 있는 것이 꽤 힘에 붙인 듯 고개를 떨군채 잠을 자고 있는 이채를 흔들었다. 그런데 이채는 자고 있지 않은 모양인지, 금세 눈을 떴다. 깜빡이는 눈동자 어디에도 잠의 흔적이 없는 것을 보며 장우가 말 했다.

“아무래도 우리 아버지가 눈치 챈 모양이야. 세 번이나 전화를 건 걸 보면, 무슨 일이 있다는 거겠지.”

장우는 평소엔 자신을 꼴도 보기 싫다며 한 통의 전화도 걸지 않는 아버지가 세 통이나 전화를 건 것이 신기했다. 그러나 그것이 더 이상 일을 크게 만들지 말고 모든 것을 원상태로 돌려놓으라는 무언의 경고라는 것도 알았다. 친하지도 않고, 구박만 하면서. 그래도 아버지라고, 자식이라고. 장우는 대 숲을 보며 앉아 있던 아버지의 머리에 흰 색이 늘어난 것을 떠올리며 괜한 연민에 빠져버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였다. 본디 개장우는 오래 생각하고 오래 고민하지 않는다. 필요한 것만 생각하고 불필요 한 것은 버린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장우에게 필요한 것은 정유 였고, 불필요 한 것은 이채였다. 장우는 끈에 쪼여진 손과 발이 불편한 듯 이리저리 움직여 보는 이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개자식을 불렀다.

“풀어줘.”

“어떻게 할 건데?”

“아버지가 알았어. 빨리 손을 써야지.”

개자식은 TV옆 선반으로 다가가는 장우와 이채를 번갈아 보았다. 아마 칼을 꺼내는 거겠지. 개자식은 수건으로 무언가를 감싸는 장우 몰래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그의 말 대로 이채를 묶은 끈을 풀었다. 자유로워진 손과 발을 지압하는 이채가 눈썹을 찌푸렸다. 손목에 줄을 맨 흔적대로 푸른 멍이 돋아 난 걸 보니 아마 발목에도 그렇게 되지 않았나 싶었다. 이채는 문을 열고 기다리는 장우를 마지막으로 시야가 가려졌다. 개자식이 이채의 눈을 검은 천으로 가린 것이다. 이채는 어디로 이동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그들이 이끄는 데로 순순히 걸음을 옮겼다. 지금 저항해 봤자 남자 둘을 당할 순 없기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벤에 오르자 차가 금방 출발했다. 이채는 흔들리는 몸만큼이나 불안한 마음에 맞잡은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십분 쯤 달리자 바다의 비릿한 냄새가 풍기더니 이내 갈매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채는 그 곳에서 다시 내렸다. 그리곤 개자식의 손에 이끌려 어딘가로 걸어갔다. 이채는 바다인건 알겠는데, 앞이 보이지 않으니 구체적인 것 까지는 알 수 없어 답답했다. 대한민국에 바다는 많고, 그 중에 이름 없는 작은 항구는 더 많을 것이다. 이채는 이것이 끝이 구나 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리고 허무하게 끝내고 싶진 않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어딘가에 외쳤다. 앞이 안보여 방향을 가릴 순 없으니 그냥 장우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난 정유하고 아무 사이도 아니예요. 그냥 친구라구요. 믿어주세요.”

그 친구 사이도 이제는 아니게 되었으니 사실은 거의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할 수 있었다. 단지 아직 파괴 되지 않은 거래가 하나 남아있을 뿐. 그러나 자신은 그것조차도 지킬 마음이 없었고, 기회가 된다면 조만간 그 남자에게 얘기 하려 했다. 정유와의 일을 모두 털어 버리고 조금 더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를 마주하고 싶었다. 만일 그가 그것 때문에 자신을 멀리 한다면, 그땐 또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꼬일 줄이야. 이채는 절망을 안고 고개를 떨구었다. 다신 못 보는 걸까? 그렇겠지?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는 자신이 등이 푸른 그 남자를 만나게 된 것은 거의 기적 수준 이였고, 사랑까지 받았다. 이채는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는 한 번도 말 해 주지 않았지만 자신은 늘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낮에도, 밤에도, 심지어는 잠들었을 때조차 그는 자신을 지켜 주었다. 그런데 그 남자는 지금 날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휩싸여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지 말아요. 사장님이 그런 얼굴 하는 건 싫어요. 이채는 마치 그의 얼굴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안타까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개자식은 자신의 동지 개장우가 다가오는 것을 보며 이채를 뚝 방의 끝에 서게 했다. 뚝 방은 오 미터가 조금 넘는 높이었지만, 그 아래 블록처럼 방파제가 늘어져 있는 것이 뛰어 내리면 골수가 깨져 즉사하기에 딱 좋은 조건이었다. 어느새 장우가 다가 와 이채의 옆에선 개자식에게 말 했다.

“내가 찌를까? 네가 밀래?”

그는 마치 밥으로 할까 라면으로 할까를 묻는 것처럼 일상적인 어조였다. 그리고 이채는 어떤 식으로든 죽는 구나라는 생각에 흠칫 몸을 떨었다. 이채는 유언이라도 남겨야 하나 하며 허탈해 했다. 묘하게도 더 이상 두렵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앞을 가로 막는 것이 느껴졌다. 이채는 옆에 있던 사람의 체온이 느껴지지 않는걸 보니 아무래도 그 누군가가 개자식인 것 같다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의 안대를 풀러주는 손에 시야가 트이자 어제 처음 만났던 개자식의 얼굴이 보였다. 이채는 왜 라는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개자식, 석성범이 이를 들어내 며 웃었다.

“공채 동생을 죽일 순 없지. 공채가 지 동생 자랑을 얼마나 했는데.”

석성범은 늘 자랑처럼 자기 가족사진을 보여주던 이공채를 생각했다. 자신이 공채의 동생에게 홀려 모두가 다 잠든 밤에 몰래 사진을 훔쳐다가 여태껏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이공채는 절대 모를 것이다. 일이 틀어진 것을 알고 빠르게 다가오는 장우를 막으며 석성범은 사진을 이채의 손에 쥐어 주었다.

“가. 뛰어서 가.”

이채는 뒷걸음치며 그 말을 따랐다. 장우가 도망가는 자신을 잡으려고 손을 뻗으며 다가오려 하자 석성범이 그것을 몸으로 막은 채 다시 돌아보았다.

“어물정 거리지 말고 가. 이 자식은 나한테 안돼.”

그러나 그 말과는 다르게 석성범은 장우의 칼에 찔려 피를 흘리고 있었다. 이채는 그가 준 가족사진을 들고 멈칫 했다. 그는 다리에 피를 흘리면서도 장우를 놓지 않겠다는 듯 결사적으로 붙들고 있었다. 이채는 발걸음을 때기도 하고 뒤를 돌아보기도 하며 머뭇거렸다. 저대로 두었다간 석성범이 죽을지도 몰랐다. 이채는 자신 대신 죽었다는 마음에 빚은 지고 싶지 않아 경계하며 두 남자가 설전을 벌이고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러자 석성범이 다시 이채를 향해 소리쳤다.

“가. 가라고! 너 내 순정을 짓밟을 거냐!”

 석성범은 장우를 막는 것도 힘든 판국인데 자신의 첫사랑이 말을 들어 먹지 않자 더 짜증을 냈다. 그리고 이채는 순정 운운하는 그의 말을 이해 못 했지만 혼자 두고 갈 순 없다고 생각했다.

“같이 가요.”

“너, 이 상황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냐!”

석성범의 말도 맞았다. 어찌 될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머뭇거리는 이채는 공연히 방해만 될 뿐이었다. 그리고 이채가 무언가 결심을 하고 다시 그들에게 다가 서려 할 때, 세대의 검은 세단과 그 뒤를 따르는 붉은 쿠페가 보였다. 이채는 거리를 좁혀 오는 차 들 중 낮 익은 차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곤 차에서 빠르게 뛰어 내리는 남자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이채는 다가오는 그를 향해 달려갔다. 더 빨리 달리고 싶은데, 발이 마음만큼 따라 주지 않았다. 점점 그의 얼굴이, 팔이, 다리가 가까워진다고 생각 할 무렵, 이채는 벼락을 맞은 듯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힘없이 무너지는 이채의 팔이 천천히 나부꼈다. 쓰러진 이채의 뒤론 장우가 서 있었다. 칼을 다시 수건으로 감싸며 비릿하게 웃고 있는 장우. 그 눈엔 해냈다는 기쁨이 넘쳐흘렀다.

 그리고 다가오던 도정주는 발작적으로 이채를 불렀다. 그는 뒤 따라온 중오와 사람들이 장우를 붙드는 것은 쳐다 도 볼 수 없었다. 이채의 몸이 거친 뚝 방위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널 부러져 있었다. 그는 이채를 안아 들었다. 가는 등 뒤로 뜨거운 피가 흘러내리며 그의 수트를 적셨다. 이채는 힘겹게 눈을 떴다. 감기려는 눈 사이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이채는 손을 들어 올렸다. 하얀 손가락 까지 피가 흘러 내려 붉게 물든 손을 그의 얼굴로 가져갔다. 그런 얼굴 하지 말아요. 사장님이 그런 얼굴 하는 건 싫어요. 이채는 미소 지으며 손을 떨구었다. 아직 해야 할 말이 있는데. 이대로 눈을 감으면 안 되는데. 그러나 이채는 미약하게 숨을 내쉴 뿐 어떤 움직임도 보여주지 않았다. 품 안의 몸을 붙들고 부르짖는 남자의 얼굴이 피로 흥건했다. 뚝 방위의 갈매기가 처량하게 날아다녔다.

급하게 응급실로 실려 간 이채는 다행히 생명엔 지장이 없었다. 경황이 없는 와 중이라 등에 칼을 맞았다고 생각했는데, 찔린 부위는 정확히 어깨 아래의 날개 뼈가 있는 곳이었다. 도정주는 이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 이라고 해야 할지 판단 할 수 없었다. 그저 이채가 살아있는 것에 감사 할 뿐 이였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감사란 단어를 사용해 보았다. 자신의 어머니에게, 아버지에게, 또 이채의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그는 수술을 받고 붕대를 감은 채 잠들어 있는 이채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이 가는 몸으로 어떻게 살았지? 어디에 있다가 불쑥 나타났지? 왜 여기에 누워 있지? 그는 대답하지 않는 이채의 손을 잡고 가만히 입을 맞추었다. 삼일은 더 잠만 잘 것이란 의사의 말을 들었지만, 죽은 듯 눈을 감고 있는 이채의 모습이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때 병실의 문이 열리고 중오가 들어섰다.

“의식을 차린 모양입니다.”

그것은 장우의 이야기 였다. 뚝 방에서 붙들린 장우는 도정주의 뒤를 따라온 정유를 보며 그녀에게로 가려다가 사람들에게 무력으로 제압당했다. 그리곤 한 동안 기절 한 채 의식이 없더니 이제야 깨어난 모양이다. 도정주는 이채의 손을 잡은 채 말 했다.

“장현기를 불러라. 직접 눈으로 보게 해.”

그는 이채에게만 신경을 쏟고 있었고 그 어투는 무감했다. 그러자 중오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결국은 밝혀야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정유 아가씨가...장사장 아들 옆을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중오는 개인적으로도 참 하기 힘든 말 이었다. 얄미울 때도 있고, 사이가 나쁠 때도 있었지만, 중오 인생의 평생을 그녀를 보며 살았다. 자신에겐 엄마처럼, 누나처럼, 때론 여동생처럼 여겨지던 정유이거늘. 중오는 그녀가 하필 개장우에게 마음을 준 것이 못내 이해 가지 않는다는 듯 한 숨을 내 쉬었다. 그리고 도정주는 자신의 여동생이 그 빌어먹을 납치범에게 어떤 마음을 품었든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그날, 시장에서 스치듯 장우와의 시선이 부딪혔을 때 진작 염두 해 두었어야 했다. 자신이 정유와 장우가 함께 있는 것을 본 것처럼, 장우도 자신과 이채가 함께 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멍청한 머리를 어떻게 굴렸길래 이채에게로 관심을 집중 시킬 수 있는 건지. 도정주는 장우의 멍청함이 불러들인 결과에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치솟았다. 하지만 아직은 자리를 뜰 수 없다. 모든 것은 이채가 깨어나면 시작해야 했다. 자신이 없는 사이에 이채가 죽음 같은 잠에서 홀로 깨어나는 것을 그는 원치 않았다. 눈을 떠라. 같이 가봐야 할 곳이 있잖아. 그는 이채의 손을 놓지 않고 호스가 채워진 하얀 얼굴을 보았다. 꿈을 꾸고 있는 듯 이채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지기도 했지만 이내 다시 편안함을 되찾았다. 일어나라. 제발. 그는 주문처럼 낮게 읊조렸다. 이채의 감은 눈이 떠지길 바라며 그렇게 삼일을 더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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