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화 (30/33)

30.

도정주는 삼일이 지나도 깨어나질 않는 이채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사이 더 말라버린 팔과 목이 그의 눈을 찌푸리게 했다. 그는 이채의 얼굴을 가만히 만져보았다. 창백하고 하얀 얼굴이 조금 푸석푸석 했다. 그는 한 가닥 이마로 내려온 이채의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던 머리카락도 그새 더 자랐다. 도정주는 다녀오겠다는 인사 대신 이채의 이마에 키스를 남겼다. 그가 몸을 돌리자 이채의 손가락이 살풋 꿈틀거렸다.

병원을 나와 그가 간 곳엔 장우가 있었다. 그가 이채의 아버지를 비롯한 여러 인물들의 목숨을 가져간 장소이기도 한 곳에서 장우는 무릎을 꿇은 채 바닥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손은 등 뒤로 묶여져 있고 피투성이 인 것을 보니 누군가 죽지 않을 만큼 흠씬 두들긴 듯 했다. 도정주는 저 치에게 손을 댄 사람이 너냐고 중오에게 묻지는 않았다. 하지만 중오가 장우에게 이를 갈고 있었으니 확률은 높다.

그가 장우를 보며 말없이 담배 하나를 다 태울 때쯤에 다리에 붕대를 감은 석성범이 중오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섰다. 석성범은 엎어져 있는 장우와 도정주를 잠시 번갈아 보다가 도정주의 눈치를 보며 목례를 했다. 도정주가 별 반응 없이 그저 연기를 내 뱉자 석성범은 엎어져 있는 장우에게로 다가갔다. 장우는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엎어진 와중에도 석성범을 알아보았다. 나의 친구, 나의 동지, 개자식. 장우는 씹어 뱉듯 석성범의 이름을 한자 한자 새겼다. 그러자 그 저주스런 부름을 들은 석성범은 잠깐 콧방귀를 뀌더니 그래도 친구라고  장우의 몸을 살폈다. 석성범이 주위의 눈을 의식해 작게 말 했다.

“야, 임마. 난 네가 놓은 칼침에 뼈가 상했어.”

그러나 뼈가 상한 사람치고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도정주는 석성범이 칼침 이야기를 할 때의 장우의 표정을 관찰했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그냥 쳐다본 것 아니냐고 물을 법한 얼굴이었지만 도정주의 입장에선 유심히 관찰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엎어져서 석성범과 투닥 대는 장우에게서 시선을 때며 담배를 비벼 껐다. 그리곤 천천히 장우에게로 다가서서 구둣발로 그 엎어진 몸을 뒤집었다. 장우는 손이 묶여진 그대로 꼴사납게 뒤집어 졌다. 하지만 앓는 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도정주는 수트를 벗어 중오에게 건네며 짧게 웃었다. 그러자 장우가 흠칫 몸을 움츠린다.

“뭘 위해서 납치 했지?”

장우는 정유를 위해서 라고 대답 하지 않았다. 그래서 도정주는 소매의 커프스를 풀며 구둣발을 들어 올렸다. 단단한 구두창이 장우의 얼굴을 내리 찍으며 갈아버렸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물었다. 뭘 위해서 납치 했지?”

장우는 이번에도 대답 하지 않았고, 도정주는 반대쪽 커프스도 풀며 다시 구둣발을 들었다. 이번에도 얼굴로 날아 올 것이라 생각한 장우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이는데, 그의 발이 장우의 복부로 꽂혔다. 장우는 울컥 피를 토해냈다.

“세 번은 없다. 그대로 죽을 수밖에.”

도정주는 더 이상 묻지도 기회도 주지 않겠다는 듯 손짓으로 중오를 불렀다. 그러자 중오가 수건에 감싸인 단도를 내민다. 날이 잘 선 그것은 장우가 이채를 헤칠 때 썼던 것이다. 도정주는 셔츠의 소매를 걷고 칼을 잡았다. 날을 밑으로 향하게 한 뒤 비스듬히 쥐고는 장우의 코앞에 들이대자 물러나서 지켜보던 석성범이 당황한 채 말을 더듬으며 도정주에게로 다가왔다.

“하, 한번만 봐주세요. 얘도 아, 알고 보면 그렇게 나쁜 놈이 아, 아니 예요.”

“세상에 진짜로 나쁜 놈은 없지.”

도정주는 무표정한 그대로 장우의 어깨 뒤에 칼을 박아 넣었다. 이채가 다친 그 부위 였다. 장우는 새된 비명을 내 질렀다. 고통이 큰 듯 침과 눈물을 한꺼번에 쏟아내며 사지를 뒤틀었다. 석성범은 차마 볼 수 없다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 그는 장우에게 찔린 자신의 다리가 다시 벌어지며 피를 흘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도정주는 무자비 하게 칼을 뽑았다. 그리곤 장우가 그 고통에 다시 비명을 내 지를 틈도 주지 않은 채 반대 쪽 어깨에 박아 넣었다. 이번엔 아까 보다도 고통이 더 큰 듯 장우가 억억 하는 소리를 내며 누운 몸으로 바닥을 기어 다녔다. 크지 않은 사무실의 바닥이 장우의 피로 칠갑되었다.

도정주는 벌레가 꿈틀대는 듯 바닥을 기는 장우를 보며 감흥 없는 눈을 했다. 그는 중오가 내민 수건으로 손을 조금 닦은 뒤 왼손에 칼을 옮겨 잡았다. 그리곤 구석진 곳에가 쳐박힌 장우에게로 다가섰다.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목으로 칼을 겨냥했다. 막 찔러 넣으려는 찰나, 문이 열리며 비명을 지르는 정유가 뛰쳐 들어왔다. 정유는 눈물을 흘리며 장우의 앞을 막아섰다. 그리곤 조금 독한 눈을 했다.

 “죽이지 마요. 나도 죽어 버릴 거야.”

정유는 장우를 힐끔 돌아봤다가 다시 자신의 오빠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예상대로 도정주는 죽던 말든 상관없다는 표정이다. 그녀는 그 무관심한 얼굴을 보며 이를 갈았다. 그리곤 지금 빌어야 할 것은 자신이란 것을 깨달았다. 눈에서 힘을 푸는 정유가 말 했다.

“언젠가 오빠가 내게 했던 약속 기억해요? 뭐든지 한 가지는 들어 주겠다고 했잖아요.”

정유는 체념한 듯 입술을 깨물며 도정주의 대답을 기다렸다. 웃는 얼굴로 다가와 자신을 부축해 주고, 억지로 밥을 먹으러 가고, 늘 화랑에 나타나 이것저것 간섭을 하다가 핀잔을 듣고도 다시 씨익 웃던 장우의 얼굴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정유는 어제 실밥을 뽑은 자신의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아직은 흉터가 작게 남아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새살이 돋는다고 했다. 그러나 정유는 자신이 오늘 장우를 구하지 않으면 그 상처와 멍에가 평생 가슴에 남아있을 듯 하다고 느꼈다. 장우의 몸이 꿈틀꿈틀 움직이더니 자신에게로 붙는 것을 본 정유가 눈물을 참았다. 도정주가 말 했다.

“네 미래를 위한 담보를 저 녀석을 살리는데 쓰겠단 말이냐?”

정유는 이를 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겐 여행을 가고 싶거나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다거나 일을 하고 싶은 것들보다도 장우의 목숨이 더 중요했다. 늘 무시하고 내 치기 일쑤 였는데, 언제 이만큼이나 내 마음에 자리를 잡았을까. 정유는 스스로가 생각해도 이 감정의 정확한 때를 짐작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도정주는 그녀를 보며 조금 생각하는 듯 했다. 남매였지만 한 번도 살갑게 군적이 없고, 친하지도 않은 사이였다. 남동생은 그것대로 알아서 크겠지 할 수 있었고, 뭘 생각하고 사는지 눈에 보였기에 편했다. 그러나 여동생은 달랐다. 늘 혼자만의 공간에서 혼자 생각하고 혼자 정의 내리고, 삭막할 정도로 쓸쓸한 그 집에서 상대해 주는 것은 그나마도 지천에 깔린 복숭아나무뿐인 생활. 그는 백번을 생각해도 정유의 마음을 알지는 못 했다. 대신 그럴 때 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었다. 겉으로 보기엔 못이기는 척 저주면서 달래는 듯 보였지만, 실상은 그가 정유를 쉽게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다. 도정주는 자존심 강하고 도도한 여동생이 진청아와 닮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무언가를 지키려고 열심인 여자. 그는 기본적으로 그런 여자들을 존중했다. 그가 말 했다.

“데리고 가. 대신 두 번 다시 내 눈에 띄지 마라. 죽은 듯이 살다가 애를 낳으면 데려와.”

정유는 눈물을 닦고는 석성범의 도움을 받아 장우를 일으켰다. 문이 열리자 백년은 더 늙어버린 얼굴의 장현기가 멍하게 서 있었다. 정유는 나가려다 말고 멈칫 했다. 그리곤 자신의 오빠를 향해 빙긋 웃었다. 칼을 중오에게 건네는 도정주를 보며 그녀가 말 했다.

“이채와 숨은 거래가 있다는 거 알고 있었죠? 궁금하지 않아요?”

그녀는 자꾸만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일부러 웃었다. 생각만큼 잘 움직여 주지 않는 얼굴 근육 때문에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내 마지막 선물 이예요. 가르쳐 줄게요.”

그러면서 그녀는 조금 다가섰다. 그리곤 말을 끝마칠때 까지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는 자신의 오빠를 보며 졌다는 듯 두 손을 들었다. 그녀는 도정주를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이채가 이겼군요. 하지만 이채도 행복 할 수는 없을 거야. 오빠가 이채의 아버지를 죽였으니까.”

그녀는 울면서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는 잠시 중오를 바라본 후 어설프게 장우를 업은 석성범과 함께 나갔다. 도정주는 정유가 나간 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피곤한 듯 미간을 눌렀다. 이채가 깨어나지 않으니 모든 것이 그를 피곤하게 만들었다.

.

.

.

.

중오는 신호를 받고 차를 출발시켰다. 복잡한 도로 위를 매끄럽게 누비는 검은 세단이 사람들의 눈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 시선들을 즐기며 장난스레 웃었을 중오였지만, 지금은 뒷좌석에 앉아있는 자신의 사장만큼이나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중오는 병원까지 좀 더 빠르게 가기 위한 지름길을 택했다. 차도 사람도 드문 좁은 길을 달리며 거울을 통해 뒷좌석을 확인 했다. 자신의 사장이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예쁘죠? 사랑스러워 죽겠죠? 나도 한 눈에 반한 얼굴인데, 오빠가 그 얼굴을 몰라볼 리 있겠어요?’

도정주는 정유의 말에 수긍했다. 처음 이채를 본 날도 자신은 그 하얀 얼굴이 미인이라 생각했었다.

 ‘오빠는 잔인해요. 알아요? 지독한 남자죠. 그리고 이채는 오빠에게 인정이 뭔지, 사랑이 뭔지 알려주게 될 테고.’

그는 정유가 그것 또한 맞추었다고 생각했다.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장우를 살려 준 것은, 어쩌면 사람을 죽이는 건 나쁜 짓이라고 단호히 말 하던 이채의 얼굴이 떠올라서 일지도 몰랐다. 세상은 그에게 더 많은 살인을 원했지, 칼을 놓으라고 말 해주지 않았다. 그는 어두운 밤, 새처럼 가늘게 떨던 이채를 사랑했다.

 ‘이채에게 온통 휘둘릴 오빠는 결국 회사를 떠나게 될 거예요. 그럼 남는 건 둘인데, 평생을 길 위에서 살기로 마음먹은 뜨내기에게 할아버지가 회사를 맞길까요? 언제 또 떠날지 모르는 정화 오빠를?’

그의 머릿속에 분한 듯 코웃음 치던 정유가 떠올랐다. 그는 단 한번도 정유가 원하는 것이 회사 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여자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생물이다.

‘여자는 말이죠. 아이를 낳아요...생산적인 일에 유능하죠. 난 사업채를 잘 끌고 갈 수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 집 남자들은 내게 한 번도 기회를 주지 않았죠...'

정말로 한이 많은 것은 이채가 아니라 정유 일지도 몰랐다. 그는 처량한, 갑자기 아이를 둘은 낳은 여자의 얼굴을 한 정유의 눈빛이 자신도 알고 있는 눈이라고 생각했다.

‘이채는 오빠의 추문 거리 역할을 할 예정 이였어요...오빠를 홀리고, 마음을 주고, 마지막엔 배신하는...이채를 믿어요? 이채가 자기 아버질 죽인 남자를 좋아 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는 달리는 세단의 좌석에 깊게 몸을 묻었다.

 ‘이 이채. 짝 잃은 몸뚱이를 가진 아버지의 멍청한 아들이죠.’

처음 만난 날, 자신을 똑바로 보며 말 하던 이채. 정유는 그때의 이채와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가득한 원한과, 갈 길을 찾지 못하는 분노. 자신은 담담함 속에 감춘 그 불길을 보았으면서도 무관심했다. 이를테면 이채의 한 도, 정유의 한 도 자신이 받아주어야 할 몫이었다.

 그는 병원에 도착했다는 중오의 말에 천천히 눈을 떴다. 죽은 듯 자고 있을 이채가 있는 곳. 그는 자신의 몸에 피가 튀진 않았는지 확인을 하고 병원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구둣발이 소독약 냄새 가득한 복도를 울렸다. 병실 앞에 당도해서 문을 열자 전선처럼 주렁주렁 링거줄을 단 이채가 서 있었다. 그는 잠시 그대로 거리를 둔 채 침묵했다. 이채의 눈이 아릿해 보인다. 너를 안고 놓지 않아도 될까. 네 아버지를 죽였는데. 그는 소리 없이 물었지만, 이채를 향한 질문은 아니었다. 스스로에게, 자신의 깊고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짐승처럼 갈구하는 무참한 본능에게.

 “...정유한테 다 들었죠?”

그는 울먹임을 안은 이채에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슬픔이 겨우겨우 길을 터 준 듯 봇물처럼 눈물을 흘리는 이채가 한 발자국 물러섰다. 그리고 그도 한 발자국 내 디뎠다. 이채가 다시 물러났다. 그가 다시 앞으로 다가섰다. 또다시 침묵.

이채는 기어이 주저앉아 버렸다. 전선 같은 링거줄이 이채의 떨림에 맞추어 흔들렸다. 가만히 지켜보던 남자가 이채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입술로 뺨을 흩고, 눈물을 핥고, 코와 입을 삼킬 것처럼 키스를 했다. 이채는 울면서 그 입맞춤을 받아내었다. 하얀 얼굴을 붙든 남자의 손 위에 이채의 눈물이 점점이 박혔다. 그가 말 했다.

“배신해라. 그 정도는 응석에 지나지 않아.”

그는 이채의 귓가를 핥으며 속삭였다. 네 마음이 진실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나는 그 정도에 나가떨어지지 않아. 그는 이채의 감은 눈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그러자 이채의 가는 팔이 힘없이 그의 어깨위로 다가왔다. 이채는 링거줄도, 어깨의 상처도 잊고 남자를 끌어안았다. 버거운 사랑이었지만, 이 남자를 잃을 수도 없다. 아버지, 아버지... 이채는 그의 품에 안겨 아버지를 불러 보았다. 배신은 생각조차도 할 수 없이 그를 사랑했지만, 그렇기에 함께 있어선 안 되었다. 이채는 새처럼 입을 벌리고 남자의 입술을 삼켰다. 병실 안에서 애틋한 입맞춤이 계속 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