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5화 (75/188)

“저도 선수로서 출전을 하고 싶습니다만...

안 되는 건가요?”

“아, 아닙니다! 크루비츠씨, 물론 아니...

반드시 당신께서는 출전을 해달라고 저희가 오히려 간청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 그렇게 까지야...하하하...”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 대회가 순전히 나 때문에 열렸다는 사실을...

그리고 관중 대부분이 

‘크루비츠의 한방’을 기대하고 있었음을...

매스컴에게 있어서는 가장 불편한 스타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인의 칭송을 받는 최고의 스타였고...

무슨 일이 터지든 굴비 엮듯 잘 엮어내는 그들의 능력으로...

‘매스컴에서 가장 꺼려하는 사나이.’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나이’로 바뀌어서 관중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번에는 당신의 한 방을 막아낼 사람이 몇이나 될지 궁금합니다.”

“제가 치러온 수백전의 경기들 모두 한 방으로 끝났었지만...

이번만큼은 온 힘을 다 쏟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그정도로 강한 겁니까? 이번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후훗...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그렇게 말을 마치고서는 접수원에게 일행 전부의 등록을 맡기고, 나는 뒤에서 기다리는 그녀들을 향해 걸어갔다.

“휘익~ 이거이거, 보통 유명한게 아닌가봐.”

“듣자하니 모든 선수들을 한방에 KO시켰다고 했는데...

이거 왠지 우리도 싸울 자신이 없어졌는걸?”

“정말로 살살 해줘야 해요. 크루비츠...”

제각각 반응하는 것이 달랐지만...

그것들 태반이 농담조임을 아는 난 그들에게도 역시 가벼운 농담을 했다.

“고만고만한 애들 사이에서 골목대장 좀 한 것뿐인데...

적어도 누나나 다른 사람들한테서 승리를 해야, 진짜 최강의 사나이로 군림하는거지.”

그런데 그 말을 누군가가 들은 모양이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가장 나를 미워하는 여인에게...

“스포츠맨으로서의 예의범절은 완전 결여된 사람이군요.”

“으응? 누구...”

“오호호호! IFF준우승자인 이 사탄을 모르는 사람도 있다니...

외딴 산골에서 오신 모양입니다.”

뭐 자기 스스로가 이름을 떠벌렸으니, 이하 설명은 생략하겠다.

“세상은 승자만을 기억하는 법이야.

준우승 따위는 길거리 꼬마애들도 기억하기 힘들지...

안그래? 준우승자 씨!”

“풉...크크큭!”

나의 도발에 얼굴을 붉히는 사탄, 그리고 그런 사탄을 바라보면서 웃음을 참지 못하는 일행... 거기에다가...

“아, 저 여인이 크루비츠가 말한, 

‘실력은 형편없는 주제에 콧대만 높아서 내 인터뷰를 알아서 대신해주는 사람’인가요?”

프리저의 이 답변은 가히 예술적이었다.

“뭐에욧!!!!”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지난 대회 IFF 우승자인 사탄은 프리저를 향해서 눈을 치켜세웠으나...

뭐 맞는 사실이기에, 내가 확실하게 비수를 꽂기로 마음먹고 답변했다.

“맞는 말 아니야? 세상 살다보니...

우승자보다도 준우승자의 인터뷰 시간이 더 길었던 적은 당신과의 결승전밖에 없었어.

최소한 내 준결승 상대였던 캐미라도 본받던가...

여자가 말 많은건 자고로 흠이 되진 않는다지만, 그렇게 입방정이 심해서야... 못하면 이번에 내 한방을 견뎌 보던가...

뭐 지난 대회의 재판이 될테지만...”

“크으으으....”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는 사탄...

하지만 그녀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상태였다.

현재 나는 너무 기어오르는 상대가 없기 때문에 (베지터의 경우는 기어오를 때마다 손좀 봐줬더니...

이제는 어지간한 일에 개기지 않는 내성이 생겨서 재미가 없고, 다른 애들은 아예 대화도 하지 않는다.) 비델이 태어났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살려두고 있는 것이었고, 언제든 내가 흥미를 잃어버리면 죽일 수 있다는...그 사실을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운 좋은 줄 알아라... 그나마 내 소원으로 여성체가 되지 않았다면 진작에 죽었을 캐릭터니깐...’

원작에서나 이곳에서나... 참 명줄도 질긴 사탄이었다.

“에헴! 자, 그..그럼 지금부터 제24회 천하제일 무도대회 예선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방식은 전 대회와 같습니다.

총 512명의 선수들이 예선전을 치러서 32명의 선수만 선발하도록 하겠습니다.

각 선수들은 접수하시면서 받았던 종이를 펼쳐 그 종이에 적힌 알파벳 위치로 가주시면 되겠습니다.”

“다행히도 모두들 알파벳이 달라.

이건 최소한 본선에서 만난다는 소리겠지?”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그들과 헤어졌다.

내가 끼어있는 곳은 F조...

그곳의 상대를 대충 살펴본 결과...

“크, 크루비츠가 이곳에...”

“젠장! 우리는 이제 올라가기 글렀어.”

“이번에야말로 본선에 진출하나 했는데 말이야...

최소 본선에라도 올랐으면 상금이라도 타는건데...”

이런 어중이 떠중이와...

“크, 크루비츠...”

“설마 예선에서 당신과 붙을 줄이야...”

야무차, 천진반...정도의 애송이가 다였다.

‘이걸로 본선직행 확정!’

내 행보는 거칠 것이 없음이 증명되었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크루비츠 승리! F조의 진출자는 크루비츠 선수와 천진반 선수입니다.”

뭐 준결승에서 만난 야무차 역시도 내 한방 전설의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을 확인한 천진반은 더 이상의 싸움은 무리하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결승전에서 기권을 선언했다.

18개 조에서 본선진출자는 상위 2명이기에...

굳이 그녀가 싸울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지만...

이로인해 그녀는 대중들로부터 

‘비겁한 년’이란 칭호를 획득하게 되었다.

‘뭐 싱겁잖아... 다른 조는 뭐 알아서 끝났을 테고...

난 느긋하게 구경이나...’

이렇게 생각하고 옆조에서 활약하는 손오공의 모습을 확인하려고 눈을 돌리는 순간...

내 귀에는 낯익은... 하지만 들려서는 안될 이름이 들리고 있었다.

“1, 18호 선수... 본선 진출입니다.”

“17호 선수도 본선 진출입니다.”

‘뭐라고?’

아직 1년이나 남았을 텐데...

그들을 확실하게 맞이하고자 일부러 1년전에 무도대회가 개최되도록 손을 쓴 것이었는데...

이놈의 게임이 오류라도 먹었는지, 이상한 시간대로 그들을 출동시켰다.

더불어 그 전에 있었어야할 19호와 20호의 등장도 자연 중단되어 버렸다는... 아주 사소한 해프닝도 있는 거 같기도 했다.

‘저 둘이 등장한 순간부터 이미 그 둘은 등장할 타이밍을 놓쳤어. 그럼...여기 어딘가에...’

그리고 내가 예상한 인물은 저쪽 벤치에 앉아서 자신에게 날아온 새를 살짝 어루만져주고 있었다.

‘제길 16호까지... 어째서 저 녀석들이 지금 등장한 거냔 말이다!!! 더는 스토리에 맞추고 싶지 않다는 건가?

인공지능이 내 시나리오에 걸맞는 스토리 복구능력을 더는 사용하기 싫어진 것인가... 제기랄!’

물론 지금 내 전투력으로 저들을 포획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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