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불쌍하군.”
“뭣이?”
“내가 그렇게 두렵나? 기껏해야 팔다리 좀 못쓰는 것 뿐인데... 누워서이긴 해도 평생 먹고 살 수는 있다구.”
“잘난 척좀 그만해라. 이 자식...
네 녀석의 진면목을 내가 모를 줄 아냐!”
하긴... 격투기계에 데뷔를 하면서부터 콧대높은 놈들, 의욕이 없는 쓰레기들은 가차없이 밟아줬던 나였으니...
공식자리에서는 인자하게 미소짓지만 선수들 사이에서는
‘이중인격자’라고도 불리는 나다.
“아는 놈 같으니깐 이렇게 보여주지 않았나. 내 진면목...”
“크으...”
“자 그건 그렇고, 앞서 따님인 비델양이 말한대로 난 이 대회에서 마주치는 전부...
물론 나와 안면이 있고 친분이 두터운 사람을 제외하고는 반신불구를 만들 예정인데...
이 정도면 감이 팍 하고 오지 않아?”
“그..그, 그 그런다고 내가
거..거..거.. 겁 먹을 줄 아나?”
“그렇게 떨리는 목소리로 해봐야 설득력이 없다구.
그리고 중요한 사실 하나 더 알려주자면...
지금 이 골목에 있는 사람은 나와 너, 그리고 네 귀여운 따님까지 해서 세 명뿐이야. 구차하게 자존심 지키려고 애쓸 필요 없다구.”
비굴의 상징 미스터 사탄!
아닌 척해도 결국에는 누군가를 방패삼아서 비굴해지는 대다수의 사회인들의 표본과도 같은 존재...
과연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리를 후들거리는 사탄이다.
“전처럼 최대한 배려해서 기합포만 날리지는 않을거야.
뭐, 살인이 금지되어 있으니깐 최대한 죽지않는 선에서 해결하자구.”
“으으...”
혼자였다면 체면불구하고
“살려주십쇼. 제가 당신을 너무 몰라봤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게 조심하겠으니, 제발 이번만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무릎꿇고 절까지 했을 사탄인데, 그래도 명색이 아버지라고 딸과 함께 있어서인지 그런 굴욕적인 말은 입에서 나오지 않는 모양이다.
“이봐요. 챔프!”
“왜 그러죠 비델양...! 으응?”
다짜고짜 내 얼굴을 향해 발차기를 날리는 그녀...
뭐 맞아도 휴지 한 장에 맞은만큼의 타격도 안받겠지만, 그래도 일단 막고 보자는 주의이기 때문에 일반인이 보기엔 번개같은 발놀림을, 역시 번개같은 손놀림으로 가볍게 막아선다.
“아버지 대신 제가 싸우겠어요.
그러니깐 아버지는 보내주세요.”
“호오...”
“비, 비델!! 그러지 마라. 저 녀석은 악마야...
차, 차라리 내가 싸우겠다.”
“선택권은 나한테 있지 않나 사탄?”
주제도 모르면서 설치는 꼴이라니...
“시, 시끄럽다!! 자식을 방패삼아 도망치는 부모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니깐 내, 내가 너랑 싸우겠어.
그러니 비델만큼은... 비델만큼은 건드리지 말 것을 약속해라!!”
“내가 왜?”
그말에 벙쪄버리는 미스터 사탄...
지딴에는 그렇게까지 나서면 상대도 배려해서
“그렇게 하지”로 이야기 될 거라고 생각한 듯 하다.
“그, 그거야...”
“솔직히 객관적으로 봐서 사탄, 너보다 비델양이 처리한 숫자가 더 많아. 비델양을 쓰러뜨리면 내 몸값은 널 쓰러뜨리는 것보다 높아진다고.
어차피 배틀로얄의 특성상 나중에라도 처리해야겠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굳이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너 대신 비델양을 고르는게 보통 아닌가?”
“그래서... 감히 여자에게 손찌검이라던가...
아까 특공대원들에게 한 것처럼 할 것인가?”
“내 맘이지. 그리고 사탄 너도 알텐데?
어차피 이런 격투대회에 참가한 이상 여자는 여자로 봐선 안된다는거... 승자 고유의 권한까지 침해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크으.. 누구 멋대로...”
호오, 결국에는 정한 모양이다.
딸 앞에선 최대한 멋진 아버지가 되기로...
“승자라는 거냐!!!”
“아, 안돼요 아버지!!”
“타아아앗!!!”
다짜고짜 킥을 날려주시는 사탄...
“굳이 피할 이유도 없지.”
가볍게 킥을 주먹으로 맞받아친다.
물론...
“크으..크아아악!!!”
주먹에 힘을 좀 실었기 때문에 오른쪽 발 어디 한군데는 부러졌을 것이다.
“아버지!!!”
“비켜주시겠어요 비델양?”
“네?”
미스터 사탄의 절규에 바로 사탄을 몸으로 보호하며 상태를 살피는 비델...
‘가족간의 정이라는 건가...’
하지만 그걸 보고 감동해서 물러선다는 시나리오는 내 머릿속에 입력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바로 쌩 무시해주신다.
“아직 세군데 남아서 그렇습니다만...”
“마, 말도 안돼요. 어차피 이번 공격으로 전의를 상실했습니다.
더 이상 뭘 어쩌려고 그러는 거죠?”
“그 팔찌에 불... 아직도 들어오지 않습니까?”
“팔..찌... 어, 어째서!!”
비델도 이미 많은 참가자들을 처리하면서 알고 있었다.
상대가 더는 싸울 수 없는 상태, 혹은 항복을 선언하는 상태에서 빛나는 팔찌의 불은 꺼지고 자신의 팔찌에 적힌 숫자는 올라간다.
하지만 다리를 부여잡고 데굴데굴 구르는 미스터 사탄의 팔찌는 아직 그대로 불이 들어오고 있었다.
“항복을 선언해도 5초정도 메인컴퓨터가 인식할 시간이 필요하지요. 하지만 상대를 불구로 만들면 바로 불이 꺼지거든요? 그 팔찌가 신체기능을 검사하고 체크하는 기능까지 겸하고 있어서 말이죠.”
물론 이 팔찌도... 돈 많이 들었다.
얼마나 들었는지는... 크흑, 굳이 말하지 않겠다.
‘반드시 하나도 남기지 않고 수거하겠어.
외부로 반출하는 놈은 기필코 찾아가 죽이리라...’
뭐 이야기가 조금 샌 거 같긴 하지만...
“전 빨리 처리하고 싶습니다. 그러니깐 물러서시죠.”
“아, 안되요. 어느 누가 다친 아버지를 두고...”
“아, 그건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두사람 다 편히 모실테니 말이죠.”
“...네?”
“저 뒤에 널부러진 분들처럼 말이에요...후훗”
“그, 그런 말도 안되는...”
그리고 비델은.. 기절했다.
“이런이런 바보같이... 그 팔찌는 사용자가 기절상태에 빠져도 자동적으로 빛이 꺼진단 말이지.
더는 싸울 수 없는 상태로 판명되걸랑. 그리고 사탄?”
“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