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7화 (187/188)

“크, 크루비...”

말이 나오질 않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크게 울부짖으며 부르고 싶었지만, 시영이 평생에 한 번 뿐인 결혼식에 해가 될까 걱정되서 울부짖음을 속으로 삼켰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객석을 빠져나와 그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습니다.

조심조심... 그럴 리 없겠지만, 행여라도 절 보면 도망갈거라는 생각이 무의식중에 들어서...

최대한 어색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그러면서 그가 기척을 느끼지 못하게 천천히 다가갑니다.

하지만,

“풋... 요즘 자객이라도 하는 거야?”

결국 들켰습니다.

그에게 말입니다.

하지만 들켰다고 해서 화가 난다거나 분하거나 그러진 않아요.

그저...

“어디있다 온거에요?”

“아아, 잠깐 여행 좀...”

“밥은요, 잠은요?”

“밥이야 뭐 다니는 내내 알아서... 잠도...으응? 프린 너...”

“옷은요. 돈같은건... 몸은,”

“그만...”

“그, 그리고 또 뭐... 뭐 물어볼게 아주 많았는데... 흐끅, 많은데 왜 생각이 안나지? 왜... 왜 안나는 거지?”

머릿속이 미친듯이 회전하고 있는데, 그 순간 앉아있던 그가 조용히 나를 끌어안아 주었어요.

그리고 마침 결혼식은 신랑 신부 행진이 이어지고 있었죠...

시영이의 결혼식이 막을 내리는 그 순간...

세상에서 제일 만나고 싶은 그 사람...

세상에서 단 한 명... 이 프리저의 사랑을 받고 있는 그 남자의 품에 안겨서 돌아갑니다.

우리의 단 하나뿐인 낙원으로...

<--185.외전 : 수련-->

“겨우 이정도인가?”

“하아...하아... 죄, 죄송합니다!”

빛이 한 줌도 새어나오지 않는 철저한 암흑...

이 속에서 나는 대장님과 함께 대련을 한다.

며칠째 이곳에 있었는지, 이곳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상대를 쓰러뜨려야 한다는 것...

대장님에게 강한 일격을 날려 심대한 타격을 입혀야 한다는 미션만 수행해야 한다.

“지금도 눈에 의지해서 전투를 하는 건가?”

“아닙니다.”

기를 완전히 없애고 어딘가에 있는 대장님을 물리치는 건 정말로 힘든 일이건만...

난 불평을 할 수 있도록 허락받지 못했기에...

슈퍼사이어인으로의 변신도, 계왕권조차도 쓸 수 없는 상태에서...

느껴지지도 않는 기에 의존해서...

보이지 않는 시력을 대신할 청력만을 의존해서 대장님을 쓰러뜨리는 것...

수백번이나 도전했지만, 실패했고...

지금도 제한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또 실패할 듯 보인다.

‘도대체 어떻게 쓰러뜨리라고...’

차츰 어둠에 익숙해질 즈음...

다른 사천왕들이나 프리저님등은 이때를 기점으로 상대를 찾기 시작하겠지만, 지난 수백번의 경험을 미루어봤을 때...

지금 이 익숙함이 알려주는 건 제한시간이 곧 있으면 종료한다는 뜻과 일맥상통하기에...

서두르기로 결정한 나는 어둠속에 느껴지는 이질적 기운을 근거삼아 대장님이 있는 그 곳에 강한 일격을 날린다.

「우우웅」

이윽고 암흑으로 가득찬 그곳에 빛이 들어옴을 알리는 기계소리가 들려왔고, 대장님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날린 그 주먹이 있는 곳은... 대장님 왼쪽가슴의 바로 옆...

“아깝네.”

“.............”

또 실패다.

이런...

“무조건 슈퍼사이어인 최종단계로만 변하는게 능사가 아냐. 평상시의 모습으로도 최대의 기를 끌어모아 일격에 날릴 수 있을 정도의 강함을 항시 지녀야만 해. 그게 제일 효율적인 전투방식과도 귀결되는 것이고...”

“명심하겠습니다!”

대장님의 곁에 있는 사람들은 프리저님을 대표로 부인의 직함으로 불리는 분들과 상관과 부하로 귀결되는 나같은 이로 나뉜다.

프리저님이 햇살이라고 한다면, 내가 속한 사천왕은 그림자와 같은 존재들...

한결같은 미소와 행복으로 대장님의 겉모습을 치장하는 분들이 프리저님과 근래에 혼인한 손오반님이라고 한다면, 그 분이 내리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침으로써 주인님의 미소를 바라보는 것으로 족한 것이 우리 같은 그림자의 행복이겠지...

대장님의 뒤를 지키고, 가끔 대장님의 은혜를 받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상임과 동시에 우리에게 주어진 최후 최초의 임무인 것...

여하튼 공식적인 자리이건 사적인 자리이건, 나를 비롯한 사천왕들은 음지에 있는 것이 대장님에 대한 당연한 도리이고, 그게 내 천직이라 믿고 이 자리까지 왔다.

그런데...

“크흐흑...대장님...”

“죽여버리겠어!! 야 시현, 당장 퓨전해서 지구로 가자.”

“.......죽일거야.”

대장님의 죽음은 이렇게 예고도 없이, 채 준비할 틈도 없이 우리들에게 날아들어왔다.

그 흉수라는 것도 다름아닌...

대장님의 하나뿐인 피붙이인 손오공..이니깐

“뻔뻔하군. 고작 이따위 별을 지키기 위해서 전 우주를 다스릴 분인 그 분을 돌아가시게 만들었다고?”

“널 죽여서 돌아오실 수 있다면, 설사 네 년의 목숨이 수만 개가 있다고 해도 모조리 없앨 것이다.”

“살려내... 우리 대장님 살려내란 말야!!!”

프리저님이 한사코 말렸지만, 끓어오르는 분노를 막지 못한 시현과 지현이 지구로 향했고, 나와 아라 역시도 그녀들의 뒤를 묵묵히 따랐다.

사천왕의 대장으로서 그녀들의 행동을 제지할 수 있겠지만,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

대장님의 유지라고 해서 다시 살려준 지구인들을 무참히 도륙했지만, 그것도 말리지 않았다.

지구인 전부를 한 명씩... 한 명씩... 사지를 절단내고 남은 몸뚱이를 폭발시켜, 피가 사방을 난자해도...

그 모습을 보면서 끔찍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물론 너무하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 우리를 막기 위해 온 손오공을 철저하게 유린했다.

그녀가 우리의 얼굴을 보기 무섭게 싸울 의지를 잃었다는 점도 있긴 하겠지만, 여하튼 현아에게 철저히 유린당하는 그녀를 보니...

그런 그녀에게 죽임을 당한 그분 생각에 조용히 목이 매이고 눈물이 나올 따름이다.

“현아, 저 년의 양팔을 잡고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어.”

그와 동시에 난 뇌절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만들어진... 기의 응집체...

긴 검의 형태를 띈 그 에너지 응축검은 곧 그녀의 몸을 유린하기 시작한다.

“비명이라도 질러!!”

“크윽...”

“최대한 아프다고 울부짖으란 말야!!!”

“큭...”

겨우 이런 녀석에게 죽어버리다니...

겨우 이딴... 자신의 피붙이보다도 문명도도 낮고 이용가치도 떨어지는 별 하나를 지키는 걸 택하는...

그런 여자 때문에 죽어버리다니...

“죽어!!!!!!!!!!!!”

그날 난 정말로 미쳐버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반죽음 상태로 전신을 피로 칠한 그녀가 쓰러져 있었으니깐...

“이 지구에 사는 인간들이 전부 죽었지만, 그래도 대장님과 친하게 지낸 지인들은 살려두었다. 행여라도 저 버러지들 때문에 드래곤볼 따위를 쓰러 마신계로 온다면... 그 순간 남은 버러지들도 전부 사지를 찢어발길 것이다.”

마신 크루비츠 대장님이 돌아가신지 3년째 되는 그날...

지구에 사는 인류를 전부 멸망시킨 다음 우리는 자취를 감췄다.

마신계에서도 우리를 본 사람들은 아무데도 없었다.

그리고 우주 그 어디서도 우리를 발견한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

“내가 죽고 나면 프린이랑 다른 애들을 지켜주기로 하지 않았었나?”

“대, 대...대...”

“흑, 흐흑...”

“...............”

결혼식에서 프린을 만나고, 신혼여행을 떠나는 자식들을 바라보던 손오공과 재회한 뒤 프리저에게 마신계의 근황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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