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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안은 게임 시작 후 처음으로 사망해 봤다. 그것도 유저에게. 그는 눈 앞에 떠오르는 리스타트의 의사를 묻는 창에서 'Yes'를 선택했고 곧 노비스 시티의 리스타트 포인트인 중앙 분수로 이동 되었다.
팟-!
쏴아아아아-
중앙 분수 특유의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그는 다시 살아났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처음 죽는 게 피터지게 싸우다가도 아니고 밟혀 죽을 수가 있지?'
밟히던 느낌은 미약했지만 기분 자체가 상당히 더럽다.
그는 자신이 유저들에게 밟혔던 원흉인 흑색의 검을 찾았다. 일단 디 앱솔브에서는 어떤 유저든 죽음으로 인해 아이템을 떨어뜨리지는 않게 해 두었다.
"인벤토리."
키리안은 작게 아이템 창고를 불러왔다. 그것은 '아공간'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부름에 의해 그곳으로 통하는 입구를 연다. 그는 검은 그곳으로 손을 넣으며 흑색의 검을 떠올렸고 곧 손에 차가운 금속의 느낌이 왔다.
'흐음…'
손에 들린 고색창연한 흑색의 검. 길이는 세우면 대충 자신의 배 정도까지 올 듯 했고 넓이는 겨우 3cm 정도. 롱소드의 형식을 띠고 있었지만 그 두께로 인해 레이피어의 느낌 또한 있었다.
스르릉-
검을 뽑아 보았다. 소름끼칠만큼 청명한 검명(劍鳴)과 함께 그 청백색 검신이 드러났다.
'대, 대단한데?'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장난이 아니게 좋은 검이다. 과연 초고수의 검이랄까. 하지만 정확한 능력을 알기 위해선 직접 써봐야 한다.
디 앱솔브에서는 따로 무기의 수치를 나타내지 않았다. 그저 그 등급만을 보여 줄 뿐. 무기의 등급은 사급, 삼급, 이급, 일급, 레어, 유니크, 갓으로 총 칠등급이다. 각 등급 간 무기의 차이는 꽤 큰 편이며 그 급수가 높아질수록 더욱 크 차이가 크다.
일급부터는 무기에 각각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데 이것은 무엇일지 궁금했다.
"능력치 감정."
자세한 정보를 알려주는 명령어를 작게 말했다. 곧 눈 앞에 반투명한 메모창이 떴다.
[암은청한검(暗隱請翰劍)
무기 등급 : 일급
능력 : 일정 확률로 시력을 앗는 '블라인드(Blind)'의 마법에 걸리게 한다.
설명 : 어두운 기운 속에 자신의 청빛 날개를 감춘 검. 그 날개가 드러날 때 검의 본래 능력이 드러난다.]
"에이. 겨우 일급이야?"
그는 생각보다 낮은 검의 등급에 실망한 듯 말했다. 분명 겨우 레벨 5인 그에겐 과분한 검이었지만 그 모습과 예기(銳氣)에 비해, 그리고 그 엄청난 유저의 검치곤 부족한 능력치였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무지했기에 내뱉은 말이었다.
최소한의 공략조차 참고하지 않고 스스로 모든 것을 알아가는 플레이를 즐기는 그였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디 앱솔브에 존재하는 중요한 시스템 중 하나인 자격 레벨. 그것을 그는 모르고 있었다. 씰이든 아이템이든 그것의 주인인 유저의 능력이 부족하다면 본래의 능력을 사용할 수 없는 시스템.
현재 레벨 5인 키리안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일급의 능력을 보이는 암은청한검. 본래 일급이라면 삼급 정도의 능력을 보일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능력을 잃은 정도가 일급인 암은청한검. 그렇다면 과연 최대의 능력은 어느 정도란 말인가?
"아니지 아니지. 공짜로 얻었는데 이게 어디야. 그럼 다시 사냥이나… 아니지. 일단 씰부터 얻어야지."
그는 다시 사냥터로 향하려다가 자신의 레벨이 5임을 상기하곤 씰을 얻을 수 있는 곳인 가디언즈 센터(Guardian's Center)로 몸을 돌렸다.
키리안이 목표를 정하고 걸음을 옮길 때였다. 갑자기 그의 앞으로 갈색 머리카락을 짧게 커트한, 키가 180은 되어 보일 장신의 유저가 나타났다.
검은색의 딱 봐도 고수티가 나는 고급의 도복과 허리에 찬 백색 검. 그리고 뒤에 서 있는 푸른색 머리카락의 여성 씰과 금발금안(金髮金眼)의 그와 비슷한 키를 지닌 남성 씰 하나가 있었다. 둘 다 범상한 모습은 아니었다.
"…응? 누구세요?"
게임 시작 후 처음 유저와 나눠보는 대화였다. 그는 자신보다 10cm는 더 커보이는 그를 올려다보며 의아한 듯 물었다.
"음, 일단 자리를 옮길 수 있을까요?"
그는 주위를 두리번두리번거리며 말했다. 키리안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그의 급한 표정을 보고 승낙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뭐 그리 급한 일도 없으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키리안의 대답에 그는 일단 안도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키리안을 골목 사이로 안내했다. 꽤나 복잡한 길을 지나 후미진 곳으로 들어섰다. 그곳엔 의외로 차분하고 깔끔해 보이는 찻집 하나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헤에, 이런데도 찻집이 있네요?"
"뭐, 돌아다니다보면 신기한 것이 꽤 많긴 하죠."
짧은 대화와 함께 그들은 비어있는 자리 중 한 곳에 앉았다. 곧 NPC로 보이는 웨이트리스가 주문을 받기 위해 다가왔다.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음, 무엇을 시킬까요?"
그가 키리안의 의사를 물었다. 키리안은 잠시 메뉴판을 훑어보더니 유일하게 초코가 들어간 초코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사내는 가볍게, 아니 꽤나 특이하게도 홍차를 주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주문한 것이 나왔고 그들의 앞에 놓여졌다.
둘은 자신이 주문한 것을 가볍게 맛보며 서로를 보았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장신의 사내였다.
"음, 먼저 제 이름을 말씀 드려야 겠네요. 저는 이곳, 디 앱솔브에서 '천령(穿靈)'이라 불립니다."
천령! 디 앱솔브에 대해 조금 안다는 유저들은 모두 그 이름을 알고 있을 것이다. 모를 리가 없다. 천만에 달하는 수많은 유저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자. 랭킹 2위의 전설과도 같은 유저.
'마스터 랭커(Master ranker)'라 불리는 랭킹 1위의 아레이나르와 유일하게 맞설 수 있다는 최강의 유저 중 하나였다. 그의 씰인 아레스와 블레인 또한 최강의 씰들이었다. 선망의 대상 중 하나인 것이다.
천령은 힘주어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아마 이 앞의 유저는 크게 놀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음. 그렇군요. 멋진 이름이네요. 저는 키리안입니다. 꽤나 평범한 이름이죠."
키리안은 멋있다는 듯 그의 이름을 칭찬해 주었다. 그리고 담담하게 자신의 소개를 했다. 너무나 담담한 모습에 천령은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그것을 얼굴에 드러내지는 않았다.
"평범한 듯 하지만 키리안님도 꽤나 멋진 아이디입니다."
"헤, 칭찬 고맙습니다."
둘은 그렇게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검을 주고 씰을 얻다
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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