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앱솔브-6화 (6/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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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키리안님."

"네?"

담소를 나누던 도중 천령이 약간 표정을 굳히며 키리안을 불렀다. 이제야 본론이 나오려는 것이다. 키리안은 거의 다 먹은 아이스크림을 휘젓던 숫가락을 놓고 그를 응시했다.

"암은청한검을 가지고 계시죠?"

천령의 말에 키리안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의외라는 듯 말했다.

"천령님도 알고 계시네요?"

그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초보인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살펴본 결과 어쩌면 노련한 유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이름을 듣고도 별다른 반응이 없는 것과 디 앱솔브에서 가지는 무게가 최고에 달하는 암은청한검에 대해 논하는 것에도 담담하다.

'생초짜 아니면 고수다!'

초보처럼 위장한 고수 아니면, 정말 완벽한 초보다. 천령은 머리를 굴리며 말했다.

"키리안님. 그 검을 제게 파시지 않겠습니까?"

키리안은 그의 말에 난감한 빛을 띠었다. 천령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검의 가치를 알고 있기 때문에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음… 난감하네요. 이 검으로 레벨업이나 할까 하는데… 아직 레벨이 낮아서 이 검이 필요하거든요."

애매한 말이었다. 하지만 천령은 눈 앞의 소년이 고수라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고 있었다. 사람이 어느 하나로 생각을 끌고가면 전혀 뜻이 다른 말도 재해석 되곤 한다. 천령이 바로 그 상태였다.

키리안의 말을 '암은청한검은 내가 사냥하는데 필요한 것이니 줄 수 없다' 정도로 해석한 것이다. 하지만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는 노릇. 그는 더욱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아, 이것과 교환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는 말하는 도중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인벤토리를 뒤적거렸다. 그가 검은 공간에서 꺼낸 것은 크로스 가드와 검날조차 없는, 오직 손잡이 뿐인 청은색 힐트였다.

키리안은 그의 손에 들린 힐트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뭔가요?"

천령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그것을 설명했다.

"후후. 최고 최악의 사냥터라 불리는 드래곤즈 마운틴에서 얻은 상징물입니다. 일반적인 감정 스크롤은 먹히지도 않더군요. 보통의 물건이 아니란 말이죠. 어떻습니까?"

천령의 말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그는 드래곤즈 마운틴에서 사냥 중에 우연히 그것을 얻을 수 있었다. 강력한 몬스터인 드레이크를 잡아 나온 것으로, 자그마치 레어의 스크롤을 사용했음에도 어떤 씰인지 그 정보를 보이지 않던 상징물이었다.

레어의 감정 스크롤로는 레어까지의 미확인 씰이나 아이템의 상세 정보를 알 수 있다. 즉 레벨로 따져 101에서 150 사이의 레벨인 씰이 잠든 미확인 상징물의 정보를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레어급 감정 스크롤로 확인할 수 없었던 것이니 최소한 유니크급(레벨 151~200)의 씰임을 알 수 있었다. 싱급 씰의 상징물. 천령은 그것을 꺼내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본래 암은청한검은 갓급의 검이다. 지금까지 단 한 자루밖에 나타나지 않은, 아이템으로썬 최고의 검인 것이다. 상징물을 제외하고는 암은청한검에 대항할 수 있는 검은 없다. 그만큼 초고가의 아이템이다.

천령은 도박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씰을 제외하고선 암은청한검과 교환할만한 것이 없다. 죽어도 아이템을 떨어뜨리지 않는 곳이 디 앱솔브의 세상이다. 결국은 교환 뿐이다. 하지만 제정신 박힌, 그리고 고수라면 절대 바꾸지 않을 것이 암은청한검이다.

'바꿀 수 있다면 그야말로 복권 1등에 당첨되는 격이고, 실패라면… 별 수 없지.'

어차피 자신의 씰을 제외하곤 어떤 것을 내걸어도 바꿀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 눈 앞의 유저가 초보이길 빌며 자신에겐 큰 의미가 없는, 하지만 초보는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유니크의 상징물과 교환하자고(감정은 해보지 않았지만 회사가 미치지 않은 이상 드롭되는 상징물이 유니크 이상일 리는 없다) 제의해 보는 도박을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키리안은 그것에 시선을 두며 물었다.

"이것이 바로 씰을 나타내는 상징물이군요. 근데, 평범한 것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인가요?"

천령은 그가 자신을 놀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했지만 '혹시나'하는 기대에 대답해 주었다.

"적어도 레벨이 151은 될 겁니다. 최대는 200이지요. 어떻습니까?"

키리안의 눈이 번쩍 뜨여졌다. 최소 151, 최대 200? 그에겐 고수인 형의 레벨이 30이고 씰의 레벨이 40 정도라고 했다. 그런 그에게 레벨이 151이상인 씰은 그야말로 '꿈'이었다. 더불어, 그의 과거 방식인 ‘계산’에도 전혀 어긋나지 않는 조건이었다.

일급의 검. 그것은 확실히 지금의 그에게 가치가 큰 것이다. 하지만, 고위의 씰보단 훨씬 못한 것이다. 자신이 좋은 검을 들고 설쳐봐야 수준 높은 몬스터를 잡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씰은 아니다. 일단 그것을 사용할 수만 있으면 고레벨의 몬스터를 수월하게 잡을 수 있다. 최소한 검보다는 훨씬 가치가 큰 것이다.

"바꿀게요!"

소리치는 키리안의 모습에 천령은 겉은 태연한 척 했지만 속은 엄청나게 뛰고 있었다. 혹시 꿈이 아닌가 싶었지만 분명한 현실이었다. 암은청한검. 그것을 기껏해야 유니크 최상급일 상징물과 바꾸겠다고 한 것이다.

"저, 정말입니까?"

무의식적으로 떨리는 목소리로 되묻고 말았다. 천령은 속으로 절규하며 아차 싶었지만 키리안은 그저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었다.

"교환은 어떻게 하죠?"

천령은 미친 듯이 뛰는 속을 진정시켜가며 말했다.

"악수를 하며 교환이라 말하거나 교환이라 말하고 교환하려는 상대의 아이디를 말하면 됩니다."

그는 말을 마치고 손을 내밀었다. 악수의 의미였다. 키리안은 덥석 그의 손을 잡았고 천령이 교환이라 말했다.

곧 그들의 눈 앞으로 귀여운 바구니가 떠올랐다. 그곳에 아이템이나 돈을 놓고 다시 교환이라 말하면 확인 메모창이 뜨고 'Yes'를 누르면 교환이 완료된다.

키리안은 전혀 주저하지 않고 품에 두고 있던 암은청한검을 눈 앞의 바구니에 놓았다. 천령은 그것을 보며 자신도 떨리는 마음으로 상징물을 놓았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플래티넘을 몇 개 추가로 얹었다.

"교환."

키리안은 교환의 절차를 확실히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멀뚱히 있었고 천령이 대신 교환이라 말했다.

눈 앞에 떠오르는 확인 메모창. 키리안과 천령은 모두 'Yes'를 눌렀고 교환이 완료 되었다. 교환 완료의 메세지가 눈 앞에 떠오르자 천령은 가슴이 더욱 뛰었다.

"고맙습니다아~"

키리안은 생각치도 못하게 천령이 금화를 몇 개 더 얹어주자 고마움에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표시를 했다. 천령은 그것에 아무 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세게 저었다.

"그것으로 레어급의 스크롤을 사서 상징물을 감정해 보십시오. 그럼 저는 바빠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파앙-!

허공답보와 같이 최고의 스킬 중 하나인 궁신탄영(弓身彈影)을 펼치며 천령은 총알처럼 사라져 갔다. 폭발적인 스피드를 얻는데 가장 좋은 스킬 중 하나인 궁신탄영. 키리안은 처음 보는 그 스킬에 감탄했다.

"헤, 친절한 사람이네. 아니 그보다 겨우 일급의 검이 뭐가 좋다고 바꿔가는 거지? 흐응. 취향인가?"

키리안은 레어의 검과 디 앱솔브에서 최고 단위의 화폐 '플래티넘(백금색 동전)'을 몇 개 얻은 것에 입을 쭉 늘리며 웃었다.

디 앱솔브의 화폐는 페이, 실버, 골드, 플래티넘 순으로 그 가치가 높아진다. 100페이가 1실버이며 100실버가 1골드, 마지막으로 100골드가 1플래티넘이었다. 1플래티넘만 해도 중수들은 벌벌 떠는데 천령은 그것을 일곱 개나 자신에게 준 것이다.

"히히. 그럼 먼저 상점으로 가야겠네."

씰은 이미 얻었다. 형이 말한 바로는 씰이든 아이템이든 그 착용에는 레벨 제한이 없다고 했다. 물론 그에 따른 제약이 꽤 크다고 했지만 기억나지는 않았다. 중요한 것은, '착용에 레벨 제한이 없다'는 것이다.

키리안은 콧노래를 부르며 발걸음도 경쾌하게 상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리에

음. 음.

아리에-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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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 Two - 아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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