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앱솔브-7화 (7/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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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루."

키리안은 즐거운 모습으로 구불구불한 골목을 빠져 나왔다. 노비스 시티의 지도는 공짜로 지급된다. 지도 아이템을 가지고 있으면 반투명한 메모창에 그것이 나타나 길을 안내해 준다.

길치인 키리안이었지만 봉사(奉事)는 아니었기에 그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골목을 나올 수 있었다.

"잡화 상점이… 오호. 여기로군."

키리안은 지도의 편리함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길치인 자신이 그저 종이 지도 보면서 길 일일이 찾느라 처음에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그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고통(귀찮다)을 이곳에선 겪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상점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는 들뜬 기분으로 따뜻한 질감의 나무문을 열고 들어 갔다. 삼면이 천장까지 닿는 진열대로 장식되어 있었다. 이름 그대로 잡다한 아이템들이 종류별로 진열되어 있었다.

"어서오세요!"

키리안이 상점 안으로 들어서자 카운터에서 여성 직원이 웃으며 맞이해 준다. 갈색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친근함을 주는 것이 딱 그 주인에 알맞는 모습이다.

'그러니까… 레어 급의 감정 스크롤이었지?'

그는 천령이 레어 급의 감정 스크롤을 사라던 말을 떠올리며 그녀에게 레어의 감정 스크롤을 주문했다.

"8실버 35페이 되겠습니다!"

노비스 시티는 기본적으로 물가가 싸다. 준비되어 있는 아이템도 급수가 그리 높지 않은 것들 뿐.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감정 스크롤은 이 상점의 유니크가 최고다. 가격 또한 최고 수준. 물론 레어 또한 만만치는 않다.

'으으, 비싸다'

키리안은 자신의 전재산이 겨우 70페이인 것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이내 천령에게 그 전설의 플래티넘을 일곱 개나 얻은 것을 떠올리곤 입이 쭈욱 벌어졌다.

"여기 있습니다아!"

벌어지는 입을 겨우 간수한 키리안은 인벤토리에서 백금색의 반짝거리는 플래티넘을 하나 내밀었다.

"1플래티넘 받았습니다. 잔돈은 99골드 91실버 65페이 되겠습니다~!"

활달한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키리안의 손에 쥐어진 것은 붉은 리본에 묶인 둘둘 말린 양피지 하나와 묵직한 돈 주머니 세 개 였다. 각각 골드, 실버, 페이가 담긴 주머니다.

"감사합니다."

키리안은 다시 벌어진 입으려 고개를 꾸벅 숙이곤 밖으로 나왔다. 뒤에서 '안녕히 가세요~!'라고 외쳐주는 소리에 기분은 더욱 업된다.

"자 그럼… 그래! 저기로 갈까나."

어디서 스크롤을 사용할까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키리안의 눈에 한적한 공원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망설임없이 그곳의 비어 있는 벤치에 앉아 왼손에 스크롤을, 오른손에 은청색의 힐트를 들었다.

"음음. 그냥 감정하면 되나? 보자아…. 도움말!"

키리안은 중요한 일을 앞두고 혹시 무언가 잘못될까 싶어 도움말을 보여주는 창을 띄웠다. '헬프'는 예상 외로 자주 쓰이는 단어라 '도움말'이 명령어가 되었다.

[띵-!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청명한 종소리와 함께 반투명한 메모창이 떴다. 궁금한 것을 물으면 메모창에 글이 뜨고 무언가 더 필요하면 목소리만 들리는 도우미가 도움을 준다.

"감정 스크롤의 사용, 상징물의 봉인 해제."

[띵-! 검색 완료 했습니다.]

키리안의 말이 끝난지 3초도 지나지 않아 메모창에 설명글이 주욱 떴다. 키리안은 그 창을 크게 키운 뒤에 천천히 읽어 보았다. 예상 외로 꼼꼼한 성격이다 키리안은.

[감정 스크롤의 사용.

아이템이나 씰과 마찬가지로 사급(1~20), 삼급(21~50), 이급(51~80), 일급(81~100), 레어(101~150), 유니크(151~250), 갓(251~??)으로 나뉜다.

등급에 따라 그와 같거나 이하의 아이템, 상징물을 감정할 수 있다.

감정 스크롤을 들고 '감정'이라 말하면 감정 스크롤이 빛날 것이다. 빛나는 스크롤을 감정하고 싶은 아이템에 갖다대면 감정할 수 있다.]

"흐응. 간단하군. 그럼 다음은…"

[상징물의 봉인 해제.

일단 기본적으로 그것이 감정이 된 상태여야 한다. 감정이 되지 않은 상태라면 먼저 감정 스크롤을 사용해서 감정을 마친 뒤 봉인 해제에 도전하도록.

봉인 해제는 별로 어렵지 않다. 그저 상징물을 들고 '앱솔브'라고 말하면 된다.]

"이것도 간단하잖아. 그럼 스크롤을 사용해 볼까나~"

키리안은 감정과 봉인 해제가 생각 이상으로 쉬운 것에 즐거워하며 스크롤을 들었다.

"감정!"

설명대로 명령어를 말하니 스크롤이 빛나기 시작했다. 밝은 백색으로 빛나는 그것을 오른손에 든 은청색 힐트에 갖다댔다.

파아아앗-!

밝은 빛이 뿜어지며 잠시 키리안의 눈을 멀게 했다.

빛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그라들었고 키리안은 회복된 시력으로 눈 앞에 뜬 반투명한 메모창을 볼 수 있었다.

[감정 실패.]

"…엥?"

감정이 실패했음을 나타내는 알림말. 키리안은 예상 외의 메모창에 잠시 당황해 버렸다. 천령은 분명히 레어급의 스크롤이면 될 거라고 했는데…

키리안은 잠시 이 사태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감정 스크롤의 등급이 낮아서' 실패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럼 또 사러 가야 되는 건가? 우우 돈 아깝게스리."

그는 잘못 가르쳐준 천령에게 궁시렁대며 다시 상점으로 가 이번엔 유니크 감정 스크롤을 사왔다. 자그마치 13실버. 키리안의 궁시렁거림이 조금 더 심해졌다.

"자 그럼 다시 한 번… 감정!"

파아앗-!

스크롤이 아까와 같이 빛을 발했다. 키리안은 그것을 힐트에 가져갔다. 그리고 터져나오는 빛. 이번에도 그것은 잠시 머물다 허공에 녹아들어 흩어졌고 반투명한 메모창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감정 성공.]

"좋았으~! 그럼 확인해 보실까?"

감정 성공을 알리는 작은 메모창을 치우고 그 뒤에 있는 조금 더 큰 메모창을 살펴 보았다.

[이름 : 아리에(女)

상징물 : 광검(光劍. 狂劍) 위시 에이전트(Wish Agent)

클래스 : 위시 에이전트(Wish Agent)

등급[레벨] : 유니크(Unique)[Lv.152]

특수 스킬 : 세인트 블레이드(Saint Blade)]

"우, 우오오오옷!"

키리안은 유니크, 레벨 152의 아리에의 정보를 보며 자신도 모르고 해괴한 감탄사를 내뱉고 말았다. 다행히 주변에 유저들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속된 말로 쪽팔릴 뻔 했다.

"후, 후후후…"

그는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유니크라니! 그의 형인, 그러니까 이곳에선 카디안이라 했던가? 그의 형이 지닌 씰의 레벨이 40정도라 했다. 그것만 해도 그에겐 아득한 위의 것이었는데 자신에게 들어온 씰의 레벨은 자그마치 152이었다.

"후후. 그럼 소환해 볼까나?"

그는 들뜬 목소리로 은청색 힐트를 잡았다. 그리고 외쳤다.

"앱솔브!"

자신만만하게 외쳐진 봉인 해제의 명령어. 키리안은 곧 황홀한 빛무리와 함께 씰이 모습을 나타낼 것을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휘이이잉-

그저 차가운 바람만 불 뿐이었다.

"아, 아레…?"

정말 주변에 유저가 있었다면 열일곱 소년 키리안, 그대로 과다 쪽팔림 현상(?) 덕분에 기절했을 상황이었다.

"뭐, 뭐야 이거!"

키리안은 당황하며 다시 외쳤다.

"앱솔브!"

휘이잉-

마찬가지였다. 힐트는 그저 매혹적인 은청색 빛만을 뿌릴 뿐 키리안의 말을 완전히 드셔버렸다.

"왜 이러는 거야아!"

키리안은 힐트를 짤짤 흔들어 보았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그는 모르고 있었지만 '자격 레벨'이라는 것은 상당히 큰 것이다. 30이상 차이가 나는 레벨. 소환에 제대로 응할 리가 없는 것이다.

너무나 커다란 레벨 차이. 절대로 소환될 리가…

파아아앗-!

있었다. 결국 키리안이 흔들어대는 것을 참지 못했는지 힐트는 그만하라는 듯 은청색 빛을 뿌렸고 그 빛은 하나의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 빛을 그대로 유형화한 듯 너무나 깨끗하고 아름다운 은청색의 머리카락이 허리 어림까지 흩날리는 키리안 또래의 소녀. 그녀는 무심한 푸른 눈동자로 키리안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 아레?"

그는 다시 한 번 당황한 듯 그녀를 쳐다 보았다. 아름답다. 본래 가상현실게임에서의 NPC나 이런 류의 캐릭터들이야 그 아름다움이 평균 이상이었지만 이 정도면 그 이상의 이상이다.

"……."

그녀는 말 없이 키리안을 응시하고 있었다. 부담스러운 정적. 키리안은 분위기 쇄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아, 안녕?"

"……."

아리에(로 추정되는)는 말이 없었다. 무언가 상당한 압박감이 느껴진다.

부담스러운 분위기로 시간이 흘러갔다. 키리안에겐 억겁과도 같은 시간. 그가 결국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어디론가 달려나가 버리기 일보 직전, 드디어 아리에의 작고 붉은 입술이 열렸다.

"그래. 약속은 약속이니까. 이름이… 키리안이구나. 일단은 반갑다고 해두지. 내 이름은 아리에. 바꿀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혹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일찌감치 접어주길 바래."

"아, 아 예."

기묘한 만남. 그와 아리에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 되었다.

아리에

룰루루..힘듭니다. 힘들어요. 하늘 아래 인간의 눈으로 높디 높은 하늘, 그 위의 하늘을 요새는 보고 있답니다.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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