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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층 전력을 강화한 후인지라 둘은 조금은 여유로운 모습으로 필드를 걷고 있었다. 키리안은 가끔 등장하는 페니들을 상대로 이연격을 연습했다. 말 그대로 두 번 연속으로 빠르게 쳐내는 기술 이연격. 사실 기술이라 부르기에도 창피한 것이었지만 키리안은 마냥 좋다는 듯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마법진은 이제 조금만 더 걸어가면 나타날 것이다. 아리에는 용케도 페니크가 나타나지 않자 운이 좋다고 생각하며 다시 그의 곁에 붙으려 했다. 그때였다.
쉬익-!
무언가 날아오는 소리. 아리에의 날카로운 감각이 그것을 위험한 마력 덩어리라는 것을 알도록 했다. 그리고, 그녀의 몸이 폭발적인 속도로 키리안의 옆으로 이동했다.
'사이 배리어(Psi barrier).'
순식간에 키리안의 곁에 선 아리에가 마력 덩어리가 날아오는 방향으로 왼손을 내밀었다. 곧 그녀의 손 앞으로 푸른빛의 반투명한 막이 생성되어 방패의 형상을 취했다.
파지지직-!
서로 다른 두 가지의 마력이 충돌하며 전류가 엉키는 듯한 소음이 발생했다. 검은 덩어리는 곧 소멸했고 아리에 또한 사이 배리어를 해제했다. 지속적으로 키리안의 마력을 잡아먹는 것을 불필요하게 시전하고 있을 수는 없다.
"뭐, 뭐야?"
키리안은 순식간에 자신의 앞에 나타나서 실드를 펼친 아리에를 보며 얼떨떨해 했다.
"누구나 레벨 50이 넘으면 배울 수 있는 특수 스킬 중 하나야. 그보다, 드디어 납셨군. 노비스 플레이어 킬러 페니크."
아리에의 감각이 날카롭게 주변을 훑으며 숨어있는 존재를 찾았다. 그리고 곧 그녀의 표정이 굳어졌다.
"다섯? 힘들겠어."
둘이라도 위험한데 자그마치 다섯이다. 더불어 페니들 역시 십여 마리 정도 숨어 있었다. 누군가 몰아놓은 것이 틀림 없다. 어쩐지 지금까지 페니크가 나타나지 않는다 싶었다.
본래 능력의 반의 반만 발휘할 수 있어도 수호검기로 순식간에 쓸어버리겠지만 지금으로썬 수호검기를 사용한다쳐도 데미지조차 제대로 줄 수 없다.
"아리에?"
키리안은 당황하며 아리에를 보았다. 그녀는 레이피어를 꺼내들고는 언제라도 튀어나갈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에 키리안 역시 위험함을 느끼고서는 검을 고쳐 잡았다.
"페니크가 다섯이야. 동쪽에 셋 남쪽에 둘이야. 그리고 페니들 역시 사방에 숨어 있어."
"으, 으엑."
그는 이미 마력 덩어리의 살벌함을 보았기 때문에(막지 못했으면 게임 오버 당했을 것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무시무시한 마력 덩어리를 쏘아낼 수 있는 녀석이 다섯이라는 아리에의 말에 표정이 구겨졌다.
아리에는 조심스러운 모습으로 키리안의 곁으로 이동하며 입을 열었다. 지금은 마나 등이 필요 없는 '피어(Fear)'로 몬스터들의 움직임을 제지하고 있었지만 놈들이 적응을 끝내면 공격을 시작할 것이다. 모든 능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본래의 위력을 발휘하길 바라는 것은 무리다.
"키리안. 내가 신호하면 바로 앞으로 달려. 알았지?"
"예썰."
키리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며 아리에는 그에게서 마력을 끌어왔다. 유니크에 오르지 못했다면 그냥 게임 오버 당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지만 적어도 희망은 있다.
아리에의 몸 주변으로 푸른빛의 마력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것은 시간이 지나며 점점 날카로운 기운을 품은 무형의 검기(劍氣)가 되어 그녀의 몸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수호검기(守護劍氣)!'
파밧-!
검기가 기운을 분출하기 시작하자 아리에는 손을 높이 들었다가 아래로 내리치며 소리쳤다.
"지금!"
아리에의 커다란 목소리가 울려퍼지자 키리안은 달리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검기 역시 몬스터들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파지직-!
검은 마력의 덩어리와 마력은 없는 검은 덩어리들이 푸른빛의 검기와 충돌하며 상쇄되기 시작했다. 아리에는 검기들이 페니와 페니크의 공격과 추격을 저지하는 것을 보며 키리안과 함께 달렸다.
슈앙-!
"으에엑!"
달리는 키리안의 옆을 검은 마력 덩어리가 탄환처럼 스쳐 지나갔다. 기겁하는 그의 목소리. 아마 검기를 뚫고 날아온 마력 덩어리 중 하나일 것이다.
"여기 싫어!"
아리에는 표정을 구기며 말하는 키리안에게 조용히 답해 주었다.
"혼자라면 오지도 못했을 곳이야. 그나마 내가 있어서 올 수 있었던 곳이라구."
"그건 그렇네."
키리안이 볼을 살짝 긁적이며 말했다. 처음 소환한 후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조금은 가까워진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