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아리에가 사악한 생각과 함께 쿠루를 상대할 때였다. 키리안은 빠르게 떨어지는(아리에가 보면 한숨만 나온다. 본래 속도의 1/10인데 이 정도라니) 마나에 마나 포션을 꺼내 한 모금 마시며 유하에게 말했다.
"유하야."
"예."
무언가 허전한 느낌의 대답이었다. 그리고, 당연한 것이었다. 인공지능의 한계랄까. 키리안은 아리에 덕분에 잠시 잊었던 인공지능에 대한 느낌을 다시 찾았다. 그래, 잠시 잊고 있었다. 아리에가 특이한 거다. 이것이 본래 인공 지능의 모습이다.
'그러고보면, 아리에…… 너무 인간적이잖아.'
정말 대하다보면 인공지능이라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활달하고 미묘한 감정까지 표현할 줄 아는 씰이었다. 무언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굳이 깊게 파고들 필요는 없다. 초과학의 세상에서 소설 같은 일이 일어날 리는 없으니까.
"음, 특기가 뭐야?"
스킬을 묻는 것이었다. 정보를 보면 간단하지만 그냥 말을 걸어 보고 싶었다.
"속박(束縛)의 술(術)과 치유(治癒)의 술(術)입니다. 그리고 미약하지만 검을 쓸 수 있습니다."
"오오, 딱 좋은데?"
키리안은 감탄했다. 속박의 술로 쿠루의 발을 묶고 자신이 공격한다면 그만큼 좋을 수가 없다. 더불어, 회복까지 가능하다니 이만큼 좋은 조건도 드물다. 그리고… 검이라?
유하의 스킬창을 불러왔다. 그녀의 말대로 속박의 술과 치유의 술의 아이콘이 있었고 기본 스킬 쪽에 소드 마스터리(Sword mastery)가 존재하고 있었다.
'…아레? 검? 근데, 검이 없는 걸? 으억, 그러고보니?'
유하에게 소드 마스터리가 있는 것을 보고 그녀를 살펴본 키리안. 어디에도 검은 보이지 않았다. 더불어… 유하의 장비도 맞추지 않고 그대로 와버렸다. 분위기에 휩쓸려 버린 것이다.
'후, 후미…'
키리안은 잠시 머리를 벅벅 긁더니 '에라 모르겠다~'라는 참으로 무책임한 결론을 내리곤 유하에게 말했다.
"그럼, 내가 저 놈을 공격할 때 적당히 도움 좀 줘."
"예."
"좋아! 그럼 시작이다!"
아리에 쪽을 보니 쿠루가 지쳐서 가쁜 숨을 내쉬는 것이 보였다. 이젠 적당히 나서도 될 것 같다.
스르릉-!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멋드러지게 검을 뽑는 키리안. 뒤에서 '멋있어요 기사님~!'이라고 소리쳐 주기만 한다면 참으로 멋진 그림이 될 것 같다.
탓-!
키리안이 검을 뽑아들고 아리에에게 시달리고 있는 쿠루에게 달려갔다. 쿠루는 짜증나는 아리에는 상대하던 중 다른 놈팡이 유저가 끼어들자 분노하며 몽둥이를 휘둘렀다.
"으히힉!"
놀라는 키리안. 회피하려 했지만 속도를 봤을 때 살짝 무리일 것 같다. 그때였다.
"마나여, 그대의 힘으로 존재를 묶어라. 속박."
유하의 나직한 목소리가 키리안의 귀에 들린 뒤 쿠루의 몽둥이가 어딘가에 걸린 듯 움직임을 잠시 멈췄다. 그 사이 빠져나온 키리안. 유하의 구원이었다.
"멋지다 유하!"
키리안이 좋다는 듯 팔을 휙휙 흔들었다. 유하는 말 없이 살짝 웃었다.
"크, 크와아아아!!"
쿠루는 막 희생양 하나를 만들 수 있었던 차에 갑자기 몸이 굳어버리고 목표는 좋다는 듯 웃자 더욱더 열이 올랐다. 그 결과, 막가파의 상태로 돌입했다.
"우, 우와아아아!"
무자비하게, 그리고 무식하게 날아오는 몽둥이에 키리안이 기겁하며 몸을 피했지만 왼팔을 얻어 맞았다. 경갑을 차지 않은 어깨 아래였기에 팔이 저릿해져 왔다. 그나마 검을 쓰는 오른팔이 아닌 것이 다행이다.
"제, 젠장 쿠루 녀석!"
지친 상태에서 이 정도라니. 과연 레벨 차이가 심하긴 심한가보다. 다시 한 번 날아오는 몽둥이. 이번엔 아리에가 옆을 치고 들어왔다. 쿠루가 신경질적으로 몽둥이를 그쪽으로 돌렸다.
'기회다!'
디 앱솔브 생초보 키리안. 하지만 실력은 죽지 않았다! 그의 몸이 앞으로 튀어나가며 비어버린 몸통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이연겨어억!"
파팟!!
쿠루의 몸을 강타하는 키리안의 검면! 강력한 충격에 지쳐있던 쿠루는 그대로 저 멀리 날아가 처박혔고 HP 제로가 되어 흐릿하게 변해 사라졌다.
[띠딩-! 레벨이 8로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업이었다. 페니크 등을 잡아온 것이 있었기에 쿠루 한 마리로 바로 레벨 업한 것이다.
"구우웃!"
키리안이 몸을 부르르 떨며 능력치를 분배했다.
능력치 분배를 끝낸 뒤에 움직이려는 차였다. 유하가 가까이 다가와 그의 왼팔을 잡았다. 갑작스런 스킨쉽에 그가 당황했다.
"마나여, 그대의 자애로움으로 존재를 치유하라. 치유."
파아앗-
유하가 나직히 주문을 외우자 허공에 작은 빛이 생성되더니 그녀가 잡은 키리안의 팔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찢어진 옷 사이로 드러난 시퍼런 멍이 점점 흐릿해지더니 이내 사라졌다.
"치유의 술이라… 주인님. 씰 한 번 제대로 골랐네. 나는 무지막지한 공격 스킬 뿐이라 포션을 바리바리 싸들고 온 건데 이젠 한 걱정 덜었네."
아리에가 다가오더니 유하를 보며 말했다. 그녀의 표현을 빌려 '무지막지한 공격 스킬' 때문에 회복 계열에 투자를 전혀 하지 않았기에 일부러 포션을 그렇게 싸들고 온 건데 이렇게 회복이 가능한 씰이 곁에 있게 되었으니 그 위험성이 현저히 줄어들게 된 것이다.
"좋아! 그럼 다시 사냥이다아!"
왼팔의 통증이 사라지자 키리안이 왼팔을 휘둘러대며 힘차게 걷기 시작했다. 시작이 상당히 좋다. 시작이 반이라 했으니 일의 반도 벌써부터 좋다. 그래, 해석 나름이다. 오늘도 힘차게!
던전을 향하여!
건너 뜁니다아~
****
던전을 향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