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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이이익-
길고 긴 계단을 걸어 내려와 도착한 3층은 1, 2층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흐릿한 불빛 아래 존재하는 음침한 동굴 형식이었던 곳에 멈춰 버린 광차들과 철로, 뿌옇고 더운 온기를 가득 품은 연기들이 여기저기서 새어 나오고 있어 더욱 불안한 느낌이었다.
"으음, 연기에 몬스터가 숨어버리면 찾기 힘들겠다."
키리안의 평에 아리에가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 아무리 1차 전직이라도 아직 감각은 형편없지. 격하게 움직이지 않는 이상 좀 떨어진 연기 속에 몸을 가린 몬스터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원거리 공격에 당해 버리는 거야. 그런 면에서 넌 행운아지. 내가 있으니까 말이야."
아리에가 '흐흥~'하곤 웃었다.
그녀의 말대로 키리안은 정말 행운아였다. 1, 2층의 끝에 존재하던 원거리 몬스터들과 더불어 아베스 던전 전체에서 원거리 몬스터는 저주의 대상이었다. 그야말로 황금지대인 사냥터로 가는 길을 막는, 장난스럽게 말해 '겜생의 태클'인 녀석들. 페니크와 마찬가지랄까?
대부분의 유저들은 놈들에게 여러번 죽음을 겪고서야 운 좋게 4층에 도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데 키리안은 아리에라는 씰의 초감각과 사이 배리어 덕분에 원거리 녀석들의 공격은 무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맘 같아선 그대로 던져두고 회피 훈련이나 시키고 싶지만… 그거야 내가 레벨만 되찾아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으니까 보류."
현재 그녀의 레벨은 177. 여전히 한숨만 나오는 상태다. 그나마 스킬 레벨이 그대로인 것을 위안으로 삼고 있는 상태다.
"연기 속을 걸을 때 특히 조심해. 원거리 뿐만이 아니라 블러디 핸드(Blood hand)라는 손밖에 없는 기형아 녀석이 그대로 허리를 날려 버릴지 모르니까."
블러디 핸드에 대해 말하면서 그녀는 살짝 이를 갈았다. 키리안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그녀 역시 아직은 순수했을 때(?) 4층의 해마 녀석, 블루 미라일을 잡기 위해 이곳을 여러번 들락거렸고 그 중간중간 블러디 핸드에게 당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나오는 녀석들은 내가 모조리 날려 버릴 테니까 조금은 안심해도 돼."
아리에는 그렇게 말하곤 왼팔에 찼던 해룡의 비늘에서 예의 그 푸른 물빛의 검을 뽑아 들었다. '해룡의 검'이란 녀석이다. 레드 슬레이어와는 반대되는 속성.
"척보면 알겠지만, 여기 놈들은 화염 속성이야. 다음 층엔 몸 색깔만 다른 푸른색의 수속성 몬스터가 추가되고, 3존(zone)엔 변종 녀석들이 있지. 그 놈들이 원거리야. 더불어 이번 층부턴 지나야 되는 존이 4존에서 6존으로 늘어나게 되는데, 4존부터는 짬뽕으로 모조리 튀어 나와."
"으에에… 지겹겠다."
지금까지 도합 여덟 번 터널을 통과해왔다(마지막은 긴 계단). 근데 여기부턴 그것을 층마다 두번 더 해야 한다. 아베스 던전의 보스는 5층에 있다고 하는데, 잡으러 가려면 상당한 귀찮음을 감수해야 할 것 같다.
"자자, 주의 사항이야. 마족의 손에 붉은 건틀렛을 끼고 있는 기형 몬스터의 연기 속 기습을 조심하고 3층에선 변종 녀석들의 원거리 공격을 조심해. 유하는 지금부터 '관찰의 눈'을 띄워놓도록 해. 그리고 이 녀석들 언데드의 속성도 가지고 있으니까 파사의 태도가 쓸모 있을 거야."
"존재를 관찰하는 매의 시선. 관찰의 눈."
파아앗-
유하가 눈을 살짝 감고 나직하게 주문을 외우자 일행의 주위에 백색의 하얀 구체 몇 개가 떠올라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했다. 관찰의 눈. 주변에 적이 다가오면 밝게 빛을 내며 그것을 향해 달려드는 것이다. 공격력은 정말 저조하지만 정찰과 견제용으로는 정말 유용한 스킬이었다.
"그럼 간다."
관찰의 눈을 주변에 두르고 안개 지대나 다름 없는 곳을 걷기 시작했다. 몇 발짝 꼴로 연기 속을 지나야 하니 정말 불편했다. 더불어 감각까지 마비시키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것 때문에 초보들이 많이 죽었다.
타박타박-
시야가 가려진 던전. 보이는 건 연기 뿐이요, 들리는 건 차분한 발소리 뿐이다. 어찌된 일인지 몬스터가 튀어나오지 않아 이리저리 꺾인 길을 아리에의 안내에 따라 막힘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으음, 몬스터가 없네에?"
그동안 오면서 꽤나 많은 몬스터들을 상대했었는데 이번 존에선 몬스터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운이 좋다고 하기엔 지나치게 없다.
"두 가지 경우야. 하나는 고수가 지나가면서 모조리 쓸어버린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우리가 온 것, 그리고 하나는… 싫은 경우지만 어느 삐리리한 유저가 몬스터를 처리하지 않고 열심히 달려서 출구까지 골인하는데 성공한 거야."
"서, 설마……"
"그래, 아마 출구에 득실득실 거리겠지."
키리안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그래도 몇 개의 게임들의 정수를 맛 본 키리안이다. 여러 상황을 많이 겪어본 그였고 아리에의 말을 이해 못할 리가 없다.
"으음… 그럼 어떻게 해? 한 번에 쓸어버리는 건 무리잖아."
그도 아리에도 대범위의 강력한 스킬을 지니지 못했다. 아리에에게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쓴 적이 없는 걸로 봐서 없다고 여겼다.
"흐응… 주인님. 마나 포션 준비하면서 따라와."
아리에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걷기 시작했다. 키리안은 무슨 일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일단 그 뒤를 따라 걸었다. 무언가 수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다시 길을 따라 걷기를 3분 여. 아리에가 사거리 앞에서 멈춰섰다.
{주인님. 잠시 기다려. 한 번 살펴보고 올게.}
키리안에게 전음을 남기고 살금살금 걷기 시작하는 아리에. 벽에 붙어서 이동한 그녀는 우측의 길 쪽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가 급히 거두었다. 키리안을 돌아보는 그녀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다.
"어때?"
아리에가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엄청나게 많아. 적어도 서른은 되겠어. 본래 레벨이라면 그대로 위시 에이전트로 쓸어버리겠지만… 지금은 무리지."
"그럼 못 지나가는 거야?"
키리안이 불안해하며 물었다. 지금까지 들인 시간이 얼마인데 돌아가야 한다면 정말 심한 낭비다.
"으음, 주인님. 마나 포션(상) 가지고 있지?"
아리에의 질문에 키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급은 이미 다 써버렸고, 레벨이 레벨인지라 주로 쓰는 건 중급으로 대체하고 비상용으로 상급을 다섯 병 인벤토리에 넣어놨었다.
키리안이 인벤토리에서 상급의 마나 포션을 꺼내자 아리에가 다시 말했다.
"지금 미리 마셔 둬. 그리고 유하는 파사의 태도를 준비해. 몰려 있으니까 효과는 극대화 될 거야. 일단 내가 사이 배리어를 전개할 테니 유하는 파사의 태도를 날려. 놈들이 그것에 타격을 입으면 내가 레어 스킬(Rare skill)을 사용할게."
"응? 레어 스킬?"
키리안이 그녀의 말에 '레어 스킬'이 포함되어 있자 의아해하며 물었다. 레어 스킬. 그것은 초고수 전용의 최강 스킬들이다. 초고급의 연계 퀘스트들을 깨야 겨우 하나 정도 얻을 수 있는 스킬인 것이다.
아리에는 놀라며 묻는 키리안을 보며 옅게 웃었다.
"뭐… 나한테 있는 건 하나 뿐이야. 레이 녀석. 다른 씰들은 여럿 배운 거, 겨우 나한텐 하나 밖에 주지 않았다구. 위시 에이전트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파업해 버렸을 거야."
다른 유저가 들으면 '씰이 파업?!'이라 소리치며 그대로 폭소하며 고꾸라졌을 대사였지만 키리안은 그저 '오호~'하고는 넘어갔다.
"자, 그럼 시작하자. 타이밍이 중요해. 주인님. 내가 사이 배리어 전개하면 그대로 마나 포션 마셔야 해?"
"응. 근데, 실드 같은 거 쳐놓은 상태에서 공격 마법이 통과할 수 있어?"
당연한 질문이었다. 일반적으로 실드 안에서는 공격 마법을 쓸 수 없다. 써봐야 실드에 튕겨져서 괜히 자신만 타격을 입을 뿐이었다.
"후후. 괜히 스페셜 스킬인 줄 알아? 내부에서도 마법 시전 가능해. 사이 배리어만의 특권이지. 괜히 베스트 3에 드는 스킬이 아니라구."
"좋았어! 그럼 시작!"
이로써 걱정 끝. 키리안은 마나 포션을 꺼내 들고 대기를 탔고, 유하는 퇴마봉을 쥐고 파사의 태도를 준비하고 있었다. 프리 캐스트, 이동 중 주문을 외울 수 있게 하는 패시브 스킬 덕분에 지금 주문을 외워둘 수 있는 것이다. 어중간한 능력치를 지닌 유하의 가치를 높여주는 스킬이다.
파아앗-
퇴마봉이 성스러운 백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주문 완료. 이제 시작이다.
"가자!"
탓-!
모두가 사거리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정면에 보이는 커다란 터널. 그리고 그 앞에 우글우글거리는 붉은 건틀렛을 낀 커다란 손과 붉은 포대를 뒤집어 쓴 듯한 커다란 유령들. 뻥 뚫린 구멍 속에서 빛나는 노란 눈이 꽤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오오오-!!
입도 없는 녀석들이 커다란 포효를 내질러 공기를 진동시켰다.
"사이 배리어(Psi barrier)-트리플(Triple)!"
파바밧-!
그녀가 왼손을 내뻗으며 소리치자 푸른빛의 막이 생성되어 그들을 막아섰다. 세 겹으로 펼쳐진 그것이 든든한 느낌을 주었다.
파치칭-!
다가오던 것들이 그것과 부딪치며 스파크를 튀겼다. 스파크에 비례해서 아리에의 표정이 점점 더 힘겨워졌다. 오래 지난 것 같지도 않은데 벌써 하나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유하야, 쏴!"
그것을 보고 다급하게 외치는 키리안. 곧 유하가 앞으로 나서며 퇴마봉을 휘둘렀다. 아니, 퇴마봉이 아니라 단검이었다. 발검(拔劍)하듯 유하는 퇴마봉에 숨겨진 검을 뽑았던 것이다.
"파사(破邪)의 태도(太刀)!"
파아아아앗-!!
낭랑한 외침과 함께 휘둘러진 검에서 엄청난 밝기의 빛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사(邪)를 멸하는 태도(太刀)의 모습으로 쏘아져 몬스터들을 강타했다.
크오오오-!!
비틀거리며 물러나는 몬스터들. 그리고 풀썩 주저앉는 유하. 키리안이 주저앉은 유하를 일으켜 세워 주었다.
"헤에, 마나 소모가 장난이 아니지만 데미지도 엄청난데?"
마나 포션 덕에 빠르게 마나가 차오르지 않았다면 키리안도 주저 앉았을만큼 엄청난 마나 소모였다.
"다행히 마나는 적당히 맞네. 주인님, 그럼 잘 봐 둬."
아리에는 자세를 풀고 오른쪽에 걸려 있는 위시 에이전트를 뽑아 들었다. 밑부분을 툭 친 것으로 소드 벨트에서 튕겨지는 위시 에이전트. 꽤나 폼나는 모습이었다.
은청빛 힐트를 오른손에 쥐고 그녀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여섯 힘의 정점. 그 정점의 중심에 존재하는 근원의 빛. 지금 나의 검이 되어 강림하리라. 세인트 블레이드(Saint blade)!"
주문과 함께 움직이는 그녀의 왼손. 그것은 육망성을 그리고 있었다. 주문이 완성되자 흐릿한 모습의 그 육망성은 밝게 광채를 발하기 시작했다.
파아앗-!
아리에는 그 육망성의 중심으로 위시 에이전트를 넣었다. 위시 에이전트가 삽입되자 육망성은 더욱더 밝은 빛을 띠었고, 위시 에이전트가 빠져 나오자 빛은 그것에 흡수되듯 움직였다.
파지직-!
힐트 뿐이던 위시 에이전트에 검날이 생성되었다. 빛의 검날. 위시 에이전트는 광검(光劍)이 된 것이다.
"주인님. 제발 견뎌 주라."
아리에는 키리안의 마나가 엄청나게 소모된 것을 느끼며 빠르게 몬스터들에게 쇄도해 들어갔다. 오래 버틸 수는 없다. 후에야 이것을 그냥 검 쓰듯 쓸 수 있는 날이 오겠지만 지금은 1분 1초가 아까울 정도로 키리안의 마나는 빠르게 소모되고 있었다.
캬아아악-!
몇몇 몬스터들이 그사이 어느 정도 몸을 회복한 듯 사이 배리어 밖으로 나온 아리에를 노리고 달려 들었다.
"위시 에이전트를 깨운 이상 너희들은 내 상대가 아니야! 블레이드 블래스트(Blade blast)!"
아리에는 크게 소리치며 검을 내리쳤다.
콰과과광-!!
빛의 폭풍이 그대로 쏘아져 나가며 몬스터들을 휩쓸어 나갔다.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쓸려나가는 몬스터들.
"하아, 하아. …!"
숨을 몰아 쉬며 빛의 검을 흩어버린 아리에는 우측에서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리자 볼 것 없이 몸을 날렸다.
"아직 남아 있었나? 아니, 젠(Regeneration의 약자. 게임 내에선 몬스터가 다시 생성되는 것을 말함)된 건가?"
그녀를 공격한 것은 블러디 핸드였다. 보통 때라면(평균 레벨에 의해 약해진 상태라도) 잽도 안되겠지만 고급 기술을 사용한 뒤라 마나도, 스테미너도 바닥난 상태였다.
캬악-!
다시 달려드는 블러디 핸드. 아리에는 해룡의 비늘을 들어 몸을 가렸지만 소용 없음을 알고 있었다.
"오라 스플리트! 콘센트레이트 오라! 오라 크로스!"
충격에 대비하며 눈을 감고 있던 아리에의 귀 속으로 힘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키리안의 외침이었다.
촤악-!
공기와 함께 생물체를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리에는 해룡의 비늘을 내리고 자신을 구한 키리안을 보았다. 검에 둘러진 기력. 그래, 착각하고 있었다. 키리안은 SP를 사용하지 MP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헥헥. 아리에, 괜찮아?"
연속적인 스킬 사용의 반동으로 꽤나 헐떡거리고 있었지만 다른 피해는 없는 듯 했다.
"흐응, 주인님. 처음으로 무언가 했네?"
"그렇지? 이래봬도 엄청난 검사였다니까."
키리안이 검을 들고 포즈를 잡으며 '냐하하~'하곤 웃었다. 평소라면 이마를 부여잡으며 잡아 끌었겠지만 이번엔 그냥 두었다.
'그러보면… 그 사람이랑 닮았네.'
레이의 고백을 거절하게 만들었던 그. 조용히 키리안을 응시하고 있자니 기억 속에 묻어 두었던 그가 떠오른다.
'뭐, 지금 추억을 떠올려봐야 변하는 건 없잖아.'
아리에는 고개를 살짝 흔들곤 자리에서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본래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자자, 그만 웃고 가자."
키리안의 목에 팔을 걸고 그대로 터널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으갸갸갸~'하는 웃기는 비명 소리를 들려주는 키리안. 그래, 지금 이것도 괜찮잖아?
디엔트 레이(Dient Ray)
젠장- -;;
소제목 글자 제한 땜시 낭패- -;;;
앞으론 내용 안에서 소제목을 쓰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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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 Seven - 디엔트 레이(Dient R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