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앱솔브-31화 (3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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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벅터벅-

어둡고 기다란, 조용한 터널 속에서 키리안과 아리에, 유하의 조용한 발자국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기다란 터널을 지나며 체력 등을 채웠기에 조용했지만 그 속엔 힘이 담겨 있었다.

"오, 빛이다~"

키리안은 새로운 존으로 들어서는 문이 눈 앞에 보이자 룰루랄라 기분 좋게 걸음의 속도를 높였다. 그 뒤를 아리에와 유하가 뒤따랐다.

"즐거워서 좋겠네."

아리에는 겨우 다른 존에 온 것 가지고 즐거워하는 키리안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자신도 겪어본 만큼 그 기분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미지의 장소를 탐험하는 즐거움. 그것을 그녀 또한 알고 있었다. 다만, '고수'가 되면서 그 감정을 이젠 느낄 수 없기에 키리안의 반응이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행은 다음 존에 도달할 수 있었다. 바뀐 것은 오직 길 뿐이었다. 그 외의 모든 배경이 동일했다. 아니, 다른 게 하나 있었다. 1층 4존부터는 보지 못했던 유저가 있었다.

"아레, 어디서 봤던 사람 같은데…?"

뒤돌아 선 상태로 몬스터와 전투 중이라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커다란 깃털이 달린 모자가 눈에 익었다.

"음…음…"

고민하는 키리안. 떠오를 듯 떠오르지 않는 '깃털 달린 모자를 쓴 유저의 정체'가 그의 짜증을 유발했다.

"바보 주인님. 해룡의 비늘을 팔았던 상점 주인이잖아."

'우이이이이!!!'하는 소리를 내는 키리안이 이내 답답했던지 아리에가 한숨을 쉬며 답을 말해 주었다.

"맞다! 그 상점 주인이었지!"

두 손 바닥을 짝 소리가 나게 치며 속 시원하다는 듯 소리치는 키리안. 그는 궁금증이 풀리자 느긋하게 전투를 하고 있는 그, 디엔트 레이를 살폈다.

그의 곁에는 신비한 금색의 빛이 감돌고 있었다. 반투명하고 깨끗한 그것은 자연의 빛을 닮아 있었다. 그 빛은 유저의 파트너로 보이는 작은 백색의 작은 여우의 네 발에도 머물러 있었다. 번개의 힘을 상징하는 듯 그가 상대하고 있는 몬스터를 연신 몰아 세우고 있었다.

푸른 포대를 뒤집어 쓴 녀석이었다. 허공에 둥둥 떠있는 푸른빛의 꼭 쥔 주먹이 귀여운 듯도 하지만 뻥 뚫린 눈 구멍 속으로 보이는 어둠 속의 노란 눈동자가 호러 분위기를 조성했다.

"프리즈 고스트(Freeze ghost)네."

1층의 붉은색 블러디 고스트와는 색깔과 속성만이 다를 뿐인 녀석이었다. 속성은 물과 얼음. 당연히 번개의 힘에 약하다. 백색 여우는 치와와보다 조금 큰 정도의 덩치를 지녔지만 그 빠른 속도와 뇌전의 힘으로 거인이나 다름 없는 프리즈 고스트를 압도하고 있었다.

"자, 그럼 마지막이다! 약속의 땅을 지키는 푸른 섬광, 분노한 대지를 식히는 달의 숨결, 루나틱 헤븐!"

순식간에 외워진 주문. 그리고 백색 여우가 잔영을 남기며 허공 높이 떠올랐다. 높이 떠오른 작은 여우의 몸에서 백청(白靑)의 은은한 빛이 흘러 나왔다. 그것은 허공에 은은하게 퍼지더니 이내 중심에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응집시켰고, 단숨에 뇌전이 꽂히듯 프리즈 고스트에게 내리꽂혔다.

콰앙-!

강력한 힘을 반증하듯 땅이 움푹 파였고 가뭄난 땅인양 사방으로 갈라져 나갔다. 프리즈 고스트는 당연히 즉사.

"요, 요호……"

키리안은 세인트 블레이드만큼이나 멋지구리한 그 모습에 작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약간은 넋이 나간 그 모습에 아리에가 키리안은 등판을 팡팡쳤다.

"겨우 저거 보고 놀라면 위시 에이전트로 승룡천검세를 펼친 모습엔 아예 기절하겠네. 정신 차려 한심한 주인님!"

왠지 몰라도 퉁퉁 부은 아리에의 모습에 키리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정신을 되찾았다. 나중에 한 번 그 이유를 물어보자는 계획을 세우며 그는 디엔트 레이에게 다가갔다.

"헤에, 대단하시네요."

프리즈 고스트를 작살냈던 유저는 갑자기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자 고개를 휙 돌리며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내 자신의 고객이었다는 것을 떠올리곤 경계하는 표정을 풀었다.

"아, 해룡의 비늘을 사가셨던 유저분이시네요. 블루 미라일을 잡으러 가시던 길이었나요?"

"예 맞아요. 혹시 님도?"

"뭐 일단은 거길 지나칩니다. 던전 보스인 해룡을 잡으러 갈 것이니까요."

던전 보스란 말에 키리안이 다시 '헤에~'하며 감탄한다. 기실 아베스 던전의 해룡은 고수들에겐 '지렁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보잘것 없는 녀석이지만 초보들에겐 가장 처음 볼 수 있는 한 던전의 최고 몬스터였기에 남다른 기분이 드는 것이다.

아리에는 진정한 최강의 몬스터인 드래곤들을 마치 일반 몬스터 사냥하듯 사냥하며 다녔던 만큼 키리안의 감탄에 씨익 웃는 그를 보자니 꽤나 배알이 꼴렸다. 그는 매너 좋게 웃고 있는 것일 뿐이었지만 꼬인 아리에의 시선에는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명색이 그녀의 주인인 키리안이 헤에~거린 것이 상당히 그녀의 기분을 뒤틀리게 한 것이다.

"저기,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디엔트는 대화 중에 다가온 아리에를 보곤 의아해하며 말했다.

"뭔가요?"

그가 존대를 쓴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일반 유저들처럼 씰이라는 이유로 하대를 했다면 아리에는 대화고 나발이고 당장 뒤엎었을 것이다(사실 반말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겨우 인공지능이니까).

"혹시 이전 존에서 몹몰이(몬스터들을 홀로 다수 끌고 다니는 것, 혹은 다수 끌어 모아 놓은 것을 말함)를 하지 않으셨나요?"

아리에의 물음에 그가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이걸로 확인되었다. 그녀를 고생하게 만들고 겨우 블러디 핸드라는 허접한 몬스터에게 당할 뻔한 기회(빠직)를 제공한 존재는 그였다.

"그러니까, '어쩌다 보니'?"

아리에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무표정한 듯 하면서도 한기가 도는 표정. 그리고 번개처럼 들리는 두 손. 그것은 단숨에 디엔트의 멱살을 잡아챘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앙? 어쩌다 보니라고? 이봐, 그것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생한 줄 알아?! 앙? 주인님 아니었으면 블러디 핸드라는 아주 말도 안되는 녀석한테 죽을 뻔 했다고! 앙? 어이어이!"

짤짤짤-

흔들어 재끼는 모습을 의성어로 표현한다면 딱 저 표현이 어울린다. 마치 코믹 만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아리에와 디엔트의 모습에 키리안은 입이 떡 벌어질 상황에서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잠시였다. 그는 곧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곤 아리에의 허리를 잡고서는 뒤로 잡아 끌며 말했다.

"뭐하는 거야아아아! 어서어서 놔아아!"

놀라서 잡아 끄는 키리안의 손길에 아리에가 그제서야 손을 푼다. 키리안은 아리에의 허리를 꽉 잡은 상태에서 불안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혹시 버럭버럭 화를 내면서 아까의 그 무시무시한 스킬을 날리지는 않을까하는 불안감이 그 눈에 담겨 있었다.

"하이고오~"

그는 짤짤짤 흔들린 덕분에 잠시 휘청거렸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정신을 차린 그는 머리를 세게 젓고서야 또렷한 시선으로 키리안과 아리에를 보았다. 그리고 약간은 당황한 모습으로 물었다.

"응? 님. 웬 야릇한 포즈입니까?"

기대했던(?) 대사와는 다른, 아니 상당히 어긋난 그의 질문에 키리안과 아리에는 잠시 이해를 하지 못했다가 이내 통한 듯 자신들의 모습을 살폈다.

약간 야릇하게 가자면, 부드럽게 아리에의 허리를 감고 있는 키리안의 두 손, 그리고 그녀의 오른쪽 어깨에 올려진 키리안의 머리. 뒤로 물러나느라 약간은 기댄 형상인 아리에의 몸. 이거…

'야릇하잖아!'

번뜩 스쳐가는 생각. 그리고 그만큼 빠르게 떨어지는 둘의 몸.

샥-!

마치 헤이스트(Haste)를 시전하고 궁신탄영(弓身彈影)으로 움직인 듯한 눈부신 속도로 둘은 반대방향으로 떨어져 나갔다.

"헉헉."

심하게 당황한 듯한 키리안. 그리고 아예 저 멀리에서 몸을 돌려버린 아리에. 디엔트는 희극적인 이 모습에 다시 쿡쿡 웃었다.

"이거, 볼 때마다 절 웃게 만드시는군요."

"……."

키리안과 아리에는 대답이 없었다.

"뭐, 이것도 인연인데 함께 4층까지 동행하도록 하죠. 안 그래도 혼자 가기엔 심심했거든요."

"그, 그러죠."

아리에가 '안 돼!'라고 소리치기도 전에 키리안이 선수를 치며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여 버렸다. 아리에는 겉으론 말도 못하고 전음으로만 {바보 주인님아아아! 쪽 팔려서 어떻게 같이 다닐 거야아아!}라며, 마치 키리안에게 옮은 듯한 목소리로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아아, 아리에. 처음 등장에 보여줬던 그 차갑고 이지적인 모습은 이미 날아가 버린 듯 하다.

디엔트 레이(Dient Ray)

데길료옹=_=;;

의욕이 안납니다아아아아아아아아..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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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 Seven - 디엔트 레이(Dient 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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