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앱솔브-34화 (34/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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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에가 잠시 무거운 모습을 보인 후 키리안은 꿀꿀한 모습으로 던전을 걸었다. 그는 블루 미라일 7마리를 베어낸 후 형 카디안을 찾을 수 있었다.

백색의 차분한 로브와 함께 검은빛의 지팡이를 든 마법사의 모습. 그의 곁엔 자그마한 악마의 날개를 지닌 흑발의 서큐버스가 보호하듯 서 있었고 앞에는 백색의 성스러운 창과 타워 실드(Tower shield)를 양손에 들고 블루 미라일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금발의 천사가 보였다.

블루 미라일은 천사, 네피엘의 공격에 연신 여기저기를 두들겨 맞고 있었다. 거기에 카디안이 합세해 그의 스페셜 스킬인 마염포(魔炎砲)를 연속적으로 날려대자 더욱 힘을 쓰지 못했다.

크우우우우-!!

계속해서 얻어 맞는 것에 분했던지 블루 미라일은 소극적인 태도를 버리고 갑자기 광분해서 네피엘에게 달려들었다. 네피엘은 당황하지 않고 몸을 옆으로 날렸다. 지쳤던 블루 미라일은 방향을 꺾거나 멈추지 못하고 그대로 내달렸다. 달려가는 그 앞에 카디안이 있었다.

'앗!'

지켜보던 키리안이 움찔하며 나서려 했다. 하지만 그 행동은 아리에가 그의 왼팔을 잡아채는 것으로 멈춰졌다. '왜'라며 온 몸으로 묻는 키리안. 그녀는 대답 대신 카디안을 주시하는 행동을 보여 주었다.

쾅-!

'아…!'

커다란 소리에 고개를 돌린 키리안은 전투의 마지막을 볼 수 있었다. 카디안은 검은빛의 지팡이, 다크니스 완드를 앞으로 내밀고 있었다. 그의 앞엔 반투명한 반구(半球)의 배리어가 펼쳐져 있었고 그곳에 블루 미라일은 머리를 박고 있었다.

"잘가라."

카디안은 나직히 한 마디를 했다. 그리고 배리어가 풀렸다. 기우뚱 앞으로 무너지는 블루 미라일. 생명을 불태운 마지막 발악이 끝난 것이다.

블루 미라일은 순식간에 흐릿하게 변해 사라졌고 적이 사라지자 카디안은 여유롭게 몸을 돌렸다.

"여어, 키리안. 드디어 왔구나. 지금 레벨 몇?"

"53. 형은?"

간단한 키리안의 대답에 카디안이 '훗'하고 웃었다.

"훗. 이 몸의 레벨은 59. 이제 60을 바라본단다. 60만 되면 아이스 월을 배울 수 있단 말씀이지. 크크크."

흥분에 찬 카디안을 바라보며 키리안은 뚱하게 대답했다.

"아 예에~ 그럼 열심히 하슈."

무감각도 아니고 뚱~한 키리안의 대답에 카디안은 키리안에게 다가가 어깨 동무를 하며 말했다.

"그 뚱한 표정은 무엇인고? 너도 기뻐해야 마땅하거늘. 이 형님이 아이스 월을 배우기만 하면 이 던전의 보스 해룡(海龍)도 잡을 수 있단 말씀이다."

기분이 저조한 관계로 웬만하지 않으면 반응하지 않을 키리안의 귀가 솔깃했다. 던전 보스인 해룡을 잡을 수 있다고?

"무슨 말이야?"

키리안이 관심을 보이자 카디안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다시 훗하고 웃고선 말했다.

"그대로 이해하면 돼. 아이스 월을 배우면 해룡 등의 수속성 몬스터의 공격, 그것도 그 속성의 마법 공격을 막기가 아주 수월해진단 말씀이지. 사실, 약간 힘들 수도 있지만 너와 내가 누구냐? 그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게임, '에스페란즈' 최고, 최강의 검사와 마법사 아니었냐. 아무리 약해졌다해도 그 실력이 어디 가겠냐? 걱정 없단 말씀. 뭐, 그래도 1이라도 더 올려두는 편이 좋겠지?"

카디안의 약간은 거만하고 낮게 깔린 말에 키리안 역시 살짝 차가운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빵했던 이미지와는 전혀 상반된 모습. 하지만 그것은 곧 사라지고 다시 '헤에~'하는 웃음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뭐, 너도 알다시피 여기서 파티 사냥은 무리야. 혼자해도 충분히 경험치는 팍팍 올라가니까 레벨 60이 되면 전음을 보낼 테니 열렙(열심히 레벨을 올리라는 뜻)하도록!"

"옛썰! 자, 그럼 가자 아리에!"

키리안은 힘차게 대답하곤 아리에의 팔을 쥐고 걸음을 옮겼다. 아니, 옮기려 했다. 아리에가 목석같이 서 있지 않았다면 실행되었을 행동이었다.

"응? 왜 그래 아리에?"

그는 이상함을 느끼고 아리에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당황했다.

'아…레…?'

그녀는 완전히 굳어 있었다. 감정을 담을 수 없는 눈동자이지만 멍하게 있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아리에는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멍하니 키리안을 주시하고 있었다.

"어? 아리에? 아리에?"

키리안이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그녀의 양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설마 오류가 난 건가?'

그는 이 상황에서 가장 확률이 높은 추측을 하며 그녀를 계속 흔들었다. 그것이 잠시 지속되고 키리안이 포기하고 운영자에게 신고할 생각으로 움직임을 멈췄을 때, 그때 아리에의 입이 열렸다.

"주인님."

워낙에 조용하고 가라앉은 목소리였던지라 키리안은 당황하며 되물었다.

"응?"

"에스페란즈를 했었어?"

"응. 근데 왜?"

키리안은 아리에의 물음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행동은 가벼웠지만 그의 속은 무거워지고 있었다.

'이것도 인공지능에게 주입된 지식인가? 철저하게 게임을 현실로 인식하고 이 속에서의 지식만을 주입 받았어야 할 씰이 '다른 게임'에 대해 물어? 아니, 이건 이해할 수 있다 치고, 방금 전 보인 행동은 뭐지? 일시적인 오류라 하기엔 상황이 너무 절묘하잖아?'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며 색다른 모습으로 새로운 재미를 느끼며 살고자 했던 키리안이었기에 정신을 반쯤 붕 띄우고 디 앱솔브를 플레이 했었다. 그렇기에 약간은 미심쩍은 아리에의 일들을 그냥 넘기곤 했다. 하지만 카디안이 잠시 에스페란즈를 언급했고, 그의 정신이 잠시 날카로워지게 되었을 때 아리에가 다시 미심쩍은 행동을 한 것이다. 그것도 꽤 큰 걸로.

아리에는 키리안의 되물음에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곳에서의 이름은 뭐였어?"

기대, 희망, 불안감 등의 감정이 섞인 질문이었다. 인공지능이라 하기엔 너무나 풍부한 감정 표현. 고급의 인공지능이라 하면 흉내낼 수 있는 것이지만 이건 차라리 인간에 가까웠다.

"…리안 에스페르츠."

그는 사실대로 자신의 아이디를 불러 주었다. 아리에는 그의 입이 열리자 극도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가 아이디가 나오자 이내 크게 실망한 표정이 되며 눈동자를 떨었다.

"후우. 그래."

잠시 그 모습을 유지하던 아리에는 깊게 숨을 내쉬며 다시 평소의 모습을 찾아갔다. 키리안은 그 모습을 말 없이 지켜 보았다.

"헤, 미안해 주인님. 많이 당황했어?"

조용한 키리안의 모습에 아리에는 억지로 꾸민 듯한 발랄한 모습으로 물었다. 키리안은 고민했다. 어쩔까? 단도직입적으로 나갈까, 아니면 여기서 덮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까. 짧은 시간 동안 깊게 고민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아아, 아니야. 그보다, 시간 많이 잡아 먹었잖아! 두 배로 일 해!"

키리안의 소리침에 아리에가 안도의 표정을 속으로 감추며 평소보다 모션을 크게 하며 답했다.

"무슨 억지야! 나 아니면 어차피 힘들면서!"

"시끄럿! 씰 주제에 말이 많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

"어림도 없네요!"

그가 택한 것은 현재에서의 안주였다. 이렇게 서로가 속을 가린 채 연극을 하며 얻는 평화. 아직까진 서로에 대해 그렇게 가깝지 못하다. 겨우 한 달도 안 되는 시간을 함께 했을 뿐이다. 깊게 관여할 필요는 없다. 아직까지는.

삼인방(三人幇)

냠-_) 연참이라...탄력 받으면 3연참..이래놓긴 했는데-_)

2연참만 하자-_);;

그리고..마지막에 다는 거, 리플 그림이 아니라 크레아 도장이에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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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 Eight - 삼인방(三人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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