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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서펜트 하나가 포효하며 몸을 던진다. 그 앞으로 아리에가 검도 뽑지 않은 채 정면으로 달려 든다. 마주치는 둘. 그리고 아리에의 오른손이 번개 같이 움직였다. 교차하는 둘. 아리에의 손엔 어느새 붉은빛의 레이피어, 레드 슬레이어가 들려 있었다.
캬오오오-!
잠시 공간을 지배했던 침묵은 블루 서펜트가 두 동강이 나며 내뱉은 마지막 포효로 인해 사라졌다. 수인은 이미 처리되어 있었기에 뒷타는 필요 없었다.
멋지게 수인을 처리한 아리에는 잠시 그 모습 그대로 멈췄다가 몸을 돌려 키리안에게로 걸어 갔다. 그 모습이 사뭇 장중해 모두가 움직이지 못했다.
조용하게 주인의 앞에 선 아리에. 그녀는 조용히 레드 슬레이어를 검집에 꽂고는 두 손으로 키리안의 목을 잡았다. 그리고… 흔들었다.
"이 빌어먹을 주인님아아아아아! 씰을 지켜주지는 못할 망정 그대로 블루 서펜트한테 떠밀어? 그런 불량한 태도는 어디서 배워 먹은 거냐아아아아!!!"
분노하며 키리안을 흔들어대는 그 모습은 장중함과는 다른 살벌한 기세를 지녔기에 모두가 슬금슬금 물러나야 했다. 단지 유하만이 포커 페이스를 유지하며 키리안의 옆에 조용히 서 있을 뿐이었다.
살벌한 기세를 내뿜으며 주인의 목을 잡고 짤짤짤 흔들어대는 아리에, 흔드는대로 흔들리며 눈이 뱅글뱅글 돌고 있는 키리안, 그 옆에서 전혀 어울리지 않게 조용히 퇴마봉을 품고 서 있는 유하. 상당히 오묘한 그림이다.
"…정신 사나워. 아니, 괴로워."
디엔트의 평이었다. 웃기고 야한(!) 장면은 봤지만 이처럼 막강한 정신적인 타격을 주는 모습은 처음 보는 그였다.
"내 씰이 저렇지 않은 것에 무한히 감사하는 중이야."
카디안은 자신의 옆에서 고고하고 성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네피엘을 보며 정말 가슴 속 깊이 안도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괴로운 그 그림은 키리안이 '꼴깍'하고 기절해 버리는 것으로, 아니 연기하는 것으로 일단락 되었다. 아리에는 그녀 답지 않게 무지하게 당황했다가 이내 연기라는 것을 알고 눈에 불을 뿜었다가 키리안이 재빨리 유하의 등 뒤에 찰싹 붙어 버리자 한숨을 내쉬곤 몸을 돌렸다.
"끝났냐?"
"응. 하이고오…"
키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가 곧 엄습하는 두통에 머리를 부여 잡았다. 카디안이 그 모습에 '쯧쯧'하고 혀를 찼다.
"그럼 계속 가자. 해룡이 언제 젠 될지 모르니까 빨리 대기해야지."
"응."
지금 그들은 해룡이 있는 던전 최종층의 바로 앞 5-5존에 있었다. 저 멀리 푸른빛의 게이트가 보이고 있었는데, 저곳을 통해 해룡이 등장하는 5-6존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등장하는 곳이 랜덤이었고 죽은 뒤 다시 젠 되는 것도 랜덤이었기에 해룡을 잡기 위해선 부지런히 돌아 다녀야 했다.
여기저기서 튀어나온 친위대를 한 번 더 쓸어 버린 뒤에 그들은 게이트의 앞에 설 수 있었다. 길이 끝난 곳에 위치한 그곳은 마치 강 속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것 같았다. 잠시 그것을 응시하던 일행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곳으로 들어섰다.
쏴아아아-
시원한 물이 잠시 그들의 몸을 훑었고, 다시 나온 곳은 그들의 예상에 딱 들어 맞는 곳이었다.
"응? 물 속?"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파란색이었다. 여기저기 물고기들이 돌아다니고 있는 이곳. 푸른빛은 일행 모두를 감싸고 있었는데, 육체가 자유롭게 움직이고 말을 할 수 있다는 것만 제외하면 모든 것이 물 속에 있는 것과 같았다.
"5-6존은 물속이라는 게 거짓말이 아니었군."
"그렇지. 나도 처음에 왔을 땐 살짝 당황했다니까. 숨 못 쉬는 줄 알고 허우적거렸다가 라시드 형한테 웃음을 샀었지. 쳇."
디엔트는 당황하는 키리안을 보며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인 사람이 갑자기 물속에 내동댕이 쳐진다면 당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이다.
카디안은 주변에 보이는 유저들을 확인하곤 일행에게 말했다.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잔챙이만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그럼 우리도 해룡을 찾아 보자."
"예썰!"
어느새 보통의 모드로 돌아온 키리안이 힘차게 대답했다. 그는 신기한 듯이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고 있었는데, 자유롭게 몸이 수영을 해내자 들뜬 모습을 보였다.
'그러고보니 녀석, 맥주병이었지.'
기껏해야 목욕탕에서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것이 전부인 키리안에게 이곳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던 것이다. 그는 용감하게도 아리에를 끌고 여기저기 다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가 다시 한 번 목이 흔들리는 재앙을 겪고서 유하의 옆에 가서 히잉거렸다.
"자자, 쑈는 그만 하고 이동 하자."
대충 이리저리 움직여보는 것으로 이곳에서의 감을 잡은 일행들은 유저들이 보이지 않는 곳을 돌아 다녔다. 중간중간에 커다란 가재나 블루 서펜트 등을 만나긴 했지만 일행의 협공에 가볍게 KO 되었다.
"우씨, 자꾸 잔챙이만 나오잖아."
키리안은 또다시 나타난 블루 서펜트를 보며 인상을 구겼다. 덩치가 좀 더 커진 것을 제외하면 여전히 '바부팅이'인 블루 서펜트가 다시 등장한 것이다. 그는 귀찮음을 피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아리에를 밀어볼까하고 힐끔거리다가 그녀가 다정하게 목에 팔을 둘러오자 깨끗히 그 계획을 머리 속에서 삭제했다.
"사이 좋네 키리안."
"시끄러워요!"
키리안과 아리에의 모습을 본 카디안이 한 마디하자 아리에는 도끼눈을 뜨고 그에게 소리쳤다. 아리에의 그 모습에 카디안은 몸을 휙 돌리곤 블루 서펜트에게 홀리 윈드 커터를 날리는 것으로 회피했다.
크우우우-!
놈은 포효하며 그것을 가볍게 피해냈다. 물밖과는 전혀 다른 움직임이었는데, 이것 때문에 상대가 더욱 귀찮아졌다.
"쳇, 키리안."
"예엡. 유하야!"
"속박. 산(散)."
카디안은 요리조리 다니는 블루 서펜트를 보며 키리안을 불렀다. 그 이유를 정확히 인지한 키리안은 바로 유하에게 주술을 사용하게 했다. 은빛의 거미줄은 여기저기 퍼지며 블루 서펜트를 옭아 맸다. 갑자기 느려진 블루 서펜트. 당연히 놈을 향해 공격이 날아갔다.
"세인트 에로우(Saint arrow)."
디엔트의 파트너 아세리아가 활을 죄었다. 이번에 모인 것은 성스러운 빛이었다. 거대한 힘을 담은 화살이 빛의 선을 남기며 블루 서펜트를 강타했다.
우우우웅-!
고도로 압축된 힘은 블루 서펜트의 몸에 틀어 박혀 그것을 분출해냈고 그에 휘말린 블루 서펜트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제 이타.
"플레임 스피어(Flame spear)!"
네피엘이 블루 서펜트에게 쇄도해 백색의 창을 내리쳤다.
콰우우웅-!
창이 닿자 굉음과 함께 거대한 성화(聖火)가 피어 올라 블루 서펜트를 태웠다.
그렇게 블루 서펜트가 사라지자 키리안은 편안하게 드러눕는 자세를 취했다. 그의 등 뒤에 공허함 대신 부드러운 느낌이 자리잡았다. 키리안은 웬일인가 싶어 뒤를 돌아보았다. 아리에나 유하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응?"
등 뒤엔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푸른빛의 무언가가 자리잡고 있었다. 물보다 조금 더 진하고 선명한 푸른빛의 그것은 기둥과도 같은 굵기를 지니고 있었다.
"아레……?"
그것을 자세히 주시한 키리안은 이내 그것이 비늘로 덮여 있음을 알았다. 웬지 모를 불안감에 고개를 든 그. 그리고 보이는 거대한 용의 머리.
캬오오오오오오-!
"해룡이다아아아아아아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척봐도 용임을 알 수 있는 면상. 툭 튀어 나온 입이 쩍 벌어지며 날카로운 이빨이 튀어 나왔다. 그리고 쏘아진 워터 브레스. 그야말로 폭포나 다름없는 그 공격에 키리안은 기겁하며 몸을 틀었지만 이미 늦었다.
"으이그 바보 같은 주인님아! 사이 배리어(Psi barrier)!"
그 모습에 아리에가 상황을 파악하곤 키리안의 앞에 서서 사이 배리어를 전개했다. '츠즈즛'하는 사이 배리어 특유의 음이 워터 브레스를 막고 있음을 알렸다.
"좋았어! 이걸로 해룡은 우리 꺼다!"
놀란 키리안은 안중에도 없는지 디엔트와 카디안은 좋다고 소리치며 전투 태세에 들어갔다.
"그럼 사냥 시작이다!"
가볍게 날린 카디안의 홀리 윈드 커터를 시작으로 삼인방과 해룡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해룡 사냥
음. 분위기에 맞을지 모르겠네요-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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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그나로크 디 애니메이션 Opening - We are the 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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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 Nine - 해룡 사냥